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외주 - 생각하지 않는 인간의 출현
홍진기 지음 / 어크로스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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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검색창과 AI가 던져주는 정답에 고개를 끄덕이며, 우리는 스스로 사유하는 법을 잊어가고 있습니다. 오타 하나 없이 완벽하게 정렬된 문단, 물 흐르듯 매끄러운 인과관계, 비문(非文)조차 찾아볼 수 없는 논리 구조. 하지만 글을 읽으면 읽을수록 기묘한 이질감이 밀려옵니다. 분명 흠잡을 데 없는 문장인데, 그 텍스트 어디에서도 글을 쓴 사람의 냄새가 나지 않는 현상 말입니다.


연세대학교 홍진기 교수가 마주한 풍경이 그러했습니다. 서울대 공학박사, MIT 박사후연구원, 그리고 현재 항노화 라이프케어 기업 바른바이오의 CEO이기도 한 그가 내놓은 책 『사고외주』는 강의실의 이질감에서 출발합니다. 홍진기 교수가 포착한 AI 시대의 가장 조용하고 위험한 병리 현상인 사고외주(思考外注)의 실체를 만나보세요.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에서는 기이한 역설이 발생하기 시작했습니다. 겉보기에는 놀라운 수준의 유능함이 가득하지만, 정작 알맹이를 들여다보면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잃어버린 '똑똑한 무능함'이 지배하고 있는 것입니다.


AI 도구를 활용해 단 몇 초 만에 그럴싸한 기획서와 보고서를 뽑아내는 이들은 겉보기엔 완벽한 전문가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왜 이 전제를 선택했는가?", "이 결론이 도출되기까지 어떤 대안들을 검토했는가?"라고 송곳 질문을 던지면 여지없이 밑천이 드러납니다. 결론에 이르는 지난한 논리의 계단을 단 한 번도 제 발로 걸어가 본 적이 없는 사람처럼 당황하기 일쑤입니다.





저자는 문장은 사고의 흔적이며, 문체는 살아온 경험이 남긴 지문이라고 말합니다. 아무리 문장이 유려해도 고민한 흔적이 사라진 순간, 글은 정보만 남을 뿐 사람은 사라집니다.


우리가 AI에게 문장 작성을 맡기는 행위가 사실상 세상을 해석하는 나만의 방식을 통째로 넘겨주는 대리전이라는 것을 짚어줍니다. 실력이라는 것은 대개 계단을 밟듯 차례차례 올라오거나 굴곡을 겪으며 자라나기 마련인데, AI가 제공하는 도약대는 인간이 겪어야 할 필수적인 시행착오를 생략하게 만듭니다.


저자는 이를 고통스럽고도 귀중한 성장의 골든타임을 박탈당하는 과정이라고 경고합니다. 문장을 고치고 지우기를 반복하며 밤을 새우던 그 고독하고 비효율적인 시간이야말로, 뇌의 전전두엽을 자극하고 견고한 신경망을 다지는 유일한 통로라는 뜻입니다. AI를 효율적인 비서로만 대우하다가는, 우리 스스로가 비서의 지시 없이는 아무것도 결정하지 못하는 무력한 존재로 전락할 뿐입니다.


고급 코딩 능력이 없어도, 유려한 글재주가 없어도 누구나 프롬프트 창만 두드리면 상위 10%의 결과물을 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홍진기 교수의 공학적 시선은 이 장밋빛 환상을 깨부웁니다. 누구나 비슷한 도구와 검색 엔진을 공유하는 동기화된 세계처럼 보이지만, AI는 평등의 도구가 아니라 미세한 차이를 천문학적 격차로 벌려놓는 무자비한 증폭기에 가깝다고 말입니다.


AI라는 도구는 이미 모든 인간에게 기본값이 되었습니다. 이 동기화된 세계에서 차이를 만드는 결정적 변수는 역설적이게도 AI를 들고 있는 인간 본연의 역량입니다. AI가 내놓은 답변의 허점을 간파하고, 전제를 비틀어 높은 수준의 사고 과정을 직접 통과한 사람은 결론을 주도하고 해석하는 위치로 이동합니다. 반면 AI가 준 정답의 모양에 안주해 빠르게 받아 적기만 한 사람은 사유의 주도권을 완전히 박탈당한 채 결과를 전달받는 위치에 영원히 머물게 됩니다.


데이터가 풍부하고 목표가 명확한 최적화의 영역에서 AI는 인간을 아득히 초월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인생과 비즈니스는 결코 그렇게 획일적인 최적화 공식으로 굴러가지 않습니다. 중요한 순간마다 우리는 늘 모호함과 마주하며, 선택의 결과는 수년 혹은 수십 년 뒤에야 서서히 모습을 드러냅니다.


AI는 계산을 수행하지만 선택의 결과를 감당하지는 않습니다. 효율보다 정의와 책임이 더 중요한 가치 충돌의 순간에 AI는 결론을 내릴 수 없습니다. 이런 딜레마의 한복판에서 인간의 주도권을 지키기 위해 필요한 능력이 바로 네거티브 케이퍼빌리티(Negative Capability 부정적 수용 능력)입니다.


불확실성과 의심의 모호한 상태를 잠시 유지하며 의도적으로 여지를 남겨두는 힘입니다. 이 멈춤의 시간 동안 인간은 비로소 사유의 삼각축을 가동합니다. 나는 누구인가(정체성), 우리는 무엇을 진정으로 원하는가(욕망), 이 선택의 무게를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윤리).


AI 시대에 인간이 인간으로 남을 수 있는 자리는, 완벽한 계산 능력이 아니라 불완전한 상태 속에서도 끝내 책임을 지겠다고 선언하는 그 용기에 있다는 것을 일깨워줍니다.


결코 외주 줄 수 없는 대체 불가능한 나는 어떻게 구축해야 할까요? 홍진기 교수가 제시하는 첫 번째 무기는 몸으로 축적한 경험입니다. 그는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매일같이 옥수수밭에 나가 관찰을 반복하며 기존의 유전학설을 뒤집고 노벨 생리의학상을 거머쥔 바버라 매클린톡의 사례를 소개합니다.


방대한 데이터를 학습한 모델은 옥수수 유전자에 대한 수만 장의 보고서를 순식간에 작성할 수 있지만, 뜨거운 뙤약볕 아래에서 흙먼지를 마시며 직접 식물을 관찰할 때 마주하는 그 미묘한 현장의 예외성과 이질적 감각은 결코 학습할 수 없습니다.


질문은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태어나지 않으며, 모든 것을 완벽하게 아는 상태에서도 태어나지 않습니다. 오직 내가 아는 것과 알지 못하는 것의 위태로운 경계선에서만 위대한 질문이 잉태됩니다.





좋은 질문은 데이터의 바다를 부지런히 유영하며 직접 한계에 부딪혀본 인간만이 던질 수 있습니다. AI가 정답을 내놓는 속도가 빛보다 빨라질수록, 우리가 도대체 무엇을 물어야 하는가를 규정하는 인간의 시야와 경험의 깊이는 대체 불가능한 자산이 될 겁니다.


저자는 우리가 효율성이라는 미명 하에 잃어버리고 있는 진짜 소중한 가치를 짚어줍니다. "우리는 AI에게 번거로운 ‘일’을 맡기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내 생각이 자라나야 할 가장 고통스럽고도 귀중한 구간을 조금씩 밖으로 넘기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자료를 찾는 수고, 상충하는 정보를 비교하는 지루함, 숫자를 직접 계산하며 느껴보는 불편함, 문장을 수차례 고치며 논리를 다듬는 고독한 시간. 겉으로 보면 비효율적이고 버려지는 시간 같지만 인간을 자라게 하는 거의 모든 것은 대개 이런 비효율 속에서 만들어집니다."라고요.


매끄럽고 완벽하지만 영혼이 없는 AI의 문장 뒤에 숨어 편안하게 '똑똑한 무능함'을 즐길 것인가, 아니면 조금은 투박하고 더딜지라도 내 손으로 직접 자료를 의심하고 검증하며 나만의 단단한 사고 회로를 구축할 것인가.


내가 내놓은 결과물에 자신의 이름을 떳떳하게 붙이고 책임질 수 있는가를 묻는 『사고외주』. 이 질문에 답할 수 없다면, 우리는 그저 타인의 논리를 배달하는 수행자에 불과합니다.


생각을 맡기는 습관이 얼마나 위험한지 일깨워줍니다. 경험하고, 질문하고, 논리를 세우며, 자신의 이름으로 책임지는 능력. 그것이 앞으로도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핵심 경쟁력이라는 것을 알려줍니다. 빠른 결과에 익숙해진 시대일수록 생각하는 과정의 가치를 다시 돌아보게 하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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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 성당 - 빛, 인간을 만나다
강한수 지음 / 파람북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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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건축은 시대를 가장 정직하게 기록하는 예술입니다. 문학은 해석될 수 있고, 회화는 상징으로 읽힐 수 있지만, 거대한 건축물은 그 시대 사람들이 무엇을 믿었고 무엇을 꿈꾸었는지를 몸집으로 보여줍니다.


그래서 성당은 언제나 종교시설 이상의 의미를 가집니다. 강한수 신부의 『르네상스 성당』은 거대한 돔의 구조를 설명하면서도 결국 인간을 이야기하고, 기둥의 비례를 설명하면서도 그 안을 걷는 사람의 감정을 먼저 생각합니다.


건축가 출신으로 국내외 건설 현장을 경험한 뒤 사제가 되었고, 로마에서 신학과 건축사를 함께 연구한 강한수 신부. 제도판 위에서 먹줄을 긋던 손으로 성무일도를 집전하는 사람입니다.


『로마네스크 성당』, 『고딕 성당』에 이어 완성된 중세 유럽 성당 건축 3부작의 마지막 권답게, 이번 책은 약 300년에 걸친 르네상스의 흐름을 피렌체에서 로마, 베네치아를 거쳐 알프스 너머 유럽까지 따라갑니다.


우리는 르네상스를 인간 중심 시대라고 기억합니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나면 조금 다른 표현이 더 적절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르네상스는 인간이 신보다 높아진 시대가 아니라, 인간이 자신의 이성과 지성을 통해 신이 만든 질서를 이해할 수 있다고 믿기 시작한 시대였습니다.


그래서 르네상스 성당은 이전 시대와 전혀 다른 분위기를 가집니다. 거대한 돌벽으로 압도하기보다 수학적 비례와 조화를 통해 안정감을 만들어 냅니다. 건축은 감정을 흔드는 장치가 아니라 논리로 아름다움을 증명하는 예술이 됩니다.





저자는 이런 변화를 실제 성당의 평면과 돔, 기둥의 배열을 통해 왜 르네상스 사람들이 원을 좋아했는지, 왜 중앙집중형 공간을 꿈꾸었는지를 자연스럽게 이해하도록 안내합니다.


14세기 초 피렌체에서 단테와 조토가 나눈 우정부터 들려줍니다. 단테는 라틴어가 아닌 피렌체 방언으로 『신곡』을 써서 문학을 귀족의 서재에서 거리로 끌어냈고, 조토는 평면적이던 성화에 처음으로 입체와 표정을 불어넣었습니다. 두 사람은 각자의 영역에서 기존 규칙의 정당성을 의심하고, 인간의 현실을 직시하기 시작했습니다.


르네상스 건축의 첫 번째 주인공은 필리포 브루넬레스키입니다. 피렌체 세례당 청동문 공모전에서 공동 당선 판정을 거부하고 홀로 로마로 떠난 그는, 판테온과 콜로세움을 비롯한 고대 건축물을 직접 측량하며 비례 체계를 연구했습니다. 당시로서는 어디에도 쓸 곳이 없어 보이는 작업이었지만, 그 침묵의 축적이 수십 년 후 인류 건축사의 걸작인 피렌체 대성당의 팔각 드럼 위에 돔을 올리는 방법으로 귀환합니다.


그 귀환의 장면도 인상적입니다. 피렌체 설계위원회 앞에 나타난 브루넬레스키는 주머니에서 달걀 하나를 꺼내 위원들에게 세워보라 했습니다. 아무도 나서지 못하자, 그는 달걀의 밑을 조심스레 깨어 탁자에 세웠습니다.


저자는 이 장면에 대해 "달걀 세우기를 통해 브루넬레스키는 자신의 설계를 명하기에 앞서 그 설계가 어떤 가치를 지니는지 알리고 싶었던 것 같다. 그만큼 그의 돔 설계는 독창적인 것이었고, 그래서 그 누구에게도 도용됨 없이 온전히 본인의 것으로 인정받아야 했기 때문이다."라고 말합니다.


이어서 로마로 갑니다. 브라만테, 라파엘로, 미켈란젤로, 상갈로 가문의 건축가들이 수십 년에 걸쳐 손을 바꿔가며 성 베드로 대성당을 설계하는 이야기는 건축사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장면들을 만들어냈습니다.


브라만테가 구상한 평면은 완벽한 중앙집중형 그릭 크로스였습니다. 동서남북 어느 방향에서 바라보아도 동일한 외형을 갖는, 인간의 이성이 상상할 수 있는 가장 균형 잡힌 건축이었습니다. 그러나 건축이란 설계도가 아니라 시간 속에 세워지는 것이지요. 교황이 바뀌고, 건축가가 죽고, 종교개혁이 터지고, 로마가 약탈당하는 동안 브라만테의 완벽한 계획은 조금씩 변형되고 타협하며 현재의 모습에 가까워졌다고 합니다.


이 과정에서 가장 인상적인 인물은 미켈란젤로입니다. 칠순을 넘겨 성 베드로 대성당 총감독직을 떠맡은 그는 이전 건축가들이 훼손해 놓은 구조를 정리하고, 고딕의 구조 원리를 르네상스의 언어로 재해석해 뾰족한 리브 돔을 설계했습니다.


브라만테의 매끈한 반구형 돔과 미켈란젤로의 역동적인 뾰족 돔을 나란히 놓고 저자는 묻습니다. 이 두 돔의 차이는 단순한 취향의 차이인가, 아니면 50년이라는 시간의 차이인가? 대답은 후자에 가깝습니다. 르네상스의 확신이 조금씩 균열을 일으키는 시간, 그 변화가 돔의 외형으로 나타난 겁니다.


라파엘로도 건축가로서 새롭게 조명됩니다. 회화의 거장으로만 알려진 그가 어떻게 성 베드로 대성당 설계에 관여했는지, 그리고 키지 경당이라는 작은 공간에서 회화와 건축과 조각을 어떻게 통합했는지를 보여줍니다. 한 공간에서 예술의 모든 장르가 하나의 신학적 메시지를 향해 수렴하는 경험, 그것이 르네상스 성당이 궁극적으로 지향한 것이었습니다.





이 책의 마지막은 알프스를 넘습니다. 프랑스, 영국, 독일이 이탈리아의 르네상스를 받아들이는 방식은 각기 달랐습니다. 세 나라 모두 이탈리아의 고전주의를 통째로 이식하지 않았습니다. 각자의 고딕 전통과 종교개혁의 맥락 속에서 필요한 것을 선택적으로 흡수하며 자국의 양식으로 변형했습니다.


파리의 생테티엔 뒤 몽 성당이 고딕 구조 위에 르네상스 파사드를 얹은 것은 어색한 혼용이 아니라, 그 시대 프랑스가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솔직한 건축이었습니다. 이런 관점이 중요하다는 걸 짚어줍니다. 외래 양식을 받아들이는 일은 항상 번역의 문제이고, 번역에는 언제나 번역자의 맥락이 개입한다는 것을요.


종교적 경외를 넘어 비례와 빛의 인문학으로 읽는 성당 건축 대탐사 『르네상스 성당』. 본문에서 다룬 성당들은 지금도 제자리에 서 있습니다. 이 책을 들고 그 앞에 설 수 있습니다. 성당을 보는 눈이 완전히 달라질 겁니다.


기둥의 오더와 돔의 하중 계산을 설명하면서, 창문이 왜 저 방향에 났는지, 제단을 향해 걷는 신자의 신체가 어떤 비례 속에 놓이도록 계획되었는지를 함께 묻는 책. 르네상스 성당이 '인간이 신의 공간을 설계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300년에 걸쳐 돌과 빛으로 답한 기록이라면, 이 책은 그 답을 읽어주는 안내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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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역, 마키아벨리의 문장들 - 권력은 어떻게 태어나고, 무엇으로 무너지는가 철학자의 시선 1
니콜로 마키아벨리 지음, 민유하 편역 / 리프레시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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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15세기 피렌체의 치열한 정쟁 한복판에서 인간의 위선과 권력의 생리를 가장 냉정하게 해부했던 사상가, 니콜로 마키아벨리. 외교관이자 정치가로서 격동의 시대를 온몸으로 겪어낸 그의 문장들은 도덕을 저버린 냉혹한 권모술수의 상징처럼 오해받아 왔습니다.


하지만 민유하 저자의 언어로 재탄생한 『초역, 마키아벨리의 문장들』을 펼쳐 들면, 우리가 마주하게 되는 것은 악의 예찬이 아닙니다. 착각을 걷어내고 인간 사회의 본질을 정면으로 바라보게 만드는 현실주의의 지도와 마주하게 됩니다.


『초역, 마키아벨리의 문장들』은 『군주론』을 포함해 『로마사 논고』, 『전쟁의 기술』, 『피렌체사』 등 마키아벨리의 광범위한 사유를 현대적 관점에서 재해석합니다. 권력이 어떻게 태어나고 무너지는지를 추적합니다. 오늘날 조직과 관계에도 적용되는 진짜 힘의 법칙을 이야기합니다.


리더는 구성원들에게 따뜻하고 사랑받는 존재가 되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규율 없는 호의가 반복되면, 조직은 이내 느슨해지고 위기 상황에서 통제력을 잃게 됩니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에서 "사랑받는 것과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것 둘 중 어느 것이 더 나은가? 둘 다 갖추기 어렵다면, 사랑받는 것보다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편이 훨씬 안전하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문장을 공포 정치를 펼치라는 뜻으로 받아들인다면 오독한 것입니다. 마키아벨리가 강조한 두려움은 감정에 휘둘리는 폭력이나 독단이 아닙니다. 그것은 선을 넘거나 규칙을 어기면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명확한 대가가 따른다는 인과관계의 명확성이자 흔들리지 않는 규율을 의미합니다.


인간의 호의와 애정은 자신의 손익계산에 따라 언제든 변하기 마련이지만, 시스템이 주는 명확한 경고와 규칙은 예측 가능성을 부여합니다. 감정에 기대는 리더십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질서 없는 자비가 조직 전체를 망치기 전에, 동일하게 적용되는 규칙과 구조로 통치 감정을 제어해야 권력은 비로소 안정성을 획득합니다.


직장 동료나 파트너와의 관계를 논할 때 의리와 신뢰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합니다. 그러나 비즈니스의 세계에서 영원한 동반자가 과연 존재할까요?


마키아벨리는 로마사 논고에서 "인간은 강제되지 않는 한 결코 선하게 행동하지 않는다. 자유가 주어지고 제멋대로 행동할 틈이 생기는 순간, 모든 것은 순식간에 배신과 무질서로 빠져든다."라고 했습니다.


인간을 본질적으로 이익에 민감하고 계산적인 존재로 파악했습니다. 과거에 베푼 은혜는 현재의 손실 앞에서 쉽게 잊히고, 당장의 필요가 다하면 충성심도 연기처럼 증발합니다.


현명한 리더는 구성원들이 조직의 규칙을 따르고 통제에 따르는 것이 자신에게도 가장 안전하고 이익이 되는 구조를 정교하게 설계해 두는 것, 그것이 진짜 인간을 움직이는 방법입니다.


진심은 언제나 통한다는 말은 현대 비즈니스와 정쟁의 세계에서는 순진한 격언일지도 모릅니다. 마키아벨리는 대중이 권력을 소비하는 방식을 꼬집습니다.


권력은 물리적인 힘만으로 완성되지 않으며, 대중의 머릿속에 심어진 이미지와 철저하게 계산된 연출을 통해 철옹성이 됩니다. 사람들은 내면의 깊은 진실을 파고들기보다, 겉으로 드러나는 장면과 평판을 먼저 신뢰합니다.


강력한 카리스마를 연출하는 동시에, 위기 상황에서는 사자의 용맹함과 여우의 영악함을 번갈아 보여주며 평판을 관리해야 합니다. 리더가 모든 행동의 이유를 구구절절 설명하려 들면 오히려 권위는 가벼워집니다. 때로는 신비주의와 단호한 장면의 연출이 백 마디의 해명보다 적을 먼저 멈추게 만드는 강력한 무기가 됩니다.


우리는 갈등이 없는 상태를 평화롭고 건강한 조직의 징표로 여깁니다. 그러나 마키아벨리는 피렌체사에서 조용한 평화의 이면에 도사린 함정을 들추어냅니다. 회의 시간에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만장일치로 안건이 통과되는 조직이 있다면, 그것은 건강한 상태가 아니라 소수의 권력자가 의견을 독점했거나 구성원들이 완전히 무관심해진 상태일 확률이 높습니다.


귀족의 지배 욕구와 민중의 자유 욕구가 거칠게 충돌했던 로마 공화정처럼 건강한 불화와 소란스러운 논쟁은 권력의 독주를 막는 강력한 안전장치가 됩니다. 중요한 것은 갈등을 억누르거나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공적인 틀 안에서 해결되도록 제도화하는 것입니다. 긴장과 논쟁이 완전히 사라진 공동체는 내부에서부터 썩어 들어가기 마련입니다.


우리가 누리는 평화로운 일상은 영원히 지속될 것 같지만, 준비되지 않은 평화는 단 한 번의 외부 충격으로도 산산조각 나는 유리 장식과 같습니다. 마키아벨리는 위기관리의 본질에 대해 짚어줍니다.


군주론에서 "당장의 위험을 모면하려 미루고 중립으로 도피하는 우유부단한 군주는 필연적으로 파멸한다. 지연은 적에게 유리한 상황을 헌납하는 짓이며, 최악의 선택을 강요받게 될 뿐이다."라고 했습니다.





작은 위기가 찾아왔을 때 골치 아픈 논쟁을 피하려고 방치하면, 결국 적이 판을 주도하는 최악의 타이밍에 가장 불리한 선택지를 강요받게 됩니다. 평화는 단순히 바라는 자에게 주어지는 선물이 아닙니다. 평화로운 시기에 끊임없이 전장을 계산하고 내부 리스크를 단호하게 진단해 두는 자, 즉 힘과 질서를 갖춘 자만이 평화를 누릴 자격을 얻습니다.


이상주의자와 몽상가는 세상이 도덕과 정의, 당위성에 의해 움직인다고 믿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냉혹한 현실 정치는 마땅히 그래야 하는 당위가 아니라 실제로 움직이는 사실 위에서 굴러갑니다. 아무리 아름다운 가치와 법률을 내세워도, 그것을 지켜내고 강제할 수 있는 실질적인 힘이 없다면 그 가치는 허무하게 짓밟힐 뿐입니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라는 특정한 대상을 향해 말을 건넸지만, 결과적으로는 위선의 가면을 쓴 인간 전체의 본질을 적나라하게 해부해 냈습니다. 따뜻한 위로를 건네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말의 겉모습에 속지 않고, 선의라는 이름 뒤에 숨겨진 냉혹한 구조를 똑바로 보게 만드는 용기를 쥐여줍니다.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순진한 태도로는 나를 지킬 수 없다는 뼈아픈 깨달음을 줍니다. 『초역, 마키아벨리의 문장들』은 위선의 안개를 걷어내고 조직의 구조와 제도를 직시함으로써 실용적인 생존 전략과 진짜 리더십의 뼈대를 구축하는 가치를 선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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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언어로 살아간다는 것 - 관계, 마음, 나를 만나는 어느 심리학자의 인생 수업
이서원 지음 / 스틸당(STEALDANG)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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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솔직히 한번 따져볼까요. 하루 중 나는 몇 번이나 내 이야기를 하는지. 단톡방에서 누군가의 소식을 전달하거나 험담하고, 유튜브 알고리즘이 밀어주는 타인의 일상을 구경합니다. 그렇게 하루가 끝나면 마음이 허합니다. 많은 말을 했는데, 정작 '나'는 어디에도 없었다는 느낌이 듭니다.


남의 세계 속에서 조용히 증발해가는 자아에서 출발하는 『나의 언어로 살아간다는 것』. 서강대학교 상담심리학 교수로 30년간 3만 명의 내담자를 만나온 심리학자 이서원 저자가 자신의 인생 노트를 꺼내어 펼쳐 보입니다. 아침과 밤, 감정과 후회, 깨달음과 물음표가 뒤섞인 사적인 기록, 치유의 글쓰기를 만나보세요.


"치료는 밖에서 안으로 약이 들어오는 것이고, 치유는 내 안의 상처가 밖으로 나가 스스로 약을 바르는 것"이라는 그의 진단이 울림을 줍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스스로 쓰고 읽는 자기 치유의 언어입니다.





1장은 아침, 2장은 밤으로 나뉩니다. 아침에는 그날의 감정과 바람을, 밤에는 후회와 깨달음, 관계와 기억을 다룹니다. 이 책은 하루의 리듬을 보여줍니다. 아침에는 '바람역'을 출발하고, 밤에는 '돌아봄역'에 도착하는 겁니다. 각 역마다 스쳐 지나가는 감정과 사연을 글로 붙잡습니다.


2018년부터 저자가 대학원 기말고사 문제로 출제해온 문장이 있습니다. "지금 나에게 묻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답은 다섯 줄이면 충분하다." 오직 자기 자신에게 진짜 질문을 던지고, 그것에 다섯 줄로 답하는 겁니다.


"오늘 나는 무엇이 가장 궁금한가?"를 묻고 다섯 줄만 답해보는 방식이 마음에 듭니다. 상담실에서 이루어지는 자기 탐색과도 닮아 있습니다.


직장에서 상사에게 혼난 하루였다면 대부분은 "오늘 정말 재수가 없었다." 정도로 끝냅니다. 하지만 다섯 줄 질문은 달라집니다. 왜 그 말이 유난히 아팠을까. 나는 무엇을 인정받고 싶었을까. 내가 두려워한 것은 실패였을까, 무시였을까. 이 질문 하나만으로 감정은 사건에서 자신으로 이동합니다. 저자는 이런 이동이 바로 성장의 시작이라고 말합니다.


아침의 언어가 희망과 다짐의 언어라면, 밤의 언어는 성찰과 수용의 언어입니다. 밤은 반성의 시간이 아니라 이해의 시간입니다. 하루를 평가하기보다 의미를 발견하는 태도를 강조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고, 자기 이야기를 더 나은 서사로 만들어 더 나은 사람으로 살고 싶어 한다. 다만 나만 그러는 것 같아 주위의 눈치를 보며 안 그런 척하고 살 뿐이다."라고 말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삶이 의미 있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그 의미는 거대한 사건보다 하루의 작은 기록에서 만들어집니다. 밤마다 일기를 쓰는 행위는 하루를 다시 살아보는 일이기도 합니다.


심리학에서는 표현되지 못한 감정이 신체 증상으로 이어지는 경우를 자주 이야기합니다. 저자 역시 할 말을 하지 못하면 몸이 대신 아프다고 설명합니다. 실제로 스트레스가 심할수록 두통이나 위장장애, 수면장애가 나타나는 사례는 흔합니다. 글쓰기는 말하지 못한 감정을 안전하게 흘려보내는 통로가 됩니다.


삶의 돌발 상황에 대한 태도에 대한 이야기가 와닿습니다. 예상치 못한 실패, 계획의 붕괴, 뜻밖의 상실. 이 모두를 저자는 세상 모든 일에는 반드시 교훈이 들어 있다는 오래된 격언으로 받아들입니다. 이때 글쓰기는 교훈을 의식적으로 붙잡는 행위입니다. 그냥 흘려보내면 상처나 실수로 끝나지만, 글로 기록하면 서사가 됩니다.


저자가 권하는 글쓰기는 "거창하지 않아도 된다. 길지 않아도 괜찮다."입니다. 감정 일기, 나에게 쓰는 편지, 속담에 댓글 달기, 사진 에세이, 대화 수첩, 배움 일기, 주기週記, 필사책 만들기 등 글쓰기의 형식도 참 다양합니다. 저자는 글쓰기를 삶의 다양한 결을 포착하는 복수의 언어 감각으로 확장합니다.


"인생에는 정답이 없고, 명답만 있다"라고 합니다. 각자의 경험, 언어, 감정의 결을 통해서만 도달할 수 있는 겁니다. 그리고 그 도달의 과정이 바로 글쓰기입니다.





저자는 또한 "내 경험으로만 쓰면 좁아지고, 남 경험으로만 쓰면 엉성해진다"라며 균형을 강조하기도 합니다. 자신의 감정과 타인의 지혜를 함께 버무릴 때, 글은 보편성을 얻습니다. 


매일 다섯 줄이라는 작고 구체적인 실천이 주는 성취감, 글을 통해 자신의 감정 구조를 발견해가는 지적 즐거움을 알려주는 『나의 언어로 살아간다는 것』. 글쓰기는 세상에서 가장 조용하고 가장 정직한 자기 혁명입니다. 타인의 세계를 소비하느라 헛헛해진 당신에게 필요한 건, 세상의 소음을 끄고 내 언어로 건너오는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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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만한 아이의 읽기 쓰기 공부법은 따로 있다 나침반 시리즈 5
이사비나 지음 / 언더라인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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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전작 『우리 아이가 ADHD라고요?』가 세상의 편견과 싸우는 부모들을 위한 뜨거운 위로였다면, 『산만한 아이의 읽기 쓰기 공부법은 따로 있다』에서는 학교 공부의 가장 근본적인 두 축인 읽기와 쓰기를 통해 무너진 기초 학력을 일으켜 세우는 방법을 알려줍니다.


이사비나 저자는 5년간 ADHD 아들과 함께한 눈물겨운 집공부 경험, 그리고 학교 현장에서 만난 수많은 산만한 기질의 아이들을 치유한 데이터베이스를 바탕으로, 지식의 습득과 인출이라는 로드맵을 그려냅니다.


아이가 교과서를 펼쳐놓고 멍하니 앉아 있을 때, 부모는 흔히 두 가지 중 하나를 떠올립니다. 집중을 못 하는 걸까, 아니면 하기 싫어서 안 하는 걸까.


알림장은 써 왔는데 준비물을 챙기지 못하고, 교과서를 읽었는데 무엇을 배웠는지 설명하지 못하는 아이. 그 아이는 게으른 게 아니라, 읽고 이해하고 기억하고 정리하는 과정 자체가 남들보다 훨씬 더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는 구조로 작동하고 있다는 것을 짚어줍니다.


문해력이 무너지면 학업뿐만 아니라 일상적인 규칙을 이해하는 일조차 버거워집니다. 저자는 주의력 결핍과 전두엽 발달의 지연이라는 관점에서 추적합니다.





전두엽이 담당하는 기능 중에서 주의 집중은 아이들의 읽기 능력과 동기를 좌우한다고 합니다. 전두엽 발달이 느린 ADHD 아이의 학습을 도우면서 우리 아이가 왜 수학 문제를 이해하지 못하는지, 왜 독해 문제집의 지문을 읽어내지 못하는지, 왜 책을 읽자고 하면 울상이 되는지 알게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저자가 강조하는 핵심은 생활문해력입니다. 줄글로 된 긴 책을 읽지 못한다고 해서 아이를 다그칠 필요가 없습니다. 일상의 모든 환경이 훌륭한 텍스트가 될 수 있습니다. 마트, 도서관, 병원 등에서 마주치는 안내판을 사진으로 찍어 "이 표시는 우리에게 어떤 행동을 하라는 걸까?", "여기는 몇 시에 열고 닫을까?" 등의 구체적인 질문을 던지는 생활표지판 탐험이 대표적입니다.


읽고 쓰기 전에 필요한 건 어휘력입니다. 어휘력은 지식을 담는 그릇이자 사고의 경계선입니다. 어휘의 양과 질이 부족한 아이들은 교과서를 펼쳤을 때 마치 모르는 외국어로 가득 찬 유인물을 보는 듯한 혼란을 경험합니다.


저자는 문맥 속에서 단어의 쓸모를 체득하는 입체적인 어휘 훈련을 소개합니다. 책 속에 담긴 단계별 어휘 활동지를 살펴보면 디테일한 코칭 능력이 고스란히 묻어납니다. 단어의 뜻을 파악하는 경지를 넘어, 문장 속에서 주도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뇌에 어휘의 연결망을 촘촘하게 깔아주는 깊이 있는 접근법을 알려줍니다.


산만한 아이를 위한 읽기 공부법 파트에서는 읽기 유창성을 점검해보자고 합니다. 문장을 ‘매끄럽게 읽을 힘’을 뜻합니다. 정확하고 빠르게 문장을 소화하며 행간의 의미를 눈치채는 감각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부모가 먼저 모범적으로 낭독을 해주고 아이가 이어 읽게 하거나, 아이가 자신의 목소리를 녹음해 직접 유연성을 점검하는 과정 등을 통해 읽기 브레이크를 부드럽게 해제해 주어야 합니다.


산만한 아이를 위한 쓰기 공부법 파트에서는 쓰기 싫어하는 마음부터 살펴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만약 아이가 쓰기를 싫어하고, 글씨체가 엉망이라면 기다려야 한다는 신호라고 합니다. 지우고 다시 쓰게 하는 행동을 반복해서 극복하게 하려 한다면 아이의 쓰고자 하는 마음은 영영 생기지 않을 수 있다고 말이지요.


저자는 쓰기 장벽 허물기를 소개합니다. 문장 세 줄 쓰기로 목표를 작게 쪼개거나, 핵심어만 아이가 찾아 적고 나머지는 부모가 대신 써주는 '줄칸 제공하기', 포스트잇을 활용해 가벼운 소통을 유도하는 '포스트잇 쓰기' 등이 해법입니다.


특히 인지적 에너지가 고갈되어 생각이 멈추는 아이에게는 말을 먼저 유도하고 부모가 받아 적은 뒤 이를 다시 보고 쓰게 하는 말하기 기반 쓰기 전환법이 특효약입니다. 글씨체 교정 역시 강압적인 교정이 아닌 학년별 맞춤형 공책 가이드를 매칭해 주면 좋습니다. 





노트 정리는 복잡한 지식을 나만의 메타인지 필터로 여과하여 뼈대만 남기는 최고의 고등 사고 훈련입니다. 읽기와 쓰기가 서툴기 때문에 오히려 노트 정리는 꼭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산만한 아이에게 무턱대고 노트를 던져주면 백지 공포증에 시달립니다.


최소한 아이가 쓰기 거부감이 없고 초등학교 4학년 이상의 학령기에 접어들었을 때 코넬 노트법이나 시각화 노트를 시작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조언합니다. 그 전 단계까지는 읽기 유창성과 어휘력을 기르는 기본 근육 형성에 올인하라고 합니다.


책에서 예시로 보여주는 생각 정리 기술들은 다양합니다. 마인드맵, T-차트의 2분할 표, 원 형태의 벤다이어그램 등 시각적 맵핑 과정들을 하나씩 소개합니다. 받아쓰기, 띄어쓰기, 일기 쓰기로 이어지는 쓰기 숙제 잔혹사는 매일 밤 가정의 평화를 깨뜨리는 주범이지요. 학교 수업을 돕는 쓰기 연습에 대한 조언도 실용적입니다.


방법이 없었던 게 아니라 방법을 몰랐던 것을 짚어주는 『산만한 아이의 읽기 쓰기 공부법은 따로 있다』. 산만한 아이에게는 더 많은 공부가 필요한 게 아니라 다른 방법이 필요하다는 걸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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