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89년의 여름 어느 날쯤으로 기억한다. 시내 극장을 돌며 순찰하는 선생님들의 눈을 피해 뒷구멍으로 들어가서 봤던 인디아나 존스 3’ 는 한 동안 뇌리에서 잊혀지지 않았다. 카우보이 모자, 낡은 가죽 재킷, 어떤 악당도 때려 잡는 가죽 채찍의 인디는 꿈 속에서도 나타나곤 했다. 그 당시 문과가 아닌 이과였던 난 인디와 같은 고고학자가 되고자 과감히 교무실을 밀치고 들어가 문과로의 전과를 요구하다 흠씬 얻어터지고 꿈을 접었었다. 성배가 보관되어 있는 페트라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난 그 때의 추억에 잠겨있었다. 철없던 시절의 한낱 치기로만 여기기에는 간절했던 그 시절의 소중한 기억들이 스멀스멀 피어나고 있었다. 만약 전과를 하였다면 지금의 나는 어떤 모습일까? 꿈이란 철이 들고 세상을 하나 둘 알아 갈수로 잊혀지고 사라지는 것일까? 인생에 가정법처럼 무의미한 건 없지만 한편으로 그것처럼 새로운 삶의 시각을 열어주는 것도 없을 것이다. 꿈은 잊혀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더 이상 꿈을 꾸지 않는 이의 가슴 깊은 곳으로 잠시 들어갈 뿐. 어느 날, 그 꿈의 언저리를 살며시 쓰다듬는 손길을 느낀다면 선잠에서 깨어난 아이처럼 기지개를 켜고 살며시 일어나는 것이다. 페트라로 향하는 길 위에는 내 안에서 기지개를 켜는 한 고등학생의 꿈이 동행하고 있었다.

 

 

<페트라 가는 계곡길>

 

 

최후의 성전 페트라로 진입하는 길은 수직으로 깍아지른 절벽 사이를 한참 통과하여 지나간다. 돌바닥을 디딪는 여행자들의 발자국 소리는 절벽 사이를 메아리쳐 성전에 잠든 기사의 선잠을 살며시 깨우는 듯 했다. 좁을 틈을 비집고 들어온 햇살은 형언할 수 없는 빛의 향연을 펼쳐 보였는데, 빛의 굴절로는 도저히 설명이 불가능한, 바람에 올라탄 빛만이 표현할 수 있는 색조였다. 수 천년 동안 그 바람이 쓰다듬었을 적갈색의 바위는 오랜 세월 품어온 따스한 온기를 품고 있었다. 인도의 타지마할은 복도를 통과하는 순간 어둠 속에서 갑자기 짠! 하고 모습을 드러낸다고 한다. 페트라는 햇살과 바위와 바람이 연출하는 빛의 향연을 지나 바람마저 차단 당한 듯 깊어진 절벽의 어둠이 살며시 내려올 즈음 황금빛의 찬란한 모습을 서서히 드러냈다. 그것은 빛을 향해서 서서히 나가가는 느낌을 안겨주었는데 절벽의 출구를 빠져나오자마자 맞은 편의 절벽 한 면을 차지한 황금빛의 웅장한 페트라는 한 동안 입을 다물지 못하게 했다. 바위 틈새의 황금빛을 쫓아 한 걸음 한 걸음 내딪던 그 순간의 두근거림이 아쉬워 몇 번을 되풀이 해 그 길을 걸어보곤 했다. 사실 인디가 도착한 성전은 페트라의 시작에 불과했다. 그 성전을 기점으로 산 꼭대기까지 고대 도시의 폐허가 펼쳐져 있었다 흡사 카파도키아와 비슷한 인상을 받았는데 카파도키아가 요정의 손길로 만들어졌다면 페트라는 신의 숨결로 만들어진듯 했다.

 

<페트라 초입>

 

<인디아나 존스3의 성배가 보관된 성전 - 성배를 찾아 들어갈 길은 없다. 그저 작은 방 하나>

 

 

발길은 자연스레 이어졌다. 낡은 나무 판자에 쓰여진 세상의 끝이라는 글을 따라 난 길을 올랐다. 페트라 제일 마지막에 위치한 성전을 지나 올라간 돌 언덕 너머에 세상의 끝이 자리하고 있었다. 의도적으로 색칠한 듯 완전히 다른 색으로 치장한 절벽과 산들. 온화한 황토빛의 완만한 산들이 음울한 진회색의 날선 절벽으로 바뀌는 순간 페트라를 지은 이들의 발길은 그 색감 앞에서 무참히 무너졌으리라. 색의 경계가 이루어지는 절벽 위에서 한참을 앉아있었다. 더 이상 나아가기를 거부한, 발길마저 꿈마저 차단당한 그 곳에 세상의 끝은 검게 내려앉아 있었다.

 

 

<페트라 정상의 성전>

 

 

<세상의 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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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2-05-31 14: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과였는데 문과로 옮기기 어려운 시절이었었어요.. ㅋㅋ

"인생에 가정법처럼 무의미한 건 없지만 한편으로 그것처럼 새로운 삶의 시각을 열어주는 것도 없을 것이다.꿈은 잊혀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더 이상 꿈을 꾸지 않는 이의 가슴 깊은 곳으로 잠시 들어갈 뿐. 어느 날, 그 꿈의 언저리를 살며시 쓰다듬는 손길을 느낀다면 선잠에서 깨어난 아이처럼 기지개를 켜고 살며시 일어나는 것이다. 페트라로 향하는 길 위에는 내 안에서 기지개를 켜는 한 고등학생의 꿈이 동행하고 있었다"

"페트라는 햇살과 바위와 바람이 연출하는 빛의 향연을 지나 바람마저 차단 당한 듯 깊어진 절벽의 어둠이 살며시 내려올 즈음 황금빛의 찬란한 모습을 서서히 드러냈다"


아...이 구절들 너무 좋아요.. ^^ 정말 적어두고 싶다..



뒤에 이어지는 글은 쓰고 계신가요? 잉크냄새님?



잉크냄새 2012-05-31 17:11   좋아요 0 | URL
이과였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네요. 글에서 풍기는 이미지는 문학관련 분으로 생각했었거든요. 에,뭐랄까. 비행기가 너무 높아서 어질어질합니다. 저는 그냥 그때의 느낌이라든지, 소중하다고 생각되는 단어를 글로 적어보려고 했어요. 고민도 좀 하지요. 저에게는 소중한 여행기니까요.

뒤에 이어지는 글은 여전히 요르단 어딘가 일겁니다.

icaru 2012-05-31 15: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아... 웅장하고, 어쩐지 쓸쓸하고요. 으아으아..

잉크냄새 2012-05-31 16:53   좋아요 0 | URL
그쵸? 웅장하지만 어딘지 쓸쓸한 느낌. 저도 그때 느꼈던것 같아요.

風流男兒 2012-05-31 16: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저도 개인적으로 고등학교 때 문과로 꼭 옮겼어야 했는데.. 라는 나름의 아쉬움이 남아 있긴 합니다. 물론 이과였기에 덕본것도 많았지면, 결국 대학은 문과로 들어간 걸 생각하면.. 조금 쌩뚱맞지만, 전 경복궁의 돌담길을 걷거나, 버스를 타고 지나갈 때면, 이상하게 여기가 서울의 끝이라는 생각을 한 적이 몇번 있었어요.

여하튼, 제가 꼭 가봐야 하겠다는 많은 곳에, 잉크냄새님의 흔적이 남아있군요.
부럽고, 즐거워요. 생생한 경험을 글로 본다는 사실과 다시 가겠다는 생각을 또 품게 된 것에도요. ㅎㅎ

잉크냄새 2012-05-31 16:55   좋아요 0 | URL
이과 출신들이 많군요. 전 대학 역시 공대로 갔지만 공대에서도 전과 하려다 물리 빵구 나면서 좌절했던 경험이...ㅎㅎ

페트라는 제가 가본 유적지 중에서 가히 최고라고 생각해요. 원래 여행을 해도 유적지나 박물관 같은 곳을 잘 안가는 편인데, 페트라 만큼은 반드시 가보시라고 권해드리고 싶어요.

언젠가 꼭 가실 날이 올겁니다. 원하면 이루어지니까요.

차트랑 2012-05-31 16: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현대인들님께서 언급해주신 부분은
정녕 적어둘 만한 '어록'입니다~

어찌 이리도 좋은 어록을 남기실 수가 있는 거지요??
마치
'소현'이라는 소설을 쓴 작가와 견줄 수 있는 표현력이 감동받습니다.
쩔어요~^^

잉크냄새 2012-05-31 16:57   좋아요 0 | URL
또 다시 비행기에 승선하네요.^^
좋은 글을 쓰시는 분들을 보면 참 부럽습니다. 자신의 감정을 가장 적절하고도 아름다운 표현으로 할수 있다는 것은 분명 축복일테니까요.

2012-05-31 18: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6-01 09: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음을데려가는人 2012-05-31 2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말도 안돼!!!
이렇게 아름다운 묘사를 하시는 분이 이과라니!
말도 안돼요!!!

잉크냄새 2012-06-01 09:11   좋아요 0 | URL
흠,,,오늘 다들 왜 이러실까? 누가 보면 댓글 알바 푼줄 알겠어요.ㅎㅎ
정말 말도 안되는 것은 저 페트라 자체의 풍경이었어요. 페트라 앞에 섰을때 진짜 말도 안돼 라고 외칠뻔 했으니까요.

차트랑 2012-05-31 2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말 안~되요 되요 ㅠ.ㅠ

잉크냄새 2012-06-01 09:12   좋아요 0 | URL
저 풍경 자체가 말이 안되게 아름다운 풍경이었습니다요.
저런 유적지라니...지금도 페트라 초입을 떠올리면 두근두근 합니다.

2012-06-01 02: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6-01 09: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카스피 2012-06-01 1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디아나 존스 3에 나왔던 페트라네요.잃어버린 성배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장소지만 영화를 보면서 참 멋지단 생각을 했지요.그런곳에 가신 잉크냄새님이 넘 부럽습니당^^

잉크냄새 2012-06-01 13:45   좋아요 0 | URL
네,인디아나 존스3를 통하여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죠. 페트라를 방문하는 여행객이 헤아릴수 없을 정도인데, 그때 당시 요르단 사람들은 스필버그에게 감사해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참, 이 여행은 이미 꽤 시간이 흐른 여행기랍니다.

프레이야 2012-06-01 16: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요르단의 페트라까지 여행하셨군요.
오래전 여행이지만 생생하게 살아있나 봐요, 잉크냄새님 기억속에요.
부러워요~~ 세상의끝,으로라니요. 세상의 끝! 가보고 싶어요.

잉크냄새 2012-06-04 11:26   좋아요 0 | URL
네, 한참이 지난 여행기죠. 미리 올렸어야 더 생생했을텐데 한동안 여행기를 쓰지 못했습니다. 아직 써야할 여행기가 많이 남아있어요.

rosa 2012-06-05 09: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년 4월부터 1년간 연구년(안식년) 휴가를 떠날 예정입니다.
힘들 때는 여행 계획을 짜고, 세계일주 바이블..같은 책을 사다 열심히 경로 수정해보고 있어요. 페트라는 세계일주를 한 많은 여행객이 추천하는 곳이지만 제가 갈 수 있을지는 모르겠어요.
그래도 이런 곳이 있구나, 새삼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몇년 전의 여행기록도 이렇게 살뜰히 올리시는 것을 보고 반성했어요.
열심히 적었던 여행공책을 다시 꺼내 살펴 봅니다.
틈틈히 기록을 정리해야겠단 생각을 했어요.
지난 여행기록들이 하나둘 제 서재에 옮겨진다면, 그건 모두 잉크냄새님 덕분입니다.^^

잉크냄새 2012-06-05 13:51   좋아요 0 | URL
와, 1년간의 여행이 되는건가요? 부러운데요.
여행의 기억이라는 것이 시간이 지나도 잘 잊혀지지 않지만 그래도 뭔가 기록으로 남겨보고 싶어서 그때 거쳐간 도시들을 하나둘 적어보고 있어요.
님의 멋진 여행기 기대해 봅니다.

rosa 2012-06-05 22:40   좋아요 0 | URL
1년간 여행을 떠나려고 했는데 어쩌면 연구도 조금 하게 될지도 몰라요. ^^;
원래 예정하고 있던 것과 조금 달라질 수도 있는데, 연대 차원에서 꼭 필요하고 중요한 일이라 기회가 되면 일하는 것도 괜찮다 생각하고 있답니다. 아직 확정된 건 아니지만요.
여행기는 남겠지만 멋지진 않을 거예요. 기대하지 마세요.^^;;;

잉크냄새 2012-06-06 09:46   좋아요 0 | URL
기억에 오래도록 남을 멋진 여행이 되시길 바랍니다.
일과 더불어 여행을 할 수 있다면 그것 또한 의미있는 여행이 되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