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미

- 강연호 -

절구통만한 먹이를 문 개미 한 마리
발 밑으로 위태롭게 지나간다 저 미물
잠시 충동적인 살의가 내 발꿈치에 머문다
하지만 일용할 양식 외에는 눈길 주지 않는
저 삶의 절실한 몰두
절구통이 내 눈에는 좁쌀 한 톨이듯
한 뼘의 거리가 그에게는 이미 천산북로이므로
그는 지금 없는 길을 새로 내는 게 아니다
누가 과연 미물인가 물음도 없이
그저 타박타박 화엄 세상을 건너갈 뿐이다
몸 자체가 경전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저렇게
노상 엎드려 기어다니겠는가
직립한다고 으스대는 인간만 빼고
곤충들 짐승들 물고기들
모두 오체투지의 생애를 살다 가는 것이다
그 경배를 짓밟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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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개미

신문지 앞에 들고 깊은 시름 하는 차에 건진 시 한수, 과감히 신문 한쪽을 부욱
찢음으로써 내 삶의 절실한 몰두를 이루었으되, 다음 타자의 깊은 시름에 빵꾸난
시름을 하나 더하게 되었으니 그것이 경배를 짓밟음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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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aru 2007-06-13 15: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떤 시름의 상황이었는지.. 상상이 되는데 그거 맞아요? ㅋㅋ
좋은 시 건지셨음다~

잉크냄새 2007-06-13 15: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카루님 / 달 밝은 밤에 긴 칼 옆에 찬 분이나, 천장등 아래 신문지 옆에 낀 넘이나,,,,그 깊은 시름 앞에서 자유로울수 없습니다. 그 시름 앞에서 읽는 시야말로 꿀맛이죠. 오죽하면 해우소라 할까나...ㅋㅋ

프레이야 2007-06-13 16: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잉크냄새님, 좋은 시를 결정적 상황에서 건지셨나 봐요. 제가 좀 업어갈게요.^^

겨울 2007-06-13 16: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당 있는 집이라 개미가 바글바글 한데요. 그 발발거리는 움직임은 늘 경이롭지요.
하지만 노상 엎드려 기어다닌다는 사람의 표현을 개미들은 싫어할 듯 해요.

파란여우 2007-06-13 2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름을 앓으면서도 시를 건지다니...존경합니다. 형님!ㅎㅎ
근데 잉크님,
새서재에서도 지붕이 그대로 따라와줘서 와 이리 좋은지요!(쫌 짤리긴 했는데)

플레져 2007-06-14 0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젠가, 누군가 강연호의 시를 들려준 적이 있어요.
그 시가 뭐였는지는 생각이 안나는데... 슬픈 로망스였다는 느낌이 남아있어요.
그 시름이 저 시로 탄생한거군요. 시인이 시를 썼으나 독자가 읽음으로서 완성되나니...
좋은 시 감사해요.

잉크냄새 2007-06-14 09: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혜경님 / 시름은 놔두시고 시만 업어가세요.^^
우몽님 / 어릴적 개미를 기르곤 하였죠. 유리병의 벽면을 따라 지어지던 개미집의 모습이 어찌 그리 신비하던지요.
여우님 / 왜 그러십니꽈! 누님. 서재지붕을 얹는 기능이 있네요. 기분 전환삼아 잠시 바꿔어볼까 합니다.
플레져님 / 그 시 기억나시면 알려주세요. 슬픈 로망스, 잡힐듯 하면서도 막연한 느낌이네요. 역시 시란 독자를 위한 여백을 남겨둬야 하나 봅니다.

춤추는인생. 2007-06-14 14: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경배를 짓밟지 마라..
시집은 처음은 보란듯이 열어젖힌 대문에 있지않고 사방으로 열려 있거나 닫혀져 있는 창들중에 있을 공산이 크다라고 말했던 시인의 강정의 말이.시란 독자를 위한 여백을 남겨둬야 한다는 님의 답글을 보면서 문득 떠올랐어요.
님 서재 배경 아주 맘에 들어요.
확 트인 초원위에서 맘껏 달려보고 싶어져요 ^^

잉크냄새 2007-06-15 1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춤인생님 / 맞아요. 활짝 열린 대문이 아닌 창을 통해 바라보는 혹은 바라다보이는 삶은 분명 찬듯 차지 않은 여백을 가지고 있지요. 이 서재 배경, 맘에 드는데 서재 대문이 별로라 고민중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