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의 손끝에서 과학자의 손길로 - 미술품을 치료하는 보존과학의 세계
김은진 지음 / 생각의힘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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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작품의 생명 연장술 보존과학을 아시나요. 아픈 그림을 치료하는 미술품 의사 보존가와 보존과학에 대한 놀라운 이야기를 담은 책 <예술가의 손끝에서 과학자의 손길로>. 에쿠니 카오리와 츠지 히토나리의 소설 <냉정과 열정 사이>의 주인공 준세이를 통해 보존가라는 직업을 처음 알게 되었는데 실제 현장에서 일하는 보존가의 모습은 어떨까요.


미술 작품의 생명은 예술가의 손끝에서 시작되지만, 그 긴 생명은 보존가와 보존과학자의 손길로 지켜진다. - 예술가의 손끝에서 과학자의 손길로 


보존이란 현재와 미래 세대가 그 아름다움을 즐길 수 있도록 미술품을 보호하기 위해 예방보존, 치료보존, 복원에 이르기까지 모든 조치와 행위를 말합니다.


여행 중 우연히 마주한 미술품 복원 현장에 매료되어 그 길로 회화 보존을 공부하고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로 일하는 김은진 저자는 이 책에서 보존가의 철학과 책임이 얼마나 막중한지 잘 보여줍니다. 왜 복원해야 하는지, 어떻게 복원해야 하는지, 누가 가장 잘 할 수 있는지 윤리적, 기술적 고민을 철저히 해 유일무이한 문화유산을 다루는 일에 대한 책임을 잘 알고 있어야 하는 보존가의 직업적 태도를 이야기합니다.


다양한 복원 사례를 통해 뭉클한 감동, 웃픈 이야기, 가슴 아픈 실패 사례 등을 다룹니다. 압도적인 크기에 중앙에 그려진 대장이 실제 사람의 키만큼 커 그림 속 사람들의 무리 앞에 서 있는 듯한 기분이 드는 렘브란트의 작품 <야간 순찰>은 숱한 수모를 당했습니다. 구두수선용 칼, 빵칼, 산성 액체 등 온갖 테러를 당한 이 작품은 최소 25회 복원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현재는 복원 처리 과정이 공개되어 미술을 즐기는 또 다른 방법을 선사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제는 하나의 학문이 된 미술품 보존. 과학적 분석과 연구 기능을 강화해 보존가를 정식 채용하고 보존 처리에 대한 기록이 철저하게 관리되고 있습니다.


원래 그림 그대로의 모습을 찾아내려고 노력하고 수천 년이 지나도 함께 즐길 수 있도록 복원하는 과정은 흥미진진합니다. 과학 기술 발전에 따라 복원 기술과 유행하는 기술이 시대별로 달랐습니다. 스펀지에 포도주를 적셔 닦아내거나 빵을 문질러 닦아내는 게 다였던 클리닝 기술도 이제는 많이 발전했습니다.


클리닝에 대한 논쟁도 무척 흥미진진합니다. 밝아진 그림에 대한 거북함이 이어지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누군가는(그 유명한 곰브리치라든가) 세월의 흔적이 그림에 가치를 더하고 생기를 불어넣는 요소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해외 작품 외에도 우리나라 그림에 대한 사례도 등장합니다. 과거에는 일본으로 복원 기술을 공부하러 많이 갔었고, 당시 배워온 획기적인 최신 기술로 보존 처리를 많이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구본응이 친구 이상을 그린 작품 <친구의 초상>은 복원 과정을 거치며 이상의 창백한 아픈 얼굴이 생기 넘치는 얼굴로 바뀌어버린 겁니다. 이처럼 복원 과정에서 많은 논란과 분쟁이 생길수록 미술관에서 과학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됩니다.





온습도에 민감한 나무판, 캔버스, 종이라는 재질, 켜켜이 쌓여 있는 물감의 재료 등 겉으로 보이는 표면적인 그림 외에도 굉장히 신경 쓸 게 많았습니다. 복원용 물감이 따로 있고, 복원할 때 사라진 색을 단순히 색칠하는 것도 아니더라고요. 과학적 메커니즘을 연구해 변색된 색의 원래 색에 대한 정보를 찾는 것도 보존가의 역할입니다. 빛에 의해 발생한 손상은 회복되지 않고 누적된다니 미술관의 조명 하나도 유심히 살펴보게 될 것 같습니다.


타이타닉 영화에서 디카프리오의 그림이 80년이 넘도록 바닷물 속에서 그대로 있을 수 있었던 까닭이나 백발의 할머니가 된 주인공이 진흙을 걷어내고 깨끗한 물속에 그림을 다시 두는 이유에도 과학적인 고증이 담긴 장면이라는 걸 알게 되니 신기할 따름입니다.


<예술가의 손끝에서 과학자의 손길로>에는 미술품 보존을 공부해보고 싶은 이들을 위한 조언도 있습니다. 아직 널리 알려지지 않은 직업이지만 전달자로서의 보존가의 일을 엿볼 수 있는 책입니다. 앞으로는 이 작품은 어떤 손길을 받아왔을까 하며 작품 속 숨은 스토리가 궁금해질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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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라운드 업 - 스타벅스 하워드 슐츠의 원칙과 도전
하워드 슐츠.조앤 고든 지음, 안기순 옮김 / 행복한북클럽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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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벅스 명예회장 하워드 슐츠 회고록 <그라운드 업>. 스타벅스 경영철학에 관한 이야기는 이전에도 있었지만 이번 책에서는 공개한 적 없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지독한 가난과 무력함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었고, 스타벅스의 사회적 역할 이념에 그 시절의 고민이 반영되었는지 이해할 수 있는 시간입니다.


야망도 의지도 완전히 꺾인 아버지, 우울증을 앓은 어머니. 시도 때도 없이 나타난 빚쟁이들. 하워드 슐츠에겐 그들이 살던 임대 아파트의 계단이 피난처였습니다. 계단에서 작은 세상 너머를 상상하며 보냈다고 합니다. 그에게 '제3의 장소'는 단순히 사방이 벽으로 둘러싸인 물리적인 공간이 아니라 사고방식이고, 세상에 존재하는 방식이 되었습니다.


상상을 펼쳤던 어린시절 그 계단은 일상이자 휴식의 공간, 집도 아니고 직장도 아닌 제3의 장소가 되는 스타벅스에 반영됩니다. <그라운드 업>에서는 어떻게 계단에서 벗어나고 자신이 알던 세상을 넘어서 다른 미래를 상상하며 미지의 세계를 찾아 나서게 했는지 어릴 적 경험을 되돌아보고 있습니다.


"미래를 상상하는 것은 어린 시절 내 머릿속에 새겨진 이념의 핵심이기도 하다." - 그라운드 업


1971년 설립된 스타벅스에 근무하며 출장차 간 밀라노에서 에스프레소 바의 충격적인 경험을 한 하워드 슐츠. 당시 스타벅스는 품질 좋은 원두를 판매하는 정도였고, 그의 아이디어는 반영되지 못했습니다. 결국 스타벅스에서 나와 직접 일지오날레를 설립해 커피하우스 경험을 미국 문화에 뿌리내리게 됩니다. 이후 일지오날레가 스타벅스를 인수하게 되었으니 참 인연이란 게 신기하네요.


1987년 스타벅스 CEO로 활동하기 시작하며 본격적으로 스타벅스의 경영철학을 실천해나갑니다. 어린 시절 경험한 것들이 사명에 반영됩니다. 직원에게는 자신이 일하는 기업과 신뢰를 바탕으로 관계 맺을 자격이 있음을 잊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부모님은 무엇 하나 소유하지 못했었기에 당시 그 누구도 하지 않던 파트타임 직원에게도 포괄적인 건강보험과 스톡옥션을 제공합니다. 직원들을 위한 혁신을 스타벅스에서 실천한 겁니다.


바리스타를 통한 기업과 고객의 연결은 스타벅스가 추구하는 사업 모델에 필수였습니다. 직원이 진심이어야 가능했습니다. <그라운드 업>에서는 스타벅스를 성공으로 이끈 원동력을 살펴봅니다. 사소해 보이거나 기업이 해서는 안 될 행동처럼 보이는 것들도 많습니다. 이 모든 것들이 모여 스타벅스 문화 형성에 기여했고, 오늘날 스타벅스가 되었습니다.





회사가 위기에 빠졌던 시기도 있었습니다. 최고경영자 자리에서 물러났다가 다시 되돌아오기도 했습니다. 대변혁기를 거치고 회사를 성장모드로 돌려놓기까지 순탄치는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스타벅스가 가진 수단을 활용해 선에 기여하고 진정한 가치를 드러낼 기회만큼은 놓치지 않았습니다. 매장이라는 물리적 공간에서 참여의식을 불러일으킨 겁니다. 구태의연한 정책에 지친 대중의 심정을 반영해 스타벅스가 시민들에게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기회를 주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스타벅스는 어떤 기업인가, 어떤 기업이 되고 싶은가, 오늘날 스타벅스는 어떻게 시민에게 기여할까를 꾸준히 고민합니다. 기회를 차단하는 현재의 사회에서 학생, 청년, 난민, 유색인종 등 더 많은 사람에게 기회를 줄 수 있는 길을 마련하고자 애씁니다.


의도하지 않은 결과로 상처 입고 가슴 아픈 일도 많았습니다. '모든 인종이 함께' 캠페인도 그중 하나입니다. 실패한 노력으로 인식되었더라도 불완전하지만 시도하는 것이 제쳐놓는 것보다 낫다는 걸 보여준 사례이기도 합니다. 시행착오를 거치며 나아지는 모습을 보여주는 스타벅스는 그 바탕에 언제나 진지한 자기반성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더 큰 교훈을 얻고 긍정적인 활동을 벌일 기회로 바꾸려는 노력으로 스타벅스의 역사가 하나둘 쓰였습니다.


1987년 매장 여섯 개와 100명이 안 되는 직원으로 시작한 스타벅스는 현재 우리나라에만 천사백여 개가 넘는 매장이 있는 세계에서 가장 큰 다국적 커피 전문점이 되었습니다. 스타벅스 코리아는 얼마나 하워드 슐츠의 신념이 잘 반영되어 실천적으로 운영을 하고 있는지 사실 궁금하긴 합니다.


세상을 보다 나은 곳으로 만들기 위한 도전을 게을리하지 않은 하워드 슐츠. <그라운드 업>은 기업의 사회적 역할에 관한 인사이트를 줍니다. 동시에 부의 양극단에서 살아본 그의 삶은 희망의 메시지가 담겨 있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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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 하고 싶은지 뭘 할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 - 일단 나에게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
김시옷 지음 / 채륜서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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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때로 걷기도 했지만, 열심히 달려왔고 멈춘 적은 없었던 이십대를 보내고 서른이 되니... 백수가 되었다?! 불확실한 현실과 미래에 압도되어 무력한 삶을 사는 이 시대 흔한 청춘들의 마음을 사로잡을만한 에세이를 소개합니다. <뭘 하고 싶은지 뭘 할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은 위로 대신 힘 뺀 농담으로 함께 고민을 나눕니다.


소소, 서른, 소심, 사랑이라는 시옷이 들어간 단어를 사랑하는 저자는 필명도 김시옷입니다. 머리 모양도 시옷이에요. 저 머리 스타일이 미용실 한 번 다녀오면 짜리몽땅한 시옷이 되는 장면도 있어 빵 터졌었답니다. 무심한 듯 보이는 소박하고 간결한 그림이 일상의 군더더기를 싹 걷어내는 느낌이어서 읽는 내내 편안했답니다.


학자금 대출은 아직 다 갚지도 못하고, 고시원만큼 좁은 원룸에서 살며 쉬지 않고 일을 했는데 돌아온 건 갑상선 악성 종양이었습니다. 회복까지 긴 시간이 걸린 탓에 이 길이 맞는지 고민하고 허우적대던 직장 생활에 일시정지 버튼을 누를 수 있었습니다.


다시 재생 버튼을 누르기 전에 든 생각은 그 길로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거였습니다. 여전히 특별한 재능도, 가진 것도 없는 보잘것없는 사람이지만 리셋 버튼은 없어도 언제든 일시정지 버튼을 누르면 된다는 생각이 자리 잡게 됩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드는 생각은 '이제 어쩌면 좋지?'입니다. 동경하던 일을 관두고 할 줄 아는 건 없고. 난 뭘 하고 싶은 걸까 싶은 생각에 빠져듭니다. 이참에 하루 종일 '나'에 대해서 생각해봤다고 해요. 행복할 때, 좋아하는 것, 하고 싶은 것……


꿈 많고 의욕 넘치던 시절엔 무조건 버티기만 할 줄 알았지만, 이제는 일기 쓰기와 운동하기를 꼬박꼬박 챙깁니다. 그림과 상관없는 삶을 살아왔지만 일상을 그려보기로 합니다.


분명 무척 좋아하는 건데도 항상 아끼기만 했던 버릇도 고쳐보려고 노력합니다. 행복, 사랑… 언젠가 그걸 느낄 여유가 생기는 그때 행복하면 되고, 사랑한다는 말을 하면 되겠지 하며 살아왔던 시간은 이제 그만.


지금까지는 행복의 순간을 미루고 미루기만 했다면 이제는 지금 아쉬움 없이 행복하자고 다짐합니다. 행복한 내일 같은 건 없을지 모른다는 뼈 때리는 통찰까지 등장합니다. 남들이 보기에 위태로워 보일지 몰라도 사실 요즘 평화롭고 행복하다고 고백합니다.


나름대로 무언가 하고 있지만 돈을 버는 것도 아니고 노는 것도 아닌 백수 생활. 열정이 없으면 시간만 흘려보내게 됩니다. 잉여력이 높은 만큼 최선을 다해 딴짓을 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이때 죄책감이 슬며시 솟아나지만 내려놓을 줄도 알아야 합니다. 진정한 백수도 자질이 필요하더라고 말합니다.





백수의 시간이 흐를수록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이 커졌다가도 내 주제에 무슨... 셀프 고문이 이어지기도 합니다. 그런데 일기가 뜻밖의 도움이 됩니다. 백수로 지내는 기간이 길어지면서 직장 생활 시절의 기억이 미화되더라고 합니다. 다닐 만은 했다 식으로 말이죠. 그때 20대에 쓴 일기에 적힌 전혀 행복하지 않은데 꾸역꾸역 하고 있는 심정을 읽고서는 정신이 퍼뜩 듭니다.


생각해보면 청소년 시절부터 사회 초년생, 삼사 십대가 되어서도 여전히 우리는 뭘 하고 싶은지 뭘 할 수 있는지 고민하면서 삽니다. 진짜 내 마음과 현실에서의 선택의 간극이 클수록 행복에서는 멀어지는 것 같아요. 돈벌이가 되는 일을 하고 살아야지 싶다가도 도무지 타협이 안 되는 시점이 닥치게 되면 번아웃 되면서 무력해지게 됩니다. 조금 더 일찍 내 마음과 만나는 시간을 가지면 어떨까요.


자신은 없어도 일단 꿈꾸고, 가능성이 없어도 일단 바라고, 결국엔 안될 거라고 의심하면서도 모른 척 용기를 내어보는 각오. 마음도 인생도 시소처럼 오르락내리락하지만, 나만의 균형을 찾아가는 노력만큼은 잊지 않는 모습을 엿볼 수 있는 <뭘 하고 싶은지 뭘 할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입니다. 자신만의 속도와 방향에 신경 쓰겠다는 주제의 에세이는 많지만, 김시옷 작가는 그 누구보다도 자기합리화와 변명이 없어서 유독 편히 읽히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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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 컬러링북 우리가 사랑했던 순정만화 시리즈
박소희 지음 / 용감한까치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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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드라마, 뮤지컬, 웹툰으로 콘텐츠 확장하며 오랜 세월 인기를 얻고 있는 만화 궁. 2002년부터 2012년까지 연재된 꽤 장수한 만화입니다. 28권이라는 대장정으로 이어질 거라곤 상상도 못했는데. 저는 드라마 나올 때까지 2000년대 초중반까지만 만화로 봤었던 것 같아요.


용감한 까치 출판사에서 이번에 출간된 '우리가 사랑했던 순정만화' 시리즈 덕분에 추억의 만화를 소환해봅니다. <궁> 외에도 <아르미안의 네 딸들>, <레드문>, <비타민> 컬러링북도 함께 나와있으니 입맛대로 골라보세요.


드라마에서 황태자 이신 역을 맡은 주지훈 배우에게 꽂힌 이후 지금까지도 애정하는 배우여서 '궁'은 특히 기억에 남는 만화입니다. 요즘 카카오페이지에서 컬러 웹툰 '궁'이 연재 중이니 궁 애독자라면 새로운 느낌으로도 만나 볼 수 있는 기회네요~





원작 만화는 흑백으로 접했기 때문에 당시엔 상상하며 읽는 맛이 있었던 것 같아요. 드라마 나왔을 때 원작의 상상력이 시각화되어 컬러풀한 색채감을 만났을 때의 감동이 꽤 컸었던 기억도 납니다. 이제 <궁 컬러링북>으로 내 손에서 탄생하는 알록달록한 세상을 만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신데렐라 스타일은 좋아하진 않지만 역사물에 가까워 읽기 시작했던 기억이 납니다. 입헌군주제라는 가상의 배경이 무척 신선했어요. 현대물이면서 전통 의복과 신분 제도가 혼합되어 조화를 이룬 게 참 매력적이었는데, 그 멋들어진 의복이 <궁 컬러링북>에서 선보입니다.


전체가 다 컬러링 페이지만 있으면 부담스러웠을 텐데, 다행히 컬러 버전의 그림이 꽤 많이 수록되어 있어요. 추억 소환이라는 목적에 걸맞게 컬러를 입힌 그림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뭉클해집니다.


설렘 가득한 장면이 새록새록 생각나기도 해요. 궁 컬러링북을 펼쳐드는 순간, 얼른 원작 만화를 다시 펼쳐봐야겠다는 조바심이 날 정도입니다. 그때 가슴 콩닥였던 그 감정을 오랜 세월이 지난 후 다시 겪으니 정말 기분이 묘해지더라고요. 궁 원작 만화의 명장면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몇몇 페이지에서는 대사까지 나오니 이 얼마나 반가운지. 55가지 스케치가 수록되어 마음껏 색칠할 수 있습니다. 사실 궁 마니아라면 망칠까 봐 색칠하는데 손이 발발 떨리는 부작용도 있을 법하지만, 나만의 색을 입혀주는 것으로 애정을 듬뿍 더해보자고요.


저는 정작 <아르미안의 네 딸들>과 함께 성장한 세대이긴 해요. 그러다 만화는 잊고 있다가 직장생활하던 시기에 우연히 <궁>을 만나고선 다시 만화의 세계에 푹 빠졌거든요. 성인이 되어서도 콩닥거리는 감정을 무한히 안겨줬던 만화여서 유독 기억에 오래 남는 것 같아요.


추억 소환하며 그 시절 감성을 되살려준 용감한 까치 출판사의 컬러링북 시리즈 정말 사랑스러워요. 고질병인 손목 때문에 컬러링북을 접은 지 꽤 되었는데, 이번엔 한두 컷만이라도 색칠해보고 싶더라고요. 모두가 왕세자빈을 꿈꾸며 읽었던 추억의 만화 '궁'. <궁 컬러링북> 덕분에 그 시절의 감성을 마주하는 행복한 시간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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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하다는 착각
마이클 샌델 지음, 함규진 옮김 / 와이즈베리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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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열풍을 불러일으켰던 마이클 샌델이 이번에는 '공정한 사회'에 대해 묻습니다. '능력'으로 사람의 가치를 판단하는 사회가 완벽하게 공정하다고 생각하는지 시대적 고민을 담은 신간 <공정하다는 착각>. 성적 기반 능력주의 한국 사회를 사는 우리들이 공감하며 읽을 수 있는 책입니다.


불평등한 사회에서 꼭대기에 오른 사람들은 자신들의 성공이 도덕적으로 정당하다고 믿고 싶어 합니다. 스스로의 재능과 노력으로 했다고 믿을 수 있어야 능력주의가 원칙이 되는 사회의 승리자가 됩니다.


공정하고 타당하게 보이는 능력주의. 하지만 오늘날은 능력주의적 폭정과 교만에 빠진 사회입니다. 명문대 간판은 능력의 지표로 둔갑했습니다. 집권 엘리트에 대한 반작용으로 포퓰리즘이 발흥해 트럼프가 집권했듯 분노, 양극화에 찌든 사회가 되었습니다. 원래 전통적 능력주의는 도덕적, 시민적 미덕이 포함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기술관료 버전의 능력주의는 능력과 도덕 판단 사이의 끈을 끊어버리게 되었습니다.


능력이란 곧 기술관료직 전문성으로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사회적 인정'이라는 말의 의미도 뒤틀어놓게 됩니다. 이러다 보니 포퓰리즘의 반격을 촉발하게 되고 민주 정치는 약화되고 있습니다. 도덕적으로 보다 건실한 담론을 찾아내고 능력주의를 진지하게 재검토할 시기라는 게 <공정하다는 착각>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입니다.


2019년 미국 명문대 입시 부정 스캔들 사례를 들여다보면 거대한 돈을 쏟아붓지만 합법적인 기여 입학제라는 뒷문과 위조와 사기가 곁들여진 불법적인 옆문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한 계기가 됩니다. 둘 다 능력보다 돈이 앞선 방식입니다. 그런데 정문도 진정한 실력주의의 결과일까요. 입시 스펙 역시 소득과 상관관계가 있음을 수치로 보여줍니다.


엄마 찬스, 아빠 찬스 문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닙니다. 소득 격차를 벌어지게 만드는 학벌주의 사회는 결국 좋은 대학 졸업장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다하게 만듭니다. 인재 선별기가 된 고등교육이 유해한 성공관을 심어주는 관문이 되었습니다.


마이클 샌델은 이런 일에 숨은 의미를 살펴보라고 합니다. 우리가 성공과 실패, 승리와 패배를 어떻게 정의하는지 말입니다. 성공하고 승리하면 능력과 재능 덕분이라고 말합니다. 실패하고 패배하면 재능이 없고 노력을 게을리했기 때문이라는 좌절감에 빠집니다.




"하면 된다"라는 말은 양날의 검이 됩니다. 자신감을 불어넣지만 모욕감을 줍니다. 자수성가, 자기충족적 존재로 여기게 하는 능력주의의 어두운 면은 우리보다 운이 덜 좋았던 사람들에 대한 배려가 힘들어진다는 데 있습니다. 내 성공이 순전히 내 덕이라면 그들의 실패도 순전히 그들 탓이라는 논리이니까요. 능력주의적 신념이 강해질수록 공동체 의식은 약화됩니다.


능력주의의 약속은 더 많은 평등의 약속이 아니라, 더 많고 더 공정한 사회적 이동 가능성의 약속인 겁니다. 소득 사다리의 단 사이 거리가 점점 벌어지는 건 관심 밖입니다. 능력에 따라 직업과 기회가 배분되더라도 불평등은 줄어들지 않는 게 사실입니다. 불평등 구조를 능력에 따라 재구축할 뿐입니다.


<공정하다는 착각>에서는 완벽하게 실현된 능력주의를 이룩하기 어려운 이유를 설명합니다. 능력주의의 이상은 이동성에 있지 평등에 있지 않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불평등을 치유하려 하지 않고, 불평등을 정당화합니다. 능력주의의 문제점을 낱낱이 분석한 후에는 능력주의적 경쟁의 대안을 찾아봅니다. 정의의 기반으로써 능력, 자격을 거부한 하이에크와 롤스의 철학을 살펴보고 능력주의의 폭정을 극복하는 방법을 생각해봅니다.


이는 성공에 대한 우리의 시각 변화를 요구하는 것과 같습니다. 정상에 오르는 사람은 스스로 잘나서 그런 것이라는 오만에 의문을 제기하라고 합니다. 이런 생각 바꾸기는 특히 능력주의적 성공 개념의 핵심인 교육과 일에 집중해야 한다고 합니다.


고등교육에 대한 대안들 중 한 가지 방법이 참 재미있습니다. 지원자 중 1차 관문으로 솎아내고 나머지는 제비뽑기 식으로 뽑는 방법이 있습니다. 웃긴 이야기라고 생각되는지요. 능력을 극대화되어야 할 이상으로 보기보다 일정 관문을 넘을 수 있는 조건으로만 보는 겁니다. 일정 관문의 조건으로만 능력을 보고, 나머지는 운이 결정합니다. 영끌 스펙에 강박적으로 완벽을 추구하는 경험에서 해방될 수 있습니다. 물론 이 경우 생길 수 있는 반론도 예상하고선 조목조목 재반론하며 짚어줍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이 대학 학위가 없어도 좋은 일자리를 구하고 가족을 부양하고 편안한 중산층의 삶을 사는 일이 가능해져야 의미 있는 일이 됩니다. 세계화 시대에는 일반 노동자들의 일이 사회적으로 존중받지 못하는 일이 되었습니다.


이런 주제는 당장 대체될 만큼의 해법이 나오지는 않습니다. '정의' 문제처럼 말이지요. 일의 존엄성 문제에 대해 논쟁하도록 촉구합니다. 사회적 연대의 끈을 다시 매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능력주의의 '하면 된다'라는 신념이 연대를 불가능하게 만든 이상, 덜 악의적이고 더 관대한 공동선을 기르는 데 초점 맞추자고 합니다.


인식의 패러다임 변화가 있어야 하는 고민임을, 공론화해 생각의 실마리를 모두가 함께 고민해야 하는 문제임을 짚어준 마이클 샌델의 <공정하다는 착각>. '정의' 열풍처럼 '능력주의'와 '공정'에 대한 열풍이 시작될 것 같습니다. 대입 논술, 면접 보러 가기 전에 꼭 읽어야 할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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