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과 소설가 - 대충 쓴 척했지만 실은 정성껏 한 답
최민석 지음 / 비채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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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고민을 들어주고, 그 고민에 대한 진지한 답을 해 준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나 역시 가끔 타인의 고민을 들어주어야 할 때가 있다. 가벼운 고민이라면 잘 들어주고 나름 해결책도 제시하지만, 무거운 고민일 때는 경우가 다르다. 자신의 일생에 중대한 선택의 문제나,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못하는 자신의 어두운 문제를 이야기할 때면, 과연 내가 상대의 고민과 인생에 어떤 대답을 줄 수 있는지에 회의를 느낀다.  그럼에도 나를 믿고 신뢰해서 고민을 털어놓는 사람에게 무언가는 도움이 되어야 할 텐데...라는 생각으로 오히려 나 자신이 고민에 빠질 때도 있다.

[고민과 소설가]는 40대 소설가인 최민석 작가가 20대 대학생들의 고민을 상담한 내용을 엮은 책이다. 때로는 진지하게, 때로는 유모까지 섞어 가면서 그들의 고민에 성실하게 답을 하고 있다. 책의 내용은 저자가 20대 청춘들과 메일로 나눈 고민들을 질문과 답 형식으로 편집했다. 나 역시 이 책을 읽으며 20대 청춘들의 고민을 읽고 내가 작가라면 어떤 대답을 해 줄까라는 생각을 하면서 읽었다. 나름 작가와 비슷한 대답을 제시한 부분도 있고, 영 반대 방향의 대답을 제시한 부분도 있었다.

이 책에는 20대 청춘 남녀들의 고민답게 사랑에 대한 고민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사랑에 대한 조언처럼 쉬우면서도 어려운 일이 없을 것이다. 특히 사랑에 대한 조언에서는 저자의 대답이 매우 자유로우면서도 생각이 깊어서 읽는 내내 감탄하기도 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은 연인이 있는 남자를 사랑하는데 어떻게 해야 하냐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서로를 위해 선(線)을 그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저자의 대답은 영 반대였다. 그는 전 세계 인구가 74억인데 그중 37억이 남자라고 말한다. 그런데 그중 여러 가지 이유를 대면 결국 사귈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말한다. 말이 되는 논리 같기도 하고, 되지 않는 논리 같기도 하지만, 분명한 건 이상하게 설득력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누군가가 마음에 든다고 해서, 상황을 고려치 않고 다짜고짜 받아달라며 떼쓰는 건, 상대를 배려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지만 오랜 시간 고민하고 상대 입장에서 생각하고, 물러서려고 수차례 노력했는데도 안 된다면 어쩔 수 없는 겁니다. 차라리 오랫동안 간직해왔고, 끙끙 앓아왔던 마음을 표시하는 게 낫습니다. - 중략 - 그분에게 질문자님의 마음을 솔직하게 말해보세요. 그걸로 마음이 차분해진다면 그것만으로 좋은 것이고, 그걸로 둘의 관계가 친밀해진다면 그 역시 좋은 것입니다. 반드시 연인이 되어야 할 필요는 없지만, 연인이 반드시 되지 말아야 할 이유도 없습니다. (P 102)"

그리고 이 책에서 내가 가장 공감했던 저자의 글이 이어진다.

"20대에는 지구가 멸망할 때까지 연애 상대와 함께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게 안 딘다면 반드시 해피엔딩을 맺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야 내 청춘이, 내 삶이, 아름다운 추억과 역사로 새겨질 것 같죠. 하지만 세상살이는 그렇지 않습니다. 결혼하지 않는다면 모두 헤어지게 됩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인류의 미래를 위해 헤어지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상대의 미래를 위해 헤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몹시 사소한 이유로 헤어집니다. 그러면 남녀 간에 한때 철석같이 믿고 지켜왔던 가치가 실은 산들바람에도 날아가 버리는 것이란 걸 시간을 통해 깨닫게 됩니다. 남녀관계라는 게 이런 겁니다. 아쉽게도, 이게 현실입니다. 매우 사소한 말다툼, 보잘것없는 의견 차이가 쌓여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그 생채기가 쌓여, 결국은 헤어집니다... 그러니 여유롭게 생각하세요. (P 103)

또 20대 답게 진로에 대한 고민들도 많다. 가장 인상 깊은 질문은 역시 전공에 대한 질문이다. 자신의 전공이 마음에 들지 않아 바꾸려 하는데, 늦지는 않았느냐는 질문이다. 이에 대한 저자는 자신의 여러 가지 경험을 거치며 소설가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이야기하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제가 무슨 말을 하는 것 같나요? 질문자님은 아닐 수 있으나 저는 이토록 쉽게 흔들렸습니다. 대개 사람은 변할 수 없다지만, 제 생각에는 변합니다. 제가 양보해서 사람은 변할 수 없다 쳐도, 사람의 꿈은 변할 수 있습니다. 체 게바라는 의사가 되려다가, 혁명가가 됐습니다. 베드로는 어부가 됐지만, 결국 예수의 제자가 되어 순교까지 했습니다. 노무현은 변호사가 되었다가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저와 동료와 많은 선배들이 삶에서 일어난 항로의 변화를 받아들였습니다. (P 205)"

흔히 인생 상담이나 고민 상담에 관한 책을 읽다 보면 흔히 뻔한 대답에 조금 실망하기도 한다. 또는 상대방의 사정이나 상황을 배려하지 않은 채 자신의 잣대로 상대를 가르치려는 말투에 괜히 화가 나기도 한다. 그래서 이런 책들을 접하면 선입관으로 읽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이 책 역시 이런 선입관이 있었다. 그러나 읽으면서 저자의 타인과 인생에 대한 진진한 태도와 경험에서 나오는 깊이 있는 대답에 많은 공감을 느끼면서 읽었다. 사랑이나 진로 문제로 고민하는 20대 청춘이나, 20대에게 인생의 조언을 해 주어야 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라면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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