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정 스님이 편역하신 [산사에서 부치는 편지]를 읽었다. 전-에 읽은 글인데 다시 읽었다.

편지란 것이 개인과 개인이 주고받은 것이라 무슨 일기를 훔쳐보는 양 설레는 것이기도 하지만 같은 이유로 마음과 마음이 이어지는 무엇을 알아채지 못한다면 답답하기만 한 글이 된다.

처음 이 글을 읽었을 때가 그랬다. 스님들의 화두가 편지에 오르내리는데 도무지 무슨 소리인지 가슴만 답답했었다.

오늘 읽으니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 머리로 화두를 이해하려고 하니 가슴이 답답했던 게다. 화두는 두고라도 서로의 안부를 묻는 절절함이 오히려 부럽다. 그러나 고봉과 퇴계의 편지를 묶은 책을 읽을 때와는 사뭇 다르다. 그들의 문장이 길고, 자세한 데 반해 스님들의 글은 차라리 시에 가깝다. 그렇게 편지를 쓰는 것은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겠으나 솔직해지려고만 한다면야 글의 모양이 무슨 소용이랴.

요즘 들어 손으로 편지를 쓰고 싶다. 삐딱한 글자를 그려가며 이야기를 하고 싶지만 전화나 인터넷 같은 편리한 도구와 나의 게으름이 계합되어 글은 내려가지 않는다. 사실 그리 할 말도 없지만 너무 쉽게 내뱉는 말에 대한 두려움 때문일까? 먼 길 달려가 뒤늦게 읽혀질 편지가 부럽다. 굳이 산사에서 보내지 않더라도, 이 스님들처럼 붓으로 초서로 쓰지 않더라도 짧은 글, 사랑을 담아 쓰고 싶어진다.

선사들의 이야기는 선사들의 이야기! 큰스님들의 화두를 세상에 알리기 위해 힘쓰신 명정 스님의 노력 또한 스님의 노력! 나는 내 화두도 아득하여 스님들의 화두가 들리지도 않는다. 모든 화두가 내가 잡은 화두로 보인다. 내가 좀더 겸손하고, 쉬임없이 정진하여 스님들과 같은 도반을 두고 의문에 대한 질문과 깨달음의 웃음소리 서로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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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 빛은 예와 다름없이 푸르니 맑은 바람 언제나 불어오네, 악!

대개 수행자들이 생각해야 할 것은

욕심을 가지지 말고 깨닫기를 기다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생각만을 헤아려서 판단하지 마십시오.

더욱이 공사(公私)간에 시비를 간섭하지 말고

앉으나 서나 끊임없이 또렷한 일념으로 삶의 화두를 생각하십시오.

한 번 끊어지면 영원히 이을 수 없는 길이 또한 마음의 길이니.

                                                            -경봉 스님이 월곡 스님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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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9-29 20:1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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