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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인간적인 건축 - 우리 세계를 짓는 제작자를 위한 안내서
토마스 헤더윅 지음, 한진이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4년 11월
평점 :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현대 도시 이미지를 떠올려보세요. 끝없이 늘어선 유리 외벽, 동일한 패턴으로 반복되는 사각형 건물들 그리고 그 속에서 느껴지는 기계적이고 무감각한 분위기. 이는 단지 미적인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고 합니다. 따분한 건축은 인간에게도 해롭다는데?!
우리를 둘러싼 건물들이 직선적이고 단조롭다면, 우리 삶도 그렇게 직선적일 수밖에 없다고 말하는 세계적인 디자이너 토마스 헤더윅은 <더 인간적인 건축>을 통해 현대 건축의 문제점을 짚어보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인간 중심적 접근 방식을 제시합니다.
따분함을 질색하는 저자답게 이 책의 편집 스타일, 내부 사진 촬영 각도 등 어느 것 하나 따분하지 않아 보는 재미가 쏠쏠한 책입니다.
건축은 감정의 거울이라고 합니다. <더 인간적인 건축>에서는 신경과학과 심리학 연구를 통해 단조로운 건축물의 영향을 짚어줍니다. 헤더윅의 주장은 단순히 건축 미학에 머물지 않고, 그 이면의 인간성을 탐구합니다.
현대의 도시는 매끈하고 반짝이는 유리로 이루어진 직선적인 건물이 즐비합니다. 사람의 시선은 아무런 감정을 불러일으키지 못하는 평평한 벽에 막히고, 그저 지나가야 하는 공간으로 느껴질 뿐입니다. 오늘날의 건축물은 사람을 위한 공간이 아닌 따분한 건축, 비인간적인 공간입니다.
그렇다면 인간적인 건축은 무엇일까요? 우리가 사랑하는 장소들에 공통적으로 흐르는 인간적인 특질을 짚어줍니다. 곡선미를 통해 생명력을 느낄 수 있는 가우디의 까사 밀라, 중세의 복잡한 구조를 자랑하는 노트르담 대성당 같은 건축물, 감탄과 영감을 선사하는 베네치아의 골목길을 예로 듭니다. 이곳들은 행인에게 미소를 짓게 하고, 상상력을 자극하며,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만듭니다.
현대 건축은 생산성과 효율성을 중시하며 등장했지만, 그 결과는 따분하고 생기 없는 건물들의 군집입니다. 삶의 질을 고려하지 않은 채 세워져, 비인간적인 모습으로 우리 주변을 채우게 됩니다.
따분함은 단조로움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신경과학과 심리학의 연구를 인용하며, 따분한 공간이 실제로 사람의 스트레스 수치를 증가시키고 사회적 고립을 강화한다고 설명합니다.
텅 빈 파사드나 아무런 특색 없는 회색의 공간은 사람들에게 무력감을 주는 반면, 생동감 있는 녹지 공간이나 독창적인 디자인은 감정을 활성화시키고 건강한 사회적 상호작용을 촉진합니다.
헤더윅은 따분한 건축이 어떻게 세계적으로 확산되었는지 설명하며, 그 배후에 자리한 규격화된 설계 방식과 자본주의 논리를 꼬집습니다. 건축이 더 이상 지역의 독특함을 반영하지 않고,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동일한 외양으로 등장하게 된 이유는 단순히 비용 절감과 효율성을 우선시한 결과라는 겁니다.
따분함의 신으로 대표되는 르 코르뷔지에에 대한 이야기가 흥미진진합니다. 20세기 초반 혁신과 근대 건축을 상징한 이름이 이 책에서는 단조로움의 주범이 됩니다.
당시 산업화와 도시화로 빠르게 변화하던 시대 정신을 반영한 실용성과 미니멀리즘의 미학을 보여준 르 코르뷔지에. 그의 철학은 혁신적이었지만, 산업화와 대량 생산이라는 현실과 결합하면서 심각한 왜곡을 낳았습니다. 전 세계 도시에서 획일적이고 무미건조한 회색빛 콘크리트 주거 환경을 양산했습니다.
결국 그의 설계 철학은 도시의 활기를 제거하고, 인간적 요소를 배제하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지적합니다. 자동차 중심의 교통 체계를 기반으로 하고 있었는데, 이는 도시 거리를 사람들 간의 상호작용보다 차량의 흐름을 위한 공간으로 변화시켰습니다. 결과적으로 도시 생활은 더욱 비인간적이고 소외된 환경으로 변해갔습니다.
헤더윅은 르 코르뷔지에의 철학이 가진 역사적 의의를 부정하지 않지만, 이제는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때라고 말합니다. 건축이 단순히 효율성을 위한 도구가 아니라, 인간의 감정을 자극하고 삶의 질을 높이는 예술적 과정이 되어야 한다고 역설합니다.
<더 인간적인 건축>에서 인간화 원칙 세 가지를 제안합니다. 인간의 정서와 감정을 고려해서 설계하는 인정(ACCEPT), 지속 가능성을 목표로 천 년 이상 남을 설계를 지향하는 건물(BUILDINGS), 건물의 가장 흥미로운 요소를 행인의 시선 높이에 배치하는 것이 핵심인 집중(CONCENTRATE)입니다.
헤더윅은 현대 건축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로 짧은 수명을 꼽습니다. 지속 가능하지 못한 설계는 결국 빠르게 철거되며, 막대한 폐기물을 발생시키고 환경을 파괴합니다. 철거는 건축계의 더러운 비밀이라며, 더 오래 사랑받을 수 있는 건축물의 필요성을 강조합니다.
헤드윅은 행인들에게 목소리를 높입니다. 건축의 최종 소비자는 결국 그 공간을 걷고 사용하는 행인이니까요. 모든 설계가 대중의 관점에서 시작되어야 함을 강조합니다.
건축이 단순히 전문가의 몫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삶에 깊은 영향을 미치는 요소임을 환기합니다. 감정을 자극하고, 상호작용을 촉진하며, 지속 가능한 공간이야말로 인간적인 건축입니다.
현대 건축의 문제점을 날카롭게 비판하는 동시에, 이를 해결하기 위한 실질적인 방법을 제안하는 <더 인간적인 건축>. 인간성과 환경을 동시에 고려한 새로운 건축의 가능성을 탐구하며, 공간과 도시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안겨줍니다. 따분한 세상에 인간성을 불어넣을 시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