연애의 기억
줄리언 반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다산책방 / 2018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어떤 영화는 극장에서 상영이 끝나도 한참을 그 자리에 앉아 있게 만든다. 이미 상영은 다 끝나고 불이 켜져 사람들이 일어서 나가는데도, 혼자 그 자리에 멍하니 앉아 있을 때가 있다. 영화가 주는 강렬한 감동이, 때로는 처연한 슬픔이 나를 그 자리에 잡아 둘 때가 있다. 소설 중에도 그런 소설이 있다. 소설의 끝장을 덮었음에도 한참을 그 자리에 앉아서 그 소설의 이미지를 생각할 때가 있다. 소설을 읽은 후에도 며칠 동안 소설의 이미지가 문뜩 문뜩 머리에 떠오를 때가 있다. 소설이 주는 감동의 이미지나 슬픔의 이미지가 너무 강렬해서 소설이 끝났음에도 그 이미지가 나를 놓아주지 않는 경우이다. 줄리언 반스의 [연애의 기억]이라는 소설이 그랬다. 소설의 마지막 장을 덮은 지가 이미 오래 되었는데도, 아직도 이 소설 케이시와 수전의 사랑이 나를 붙잡고 있다. 과연 이런 처절한 사랑도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이들은 서로를 그렇게 아프게 했음에도 이것을 과연 사랑이라고 할 수 있을까? 아니, 그렇게 서로에게 아프게 할만큼 서로를 사랑했을까? 그리고 그런 대가를 치를 만큼 그들의 사랑은 가치가 있었을까?
 
[연애의 기억]은 모두 3부로 구성되어 있다. 소설의 1부에서는 철없는 - 물론 소설의 주인공은 그 당시 절대로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겠지만 - 19살의 케이시와 48살의 유부녀 수전의 만남과 로맨스를 그리고 있다. 방학을 맞아 런던 외곽의 조용한 마을에 돌아온 케이시는 엄마의 권유에 테니스 클럽에 가입한다. 당시 테니스 클럽은 영국의 보수적인 중산층 이상이 사람들의 사교 장소였고, 케이시의 어머니는 아들의 장례를 생각해서 가입을 하게 했다. 그러나 어머니의 바람과 달리 케이시는 그곳에서 수전을 만난다. 처음에는 그냥 테니스 동료로 만나다가 서로 친근하게 되고, 결국 사랑하게 된다. 그들은 처음에는 각자의 삶의 영역을 유지하며 사랑을 하지만, 결국 사랑의 도피를 하게 된다. 여기까지의 과정을 이제는 나이가 든 케이시가 마치 젊은 날의 추억을 회상하듯 이야기하고 있다. 여기까지만 읽었을 때는 젊은 날에 관습과 뛰어넘어 뜨거운 사랑을 한 노인이 젊은 날의 사랑을 감성에 젖어서 회고하는 정도로만 느껴진다.
 
그런데 2부가 되면 이야기의 분위기가 전혀 다른 분위기로 전개된다. 런던의 허름한 건물을 사서 도피한 두 사람은 처음에는 행복해 보였다. 그러나 그곳에서 수전 서서히 무너져 가기 시작했다. 1부에서는 케이시와 수전이 단순히 서로에 대한 열정으로 사랑을 하고 도피를 한 것처럼 보였지만, 2부에서는 그 속 사정을 이야기한다. 케이시의 남편은 지독한 술꾼으로 술만 먹으며 아내에게 폭력을 행사했으며, 그로 인해 케이시를 만나기 오래 전부터 둘은 각 방을 쓰고 있었다. 계속되는 남편의 폭력으로부터 수전을 보호하기 위해 케이시는 수전과 도피를 한다. 그러나 그곳에서 수전은 점점 망가져간다. 계속해서 우울증에 시달리고, 그것을 이기기 위해 술을 마시고, 그리고 결국은 스스로를 무너뜨려 간다. 케이시는 10년 가까이 그 과정을 지켜본다. 케이시는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 보고, 어느 시점이 되어 감당할 수 없는 지점이 되어 간다.
 
소설의 마지막인 3부에서는 나이 든 케이시가 자신과 수전과의 만남이 자신의 인생에 어떤 의미였는지를 독백처럼 이야기하는 부분이다. 너무나 강렬했기에 그는 더 이상 수전과 같은 사랑을 하지 못하고, 그 사랑의 기억을 영원히 간직한다. 그러나 그 기억은 아름다운 기억인 동시에, 어둡고 황량했던 어두운 기억이었다. 그는 평생 자신의 사랑의 실체가 무엇이었는지, 자신이 기억 중 무엇이 맞는 지를 고민한다. 아니, 자신이 무엇을 기억해야 할지 고민한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그래서, 그 익숙한 기억의 문제. 그는 기억이 믿을 만하지 못하고 치우쳐 있다는 것을 인정했지만, 어느 쪽으로 치우쳤을까? 낙관 쪽으로? 그게 처음에는 말이 되었다. 사람들은 과정를 기분 좋게 기억했는데, 그렇게 하는 것이 자신의 존재를 정당화해주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인생이 어떤 승리라고 볼 필요는 없지만 - 그 자신의 인생은 그런 것이라고 말할 수 없었다 - 재미있고, 즐길 만하고, 좋은 목적을 추구했다고 자신에게 말할 필요는 있었다. 좋은 목적을 추구했다? 그 말은 약간 인생을 과장하는 것일 수 있었다. 그럼에도 낙관적인 기억은 인생을 떠나는 것을 쉽게 해줄지도 모르고, 소멸의 고통을 완화해 줄지도 몰랐다. 하지만 똑같이 그 반대도 주장할 수 있었다. 기억이 비관 쪽으로 치우쳐 있다면, 돌아보았을 때 모든 게 실제로 그랬던 것보다 검고 황량해 보이고, 이렇게 되면 삶을 떠나는 게 더 쉬워질 수도 있다. (P 292)"
 
케이시에게 수전과의 사랑은 아름답고 즐거운 기억일까? 아니면 검고 황량한 이는 기억이었을까? 어쩌면 그 둘 다가 아니었을까? 아름다웠지만, 검고 황량함을 내포한 처연하고 슬픈 사랑이 아니었을까? 소설을 읽는 내내 이미 오래 전에 고인이 된 김광석의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이라는 노랫말이 떠올랐다주로 아름다운 기타와 하모니카를 반주로 김광석의 담담하면서도 처량한 목소리가 들린다.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그리고 이렇게 덧붙인다.

 

우리 이제 다시는 사랑으로 세상에 오지 말기를

 

어쩌면 소설 속 케이시의 심정이 이렇지 않았을까? 너무나 강렬했고, 외면할 수 없는 사랑이었지만, 다시는 그런 사랑을 하지 않기를, 만약 다시 세상에 태어난다면 수전이라는 여성을 만나지 않기를,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을까?
 
소설은 케이시의 시각에서만 이야기가 되기에, 수전이 왜 그렇게 망가졌는지 자세히는 알 수가 없다. 그러기에 소설을 읽는 내내 수전의 아픔에 어느 정도 공감을 하면서도, 왜 그렇게 자신을 망가뜨리고, 옆에 있는 케이시까지 망가뜨려야만 했는지에 대해 의문이 생긴다. 그러나 소설 중간 중간에 이미 수전의 어두움이 암시되어 있다. 수전은 케이시를 만나는 순간부터 농담처럼 이렇게 말을 한다. "아직은 나를 포기하지 말아줘!" 그리고 또 비슷한 농담도 한다. "나는 지금 이렇게 사라지고 있어!" 이미 수전은 암환자가 자신 안에 있는 암세포가 자신을 잠식해 가는 것을 느끼듯이, 자신 안에 있는 어둠이 자신을 잠식해 가고 있는 것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케이시와의 사랑을 포기할 수 없었을 것이다. 비록 소설에서는 언급되지 않았지만, 수전 역시 스스로 무너지는 자신을 느끼고, 그런 자신 옆에서 함께 무너지는 케이시를 보며 가슴 아파했을 것이다. 이 소설의 처음 시작에서 작가는 이렇게 말을 한다.
 
사랑을 더 하고 더 괴로워하겠는가,아니면 덜 하고 덜 괴로하겠는가? 그게 단 하나의 진짜 질문이다,라고 나는 결국, 생각한다. (P 13)”
 
이 고민은 작가만의 고민이 아니라, 케이시와 수전의 고민이었을 것이다. 둘은 사랑하면서 매순간 이렇게 고민했을 것이다.
 
가을 날 사랑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또 지나간 사랑이나 변해가는 사랑으로 가슴 아파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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