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이가르니크 효과 (Zeigarnik Effect) 라는 심리학 용어가 있다. 마치지 못하거나 완성하지 못한 일을 쉽게 마음 속에서 지우지 못하는 현상으로 미완성 효과라고도 한다. 어떤 일에 집중할 때 끝마치지 못하고 중간에 그만두게 되면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긴장 상태가 이어지고, 머릿속에 오랫동안 남아 있게 된다는 이론이다. 끝내 이루어지지 않은 첫사랑을 더 오래 기억하는 심리 현상이 이 효과의 대표적 사례이다. 드라마를 중요한 순간에 끝내는 것도 시청자의 이런 심리를 이용하여 시청률을 유지하기 위한 전략이다.
심리학자 닐 로스 교수는 후회의 심리상태를 비슷한 심리의 연장선상에서 주장한다.그의 주장에 따르면 ‘한 일에 대한 후회’는 오래가지 않는다. 이미 일어난 일이기 때문에 그 결과가 잘못되었더라도 ‘그만한 가치가 있었다’고 얼마든지 정당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지 않은 일에 대한 후회’는 쉽게 정당화되지 않는다. ‘한 일에 대한 후회’는 내가 한 행동, 그 단 한 가지 변인만 생각하면 되지만, ‘하지 않은 일’에 대한 후회는 ‘그 일을 했다면’ 일어날 수 있는 변인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이론에 근거하자면 우리는 이루지 못한 일에 대하여 머릿속에 잊혀지지 않는 잔상으로 오래도록 기억하며, 그 일을 완성했더라면 하는 후회속에서도 끝내 스스로를 정당화하지도 못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사례로 든 첫사랑 말고도 누구나 비슷한 경험 하나쯤, 아니 무의식 저 아래에서 건져 올리지 못한 무수히 많은 순간들을 품고 있을 것이다.
<오래도록 완성하지 못한 자전거 일주 지도는 느닷없이 튀어나와 그 마무리를 요청하곤 한다>
첫 직장을 그만둔 2008년, 새 직장을 얻기 전 일년의 시간을 내어 목표한 것이 있었다. 자전거 전국 일주와 남미 배낭여행이 그것이었다. 퇴사후 이주일만에 급하게 홀로 떠난 자전거 여행은 나보다 일주일 뒤에 퇴사한 선배가 경북 울진에서 동행하게 되면서 우연찮게 동행 여행이 되어버렸다. 원래의 계획은 강화도까지 올라가 임진강을 거쳐 휴전선 일대를 가로질러 동해안에서 마칠 예정이었는데, 중간에 계획이 틀어졌다. 경기도 아산만에 이르렀을때 선배집에 문제가 생겨 다음날 화성 지역에서 이별을 고하고 선배는 수원 방향으로 나는 인천 방향으로 여정을 계속했다. 그때까지는 여행을 마무리할 계획이 없었다. 화성에서 자전거 위에서 허리를 틀어 손을 흔들며 서로 다른 방향으로 떠나면서부터 기분이 묘해지는 것이다. 그날 따라 바람이 심하게 불었는데 시화 방조제를 힘들게 넘어갈 즈음부터 육체적 고통과 함께 정신적 헤이함이 함께 찾아오는듯 했고 91년 운행을 마친 소래포구 협궤열차앞에 도착했을때는 자전거에게 작별을 고해야 할 시간이 되었음을 운명적으로 직감했다.
마지막 날의 오후 질주 속에 벌써 심리적 합리화가 어느 정도 완성되어버렸는데, 다름 아닌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고자 하는 희망이었다. 더 높은 곳이 정신적 고차원이 아니라 우리나라의 지도상 높은 곳이었다. 강화도를 지나 우측으로 꺽는 것이 아니라 황해도 장산곶을 지나 대동강 모란봉을 건너고 신의주를 거쳐 압록강 물결을 거슬러 개마고원 황량한 고지대를 지나서 두만강 뱃사공을 옆으로 끼고 동해의 최북단에 도착하여 북한의 동해안 도로를 따라 금강산을 거쳐 최종 목적지에 이르는 거창한 통일 자전거 프로젝트를 구상한 것이었다. 아니 어쩌면 자전거 여행을 마무리하기 위해 스스로 만들어낸 불가능한 심리상태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둘이었다가 하나가 된 그 순간의 허탈한 심리가 이런 얼토당토한 합리화를 진행하였고 쉽게 굴복한 난 다음 날 미련없이 버스에 자전거를 싣고 여행을 마무리했다. 내가 통일을 지지하는 개인적 사유는 바로 마무리 못한 자전거 여행에 대한 열망이다. 요즘은 아래 위로 또라이들이 정권을 잡은지라 이 소망을 이루기는 불가능해 보인다. 그래서 요즘은 다시 원래 계획인 휴전선을 가로지르는 마지막 질주를 마무리할까 계속 고민해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