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인들의 행복 백화점 (리커버 에디션)
에밀 졸라 지음, 박명숙 옮김 / 시공사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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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소설을 읽는 재미 중에 하나가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소설의 배경이 되는 시대로 돌아가는 듯한 생생한 느낌을 받는 것이다. 고전소설의 중세 시대의 경직된 성곽 마을이나 혁명 전야의 황량한 러시아의 사회나 전쟁 후의 허망함을 느끼는 유럽의 뒷골목으로 우리를 데려간다. 그런데 가끔 고전소설을 읽다 보면 황당함을 느끼다 못해 충격을 받을 때가 있다. 몇 백 년의 시대를 거슬러 올라왔는데도 그 시대의 인간 군상과 사회의 모습에서 지금 우리 시대의 추악함을 발견할 때가 있다. 그럴 때면 결국 인간이란... 결국 사회란 변하지 않는 건가라는 절망 비슷한 감정을 느끼기도 한다. 바로 에밀 졸라의 소설 [여인의 행복 백화점]에서 이런 느낌을 받았다.

에밀 졸라는 19세기 후반 프랑스의 자본주의 사회의 어두운 모습을 매우 사실적으로 그리고 있는 작가이다. 특히 그는 루공-마카르 총서라는 시리즈를 통해 나폴레옹 3세가 정권을 잡던 1850년대부터의부터 19세기 후반에 걸친 시대상을 그리고 있다. 우리에게도 많이 알려진 [목로주점]이나 [나나] 역시 이 시리즈 중의 하나이다. [여인들의 행복 백화점] 역시 이 시리즈의 11번째 작품의 하나로서 루공-마카르 가문의 후손인 '옥타브 무레'가 등장한다. 그는 여인들의 행복 백화점을 운영하면서 광기적인 모습까지 보이며 백화점을 확장해 간다.

소설은 파리에 생긴 세계 최초의 백화점이라고도 할 수 있는 여인들의 행복 백화점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소설에는 여러 명이 등장하지만, 주로 드니즈라는 발로뉴라는 시골 출신의 여성의 시각에서 전개된다. 드니즈는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어린 여동생인 페페와 남동생인 장을 데리고 큰아버지가 있는 파리로 상경한다. 그리고 몰락해 가고 있는 큰아버지의 상점과 대비되는 거대한 백화점을 맞닦드린다. 그녀에게 백화점이란 동경의 대상이며 동시에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드니즈는 아침부터 엄청난 유혹을 느끼고 있었다. 한 시간 동안 지켜보았을 뿐인데 그녀가 코르나유에서 6개월 동안 본 것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드나드는 거대한 백화점은 그녀를 혼란스럽게 하면서 동시에 매료시켰다. 안으로 들어가 보고 싶다는 갈망 속에는 결정적으로 그녀를 유혹하는 막연한 두려움이 깃들어 있었다. 그와 동시에 그녀의 큰아버지 가게에서는 왠지 모를 불편함이 느껴졌다. 그것은 구태의연한 영업 방식이 유지되고 있는 음습하고 후미진 가게에 대한 본능적인 경멸과 반감 같은 것이었다. 그녀가 이곳에서 느꼈던 모든 것들, 그들 가게에 처음 발을 들여놓았을 대의 불안감, 친척들의 시큰둥한 대접, 지하 독방을 비추는 것 같은 빛 아래에서의 음울한 점심 식사, 몰락해가는 초라한 가가에서 느껴지는 나른한 고독감 속의 기다림 등은 그녀 안에서 그 모든 것들에 대한 은밀한 거부와 활기찬 삶과 빛을 향한 이끌림으로 귀착되었다. (P 31)"

그녀는 큰아버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백화점에 판매원으로 취직을 한다. 소설의 초반은 그녀가 경험한 백화점 판매직원에 밑바닥 생활을 어둡고 사실적으로 그리고 있다. 기본급도 없이 판매 수입만으로 생활을 해야 하기에 그녀의 생활은 처참했다. 백화점의 옥상 기숙사에서 생활하며 조금의 판매 수입 역시 동생의 양육비와 남동생 장이 저지른 사고를 수습하는데 다 사용한다. 항상 낡은 옷과 신발을 신고 다니는 그녀는 동료들에게 놀림의 대상이 되고, 곧 동료들의 모략으로 인해 백화점에서 쫓겨나고 만다. 그 과정에서 백화점 사장이 무레는 드니즈를 향한 연민과 사랑의 감정에 빠지게 되고, 그녀를 다시금 파격적인 조건으로 백화점으로 데려온다. 그리고 결국엔 드니즈와 결혼을 하게 된다.

소설은 백화점을 단순히 하나의 건물로 보지 않고, 마치 주변의 모든 상권들을 빨아들이고 여인들의 욕망으로 계속해서 성장하는 하나의 생물과 같이 표현한다. 소설에는 이런 표현을 '기계'라는 단어로 묘사한다. 소설에서 백화점은 살아서 움직이며, 여인들의 욕망을 삼키는 살아있는 기계같이 묘사된다.

"그러나 드니즈는 강력한 엔진으로 작동하는 거대한 기계를 보고 있는 것 같은 착각에 사로잡혔다. 그 요란한 움직임이 진열대까지 들썩거리게 하는 듯했다. - 중략 - 지나가던 사람들마다 시선을 그곳으로 향했고, 모두가 탐욕으로 인해 거칠어진 듯 그 앞에서 발길을 멈춘 여자들은 서로를 떼밀었다. 거리에서 느껴지는 뜨거운 열기 속에서 쇼윈도의 천들도 살아 움직이는 듯했다. 레이스 천이 가볍게 떨리며 백화점 내부를 감추려는 신비한 베일처럼 아래로 길게 늘어져 있었다. 숨을 쉬고 있는 것 같은 두터운 사각의 나사는 유혹적인 숨결을 뱉어냈다. 팔토를 걸친 마네킹은 마치 살아 있는 여인처럼 몸을 더 뒤로 젖혔다. - 중략 - 쉬지 않고 힘차게 돌아가는 기계의 윙윙거림이 느껴지는 가운데, 전시된 상품들에 정신을 빼앗긴 고객들이 화덕 속으로 뛰어들 듯 너도나도 매장 앞으로 몰려들었다가는 다시 서둘러 계산대로 향했다. 이 모든 건 기계 같은 정확함으로 계획되고 작동되고 있었다. 마치 온 나라의 여인들이 톱니바퀴 장치의 힘과 논리에 따라 움직이는 듯했다. (P 30-1)"

이렇게 살아있는 기계 같은 백화점은 점점 자신의 크기를 성장시키고, 그 안의 판매와 자본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그러면서 드니즈의 큰아버지의 가계와 같은 소상공인들의 몰락시키고, 백화점 직원들을 경쟁 시스템 속에 혹사시킨다. 마치 현대의 백화점의 횡포의 모습을 백여 년 전의 백화점이 그대로 보여 주고 있다. 여인들의 행복 백화점은 그렇게 주변의 사람들을 몰락시키고 타락시키며 자신의 자신을 성장시켜 간다. 그리고 백화점이 이처럼 성장할 수 있는 것은 여인들의 욕망이다. 저자는 백화점을 향한 여인들의 욕망을 매우 성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새롭고 화려한 물건을 향한 욕망을 마치 성적인 욕망처럼 그려내며, 백화점과 여인의 관계를 에로틱하게 그리고 있다.

"사람들의 물결에 휩쓸린 여자들은 더 이상 뒤로 물러설 수 없었다. 강물이 계속의 지류를 끌어당기듯, 백화점 입구를 가득 메운 인파는 거리를 지나나는 행인들과 파리의 사방 곳곳의 주민들을 빨아들였다. 줄을 선 채 아주 느리게 조금씩 앞으로 나아갔다. 그러는 동안, 서로를 지탱해주는 어깨와 배에서 부드러운 온기가 느껴졌다. 그녀들의 충족된 욕망은 그러한 힘겨운 전진마저도 기꺼이 즐길 수 있게 해 주었다. 그런 상황은 오히려 여인네들의 호기심을 한층 더 자극했다. 실크로 우아하게 차려입은 여인들과 소박한 옷 차임의 프티부르주아 여성들, 맨머리 차림의 여자들까지 뒤죽박죽으로 뒤섞인 채 모두가 그 열기에 들뜨고 흥분돼 있었다. 넘쳐나는 여인들의 가슴 아래 파묻힌 몇몇 남자들은 불안한 눈빛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P 404)"

이런 백화점의 광기 어린 탐욕과 이에 맞서는 소상공인의 무모한 투쟁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바로 드니즈의 시선이다. 저자는 드니즈의 시선을 통해 19세기 말 자본주의의 광기 어린 물결과 그 물결에 휩쓸려 가는 인간 군상들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그럼에도 결국 드니즈는 백화점으로 돌아가고, 그곳의 사장인 무레와 결혼을 하게 된다. 물론 소설은 그녀가 단지 수동적으로 무레의 연인이 되는 것이 아닌, 나름 적극적으로 자신이 깨달은 백화점의 생리와 주변 사람들의 피해를 조화해서 무레에게 경영에 대한 적극적인 조언을 하는 여성으로 묘사한다. 그럼에도 거대한 자본주의의 기계인 백화점의 시스템에 그녀가 편승해 가는 과정은 읽는 이로써는 좀 씁쓸하다. 저자는 백화점을 중심으로 한 당시 자본주의의 거대한 흐름과 이로 인해 몰락해 가는 소상공인들, 그리고 그 흐름 속에 자신을 읽어가는 여성들과 판매원들을 그리고 있지만, 드니즈의 목소리와 행동을 통해 이 흐름이 거부할 수 없는 흐름임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결국 자본주의의 거대한 물결 앞에 대항하는 자는 모두 몰락하고, 그 물결에 편승하는 자만이 살아남는다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아 씁쓸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19세기의 말의 프랑스 파리의 광기 어린 자본주의의 욕망의 시대를 직접 경험하고 싶다면 이 책을 적극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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