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평 메밀꽃 축제를 처음 접한것은 2001년 TV를 통해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에 대한 토론이었다. 그때 당시 봉평에 시리도록 흰 메밀꽃이 흐드러지게 핀 메밀밭 한가운데에 마련된 장소는 부서지는 달빛과 어우러진 한폭의 그림이었고 소설속에서 그려지던 바로 그 장소였다.
'언젠가 한번 가보리라' 다짐했던 마음을 실행에 옮긴것은 2002년이었다. 업무가 끝난 토요일 오후, 홀로 차를 달려 도착한 봉평은 비록 축제에 참석한 차들로 북새통을 이루었으나 고즈넉한 농촌의 풍경을 깊이 간직하고 있었다. 모든 시골장이 그러하듯 야바위꾼부터 옷장사로 떠들썩한 장터였지만, 허생원과 조선달이 잠시 머물던 충주집, 동이가 자식임을 알고 흠칫 놀란 허생원이 빠진 냇물에 걸려있는 징검다리, 소금을 뿌려놓은 듯한 메밀꽃밭...나름대로 봉평만의 색깔을 가지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가슴이 훈훈했던 것은 메밀밭 한가운데서 열린 문화제였다. 모든 무대장치를 봉평주민들이 직접 참여하여 제작한 부분이라든지, 문화제 사회를 보는 사회자가 봉평에 있는 고등학교 국어선생님이라든지, 봉평 여자 고등학생들의 백일장과 시 낭독회등 축제의 주체가 지역 주민이라는 점이 축제를 더욱 토속적이고 향토적으로 만드는 요소일 것이다.
이효석의 생가로 가는 길도 나름대로의 운치가 있다. 그때 당시 작가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는 생각에 '메밀꽃 필 무렵'을 사서 읽고 있었다. 그날도 책을 옆에 끼고 그의 생가까지 걸으며 그의 소재가 되었을 봉평과 메밀꽃을 보며 옆에 동행한 이와 담소하는 재미 또한 맛깔스러웠다.
김덕수 사물놀이패의 공연을 끝으로 봉평을 떠난 시간은 아마도 허생원과 동이가 대화장으로 발길을 옮기기 시작한 시점이 아닐까 싶다. 그때도 지금처럼 분명 푸르른 달빛아래 시리도록 흰 메밀꽃이 흐드러지게 핀 밤길이었을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