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가게 찰리의 행복하고도 슬픈 날들
다니엘 키스 지음, 김인영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4년 3월
평점 :
절판


머리가 아인슈타인만큼 좋아진다면? 이마에 엘리트 영한 사전이라는 낙인을 선명하게 찍으며 흐리멍텅한 눈으로 졸음을 깬 도서관에서 가끔 그런 망상에 사로잡힌 기억이 있다. 저자는 머리가 극도로 좋아진다는, 누구나 한번쯤 해보았을 가정에 비성숙한 절름발이 지식과 교양이 사람사이의 단절을 불러온다는 사실을 덧붙여 하나의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다. IQ70의 정신지체아에서 IQ180의 천재로, 그리고 다시 급격한 퇴행을 하게 된 빵가게 점원 찰리가 겪는 심리의 변화를 통하여 급격한 지적 팽창에 비하여 정서적, 인격적 함양의 부족이 가져오는 현대사회의 자아분열과 고독을 보여준다.

분노와 의혹, 그리고 질투와 두려움
보통 사람들의 세계를 이해하고자하는 학습의욕이 누구보다 높았던 IQ70의 찰리가 뇌수술후 IQ180의 천재가 된다. 천재의 삶, 새로운 세상에 대한 환희와 경외심이 그를 감싼것도 잠시, 자신을 향해 웃음짓던 사람들의 웃음을 공유하기를 원했던 찰리는 그 웃음이 조소였음을 깨닫는 순간, 인간에 대한 분노와 자신을 둘러쌓던 모든 사물에 대한 의혹을 지닌다. 마루바닥의 밀가루나 쓸던 그가 기계를 돌리고 철학과 문학을 이야기하고 그들의 사고를 꿰뚫어보자 사람들은 혼란에 빠지며 급기야 질투와 두려움에 휩싸여 하나둘 그를 떠난다.  찰리는 냉소적이고 고독한 지식 덩어리로 변해간다.

자아분열, 그리고 고독
무서운 속도로 지식을 흡수하던 그는 언제나 창문 저편에서 슬픈듯 그를 바라보는 또 하나의 찰리를 발견한다. 눈이 흐리멍텅하게 풀리고 입이 반쯤 열리어 바보같은 미소를 지으며 그를 바라보는 어린 소년은 지식의 팽창속도를 미쳐 따라가지 못한 정서적, 인격적 자아이다. 그의 정신과 육체를 과거의 본능으로 잠식하려는 잠재의식이라 말하지만 천재 찰리에게 바보 찰리는 과거에도 있었고 현재에도, 미래에도 있을 그의 한부분일 뿐이다. 그는 외친다. 바보였던 나도 인간일 뿐이라고. 지식수준이 팽창했던만큼 급격한 속도로 저하되는 기억속에서 그는 자신에게 행복했던 순간들이 기억될수 있기를 열망하나 기억은 하나둘 사라진다. " 나는 무엇인가를 한것 같지만 무엇을 하였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리고 끝없는 고독속으로 침잠한다. 결국 그 고독마저도 잊어버리지만.

그가 행복했던 순간이 있었던가, 잠시의 환희는 있었을망정 영원한 행복은 없었던것 같다. 다만 어린시절의 기억속에 남아있던 냉정했던 여동생과 어머니의 본심을 안것과 다시금 워렌으로 돌아가는 스스로 선택한 여정 정도랄까, 그가 사랑한 여인 앨리스와의 사랑은 행복인지 아닌지 감히 말할지 못하겠다. 원제목은 " 앨저넌에게 꽃을 " 이다. 그와 같은 실험대상인 흰쥐이다. 마치 과거의 찰리가 현재의 찰리를 바라보듯 그는 퇴행하는 앨저넌의 끝없는 추락과 비극을 바라본다. "앨저넌에게 꽃을" 은 죽은 앨저넌의 무덤에 꽃을 바치던 찰리가 더 이상 그 일마저 기억하지 못할 것임을 느끼고 마지막으로 쓴 편지의 추신 내용이다.

P.S " 찰리에게도 꽃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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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5-04-18 23: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꽃을 든 남자....저 무조건 추천하고 보관함에 담습니다.^^

플레져 2005-04-19 0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종이 줘 봐! 연필 줘 봐! 슥슥슥... 잉크냄새님의 리뷰 끝에선 그런 편안함이 느껴집니다 ^^ 고독마저 잊어버린다... 잊혀지지 않는 문장이 될 것 같습니다...

내가없는 이 안 2005-04-19 0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재지인에게서 이 책 무척 재미있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님 리뷰를 읽다보니 소름돋는 고독이 느껴지는데요. 그분의 글에선 유머가 있다는 것으로 제가 해석했고, 님의 글에선 삶의 쓸쓸함이 느껴지니, 도서관 한켠에 있던 이 책을 이제 들고 나올 때가 됐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 추천. ^^

진주 2005-04-19 09: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빵가게 점원 찰리가 겪는 급격한 지식의 팽창과 상반된 정서적, 인격적으로 메마른 상황이 마치 우리 학생들의 현실 같아요. 이거 중학생도 읽을 수 있나요?

잉크냄새 2005-04-19 18: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우님 / 어설픈 글에도 과감히 추천을 누르시는 용기에 감사드립니다. " 꽃을 든 남자, 노래 좋죠.

플레져님 / 슥슥슥...그렇게 자연스럽게 쓰지를 못해요. 안돌아가는 머리 한참을 굴려야죠.^^ 편안함, 전 오히려 님의 글에서 그 편안함을 느끼는걸요. 고독마저도 잊은후에는.. 그 다음은 뭘까요?

이안님 / 삶의 쓸쓸함, 높은 곳으로부터의 추락은 비극이라는 말처럼 급격히 퇴행하며 겪는 찰리의 심리와 처음처럼 맞춤법이 하나둘 틀어지기 시작하는 종반부는 괜시리 찡~ 하는 울림이 있더군요. 추천 감사드려요.

진주님 / 맞아요. 번역가도 후기에서 우리나라 학생들의 현실을 잠시 이야기하더군요. 과연 지식만이 삶의 행복요소인지...요즘 중학생들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가요? 크게 무리는 없다고 판단되지만 아무래도 님이 읽으시고 판단하시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인것 같네요.

로드무비 2005-04-19 14: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라성같은 인물들의 추천과 댓글.
잉크님 인기 비결이 뭡니까?
저도 마지못해(?) 추천하고 갑니다.
이 책 재밌겠네요.^^

2005-04-19 14: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icaru 2005-04-19 14: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주 님...질문 음...~ 저 투철한 직업정신... 존경합니다...

진주 2005-04-20 09: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복순이 언니님 그게 아니구여.....제 독서 수준이 딱 중학생 수준이라....^^*

stella.K 2005-04-20 1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고 보니 제가 저의 서재 1주년 기념 때 이벤트에서 선물해 드린 책이네요. 추천을 6분에게나 받으시고, 그것도 알라딘의 기라성 같은 분들에게 받으시고...제가 받은 것 같아 기분이 좋은데요?^^

비로그인 2005-04-20 1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고..어렸을 적엔 저도 가당챦게 천재가 되는 상황, 생각해 본 적이 있었습니다. 수학 공식이나 영어 단어도 줄줄 암기하고.. 최연소 공학 박사..동네 입구에 제 이름이 크게 프린트된 현수막 걸리고..참나..잠깐이라도 그런 생각했다는 사실이 너무 끔찍합니다요..리뷰의 마지막 장면이 너무 불쌍하고..꽃을 바치는 상황마저도 기억하지 못하다니..쓸쓸해요..근데 잉크냄새님, 이런 뚱딴지같은 질문 드려도 괜챦을 지..잉크냄새님께서는 도서정가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해요..

잉크냄새 2005-04-20 1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 / 모두들 소중하고 고마운 분들이시죠. 이리 어리숙한 글에 정성껏 댓글 달아주시고 소심한 마음 상할까 마지못해(?) 추천도 한방씩 해주시고...^^

복순이언니님 /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없다 라는 영화제목이 딱 떠오르네요. 가장 큰 비극은 높은곳으로부터의 추락이라고...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의 철학자가 말했다고 하던데, 이 소설을 읽으면 끄덕끄덕 하게되는 구절입디다.

스텔라님 / 맞아요. 님의 이벤트 선물이었죠. 아마 행복이라는 단어가 들어가서 선정되었던걸로 기억하는데... 쟁여놓고 미루어둔 책들이 있어 한참의 시간이 지난후에야 읽게 되었네요. 다시 한번 감사드려요.

복돌이님 / 후후...누구나 한번쯤 하는 상상일거란 생각이 드네요. 멕가이버처럼 능수능란하고 뉴튼처럼 사과에서 식욕보다는 학구열을 느끼길 간절히 원하곤 했죠.도서정가제...간략히 말씀드리면 반대합니다. 이유야 몇개되지만 구구절절히 말씀드리긴 뭐하고...한가지는 그걸 제시한 국회의원이 똥통인걸로 알거든요.

미네르바 2005-04-28 0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 책은 저도 꼭 읽어보아야겠는걸요? IQ70의 정신지체아에서 IQ180의 천재라... 정말 혼란스러울 것 같아요. 그리고 그의 고독을 알 것 같기도 하고요. 그런데 고독마저 잊어버린다... 보관함에 넣었네요.

잉크냄새 2005-04-28 1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네르바님 / 책을 읽는 동안 그의 어두컴컴한 고독이 보이는 것 같아 마음 한구석이 불편했습니다. 결국 고독마저도 잊어버리겠지만 그 쓸쓸한 잔상은 두고두고 그의 마음에 흔적을 남길것 같아서 안타까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