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루쉰의 유물이다 - 주안전
차오리화 지음, 김민정 옮김 / 파람북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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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문화사에서 차지하는 위상이 큰 대문호 루쉰. 중국 최초의 신소설 <광인일기>와 중국 젊은 지식인 세대에 큰 영향을 미치고 중국 근대 문학의 선구자로 자리 잡게 한 대표 작품 <아Q정전>을 쓴 문학가이자 사상가, 혁명가입니다.


덕분에 루쉰 연구가 활발하게 이뤄졌지만 루쉰 연구에서 언급하지 말아야 할 금기가 있었습니다. 바로 본처 주안입니다. 구 시대의 관습을 타파하고자 했던 루쉰 본인은 중매결혼을 했고 본처가 아닌 쉬광핑과 함께 살았습니다. 위대한 루쉰을 돌본 공은 쉬광핑에게 돌아갔고, 연구가들은 주안을 배제합니다. 루쉰 전기에서 주안의 이름이 누락되었고 우리의 기억 속에서 사라집니다.​


하지만 문화대혁명 이후 루쉰 다시보기 붐이 일어나고 주안은 루쉰의 감정과 사상을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로 등극합니다. 그런데 루쉰조차 주안에 대한 언급이 거의 없었다시피해서 주안이라는 인물에 대한 미스터리만 가득합니다. <나도 루쉰의 유물이다 : 주안전>은 루쉰의 그늘 속에 방치됐던 주안의 유일한 평전입니다. 상하이 루쉰기념관 연구원으로 오랫동안 루쉰 연구를 해온 저자 차오리화가 이 여인을 수면 위로 끌어올립니다.​


왜소한 몸집, 좁고 긴 얼굴, 전족을 하고 있어 걸을 때 조금씩 비틀거린 여자 주안. 당시 노처녀인 29세에 루쉰과 결혼식을 올립니다. 그리고 37년간 루쉰의 생모를 모시며 삽니다. 명목상의 남편과는 결혼식을 치르고 나서 바로 각방을 썼고 하루에 거의 세 마디 할까 말까였다고 합니다. 


루쉰은 애초에 이 결혼이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주안은 전형적인 구 시대 여성이었습니다. 그가 결혼을 하겠다며 내건 조건은 주안이 전족을 풀고 글을 배웠으면 한다는 조건이었지만, 주안의 집안에서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결국 어머니의 강요에 못 이겨 한 애정 없는 결혼은 주안을 비운의 여성으로 만듭니다. 루쉰이 주안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는지 그가 남긴 글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어머니가 주신 선물'이었을 뿐입니다. 부양의 책임만 할 뿐 남남과도 같습니다. 재일유학생이던 루쉰은 결혼식 후 수일 내 다시 혼자 일본으로 돌아가버립니다.​


루쉰이 바란 건 대화가 통하는 아내였지만, 주안은 그 기대에 못 미친 여성이었습니다. 당시 중국의 관습은 전족에 문맹인 여성이 일반적이었습니다. 그로 인해 주안 자신의 열등감도 깊었습니다. 주안의 잘못이 아니었음에도 결국 그 고통을 주안이 오롯이 안은 채 비참하게 살게 됩니다. 루쉰의 일기에는 주안의 이름이 거의 언급되지 않을 만큼 아내를 애써 회피했고, 오히려 루쉰의 동생 일기에서 형수를 언급한 일들이 기록되어 있을 정도입니다.





<나도 루쉰의 유물이다 : 주안전>에서는 주안을 통해 중국 여성사, 윤리사를 다시 바라봅니다. 더불어 신문화운동의 선봉적인 역할을 한 루쉰의 이후 사상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가늠할 수 있습니다. 


"루쉰의 모순은 그가 한평생을 희생해 무고한 여성과 함께 살기로 했으면서도, 주안의 결점과는 타협하지 않고 마음에도 없는 "거짓된 자상함"을 나타내려고 하지 않았다는 데 있었다." - p227


1920년대의 베이징은 점차 변화합니다. 신여성들이 등장합니다. 루쉰과 교류를 했던 여성들은 베이징으로 공부하러 온 지식 여성이었고, 시대의 걸출한 인물들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주안은 더욱 시대에 뒤떨어진 것처럼 보입니다. 쉬광핑은 루쉰에게 보낸 편지에서 기탄없이 주안을 '유산'이라 부르기도 했습니다. 루쉰은 새로운 길을 보여준 쉬광핑과 함께 베이징을 떠나 상하이에서 동거를 시작합니다.


"나는 담장 밑에서 조금씩 조금씩 위로 기어오르는 달팽이처럼, 느리긴 해도 언젠가는 담장 위로 오를 수 있을 거로 생각했어. 하지만 지금은 어쩔 도리가 없구나. 더 이상 기어오를 힘이 없어. 내가 아무리 그분께 잘해도 소용이 없구나." - p233


사랑의 힘을 빌려 도망친 루쉰은 쉬광핑과 아이와 함께 따스한 가정생활을 합니다. 이때 심리적으로 여유롭고 자유로운 루쉰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한편으론 대가족의 장남이었던 루쉰은 가정에 대한 일말의 책임감은 있었습니다. 루쉰과 주안의 연결고리는 무미건조한 가계부를 통해 엿볼 수 있습니다. 그 생활비는 주안이 유일하게 위로를 느끼는 부분이었을 겁니다.​


5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루쉰의 죽음 이후에야 세상과 단절된 채 살아왔던 주안의 이름이 언론에 처음 등장하게 됩니다. 한편 쉬광핑은 이후 루쉰의 저작물을 철저히 관리하면서 루쉰의 유물을 보존할 수 있도록 만전을 기합니다. 이 당시 주안과 쉬광핑 사이에 오간 편지들이 소개되어 있어 둘의 관계를 엿볼 수 있습니다.


"나도 루쉰의 유물이라네! 나도 좀 보존해주게나!"라고 말했을 정도로 비통했던 주안의 삶. 봉건 혼인의 희생자임에도 스스로는 그 사실을 깨닫지 못했던 주안은 죽을 때까지 희망을 버리지 못했습니다.


박복한 삶을 살다 간 주안은 위대한 루쉰의 흠결로 치부되면서 역사로부터도 버림받았습니다. 루쉰 사후 60여 년이 흘러서야 나오게 된 주안 전기는 그래서 더 값집니다. 2009년 초판 발행 후 보강된 자료로 2017년 개정판을 낸 원서의 번역본으로 만나봅니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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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속햇살한줌 2023-05-28 2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009년에 출간된 도서였군요. 신채호나 루쉰이나 둘 다 마음에 안들어요. 처가 글을 모르면 본인이 조금씩 가르치면 될 일이지. 본처 한명 바꾸지 못하면서 무슨 혁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