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이발소에서
- 송경동-

어떻게 깍을 거냐는 말에
저번 머리가 참 좋더라 하자
가위질 소리
쉬엄쉬엄 백 번 들릴 게
째각째각 이백 번도 넘게 들린다
아저씨 담배 한대 길게 하고
하품 두서너 번 할 동안도
주인아줌마 면도해주기
머리 감겨주기 말려주기
다 끝나지 않는다
흔쾌히 맞은 나를 시작으로
오늘의 성업을 간절히 바라는
이들 나름의 축원이려니 하며
깜박 졸음 드는데
누가 내게도 다가와
아, 당신이 한 용접 참 튼실합디다
한 마디만 해준다면
좋겠다는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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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기억
 서글프게 돌아가던 빛바랜 네온, 먼지낀 유리창 위에 휘갈겨쓴 페인트 글씨, 이가 맞지 않은듯 신음하던 미닫이 문, 손님을 평생토록 온몸으로 받아낸 낡은 갈색 소파, 철 지난 성인 잡지, 화물회사나 주류회사에 공급되었을법한 아슬아슬한 여자들의 누드 사진, 김지미 주연의 영화 포스터, 쉐이빙 폼을 대신하던 난로위의 비누거품, 비누거품을 찍어바르던 뭉퉁한 면도솔, 크린트 이스트우드의 수염이나 깍을법한 면도날, 슥삭슥삭  면도날 갈던 소가죽, 샤워기 대용으로 사용된 파란 통(화단에 물주는 통을 잘라서 만듬), 잘 감지 않던 머리를 시원하게 긁어주던 머리솔(개인적으로 하나 사고 싶다. 얼마나 시원하던지), 남성 화장품임을 온몸으로 증언하던 강력한 향기의 싸구려 스킨과 로션, 억센 손으로 머리를 감져주던 아줌마, 아저씨들에게만 발라주던 포마드 기름....벌써 10여년전의 일이다. 대학교 1학년때 멋모르고 약간 변태스러운 이발소 아저씨에게 머리를 자른후 발길을 끊었다.

2.난감한 질문 :  미장원에서 받는 가장 난감한 질문
  "어떻게 잘라 드릴까요?" -머리 스타일에 대한 관심이 없는건지 표현이 부족한건지 몰라도 참 난감하다. 그냥 이렇게 말하곤 한다.  " 머리 자른지 1달 되었거든요."

3.시간
 여자들의 시간 관념중 가장 이해하기 힘든 것중의 하나이다. 쇼핑과 미장원. 10분을 넘어서면 지루하다. 회사 기숙사 앞의 미장원중 가장 인기있던 미장원은 속도전에 능한 미장원이었다.  "아줌마, 분식집에 라면 시키고 왔거든요." 가장 많이 써먹던 수법이다. 대기 손님 1명인 경우 라면이 불을 일이 전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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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추는인생. 2007-03-19 2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분식집.ㅎㅎ 저도 이제부터 그런방법을 써먹어야 겠군요 저도 미용실에서 10분이 넘어서면 지루해지거든요 ;;계속 생머리인 이유도 아마 꼬박꼬박 미용실 가서 머리손질할 필요가 없어서인지도 몰라요 ㅎ
그나저나 시속의 분위기가 묻어나는 동네이발소가 있다면 꼭한번 놀러가고 싶네요^^

마늘빵 2007-03-19 2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죄송합니다. 사상이 불순한지라 이발소 하면, -_- 엉뚱한 것만 생각이.
저는 두달 전 길이로, 한달 전 길이로 잘라주세요, 라고 말해요. ^^

잉크냄새 2007-03-20 08: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춤인생님 / 한번 같이 놀러 가시죠. 가신 김에 머리도 한번 하고요. 10분이상 걸리지 않는 상고머리나 스포츠 머리로 시원하게.....ㅎㅎ
아프락사스님 / 불순하다기보다는 지금 이발소의 행태가 다 그러하니. 이발소의 하락이 타락을 가져온것인지 타락이 하락을 가져온것인지는 알수 없지만요.^^

얼음장수 2007-03-20 2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진과 시가 정겨워 읽고 갑니다.
저는 한 때 원하는 헤어스타일을 폰으로 찍어 보여주면서 "이렇게 잘라주세요"라고까지 말했는데, 제가 이상한 건가요. ㅋㅋ. 저는 돈만 많다면 자주 미장원 가고 싶기도 하구요.

은비뫼 2007-03-20 2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훈훈한 시네요. ^^ 시원하게 긁어준 머리솔 사용해본 적은 없지만 써본 이가 정말 시원하다고 하더군요. 푸핫. 참고로 전 미용실갈 때 가볍게 읽을 책이 필요하더군요. 정말 지루합니다. 흐흐.

잉크냄새 2007-03-21 1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얼음장수님 / 반가워요. 처음 뵙네요. 핸드폰을 사용한 전략이라,,,,창조적 아이디어입니다.^^
은비뫼님 / 그죠, 훈훈한 시죠. 어릴적 다니던 시골 이발소의 풍경이 잔잔히 그려지더군요. 많은 묘사를 하지 않아도 눈앞에 영상이 촤라락~ 펼쳐지더군요.^^

icaru 2007-03-21 1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루끼의 에세이를 보면 십대 시절 이발소에 얽힌 기억과 잔향을 다룬 글들이 더러 있어요. 이발소와 머리깎기라는 체험은 남다른 시적 서정을 주는가 보네 했네요.
그나저나 "머리는 잘 나왔어요?"

잉크냄새 2007-03-23 1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카루님 / 그런가봐요. 예전에 이발소 관련된 단편 영화를 한번 본적이 있는데 어쩜 그리고 공감가게 만들었는지 모르겠더군요. 머리는 그냥 그래요.^^

비로그인 2007-04-20 1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쇼핑과 미장원.
쇼핑에 대한건 잘 모르겠지만, 미용실에서 보내는 시간은 저도 낭비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제가 파마를 안하지요 ^^ 머리 한번 말려면 서너시간은 금방 가거든요 휴-
그시간이면 책을 읽거나 영화를 한편 볼텐데!

잉크냄새 2007-03-28 1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체셔님 / 음...남자들도 머리 귀찮다고 스포츠 하고 다니는 사람이 의외로 많아요. 전 10년만에 약간 길러보고 있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