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의 영혼 - 진정한 부와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50가지 성찰
대니얼 크로스비 지음, 고영훈 옮김 / 알레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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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돈을 많이 버는 법보다 먼저 배워야 할 것, 대니얼 크로스비가 말하는 『부의 영혼』. 돈 때문에 어떤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지를 먼저 살펴보게 합니다.


대니얼 크로스비 저자는 인간의 심리와 금융시장이 만나는 지점을 연구해온 심리학자이자 행동금융 전문가입니다. 『결국 부자가 되는 사람들의 원칙』, 『제3의 부의 원칙』과 함께 『부의 영혼』까지 액시엄 비즈니스 북 어워드 투자 분야 수상작으로 선정됐으며, 세계 각지에서 강연하며 행동금융에 기반한 투자 원칙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의 전문 분야를 생각하면 이 책의 방향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투자에서 가장 어려운 것은 시장을 분석하는 일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다루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시장은 예측하기 어렵지만, 인간의 행동에는 반복되는 패턴이 있습니다. 오르면 사고 싶고 떨어지면 팔고 싶고, 남들이 더 좋은 차를 사면 괜히 내 차가 초라해지고, 지금의 즐거움을 위해 미래의 나에게 청구서를 넘기고 싶어집니다.


『부의 영혼』은 자산 형성 과정에서 겪는 심리적 오류, 인간관계, 건강 그리고 인생의 목적이 어떻게 우리의 재무 상태를 구성하는지 50가지 에피소드로 펼쳐냅니다. 우리가 알고 있던 자산 관리의 패러다임을 흔드는 통찰을 만나는 시간입니다.


우리는 자산 관리를 이야기할 때 수익률에 집착하곤 합니다. 하지만 저자는 투자에서 해결해야 할 본질적인 과제는 시장을 이기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재정적·삶의 자유를 얻는 데 있다고 강조합니다. 목표에 이름과 시각적 단서를 부여하는 목표 기반 투자(Goals-Based Investing, GBI)는 심리적 위안을 줄 뿐만 아니라 실질적인 자산 증식으로 연결됩니다.





돈과 꿈을 연결하면 저축과 투자가 더는 의무가 아니라 동기가 됩니다. 계좌 번호나 숫자로 적힌 자산은 변동성이라는 폭풍을 만났을 때 쉽게 뇌동매매로 이어집니다. 반면 아이의 대학 자금이나 가족과의 강변 집처럼 가치가 담긴 목표는 하락장에서도 포트폴리오를 버티게 만드는 닻이 되어줍니다. 돈 뒤에 숨은 '왜(Why)'를 찾는 과정이야말로 장기 투자를 완성하는 강력한 엔진입니다.


읽고 나면 투자에 대한 질문 자체가 달라집니다. 올해 수익률이 시장 평균보다 높았는가에서 이 투자가 내가 원하는 삶에 가까워지게 하는가로 바뀌게 됩니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그렇게 하기 참 쉽지 않습니다. 돈이 걸리는 순간 평소보다 훨씬 감정적인 판단을 내리니까요.


2008년 금융위기 당시 현금 비중이 50%까지 치솟았던 사례처럼, 시장이 출렁일 때 안전한 현금으로 도망치고 싶은 본능은 당연한 방어 기제입니다. 저자는 투자 과정에서 만나는 공포와 실수를 피하려 애쓰기보다 당연한 과정으로 포용하라고 조언합니다.


『돈의 심리학』 저자 모건 하우절은 변동성을 야구 경기 입장권에 비유했습니다. 주식시장이라는 경기장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입장료를 내야 하는데, 그게 변동성이라는 겁니다. 탁월한 투자자가 되려고 고군분투하기보다, 어리석은 결정을 내리지 않는 데 집중하는 것이 장기적인 승률을 높입니다. 약세장이라는 값진 입장료를 기꺼이 지불하면서 최악의 시나리오를 대비하는 민첩함을 갖추는 것이 부의 수명을 늘리는 길입니다.


돈과 삶을 분리해서 생각하는 실수를 범해서는 안 됩니다. 직업적 성장, 건강 관리, 배우자 선택, 타인과의 관계는 모두 직간접적으로 자산 상태와 직결됩니다. 건강 악화로 인한 소득 중단이나 지속적인 의료비 지출은 포트폴리오 전체를 위협할 수 있습니다.


질병과 재무적 스트레스가 만드는 악순환을 끊어내는 것, 그리고 삶 전체를 하나의 포트폴리오로 다루는 통합적 시각이 필요하다는 것을 짚어줍니다. 역사상 수많은 명사들이 인생의 마지막에서 후회했던 5가지 중 그 어디에도 '더 일만 할 걸', '통장 잔고를 더 늘릴 걸'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삶의 진정한 의미와 연결되지 않은 자산 추구는 결국 영혼을 메마르게 할 뿐입니다.


돈을 벌기 위해 건강을 잃고, 더 좋은 집을 사기 위해 가족과의 시간을 잃고, 남들에게 성공한 사람처럼 보이기 위해 감당할 수 없는 소비를 하고 있다면 숫자는 늘어나도 삶은 풍요로워졌다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반대로 자신의 가치관에 맞게 돈을 벌고, 필요한 곳에 쓰고, 미래를 준비하고, 시간을 확보하고, 관계를 돌본다면 큰 부자가 아니더라도 상당히 풍요로운 삶을 만들어갈 수 있습니다.





『부의 영혼』을 읽으며 반복해서 떠오른 키워드는 회피였습니다. 무엇을 잘해야 하는가보다 어떤 실수를 피해야 하는가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실패와 손실 역시 삶과 금융에서 제거할 수 없는 요소입니다. 성공적인 투자란 모든 폭락을 피해 가는 능력이 아니라, 폭락이 와도 인생이 무너지지 않는 구조를 만드는 것에 가깝습니다.


재테크를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집니다. 무엇을 사야 할까보다 왜 투자하는가를, 얼마나 벌어야 할까보다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를, 남들은 얼마나 벌었을까보다 내게 충분한 것은 무엇인가를, 어떻게 큰돈을 만들까보다 어떻게 큰 실수를 피할까를 묻게 됩니다.


이 책은 자산을 지키는 습관부터 인간관계, 건강, 삶의 가치관까지 자산 관리의 스펙트럼을 삶 전체로 확장시켜 줍니다. 돈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정작 무엇을 잃고 있었는지 반성과 함께 삶을 주도적으로 끌고 갈 지혜를 안겨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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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도칼에 베였다
김선규 지음 / 부크크(bookk)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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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날것의 언어로 삶의 바닥을 지탱하는 진짜 감정들을 벼려낸 김선규 시인의 시집 『면도칼에 베였다』. 현대 사회의 부조리와 인간관계의 내밀한 상처를 때로는 시니컬하게 때로는 따뜻한 눈으로 포착합니다.


김선규 시인은 문학고을 시 부문 등단 이후 시적 공력을 인정받아온 중견 시인입니다. 현재 문학고을 강원지부 끌림동인 지부장이자 강원문인협회, 원주문인협회 회원으로 왕성하게 활동 중입니다. 그의 삶에서 배어 나온 연륜과 경험이 시집 전반에 깊게 깔려 있습니다.


초반부의 시는 묵직합니다. 「말(馬)과 말(言) 그리고 시(詩)」는 시인의 철학이 돋보입니다. "달리다 지친 말은 / 발목이 꺾였다 / 일어나라 일어나 달리는 것이 / 말이 할 일이다 / 아아 꺾인 말은 배를 깔고 / 누운 채 일어서질 못하는구나 / 말은 이제서야 할 일을 접었다 / 오늘 그렇게 / 말(言)은 발목이 꺾이고 멈춰서야 / 글이 되고 시가 되었다"


달리는 말(馬)과 뱉어지는 말(言)의 대조를 통해, 시인은 끊임없이 앞으로만 달려가야 하는 질주를 멈춰 세웁니다. 이 책을 기획한 유영준 소설가가 소개글에서 언급했듯, 시란 거창한 미사여구가 아니라 "삶을 견뎌내고 살아온 사람이 지극히 평범한 이야기"를 솔직하게 써 내려가는 거라고 합니다. 김선규 시인의 시는 멈춤으로써 비로소 완성되는 삶의 진실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어른이 된다는 것 혹은 책임을 진다는 것의 진짜 의미를 잊고 살았던 것 같습니다. 효율성과 안락함의 늪에 빠져, 타인을 위해 무게를 견디는 일은 피하고 싶어졌습니다. 그러다 「철과 철(鐵)」 시를 읽으며 한참을 머무릅니다.


"철이 들었다는 건 / 철(鐵)을 들고 산다는 것 / 철이 든다는 건 / 무거운 철(鐵)을 두 손 들어 / 제 홀로 어둠에서 / 벌서듯 지켜내야 하는 일 / 철이 든다는 건 / 철(鐵)을 머리에 이고 / 또 다른 무게로 / 견뎌내야 하는 일..."처럼 '철이 든다'는 동음이의어를 언어적 유희로 삼아, 삶을 지탱하는 진짜 책임감이 무엇인지 직관적으로 보여줍니다.


김선규 시인은 철이 든다는 정신적 성숙의 과정을 무거운 쇠라는 중량감으로 보여줍니다. 어둠 속에서 홀로 벌서듯 지켜내고, 가슴에 쇠를 박은 채 밤을 지새우는 것처럼 말입니다. 삶의 무게를 짊어진 이들의 고단한 초상이 느껴져 슬프면서도, 한편으론 너무나도 현실적이어서 와닿았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의도치 않게 타인에게 상처를 입히고, 때로는 나 자신조차 베이곤 합니다. 표제시 「면도칼에 베였다」는 면도라는 평범한 일상에서 건져올린 자아성찰의 힘을 잘 보여줍니다.


"그동안 베어져 나간 수염처럼 / 상처받고 나를 떠났을 마음들과 / 내 날카로운 칼질로 턱을 베이듯 / 그 누군가는 피를 흘렸을 선혈 자국 / 아내에게 했던 모진 칼질들 / 자식들에게 했던 날카로운 칼질들 / 하물며 엄마 마음을 내 칼질로 / 베이게 했던 피 흘린 엄마의 심장은 / 지금쯤 아물기는 했으려나 (중략) 난 오늘 아침에도 변함없이 능숙한 / 칼질로 수염을 잘라내고 / 피 나온 상처를 거울로만 보고 있었다."라는 시어가 인상 깊었던 건 자책감을 느끼면서도 결국 아무렇지 않게 다시 수염을 잘라내는 장면 때문입니다. 타인에게 날렸던 모진 말의 칼질을 떠올리게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타인의 아픔에 얼마나 마비되어 있는지 꼬집습니다.


인생은 종종 배신을 안겨줍니다. 시 「계획」은 요즘 즐겨보는 뜬뜬 채널 속 P들의 여행 스타일이 떠올라 한참 웃었습니다. "역시 계획은 무계획이 / 최고야 / 대책은 무대책이 / 대책인 거고 / 삶도 그렇고 / 사랑도 계획 없이 와서 / 대책 없이 가는 거잖아"


위트 있게 삶의 본질을 드러냅니다. 무계획이 최고의 계획이라는 역설은 실패에 불안해하는 이들에게 뜻밖의 해방감을 선사하거든요. 컨트롤할 수 없는 삶을 그대로 인정하는 포용의 자세입니다.


상처를 피하지 않고 삶을 바라보는 법을 이야기하는 『면도칼에 베였다』. 표지를 보는 순간 날카로운 통증이 찾아오는 듯한 느낌입니다. 그런데 책장을 넘겨보면 이 시집이 말하는 베임은 상처 자체보다 상처를 통해 비로소 알아차리게 되는 삶의 감각에 가깝습니다. 살아오면서 무엇에 베이고, 무엇을 사랑했으며, 무엇을 끝내 잊지 못했는지를 떠올리게 된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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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잠들 때 - 유엔 특별보고관이 전하는 팔레스타인의 목소리와, 우리가 마주해야 할 10개의 얼굴들
프란체스카 알바네세 지음, 최보민 옮김 / 어크로스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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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국제법과 인간성의 눈으로 읽는 팔레스타인의 진실 『세상이 잠들 때』. 프란체스카 알바네세(Francesca Albanese)는 유엔 팔레스타인 점령지 특별보고관으로, 이 직책을 맡은 최초의 여성입니다.


지난 10여 년간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와 유엔 팔레스타인 난민구호기구 등에서 활동하며 참혹한 현장의 인권 침해를 기록해 왔습니다. 2022년 특별보고관으로 임명된 이래, 이스라엘이 가자 지구에서 벌이는 집단학살과 점령 체제의 불법성을 국제법적 근거에 기반해 고발해 왔습니다. 이 공로로 스테파노 키아리니 국제상, 더 라이츠 포럼의 드리스 반 아그트 상, 스페인 정부의 시민공로훈장을 받았습니다.


『세상이 잠들 때』는 10명의 삶으로 재구성한 팔레스타인 이야기입니다. 뉴스 헤드라인을 장식하는 것은 사상자 수 같은 수치입니다. 하지만 저자는 통계의 그늘에 가려진 개별 인간의 존재감을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여섯 살 어린이 힌드 라잡의 비극으로 시작합니다. 차 안에 갇혀 구조를 기다리던 어린아이의 위태로운 목소리는, 그저 전쟁의 피해라는 말로 뭉뚱그릴 수 없는 참상을 적나라하게 드러냅니다. 12일 후, 도와달라고 3시간을 통화했던 그 차 안에서 힌드가 발견되었습니다. 300발이 넘는 총알에 맞아 만신창이가 되어 있는 상태로 말입니다.


이런 비극은 단발성 사건이 아니라 점령 체제 아래서 반복되는 구조적 폭력입니다. 저자는 또 다른 아이를 통해 우리가 외면해 온 현실의 무게를 일깨웁니다. 열네 살의 와디아는 "죽음을 두려워한다고 그게 죽음을 막아주는 건 아니에요. 오히려 살아가는 걸 방해할 뿐이죠."라고 말합니다. 살아가는 것 자체가 두려움과의 투쟁이 되어버린 아이들의 목소리는, 우리에게 국제 사회가 과연 어떠한 책임을 다하고 있는지 묻게 만듭니다.


『세상이 잠들 때』는 팔레스타인 문제를 오랫동안 이어져 온 감정적 갈등이나 종교적 분쟁으로만 바라보는 시각에서 벗어납니다. 점령군이 제도를 통해 어떻게 한 민족의 권리와 존재를 옭아매고 있는지를 짚어냅니다.


특히 어린아이들에게조차 엄격하게 적용되는 군사 재판 체제는 점령의 가혹함을 잘 보여주는 지점입니다. 돌을 던졌다는 혐의를 듣고는 바로 형을 2년 징역, 3년 징역을 선고합니다. 팔레스타인인에게는 돌을 던진 행위에 대한 형량이 최대 10년(상해를 입힐 의도가 있었다면 20년)이라고 합니다.


저자는 점령을 인도주의적으로 관리하려 했던 과거 국제기구들의 한계를 지적하며, 점령 자체가 자결권을 침해하는 불법 행위임을 일깨웁니다. 더불어 누가 진정한 토착민인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며 역사적 맥락을 되짚습니다.


『세상이 잠들 때』는 팔레스타인 상황을 강대국들의 이해관계와 방관 속에 방치된 불평등한 구도로 파악합니다. 국제 사회가 외면하는 사이, 현장의 의료진과 민간인들은 최소한의 생존조차 위협받는 극단적 상황에 내몰립니다. 외과의사 가산 아부 시타 박사의 증언은 가자 지구의 참상을 보여줍니다.


이스라엘 폭격 피해자들을 수술했던 알시파 병원과 알아흘리 병원에 머무는 동안, 그는 하루에 최대 12건의 수술을 집도했고, 그중 상당수는 어린이 환자였습니다. 분쟁 초기 몇 달 동안 가자에서 약 900명의 어린이가 사지 절단 수술을 받았다고 합니다. 성인이 될 때까지 최소 열 번 이상은 더 수술을 받아야 하는데도 그럴 여력은 없습니다.


파괴와 폭력 속에서도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기록하고, 그리며, 이야기하는 행위를 통해 존엄성을 지켜냅니다. 예술가 말락 마타르의 에피소드는 예술이 생존과 저항의 방식임을 보여줍니다. 기록하고 증언하는 행위는 억압에 맞서는 강력한 도구가 됩니다. 저자는 가자 지구 주민들이 글을 쓰는 행위에 담긴 도덕적 책임을 강조하기도 합니다.





저자는 타인의 인간성을 인정하지 못하는 불의에 맞서기 위해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태도로 마음의 탈식민지화(Decolonize your mind)를 제시합니다. 다행히도 팔레스타인인 인권을 위해 적극적으로 싸우는 이스라엘 시민과 디아스포라 유대인들도 있습니다. 우리 마음속에 존재하는 편견과 방관의 벽을 허물고 보편적 인간성을 회복하자는 호소를 보냅니다.


팔레스타인 사람의 권리를 이야기한다고 해서 이스라엘 시민의 안전을 부정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이스라엘 시민의 안전을 걱정한다고 해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권리를 외면해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제대로 된 인권의 언어라면 양쪽 모두에게 같은 질문을 던져야 한다는 걸 짚어줍니다. 오늘 팔레스타인에서 국제법이 무시되는 것을 묵인한다면, 내일 다른 곳에서 국제법이 무너질 때 그것을 비판할 근거 역시 약해집니다.


세계가 눈감은 진실을 깨우는 가장 뜨거운 기록 『세상이 잠들 때』. 팔레스타인 문제를 이미 너무 많은 뉴스가 쏟아진 탓에 우리가 놓쳐버린 사람의 얼굴을 다시 바라보게 하는 책입니다. 보편적 양심을 향한 직언, 우리가 마주해야 할 우리 시대의 질문들을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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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나의 숲으로
아리아나 스퀼로니 지음, 라켈 카탈리나 그림, 이다손 옮김 / 모스그린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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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우리는 보통 인생을 시간으로 이야기합니다. 몇 살에 무엇을 했고, 언제 무엇을 했고 식으로 말이죠. 그런데 『다시, 나의 숲으로』는 슬쩍 비틀어버립니다. 시간이 아니라 크기로 인생을 그려냈습니다.


2025년 제18회 콤포스텔라 국제 그림책상을 거머쥔 이 그림책은 아리아나 스퀼로니와 라켈 카탈리나가 함께 만들었습니다. 나탈리아라는 아흔 살 여성의 인생 여정을 담백하게 보여줍니다.


나탈리아는 숲가의 작은 집에서 태어나 그 집이 비좁게 느껴질 만큼 자랐다가, 넓은 도시로 나아갑니다. 수많은 사람 사이에서 배우고, 여행하고, 캔버스 위에 자신의 세상을 그려 넣으며 어른이 되어갑니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몸이 늙어가고 마음의 무게가 무거워질 때, 도시는 더 이상 안식처가 아닌 거대한 압박으로 다가옵니다. 이 장면을 작가는 실제로 몸이 작아지는 것으로 그려냅니다. 처음엔 그저 상상력 놀이처럼 다가왔는데 책장을 넘길수록 깨닫게 됩니다. 노년이라는 걸 몸의 언어로 번역해낸 그림책입니다.


청년기의 우리는 세계를 담기 위해 스스로를 확장해야 하지만, 생의 후반부에 이르면 도리어 그 확장이 몸을 짓눌러옵니다. 계단을 오르는 작은 다리, 장바구니를 든 굽은 등, 빗속에서 우산을 들고 서 있는 나탈리아의 작은 실체는 도시라는 거대한 배경과 대비되며 짠한 울림을 줍니다. 삶이 지쳐갈 때 필요한 것은 더 큰 성취가 아니라, 나를 온전히 보듬어줄 수 있는 본래의 크기로 돌아가는 용기입니다.


아흔 살이 된 나탈리아는 도시를 떠나 숲가의 작은 집으로 돌아갑니다. 흔히 노년을 쇠퇴나 결핍으로 바라봅니다. 그런데 나탈리아의 작아짐은 퇴보가 아니라,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축소입니다. 세상 속에서 부풀어 올랐던 자아의 껍질을 벗어던지고, 마침내 나라는 존재의 가장 순수한 알맹이만 남겨두는 과정인 셈입니다.





어린 시절에는 좁고 답답했던 집이 나중에는 가장 편안한 장소가 되기도 합니다. 나탈리아가 귀환한 집은 나를 가장 나답게 만들어주는 크기의 세계입니다. 나는 지금 어디에서 가장 나다운가를 생각하게 만듭니다.


나탈리아는 끝까지 자신의 삶을 선택하는 사람입니다. 도시로 떠난 것도 자신이었고, 그림을 그린 것도 자신이었고, 다시 숲으로 돌아간 것도 자신입니다. 그리고 숲으로 돌아온 뒤에도 이야기는 끝나지 않습니다.


나탈리아가 너무 작아져 이웃조차 그녀의 존재를 잊었을 즈음, 그 작아진 존재감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 거대한 영감을 준다는 사실입니다. 빈 집인 줄 알고 들어온 젊은 화가와의 이야기가 이어졌기에 이 그림책이 주는 여운이 더 깊어졌습니다.


이 책을 읽으며 가장 오랫동안 시선이 머물고 가슴이 먹먹해졌던 순간은 뜻밖에도 책의 본문이 시작되기 전과 끝난 후 만나는 초록 면지였습니다. "작아진 나의 엄마에게", "수고 많았어요. 엄마."라는 이 짧은 한 줄의 문장이 주는 파장이 어마어마했습니다.





평생 산처럼 커 보였지만 어느덧 내 품에 안길 만큼 작아진 엄마의 뒷모습이 겹쳐졌습니다. 나를 위해 세상의 풍파를 막아주고 언제나 내 편이었던 거대했던 존재가, 세월의 흐름 속에서 조금씩 작아지고 있어 먹먹함이 밀려왔습니다.


더욱이 저도 근래 앓고 난 뒤라 이 그림책이 더욱 남다르게 다가왔습니다. 아픔을 겪고 나니 나 역시 언젠가 내 아이 앞에서 세월을 입고 조금씩 작아질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훗날 내 아이가 작아진 나를 바라볼 그 순간을 상상하면 참 마음이 미묘해집니다. 부모를 돌본다는 건 결국 작아지는 존재를 마주하는 일이고, 언젠가는 저 자신도 누군가에게 그런 존재가 될 거라는걸요. 


아이들에게는 성장과 돌봄에 대한 다정한 눈높이의 이야기를 선물합니다. 매일 커다란 어른들을 올려다보며 살아가는 아이들에게 작아진 나탈리아 할머니는 마치 자신과 비슷한 크기를 가진 친근한 친구처럼 느껴지고, 자라면서 집과 옷이 비좁아지는 자신의 경험을 통해 공간과 신체의 변화를 직관적으로 이해하게 됩니다.


늘 자신을 돌봐주던 어른도 작아질 수 있음을 보며 약한 존재를 포근히 안아주고 싶어 하는 다정한 마음, 신나고 넓은 세상을 경험한 뒤 결국 나를 온전히 받아주는 품으로 돌아오는 안식의 감각을 자연스럽게 가슴에 담게 됩니다.


장황한 서사보다 정적인 이미지로 감정을 전달하는 『다시, 나의 숲으로』. 작아짐은 슬픔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생을 온전히 완주한 이에게 주어지는 훈장이자 숲으로 돌아가는 거룩한 과정임을 깨닫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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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오스의 가장자리 - 부서진 유년의 파편에서 출현한 신경과학자 이야기
데이비드 수실로 지음, 이충호 옮김 / 북하우스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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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어린 시절이 불우했기 때문에, 재능이 있었기 때문에, 열심히 노력했기 때문에, 좋은 사람을 만났기 때문에. 누군가 성공하면 그 사람의 인생을 몇 가지 키워드로 정리하고 싶어집니다. 그래야 이야기가 이해하기 쉬워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정말 한 인간은 그렇게 설명될 수 있을까요?


데이비드 수실로(David Sussillo)는 인공지능과 뇌과학의 접점에서 주목받는 연구자입니다. 구글 브레인과 메타 리얼리티 랩스의 수석과학자로 일했고, 현재 스탠퍼드대학교 겸임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이 이력 뒤에는 어두운 유년의 그림자가 짙게 깔려 있습니다. 약물 중독에 빠진 부모 아래에서 방임과 폭력을 겪었고, 보육원과 기숙학교 등 여러 시설을 전전하며 자랐습니다.


『카오스의 가장자리』는 절망적인 환경에 처했던 소년이 어떻게 살아남아 세계적인 과학자로 도약했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얻은 과학적 통찰이 어떻게 한 인간의 삶을 구원하고 재구성했는지를 풀어낸 회고록입니다.


저자의 어린 시절은 무질서(1부)와 카오스(2부) 그 자체였습니다. 부모의 약물 중독과 방임, 그리고 끝없는 가난은 어린 소년에게 세계가 언제든 무너져 내릴 수 있다는 극심한 불안을 안겨주었습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혼돈의 한가운데서 그를 일깨운 것은 낡은 보육원 컴퓨터 화면에 찍힌 몇 줄의 코드였습니다.





코딩은 자신이 직접 규칙을 부여하고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는 최초의 질서 영역이었습니다. 컴퓨터라는 기계는 부모처럼 예고 없이 그를 버리지 않았고, 자신이 입력한 기호 그대로 정직하게 답을 내놓았습니다. 가난과 상처로 얼룩진 아이의 존재감이 무한 루프 문장을 통해 증폭되었던 경험은, 그가 훗날 기계와 인간의 지능을 연구하는 계산신경과학자로 발을 내딛게 만든 시발점이 되었습니다.


'질서(3부)'에 접어들며 저자는 체계적인 교육을 받고 학문의 길로 진입합니다. 7학년 시절 접한 콘웨이의 생명 게임 프로그래밍은 그에게 커다란 지적 충격을 안겨주었습니다. 2차원 격자판 위에서 세포가 살고 죽는 몇 가지 규칙만으로 우주선이나 진동자 같은 예측 불가능하고 복잡한 패턴이 피어나는 현상을 목도한 것입니다.


이것은 훗날 그가 평생을 바쳐 연구하게 될 창발(Emergence)의 직관적 실체였습니다. 신경세포 하나만으로 인간의 기억이나 사랑, 불안, 의식을 설명할 수도 없습니다. 수많은 신경세포가 연결되고 신호를 주고받는 과정에서 훨씬 복잡한 현상이 나타납니다.


저자는 뇌세포 하나하나를 관찰하는 것을 넘어, 이것들이 한데 얽혀 만들어내는 마음의 거대한 숲을 바라봐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개별 요소의 단순한 합을 뛰어넘는 고차원적 패턴, 즉 창발적 현상으로서 마음을 바라볼 때 비로소 인간 존재의 신비에 다가설 수 있음을 들려줍니다.


보통 성공한 사람의 회고록에는 어느 정도의 정리 과정이 들어갑니다. 어린 시절의 고난은 훗날의 성공을 위한 자양분이 되고, 실패는 배움이 되며, 우연한 만남은 결정적 기회가 됩니다. 책을 덮고 나면 "그래서 이 사람이 이렇게 성장했구나"라는 인과관계가 깔끔하게 완성됩니다. 하지만 수실로의 이야기는 반대 방향으로 움직입니다.





세계적인 연구자가 되었다고 해서 과거의 트라우마가 의미 있는 경험으로 자동 변환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카오스의 가장자리(4부)'에서 그는 예고 없이 밀려드는 극심한 공황발작과 대면하며 다시 한번 삶의 휘청거림을 경험합니다.


저자는 신경과학적 지식이 풍부하다고 해서 삶의 공포나 정신적 통증에서 완전히 면제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고백합니다. 여기서 그가 던지는 질문은 "어떻게 역경을 극복했는가?"가 아니라 "왜 여러 조건이 서로 얽힌 결과로 지금의 내가 나타났는가?"에 가깝습니다. 자신을 짓누르는 공포와 분노는 개인의 의지력 부족 때문이 아니라, 과거의 환경과 유전적 요소, 뇌의 복잡한 신경망이 상호작용하며 일시적으로 만들어낸 파괴적 패턴이었습니다.


그는 이 절망의 순간에 삶을 포기하는 대신, 치료사와의 상담과 달리기 그리고 규칙적인 루틴을 통해 신경계의 신호들을 조금씩 재조정해 나갔습니다. 무질서와 완전한 질서 사이, 바로 '카오스의 가장자리'에서 균형을 잡는 법을 터득한 것입니다.


마지막 '창발(5부)'에 이르러 저자는 같은 비극적인 유년기를 공유했음에도 완전히 다른 길을 걸어간 누나 에스터의 죽음을 마주합니다. 똑같이 파괴적인 환경에서 자랐지만, 누나는 트라우마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 채 생을 마감했고 저자는 과학자로 살아남았습니다. 저자는 이러한 차이를 흔한 신화인 개인의 뛰어난 재능이나 강인한 노력 덕분으로 포장하지 않습니다.


인간의 삶은 원인과 결과가 명확히 일치하는 직선 형태의 방정식이 아닙니다. 부모의 중독, 시설에서의 경험, 우연히 만난 멘토, 컴퓨터와의 만남, 유전적 소질, 그리고 수많은 순간의 선택들이 거대한 인공신경망처럼 복잡하게 얽혀 작용한 끝에 출현한 결과물이 바로 현재의 '나'라는 깨달음입니다.


인간의 마음은 그렇게 깔끔하게 작동하지 않습니다. 어떤 기억은 평생 남고, 어떤 관계는 흔적을 남기며, 어떤 상처는 예상치 못한 순간에 다시 모습을 드러냅니다. 그럼에도 사람은 살아가면서 새로운 관계를 만들고, 새로운 관심을 발견하고, 새로운 자신을 만들어갑니다. 그 과정이 창발입니다.


『카오스의 가장자리』는 역경을 극복한 한 과학자의 감동적인 성공 스토리로 끝나지 않습니다. 저자는 자신의 삶을 하나의 연구 대상으로 삼아, 과학적 통찰이 어떻게 삶의 비극을 다루는 치유의 도구가 될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계산신경과학의 핵심 개념인 창발과 인공신경망을 한 학자의 생생한 삶의 서사와 결합해 쉽고 깊이 있게 이해하게 됩니다.


상처받은 과거나 불행한 환경은 결코 나라는 존재의 전모를 규정하지 못합니다. 수많은 신경세포가 충돌하고 연결되며 생각이라는 새로운 차원을 만들어내듯, 우리 삶 역시 무수한 상처와 방황, 뜻밖의 만남이 상호작용하는 과정에서 언제든 새로운 가능성으로 출현할 수 있습니다. 과거의 파편에 갇혀 한계를 느끼고 있을 때, 『카오스의 가장자리』는 내 안에 잠들어 있는 예측 불가능한 가능성과 새로운 출현을 다정하게 일깨워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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