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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한 마리가 술집에 들어왔다
다비드 그로스만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4월
평점 :

유독 가뭄이 심한 아프리카 초원으로 기억난다. 무슨 연유인지 다리에 상처를 입은 사자가 절뚝거리며 걸어가고 있다. 사자의 뒤에서는 하이에나들이 쫓아온다. 하이에나들은 사자가 쓰러지기만을 기다린다. 그러면 득달같이 달려들어 사자의 허벅지부터 사자를 산 채로 먹어 치울 작정이다. 사자 역시 자신의 뒤를 쫓아오는 하이에나를 알고 있다. 그러기에 애써 멀쩡한 것처럼 걷는다. 가끔씩 뒤를 돌아보며 으르렁거린다. 마치 '나 아직 안 죽었어!'라고 소리치는 것 같다. 어렸을 때 본 동물 다큐멘터리의 한 장면이다. 세상을 살면서 사람을 대할 때면 유독 이 장면이 떠오를 때가 많다. 어쩌면 우리도 상처 입은 짐승이 아닌가 모르겠다. 육체와 내면이 찢기고 망가져 서 있을 힘도 없지만, 아무렇지 않은 듯 버틴다. 때로는 자신의 육체적 병이나 마음의 상처에 대해서 실없는 농담도 한다. '나이 들면 다 그런 건지 뭐!' 조금이라도 자신의 상처를 보여주었다가는 득달같이 달려들어 자신의 먹어 치울 상대를 알기에 오늘도 아무렇지 않은 듯 세상을 살아간다. 그럼에도 가끔은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자신을 보여주고 싶을 때가 있다. 가슴을 열어젖혀서 자신의 찢긴 상처를 보여 주며 '이것이 바로 내 모습이다!'라고 소리치고 싶을 때가 있다.
여기 상처 입은 채로 쉰일곱의 나이로 오랜 기간 자신의 상처를 숨기고 살아온 남자가 있다. 이미 열네 살 때 커다란 상처로 마음과 육신은 갈가리 찢어졌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 그렇게 인생이란 밀림을 걸어온 남자가 있다. 그러나 이제 이 남자도 한계에 이르렀다. 육체와 마음도 더 이상 버틸 수가 없다. 더 이상 아무렇지 않은 듯 상처를 감출 수가 없다. 그는 죽기 전에 마지막 포효처럼 자신의 상처를 열어젖히고자 한다. 모두들에게 자신이 얼마나 상처 입은 모습으로 버텼는지를 보여주고자 한다. 그는 자신의 마지막 잔치에 유일한 친구를 초대한다. 아니, 열네 살 때 친구였다가 자신을 잊어버리고 살았던 한 사람을 초대한다.
다비드 그로스만은 한강 작가로 인해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수상작가이다. 그는 작년에 한강 작가에 이어 이 상을 수상했다. 그로 인해 그의 작품들이 우리에게도 많이 소개되고 있다. 그에 대한 소개 글에는 그를 반전 작가로 소개하는 글이 많다. 그러나 그의 작품에는 무엇보다도 상처 입은 인간의 내면에 대한 날카로운 시각이 존재한다. [말 한 마리가 술집에 들어왔다]는 바로 이런 작가의 성향이 가장 잘 드러난 작품이다.
소설은 이제는 한물간 스탠딩 코미디언인 도발레가 오십 칠세의 생일날 한 술집의 무대에 오르면서 시작된다. 그는 특유의 익살과 몸짓으로 관중을 사로잡는다. 그 관중 중에는 그가 초대한 열네 살 때의 친구 아비사이가 있다. 그는 전직 판사였으나 정치적 이유로 은퇴를 당한 뒤 혼자 칩거를 하고 있다. 그리고 어느 날 기억에서 사라졌던 도발레의 전화를 받는다. 도발레는 아비사이를 자신의 무대에 초청한다. 도발레가 아비사이에게 요구하는 것은 그냥 자신을 봐 달라는 것뿐이었다. 그렇게 초대된 도발레의 쇼는 비록 성적 농담과 우스광스러운 행동들이 난무하지만 하룻밤 술집에서 그럭저럭 봐 줄 만한 코미디였다. 그런데 관중에서 변수가 발생한다. 한 키 작은 여자가 도발레의 거친 농담에 뜻밖의 반응을 한다. 나'는 어렸을 때 당신을 알아요!' '당신은 착한 사람이었어요!' 그 순간부터 도발레의 코미디는 망가지기 시작한다. 성적 농담과 우스광스러운 행동 대신 어느새 자신의 과거를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열네 살 물구나무로 거꾸로 걸을 수밖에 없었던 그의 삶이 펼쳐진다. 사람들은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당황해한다. 그들이 무대에 기대한 것은 성적인 농담과 조금은 더럽고 거친 유머를 구사하는 코미디언이었는데, 어느새 그 코미디언은 사라지고 상처 입은 열네 살의 소년이 무대에 서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그에게 코미디를 하라고 소리친다. 자신들은 코미디를 듣기 위해 돈을 주고 이 자리에 앉아 있다고 말한다. 도발레는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며 자신의 이야기를 하다가 중간중간에 성적이며 자극적인 농담들을 한다. 관중들은 그가 근근이 던져주는 농담으로 지루한 그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듣는다. 그러다가 결국에는 소리를 치고 떠나간다. 그의 어린 시절 이야기가 끝나갈 무렵 이제 남은 사람은 아비사이와 키 작은 여자뿐이다. 그리고 그를 갈가리 찢어놓고, 영원히 회복시켜 놓지 못했을 어린 시절의 상처가 들춰진다. 아비사이와 함께 이야기하고 싶었던, 함께 보여주고 싶었던, 함께 들춰내고 싶었던 상처들. 그러나 43년간 혼자만 가지고 있었던 상처들은 아비사이에게 보여준다. 쇼가 끝나고 아비사이는 그에게 다가가 위로한다. 그런 친구에게 도발레는 말한다. 일 분만 더 사간을 내 달라고. 아비사이는 말한다. 한 시간도 낼 수 있다고.
소설의 매력은 책을 읽는 독자를 작가가 창조한 낯선 공간으로 끌고 가는데 있다. 때로는 극장에서 영화에 몰입하며 감독이 스크린에 창조한 낯선 세계로 들어가지만, 소설에 비할 바가 못된다. 물론 소설을 읽을 때 작가가 만든 세계에 들어가는 초반의 시간이 힘들지만, 일단 한 번 빨려 들어가면 독자는 쉽게 나오지를 못한다. 개인적으로 훌륭한 소설이란 바로 이런 흡입력이라고 생각한다. 독자를 자신의 세계로 빨아들이는 능력이 바로 소설의 힘이다. [말 한 마디리가 술집에 들어왔다]를 읽으면 바로 이런 힘을 제대로 경험하게 된다. 처음에는 작가가 만든 타락한 도시 네타니아의 한 술집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작고 왜소한 도발레의 쇼를 보게 된다. 관중들과 함께 웃고 소리를 지르다가, 갑자가 또 다른 낯선 세계로 들어가게 된다. 마치 난봉꾼들의 잔치가 된 자신의 집으로 돌아온 오딧세이처럼, 눈이 멀어서 자신을 조롱하는 이방신전에 끌려 온 삼손처럼, 인생의 마지막 결전을 준비하는 도발레를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그 도발레의 화려한 입담과 아비사이의 회상을 통해 도발레의 어린 시절로 끌려가게 된다. 이쯤 되면 벗어날 수가 없다. 상처 입은 어린 짐승처럼 군용차에 실려가 부모 중 누가 죽었는지도 모르는 장례식으로 끌려가는 어린 짐승을 보게 된다. 그리고 그 어린 짐승이 마지막 맞닥뜨리는 충격적인 장면 앞에 함께 울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