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홀딱 벗은 채 배를 부딪치고 신음소리를 내며 결합하는 과정이 더 '중대한'데도 불구하고, 사랑이 뒷받침되지 않은 욕정의 섹스에서 남자나 여자는 한 번쯤 '입에다가는 키스하지 말아요'라는 대사를 내뱉는다. 의아하다. 키스는 섹스의 전 단계인데 섹스하는 중에 키스는 안된다니, 이해할 것 같으면서도 이해할 수 없다. 영화 <여왕 마고>에서 혼란한 시대에 몸소 느끼는 공허를 오빠, 남동생 할 것 없이 온갖 남자들과의 잠자리로 채워가던 정략결혼의 희생자 가톨릭교도(구교도) '마고' 그러니까 이자벨 아자니의 입으로 절정의 순간에 이 대사를 들으니, 언젠가 그애가 했던 웃긴 '말'이 생각났다.
나는 남자가 아니므로 남자가 궁금했다. 아마 남자들은 왜 섹스를 안하면 살 수 없냐고 물었던 것 같다. 못하면 왜 승질 내냐고도. 왜 보채냐고도. 나는 어렸고, 막 키스없이도 몸을 내줄 수 있고, 처음보는 사람과도 눈빛만 통해서 잠자리를 할 수 있다는 이전에는 말도 안돼, 했었던 이론들을 가능하다 생각하던 중이었다. 결합이 감정이 아니라 욕망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남자들은 이미 알았는데, 그래도 내 생각은 남자들이 본능적으로 해야 하는 욕망해소와는 좀 다른 '이론'이었다고 스스로 생각. 아님 말고. 더 어릴 때 나는 '사랑하는 것'과 '잠자리'에는 별로 연관이 없지 않냐고 늘 반문하고 있었고(손잡고 잠만 자도 애기가 생기는 줄;;), 그애는 보통의 사람이라면 누구도 내 말에 동의하지 않을 거라고 했었다.
얼마 전에는 결혼과 출산 이후 아내의 거부로 횟수가 줄다가 줄다가 자존심 상한 남편이 요구하지 않자, 아내가 자존심 굽히고 들어가 다시 좋은 관계가 되었다, 부부의 잠자리에 밀당은 필요없다, 뭐 그런 기사에 2주만 참아도 큰일나는 남자의 특성상, 몇 년간 관계가 없었던 남자가 분명 어딘가에 해소하고 왔을 거라는 악성 or 저렴 or 편견 댓글이 달린 걸 봤다. 세상 남자들이 다 똑같지는 않을 거라고 나는 여전히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욕망이든 욕정이든 비난한다던가 하는 건 아니다. 그건 그냥 그분의 문제. 그분의 생각. <섹스 앤 더 시티>를 다시 본다면 사만다에게도 몰입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역시 섹스는 아직 은밀하고 소중한 감정이지, 절제 안되고 참을 수 없이 열망하는 어떤 것이라고는 말 못하겠다. 갑자기 섹스론.. 이게 뭐지..
그렇게 생겼으니까. 라고 답하면서, 그럼 너는 왜 참는데? 라는 연이은 질문에, 가만 생각해보면 그게 큰 의미가 없으니까. 그냥 넣고 이리저리 움직이는 것 뿐이잖아. 사랑한다는 표시내는 건데 니가 좋아하지 않는데 그게 뭐가 중요해. 아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내가 그때 얼마나 웃었냐면, 남자들이 싸잡아 바보처럼 보이는 거다. 3초의 희열에 목숨을 바칠 수 있는 게 잠자리의 욕정인데, 그냥 흔드는 거라니, 푸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연이은 말은 들리지도 않았다. 그게 그러니까 서로 원할 때 해야 좋은거지, 짐승도 아니고 여자친구가 싫다는데 애원할 일은 아니지. 근데 남자는 그렇게 생긴 거니까 그렇다고 해서 욕하면 안돼. 여자도 나이 들면 남자보다 더 성욕이 강해져.. 어쩌고저쩌고.
이자벨 아자니 진짜 예쁘다. 일단은 궁중 예복과 드레스 등이 눈에 확 띄지만 그보다 살짝살짝 드러나는 쇄골과 허벅지 같은 게(아.. 이 페이퍼 19금!!! 우리 소이진님 어쩌지..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여자인 내가 봐도 아름다운데, 자연스럽게 성욕을 부르지 않는다면 거짓말 아닌가. 나는 그림만 봐도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그렇다고해서 이 영화가 외설적인 면에 초점을 맞춘 건 아니다. 역사시대극인데 배경을 모른다면 모르지만 어느 정도 배경을 이해하고 보기 시작하면, 이보다 더 선명한 줄거리로 핏빛 역사를 재현하기란 힘들다. 오히려 뚝뚝 떨어질 듯한 피가 더 외설적이라면 모를까. 사내들의 욕망은 섹시하고, 숨겨진 질주는 가히 매력적이다. 성적인 면 말고. <스파르타쿠스>를 보면서는 느낄 수 없는 예술미까지 느끼고 있다. 미쳤나. 영화는 교육적이라고 할 수는 없어도 역사의 한 획을 제대로 긋는다. 마침 온갖 미남 왕들과 남자들 그리고 그들의 약함, 비열함까지 부수적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역사에서 종교는 참 많은 이에게 빚을 졌다. 다양한 종교가 나름 조화를 이루며 살아온 우리나라로선 이해하기 힘든 몇 번의 종교전쟁. 사실 종교에 빗댈 뿐이지, 결국 어떤 명분으로든 서로가 서로를 죽이고 싶어했을 거라는 어설픈 생각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빨갱이 이론은 정부를 부정하는 사상 덩어리이기라도 했지, 개인의 삶에 지극히 추상적으로만 자리한다 여기던 종교가 수만명의 목숨을 앗아갈 수 있다는 게 이해하기 어려웠다. 하긴 근대에 일어난 천주교 박해에 비하면 이해할 만도 한데, 아무래도 종교는 문화 혹은 문명을 반영할 수밖에 없고, 주도권을 쥐는 순간 권력이 되므로 한편으로 엄청난 무기가 아닌가.
<여왕 마고>야 말로 프랑스 구교와 신교,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 사이에서 벌어진 종교전쟁을 소재로 하는 대작이다. 시대는 16세기, 배경은 프랑스, 소재로 1572년 파리에서 일어났던 성바르톨로메오의 학살사건을 다룬다.
<죽기 전에 꼭 알아야 할 세계 역사 1001 days>에 이 사건은 이렇게 소개된다. (네이버 지식사전)
가톨릭의 위그노 공격으로 수천 명이 거리에서 살해된다.
1572년 성 바르톨로메오 축일의 날이 밝기 직전, 교회 종소리를 신호로 학살이 시작되었다. 끔찍한 폭력의 물결이 파리 전역을 휩쓸었다. 프로테스탄트 교도를 추격하여 집 안에서 살해하고 상점을 약탈하며 가족 전체를 몰살했다. 프로테스탄트 왕자인 나바라의 앙리와 프랑스 왕 샤를 9세의 누이인 발루아의 마르그리트의 결혼식이 며칠 전에 열렸으므로, 여기에 참석했던 위그노(프랑스의 프로테스탄트) 지도자급 귀족들은 여전히 파리에 머무르고 있었다. 도시에는 팽팽한 긴장이 감돌았다. 이 결혼은 샤를 9세의 어머니인 카트린 드 메디시스가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 간의 불화를 해소하기 위해 주선한 것으로, 가톨릭 설교가들 사이에는 비판의 물결이 널리 일었으며, 파리에는 반 위그노 감정이 팽배했다.
그 전날 위그노의 우두머리인 콜리니 장군을 노린 암살 시도가 있었다. 이후 24시간에 걸쳐 벌어진 사건에 대한 기록은 매우 혼란스럽지만, 8월 23일 밤, 가톨릭에 대한 복수를 두려워한 카트린이 자신이 좌지우지하던 나약한 왕을 설득해 도시에 남아 있는 위그노 귀족을 전부 처단하게 했던 것 같다. 콜리니는 병상에 누워 있다가 급습을 당해 칼에 찔려 죽었다. 다른 귀족들도 곧 목숨을 잃었다. 새신랑인 나바라의 앙리는 개종자인 척하여 목숨을 건졌다. 왕은 뒤늦게 학살을 중단시키려 했지만 이미 다른 도시로 번진 후였다. 10월이 되어 살인이 멈췄을 때에는 파리에서만 3천 명, 프랑스 다른 곳에서는 최대 3만 명의 위그노가 죽은 후였다.
스페인의 펠리페 2세는 대학살 소식을 환영했다. 교황 그레고리우스 13세는 축하 메달을 제조하도록 했고, 화가 조르조 바사리에게 학살에 대한 그림을 그리라는 임무를 맡겼다. 그러나 성 바르톨로메오 축일 대학살은 위그노의 반발을 진압하기는커녕 이러한 상황에 맞서 무장 봉기를 일으키도록 하는 결과를 낳아, 프랑스는 또 한 차례의 내전에 빠져들게 된다.
"광분한 군중이 '위그노를 죽여라!'라고 외치는 광경에 나는 공포에 사로잡혔다."
『쉴리 공작의 회고록』, 1638년 출판
그리고 '파리가 피로 물들다'라고. 이보다 더 잔인하고 포악하게 콕 집어낸 수식어가 있을 수 있을까. 영화는 이 싸움을 늦추기 위한 정략결혼으로부터 시작할 뿐이다. 아들 대신 통치를 맡게 된 카트린 드 메디치가 평화협정을 위해 딸 마고를 개신교도(신교도) 앙리 4세와 결혼시킨 것이다. 프랑스 역사상 가장 잔인한 대학살이라 여겨지는 종교전쟁의 씨앗을 잉태한 달콤한 알약이었을 뿐인 이 결혼식을 시작으로 이제껏 해온 크고 작은 다툼을 종식시키리라 믿었던 개신교도(신교도)들이 안심한 순간, 카트린의 악랄한 뒤통수치기로 인해 세느강이 피로 물든다. 마고가 진짜 사랑을 알아본 것은 이날 밤이다. 피흘리는 한 남자를 숨겨주며 시작되는 사랑. 여기서 흥미 끝.
영화 이미지가 강렬해서 특정 시퀀스가 전체 줄거리보다 붉고 짙다. 차라리 치정 살인이 낫지, 종교가 죽고 죽일 명분이 된다는 게 여전히 의문이지만, 사랑이 이유 없듯, 전쟁도 이유 없는 거여서 여튼 전쟁이 있었기에 이렇게 매력적으로 치장된 영화도 볼 수 있고, 좋지 뭐! 영화는 영화일 뿐, 내 것도 아니니까. 제3자의 시선. 요즘 이러고 늘어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