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건우, 베토벤의 침묵을 듣다
김재철 지음 / 열아홉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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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올해로 피아노 인생 70년을 맞이한 거장 백건우, 그리고 그와 오랜 세월 영혼의 주파수를 맞춰온 김재철 전 MBC 사장이 함께 쓴 『백건우, 베토벤의 침묵을 듣다』.


베토벤 사후 200주년(2027년)을 앞두고, 프랑스 파리에서 시작해 영국의 바스와 카디프까지 4박 5일간 걷고 대화하며 길어 올린 소리 너머의 소리에 관한 기록입니다.


그런데 의아했습니다. 독일의 생가나 빈의 묘지가 아닌, 영국 웨일즈의 숲길과 카디프라니요. 이 여행은 베토벤의 흔적을 찾는 여행이라기보다, 백건우라는 예술가가 베토벤이라는 거대한 정신과 함께 영국의 낯선 풍경 속을 걷는 영성의 시간에 가깝습니다.


단순히 베토벤은 위대하다는 식의 고루한 찬양은 이 책에 없습니다. 대신 그곳엔 고립된 섬마을의 파도 소리, 청력을 잃은 작곡가의 절규, 그리고 사랑을 잃고 오직 음악으로만 생존해야 했던 한 예술가의 단단한 생애가 흐르고 있습니다.





모든 위대한 서사는 설렘과 긴장을 동반합니다. "출발한 지 30분 정도 지났을까. 어둠이었다. 해저터널에 들어선 것이다. 그리고 이 어둠에서 저 건너편으로 나오면 우리는 새로운 도시와 새로운 생각을 마주하게 된다. 이 여행은 그렇게, 한 빛에서 또 다른 빛으로 넘어가는 음악처럼 시작되었다."


어둠(절망)을 지나 빛(희망)으로 나아가는 과정, 그것은 베토벤의 음악적 구조이자 백건우가 평생 건반 위에서 증명해온 삶의 방식이기도 합니다.


기차는 런던 패딩턴 역을 떠나 고대 로마의 향기가 어린 도시 바스로 향합니다. 여기서 두 사람은 베토벤 생애 최악의 순간이었던 귀가 들리지 않게 된 시점을 소환합니다.


베토벤을 박제된 위인이 아니라 자신의 신으로 고백하는 백건우. 여기서 신은 인간이 마주할 수 있는 가장 가혹한 한계를 예술로 치환해낸 절대적 의지의 상징입니다.





베토벤의 비극은 소리를 다루는 자에게 소리가 사라졌다는 점에 있습니다. 하지만 백건우는 여기서 역설을 발견합니다. 외부의 소음이 차단되었을 때, 비로소 내면의 바다가 요동치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타인과의 소통이 단절된 자가 느끼는 극한의 고독을 맛본 베토벤. 그러나 백건우는 이 침묵을 결핍이 아닌 정제된 본질로 해석합니다. 소리가 들리지 않기에 그는 우주의 진동을 악보에 옮길 수 있었다고 합니다.


바스의 밤은 깊어지고, 대화는 베토벤의 은밀한 사랑으로 옮겨갑니다. 베토벤의 음악이 어느 지점에서 급격히 단단해졌는가에 대한 백건우의 분석이 이어집니다. 요제피네가 떠난 후 베토벤의 음악은 단단해졌고, 고독이 철학이 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베토벤이 겪은 연애의 실패와 고립이 결과적으로 그의 음악을 보편적 인류애와 우주적 고독으로 승화시켰음을 짚어냅니다.


스페인의 화가 고야와 베토벤, 두 거장은 모두 귀가 멀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고야는 베토벤의 음악을 들으며 캔버스 위에 폭풍처럼 또 다른 색을 쏟아냈을거라는 백건우의 말이 와닿습니다.


베토벤의 '운명'은 고야의 검은 색조를 움직였을 것이고, '영웅'은 그가 그린 빛나는 붉은색과 황금색을 깨웠을 거라고 말입니다. 베토벤의 음악이 단순한 청각 신호를 넘어, 고야의 '검은 그림'처럼 인간 심연의 어둠을 폭로하고 동시에 황금빛 구원을 제시한다는 시각적 상상이 돋보입니다.


여행은 이제 웨일즈의 수도 카디프로 이어집니다. 바다가 보이는 카디프에서 백건우는 베토벤의 음악에 바다가 부재함을 짚어줍니다. 베토벤의 음악에 파도 소리는 없지만, 인간의 감정이 요동치는 내면의 해일은 존재합니다. 백건우는 베토벤이 외부 풍경을 묘사하는 대신 자신의 영혼을 채굴하는 방식을 택했음을 이야기합니다.


백건우의 평생 반려자이자 예술적 동지였던 배우 윤정희를 회상하는 대목도 인상 깊었습니다. 음악은 사랑을 잃은 사람의 마지막 언어라는 담담한 고백이 울림을 줍니다. 연주자 백건우가 아니라 사람 백건우를 만납니다.





인터뷰 파트에서는 젊은 예술가들을 향한 따뜻한 조언들로 가득합니다. 백건우는 후배들에게 빈의 골목을 걷고, 베토벤이 자살을 결심했던 숲에 서 보라고 권합니다. 그건 레슨으로는 절대 가르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음악이 화려한 박수갈채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일깨워 줍니다. 고립된 곳, 조용한 곳, 그리고 누군가 기다리는 곳에 음악이 필요하다는 그의 철학은 섬마을 콘서트를 이어가는 그의 행보에서도 보여집니다.


베토벤이라는 렌즈를 통해 백건우라는 거장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다시 그 내면을 통해 우리 자신의 삶을 성찰하게 만드는 『백건우, 베토벤의 침묵을 듣다』. 김재철 저자는 뛰어난 관찰자이자 질문자로서 백건우의 깊은 침묵 속에 숨겨진 보물 같은 문장들을 길어 올렸습니다.


이 책은 베토벤 여행기가 아니라, 한 예술가가 자기 인생을 다시 읽는 여행이었습니다. 내가 사랑하는 세계를 따라 걷는 여행의 매력을 보여줬습니다. 베토벤을 좋아하는 사람이 베토벤의 흔적을 따라 걸었듯이, 저도 사유의 여행을 하고 싶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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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읽고 보는 위대한 실패 도감 - 위인들의 실패와 성공담으로 키우는 초등 문해력 쉽게 읽고 보는 도감
정상영 지음, 신응섭 그림 / 진선아이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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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쉽게 읽고 보는 위대한 실패 도감』은 성공한 사람들의 화려한 결과물보다 어두운 무대 뒤에서 얼마나 처절하게 넘어지고 깨졌는지에 주목합니다.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세상을 해석해온 베테랑 저널리스트 정상영 작가는 실패라는 주제를 아이들이 맛있게 소화할 수 있도록 버무려냈습니다. 한 편의 뉴스 기사를 읽듯 부담 없이 책장을 넘길 수 있습니다. 신응섭 작가의 익살스러운 일러스트는 인물 이야기에 생명력을 불어넣습니다.


40가지의 실패 레시피를 통해 우리가 놓치고 있던 진짜 성장의 의미를 짚어보는 시간입니다. 성공이라는 견고한 성벽 아래 깔린 실패라는 주춧돌의 존재를 일깨워줍니다.


천재 발명가로 기억하는 토머스 에디슨 편에서는 그가 전구를 만들기 위해 거친 6천 번의 실패를 짚어줍니다. 요즘 같으면 안 되는 일에 매달리는 고집불통 소리를 듣기 딱 좋습니다. 에디슨은 이를 실패라 부르지 않고 전구가 작동하지 않는 6천 가지 방법을 발견한 것이라 했습니다. 관점의 전환이 한 인간의 역사를 어떻게 바꾸는지 보여줍니다.





애플의 혁신가 스티브 잡스의 사례도 드라마틱합니다. 너무 일찍 찾아온 성공에 오만해져 자신이 세운 회사에서 쫓겨났던 스티브 잡스. 21세기 최고의 혁신가조차 자신의 오만함이라는 내부의 적에게 패배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자신이 만든 왕국에서 추방당하는 수모를 겪었지만, 그 공백기 덕분에 내실을 다질 수 있었습니다. 만약 그가 쫓겨나지 않았다면, 지금의 아이폰을 만나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실패가 파멸이 아닌 재부팅의 기회임을 잡스의 생애는 증명합니다.


이어서 신체적, 환경적 결핍을 가진 인물들이 어떻게 그 결핍을 비범함으로 치환했는지를 다룹니다. 베토벤, 헬렌 켈러, 스티븐 호킹, 프리다 칼로 등 신체적 한계를 비극으로만 묘사하지 않고, 사고 방식이 어떻게 바뀌었는지에 초점을 둡니다.


베토벤은 청력을 잃은 뒤 음악을 포기한 인물이 아니라, 소리를 내면의 진동으로 재구성한 작곡가가 되었습니다. 스티븐 호킹 역시 움직일 수 없는 몸 대신 상상력과 질문 능력을 무기로 삼은 과학자입니다. 수영 황제 마이클 펠프스는 ADHD를 극복하기 위해 수영에 매진했습니다. 결핍을 또다른 에너지로 만들어냈습니다. 나만 부족한 게 아니구나, 위인들도 이토록 힘들었구나라는 공감대는 아이들에게 그 어떤 훈계보다 동기부여가 됩니다.


인종 차별, 전쟁, 가난 등 개인의 힘으로 어쩌지 못하는 거대한 시대적 파도에 맞선 인물들도 있습니다. 조선 최고의 지성이라 불리는 정약용은 18년이라는 긴 유배 생활을 500권이 넘는 저술 활동으로 채웠습니다. 만약 그가 순탄한 관직 생활을 이어갔다면 위대한 저서들은 탄생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이순신의 백의종군 역시 패배의 상징이 아니라, 전략과 인내의 시간으로 묘사됩니다.


흑인 성악가 매리언 앤더슨이 인종 차별의 벽에 부딪혀 공연장을 구하지 못했을 때, 링컨 기념관 광장에서 7만 명의 관중 앞을 선택했습니다. 시대의 편견을 깨부수는 망치였음을 보여줍니다.


실패가 사회적 구조에 의한 것일 때, 우리가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지 가르쳐줍니다. 굴복할 것인가, 아니면 그 벽을 넘어서는 새로운 길을 만들 것인가를요.


생전에 빛을 보지 못했던 비운의 천재들도 등장합니다. 빈센트 반 고흐는 지독한 가난과 정신적 고통 속에서 그림을 그렸지만, 끝내 대중의 인정을 받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당장의 성과가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그 과정이 가치 없는 것은 아닙니다. 유전 법칙을 발견한 멘델 역시 사후에야 그 업적을 인정받았습니다. 이들의 삶은 성공의 정의를 결과가 아닌 과정에서의 진정성으로 확장시킵니다. 남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스스로의 가치를 믿고 나아가는 고독한 확신이야말로 이 시대에 필요한 덕목일지 모릅니다.


교육 시스템에 적응하지 못했던 낙제생들의 이야기도 유쾌합니다. 아인슈타인은 어린 시절 말을 배우는 것이 늦어 지진아라는 소리를 들었고, 피카소는 수학 성적이 형편없었습니다. 이들은 표준화된 교육의 틀 밖에서 자신만의 창의성을 키웠습니다.





독창적인 사고방식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줍니다. 조지 버나드 쇼의 풍자와 유머는 정규 교육 과정이 만들어낸 산물이 아니라, 세상을 비딱하게 바라볼 줄 아는 그만의 독특한 시선에서 나왔습니다. 정답을 맞히는 능력보다 질문을 던지는 능력의 위대함을 깨닫게 됩니다.


초판 한정 성공 노트도 있습니다. 위인의 멋진 실패를 수집해보고, 스스로 용기 있게 도전했던 순간들을 기록할 수 있습니다. 실패는 부끄러워서 숨겨야 하는 숙제가 아니라, 오히려 성장시켜 주는 나만의 보물 창고라는 걸 직접 경험할 수 있습니다.


『쉽게 읽고 보는 위대한 실패 도감』은 실패는 끝이 아니라, 위대한 성공이라는 요리를 완성하기 위한 가장 매운 밑재료라는 것을 일깨워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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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세를 깬 자들 - 프랑크 제국과 중세의 운명을 바꾼 형제들의 전쟁
매슈 게이브리얼.데이비드 M. 페리 지음, 최파일 옮김 / 까치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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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역사라는 이름으로 박제된 박물관 속 중세가 아니라, 넷플릭스 드라마로 제작되어도 될 만한 지독하게 인간적인, 그래서 더 잔혹한 연대기를 만나봅니다.


매슈 게이브리얼과 데이비드 M. 페리가 함께 쓴 『맹세를 깬 자들』. 유럽을 제패했던 프랑크 제국의 전성기와 몰락을 파헤치는 역사책입니다. 버지니아 공대의 중세학 교수 매슈 게이브리얼과 저널리스트이자 역사학자인 데이비드 M. 페리. 전작 『빛의 시대, 중세』를 통해 우리가 알던 암흑기 중세라는 편견을 박살 낸 바 있는데요.


이번에는 그 빛의 이면에 가려진, 형제들이 서로의 심장에 칼을 꽂으며 만든 그림자를 추적합니다. 통일 제국이라는 거대한 가스라이팅을 해체하는 책 『맹세를 깬 자들』. 8~9세기 프랑크 제국의 아수라장 속으로 들어가봅니다.


우리가 교과서에서 배운 카롤루스 마그누스(샤를마뉴)의 위대함은 사실 깃펜과 양피지로 정성스럽게 포장된 결과물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카롤루스 왕조가 어떻게 메로베우스 왕조로부터 왕관을 훔쳤는지, 그리고 그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가족의 희생이 따랐는지를 보여줍니다. 혈연은 권력 앞에서 거추장스러운 장애물이 되었고, 제국은 이를 은폐하기 위해 신의 선택을 받은 민족이라는 신화를 유포했습니다.





절대 권력자라는 타이틀 뒤에는 늘 자기 지분을 요구하는 수많은 이해관계자가 있었고, 그들의 맹세는 언제든 깨질 준비가 된 유통기한 짧은 계약서에 불과했습니다. 경건왕 루도비쿠스가 아헨의 궁정으로 들어설 때, 그의 권력에 방해가 될 만한 친척들이 '편리하게도' 자연사하거나 사라진 것은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기록자들은 이를 신의 섭리로 세탁했지만, 저자는 그 행간에서 비릿한 피 냄새를 잡아냅니다. 그야말로 막장 드라마입니다.


루도비쿠스 1세의 치세는 겉보기에 평화로워 보였지만, 실상은 곪아가는 상처였습니다. 제국의 내부 균열이 어떻게 폭발하는지를 보여줍니다. 역병과 기근이라는 자연의 재앙은 왕의 권위를 흔들었고, 그 틈을 타 아들들이 아버지를 상대로 하극상을 벌이기 시작합니다.


가장 상징적인 사건은 833년의 이른바 거짓말의 들판 사건입니다. 아들들이 군대를 몰고 와 아버지 루도비쿠스를 폐위시키려 했던 이곳에서, 황제의 지지자들은 하룻밤 사이에 모두 반대편으로 등을 돌렸습니다. 어제의 충성 서약이 오늘의 배신으로 바뀝니다.


놀라운 점은 루도비쿠스가 이 굴욕을 겪고도 다시 복권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는 아들들을 용서하고 처벌하는 과정을 반복하며 권력을 유지하려 애쓰지만, 결국 더 큰 폭발을 위한 에너지 응축에 불과했습니다. 루도비쿠스가 죽자마자 세 형제(로타리우스, 루도비쿠스 2세, 카롤루스)는 아버지가 남긴 유산인 제국을 찢어 발기기 위해 서로의 목줄을 노리기 시작합니다. 서로를 너무 잘 아는 형제들이기에 그 싸움은 더 치졸하고 잔인했습니다.


드디어 운명의 날이 밝습니다. 이 책의 클라이맥스인 841년 퐁트누아 전투가 등장합니다. 로마 제국의 부활을 꿈꿨던 프랑크 제국이 사실상 종언을 고하고, 오늘날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의 원형이 갈라져 나오는 역사적 산고의 현장입니다.





퐁트누아 전투는 시스템의 실패이자 엘리트들의 자존심 싸움이 낳은 참극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형 로타리우스에 맞서 두 동생인 루도비쿠스와 카롤루스가 연합했지만, 그 결과는 승자 없는 패배였습니다.


두 동생은 스트라스부르에서 서로를 배신하지 않겠다는 맹세를 합니다. 이 맹세는 형을 공동의 적으로 상정한 야합의 산물이었습니다. 결국 843년 베르됭 조약을 통해 제국은 삼등분됩니다. 하나의 제국이라는 거대한 허구적 서사가 찢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이 허망한 결말이야말로 저자가 말하고 싶은 메시지입니다. 역사의 거대한 수레바퀴를 굴리는 동력은 고결한 이념이 아니라 권력자들의 사소한 시기심과 깨진 약속, 그리고 무의미한 폭력이었습니다.


19세기 이후 이 내전이 어떻게 국가의 신화로 재활용되었는지를 짚어보는 에필로그로 이어집니다. 패배와 분열의 역사가 민족주의의 서사로 다시 쓰이는 과정은 오늘날에도 반복됩니다. 


저자들은 묻습니다. 우리는 왜 이 내전을 잊었는가? 혹은 왜 우리는 이를 승리의 역사로 기억하고 싶어 하는가?


이 책은 역사의 행위자들이 내린 선택의 무게를 되짚어봅니다. 그동안 역사에서 지워졌던 궁정 여성들의 영향력이나 생존을 위해 기민하게 움직였던 이름 없는 관료들의 존재를 조명하기도 합니다.


9세기의 프랑크 제국은 21세기의 우리와 그리 멀지 않아 보입니다. 단합을 외치면서도 내부에서는 끊임없이 갈등을 양산하고, 공적인 맹세보다는 사적인 이익에 민감한 인간의 본성은 시대를 초월하고 있습니다. 모든 거대한 균열은 아주 작은 약속을 깨뜨리는 것에서부터 시작됩니다.


『맹세를 깬 자들』은 중세사가 지루하다는 편견을 날려버립니다. 마치 범죄 현장의 프로파일링처럼 흥미진진하게 풀어냈습니다. 유럽의 기원을 알고 싶은 역사 덕후라면 꼭 읽어야 할 책입니다. 왕좌의 게임을 재밌게 본 팬이라면 현실판 왕좌의 게임을 만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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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역, 괴테의 문장들 - 200년이 지나도 심장을 뛰게 하는
민유하 지음 / 리프레시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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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년 전 괴테의 문장들이 담긴 『초역, 괴테의 문장들』. 괴테가 남긴 방대한 저작 (소설, 시, 격언집 등) 중에서 120개의 문장을 엄선하여 엮었습니다. 초역이라는 방식은 죽은 텍스트를 살아있는 질문으로 되살리는 해석의 행위임을 읽는 내내 실감하게 됩니다.


요한 볼프강 폰 괴테. 『파우스트』,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쓴 대문호로만 기억합니다. 하지만 그는 경이로운 다재다능인이었습니다. 한 나라의 행정을 총괄한 재상이었고, 광학과 식물학을 탐구한 과학자였으며, 광산 개발과 예산을 주무르던 실무가였습니다. 동시에 죽는 순간까지 뜨거운 사랑을 멈추지 않았던 로맨티스트이기도 했습니다. 그의 문장은 책상 앞에서 만들어진 교훈이 아니라, 살아보며 검증한 문장입니다. 그래서 이 책은 경험의 압축 파일에 가깝습니다.


괴테는 우리가 겪는 고통의 상당 부분이 나를 잃어버린 데서 기인한다고 보았습니다. 좋아요 숫자에 자존감이 널을 뛰고, 남들의 화려한 단면과 나의 초라한 내면을 비교하는 우리에게 자기 극복이라는 고전적인 해결책을 보여줍니다.


"모든 존재를 옭아매는 힘으로부터 자신을 해방시키는 것은 오직 자기 자신을 극복하는 인간이다."라는 말을 건넵니다. 이 문장에서 핵심은 Gewalt(폭력, 압력)라는 단어입니다. 세상은 우리를 끊임없이 규정하고 억눌러 길들이려 합니다. 이에 대항해 진정한 자유를 얻는 방법은 타인을 이기는 것이 아니라, 어제의 나태함과 오늘의 불안을 넘어서는 sich überwindet(자기 극복)뿐이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은 타인의 마음이나 불확실한 미래가 아니라, 오직 세상을 대하는 나의 태도뿐이라는 것을 짚어줍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사소한 규율, 화가 치미는 순간 입을 다무는 절제력. 이런 겹겹의 자기 극복이 쌓여 누구도 무너뜨릴 수 없는 단단한 자존감이라는 성벽을 구축합니다. 남의 눈치를 보느라 에너지를 낭비하는 대신, 자기 내면의 질서를 잡는 데 집중하라는 조언이 와닿습니다.


성공을 갈망하지만 시작하지 못하는 완벽주의적 게으름쟁이들에게 괴테는 나이키의 슬로건보다 200년이나 앞서 Just Do It의 가치를 설파했습니다. "아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적용해야 한다. 원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실행해야 한다."라고 하면서요.


유튜브와 책을 통해 무엇이든 배울 수 있지만, 정작 손발을 움직이는 사람은 드뭅니다. 지식을 쌓는 행위 자체가 무언가 성취했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입니다. 괴테는 아는 것의 함정을 지적합니다. 적용되지 않은 지식은 그저 뇌 속의 데이터 찌꺼기에 불과합니다.


괴테가 말하는 성취의 리듬은 "서두름 없이, 그러나 쉼 없이"입니다. 속도전이 아니라 밤하늘의 별처럼 자신에게 주어진 궤도를 묵묵히 도는 자전의 리듬입니다. 조급함에 쫓겨 무리하다가 번아웃에 빠지는 대신, 자신만의 속도를 유지하며 멈추지 않는 것. 괴테는 지속 가능성이 평범함과 비범함을 가르는 유일한 기준임을 이야기 합니다. 계획표를 짜는 데 온 에너지를 쓰지 말고, 당장 눈앞의 작은 일 하나를 완수하는 것이 삶을 바꾸는 유일한 시작점이라는 사실을 그는 증명했습니다.


관계에 지쳐 인간 혐오에 빠지기 쉬운 우리에게 괴테는 감정의 메커니즘을 분석했습니다. "시기심은 수동적인 불쾌함이고, 증오는 능동적인 불쾌함이다."라고 말하며 내 마음의 에너지를 적극적으로 태워 유지해야 하는 능동적 감정인 증오에 대해 경고합니다. 누군가를 미워한다는 것은 내 안에 스스로 장작을 넣고 불을 지피는 행위와 같습니다. 그 불은 상대를 태우기 전에 나 자신을 먼저 숯검정으로 만들어버립니다.





괴테는 증오만큼 가성비 나쁜 감정 노동은 없다고 합니다. 나를 갉아먹는 그 불을 끄는 유일한 방법은 더 이상 미움이라는 장작을 넣지 않는 것입니다. 타인의 궤도를 존중하고, 내가 이해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만 그들을 받아들이는 태도. 무리하게 모두를 사랑하려 애쓰기보다, 각자의 렌즈로 세상을 보는 타인들의 한계를 인정하는 것이 관계의 평화를 찾는 지혜입니다.


『초역, 괴테의 문장들』은 명언집의 역할을 넘어섭니다. 괴테가 왜 이런 말을 했는가를 오늘의 언어로 다시 묻는 해설서이자, 현재형 삶의 문제를 겨냥한 실천 안내서입니다. 편역자 민유하는 괴테의 원문을 독일어 그대로 제시하고, 그 문장을 다시 우리 삶의 고민과 연결합니다. Editor’s Note를 통해 그 의미를 현재 시제로 이해하게 됩니다.


괴테는 노년을 퇴보나 쇠퇴가 아닌, 새로운 창조의 과정으로 재정의합니다. "나이 든다는 것은 새로운 ‘사업’을 맡는 것이다. 모든 상황이 변하기에, 우리는 의지와 의식을 가지고 새로운 역할을 받아들여야 한다."라고 합니다.


노년을 내려놓음이나 은퇴의 시간으로만 생각하기 일쑤이지만, 괴테는 새로운 비즈니스의 시작이라고 불렀습니다. 신체적 기력은 감퇴할지 모르나, 세월이 준 통찰과 품격이라는 새로운 자본을 활용해 어른이라는 배역을 멋지게 소화해 내야 한다는 뜻입니다.


아름답게 늙는 것은 우리가 의지를 가지고 빚어내야 할 예술 작품입니다. 시간의 흐름에 몸을 맡기고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변화된 환경 속에서도 끊임없이 배우고 다듬어가는 태도. 끝까지 호기심을 잃지 않고 오늘을 사랑하는 것이야말로 괴테가 우리에게 남긴 최고의 유산입니다.


『초역, 괴테의 문장들』은 고어의 딱딱함을 걷어내고 오늘날의 호흡으로 괴테의 심장을 다시 뛰게 합니다. 우리가 길을 잃는 이유는 정보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중심을 잡아줄 단단한 목소리가 부재하기 때문입니다. 빠르게 답을 찾으라는 세상의 압박에 괴테는 속도를 늦추되 멈추지 말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당신 자신을 믿는 순간, 어떻게 살아야 할지 비로소 알게 될 것이라고 알려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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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급 받으려다 죽다 - 번아웃 없는 조직은 어떻게 가능한가
제프리 페퍼 지음, 홍기빈 옮김 / 21세기북스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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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달 손에 쥐는 월급, 그 숫자가 찍히는 순간의 희열 뒤에 숨겨진 생존의 비용을 계산해 본 적이 있으신가요? 『월급 받으려다 죽다』는 Thinkers 50 등재 세계 최고 경영 사상가 제프리 페퍼 스탠퍼드대학교 경영대학원 교수가 수십 년간 축적된 데이터와 사례를 통해 증명해 낸 현대 조직의 살인적 관리 시스템에 대한 고발장입니다.


왜 번영과 성공의 상징인 기업들을 향해 "사람을 죽이고 있다"라는 일침을 가했을까요? 직원의 건강이 어떻게 기업의 재무제표를 갉아먹는지, 효율이라고 믿었던 경영 관행들이 얼마나 비과학적인 삽질이었는지를 파헤칩니다.


오늘날의 노동 시장은 이른바 긱 이코노미라는 세련된 용어로 포장되어 있습니다. 원하는 시간에 자유롭게 일한다는 것은 매력적으로 들리지만, 제프리 페퍼는 그 이면의 지속적인 불안정성을 짚어줍니다.





요즘 세대들이 직면한 가장 큰 공포는 내일의 일자리가 보장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경제적 불안은 인간의 뇌를 상시 비상사태로 몰아넣으며 고도의 스트레스 반응을 유발합니다. 과거의 노동이 육체적인 소진을 불러왔다면, 현대의 유연화된 노동은 노동자의 영혼과 신경계를 갉아먹습니다. 경제적 불안이 초래하는 비용이 기업의 단기적인 이윤보다 훨씬 거대하다는 사실을 직시하라고 경고합니다.


이 사회와 경영자는 스트레스는 개인이 관리해야 할 몫이라고 치부합니다. 하지만 저자는 경영의 핵심 비용 관점에서 재정의합니다. 스트레스로 인한 질병, 결근, 몰입도 저하, 그리고 인재 이탈은 기업의 장부상에는 명확히 기록되지 않지만, 실질적으로는 기업의 근간을 흔드는 거대한 지출입니다.


고액 연봉을 받던 우버의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조지프 토머스의 사례는 충격적입니다. 그는 엄청난 업무 압박 속에서 일자리를 잃을까 봐 겁에 질려 있었고, 결국 2016년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고액 연봉자조차도 안전하지 못한 이 시스템에서 발생하는 비용을 우리는 어떻게 측정해야 할까요?


왜 이 사회는 정신적인 건강과 직장 스트레스에 대해서는 그토록 관대한 걸까요? 우리는 그동안 성과를 내기 위해 건강을 담보로 잡는 것을 당연시해왔습니다. 젊을 때 고생은 사서도 한다거나 이 정도 스트레스도 못 견뎌서 어떻게 성공하겠냐는 식의 가스라이팅은 우리 사회의 흔한 배경음악이었습니다.


우리가 일터에서 고통받고 죽어가는 현상은 결코 필연적인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일터에서 겪는 피로와 불안은 노력 부족의 산물이 아니라, 경영진이 내린 선택의 결과입니다.


현대 기술은 우리를 사무실 밖에서도 일하게 만들었습니다. 스위스컴의 CEO 카르스텐 슐로터가 일주일 내내 24시간 통화 대기 상태에 있어야 한다는 압박에 고통받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례가 있습니다.


항상 연결된 문화는 노동자의 회복 탄력성을 앗아갑니다. 업무와 가정의 경계가 무너지며 발생하는 갈등은 단순히 개인의 짜증을 넘어 심각한 신체적, 정신적 질병으로 이어집니다.


피로가 누적된 뇌는 창의적인 판단을 내릴 수 없으며, 사소한 실수를 반복하게 만듭니다. 뱅크 오브 아메리카의 인턴 모리츠 에어하르트가 72시간 연속 근무 후 사망한 사례나, 일본 와타미의 여성 직원이 월간 초과 근무 140시간 끝에 자살한 비극은 '열심히'의 끝이 어디인지를 보여줍니다.


장시간 노동은 성과의 지름길이 아니라, 숙련된 인재를 조기에 마모시키고 폐기하는 비효율의 극치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업들이 이를 선호하는 이유는 노동을 질이 아닌 양으로만 측정하려는 낡은 경영 관성 때문입니다.





해로운 조직 문화는 정상적인 사람들이 버틸 수 없는 환경을 만듭니다. 처음에는 열정적으로 헌신하던 이들도 합리화와 헌신의 결과가 결국 자신의 파멸임을 깨닫는 순간, 조직을 떠납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조직에 남은 이들에게 무기력이 전염된다는 점입니다. 떠날 에너조차 없는 이들만이 남은 조직은 혁신이 불가능한 좀비 기업으로 전락하고 맙니다.


요즘 세대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의미 있는 일'과 '수평적 문화'는 배부른 소리가 아닙니다. 그것은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지키고, 생물학적으로 건강하게 기능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입니다. 인재들이 줄지어 퇴사하고 있다면, 인사팀은 연봉 테이블을 수정할 것이 아니라 사무실 내부의 통제권과 안전감의 농도를 측정해야 합니다. 무기력이 전염병처럼 퍼지기 전에 말이죠.


제프리 페퍼가 가장 먼저 강조하는 것은 이데올로기의 전환입니다. 직원의 건강에 투자하는 기업은 의료비 지출 감소, 결근율 저하, 이직률 감소를 통해 실질적인 재무적 이익을 얻습니다.


직원을 잘 대접하는 것이 곧 돈을 버는 길이라는 사실을 경영진이 뼛속 깊이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합니다. 단순히 착한 기업이 되자는 도덕적 훈계가 아닙니다. 장기적인 생존을 위한 가장 영리하고 합리적인 경제적 선택이라는 뜻입니다.


페퍼 교수가 제시하는 해결책 중 하나는 업무 통제권입니다. 직급이 낮은 사람보다 업무에 대한 재량권이 없는 사람이 훨씬 더 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조기 사망 확률도 높다는 것입니다.


리더가 모든 것을 통제하려 드는 마이크로매니징은 직원을 학습된 무력감에 빠뜨립니다. "어차피 시키는 대로만 해야 하는데 뭐 하러 고민해?"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그 직원의 엔진은 꺼진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직원에게 의사결정 권한을 주고, 실수해도 괜찮다는 심리적 안전감을 제공하는 것. 이것이 비싼 사내 카페테리아보다 훨씬 강력한 동기부여가 됩니다.


『월급 받으려다 죽다』는 경영진에 대한 변화 전략과 함께 개별 기업의 노력을 넘어선 사회적 합의를 촉구합니다. 직원의 건강을 해치며 이윤을 뽑아내는 기업에 대해 사회적 지탄과 법적 규제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환경 오염을 유발하는 기업에 탄소세를 부과하듯, 인적 자원을 마모시키는 기업에 사회적 비용을 청구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소비자와 구직자들이 건강한 조직 문화를 가진 기업을 선택하고 옹호하는 문화가 정착될 때, 비로소 기업들은 변화를 강요받게 될 거라고 합니다. 우리 모두의 생존권을 지키기 위한 연대이자 투쟁입니다.


『월급 받으려다 죽다』는 경영자에게 "너희의 이런 경영 방식이 결국 회사를 망치고 사람을 죽이고 있다"라는 일침을 날립니다. 역설적으로 직장인들에게는 자기 방어 기제를 쥐어준 셈입니다. 경영자에게는 반성문이지만, 직장인에게는 생존권 선언문과도 같은 역할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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