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는 여인들
신경숙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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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와 두 번째가 뻔.하.다.고. 느꼈다. 그녀니까 기대가 없다면 거짓말. 아무리 부정해도 그녀의 소설을 내가 좋아했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변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이렇게 또 내게 책을 들게 하니까. 세 번째와 네 번째는 괜찮을까. 다섯 번째와 여섯 번째는 어떨까. 그러다 비로소 일곱까지 왔다. 마지막이 표제작이었다. 중간에 갈등이 없었던 건 아니다. 건조해졌다. 느끼는 내가 그럴 수 있고, 그녀의 문체는 변하지 않았을 수 있다. 요즈음 나는 아무 것도 확신할 수가 없다. 관대함을 표방한 우유부단은  매력이 없다는 걸 모르지 않는다. 어쭙잖은 선함보다는 차라리 악함이 낫다. 적어도 솔직하니까. 나는 지금 둘다 놓칠까 전전긍긍. 어느새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 하고 싶은 것, 하기 싫은 것 모두에 민폐를 끼치는 중이지만, 다만 아련함이 있었다. 내 몸이 다 성장하기 전에 읽은 오래된 소설집에는 환상과 비일상이 가득했던 것 같은데, 그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거나 꿈길을 거닌 적도 있는데, 여기에는 없잖아. 실망보다는 세월이 만져졌다. 내친김에 끝까지, 마지막 페이지 전에는 일어서지 말자. 종종 내 독서에는 타협과 협상이 없다.   

서른이 되기 전에 나는 서른이 지난 사람들은 무슨 재미로 살까? 생각했다. 그렇다고 채와 함께 지냈던 이십대가 즐겁기만 했다는 얘긴 아니다. 나는 채가 내 곁에 있었던 이십대를 사랑하지 않는다. 행복하다고 여겼던 적이 별로 없다. 매일매일이 막연했고 불안했고 때로는 절망스러웠다. 그래서 채를 거기에 두고 도망쳤던 것일까. 아침에 눈을 뜨기 싫어 밤에 아예 잠을 자지 않은 날도 많았다. 어렸을 때 인간의 나이는 서른까지라고 써놓았던 책을 읽은 기억이 난다. (p.254) 

여기저기 삶의 헛헛함이 덕지덕지 묻어난다. 작품마다 페이지마다. 어쩌다 눈을 감으면 인물들이 박차고 나올 것만 같다. 우리들 뭐 하나 다를 게 없군요. 내가 당신을 읽듯 당신이 나를 읽는다면, 우린 다를 게 없다는 걸 알게 될 거예요. 말해 무엇하나. 그조차 공허한 울림으로 퍼질 것을. 닿지 못한 공기는 되려 서리가 되어 시린 눈에 맺힐 것을. 따뜻하게 그리려는 이야기를 차갑고 건조하게 읽는 나는 어딘가 비뚤어진 곰인형같다. 강아지 다섯 마리를 마당에 풀어둔 터라 택배가 와도 우편이 와도 아빠는 대문을 열 수가 없었다. 낮은 대문 위로 손을 번쩍 올려야 택배 기사나 우체부가 건네주는 것을 받을 수 있었다. 미안합니다. 강아지가 있어서요. 자꾸 나가려 해서 문을 열 수가 없네요. 나가서 돌아오지 못한 한 마리가 눈에 밟혀 나머지 다섯 마리마저 잃을까 두려워 자꾸 문을 건다. 나도 아빠도. 친구를 잃은 녀석들은 반드시 나가려는 의지가 없는데. 하필이면 그 아이일 필요가 없었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이 없어도 반드시 그 아이여야만 했던 건 아니었다. 아픈 이유는 이어지는 일상과 드문드문 떠오르는 생각들 때문이다. 결국 우리를 힘들 게 하는 것은 부재하거나 힘들거나 윽박지르거나 싸워서가 아니라 어느 순간 일상으로 솟구치듯 떠오르는 기억이 아프기 때문이라는 게 한낱 소설 따위로 명확해지다니, 어쩐지 비참한 기분이었다. 아직 덜 배운 것이 남았다는 사실이 낯설었다.   

나는 늘 어제보다는 오늘이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60년대보다는 70년대가 나았고 80년대보다는 90년대가 나았고, 그리고 지금이 낫다고. 개인적으로도 이십대보다는 삼십대가 좋았고 삼십대보다는 사십대가 된 지금이 나쁘지 않다. 이유는 단 하나다. 연애감정에서 멀어졌다는 것. 그토록 막연하고 불안하고 죽을 것 같은 고통스런 감정들이 모두 다 연애감정에서 비롯된 것만은 아니었으련만 마음이 연애감정에서 멀어지자 자유로워졌다. 쓸쓸한 자유. (p.231) 

문을 활짝 열어젖히기는 내게도 두려운 일이었다. 한데 당신은 내가 가진 걸 빼앗겠다고 한다. 나 호락호락하지 않아요. 미처 말하기도 전에 간혹 뺏기고 싶은 상대를 만날 때가 있다. 상대가 나를 어떤 식으로 생각하는지는 상관없다. 취재를 하고 언론공부를 하고 기사를 쓰고 지역 신문사의 대학신문팀에서 레이아웃, 학보를 발행하고 발송하면서 먹던 점심의 자장면 맛은 오래도록 추억으로 남았다고. 울고불고 했던 나쁜 기억의 찌꺼기는 이미 다 사라졌다고. 그때 당신은 왜 그랬었냐고 물을 수 없을 것이다. 당신의 신부가 예뻤냐고 묻기 전에 그때의 내가 어떠했냐고 묻고 싶은 충동을 참지 못할 것 같다. 갚지 못한 빚을 평생 짐으로 안고 가야 했던 남자와 반대편에서 거꾸로 달려오는 헤드라이트를 피하지 못해 풀숲에 처박힌 남자, 너와는 더이상 새롭지 않다는 연인의 말을 들어야 했던 여자와 프랑크푸르트에서 돌아오지 못하는 여자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이야기들을 감당할 수는 있어도 의문이 침묵으로 치환될 수는 없을 것이다. 동질의 것이 아니라고 누군가 일갈했다.

아내를 잊지 못해 아내와 살던 집의 마당에 화분을 키우던 남자가 그곳을 벗어나기 위해 꽃과 나무를 훼손해버린 자괴감과 남편에게 아픈 모습을 보이기 싫어 멀리멀리 도망가버린 아내를 이해할 수 없어 20년 전 자신을 보고 도망쳤던 첫사랑을 찾아가 그때 왜 도망쳤냐고 묻는 남자의 깨달음과 세상의 모든 고양이들을 집에 들였던 어떤 여자의 공허함을 감히 이해한다고 하지 못한다. 누군가의 삶이 누군가에게 온전히 이해를 바랄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대신 이야기를 할 수는 있다. 달이 환하고 별이 반짝이는 그런 밤 아니 어둠 속에 머리나 어깨를 나란히 한 채 또는 평상에 나란히 앉거나 누워 산들바람과 꽃과 나무의 소곤거림을 들으며 이야기를 할 수는 있을 것이다. 어느 밤, 핫바와 우동, 어묵을 먹겠다고 고속도로를 달리던 우리와 한밤 중에 카트가 터질 만큼 장을 봐서 빈 집에 가서 밤새도록 고기를 굽고 맥주를 마시다 일어나 해장으로 라면을 끓여먹던 우리는 그렇게 탄생했다. 추운 밤에 커플끼리 거리를 달려 바닷가 앞에 차를 대고 조개구이를 먹던 일, 다 먹고 비틀비틀 방파제를 걷던 일. 우리의 이야기와 시간이 칵테일처럼 뒤섞이고 흔들려야 가능했던 모든 것들. 거기 우리가 있고 풍경이 있다.

목련나무에 새가 날아앉아 출렁거리는 것 같아 목련나무 쪽을 쳐다보았으나 무성한 잎새가 여름 밤하늘을 향해 시원하게 뻗어 있을 뿐 거기엔 아무것도 없었다. 여름 밤하늘엔 별들이 가득 떠 있고 산들바람을 타고 마당의 치자향이 은은히 코끝에 맡아졌다. 오래전에 헤어진 사람을 우연히 만나 날이 새도록 얘기를 하고 싶은 그런 밤이었다. (p.73) 

하지만 이제는 이야기해줄 수가 없다. 시간이 흐르면서 우리는 우리가 아니게 되었다. 그 공기, 웃음, 친밀감, 온도가 예전의 것들이 아니게 되었다. 모두 알고 있다. 어쩌면 바로 이 사실이 우리를 그립게 하는 지도 모른다. 치자향이나 아카시아향, 하늘하늘 흔들리는 가을의 코스모스를 알고 있다. 할아버지의 투박한 손이 시동을 걸기 시작하면 경운기의 뒷자석은 나를 포함한 꼬마들 모두의 차지가 되었다. 올라타면 터덜터덜, 덜덜거리며 논길, 밭길, 들판을 달린다. 청량한 산을 뒤로한 맑은 냇물이 흐르고, 봄이면 개나리와 진달래가, 가을이면 대추나무와 모과나무 그리고 코스모스가 우리들 옆으로 지나쳐갔다. 과거에서 끄집어 내지 않고서 어떻게 이야기할 수 있겠는가. 말이 아니라 글로 전한다. 행동이 아니라 뜻으로 전한다. 어느새 추억이 글과 말로만 읽힌다. 서른 후의 삶을 상상할 수 없다던 어떤 이의 절규처럼. 아무리 잡으려 해도 빠져나가는 고운 모래처럼, 당신처럼 자꾸만 모든 것을 놓쳐버린다.

달을 스치고 지나가는 저 밤구름에 대해서, 어딘가 물이 많은 곳으로 흘러가고 있을 것 같은 저 느릿한 달의 움직임에 대해서. (p.115) 

말하기 어렵더라도 지금 말해야 하는 이야기다. 아련히 지나가버린 이야기지만 꺼내야 하는 이야기다. 씌어진지 오래된 일곱 편의 소설은 무지개빛으로 하늘 가까이에 떠 있다. 나를 불러내주세요. 모두 꽃처럼 나무처럼 단정하고 소중한 존재이지 않았나요. 행여 잃어버리더라도 슬퍼마세요. 시절은 시절을, 시간은 시간을, 아쉬움은 아쉬움을, 하지 못한 고백은 하지 못한 고백을, 해주고 싶은 말은 해주고 싶은 말을 불러오지 않겠습니까. 사실은 사라져버린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나에게는. 당신이 아무리 잊어도 나만은 기억하고 있겠습니다. 설사 당신이 나를 거쳐 가더라도 혹은 갔더라도. 기억하는 것이 고통이라면 빠른시일의 망각도 능력일 것이다. 오래 기억될 이야기, 얼른 잊어야 할 이야기, 기억할 필요가 없는 이야기, 잊지 말아야 할 이야기. 모든 것들을 작가는 꺼냈다. 감당은 독자의 몫. 책을 덮을 즈음 딱 한 가지가 궁금했다. 나에 대한 당신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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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 2011-12-01 17: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벌써 읽으셨군요...
부럽습니다... 하아

그런데 그러니까... 뻔해도 재밌다는 거 맞지요? ㅋㅋㅋ
아, 이놈의 이해력ㅋㅋ

아이리시스 2011-12-01 23:22   좋아요 0 | URL
다 읽은 제가 부러운 거예요?! 읽으면 되지요. 논다면서욧! 소이진님이 저는 백만배는 부럽다.. 하아.. 거 어쩌려고 그래요, 세 달 남은 강의.. 얼른 화이팅해요!^^

아, 이놈의 질투ㅋㅋ

잘잘라 2011-12-01 19: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경숙의 <모르는 여인>들과 제가 모르는 아이리시스님만의 그(녀)들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하면서 끝에 가서는 <모르는 사람들>이 되는.. 그런 리뷰^.^;;

아이리시스 2011-12-01 23:25   좋아요 0 | URL
저는 원래부터 소설집을 되게 싫어했어요. 아련한 옛느낌이 있는데 그게 아니라서.. 표지는 초록인데.. 모르는 여인들 되게 예뻐요. 우리처럼 글로 대화하구요, 우리처럼 서로 너무 좋아하게 돼요. 우리 너무 친해지지 마요, 어쩌면 슬퍼질 수도 있어요. :)

책을사랑하는현맘 2011-12-01 2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오뎅과 핫바...먹고 싶어요.ㅋㅋ
신경숙의 여인들보다 아이리시스님의 그와 그녀들이 더 궁금해 지네요.

아이리시스 2011-12-01 23:29   좋아요 0 | URL
요즘 밤마다 초콜릿을 폭풍흡입하고 있는데, 우리집 차가 두 대인데(한 대는 고물) 하나는 아빠, 하나는 동생. 두 분 다 안계신다는..( '') 아아, 고속도로 어묵이랑 핫바 먹고 싶어요, 현맘님. 날씨도 춥고! 인터넷 뱅킹이 안돼서 오늘 하루종일 인터넷에 붙어 있으니 눈이 아파 죽겠어요.

저의 그와 그녀들은 어딘가에서 잘 살겠죠. 근데 그 신부를 제가 알거든요. 둘다 과선배였으니까. 자장면에 얽힌 추억은 좀 유치하고 질투나고 그런 거예요. 어이없게도, 어처구니없게도 제가 스무살일 때부터 지금까지 헤어지지도 않았다니, 어쩐지 진짜 엄청나게 어이없다.. 흙흙. 급한 김에 오뎅탕이라도 드세요, 현맘님. 겨울이 없어져버렸으면 좋겠어요.ㅡㅡ;;

2011-12-02 14: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2-02 17:12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