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뇌를 종료합니다 - 나를 괴롭히는 108번뇌 탈출 필사
필로소피랩 지음 / 각주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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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려고 누웠지만 정작 머릿속의 백그라운드 앱은 수십 개가 동시에 돌아가며 배터리를 갉아먹는 듯한 피로감. 짜증, 박탈감, 과거를 복기하는 후회의 감정들까지. 복잡다단한 마음의 과부하 속에서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불안과 번뇌라는 이름의 무한 루프에 갇힌 현대인을 위한 심리 최적화 가이드 『번뇌를 종료합니다』. 부제는 '나를 괴롭히는 108번뇌 탈출 필사'. 고전의 깊은 지혜를 일상의 언어로 재번역하는 콘텐츠 연구소 필로소피랩은 불교의 번뇌 분류 체계를 우리의 감정 지형 위에 겹쳐 놓습니다.


번뇌를 마음의 오류 코드로 바라봅니다. 번뇌 CODE 001부터 108까지 번호가 매겨져 있습니다. 각각의 번뇌에는 근원(진단명), 경전 문장(처방전), 해석(복약 설명서), 필사란(직접 투약), 체크리스트(복용 확인)가 따라붙습니다. 마음을 다루는 일에도 순서와 방법이 있습니다.


왼쪽 페이지에 번뇌의 진단과 해석이, 오른쪽 페이지에는 필사 공간과 3단계 실천 체크리스트가 있습니다.


우리가 마주하는 첫 번째 오류는 탐욕개(貪欲蓋)입니다. 누군가의 성공이 나의 실패처럼 느껴진다거나 SNS를 볼 때마다 초라해진다 같은 상태가 대표적입니다.


탐욕개가 다루는 번뇌들의 공통 구조는 비교입니다. 나와 타인, 현재와 과거, 현실과 이상 사이의 간극이 욕망을 생산하고, 그 욕망은 충족될수록 다음 결핍을 예약합니다. 만족의 불가능성은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감각 작동 방식 자체의 문제라는 인식, 이것이 탐욕개가 주는 첫 번째 전환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인생 명언을 찾아 헤매는 이유도 결국 비교와 결핍의 굴레에서 벗어날 실마리를 얻고 싶기 때문일 겁니다.





두 번째 오류인 진에개(瞋恚蓋)는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세상과 타인을 향해 뿜어내는 날카로운 저항선, 즉 분노와 원망을 다룹니다. 화가 날 때마다 폭발시키는 것은 에너지가 넘쳐서가 아니라, 오히려 감정을 다루는 심리적 근력이 부족하다는 반증이라는 말이 와닿습니다.


겉으로는 점잖게 상황을 정리한 것 같지만 내면에서는 여전히 앙금이 가라앉지 않은 상태, 즉 위장된 용서의 모순까지 파고듭니다. "깨달았다는 생각조차 내려놓아야 한다. 나는 이제 분노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하는 그 마음 자체가 또 하나의 집착이다."라고 짚어줍니다.


3부에서 다루는 수면개(睡眠蓋)는 정신이 혼미하고 무기력하여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는 심리적 셧다운 상태를 의미합니다. 감각이 무뎌졌다, 계속 미룬다,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이 어렵다 등 번아웃 신드롬에 신음하는 직장인들의 일상을 보는 듯합니다.


수면개의 번뇌들이 공통으로 가진 구조는 지금 이 순간의 회피입니다. 과거의 원인을 분석하거나 미래의 결과를 계산하면서 현재의 행동을 유예하는 패턴. 이를 마음의 백그라운드에서 꺼지지 않은 프로세스로 묘사합니다. 처리되지 않은 번뇌는 소멸하지 않고 자원을 소모하며 작동 중이라는 겁니다.


이때 필요한 것은 더 짜릿하고 강력한 외부의 자극이 아니라, 손끝에 닿는 촉감이나 귓가를 스치는 바람 소리 같은 미시적인 존재들에 다시 주의를 기울이는 섬세한 깨어있음입니다.


4부 도회개(掉悔蓋)는 마음이 안정을 찾지 못하고 위아래로 심하게 요동치며 조급해하거나, 지나간 실수를 끊임없이 곱씹으며 자책하는 상태를 조명합니다. 들뜸과 후회의 마음입니다.


그때 이랬더라면 하고 생각한다, 한 가지 일을 끝내지 못하고 계속 다른 것을 건드린다 등의 오류 코드는 우리의 마음이 지금, 여기라는 현재 시제에 안착하지 못할 때 발생하는 인지 오류를 보여줍니다.


마지막 5부 의개(疑蓋)는 자기 자신과 세상을 믿지 못해 끊임없이 망설이고 유예하는 결정 장애와 냉소의 오류를 정조준합니다. 잘하고 있는 걸까 걱정된다, 완벽한 답을 찾을 때까지 움직이지 못한다, 실패가 두려워 아예 시도조차 안 한다 등은 리스크를 최소화하려는 방어기제가 도리어 삶의 발목을 잡는 역설적인 순간들을 담아냅니다.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작은 변수에도 판단을 뒤집으며 스스로를 의심하는 과정은 영혼을 서서히 갉아먹습니다. 의심과 두려움도 마찬가지입니다. 리스크를 경계하는 합리적인 의심은 필요하지만, 그 의심이 내면을 잠식해 아무것도 선택하지 못하게 만든다면 그것은 지혜가 아니라 영혼의 감옥일 뿐입니다.


『번뇌를 종료합니다』는 인생이라는 랜덤 게임 속에서 완벽한 확신이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환상임을 명확히 짚어냅니다. 108배를 통해 108가지 감정 과부하를 내려놓듯, 내 안의 웅크린 의심을 거두고 일단 가볍게 선을 그으며 한 걸음을 내딛는 것. 두려움을 용기로 치환하는 고전의 진짜 사용법입니다.





무기력, 번아웃, 관계 갈등, 만성적 불안을 겪는 이들이라면 108가지 번뇌 목록 어딘가에서 정확하게 자신의 감정을 발견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매일 밤 하루 한 페이지씩, 내 마음에 켜진 버그 가득한 윈도우 창을 하나씩 닫아가는 심리적인 아웃트로 루틴을 만들어보세요.


2600년 동안 검증된 부처의 디버깅 가이드를 따라 108일간 묵묵히 써 내려가다 보면, 어느덧 불필요한 백그라운드 앱이 모두 정리된, 몰라보게 가볍고 쾌적해진 내면의 진짜 나를 만나게 될 겁니다.


종교적 색채를 최소화했다는 점도 매력적입니다. 경전은 등장하지만 설교처럼 느껴지지 않습니다. 오래된 철학을 현대인의 정신 관리 매뉴얼처럼 번역합니다. 이미 오래전부터 인간의 반복되는 패턴이었다고 말합니다. 내가 이상한 게 아니라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가 원래 흔들리는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다고 체념을 권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반복되는 번뇌를 관찰하고 이름 붙이고 정리하라고 말합니다. 중요한 건 번뇌가 없는 사람이 되는 게 아니라, 번뇌에 끌려다니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유행처럼 소비되는 인생 명언 모음집을 넘어, 직접 손으로 써 내려가며 삶의 태도를 바꾸게 만드는 실천서 『번뇌를 종료합니다』. 매일 하나의 번뇌를 진단하고 경전 문장을 따라 쓰는 3단계 필사 루틴을 통해 주도적인 마인드 컨트롤러로 거듭나는 실천적이고 즉각적인 마음 정리의 효용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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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야 놀자
김선규 외 지음 / 문학고을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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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고을 강원지부 동인들이 엮어낸 『감자야 놀자』. 강원도와 감자라는 시각적 기표가 주는 선입견을 가지고 읽는다면 깜짝 놀랄 겁니다. 향토적인 서정을 노래하는 데 그치지 않고, 영혼의 허기짐을 앓고 있는 고독한 현대인들 특히 오늘날의 청춘들에게 무척이나 유효한 생의 지표를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각기 다른 삶의 궤적을 그리던 아홉 명의 문우들 (김수진, 신기순, 김선규, 달빛바람, 정우연, 유영숙, 윤장은, 주진복, 유영준)이 각자의 삶에서 채취한 원료들을 이 책 한 권에 모아냈습니다. 시, 수필, 단편소설을 가로지르는 이 동인지는 지금도 익어가는 사람들의 기록에 가깝습니다.


김수진 작가의 작품은 일상의 풍경을 세심하게 포착합니다. 시 「소나무」는 그 진수를 보여줍니다. "살아살아 살아진다. / 푸른 잎새 늘 그 자리 / 등껍질 벗긴 자리 솔방울 떨어지면 / 하늘 향한 굳은 신념 / 살아짐에 순응한다."


살아살아 살아진다라는 시어가 참 좋습니다. 가만히 소리 내어 읊조릴 때의 그 맛이 남다릅니다. 눈으로 읽을 때보다 입술과 혀를 거쳐 귀로 들을 때 비로소 그 진가가 발휘되는 참 근사한 시어입니다.


내가 주체가 되어 악착같이 버텨내는 '살아'라는 능동의 외침이 반복되다가 세상의 흐름에 몸을 툭 맡겨버리는 '살아진다'라는 수동의 울림으로 끝맺음합니다. 그저 존재 자체로 살아냄을 보여줄 뿐입니다. 억지로 버티는 것이 아니라 살아짐에 몸을 맡기는 것, 이것이 강원의 자연이 가르쳐 준 지혜인지도 모릅니다.





신기순 작가의 시 「계란 한 판」은 사회적 시선을 담은 작품 중 하나입니다. "미끄러운 길보다 / 미끄러울까 봐 더 조심스러운 것은 / 그 하루의 끼니일지도 모르겠다"


등 굽은 할아버지가 왼손에는 지팡이, 오른손에는 계란 한 판을 들고 걷습니다. 바람이 불 때마다 계란들이 서로를 끌어안는다는 표현이 빛납니다. 넘어질까 봐 두려운 것이 아니라 끼니를 놓칠까 봐 두려운 노인의 하루. 문학의 언어로 짚어내니 더 애잔하게 다가옵니다.


동인지 발간사를 쓴 김선규 작가의 「총알과 사랑의 상관관계相關關係」는 오발탄-불발탄-연발탄의 3부 구조로 사랑의 방식을 해부합니다. "내가 그의 심장을 향해 쏜 총이 / 그의 머리카락을 스치듯 지나갔다 / 아무 일도 없는 조용한 침묵 / 오발된 총알은 어디에서도 / 찾을 수 없고 그는 떠나갔다"


사랑을 총알의 물리학으로 설명하는 발상이 낯설고도 정확합니다. 닿지 못한 사랑(오발탄), 터지지 않은 사랑(불발탄), 방탄복을 뚫지 못한 사랑(연발탄). 실패의 양태는 사랑이 언제나 의도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직시합니다.


필명 달빛바람의 시는 유머를 머금고 있습니다. 「방귀들의 대화」, 「T의 표현법」, 「배고픈 숟가락」처럼 웃음 속에 삶의 결핍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어 인상 깊었습니다. 우리가 겪는 고독과 결핍을 억지로 포장하려 하지 않고, 오히려 그 쓸쓸함의 실체를 투명하게 대면하게 만듭니다. 「바람」에서의 "아픔 도둑 / 세월 도둑"이라는 극도로 압축된 두 행짜리 시구도 매력적입니다.


정우연 작가의 「목련」은 가슴 아린 작품 중 하나입니다. 시대의 한파 앞에서 제대로 피어나지 못하고 스러지는 청춘들의 좌절을 연상시키기도 합니다. "봄볕에 취해 / 철모르고 피어"났으나, 세상은 여전히 "겨울 같은 바람"으로 가득 차 있기에 꽃잎은 아리게 멍들고 맙니다. "빛을 잃은 날 / 꿈을 잃고 / 다시는 보지 못할 / 고운 봄을 잃었다"라는 가슴 시린 이야기. 저마다의 마음속에 묻어둔 잃어버린 봄을 생각나게 합니다.





유영숙 작가의 「저온 저장고」는 기억을 보존하는 방식에 대한 탁월한 은유가 빛납니다. "나도 기억 저장고를 만들고자 한다 / 사시사철 기억 저장고를 들어가 / 돌풍과 폭우로 당혹스러웠던 이별의 날들을 / 차곡차곡 경험으로 빚어 / 저장고에 넣어두고자 한다"라며 상처를 잊으려 하지 않고 저온 저장하겠다는 선택, 이별을 경험으로 빚어 저장하겠다는 태도에서 삶에 대한 단단한 성숙이 느껴집니다.


윤장은 작가의 작품들은 이 동인지에서 가장 긴 호흡을 가지고 있습니다. 「외로움과 허기짐을 착각해서」와 함께 「사람이… 그리웁다」 등은 한 편의 소설처럼 전개됩니다. 현대인들이 겪는 고질적인 정신적 질환인 소외와 공허를 재구성해 냅니다.


주진복 작가의 「자기 삶에 대한 예의」에서는 "대충 살아도 된다고 하지만 / 그 말 뒤에 숨은 쓸쓸함 / 한 번뿐인 인생 / 조금 더 따뜻하게 / 진심으로 살아야 하지 않을까"라는 문장이 와닿습니다. 허무주의와 무기력증에 빠진 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시입니다.


마지막 주자 유영준 작가는 수필과 단편소설로 이 동인지의 문을 닫습니다. 수필 「소설을 써야 하는 변명」에서 "오늘은 내가 왜 소설을 쓰는지 그 고집스러운 내막과 변명을 늘어놓고자 한다. 굳이 왜 '소설' 이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라며 운을 뗍니다.





시에서 수필로, 수필에서 소설로 장르를 넘나든 이력은 언어에 대한 끝없는 갈증의 산물입니다. 그리고 단편소설 「환상방황環狀彷徨」을 선보입니다. 동인지 안에서 비교적 실험적인 작품인데, 그래서 더 기억에 남습니다.


분명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믿었지만, 안개가 걷히고 나면 늘 제자리인 것만 같은 청춘들의 불안감과 좌절감이 투영되어 있습니다. 삶이란 결국 제자리걸음인지, 아니면 계속 맴돌며 다른 사람이 되어가는 과정인지 질문하게 만듭니다.


중장년층 독자에게는 자신의 기억과 공명하는 시어들이 풍부하게 담겨 있고, 젊은 청년층 독자에게는 세대 너머의 감각을 날것으로 경험할 기회가 됩니다. 거창한 문학이 아닌, 삶의 틈새에서 피어난 언어들이 얼마나 깊이 있을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책입니다. 삶에 지친 밤, 밥 냄새 같은 시와 수필이 필요하다면 『감자야 놀자』를 펼쳐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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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은 서두르지 않는다 - 빛과 바람이 들려준 삶의 문장들
김산들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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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삶의 속도를 잃어버린 시대, 『계절은 서두르지 않는다』는 가족과 자연에서 배운 삶의 리듬으로 독자에게 다정한 위로를 건네며 지금의 삶을 돌아보게 하는 책입니다.


KBS 〈인간극장〉과 유튜브 채널 산들무지개를 통해 수많은 이들에게 깊은 울림을 안겨준 김산들 작가. 이 책에서는 영상이 미처 다 담아내지 못했던 고산 평야의 고요한 사유와 자연의 척박함 속에서 길어 올린 단단한 문장들이 담겼습니다.


저자는 IMF 시기를 지나며 삶의 방향을 완전히 바꾸었습니다. 인도로 떠났고, 여행 중 자전거로 세계를 누비던 스페인인 남편 산똘을 만나 새로운 인생을 시작했습니다.


스페인 발렌시아 북서쪽 해발 1,200미터 비스타베야 평야에 정착해 200년 된 돌집을 고치고, 태양광과 빗물에 기대어 살아가는 삶을 꾸려 왔습니다. 낭만적 귀촌 에세이와는 결이 다릅니다. 인간이 자연 속에서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그리고 그 작음을 받아들이는 일이 왜 삶을 가볍게 만드는지를 기록한 생활 철학서입니다.


고산 지대의 봄은 요란하게 찾아오지 않습니다. 저자는 길가에 늘 존재했으나 그 누구도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던 낯선 포플러나무가 어느 날 문득 파릇파릇한 잎을 펼치며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순간을 포착합니다.





아이들과 등굣길에 발견한 이 나무의 존재를 인식한다는 것은 곧 내면의 시선을 확장하는 행위입니다. 사소한 풍경의 변화를 응시할 여유를 잃어버린 요즘입니다. 저자의 포착은 우리가 타인과 세계를 향해 시선을 던질 때, 비로소 세상이 더욱 풍요롭게 연결된다는 사실을 일깨워 줍니다.


겨울을 버텨낸 생명들에게는 봄이 오히려 먹을 것이 부족한 보릿고개의 시간이기도 합니다. 혹독한 자연환경 속에서도 새들과 양 떼 그리고 인간이 어떻게 각자의 자리를 지키며 상생하는지 묘사합니다.


암에 걸린 오랜 친구를 위해 매달 생활비를 보태기로 결정하는 부부의 에피소드가 인상 깊었습니다. 남편 산똘은 “100유로가 더 있다고 우리가 더 행복해질까?”라고 말합니다. 자신의 몫을 덜어내어 타인의 고통을 분담하는 행위가 오히려 주체의 영혼을 자유롭고 가볍게 만들었습니다. 물질적 결핍 속에서도 서로를 향해 기울어지는 생명들의 다정한 연대를 통해 인간관계의 가치를 보여줍니다.


해발 1,200미터의 뜨겁고 건조한 여름, 이 혹독한 열기가 생명체들의 뿌리를 더욱 깊은 땅속으로 뻗게 만드는 필수적인 과정임을 짚어줍니다.


여름 편에서 가장 강렬한 상징성을 지니는 소재는 트러플(송로버섯)입니다. 트러플은 비바람과 번개, 그리고 우박이 잦은 거친 해에 오히려 더욱 독특하고 깊은 향을 품은 채 자라난다고 합니다. 온실 속의 화초처럼 안락한 환경 속에서 자란 존재는 결코 가질 수 없는, 삶의 고난이 빚어낸 결과물인 셈입니다.


남들보다 더 험난한 오르막길을 걷고 있거나, 유난히 척박한 삶의 계절을 지나고 있다면 그것은 결코 헛된 고생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에 쉽게 사라지지 않을 깊은 향기를 채워 넣는 과정이라는 것으로 위로를 건넵니다.


한여름 오후, 창문 너머로 쏟아지는 햇살을 바라보며 마시는 차가운 가스파초 한 모금은 몸 안에서 부드러운 바람을 일으킵니다. 잘 익은 토마토, 오이, 빨간 파프리카, 양파, 마늘을 바게트 빵, 올리브유, 식초와 함께 블렌더에 넣고 갈아 마시는 차가운 수프. 타오르는 태양 아래서 지친 몸에 수분과 미네랄을 보충해 주는 고산 평야의 생존식입니다.


가을은 결실의 계절이자 다가올 겨울을 준비하기 위해 사방에 널린 열매들을 거두어들이는 수확의 시기입니다. 그런데 고산 평야의 가을은 인간만을 위한 무대가 아닙니다. 야생 포도와 배나무를 두고 인근의 양 떼들과 소리 없는 선착순 경쟁을 벌이는 일상을 유쾌하게 그려냅니다.


자연 속에서의 수확은 철저히 공유의 개념으로 흘러갑니다. 내가 한 발 늦으면 양 떼가 포도를 전부 먹어 치우고, 내가 조금 부지런하면 배를 따다가 설탕 절임이나 케이크를 만들어 먹는 식입니다.





모든 생명이 활동을 멈추고 냉혹한 추위가 대지를 지배하는 겨울, 돌집은 화목난로의 불길로 온기를 유지합니다. 타오르는 장작불을 멍하니 바라보며 인간의 인생 역시 장작처럼 무언가를 끊임없이 태우고 소멸시키며 나아가는 과정임을 깨닫습니다.


장작이 타들어 가는 행위는 그저 소멸이 아니라, 자신의 온몸을 바쳐 주변을 따뜻하게 만드는 이타적 연소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물인 재는 다시 대지의 영양분이 되어 봄의 싹을 틔웁니다. 이처럼 자연의 순환 구조 속에서 저자는 인간이 취해야 할 궁극적인 태도가 비움과 내려놓음에 있음을 배웁니다.


해가 뜨지 않아 전기가 끊기고, 애써 기르던 닭들이 닭장을 탈출해 산으로 도망치며, 멧돼지가 내려와 정성껏 가꾼 텃밭을 엉망으로 뒤엎어 놓는 조난과도 같은 날들이 지속되기도 합니다. 그럴 때마다 저자는 좌절하는 대신 주문을 외칩니다. “나는 좋아요! 잘 지내요!”


이 외침은 현실을 무책임하게 낙관하는 정신 승리가 아닙니다. 어제가 엉망이었을지라도 오늘을 잘 지낸다고 명명하는 순간, 거친 겨울의 일상은 견뎌낼 수 있는 극복의 무대로 바뀝니다.


200년 된 돌집에서의 자급자족적 삶. 어디에 사느냐보다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느냐의 문제라는 걸 보여줍니다. 도심 한복판에 살아가더라도 내 마음속에 해발 1,200미터 평야의 고요한 리듬을 품고 있다면, 타인의 시선과 사회적 조급증에 흔들리지 않고 나답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계절은 서두르지 않는다』는 외부의 거친 비바람과 오르막길 속에서도 스스로를 무너뜨리지 않는 단단한 내면의 중심축을 세울 때 생기는 희망을 엿볼 수 있습니다. 스페인 고산 지대의 생생한 생활 밀착형 에피소드와 이국적인 풍경이 마음을 다독입니다. 조급한 삶의 속도를 잠시 늦추고, 자신만의 방향을 다시 바라보게 만드는 다정한 위로의 에세이이자 삶을 돌아보게 하는 책입니다. 속도 중심의 삶에서 방향 중심의 삶으로 전환할 수 있는 내면의 브레이크를 선물받아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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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을 만들지 않는 대화법 (18주년 특별기념판) - 사람을 얻는 마법의 대화 기술 56
샘 혼 지음, 이상원 옮김 / 갈매나무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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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국내 출간 이후 18주년을 맞아 새롭게 단장한  『적을 만들지 않는 대화법』. 오랫동안 직장인들의 스테디셀러로 군림해왔습니다. 인간관계에서 오는 피로감을 무조건 참으라고 강요하는 도덕 교과서가 아니라, 내 잘못도 아닌 일에 고함을 지르는 사람 앞에서 어떻게 품위를 지키며 승리할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인 시나리오를 주기 때문입니다. 56가지 마법의 대화 기술을 만나보세요.


이 책을 읽는 또 다른 즐거움은 곳곳에 박힌 촌철살인의 명언들입니다. 사례 기반 서술도 강점입니다. 워크숍 참가자들의 반응, 협상 현장의 대화들이 생생하게 등장합니다. 각 장의 실전 TIP은 방금 읽은 내용을 즉시 사용 가능한 형태로 재정리해 줍니다.


비즈니스와 인간관계의 복잡한 역학 관계 속에서 언어적 폭력과 무례함에 노출된 현대인들에게, 커뮤니케이션 전문가이자 비즈니스 전략가인 샘 혼은 묻습니다. 왜 누군가가 던진 말의 파편에 맞서 똑같이 칼을 휘두르거나 혹은 반대로 아무 말도 못 한 채 마음의 멍을 키우느냐고 말입니다.


그가 고안해낸 텅후(Tongue Fu!)는 말 그대로 입술로 행하는 무술(Kung Fu)입니다. 그러나 이 무술은 상대를 타격하여 쓰러뜨리는 파괴적인 기술이 아닙니다. 나에게 날아오는 언어적 공격의 궤도를 우아하게 틀어놓고, 상대를 해치지 않으면서도 나 자신을 온전하게 방어하는 언어적 유도에 가깝습니다.





갈등이 발생한 순간, 우리의 뇌는 본능적으로 싸우거나 도망치거나의 이분법적 선택지에 직면합니다. 샘 혼은 이 찰나의 순간을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이라는 은유로 설명합니다. 상대의 도발에 울컥하여 거친 언사를 내뱉는 순간 우리는 경사가 가파른 내리막길로 순식간에 미끄러져 내려가며, 그 끝에는 자괴감과 파멸만이 기다리고 있을 뿐입니다.


우리가 마주하는 수많은 까다로운 사람들은 사실 저마다의 결핍과 두려움을 투사하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분노가 가져오는 치명적인 위험성을 통렬하게 짚어줍니다. "anger(분노)에 한 글자만 더하면 danger(위험)가 된다."라고 말입니다.


분노라는 감정에 사로잡히는 순간, 대화의 본질은 사라지고 오직 감정의 배설만이 남게 됩니다. 샘 혼은 언어적 공격을 받았을 때 즉각적으로 반응하기보다, 말하기 전에 생각한다는 목적으로 한 걸음 물러서는 여유를 가져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상대가 교묘하게 나를 조종하려 들거나 부당한 태도로 일관할 때, 그 페이스에 휘말리지 않는 최선의 방법은 상대를 관찰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이 사람은 왜 이렇게 까다롭게 구는 걸까?"라는 질문은 상대를 향한 분노를 호기심으로 전환해 주는 유용한 심리적 완충 장치가 됩니다.


상대가 강하게 밀고 들어올 때 똑같이 밀어내는 것은 하수의 선택입니다. 진정한 고수는 상대가 가하는 힘의 방향을 그대로 이용하여 상황을 반전시킵니다.


내가 옳은 상황에서도 협상 테이블에 앉아야 하는 이유는 명확합니다. 상대를 계몽하거나 처단하는 것이 대화의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나의 평화와 실익을 지키기 위해서 때로는 입안에 맴도는 날카로운 말을 꿀꺽 삼켜버리는 침묵의 기술이 필요합니다. 침묵은 수세적인 도망이 아니라, 상대의 공세를 무력화하는 가장 강력한 공수전환의 기법입니다.


갑작스러운 모욕이나 공격을 받으면 뇌가 얼어붙어 적절한 대답이 떠오르지 않기 마련입니다. 이때 샘 혼의 치트키는 바로 상대에게 다시 질문의 공을 넘기는 것입니다.


누군가 당신을 정면으로 깎아내릴 때는 “무슨 뜻이지요?”라고 물으며 상대에게 다시 공을 넘기라고 합니다. 분노를 지연시켜 공격에 즉각 대항하지 않게 하고, 상대의 의중을 드러내 당신이 사태를 파악할 수 있게 하고, 당신 스스로 생각할 시간을 벌어 후회할 말을 피할 수 있는 등 장점이 많습니다.


우리가 무심코 사용하는 단어 중에는 대화의 온도를 순식간에 빙하학적으로 떨어뜨리는 폭탄들이 숨겨져 있습니다. 샘 혼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반복하는 언어적 습관을 미시적으로 관찰하며, 어떤 단어를 버리고 어떤 단어를 채워 넣어야 하는지 처방합니다.


예를 들어 '하지만 (But)' 은 상대의 의견을 전면 부정하고 반발심을 유발하는 단어입니다. 텅후(Tongue Fu)식 대안은 '그리고 (And)'를 사용해 앞선 맥락을 인정하면서 생산적인 대안으로 연결합니다.


'안 돼 (No)'는 상대의 권리를 박탈하여 즉각적인 적대감을 만드는 말입니다. 대안은 '조건부 수용'입니다. 불가능한 이유 대신 언제, 어떻게 가능한지 설명하는 겁니다.





아무리 뛰어난 말재주와 화려한 텅후 기술을 가졌다고 해도, 그 밑바탕에 존중과 공감이 결여되어 있다면 그것은 단지 교묘한 말장난에 불과할 겁니다. 이 책의 궁극적인 지향점은 상대방을 논리적으로 때려눕히는 백전백승의 궤변가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상대의 마음을 얻어 궁극적인 내 편으로 만드는 데 있습니다.


우리가 인간관계에서 저지르는 가장 흔한 오류 중 하나는 상대방이 힘겨운 감정을 토로할 때 대단한 해결사라도 된 양 이성적인 처방전을 내밀어 대는 오만함입니다.


슬픔이나 고민에 빠진 이들에게 정작 필요한 것은 분석이나 솔루션이 아니라 자신의 고통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 주는 따뜻한 수용입니다. "그 말이 옳습니다"라는 한마디 혹은 최소한 상대가 분노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에 대한 인정만으로도 단단히 닫혀 있던 마음의 빗장은 스르르 풀리게 됩니다.


상대를 쉽게 단정 짓고 낙인찍는 서두른 판단을 멈추고, 한 번 더 기회를 주는 넓은 품을 가질 때 우리의 인간관계는 비로소 성숙의 궤도에 진입합니다.


첫 출간 이후 세월이 흘러 소통의 채널이 SNS와 메신저로 다변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오해와 갈등의 본질은 변하지 않았기 때문에 여전히 울림을 줍니다. 오히려 비대면 소통이 늘어난 요즘 세대일수록, 텍스트 뒤에 숨은 뉘앙스를 읽어내고 무례한 공격으로부터 나를 지켜내는 텅후의 가치는 더욱 빛을 발합니다.


『적을 만들지 않는 대화법』은 나를 존중하는 동시에 타인의 영토를 침범하지 않는, 고도의 균형 감각을 요구하는 삶의 태도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이 책이 소개하는 56가지의 나침반을 따라 한 걸음씩 내딛다 보면, 그 어떤 말의 칼바람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품격 있고 당당한 커뮤니케이터로 거듭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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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없는 감정들의 사전
이아코포 멜리오 지음, 최보민 옮김 / 서교책방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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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이상하게도 감정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 경험이 있나요? 고작 “그냥 좀 이상했어”, “말하긴 좀 복잡해”라는 말로 때워버린 그 미묘한 무언가 말입니다.


『이름 없는 감정들의 사전』은 세계 여러 언어 속에 숨어 있는 감정 단어들을 모아, 말해지지 못했던 마음의 지도를 펼쳐 보입니다. 우리 마음의 해상도를 극한으로 끌어올리는 인문학적 여행을 떠나보세요.


이탈리아의 인권·사회권 운동가이자 작가, 논설위원, 정치인 이아코포 멜리오가 칼럼 <말은 오래 남는다(Verba manent)>를 통해 연재하던 글을 묶어낸 책입니다. 사전처럼 딱딱하지 않습니다. 시집과 에세이, 철학 노트와 감정 일기가 한 권 안에서 동시에 숨 쉬는 느낌입니다.


저자는 언어가 붙잡지 못한 감정들의 이름을 잡아챘습니다. 사회적 약자의 권리와 평등 문제를 오래 다뤄온 활동가였던 그는 감정 역시 인간의 존엄과 연결되어 있다고 바라봅니다. 이름 붙일 수 없는 감정은 쉽게 무시되기 때문입니다.


감정을 설명하는 방식 자체가 다릅니다. 행복, 슬픔, 분노와 같은 감정 분류 대신 자주 겪으면서도 쉽게 표현하지 못했던 마음의 잔상들을 포착합니다. 혼자 있고 싶지만 완전히 고립되기는 두려운 상태, 어떤 하루가 이상하게 오래 기억될 것 같은 예감 등 그런 미세한 정서를 세계 각국의 단어를 통해 번역해냅니다.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데 서툰 알렉시티미아(감정표현불능증)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이름 없는 감정들의 사전』은 내면의 시끄러운 감정을 말로 뱉지 못해 답답할 때, 명확한 언어적 무기를 쥐여주며 정서적 해방감과 치유를 안겨줍니다.


알바니아어 베사(Besa)는 사랑하는 사람을 향한, 깨뜨릴 수 없는 신성한 약속을 뜻합니다. 단순히 약속을 지킨다는 의미를 넘어섭니다. 한국어로 굳이 옮기자면 의리나 신의에 가깝겠지만, 그것보다 훨씬 신성한 무게를 지닙니다. 일정은 쉽게 취소되고, 말은 맥락 없이 소비되는 요즘, 그래서인지 베사라는 단어는 오히려 그리운 감각으로 다가옵니다.


아랍어 구르파(Gurfa)는 한 손으로 뜰 수 있는 물의 양이라고 합니다.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딱 그만큼. 아랍·이슬람 문화권에서 이 단어는 가진 것의 일부를 기꺼이 건네는 이타적 친절의 상징으로 쓰입니다. 사막에서 목마른 이에게 한 움큼의 물을 내미는 행위 그것이 구르파입니다. 풍족할 때 나누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구르파가 아름다운 이유는, 자신에게도 충분하지 않을 수 있는 상황에서 그 일부를 내어준다는 데 있습니다.


삶을 실제로 지탱하는 것은 지극히 사소하고 감각적인 찰나의 순간들입니다. 매일 반복되는 지루한 일상 속에서 문득 차오르는 해방감 혹은 스치듯 지나가는 삶의 경이로움을 포착하는 단어들이 어이집니다.


‘아, 내 기분이 지금 딱 이래!’라며 가슴을 치면서도 정작 이름 붙이지 못했던 기막힌 상황들에 딱 맞는 단어들이 등장합니다. 하와이어 아키히(Akihi)는 어떤 장소에 어떻게 가야 하는지 누군가가 설명을 해줘서 감사 인사를 전하고는 그 장소를 찾아 나서는데, 곧바로 기억이 나지 않는 어이없는 상황을 나타낸다고 합니다.


우리에게는 너무나 익숙하지만 외국인들에게는 설명하기 고약하리만큼 미묘한 단어, 눈치(Nunchi)도 소개되어 있습니다. 이탈리아인 저자의 시선으로 분석한 눈치는 대단히 세련된 사회적 지능이자 고도의 공감 능력으로 묘사됩니다. “눈치 보인다”라며 억압적인 문화의 산물로 여기기도 하지만, 타인의 맥락을 섬세하게 읽어내어 전체의 조화를 깨뜨리지 않으려는 능력은 인간 관계를 부드럽게 만드는 고차원적인 감정 기술입니다.


시공간을 초월하여 밀려드는 기묘한 그리움과 연대의 감정에 대한 단어들도 예쁩니다. 신비로운 영적인 감각을 담은 그리스어 이오이엔(Ioien)은 자신의 한계를 극복해낼 수 있다는 자각과 희망적인 징조를 담은 단어입니다.


현실의 무거운 벽에 부딪혀 주저앉고 싶을 때, 세상의 냉소적인 시선으로부터 나의 순수한 열정을 지켜내고 더 멀리 도약하고자 하는 인간의 원초적인 갈망. 이오이엔이라는 낯선 고대 어휘를 입안에 머금어봅니다.


당신을 가슴에 안고 갑니다라는 뜻을 가진 피우케네뉴(Piwkenleyu)와 아픔을 달래주는 부드러운 어루만짐이라는 뜻을 가진 나나이(Nanai)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깊고 진실한 애정을 표현하는 단어들이어서 참 다정하게 느껴집니다.





꿈만 같은 하루라는 뜻의 튀르키예어 휠야(Hülya). 인생이라는 것이 늘 내 뜻대로 되지 않아 불안하고 초조하지만, 일 년 중 단 며칠만이라도 톱니바퀴가 완벽하게 맞아떨어지는 휠야의 순간이 찾아옵니다. 지금은 서툴고 삐걱거릴지라도, 반드시 모든 것이 제자리에 안착하는 완벽한 평화의 하루가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 위로의 단어로 다가옵니다.


발음하기조차 힘든 핀란드어 휘프뜨느뜨드뜨스(Hyppytyynytyydytys) 단어도 인상깊었습니다. 긴 하루를 마치고 소파에 몸을 던지는 순간, 혹은 폭신한 침대에 대자로 쓰러지는 그 찰나, 온몸의 긴장이 한꺼번에 빠져나가는 그 기분. 핀란드 사람들은 그것에 이름을 붙였고, 그 이름이 발음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혀가 지치도록 길다는 사실이 어쩐지 유쾌합니다. 이완을 표현하는 단어가 이렇게 수고스럽다니. 그 역설 자체가 오히려 재밌습니다.


세상의 모든 슬픔을 탐험하고, 외로움을 번역하며, 그리움을 수집해 놓은 마음의 대피소 『이름 없는 감정들의 사전』. 내면의 미묘한 감정들에 이름을 붙여주지 못하고 방치할 때, 그 감정들은 집을 잃고 내 안에서 유령처럼 떠돌며 우리를 아프게 만듭니다.


전 세계 수십 개 언어권에서 길어 올린 200개의 단어들로 감정에 이름을 붙여보세요. 스스로의 삶을 더 깊이 이해하고 풍요롭게 향유할 수 있게 됩니다. 미처 알지 못했던 그 마음의 이름을 발견하는 경이로운 여행을 시작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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