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비교하고 검토하는 교열부의 쿠쥬 씨 1~2 세트 - 전2권
고이시 유카 지음, 현승희 옮김, 신쵸사 협력 / 서교책방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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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책을 좋아하는 독자에게 책의 뒤편, 만드는 사람들의 숨은 분투를 들여다보는 시간 『비교하고 검토하는 교열부의 쿠쥬 씨』. 손가락 한 번으로 온갖 콘텐츠를 소비하는 시대에, 단어 하나의 쓰임새를 고민하고 밤하늘의 달 모양까지 검증하며 책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종이책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울림과 애정을 안겨줍니다.


1896년 창립한 신쵸사는 나쓰메 소세키, 다자이 오사무 같은 작가부터 무라카미 하루키, 미야베 미유키, 미우라 시온 등 현대 작가들의 책을 펴낸 출판사입니다. 일본 출판계 내부에서도 지독할 정도로 정확하고 꼼꼼하다는 명성을 얻은 130년의 역사를 지닌 신쵸사 교열부의 이야기를 생활 밀착형 관찰력이 빛을 발하는 만화가 고이시 유카의 만화로 만나봅니다.


교열은 흔히 맞춤법을 고쳐주는 일 정도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비교하고 검토하는 교열부의 쿠쥬 씨』를 읽고 나면 이 정의가 얼마나 좁은 것인지 알게 됩니다. 교열의 ‘교(校)’는 비교한다는 뜻이고 ‘열(閱)’은 검토하고 확인한다는 뜻입니다.


교열자는 글자를 보는 동시에 사람을 보고, 문장을 보는 동시에 맥락을 보고, 사실을 확인하면서도 작가가 무엇을 말하려고 했는지를 고민합니다.





소설 속 한 문장을 검토하기 위해 교열자는 어디까지 파고들어야 할까요? 설정을 짚어나가며 연도와 날짜를 파악하고 그날의 달 모양까지 팩트체크합니다. 텍스트에 구축된 가상 세계가 지상의 섭리와 부딪혀 허물어지지 않도록 단단한 인프라를 구축하는 행위입니다.


작가가 놓친 미세한 설정의 균열, 예컨대 앞장에서는 소심해 보이는 소년이었는데 뒤쪽에서 뻔질뻔질한 소년으로 묘사되는 모순을 찾아내는 것은 오직 인간 교열자의 집요한 눈과 정성 어린 기록이 있기에 가능합니다.


사전조차 절대적 기준이 될 수 없는 순간이 찾아오기도 합니다. 문학의 언어는 살아 숨 쉬는 생물과 같아서 통용되는 규범을 뛰어넘어 작가 고유의 문체로 변형되곤 합니다.


교열 현장에서는 언어의 정석을 지키는 것과 작가만의 독창적인 표현 욕구를 존중하는 것 사이에서 치열한 조율이 일어납니다. 단어를 검토하는 일은 결국 그 단어를 선택한 한 인간의 내면을 이해하고 설득하는 대화입니다.


독자는 텍스트가 만들어내는 서사와 감정의 파도에 온전히 몸을 맡깁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교열자는 작품을 재미있게 읽는 독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합니다. 전개에 빠져 다음 페이지가 궁금해지는 순간, 오히려 이상한 부분을 놓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작품에 감정적으로 몰입해서도 안 됩니다. 작가의 문장을 무조건 옹호해서도, 자신의 취향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고쳐서도 안 됩니다. 그렇다면 어디에 서 있어야 할까요? 바로 작품 안과 밖을 동시에 볼 수 있는 위치입니다.


교열이라는 일이 의외로 인간적인 작업이라는 사실이 드러납니다. 글자만 보면 해결될 것 같지만 글자는 사람의 생각과 경험에서 나옵니다. 글자를 제대로 확인하려면 그 글자가 나온 배경까지 이해해야 합니다.


작품 속 인물들이 작성하는 등장인물 연표와 관계도를 보면 이 작업이 단순한 오탈자 수정을 넘어 얼마나 거대한 지적 탐구인가를 깨닫게 됩니다. 픽션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현실의 맥락과 연결되는 순간, 팩트의 왜곡이 없어야 독자의 몰입이 깨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독자가 아무런 턱에 걸림 없이 완벽한 가상의 세계로 빠져들도록 만들기 위해 교열자는 스스로 객관성의 바다에 몸을 던집니다.


요즘은 문장 교정과 편집 영역에서도 자동화 알고리즘이 유용하게 쓰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신쵸사의 교열부 사람들은 종이 교정지 위에 붉은 펜으로 글자를 써가며 아날로그적인 싸움을 계속합니다.


가장 눈에 잘 띄는 곳, 너무나 당연해서 아무도 의심하지 않은 영역에 숨어드는 오류는 역설적이게도 규칙 기반의 프로그램이나 안일한 스캔 작업이 가장 쉽게 놓치는 허점입니다.


AI는 사전에 입력된 규칙과 데이터의 확률에 따라 글자를 기계적으로 스크리닝하지만, 문맥에서 작가가 느꼈을 주관적 망설임이나 편집자와 작가 사이의 미묘한 약속, 혹은 독자가 책을 펼쳤을 때 느낄 실체적인 위화감까지 감지해내지는 못합니다.





책을 교열한다는 것은 오직 틀린 맞춤법을 찾아내는 일에 그치지 않습니다. 작가의 난해한 손글씨 원고를 읽어내기 위해 필체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작가가 오랫동안 품어온 의도를 헤아려 맞춤법 이상의 가치를 지켜내는 일입니다. 규칙을 기계적으로 적용하는 계산기가 아니라, 문장 뒤에 숨은 사람의 온기를 알아채는 인간의 서사 이해력이 개입할 때 비로소 한 권의 책은 완성도를 얻습니다.


신쵸사가 교열부는 50명이 넘는 인원을 유지한다고 합니다. 모두가 빨리 만들고 쉽게 버리는 시대, 100년 뒤에도 남을 완벽한 한 권을 위해 붉은 펜을 드는 보이지 않는 장인들입니다. 교열자가 하는 일이 사소한 것을 붙잡고 늘어지는 일처럼 보이지만, 책 전체의 신뢰도를 지키는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디지털 스크린 속의 텍스트는 쉽게 수정되고 삭제되지만, 한번 인쇄되어 물성을 얻은 종이책은 수정할 수 없는 파노라마로 남아 책장에 자리를 잡습니다. 그렇기에 그 물건을 만들어내는 이들은 숙련된 장인처럼 나사를 조이고 실밥을 정돈합니다.


작가의 이름과 표지 디자인만 기억할 뿐, 그 문장을 몇 번이고 다시 읽으며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작가의 말버릇 하나까지 존중할지 고칠지 고민한 사람의 존재는 책 어디에도 적혀 있지 않습니다.


『비교하고 검토하는 교열부의 쿠쥬 씨』는 늘 완성된 모습으로만 만나던 책의 뒤편을 들여다보게 합니다. 원고가 완성된 '책'이라는 결정체로 탄생하기까지의 디테일한 공정과 직업 의식을 생생하게 확인하는 재미를 만끽해봅니다. 출판사 교열부의 일상을 다룬 오피스 만화를 넘어, 모든 보이지 않는 전문가들을 향한 뜨거운 헌사이자 응원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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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그대에게 잘해줄 의무가 없다
페마 초드론 지음, 신동숙 옮김 / 윌마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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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우리는 은근히 삶과 거래하며 살아갑니다. 열심히 하면 좋은 결과가 돌아와야 하고, 착하게 살면 좋은 사람이 곁에 남아야 하며, 노력한 만큼 인정받아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런데 현실은 자꾸 계산서를 찢어버립니다. 열심히 준비한 일이 틀어지고, 진심을 다한 관계가 멀어지고,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는데 예상하지 못한 일이 닥칩니다. 그럴 때면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기냐며 세상을 탓하게 됩니다.


『삶은 그대에게 잘해줄 의무가 없다』는 제목은 냉정합니다. 삶에게 권리를 요구하지 말라니 야박하게 느껴집니다. 하지만 108개의 글을 따라가다 보면 제목의 의미가 반대로 다가옵니다. 삶이 나에게 잘해주어야 한다는 기대를 내려놓는 순간, 삶이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사실 때문에 매번 무너질 필요도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이 책은 어떻게 하면 고통이 사라지는가를 알려주지 않습니다. 오히려 고통이 사라지지 않을 때도 어떻게 살아갈 수 있는지를 이야기합니다. 괜찮아지는 방법보다 괜찮지 않은 상태를 견디는 방법이 더 필요한 시대에 이 차이는 생각보다 큽니다.


저자 페마 초드론은 미국에서 태어나 교사이자 두 아이의 엄마로 살아가던 중 이혼이라는 삶의 변화를 경험했고, 이후 티베트 불교의 가르침을 접하며 초감 트룽파의 제자가 되어 수행의 길로 들어섰습니다. 티베트 불교 전통에서 정식 비구니계를 받은 최초의 미국인 여성이기도 합니다.


페마 초드론의 문제의식은 현실적입니다. 우리는 고통 그 자체보다 고통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더 괴로워진다는 걸 짚어줍니다. 이별했으면 안 되고, 실패했으면 안 되고, 불안해서도 안 되고, 화가 나서도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감정은 명령한다고 사라지지 않습니다. 오늘부터 불안하지 않겠다고 선언한다고 불안이 사라진다면 심리학은 필요 없어질 테지요.





『삶은 그대에게 잘해줄 의무가 없다』는 삶을 통제하려는 태도부터 살펴봅니다. 불편함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불편함이 있는 자리에서 도망치지 않는 것입니다.


살아가면서 원치 않는 비난이나 실직, 관계의 균열을 마주했을 때 상황을 급히 무마하려 하거나 스스로를 자책하는 습관적 반응에 빠지기 쉽습니다. 하지만 저자는 발밑의 땅이 사라지는 듯한 불안 속에서도 그저 자리를 지키며 머무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말합니다.


두려움과 원망, 질투라는 감정에 습관적 반응으로 대하지 않고, 알아차림의 자양분으로 삼을 때 외부 환경에 휘둘리지 않는 내면의 중심을 바로잡을 수 있다고 말입니다. 자괴감에 빠진 날, 나는 왜 이 모양일까라며 자책하거나 억지로 긍정적인 마음을 가질 필요가 없다고 합니다.


그저 ‘지금 내가 깊은 수치심과 두려움을 느끼고 있구나’ 하고 다정히 관찰하는 것, 그것이 바로 마이트리(무조건적인 자애)의 시작입니다. 스스로의 결점까지 다정하게 껴안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겁니다.


실용적 가르침의 정점은 독특한 마음 훈련법인 통렌(주고받기 수행)입니다. 내가 느끼는 고통과 타인이 느끼는 고통을 분리하지 않고 바라보는 훈련입니다. 무례한 행동을 하는 타인을 만났을 때 분노로 치닫기보다, 저 사람 역시 나와 마찬가지로 불안과 외로움으로 괴로워하는 한 인간이겠구나 하고 호흡을 내쉬는 훈련은 자기중심적인 에고의 벽을 점차 무너뜨려 줍니다.


고통이 나만의 실패처럼 느껴지는 순간 고통의 무게가 커집니다. 외로움은 나는 관계를 못 만드는 사람이라는 자기평가가 되는 순간 더 아파집니다. 실패는 나는 능력이 부족한 사람이라는 정체성이 되는 순간 더 견디기 어려워집니다.


고통을 없애면 행복해진다는 믿음부터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는 걸 일깨워 줍니다. 현실에서는 고통과 행복이 복잡하게 얽혀 있습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상실이 두렵고, 소중하기 때문에 이별이 아픕니다. 무언가를 이루었기 때문에 잃을까 봐 걱정하기도 합니다. 기쁨이 커질수록 그 기쁨이 영원하지 않다는 사실도 함께 따라옵니다.


"고통은 형벌이 아니며, 기쁨은 보상이 아니다"라는 문장은 제목과도 연결됩니다. 삶이 나에게 잘해줄 의무가 없다면, 고통이 찾아왔다고 해서 내가 무언가를 잘못했다는 뜻도 아닙니다. 반대로 좋은 일이 생겼다고 해서 내가 특별히 보상을 받을 만한 사람이어서 그런 것도 아닙니다.


이 관점은 실패했을 때 자기비난을 줄이는 데도 도움이 됩니다. 일이 잘 풀리지 않았을 때 내가 부족해서라고 해석하는 대신 삶에는 내가 통제할 수 없는 변화가 포함되어 있다고 바라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108개의 가르침이 두세 페이지 정도의 짧은 호흡으로 구성되어 있어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도 되고, 필요한 부분을 골라 읽어도 됩니다. 108이라는 숫자는 불교에서 108번뇌나 108배처럼 익숙한 수행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정답집이라기보다 반복해서 사용하는 마음 도구입니다. 마음이 흔들릴 때 한 페이지를 펼쳐 읽고, 명상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방식입니다.


실제로 저자가 알려주는 명상은 마음을 관찰하는 연습입니다. 명상 자세의 여섯 가지 기준을 다루고, 생각을 비눗방울처럼 바라보며 생각이 떠오르고 사라지는 모습을 알아차리는 것에 집중합니다.


머릿속에 생각이 많다는 이유로 자신을 탓할 필요가 없다는 걸 알게 됩니다. 생각은 생겨나는 것이고, 중요한 것은 그 생각을 모두 사실로 믿고 따라가느냐입니다. 나는 실패할 거라는 생각과 실패할 거라는 생각이 지금 떠올랐어는 전혀 다른 문장입니다. 그 사이에 작은 틈이 생기면 마음이 선택할 여지가 생깁니다.


삶을 원망하느라 소진되지 말자는 『삶은 그대에게 잘해줄 의무가 없다』. 고통을 만났을 때 회피하거나 저항하거나 자기 자신을 공격하는 기존 습관을 알아차리게 합니다. 삶은 나에게 잘해줄 의무가 없습니다. 나 역시 삶이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매 순간 삶과 싸워야 할 의무는 없습니다.


그 사이에 아주 넓은 공간이 생깁니다. 페마 초드론이 말하는 자유는 그 공간에 있습니다. 모든 것이 해결된 뒤에 찾아오는 평온이 아니라, 아직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도 잠시 숨을 쉴 수 있는 힘입니다.


발밑이 흔들리는 순간에도 그 자리를 떠나지 않는 것. 행복해지려고 애쓰기보다 지금의 삶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 『삶은 그대에게 잘해줄 의무가 없다』는 삶과 싸우느라 삶을 놓치지 않는 법을 가르쳐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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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티 다크심리학 - 어떤 상황에서도 상대에게 조종 당하지 않는 법
임철웅 지음 / 트로이목마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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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전 기술을 해체하고 타인의 통제 프레임을 무력화하는 인지 안전 장치 『안티 다크심리학』. 심리공학이라는 독자적인 분야를 개척해 온 대화 전문가 임철웅 저자는 시중에 유포되는 가짜 심리 기술의 환상을 파헤치고, 우리가 타인의 말에 휘둘리지 않고 주도권을 지켜낼 수 있는 체계적인 인지적 방어 시스템을 구축해 줍니다.


누군가의 뜻대로 움직이게 되었을 때 “내가 바보 같아서”, “마음이 약해서”라며 자책하곤 합니다. 하지만 저자는 판단력이 마비되는 진짜 이유를 개인의 성향이 아니라 특정 상황이 만들어내는 조건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퇴근 시간을 앞두고 상사가 이것 좀 급하게 처리해줘라는 말과 함께 다들 이렇게 한다는 늬앙스를 풍기거나, 이번만 좀 이해해달라거나... 이런 은밀한 압박을 가할 때, 일의 타당성을 따지기도 전에 ‘내가 거절하면 이기적인 사람이 되나?’라는 불안감과 시간적 압박감에 사로잡힙니다.


조종이라고 하면 거짓말, 협박, 사기, 가스라이팅처럼 극단적인 상황을 떠올리기 쉽습니다. 그러나 현실에서 사람을 움직이는 말은 훨씬 평범합니다. 악의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습니다.


흥미롭게도 지적 능력이 뛰어난 사람일수록 ‘이번에 내가 양보하는 것이 조직의 평화를 위해 합리적이야’라며 자신의 수동적 반응에 대해 그럴듯한 핑계를 사후에 만들어냅니다. 내 이성이 능동적으로 판단을 내린 것이 아니라, 타인이 조성한 긴박한 분위기와 죄책감 프레임에 갇혀 버린 것입니다.





나르시시즘, 마키아벨리즘, 사이코패시를 뜻하는 다크 트라이어드(Dark Triad) 성격 유형에 대한 조언도 있습니다. 대중 콘텐츠들은 상대를 특정 유형으로 분류하면 완벽히 방어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저자는 이런 타인 분류 작업이 현장에서 아무런 실질적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사람을 유형으로 나누기 시작하면 저 사람은 위험한 사람인가에 집중하게 됩니다. 반면 구조를 보면 지금 나는 어떤 압박 속에 있는지로 시선이 이동합니다.


우리가 상대를 나르시시스트라고 라벨링하는 동안, 실제 현장에서는 나의 판단을 우회하는 타인의 장치들이 작동합니다. 판단할 시간을 빼앗는 환경이 작동하고 있는 겁니다. 뇌는 모호한 상황을 참지 못하기 때문에, 일단 상대의 요구에 응하고 난 뒤 내가 선의를 베푼 거라고 스스로를 속입니다. 저자는 사후 정당화의 습성을 역으로 파악해야만 타인의 통제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고 강조합니다.


타인이 나의 행동을 조종할 때 가장 흔히 사용하는 기법 중 하나는 바로 선택권의 가짜 제공입니다. "A로 할래, B로 할래?"라고 물으면, 우리는 선택지가 A와 B 두 가지뿐이라고 착각하며 선택권이 나에게 있다고 믿어버립니다. 그러나 이는 원래 판 자체를 상대가 짜놓은 트랩일 따름입니다.


해석 유예의 파괴력에 대해서도 짚어줍니다. 상사가 “다시 검토해봅시다.”라고 말하면 우리는 순식간에 ‘내가 무능하다고 보는 건가?’ ‘이미 신뢰를 잃은 건가?’라는 해석으로 넘어갑니다. 해석 유예는 지금 붙이는 해석이 반드시 맞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잠시 지키는 태도입니다.


상대가 "너 나 안 사랑하지?"라고 했을 때 진짜 원했던 것은, 내가 당황해서 저자세로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내가 차분하게 "네가 그렇게 느꼈다면, 내가 지금 어떻게 해주길 원해?"라고 물어보면 상황이 완전히 바뀝니다. 이처럼 저자는 4단계 대응 시스템(사실 분리–감정 명명–해석 유예–요청 재정의)에 대해 다양한 사례와 함께 소개합니다.





『안티 다크심리학』은 대화뿐만 아니라 다방면의 인터페이스 구조까지 꿰뚫어 볼 수 있는 안목을 열어줍니다. 구독 서비스를 가입할 때는 눈에 잘 띄는 대형 버튼 하나로 순식간에 처리되지만, 해지하려면 복잡한 설문 조사와 보이지 않는 소형 텍스트 링크를 여러 번 클릭해야 하는 경험을 겪었을 겁니다.


디지털 다크 패턴과 절차적 장애물인 슬러지는 대면 대화에서의 심리 조종과 동일한 기전으로 작동합니다. 사용자의 결단력을 고갈시켜 그냥 두고 보자는 수동적 수용을 이끌어내는 겁니다.


『안티 다크심리학』은 조종이 성격이 아니라 조건임을 입증하며 심리전 신화를 깨부수고, 인지 우회 경로와 죄책감·정체성·관계 등 공격 지점 5가지를 해부합니다. 방어의 핵심인 4단계 인지 방어 시스템을 소개하고, 실제 연애, 직장, 디지털 환경에서의 대처법과 흔들린 이후의 회복 프레임까지 솔루션을 보여줍니다.


자책감 대신 주도적 판단력을 되찾을 수 있게 도와주는 책입니다. 타인의 정서적 요구에 시달리며 늘 나를 해명하느라 지쳤다면 읽어보세요. 조종하는 사람보다 조종이 작동하는 조건을 보는 눈을 키울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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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두려운 당신에게 - 배경훈 부총리가 보내는 14가지 답변
배경훈.과학기술정보통신부 지음 / 한빛미디어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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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배경훈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건네는 AI 생존 나침반 『AI가 두려운 당신에게』. 대한민국 최초의 기업 연구자 출신 부총리이자 초거대 AI 엑사원(EXAONE) 개발을 이끌었던 배경훈 장관이 연구실과 산업 현장, 그리고 국가 정책을 모두 경험한 시선으로 AI 시대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이야기합니다.


"AI 때문에 망한다"도 아니고 "AI만 배우면 된다"도 아닙니다. "AI를 두려워하지 마라"는 무책임한 위로를 건네지도 않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가 정말 고민해야 하는 질문들을 꺼내놓습니다.


아이 교육부터 직장인의 생존 전략, 창업, 국가 경쟁력, 보안, 의료, 제조업, 돌봄까지 AI라는 거대한 변화가 결국 우리의 일상과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조목조목 짚어줍니다.


AI를 어려운 기술이 아니라 생활의 문제로 끌어옵니다. 우리 아이는 무엇을 배워야 할까?, 마흔이 넘었는데 지금부터 시작해도 늦지 않았을까?, 회사 자료를 AI에 입력해도 괜찮을까? 이 질문들은 거창한 기술 담론보다 훨씬 현실적입니다. 실제로 우리는 AI 알고리즘보다 이런 문제를 먼저 고민합니다.


배경훈 장관은 대중이 겪는 불안의 진짜 원인을 기술 그 자체의 위협이 아니라, 기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모르는 불확실성에서 오는 무지라고 진단합니다. 『AI가 두려운 당신에게』는 국민들이 실제로 겪는 구체적인 의문과 질문에 답하며 막연한 공포를 해소해줍니다.





빈 화면 앞에서 보고서 목차를 잡느라 밤을 지새우던 시대는 지났습니다. 초기 기획안이나 회의록 요약은 AI가 몇 초 만에 만들어냅니다. 그렇다면 인간의 입지는 줄어든 것일까요? 인간의 역할이 단순 작업에서 사실 관계 검증과 최종 안목으로 이동했음을 짚어줍니다.


빅테크 기업들이 미처 채우지 못하는 미세한 현장의 문제를 발견하고, 거기에 AI 코파일럿을 결합한다면 1인 창업가도 대기업 못지않은 생산성을 낼 수 있습니다. 일터에서 도태되는 사람은 AI에 대체되는 사람이 아니라 AI를 부릴 줄 아는 사람에게 뒤처지는 사람일 뿐이라는 걸 일깨워줍니다.


읽으면서 가장 새롭게 다가온 부분은 왜 우리나라만의 AI가 필요한가에 대한 설명이었습니다. 왜 굳이 막대한 예산을 들여 한국형 AI를 개발해야 할까요? "챗GPT가 있는데 굳이?"라는 생각을 하기 쉽습니다. 


저자는 거시적인 국가 전략과 주권의 문제로 풀어냅니다. 해외 AI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것은 국가의 데이터 인프라와 주권, 그리고 문화적 맥락을 타국에 넘겨주는 것과 같다고 합니다. 한국의 법률과 행정 체계, 한국어 고유의 미묘한 맥락과 역사를 제대로 이해하는 AI가 없다면 미래의 국방, 의료, 교육, 공공서비스는 타국의 알고리즘에 휘둘릴 수밖에 없다고 말이죠.


AI 모델 개발을 집을 짓는 과정에 비유하며 파운데이션 모델 개념을 설명합니다. 땅을 사서 기초를 다진 뒤 철근을 세워 처음부터 집을 지어 올리는 이것이 파운데이션 모델과 닮았다고 합니다.


땅을 사서 기초부터 공사하는 거대한 작업, 즉 독립적인 파운데이션 모델을 확보하는 것은 국가의 생존이 걸린 문제입니다. 저자는 국내 연구자와 기업, 정부가 힘을 모은 독파모(독자 파운데이션 모델) 컨소시엄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고래 싸움 속에서도 신속함과 고유함으로 파도를 타는 강소국 서퍼의 전략을 들려줍니다. GPU 인프라와 데이터 센터 확보는 단순한 기술 경쟁이 아니라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의 주권을 지키는 방파제인 셈입니다.





돈과 정보가 있는 사람만 AI를 독점하고, 부유층만 더 뛰어난 인공지능 보조자를 얻게 된다면 불평등은 세습될 겁니다. 저자는 AI를 사치품이 아닌 공공 인프라로 바라봐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누구나 집에서 수도꼭지를 틀면 깨끗한 물을 마시듯, AI라는 기술 인프라도 지방 거주자, 어르신, 소상공인 등 모든 국민이 문턱 없이 누릴 수 있어야 한다는 '수도꼭지 철학'을 바탕으로 이야기 합니다.


아울러 딥페이크, 가짜 뉴스, 정보 유출 등의 위협에 대해서도 짚어봅니다. 회사의 기밀 정보는 외부 AI에 입력하지 않는다는 최소한의 가이드라인부터, AI 생성물 표시 의무화 및 이용자의 문해력 향상까지 종합적인 대안을 제시합니다.


버스와 지하철, 돌봄 현장, 농가와 공장에 AI가 스며드는 세상에서 결국 끝까지 남는 가치는 무엇일까요? 『AI가 두려운 당신에게』는 기술의 발전 속도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어떤 사회를 만들 것인가라는 방향성이라고 말합니다.


아무리 뛰어난 AI라 하더라도 스스로 가치를 판단하거나 열정을 느끼지 못합니다. 베테랑 직장인의 안목,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는 마음, 좋은 질문을 던지는 사고력은 AI 시대에 중요한 가치가 됩니다.


저자는 정부 정책을 검토할 때마다 "이 변화가 정말 한 사람의 하루를 바꾸는가?"라는 질문으로 돌아간다고 말합니다. 이 책은 정책서로 읽으면 국가 전략 브리핑이고, 교양서로 읽으면 AI 리터러시 입문서고, 에세이로 읽으면 실험실을 떠나 정부에 들어간 한 과학자의 회고록입니다.


막연한 불안을 걷어내고 당신의 일상에 AI라는 날개를 달아줄 『AI가 두려운 당신에게』. 정책과 산업, 교육, 사회, 개인의 삶을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해 설명하는 책이어서 유용합니다. 기술을 어렵게 설명하지 않고 삶과 연결해 풀어내는 AI 입문 교양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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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험하는 고고학자 - 고대 인류 문명의 모습과 소리, 냄새, 맛을 재현하는 과학자들
샘 킨 지음, 이충호 옮김 / 해나무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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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박물관 진열장에 놓인 돌칼을 보며 정말 저 돌칼로 동물을 잡았을까? 의문을 가졌던 기억이 있습니다. 설명문을 대충 읽고 고개를 끄덕인 뒤 다음 전시실로 발걸음을 옮긴 저와는 달리 직접 만들어보고, 직접 써보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베스트셀러 작가 샘 킨의 신작 『실험하는 고고학자』는 과거의 흔적을 눈으로 관찰하는 데 그치지 않고 온몸으로 직접 재현해내는 실험고고학(Experimental Archaeology)의 흥미진진한 현장으로 안내합니다. 아프리카에서 시작해 남아메리카, 이집트, 로마, 바이킹 시대, 중국, 멕시코까지 시간과 공간을 넘나듭니다.


몸을 사리지 않는 학자들과 괴짜 전문가들은 잊혀진 과거의 기술을 되살려냅니다. 그들은 오줌과 피를 뒤집어쓰고, 고대 도기에서 추출한 효모로 빵을 구우며, 중세의 연고를 직접 입에 넣어 맛봅니다.


기존의 고고학이 땅을 파헤쳐 유물을 발굴하고 정밀 측정하여 분류하는 작업에 치중했다면, 실험고고학자들은 유물을 바라보며 추측하는 데 만족하지 않습니다. 당시의 재료를 구하고, 당시의 도구를 만들고, 당시의 방식으로 생활을 재현합니다. 그래야 유물이 왜 그런 형태를 갖게 되었는지, 실제로 얼마나 효율적이었는지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과정에서 등장하는 연구자들은 우리가 떠올리는 과학자의 이미지와 꽤 다릅니다. 화학자와 미생물학자는 물론이고 셰프, 미용사, 문신 전문가, 생존기술 전문가까지 등장합니다. 고대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연구자가 됩니다. 학문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모습 자체가 무척 인상적입니다.


무엇보다 시행착오와 실패를 있는 그대로 보여줍니다. 그래서 과학이 완벽한 정답을 만드는 과정이 아니라 수없이 몸으로 부딪히며 가능성을 좁혀가는 작업이라는 사실도 자연스럽게 전달됩니다.





이집트의 빵과 맥주 재현 프로젝트는 실험고고학이 어떻게 학문 간 경계를 허물고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지 보여주는 에피소드입니다. 아마추어 맥주 양조가이자 연구자인 세이머 블랙리는 고대 이집트 박물관의 도기 파편에 침투해 수천 년간 잠들어 있던 효모 포자를 추출하는 시도를 감행했습니다.


자기 집 뒷마당에 파라오 시대의 화덕을 만들었고, 불쏘시개로 쓰기 위해 고대 이집트인이 사용한 것과 비슷한 아카시아나무를 구해와, 1년 동안의 연습 끝에 해냅니다.


고대 이집트 맥주를 재현해 직접 음용하는 실험도 흥미진진합니다. 실험고고학은 박물관의 시각적 유물에 냄새와 맛, 풍미라는 다차원적 감각을 입혀 과거의 문화를 입체적으로 체감하게 해줍니다.


고대 항생제 연구는 과거의 재현을 넘어 현대 과학이 직면한 난제를 해결하는 실용적 단초를 제공합니다. 연구진은 중세 10세기 문헌에 기술된 눈 연고(와인, 마늘, 양파, 소 쓸개즙 등을 혼합한 처방)를 원본 그대로 제조했습니다. 그리고 저자는 자신에게 찾아온 예기치 않은 감염을 계기로 이 괴괴한 혼합물을 직접 자신의 몸에 시험하는 기행을 마다하지 않습니다.





과거를 연구하는 이유는 향수를 느끼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잊혀진 지식 속에서 오늘의 문제를 해결할 가능성을 찾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오래된 것을 낡은 것으로 치부하는 데 익숙하지만, 실험고고학은 오래된 것이 반드시 뒤처진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합니다. 수백 년, 수천 년 전의 기술이 현대 과학의 새로운 연구 분야를 여는 장면은 과거와 현재가 경쟁하는 관계가 아니라 서로를 보완하는 관계임을 보여줍니다.


투창기와 활·화살의 물리적 역학을 비교 분석하는 에피소드는 인류 역사에서 남녀의 역할 분담이 생물학적 조건 때문이 아니라, 기술적·문화적 변화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투창기는 여자가 남자보다 더 잘 던지는 경우가 많지만 활과 화살은 대체로 남자에게 유리한 경향이 있고, 그 결과 활과 화살은 남자가 지배하는 무기가 되었다고 말합니다.


웨스트포인트 사관학교 사격장에서 중세 화약과 복제 대포를 발사하는 실험, 무두질 가죽을 다루는 야생 자연 학교의 생생한 풍경 등 도구와 무기를 직접 만들어 작동시켜보는 실험들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집니다.


온몸의 감각으로 고대 인류의 진짜 삶과 만나는 지적 모험 『실험하는 고고학자』. 고대 로마 여성의 머리 모양을 재현하기 위해 미술관 흉상의 뒷모습을 유심히 관찰하는 미용사, 중세 화약 제조법을 되살리는 화학자, 트레뷰셋을 직접 만들어 발사하는 역사학자까지. 얼핏 보면 취미 생활처럼 보이는 실험들입니다. 호기심 하나가 연구의 출발점이 되고, 손으로 직접 만들어 보는 과정에서 새로운 사실이 발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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