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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rah Jones - ...Little Broken Hearts
노라 존스 (Norah Jones) 노래 / 이엠아이(EMI) / 2012년 5월
평점 :
품절
'Sunrise'와 'What am I to you'는 내게 국보급. 악보가 어딨는지 모르겠는데 피아노 치면서 흉내내려고 했다. 체르니 100번,30번 친 동생은 피아노를 전혀 못치는데 나는 40번,50번도 뗐기 때문에 까먹은 상태는 아니라서 가능;;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피아노는 가능하나 노래를 못-_-해서 첫 번째 좌절. 두 곡은 몇 년 동안 자장가였고, 'Young Blood'는 여전히 벨소리인데다가, 'Sinkin' Soon'을 듣다보면 반드시 레이 찰스 앨범도 듣게 되는데, 그럼 그날 밤 잠은 완전히 설치게 된다. 이건 부활하고는 또 다른 이유로. 자꾸 찾게 되는 무의식이 취향과 관심, 애정을 반영하는 거라면, 그녀의 정규앨범들을 얼마나 닳도록 듣고 또 들었는지 모른다. 나는 완전, 엄청, 많이, 노라 존스를 좋아한다. 물론, 그녀만 좋아하는 건 아니다. 함께 줄세울 엄청난 수의 다른 뮤지션들이 있다. 좋아하거나 좋아하고 있는 건 언제나 문어발로 존재한다. 동시다발적으로 이유 없이.
처음부터 노라 존스는 바르게 안착했다. 첫 앨범이 전 세계적으로 엄청난 판매고를 올리면서, 대중적이지만 듣는 대중 개개인에게는 특별하게 느껴지는 어떤 지점을 개척했다. 혼자 좋아하면서 분위기 잡고 싶지만 굉장히 많은 이들이 은밀하게 좋아하고 있다는 사실이 때로 절망스러울 만큼. 노라 존스가 누구에게나 친근한 뮤지션이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얘기를 하고 있다. 못됐다. 취향을 나누는 성격도 아닌데다가, 그런 의지가 별로 없다. 실제로 재잘재잘 내가 보고 듣고 느낀 걸 얘기하는 사람은 J 뿐이다. 함부로 재단하지도, 맞장구치지도 않지만 든든한 힘이 되는 유일한 가족 아닌 가족. 다들 아는 분야, 읽은 책, 들어본 음악에 숟가락 하나 더 못 얹어서 난린데 얘는 그런 게 없다. 늘 헬스장 뛰어다니고 드라이브 하는 것 같은데 책은 언제 읽는지, 말하면 다 알아듣는다. 우리는 닮아간다. 정확히는 내가 닮고 싶다. 늘 머리 보다 가슴이 먼저 뛰어나가는 얘를. 글을 쓰려면 가장 먼저 나를 견뎌야 하는데(그럴 경우 타인은 보이지도 않는다), 생각보다 말이 먼저 튀어나가려고할 때면 동갑내기 남자친구의 진중함은 늘 나를 붙잡는다. 나를 부여잡은 적이 많았다. 나는 늘 아무 것도 아니니까.
시도때도 없이 떠나고 싶어하는 것, 도착해서 짐을 풀 때부터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것은 <비밀과 거짓말>을 쓰고나서 은희경 작가가 애기했던 '역마살'인데 나는 그건가. 여튼 뭔가 궤도에 올리면 울궈먹는 대신 제자리로 돌리고 싶은 충동이 든다. 소설가에게는 역마살이 낯설지 않아 보인다. 없는 인물을 끄집어내어 살붙이고 숨결 불어넣고 사랑하고 애증하다 언젠가 보내야 하는데, 그걸 보통의 감정을 가진 사람이 할 수 있을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지식이 모자라면 책을 더 읽거나 공부를 더하면 되는데, 공감력이나 감성이 모자라면 바닥을 치는 느낌이 든다. 소설을 쓰는 일은 비로소 이성과 감성과 공감력을 비롯한 모든 감정이 일반인을 넘어서야 가능하다고 느낀다. 가식이 아니라 뼈저리는 고통으로 느껴야 한다고. 그래서 오늘도 탐색한다. 내가 있어야 할 자리를. 노라 존스는 있어야 할 자리를 넘어선 어느 곳에 존재하는 것 같다.
사실 잡식성이고 딱히 취향이랄 것도 없어서 재즈에 대해 모른다(음악잡지 재즈피플을 몇 달 받아보면서 알았다, 도무지 알아먹을 수가 없었다, 차라리 클래식이 쉬웠다). 두 번째 좌절. 굳이 비교하면 나는, 재즈 < 컨트리,인데 그래서 노라 존스 < 올리비아 뉴튼 존,이다. 제이슨 므라즈는 두 장르 모두를 넘나들지만 그의 곡들은 한국사람 정서에 유난히 잘 맞아 떨어지는 듯하니, 싫어하는 것보다 좋아하기가 쉽고, 좋아하는 사람 찾기보다 싫어하는 사람 찾기가 더 쉽고, 싫어한다고 하면 모두 확 달려들어 공격해올 태세. 참고로, 나는 안 싫어한다. 좋다. 부산 콘서트. 라이센스 공연은 예전에 갔던 스위트 박스 이후로 관심이 없어져버렸다. 비싼 돈 들여 공연 갔다가 얄궂은 일로 죽어라 싸워서 헤어질 뻔;;(갑자기 이게 왜..)해서 안 좋은 기억이 있다. 어쨌든 제이슨 므라즈의 새 앨범 월드투어 첫 스타트가 부산이란 게 신기하고, Cirque Du Soleil(태양의 서커스)를 동경하던 언젠가처럼 아련해진다. 좋겠다, 가수는. 좋아하는 노래 부르며 온 세계 도시들을 누빌 수 있다니. 그래도 본분을 잊지 말아야지. 나는 지금 노라 존스 새 앨범에 리뷰를 덧붙이고 있다.
얼마 전 맛보기로 싱글이 발매되었다. 'Happy Pills'는 여전히 상큼하고 부드럽고 강했지만, 그동안 귀가 예전 곡들에 적응했는지 쉽게 마음으로 듣지 못하다가 얼마 전에 가능해졌다. 비슷하면서도 매번 미묘하게 달라지는 곡들의 느낌이 나를 나이먹게 한다. 이게 3월이었나, 어쨌든 그러면서 잊었는데, 무언가를 기다리고 기대하는 건 참을 수 없는 충동이다보니, 우연히 앨범을 구하게 돼서 들을 수 있을 때 얼른 들었다. 처음부터 귀에 확 꽂히지는 않았다. 가사의 뜻이 귀에 들어오지 않으니 감동이 한걸음 늦게 도착하는 건 당연하다. 여느 때처럼 오래 말리는 마음의 느낌으로 한 곡씩 마음에 넣었다. 다음 앨범이 나올 때까지는 또 이 곡들로 살겠구나, 싶었다. 그리고, 이제 나는 그녀가 어떤 노래를 부르든 상관 없었다.
노라 존스를 좋아하게 된 가장 큰 이유가 '피아노' 때문인데, 우연찮게 [Live in Paris] 앨범을 듣다가(다이애나 크롤도 파리 라이브 앨범 있는데! 그것과 달리 노라 존스의 이건 해외앨범인 것 같다) 전혀 새로운 느낌으로 모든 곡들이 다가오는 걸 보고 놀랐다. 편곡의 힘에 대해 모르는 바도 아니고, 라이브의 현장성도 물론이고, 새삼 감탄하다가 역시, 좋겠다, 가수는. 으로 귀결. 사실은 가수가 아니라 싱어송'라이터'가 부러운 거지만. 전에 데이트 하던 날, 걔 성격 답게 말 꺼내자마자 114에 묻고 서면 뒤져서 '애플스토어' 가서 아이팟 충전기 사왔다. 2만원 생각하고 갔다가 4만원이래서 잠시 놀랐지만, 전화를 몇 번이나 한데다가, 어차피 없으면 안되고, 안사고 나갈 분위기도 아니고,해서 샀다. 산 건 잘 한 일이었지만 4만원 충전기+USB잭이 불안하게 덜렁거리는 걸 보면서는 좀 무서웠다. 기존고장도 그래서 났는데, 원래 쉽게 고장나도록 만들어 놨던 거군, 하면서 애플 씹다가 그냥 잊었다. 며칠 지나니까 역시 돈이 좋아,이러면서 아이팟으로 밤마다 <패션왕> 무한반복과 각종 영화들 섭렵을...( '') 자연히 노트북은 자료 옮길 때만 쓰고, 그즈음 엄청나게 인문서를 사모으고, 다 읽기 전에는 절대 인터넷을 쳐다보지도 않겠다,는 어이없는 결심으로 무장한 다음, <데인저러스 메소드>를 보고는 이제 프로이트와 융을 읽겠다며 책장을 다 뒤져서 엉망으로 만드는 만행을 저질렀다.
군데군데 파전과 부추전을 굽고, 돼지고기 엄청나게 넣어서 보글보글 매운 김치찌개도 끓이고, 두부랑 호박 숑숑 썰어서 구수한 된장찌개도 끓이고, 양념소고기를 엄청나게 볶아서 상추쌈을... 먹긴 했다. 먹고 살아야 해서. 노라 존스와 상추쌈은 좀 아닌 것 같지만, 노라 존스는 충분히 갖다 붙이는 대로 간다니까! 무거우면서도 가볍고, 발랄하면서도 진중하고, 격동적이면서도 나른하고, 슬프면서도 달콤하다. 이건 틀렸다. 슬픈 거랑 달콤한 건 반대말이 아니니까. 그래도 맞다. 낮을 슬퍼하면서 밤에만 피어나는 장미 같다. 노라 존스를 들으면서 생각도 안 나는 많은 악기들을 배워볼 생각을 했다. 처음 'Sunrise'를 듣게 된 건 누가 피아노 치며 그 노래를 부르기 때문이었는데, 여성스러우면서도 그렇게 강해 보이는 거다. 연약할 때 연약하고 강할 때 강해서 사랑받는다. 강약을 잘 알아야 지루한 사람이 되지 않는다. 노라 존스는 그런 여자처럼 노래하고, 그녀의 여성성에 환상을 품게 한다. 부드럽고 강인하고 희미한 첫사랑의 느낌. 그녀를 보며 늘 피아노 치던 어떤 여자를 떠올렸다. 내가 연주하는 피아노에만 관심이 있던 내가 드디어 피아노 연주하는 타인에게로 눈을 돌린 거였다. 새로운 세상을 만난 듯한 기분이었다. 노라 존스가 있는 한, 그 세계는 오래도록 끝나지 않을 것이다.
p.s. 내가 딱 보편적 취향이다 싶은 게, 매번 '미는 곡'이 좋다. '숨겨진 곡'이나 '끼워진 곡'은 잘 모르겠다. 그래서 특이하다는 말이나 욕도 안듣고 이러고 대충 사는 거겠지,싶어서 세 번째 좌절. 이번 앨범자켓은 이전보다 더 예쁘다. 통에 든 포스터도 저 자켓사진인지는 모르겠지만 욕실 문 앞에 붙이면 욕실이 환해질 것 같아서 내 방 말고 욕실 문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