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에서 횟집을 운영하는 친구가 있다. 대학시절 여자친구를 희롱하는 ROTC 선배의 이빨을 3대쯤 날려버리고 최전방으로 끌려간 녀석이다. 제대후 대학이 정나미 떨어진다고 대학을 중퇴하고 가업을 이어받아 10년이 넘도록 고향에서 횟집을 운영중이다. 대부분 고향을 떠나는 어촌의 특성상 명절이나 휴가때 가끔 만나는 친구들의 사랑방 역활을 톡톡히 해내는 곳이 또한 그 녀석의 횟집이다. 고향이라는 곳이 아직 순수함을 내포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아직 품게 만드는 곳의 한 장소도 그 횟집이다.
토요일 늦은 오후, 오랫만에 녀석의 전화가 왔다. 회를 한접시 썰어서 서울로 가는 길에 건 전화였다. "어떤 넘이 서울서 회 배달시키더냐" 는 농에 회신된 녀석의 답변이 참 오래도록 여운이 남았다. 얼마전 또 다른 고향친구가 횟집에 들러 자신이 아프면 회가 참 먹고 싶을거라고 농담삼아 말을 했었고 실제로 일주일후 대장암으로 서울 모병원에 입원을 하게 되었다. 횟집 친구는 그 소식을 들은후 그 말이 참 가슴에 남았던 모양이다. 회를 뜨면서도 그 생각이 자꾸만 나길래 "에라이~" 하고 횟집을 하루 접고 각종 회를 종류별로 썰어서 서울로 올라가는 길이었다. 그것도 자신의 차가 고장나 버스를 타고.
전화를 끊고 한동안 흐뭇했다. 회 접시를 끌어안고 버스에 있을 녀석의 모습과 감격하며 회를 받을 환자를 생각했다. 분명 그 회에는 순수함과 우정이라는 항암제가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그 따뜻함을 품고 환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발암물질 - " 야, 너 지저분한 병 걸렸다며?"
환자 - "어, 대장암이래"
발암물질 - " 어린넘이 몇살이나 먹었다고. 고등학교때 치질도 걸리더니. 평소에 잘 닦아라."
환자 - "너나 잘 닦아라."
---- 잠시 중략 (별로 영양가없는 대화들)----
발암물질 - " 야, 죽지 마라"
환자 - "지랄한다"
참, 대화 꼬라지 하고는.... 평소에 스스럼없다는 것이 이렇게 개떡같은 대화를 연출하기도 한다. 환자에게 신선한, 우정과 순수함이 가득 담긴 회를 썰어 "有朋自遠方來 with회" 하는 항암제같은 친구와 전화나 찍~ 걸어 "뒤나 잘 닦아라, 죽지마라" 라는 발암물질 같은 말을 퍼붓는 넘의 이 엄청난 대조라니...허나 모른다. 그 순수하지만 터프한 횟집녀석이 회를 주는 순간 환자의 강냉이 몇개 날려버릴지도...
하여간, 환자녀석은 회도 싹 비우고 뒤도 잘 닦고 치료도 잘 받아 조만간 죽을 일은 없을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