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시작하는 행복한 손그림 : 컬러링 기초 나 혼자 시작하는 행복한 손그림
김충원 지음 / 진선북스(진선출판사)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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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출근길의 무채색 아스팔트, 사무실의 형광등 불빛, 스마트폰의 차가운 블루라이트 사이에서 조금씩 무뎌지고 있는 감각에 생기를 불어넣어 줄 특별한 가이드북 『나 혼자 시작하는 행복한 손그림: 컬러링 기초』. 대한민국 미술 교육의 대부, 김충원 선생님의 《나 혼자 시작하는 행복한 손그림: 드로잉 기초》의 후속편으로, 선을 배웠으니 이제 색을 배울 차례입니다.





주 도구는 색연필입니다. 선 긋기와 기본 스트로크, 톤 조절 연습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처음엔 언뜻 지루해 보일 수 있지만, 이 과정을 건너뛰지 말고 꼭 해보세요. 확실히 채색할 때 선택의 폭이 넓어집니다.


연습 페이지에는 예시 그림과 함께 직접 채색해볼 수 있는 밑그림이 나란히 펼쳐져 있습니다. 왼쪽 페이지를 보고 오른쪽 페이지에 색을 입히는 구조여서 오롯이 채색에 집중할 수 있게 해줍니다.


고슴도치, 강아지, 여우 같은 캐릭터형 동물부터 점차 털의 질감과 눈의 반짝임까지 세밀하게 표현해야 하는 동물 채색으로 이어집니다. 밑그림 위에 색연필로 한 부분씩 채색해나가는 과정은 생각보다 몰입감이 있습니다.


식물 파트에서는 꽃 한 송이를 채색하는 데도 그라데이션이 필요하고, 잎사귀 하나를 표현하는 데도 빛의 방향을 고려해야 한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 구구절절한 설명없이도 예시그림만 봐도 직관적으로 알 수 있게 쉽게 보여줍니다.


색연필 외에 컬러펜도 등장합니다. 컬러펜은 수정이 어렵다는 점에서 긴장감이 살짝 올라가지만, 그 긴장감이 오히려 집중력을 높입니다.





귤을 칠할 때도 단순히 주황색으로 채우는 것이 아니라는 걸 바로 알 수 있습니다. 노란색으로 바탕을 깔고, 점점 짙은 톤을 얹어 입체감을 만들어갑니다. 색은 하나가 아니라 여러 층이라는 것, 이 개념이 자연스럽게 손에 익게 됩니다.


눈은 항상 무언가를 빠르게 처리하고, 손가락은 스크롤을 넘기는 요즘입니다. 그래서색연필 한 자루를 쥐고 종이 위에 천천히 색을 쌓아가는 행위는 꽤 아날로그틱합니다.


이 책이 권하는 컬러링은 속도와 완성도가 아니라 집중과 감각에 초점을 맞춥니다. 밑칠을 얹고, 그 위에 한 겹씩 색을 더하며, 손끝에서 전해지는 미세한 압력 변화를 느끼는 것. 명상과 비슷한 효과를 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미술을 배우고 싶었지만 그림 실력에 자신이 없어 망설였던 이들이라면 이 책이 가장 좋은 출발점입니다. 드로잉 실력 없이도 바로 시작할 수 있고, 성취감도 확실합니다. 색을 고르고 손을 움직이는 그 행위 자체가 작은 자기 표현이자 일상 속 작은 회복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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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에 밑줄 치지 말 것 - 정답만 찾는 시대, 농담처럼 읽는 삐딱한 예술 이야기
오후 지음 / 서스테인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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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인문학적 허세와 정답 강박으로부터 해방시켜 줄 발칙하고도 영리한 예술 가이드 『아름다움에 밑줄 치지 말 것』. 일상적이지 않은 소재를 일상의 언어로 혹은 무거운 주제를 농담처럼 풀어내는 데 탁월한 작가 오후(ohoo)의 예술 비평서입니다. "예술, 제발 좀 그냥 즐기면 안 됩니까?"라고 묻습니다.


우리는 예술이 시간이 흐름에 따라 더 정교하고 고차원적으로 발전해 왔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저자는 이 고정관념을 뒤집습니다. 고대 그리스의 디오니소스 극장은 단순히 비극을 감상하며 눈물을 훔치는 장소가 아니었습니다. 1만 5,000명의 관객이 운집해 환호하고 야유하며, 술과 음식이 곁들여졌던 당대 최고의 종합 엔터테인먼트 장이었습니다.


비극과 희극은 인간 감정의 밑바닥을 훑어내며 대중의 욕망을 해소해주던 도구였습니다. 저자는 여기서 예술이 처음부터 대중과 호흡하는 완성된 형태였음을 강조합니다. 장르의 경계가 모호했던 그 시절, 예술은 학문이 아니라 삶 그 자체였던 셈입니다.





그리스 연극이 주었던 전율은 후대의 학자들이 분석한 카타르시스라는 단어 안에 다 담기지 않습니다. 그것은 현장의 소음과 땀방울 속에 존재하던 실존적 경험이었습니다.


예술의 역사를 뒤흔든 부적응자들의 반란에 대한 이야기가 빠질 수 없습니다. 1991년 너바나(Nirvana)의 등장은 예술적 완성도가 반드시 세련됨과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가사를 웅얼거리고 기타 리프를 거칠게 긁어대던 커트 코베인의 무대는 완벽한 연주보다 더 강력한 에너지를 발산했습니다.


과거 다다이즘 예술가들이 보여준 태도와 일맥상통합니다. 전쟁의 참혹함 앞에서 이성이 만든 모든 질서를 부정하며 "이게 뭐지?" 싶은 작품들을 내놓았던 그들은, 예술이 반드시 아름다워야 한다는 당위성을 파괴했습니다. 그리고 다다의 정신은 현대미술의 기원이 되었습니다. 완벽함보다 중요한 것은 기존의 틀을 깨부수는 태도임을 짚어줍니다.


예술은 때로 인간의 결핍이나 고통에서 피어나는 기괴한 꽃과 같습니다. 『아름다움에 밑줄 치지 말 것』은 예술이 인간의 심리적 증상을 어떻게 반영하는지 살핍니다. 우리는 왜 비극을 보며 눈물을 흘리면서도 그 안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할까요?


예술이 현실의 고통을 승화시키는 방식에 주목합니다. 슬픔을 억지로 감추기보다, 그 슬픔을 전면에 내세워 직면하게 만드는 힘. 그것이 예술이 가진 치유 아닌 치유의 기능입니다. 예술가는 비극적인 상황 속에서도 그것을 관찰하고 기록하며, 자신만의 독특한 문법으로 세상을 재해석합니다.


신체라는 가장 원초적인 매체에 대해서도 다룹니다. 남성의 시선에 의해 대상화되었던 여성의 신체가 어떻게 주체적인 예술의 무기로 변모했는지, 마리나 아브라모비치 사례를 통해 보여줍니다.


관객에게 자신의 몸을 마음대로 다루게 허용했던 <리듬 0> 퍼포먼스는 인간 내면의 잔혹성과 도덕성의 경계를 파고듭니다. 여기에는 정교한 미사여구도, 고결한 액자도 필요 없습니다. 오직 살아있는 인간의 육체와 그 육체가 겪어내는 고통의 시간만이 존재할 뿐입니다.


이어서 영화로 넘어갑니다. 영화가 어떻게 시간이라는 요소를 예술의 영역으로 끌어들였는지 분석합니다. 뤼미에르 형제의 단순한 기록물에서 출발한 영화는 에이젠슈타인의 몽타주 기법을 거치며 편집된 시간이라는 강력한 서사 도구를 갖게 됩니다.


『아름다움에 밑줄 치지 말 것』은 예술의 사회적 효용성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밥 겔도프의 라이브 에이드(Live Aid)처럼 음악이 세상을 하나로 묶고 기적 같은 변화를 이끌어냈던 순간들을 회상합니다.





예술에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하거나, 예술이 도덕적 지침서가 되어야 한다는 강박이 오히려 예술의 본질을 훼손할 수 있다는 점을 짚어줍니다. 예술은 세상을 직접적으로 구하기보다 세상을 보는 우리의 시선을 비풂으로써 우리를 변화시킬 뿐입니다.


우리는 미술관에서 작품을 볼 때 습관적으로 "이 작품의 주제가 뭐야?"라고 묻습니다. 이 질문이야말로 예술 감상을 망치는 주범입니다. 정답을 찾는 행위는 예술을 변형된 인문학 시험지로 전락시킵니다. 저자는 오히려 모호함 그 자체를 즐기고, 각자의 감각이 반응하는 대로 놔두는 것이 예술에 대한 가장 예의 바른 태도라고 말합니다.


장르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도 인상 깊었습니다. 새로움이 사라진 시대, 과거의 영광을 복제하는 데 그치는 예술은 생명력을 잃습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장르의 죽음은 새로운 장르의 탄생을 위한 밑거름이 됩니다. 추락하는 것에도 날개가 있듯, 쇠락해가는 장르 안에서 피어나는 마지막 광채 역시 놓쳐선 안 될 예술적 순간입니다.


마지막으로 오늘날 가장 뜨거운 이슈인 AI 예술에 대해서도 다룹니다. 프롬프트 몇 줄로 그림과 음악을 뚝딱 만들어내는 시대, 인간 예술가의 입지는 좁아진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저자는 기술이 예술적 성취의 도구가 될 수는 있지만, 인간이 가진 낭만과 의도적 비효율까지 대체할 수는 없다고 믿습니다.


오후 작가는 '태도'를 강조합니다. 스마트폰으로 고해상도 이미지를 보는 것과 먼지를 뚫고 미술관에 가서 캔버스의 질감을 직접 대면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경험입니다. 예술은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겪어내는 것입니다.


『아름다움에 밑줄 치지 말 것』은 예술을 공부하려 하지 말고, 농담처럼 가볍게, 때로는 삐딱하게 마주하라고 속삭입니다. 밑줄을 치며 정답을 외우는 대신, 작품 앞에서 당당하게 "난 잘 모르겠는데?"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 그것이 우리가 잃어버린 예술적 본능을 되찾는 첫걸음입니다.


미술관에 가기 전날 밤, 전시 소개 페이지를 정독하고 작가의 생애를 검색하고 유튜브에서 감상 포인트를 미리 확인하나요? 제가 그렇습니다. 작가의 의도를 찾고, 시대적 배경을 주석처럼 달고, 감동 이전에 해석을 먼저 장착합니다. 그래서 이 책은 불편하고, 당혹스러웠습니다. 한편으론 그렇기에 오히려 더 유용하게 작동했습니다.


전시회에 갈 때마다 도슨트 설명 없이는 불안함을 느끼는 정답 강박형 관객들과 예술을 지루한 공부로 여기는 이들에게 추천합니다. 나만의 안목을 기르는 짜릿한 해방감을 맛볼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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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와 전쟁으로 다시 읽는 한중일 세계사 - 지리는 어떻게 동아시아 3국의 운명을 뒤흔들었나?
이동민 지음 / 갈매나무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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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한중일 지정학적 동상이몽을 해부한 책 『지도와 전쟁으로 다시 읽는 한중일 세계사』. 우리가 왜 이웃 나라들과 끊임없이 싸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손을 잡아야 하는지를 지리라는 숙명적 틀 안에서 풀어냅니다. 


지리학을 전공한 교육학 박사이자 국제적인 지리학술지 편집위원으로 활동 중인 지리의 대가 이동민 교수는 단순히 연대표를 읊어주는 역사학자가 아닙니다.


지도라는 2차원의 평면 위에 시간의 입체감을 불어넣어 왜 이 땅이 수백 년간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려야 했는지를 지형과 기후, 그리고 자원의 흐름이라는 필연의 렌즈로 분석해 냅니다. 지도가 말해주는 잔혹하고도 정교한 생존 게임의 현장으로 들어가봅니다.


임진왜란을 흔히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개인적 야욕이나 조선의 방비 부족으로 기억합니다. 하지만 이동민 저자는 시야를 지구 반대편으로 돌립니다. 16세기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하며 가져온 아메리카의 '은'이 전 세계의 화폐 시스템을 뒤흔들고 있었다는 사실에 주목합니다.





당시 명나라는 전 세계 은의 블랙홀이었습니다. 비단과 도자기를 팔아 엄청난 양의 은을 흡수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반전이 일어납니다. 일본에서 거대한 은광이 발견되면서, 변방의 섬나라였던 일본이 단숨에 글로벌 경제 네트워크의 키 플레이어로 급부상한 겁니다. 


당시 포르투갈은 인도부터 일본 나가사키까지 점령하면서 중국해를 장악했습니다. 에스파냐는 마닐라를 수중에 넣고 이곳을 중심으로 아시아-아메리카-유럽을 연결하는 세계 최초 해상무역 네트워크를 구축했습니다.


일본은 폭발적으로 성장한 자신들의 경제적·군사적 에너지를 분출하고 명나라 중심의 천하 질서에 균열을 내기 위해 칼을 뽑아 듭니다. 지리적으로 보면, 한반도는 이 해양 세력(일본)과 대륙 세력(명나라)이 정면으로 충돌할 수밖에 없는 지정학적 단층선 위에 놓여 있었던 셈입니다.


전쟁이 인간의 의지만으로 일어난다고 믿는 건 오만일지도 모릅니다. 저자는 17세기를 덮친 소빙기라는 기후 변화에도 주목합니다. 갑작스러운 추위는 농작물을 마르게 했고, 대륙의 대혼란으로 이어졌습니다. 


이 시기 청나라는 북방의 추위를 피해 남하하며 명나라를 무너뜨리고 오늘날 거대한 중국 영토의 기틀을 마련합니다. 반면 조선은 병자호란이라는 혹독한 시련을 겪으면서도 조선중화주의라는 독특한 정체성을 키워나갑니다. 지도 위에서 보면 청나라의 팽창은 생존을 위한 필사적인 이동이었고, 조선의 수성은 그 팽창의 압력을 견뎌내는 과정이었습니다.





19세기 근대화의 명암은 어떻게 개방했는가에서 갈렸습니다. 일본은 나가사키의 데지마라는 인공섬을 통해 서구 문물을 필터링했습니다. 필요한 기술은 받아들이되, 체제를 위협하는 요소는 차단하는 선택적 줄타기에 성공한 겁니다.


반면 조선은 지리적 요충지에 위치했음에도 불구하고, 서구 열강의 눈에는 가성비 떨어지는 땅으로 비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불평등 조약의 파도에 휩쓸리게 됩니다. 오늘날 미·중 패권 전쟁 사이에서 우리가 어떤 지리적 완충 공간을 확보해야 할지에 대해 묵직한 질문을 던집니다.


중국이 잠자는 사자에서 동아시아의 환자로 전락하게 된 결정적 계기는 아편전쟁이었습니다. 하지만 저자는 전쟁의 패배보다 더 중요한 사건으로 청나라 학자 위원이 지은 세계 지리서 《해국도지》를 꼽습니다. 


청나라가 아편전쟁에 패한 1842년에 편찬이 시작되어 1844년 초간본 50권이 간행되었고, 1852년에는 100권짜리 증보판이 나왔다고 합니다. 세계 각국의 지리뿐 아니라 역사, 정치, 사회, 문화, 경제까지 폭넓게 다루고 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책은 중국보다 일본에서 더 열광적인 반응을 얻었습니다. 지도를 통해 세계의 크기를 확인한 일본인들은 빠르게 체질 개선에 나선 반면, 중국은 여전히 중화사상이라는 지리적 오만에 갇혀 있었습니다. 지도를 읽는 눈의 차이가 국가의 운명을 바꾼 셈입니다.


19세기 말, 한반도는 그야말로 제국들의 전시장과 같았습니다. 청나라, 일본, 러시아가 이 좁은 땅을 두고 격돌했습니다. 저자는 이 전쟁들을 제0차 세계대전이라 명명합니다.


유라시아 대륙 세력과 태평양 해양 세력이 맞붙은 거대한 지각 변동의 서막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과정에서 한반도의 의사는 철저히 배제되었습니다. 지리적 가치가 너무 높은 나머지, 정작 그 땅의 주인은 주도권을 상실하는 비극이 발생한 겁니다.


20세기에 들어서면 일본 군부의 폭주는 멈출 줄 모릅니다. 만주사변을 일으키고 중일전쟁으로 확전하며, 급기야 태평양 건너 미국까지 건드립니다. 


저자는 일본이 왜 이런 무모한 도박을 했는지를 자원 공급망의 관점에서 분석합니다. 미국과 영국이 주도한 ABCD 포위망으로 석유가 끊기자, 일본은 지리적 고립을 타파하기 위해 남진 정책을 택했고, 이는 곧 자멸의 길로 이어졌습니다. 지리는 때로 국가에게 탐욕을 부추기는 독이 되기도 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해방 이후에도 한반도는 평화를 얻지 못했습니다. 국공내전에서 승리한 공산 세력과 해양 세력인 미국의 대결이 한국전쟁으로 터져 나왔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다시금 신냉전 체제 속에 놓여 있습니다. 반도체 공급망을 둘러싼 경제 전쟁, 타이완 해협의 긴장, 그리고 여전히 진행 중인 독도 분쟁까지.


​지리는 변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 위에서 춤추는 인간들의 명분과 무기만 바뀔 뿐입니다. 저자는 우리가 지리적 문맹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감정적인 혐오를 넘어, 냉철하게 지도를 읽고 우리의 입지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는 것을 일깨워줍니다.


과거의 지도가 전쟁의 경로를 보여주었다면, 미래의 지도는 평화의 길을 보여주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그 길을 찾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가 서 있는 이 땅의 역사와 현실을 직시해야 합니다. 『지도와 전쟁으로 다시 읽는 한중일 세계사』는 지금 우리 발밑에서 진동하고 있는 지정학적 위기를 읽어내는 생존 매뉴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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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우울 - 25년차 정신과 전문의가 처음으로 정의한 반우울 심리학
다이라 고겐 지음, 곽범신 옮김 / 서교책방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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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정신과 전문의가 명명한 심리적 미완 지대 『반우울』. 우울증이라는 단어를 너무 쉽게 쓰거나 혹은 지나치게 두려워합니다. 하지만 그 중간 어디쯤에서 매일같이 살아내고 있는 수많은 이들의 상태는 무엇이라 불러야 할까요?


25년 차 정신과 전문의 다이라 고겐은 20만 명 이상의 환자를 만나며 깨달았습니다. 현대인의 고통 중 상당수는 질병으로 분류되기엔 정상에 가깝고, 일상으로 치부하기엔 너무나 비정상적으로 고통스럽다는 사실을 말이죠.


다이라 고겐은 일본 도호쿠 지방에서 의원을 운영하며 생명의 전화 상담의로서 절벽 끝에 선 이들의 목소리를 직접 들어왔습니다. 그런 그가 처음으로 정의한 반우울(半うつ)은 우울감 이상, 우울증 미만의 상태를 뜻합니다.


『반우울』에서는 우리가 왜 힘을 낼 수 없는지, 왜 주말 내내 누워 있어도 월요일 아침이 고통스러운지를 뇌 과학과 심리학의 경계에서 해설합니다.


우리는 사회적 가면을 쓰는 데 천재적입니다. 출근해서 웃으며 인사하고, 맡은 업무를 처리합니다. 하지만 퇴근길 지하철 창에 비친 내 얼굴이 낯설게 느껴진다면, 그것은 마음이 보내는 경고등일지도 모릅니다. 저자는 이를 사회적 적응형 우울의 전 단계로 봅니다.





반우울 상태의 핵심은 일상생활이 가능하다는 점입니다. "병원 갈 정도는 아니잖아. 그냥 좀 피곤한 거지."라며 일상을 계속 이어가면서, 마음 한편에 가라앉은 무언가를 그냥 덮어두고 사는 사람들. 현대인 5명 중 1명이라는 통계가 붙어 있지만, 정작 당사자들은 자신이 그 5분의 1에 해당한다는 사실조차 모른 채 오늘도 '괜찮은 척'을 이어갑니다.


하지만 저자는 이 참는 능력이 오히려 독이 된다고 말합니다. 특히 한국과 일본처럼 끈기와 근성을 중요하게 여기는 문화권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끈기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너무 많은 끈기를 발휘해 에너지를 바닥까지 긁어 썼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라는 분석이 와닿습니다. 우울과 불안을 제거해야 할 종양이 아니라, 과부하 걸린 시스템이 보내는 안전 정지 신호로 바라보는 관점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뇌는 쉴 새 없이 '이 메일에 답장해야 하나?', '이 SNS 게시물에 좋아요를 눌러야 하나?' 같은 사소한 판단을 수천 번씩 내립니다. 이 과정에서 뇌의 결정 자원은 고갈됩니다. 특히 책임감 강한 사람이 이 구조적 함정에 가장 먼저 빠진다고 경고합니다.


아침에 일어난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며, 자신을 학대하는 수준의 책임감을 내려놓고 적극적인 현실 도피를 권장합니다. 여기서 도피는 비겁함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전략적 후퇴입니다.


마음의 문제를 정신력으로 극복하려는 시도만큼 무모한 것은 없습니다. 우리 마음의 평화를 지탱하는 것은 세로토닌, 도파민, 노르아드레날린이라는 세 가지 신경전달물질의 균형입니다.





우리가 느끼는 무기력은 뇌가 고장난 것이 아니라, 이 물질들이 방전된 상태라고 합니다. 이 물질들의 원료는 우리가 먹는 음식(아미노산)에서 오고, 합성은 잠을 자는 동안 일어납니다. 즉, 잘 먹지 않고 잘 자지 않으면서 마음이 건강해지길 바라는 것은 연료 없이 슈퍼카가 달리길 바라는 것과 같습니다.


디지털 기기와의 거리두기도 필수입니다. 잠들기 전 스마트폰을 보는 행위는 뇌에게 "아직 낮이야, 정보 처리를 계속해!"라고 명령하는 것과 같습니다. 뇌를 식히는 물리적 시간이 보장되지 않으면 반우울의 늪에서 빠져나올 수 없는 겁니다.


세로토닌은 과도한 감정 폭발을 막아주는 브레이크 역할을 합니다. 반우울 상태의 사람들은 이 브레이크가 파열된 상태로 내리막길을 달리는 자동차와 같습니다. 특히 휴일에도 강박적으로 일정을 채우는 갓생 중독자들은 세로토닌 고갈의 주범입니다.


저자가 말하는 진정한 휴식은 '무엇을 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멍하니 창밖을 보거나, 스마트폰 없이 산책하는 명확한 공백의 시간이 세로토닌을 충전합니다.


노르아드레날린은 우리를 움직이게 하는 엑셀입니다. 하지만 반우울 상태에서는 이 엑셀이 멋대로 밟히거나(조증 증세), 아예 밟히지 않는 오작동이 일어납니다. "열심히 해야 하는데 몸이 안 움직여요"라는 호소는 여기서 기인합니다.


저자는 완벽주의라는 이름의 가혹한 채찍질을 멈추라고 조언합니다. 항상 앞으로만 나아가야 한다는 강박은 뇌의 보상 회로를 망가뜨립니다. 오늘 하루를 '완벽하게' 사는 것이 아니라 '무사히' 보내는 것에 가치를 두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내일의 에너지를 미리 끌어다 쓰는 행위를 멈출 때, 비로소 노르아드레날린의 수치가 정상화됩니다.


도파민은 쾌락과 보상을 담당합니다. 하지만 반우울 상태에서는 도파민 시스템이 붕괴되어 무엇을 해도 재미가 없고 감정이 평면적으로 변합니다.


저자의 고백도 놀랍습니다. 정신과 의사인 그조차도 이름 없는 고통에 시달렸던 시절이 있었다는 겁니다. "당신이 겪는 것은 실체가 있는 상태이며, 그것은 '반우울'이다"라고 명확히 선언해 줌으로써, 자책의 감옥에서 해방시킵니다. 삶의 속도를 늦추고, 내 몸의 생리적 신호에 귀를 기울이며, 반우울이라는 상태를 인정하는 순간 회복의 여정은 시작됩니다.


이 책은 뇌라는 하드웨어를 어떻게 관리해야 마음이라는 소프트웨어가 안정적으로 돌아가는지를 알려주는 인생 사용 설명서입니다. 원인 모를 무력감에 시달리고 있다면 이 책을 펼쳐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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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교양 수업 - 비전공자, 직장인, 개발자 모두가 알아야 할 AI 리터러시
최윤철 지음 / 생능북스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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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요즘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인공지능은 더 이상 선택의 문제가 아닙니다. 누구나 AI를 말하지만 정작 이해하고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고요. 『AI 교양 수업』은 기술 자체보다 이해의 격차에 주목합니다. 이 책에서 강조하는 것은 지식이 아니라 해석 능력입니다. 기술을 소비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그것을 판단하고 활용하는 능력 말입니다.


서울대학교 전자공학과를 거쳐 미국 UC 버클리에서 공학박사를 취득하고, 연세대학교에서 35년간 후학을 양성해온 IT 교육의 산증인 최윤철 교수가 비전공자부터 전문가까지 모두가 알아야 할 AI 리터러시를 쉽게 알려줍니다.


저자는 튜링 테스트와 모라벡의 역설 개념을 통해 인공지능의 현주소를 짚어줍니다. 인간에게 쉬운 일이 로봇에게는 지독히 어렵고, 반대로 인간에게 어려운 고도의 계산이 로봇에게는 식은 죽 먹기라는 역설은 우리가 기술을 바라보는 시각을 조정합니다.


딥페이크 기술이 악용되는 사례도 흔합니다. 2023년에는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뉴욕 경찰에 체포되는 장면을 조작한 가짜 영상이 SNS에 유포되었고 일부 시청자들은 실제 영상이라 믿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실재와 허구의 경계가 무너지는 초지능 시대에 우리가 가져야 할 비판적 사고의 중요성을 일깨워줍니다.





AI는 결코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기술이 아닙니다. 1956년 다트머스 회의에서 인공지능이라는 용어가 처음 탄생한 이래, 수차례의 봄과 겨울을 거쳐왔습니다. 기호주의(논리적 추론)가 지배하던 시절, 인간은 모든 지식을 규칙으로 만들어 기계에게 가르치려 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치명적인 프레임 문제가 발생합니다.


인간은 직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지만, 로봇은 직관적으로 판단할 수 없고 명시적으로 무엇을 고려해야 하고 무엇은 무시해도 되는지 일일이 알려주지 않으면 판단하기 어려운 일들 말입니다.


부엌을 청소하라는 특정한 명령 하나를 수행하기 위해 세상의 모든 변수를 계산해야 하는 기계의 고충은 인공지능이 인간의 상식이라는 높은 벽을 넘는 것이 얼마나 고차원적인 과업인지를 깨닫게 합니다.


과거의 AI가 일일이 규칙을 입력받았다면, 현대의 기계학습(Machine Learning)은 데이터 속에서 스스로 규칙을 찾아냅니다. 개와 고양이를 구분하는 과정에서 귀의 모양과 코의 크기라는 특징값을 수치화하고, 이를 수학적 모델로 분리해내는 과정은 체계적입니다.





저자는 인공신경망의 핵심 원리인 오차역전파와 경사하강법을 비전공자도 이해할 수 있도록 풀어냅니다. 기계가 정답과 자신의 예측값 사이의 차이를 줄여나가기 위해 미분을 사용하여 경사면을 따라 내려가는 과정은, 안개 낀 산에서 가장 낮은 골짜기를 찾아가는 탐험가와 같습니다.


사용되는 수식을 보면 AI가 얼마나 철저하게 수학적 토대 위에 서 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인공지능이 내놓는 결과물은 마법 같은 영감이 아니라, 손실을 최소화하려는 치열한 확률적 계산의 결과라는 점을 깨닫게 됩니다.


딥러닝의 폭발적 성장은 하드웨어의 발전과 빅데이터라는 연료가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이미지 인식의 혁명을 가져온 CNN(합성곱 신경망)과 챗GPT의 심장인 트랜스포머 모델에 대한 설명이 이어집니다.


단어와 단어 사이의 의미적 거리를 계산하는 어텐션 개념은 AI가 단순히 문장을 외우는 것이 아니라, 관계를 파악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저자는 아마존의 추천 시스템이나 유튜브 알고리즘을 예로 들며 우리가 매일 경험하는 데이터 사이언스의 정체를 밝혀냅니다.


마지막으로 AI 시대에 살아남기 위해서는 기술적 근간이 되는 수학과 친해져야 한다는 조언을 건넵니다. 딥러닝은 수학적 기반 위에서 발전해 왔기 때문입니다. 챗GPT를 활용해 직접 코딩을 해보는 실습도 제안하며 기술의 주체로 초대합니다.


『AI 교양 수업』은 복잡한 수식과 논리 뒤에 숨겨진 차가운 계산의 원리를 직시하게 만듭니다. AI는 정복해야 할 괴물이 아니라, 그 원리를 이해하면 우리가 부릴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도구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최윤철 교수의 친절한 가이드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AI 리터러시라는 무기의 정체를 이해하게 됩니다. 기술의 본질을 꿰뚫는 가장 현실적인 안내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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