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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들이 노는 정원 - 딱 일 년만 그곳에 살기로 했다
미야시타 나츠 지음, 권남희 옮김 / 책세상 / 2018년 3월
평점 :
절판
가끔 책을 읽기 위해 커피숍이라는 곳을 간다. 항상 조용한 구석자리를 앉지만, 어느새 아줌마 군단에 포위되기가 십상이다. 그러면 아무리 듣지 않으려고 해도 그녀들의 수다를 듣게 된다. 주제는 딱 두 가지이다. 어떻게 그 많은 대화 내용 중에 주제가 두 가지로 압축되는지 신기할 때도 있다. 하나는 부동산 이야기이고, 하나는 교육 이야기이다. '어디 가 얼마가 올랐고, 앞으로 어디 가 오른다더라' 또는 '성적이 얼마나 올랐고, 또 앞으로는 어떻게 올릴 작정이다'라는 이야기이다. 좋은 이야기도 한두 번인데, 매번 이런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답답함을 느낀다. 왜 우리는 이렇게 살 수밖에 없는 것일까. 모든 걸 내려놓고 자유롭게 살지는 못해도, 조금이라도 내려놓고 여유롭게 살면 안 되는 것일까.
이런 생각을 하고 있기에 여유로운 여행기나 자연과 벗하는 삶을 다룬 책들을 보면 저절로 호감이 간다. [신들이 노는 정원]이란 책을 보자마자 이런 호감이 생겼다. 그리고 부제가 더 마음에 끌렸다. '딱 일 년만 그곳에 살기로 했다' 저자는 [양과 강철의 숲]이라는 작품으로 우리에게도 잘 알려져 있는 미야시타 나츠이다. 이 책은 저자가 [양과 강철의 숲]이란 작품으로 유명해지기 전에 가족들과 함께 일본 북단 후카이도의 산골마을인 '도무라우시'에서 보낸 1년을 일기 형식으로 담고 있는 책이다. 도무라우시는 '가무이민타라'라고도 불리는데 이 말은 아이누 말로 '신들이 노는 정원'이라고 한다.
"도무라우시. 아이누 말로 '꽃이 많은 곳'이란 뜻이다. 한자는 없고, 일본 100대 명산 중 유일하게 가타카나 이름을 쓰는 산이라고 한다. 지리적으로 홋카이도 한복판, 즉 홋카이도에서 가장 중심에 해당하는 곳에 있다. 다이세쓰산 국립공원 안의 해발 2141미터, 홋카이도에서 두 번째로 높은 산이다. 들은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여름 저체온증으로 등산객이 잇따라 쓰러졌다는 무시무시한 조난사고. 그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가무이민타라는 아이누 말로 '신들이 노는 정원'. 그렇게 불릴 정도로 풍경이 멋진 곳이라고 한다. (P 9)"
비록 1년을 사는 것이지만, 떠날 때는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었다. 막대한 지출과 이사비용, 살던 집의 대출 문제, 그리고 가장 심한 것은 주변의 반대이다. 우리처럼 교육열이 높은 일본에서 3자녀를 키우고, 특히 장남이 고등학교 입시를 앞두고 있으니 부모님의 반대가 심했다. 그럼에도 여러 가지 난관을 뚫고 산속 생활을 시작한다. 저자는 망설이지만, 남편이 강력히 원하고 자녀들도 좋아한다. 입학을 위해 학교에 들은 자녀가 학교 운동장에서 사슴을 발견하고 흥분해서 엄마에게 이렇게 전화한다.
"전화 너머에서 차남이 기쁜 듯이 말하고 장남이 전화를 바꾸었다. 그 한 마디 '풍경이 신이야'라고 했다. 신이라, 신이라나니 어쩔 수 없군. 그러나 그렇게 말해주는 어린 남자아이의 존재가 무척 기뻤다. 두 아 들은 홀딱 반했다. 물론 남편도. 다음 날 귀가한 남편은 홋카이도 수사슴의 뿔이 얼마나 근사했는지 끝없이 얘기해 주었다. 산촌 유학생용 주택도 보여주었다고 한다. 내 마음은 그 집 얘기를 더 자세히 듣고 싶은 쪽으로 기울었다. (P 20)"
그리고 1년의 산속 생활이 시작된다. 자녀들은 10명 안팎의 초등학교와 중학교에 입학시키고, 자연과 벗하며 살아간다. 온갖 동물을 만나고, 식물을 접하고, 무엇보다도 주변 사람들과 친구가 되어 살아간다. 저자 역시 어쩔 수 없는 어머니이기에 자녀들의 학교생활 이야기가 많이 언급된다. 자녀들이 시골학교에서 학생회장도 하고, 배드민턴 경기도 나가고, 그곳에서 어울리며 산다. 과연 그들에게 그 1년은 어떤 의미였을까. 미래의 삶을 살아가는 영양소를 공급하는 저장소와 같은 시간이 아니었을까.
"시간표를 보고 놀란 것이 한 가지 더 있다. 야외 수업이 많다. 삼림 교실, 골프, 수영. 어떤 날은 평일인데 아침부터 저녁까지 낚시였다. 중학생들은 도시락을 들고 산속 계류로 나갔다. 이런 곳을 정말로 가요? 묻고 싶은, 불안해 보이는 조릿대 나무숲을 헤치고 도착한 계류에서, 흐르는 물이 다리를 당길 것 같은 가운데, 중학생 다섯 명과 선생님과 강사인 베테랑 낚시꾼이 종일 낚싯줄을 드리우고 있다고 한다. 옥새 송어, 산천어, 곤들매기 등을 잡아서 돌아왔다. 게다가 손질까지 다 해서 왔다. 물고기를 손질하는 법까지 가르쳐주다니 멋지다. (P 110)"
최근에 심리학에 관련된 책을 읽으며 '안전지대'라는 단어가 기억된다. 사람들은 어린 시절 부모와 보낸 시간과 장소가 하나의 안전지대가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삶을 살아가다가 지치고 피곤하면 다시금 마음속에서 다시금 그곳으로 돌아와 휴식을 누리고 다시금 힘든 삶을 살아간다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저자의 자녀들은 산속에서 보낸 1년이 든든한 안전지대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무조건 앞으로만 달려가는 삶 속에서 막상 성공을 하고 무너지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 시대이다. 조금 더 길게 보고, 조금 더 넓게 볼 수 있다면 사는 게 조금은 여유로울 텐데라는 생각을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