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하다는 착각
마이클 샌델 지음, 함규진 옮김 / 와이즈베리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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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열풍을 불러일으켰던 마이클 샌델이 이번에는 '공정한 사회'에 대해 묻습니다. '능력'으로 사람의 가치를 판단하는 사회가 완벽하게 공정하다고 생각하는지 시대적 고민을 담은 신간 <공정하다는 착각>. 성적 기반 능력주의 한국 사회를 사는 우리들이 공감하며 읽을 수 있는 책입니다.


불평등한 사회에서 꼭대기에 오른 사람들은 자신들의 성공이 도덕적으로 정당하다고 믿고 싶어 합니다. 스스로의 재능과 노력으로 했다고 믿을 수 있어야 능력주의가 원칙이 되는 사회의 승리자가 됩니다.


공정하고 타당하게 보이는 능력주의. 하지만 오늘날은 능력주의적 폭정과 교만에 빠진 사회입니다. 명문대 간판은 능력의 지표로 둔갑했습니다. 집권 엘리트에 대한 반작용으로 포퓰리즘이 발흥해 트럼프가 집권했듯 분노, 양극화에 찌든 사회가 되었습니다. 원래 전통적 능력주의는 도덕적, 시민적 미덕이 포함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기술관료 버전의 능력주의는 능력과 도덕 판단 사이의 끈을 끊어버리게 되었습니다.


능력이란 곧 기술관료직 전문성으로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사회적 인정'이라는 말의 의미도 뒤틀어놓게 됩니다. 이러다 보니 포퓰리즘의 반격을 촉발하게 되고 민주 정치는 약화되고 있습니다. 도덕적으로 보다 건실한 담론을 찾아내고 능력주의를 진지하게 재검토할 시기라는 게 <공정하다는 착각>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입니다.


2019년 미국 명문대 입시 부정 스캔들 사례를 들여다보면 거대한 돈을 쏟아붓지만 합법적인 기여 입학제라는 뒷문과 위조와 사기가 곁들여진 불법적인 옆문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한 계기가 됩니다. 둘 다 능력보다 돈이 앞선 방식입니다. 그런데 정문도 진정한 실력주의의 결과일까요. 입시 스펙 역시 소득과 상관관계가 있음을 수치로 보여줍니다.


엄마 찬스, 아빠 찬스 문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닙니다. 소득 격차를 벌어지게 만드는 학벌주의 사회는 결국 좋은 대학 졸업장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다하게 만듭니다. 인재 선별기가 된 고등교육이 유해한 성공관을 심어주는 관문이 되었습니다.


마이클 샌델은 이런 일에 숨은 의미를 살펴보라고 합니다. 우리가 성공과 실패, 승리와 패배를 어떻게 정의하는지 말입니다. 성공하고 승리하면 능력과 재능 덕분이라고 말합니다. 실패하고 패배하면 재능이 없고 노력을 게을리했기 때문이라는 좌절감에 빠집니다.




"하면 된다"라는 말은 양날의 검이 됩니다. 자신감을 불어넣지만 모욕감을 줍니다. 자수성가, 자기충족적 존재로 여기게 하는 능력주의의 어두운 면은 우리보다 운이 덜 좋았던 사람들에 대한 배려가 힘들어진다는 데 있습니다. 내 성공이 순전히 내 덕이라면 그들의 실패도 순전히 그들 탓이라는 논리이니까요. 능력주의적 신념이 강해질수록 공동체 의식은 약화됩니다.


능력주의의 약속은 더 많은 평등의 약속이 아니라, 더 많고 더 공정한 사회적 이동 가능성의 약속인 겁니다. 소득 사다리의 단 사이 거리가 점점 벌어지는 건 관심 밖입니다. 능력에 따라 직업과 기회가 배분되더라도 불평등은 줄어들지 않는 게 사실입니다. 불평등 구조를 능력에 따라 재구축할 뿐입니다.


<공정하다는 착각>에서는 완벽하게 실현된 능력주의를 이룩하기 어려운 이유를 설명합니다. 능력주의의 이상은 이동성에 있지 평등에 있지 않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불평등을 치유하려 하지 않고, 불평등을 정당화합니다. 능력주의의 문제점을 낱낱이 분석한 후에는 능력주의적 경쟁의 대안을 찾아봅니다. 정의의 기반으로써 능력, 자격을 거부한 하이에크와 롤스의 철학을 살펴보고 능력주의의 폭정을 극복하는 방법을 생각해봅니다.


이는 성공에 대한 우리의 시각 변화를 요구하는 것과 같습니다. 정상에 오르는 사람은 스스로 잘나서 그런 것이라는 오만에 의문을 제기하라고 합니다. 이런 생각 바꾸기는 특히 능력주의적 성공 개념의 핵심인 교육과 일에 집중해야 한다고 합니다.


고등교육에 대한 대안들 중 한 가지 방법이 참 재미있습니다. 지원자 중 1차 관문으로 솎아내고 나머지는 제비뽑기 식으로 뽑는 방법이 있습니다. 웃긴 이야기라고 생각되는지요. 능력을 극대화되어야 할 이상으로 보기보다 일정 관문을 넘을 수 있는 조건으로만 보는 겁니다. 일정 관문의 조건으로만 능력을 보고, 나머지는 운이 결정합니다. 영끌 스펙에 강박적으로 완벽을 추구하는 경험에서 해방될 수 있습니다. 물론 이 경우 생길 수 있는 반론도 예상하고선 조목조목 재반론하며 짚어줍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이 대학 학위가 없어도 좋은 일자리를 구하고 가족을 부양하고 편안한 중산층의 삶을 사는 일이 가능해져야 의미 있는 일이 됩니다. 세계화 시대에는 일반 노동자들의 일이 사회적으로 존중받지 못하는 일이 되었습니다.


이런 주제는 당장 대체될 만큼의 해법이 나오지는 않습니다. '정의' 문제처럼 말이지요. 일의 존엄성 문제에 대해 논쟁하도록 촉구합니다. 사회적 연대의 끈을 다시 매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능력주의의 '하면 된다'라는 신념이 연대를 불가능하게 만든 이상, 덜 악의적이고 더 관대한 공동선을 기르는 데 초점 맞추자고 합니다.


인식의 패러다임 변화가 있어야 하는 고민임을, 공론화해 생각의 실마리를 모두가 함께 고민해야 하는 문제임을 짚어준 마이클 샌델의 <공정하다는 착각>. '정의' 열풍처럼 '능력주의'와 '공정'에 대한 열풍이 시작될 것 같습니다. 대입 논술, 면접 보러 가기 전에 꼭 읽어야 할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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