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로부터 시작하는 이세계 일문법 - 애니 문장을 현실 문장으로 바꾸는 법!
오오기 히토시 지음 / 길벗이지톡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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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오오기 히토시의 이색적 문법 공략법 『제로부터 시작하는 이세계 일문법』. 부담 없는 덕질 같은 공부를 할 수 있게 도와주는 책입니다. 


일본 애니메이션을 탐닉하는 이들이라면 한 번쯤 꿈꿉니다. "소로소로(슬슬)", "요시!(좋아!)"만 알아듣는 게 아니라 자막 없이 최애 캐릭터의 절규를 이해하고, 그 세계관의 일원이 되는 환상 말이죠. 하지만 현실의 문법책을 펼치는 순간, 우리는 다시 절망의 이세계로 소환됩니다. 딱딱한 예문과 비현실적인 정중체는 우리가 사랑했던 애니메이션 속의 뜨거운 심장박동을 담아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 괴리를 단번에 해결하는 오오기 히토시. JTBC <비정상회담>을 통해 우리에게 친숙한 저자입니다. 『제로부터 시작하는 이세계 일문법』은 서브컬처의 정수를 현실의 언어 체계로 치환하는 번역 장치와도 같습니다. 교보문고 펀딩 1945%라는 경이로운 기록을 세운 이 책을 만나봅니다. 지금 한정 북커버 이벤트 중입니다. 반짝이는 검이 새겨진 표지가 멋집니다.


이 책의 문법은 JLPT 가장 쉬운 레벨인 N5에서 N3까지의 수준이라고 합니다. 목차부터 판타지 애니메이션 에피소드 가이드를 보는 듯합니다. 책을 펼치는 순간 우리는 일본어라는 거대한 던전을 공략하는 모험가가 됩니다.





먼저 결심과 욕망 관련 표현부터 배웁니다. `~ます(~하겠습니다)`나 `~たい(~하고 싶다)` 같은 기초 문법을 다룹니다. 이 책의 매력은 예문에 있습니다. 무미건조한 문장 대신, 내가 싸우겠습니다!(僕が戦います!)라는 대사가 등장합니다.


일정, 계획 관련 표현을 다루는 장에서는 미래를 설계하는 `~つもりだ(할 생각이다)`와 `~予定だ(할 예정이다)`의 미묘한 차이를 다루는 부분이 유용했습니다. 사전적 정의를 나열하기보다 캐릭터가 왕도를 향해 떠나는 긴장감 넘치는 상황 속에서 이 표현들이 어떻게 쓰이는지 분석합니다.


시도와 실패 관련 표현도 재밌습니다. `~てしまう(~해 버리다)`를 설명할 때 주인공이 중요한 계약서를 실수로 태워 버린 걸 사과하는 장면에서 나오는 "미안, 태워버렸어(ごめん 燃やしちゃった···)" 같은 생동감 넘치는 대사를 활용합니다.





애니 특유의 과장된 표현이 현실의 비즈니스나 일상 대화에서 어떻게 정제된 형태로 변모해야 하는지 현실 회화 예문 5개를 통해 잘 보여주니 전혀 문제없습니다.


`~ている(~하고 있다)`와 `~てある(~되어 있다, ~해 놨다)`의 구분이 헷갈렸는데, "이 동굴에는 무언가가 잠들어 있다"와 "위험이라고 쓰여 있는데"라는 상황 설정을 통해 개념을 직관적으로 이해시킵니다.


`~そうだ(~라고 한다)`와 `~らしい`(~대, ~래), `~みたいだ(~인 것 같다) 같은 소문, 가능성 관련 문법이 이어집니다. "저 녀석 꽤 강해 보이는데(あいつめっちゃ強そうだな)"라는 대사는 애니메이션의 전형적인 클리셰이지요. 이번 파트를 통해 직접 본 시각적 정보에 근거한 추측과 전해 들은 정보의 차이를 명확히 인지하게 됩니다.


곳곳에 위치한 My story 코너에는 저자의 유학 시절 경험을 버무리며, 언어를 공부하며 얻게 되는 가장 큰 선물은 결국 타인의 세계를 이해하는 폭이라는 것을 일깨워 주는 글이 담겨 있습니다. 부록에 수록된 주문(문형)은 사전처럼 활용할 수 있는 유용한 도구입니다. 특정 문법 표현이 궁금할 때, 복습이 필요할 때 빠르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가장 효과적인 학습은 즐거움에서 시작됩니다. 좋아서 하는 공부는 억지로 하는 공부보다 훨씬 오래 지속되고 더 깊이 남습니다. 『제로부터 시작하는 이세계 일문법』은 애니메이션에 대한 순수한 애정을 학습 동력으로 전환하는 방법을 보여줍니다. 좋아하는 세계에서 시작하면, 공부는 더 이상 의무가 아니라 모험이 된다는 것을 느끼게 해준 고마운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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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두면 쓸데 있는 유쾌한 상식사전 : 구석구석 세계여행 편 가리지날 시리즈 9
조홍석 지음 / 트로이목마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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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맛집과 핫플을 나열하는 가이드북이 아닙니다. 지도 위 점으로만 존재하던 장소들에 숨겨진 반전의 역사와 기묘한 인물들을 소환해 입체적인 연결고리를 만들어내는 인문 여행서 『알아두면 쓸데 있는 유쾌한 상식사전: 구석구석 세계여행 편』. 일본부터 태평양의 섬들까지 방구석 세계일주를 즐겨보세요.


조홍석 저자는 이력부터가 한 편의 시트콤 같습니다. 아폴로 11호가 달에 착륙하던 해에 태어나 스타워즈를 보며 우주의 수호자를 꿈꿨으나, 인류 천문학의 발전을 위해 본인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낫겠다는 숭고한 자아성찰 끝에 흑화(?)하여 삼성맨이 된 인물입니다. 13년간 지인들에게 보낸 메일이 화제가 되어 가리지날(진짜 같은 가짜 상식을 바로잡는 오리지널 지식) 시리즈를 9권까지 펴낸 그는 스스로를 한국의 빌 브라이슨이라 칭하며, 유발 하라리의 동생 무발 하라리라는 별명을 즐기는 유쾌한 지식 큐레이터입니다.


첫 페이지부터 우리의 상식을 무참히 깨부숩니다. 바로 일본 아오모리현의 예수님 무덤이야기입니다. 예수가 일본에서 106세까지 살았다? 이 황당한 이야기는 아오모리현 신고무라라는 작은 마을에 실존하는 유적지에서 시작됩니다.





이곳 전설에 따르면 예수는 21세에 일본으로 건너와 신도(神道)를 공부했고, 이스라엘로 돌아가 복음을 전하다 처형 위기에 처하자 동생 이수키리가 대신 죽었다고 합니다. 이후 예수는 다시 일본으로 돌아와 세 딸을 낳고 천수를 누렸다는 겁니다. 이 황당무계한 서사가 지자체 차원의 축제(마츠리)로 승화되어 관광객을 모으고 있습니다. 일본 특유의 신토불이적 종교 융합성과 스토리텔링의 힘을 보여주는 기막힌 사례입니다.


이어지는 고베 이야기는 뭉클합니다. 1995년 한신·아와지 대지진으로 폐허가 된 도심에 세워진 18m 높이의 철인 28호 동상. 재난의 아픔을 예술과 서사로 극복하려는 노력을 조명합니다. 거대 로봇이 주는 압도적인 위용은 절망에 빠진 시민들에게 우리는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강력한 시각적 메시지가 되었습니다.


이어서 아시아의 근현대사와 전설을 가로지릅니다. 인도와 스리랑카 사이의 라마의 다리 이야기나 베트남판 낙랑공주인 미쩌우 공주의 비극은 지리적 거리감을 뛰어넘어 우리 역사와의 기묘한 기시감을 불러일으킵니다. 각 지역의 역사와 신화가 어떻게 연결되고 변형되며 전승되는지를 추적하며, 문화의 전파와 변용이라는 거대한 흐름을 보여줍니다.





유럽 편에서도 가리치날의 촉을 세웁니다. 우리는 그리니치 천문대의 본초자오선이 당연히 경도 0도라고 믿지만, 실제 경도 0도는 현재 표시된 선에서 약 100m 정도 떨어져 있다는 사실을 짚어줍니다.


아프리카 편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케냐산 등반 이야기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영국군 포로수용소에 갇혔던 이탈리아인 펠리체 베누치와 그의 동료들의 이야기는 영화보다 더 극적입니다. 수용소 철조망 밖으로 보이는 위풍당당한 케냐산의 모습에 그만 빠져버리고 만 펠리체. 수용소를 탈출해 산 정상에 오른 뒤, 탈옥 목적이 정복이나 도주가 아니라 순수한 등반이었음을 증명하듯 다시 수용소로 제 발로 걸어 들어온 이들의 일화는 압권입니다.


아메리카 편에서는 알래스카의 감동적인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1925년 알래스카의 외딴 마을 노엄에 디프테리아 전염병이 창궐했을 때, 혈청을 운반하기 위해 혹한을 뚫고 달렸던 개썰매팀. 이 이야기는 애니메이션으로도 제작됐지요. 인간과 동물이 맺은 신뢰의 연대는 수천 명의 생명을 구했습니다. 뉴욕 센트럴 파크에 세워진 발토의 동상은 불굴의 의지에 대한 헌사임을 깨닫게 됩니다.


마지막 여정은 인류의 이동 경로 중 가장 늦게 도달했다는 태평양의 섬들입니다. 호주의 딩고 펜스, 괌과 사이판의 갈등을 지나 모아이 석상의 라파누이섬을 만나봅니다.


오스트레일리아의 딩고펜스는 만리장성보다 긴 세계 최장 인공 구조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양을 야생 개 딩고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만든 이 펜스는 5614km에 달합니다. 거대한 대륙을 가로지르는 울타리의 존재는 인간이 자연을 통제하려는 욕망과 그 한계를 동시에 보여줍니다.


지구상에서 가장 외로운 섬이라 불리는 라파누이섬(이스터섬)의 모아이 석상은 우리에게 환경과 생존에 대한 경고를 던집니다. 석상을 세우기 위해 섬의 모든 나무를 베어버린 결과 문명이 몰락했다는 가설과, 현재 그 석상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국가 간의 반환 소송, 그리고 일본의 짝퉁 모아이 마케팅까지 과거의 유물이 현재의 욕망과 어떻게 얽혀 있는지를 해부합니다.


그리고 저자는 마지막에 반전을 던집니다. 모아이석상보다 더 놀라운 거대 유적이 우리나라에 있다는 것. 바로 고인돌입니다. 전 세계 고인돌의 40% 이상이 한반도에 있고, 그 규모와 정교함은 모아이에 뒤지지 않습니다. 우리 발밑에 있어서 모르고 지나쳤던 세계적 유산에 대한 재발견입니다.


구석구석 세계여행 편을 통해 여행은 그 장소에 깃든 이야기를 마음으로 읽어내는 과정이라는 것을 일깨워 줍니다. 조홍석 저자는 옆자리에 앉아 수다를 떠는 것처럼 이야기를 풀어냅니다. 하지만 그 수다의 깊이는 얕지 않습니다. 방대한 사료를 바탕으로 하되, 아재 감성 섞인 유머 덕분에 틈날 때 가볍게 읽을 만한 책을 찾는 우리 아들의 최애 시리즈입니다. 이번 신간도 지금 제 뒤에서 자기 차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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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음, 랭브릿지 옮김 / 리프레시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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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50년간 단 한 번도 식은 적이 없는 뜨거운 심장 같은 고전, 요한 볼프강 폰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과몰입의 원조 격인 작품입니다. 출간 당시 유럽 전역의 청년들이 베르테르처럼 푸른 코트와 노란 조끼를 입고 다녔고, 심지어 그의 슬픔에 동조해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이들이 속출할 정도였으니까요.


오늘날의 팬덤이나 신드롬이라는 단어로도 부족할 만큼, 이 소설은 강렬했던 감정의 폭동이었습니다. 세련된 펜드로잉 일러스트와 함께 베르테르라는 청년의 불꽃 같은 내면으로 들어가봅니다.


이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를 쓴 괴테는 1749년 프랑크푸르트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난 금수저이자 엄친아였습니다. 2,000권이 넘는 법률 서적이 꽂힌 아버지의 서재에서 자란 그는 라틴어, 그리스어, 불어, 이탈리아어 등 6개 국어에 능통했고, 피아노와 첼로, 승마까지 섭렵한 만능 엔터테이너였습니다.


하지만 그의 내면에는 부친이 원하는 안정적인 법조인의 삶과 스스로 갈망하는 자유로운 예술가의 영혼이 치열하게 충돌하고 있었습니다. 법학을 공부하면서도 정작 마음은 문학 강의에 가 있었고, 슈트라스부르크에서 고트프리트 헤르더를 만나며 독일의 민족적 정신과 셰익스피어의 역동성에 눈을 뜨게 됩니다.


괴테가 25세의 나이에 이 소설을 쓴 배경에는 실제 가슴 아픈 짝사랑이 있었습니다. 이미 약혼자가 있던 샤를로테 부프를 열렬히 사랑하게 됩니다. 괴테는 비극적인 짝사랑을 뒤로하고 떠났지만, 소설의 결말 모티프는 지인의 사건에서 가져와 이룰 수 없는 사랑의 고통을 문학으로 승화시킨 것이 바로 이 작품입니다.





리프레시 출판사판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베르테르의 내면을 시각적으로 보충해 줍니다. 세밀한 선들이 겹쳐 만들어낸 명암은 베르테르의 복잡미묘한 심리적 동요를 잘 드러냅니다. 글자로만 읽던 그의 고뇌가 그림을 통해 눈앞에 숨결처럼 살아 움직이는 경험입니다.


소설은 편지체(서간체) 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편지는 검열되지 않은 마음의 기록이며, 동시에 상대를 상정한 독백입니다. 베르테르는 끊임없이 친구 빌헬름에게 편지를 씁니다. 그러나 그 편지들은 점점 우리를 향한 고백으로 바뀝니다. 편지는 감정을 정리하는 도구이자, 감정을 증폭시키는 장치로 작동합니다. 요즘식으로 말하자면 그는 자신의 감정을 실시간으로 업로드하고, 그 반응을 스스로에게서 확인하는 사람입니다. SNS 시대의 감정 과잉과도 닮아 있습니다. 베르테르가 샤롯테(롯테)를 처음 만난 순간, 그의 세계는 완전히 재편됩니다. "그녀는 내 모든 감각을 사로잡았다."라며 명료한 언어로 정의될 수 없는 초월적 존재로 그려냅니다.


성격 속에 깃든 한없는 다정함과 단단함의 조화에 매료됩니다. 대상을 객관적으로 관찰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온 감각을 투사하여 상대를 신성시합니다. 사랑에 빠진 이들이 흔히 겪는 이 필터링 현상은 베르테르에게 있어 삶의 유일한 활력이자 동시에 비극의 씨앗이 됩니다.


베르테르의 자존감은 타인의 인정이 아닌, 오직 롯테의 시선에 의해 결정됩니다. 롯테가 자신을 향해 미소 짓거나 공감을 표시할 때, 그는 스스로를 인간 이상의 존재로 격상시킵니다. 이런 베르테르의 감정이 얼마나 위험한 수위에 도달했는지를 묘사하는 문장들이 이어집니다. 누군가에게 사랑받는다는 확신이 한 인간을 우주적 존재로 고양시키는 과정은 아름답지만, 그만큼 추락의 공포를 내포하고 있기에 읽는 우리의 마음은 조마조마해집니다.


롯테에게는 이미 알베르트라는 약혼자가 있었습니다. 알베르트는 성실하고 이성적이며 사회적으로 신뢰받는 인물로 베르테르와는 정반대의 지점에 서 있는 사람입니다. 베르테르는 알베르트를 존중하려 애쓰지만, 롯테가 그와 결혼했다는 사실을 직면했을 때 그의 영혼은 갈가리 찢깁니다.


"나는 롯테의 마음속에서, 네 자리에 해가 되지 않는 ‘두 번째 자리’를 차지하고 있고, 반드시 그 자리를 지켜야만 한다."라는 장면이 있습니다. 베르테르가 말하는 '두 번째 자리'는 얼마나 서글픈 타협인가요? 자신이 결코 주인공이 될 수 없음을 깨닫습니다. 하지만 그의 열정은 결코 적당한 선에서 멈추지 않습니다.


잊힌다는 것이 곧 지옥이라는 그의 외침은 존재의 근거를 오직 타인의 사랑에 두었던 한 인간이 맞이할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절망을 보여줍니다. 괴테는 여기서 사랑의 숭고함 뒤에 숨은 파괴적 속성을 세밀하게 파헤칩니다.


결국 베르테르는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향해 나아갑니다. 그는 자신의 죽음을 비극이 아닌, 사랑을 완성하기 위한 최후의 의식으로 받아들입니다. 그가 남긴 마지막 편지는 사랑에 대한 애틋한 작별 인사입니다. 자신의 감정에 이토록 투명하게 직면했던 한 청년의 기록은 시대를 불문하고 우리 마음속 깊은 곳을 건드립니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살아간다는 것과 사랑한다는 것 사이의 위태로운 줄타기에 관한 기록입니다. 괴테는 베르테르라는 인물을 통해 인간의 이성이 감정의 폭풍 앞에서 얼마나 무력한지를, 그러나 그 감정의 폭주가 얼마나 인간을 위대하고 아름답게 만드는지를 동시에 보여주었습니다.


만약 제가 롯테였다면 베르테르의 사랑을 너무 늦게 도착한, 혹은 너무 뜨거워서 잡을 수 없는 불꽃으로 정의했을 것 같습니다. 베르테르의 사랑은 롯테의 내면을 밝혀주었지만, 동시에 롯테가 쌓아올린 삶의 질서를 태워버리려 했으니까요. 베르테르는 우리 안의 과잉된 진심을 대변합니다. 감정을 이해하는 동시에, 감정을 관리하는 법을 고민하게 만드는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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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명카피 핸드북 - LONG LIVE THE LAZY 게으른 자여, 영원하라
김은수 지음, 김민경.라이언 박 감수 / 길벗이지톡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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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문장 하나가 세상을 바꾸고, 단어 한 줄이 브랜드의 운명을 결정짓는 카피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미국이라는 거대한 시장의 심장부를 관통하는 200개의 문장을 큐레이션한 아주 특별한 책 『영어 명카피 핸드북』을 소개합니다. 한손에 들어오는 컴팩트한 사이즈의 책이어서 실용적입니다. QR로 책 속 카피의 광고 이미지나 영상을 함께 볼 수 있습니다. 텍스트를 넘어 당시의 영상미, 배경음악, 모델의 표정까지 실시간으로 소환합니다.


김은수 저자는 한국과 미국의 문화를 몸소 체험하며 미묘한 결을 읽어낼 줄 아는 탁월한 문화 통역사입니다. 제일기획과 아모레퍼시픽 등 글로벌 브랜드의 최전선에서 삼성 등 거대 기업의 커뮤니케이션을 리드했던 이력을 바탕으로 이 책은 영어 학습서이자 브랜드 전략서로 기능합니다. LA에서 로컬라이제이션 전문가로 활동하며 수집한 200개의 카피는 미국인들의 욕망과 철학, 그리고 시대정신이 응축된 결정체입니다.





미국 광고의 핵심 키워드를 가장 분명하게 드러내는 문장들로 시작합니다. 미국 광고에서 가능성은 추상적인 희망이 아니라, 움직임과 행동으로 증명되는 가치입니다.


WHEN WE ARE FREE TO MOVE, ANYTHING IS POSSIBLE. (자유로이 움직일 수 있을 때 불가능은 없어요) 토요타의 카피는 움직임이라는 물리적 속성을 인간의 가능성이라는 철학적 가치로 전이시킵니다. 패럴림픽 금메달리스트 로렌 울스텐크로프트의 서사를 빌려와 제품이 아닌 태도를 파는 미국 광고의 진면목을 보여줍니다. 미국에서 도전과 희망을 말할 때 자주 쓰이는 Anything is possible. 문화적 맥락까지 함께 짚어줍니다.


LG의 2024년 광고 카피는 WE DON'T MAKE, LIFE GOOD. YOU DO. 미국 광고에서 자주 쓰이는 Empowerment 카피의 전형입니다. 삶을 멋지게 하는 건 우리가 아니라 당신입니다라며 사람 중심 브랜드 철학을 전면에 내세웁니다. AI, 가전, 플랫폼, 자동화 기술이 삶을 대신 살아주는 것처럼 보이는 시대에 LG는 삶을 대신 설계하는 회사가 아니라 당신의 삶을 돕는 조력자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기술이 세상을 바꾸는 시대에 세정제 브랜드 클로락스의 사례는 일상적인 언어가 어떻게 거창한 혁신보다 더 깊은 울림을 주는지 보여줍니다. CLEAN IS THE BEGINNING. WHAT COMES NEXT IS EVERYTHING. (먼저 청소하세요. 멋진 일이 찾아온다니까요.)라는 문장을 만나보세요. 청소를 끝이 아닌 시작으로 정의하는 순간, 지루한 가사 노동은 설레는 내일을 준비하는 신성한 의식이 됩니다. This is just the beginning이라는 관용구에 What comes next를 결합한 문장 구조를 분석하며, 언어가 어떻게 소비자의 기대를 설계하는지 가이드합니다.





이 책의 부제이기도 한 LONG LIVE THE LAZY. (게으른 자여, 영원하라)가 돋보입니다. 과연 어떤 브랜드의 카피일지 짐작되시나요? LA-Z-BOY의 이 명카피는 위트 넘치는 언어의 유희를 포착합니다. 영국 왕실의 Long live the King을 패러디하여, 리클라이너에 파묻혀 게으름을 부리는 현대인을 왕의 반열에 올립니다. 게으름이라는 추상적 개념이 게으른 자들이라는 연대 의식으로 확장되는 과정을 설명합니다.


미국 미디어 기업 타임워너가 내놓은 카피 STAND UP. STAND OUT. (당당하게 일어서, 돋보이도록.) 강렬합니다. 문맥상 불의에 맞서 일어서다라는 저항과 용기를 뜻한다고 합니다. 여기엔 역사적 배경이 있습니다. 로드니 킹 폭행 사건 가해 경찰들이 무죄 판결을 받으며 인종 차별에 대한 분노가 폭발한 1992년 LA 폭동. 타임워너는 혼란에 빠진 사회에 함께 연대하여 위기를 극복하자는 메시지를 이 짧은 두 문장에 압축해 전달했습니다. 너의 존재와 목소리를 세상에 드러내라는 Stand out 표현을 배워봅니다.


DON’T THROW ANYTHING AWAY. THERE IS NO AWAY. (버린다는 건 없습니다. 어딘가에 남을 뿐이죠.) 문장은 에너지 기업 쉘(Shell)이 언어적 반전을 통해 환경보호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워 줍니다. 쉘이 이산화탄소를 온실 꽃 재배에 재활용하는 사실을 알리는, 사회적 책임을 지키려는 기업의 광고입니다.





미국 카피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비장미보다는 위트와 여유에 있습니다. 저자는 다양한 사례를 통해 미국인들이 삶의 비극조차 어떻게 유머러스한 카피로 승화시키는지,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브랜드에 대한 강력한 팬덤을 형성하는지 설명합니다.


왜 이 문장이 당시 미국 사회를 뒤흔들었는지, 왜 이 단어 선택이 당시의 정치적 올바름과 맞닿아 있는지를 인문학적으로 추적합니다. 전작 『일본어 명카피 핸드북』이 일본 광고 특유의 함축과 절제의 미학을 다뤘다면, 이번 『영어어 명카피 핸드북』은 직관적이고 도발적이며, 때로는 가슴 벅찬 응원을 보내는 미국적 에너지를 가득 담고 있습니다.


영어 공부를 위해 펼쳤다가 인생의 문장을 만나게 되고, 마케팅 아이디어를 얻으려다 인간에 대한 이해를 넓히게 되는 매력을 지닌 명카피 핸드북입니다. 저자가 큐레이팅한 200개의 문장은 거친 자본주의의 정글 속에서 살아남은 생존의 지혜들입니다. 교과서적인 문법에서 벗어나, 실제 미국 사회에서 사람들을 웃기고 울린 임팩트 있는 짧은 문장들을 통해 언어 감각을 끌어올리고 싶은 분들께 최고의 교재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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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일이 있어도 나쁜 날은 아니야
정문정 지음, 피도크 그림, 천근아 감수 / 서교책방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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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책은 표지를 넘기기도 전에 이미 치유를 시작하곤 합니다. 정문정 작가의 그림책 『나쁜 일이 있어도 나쁜 날은 아니야』가 그렇습니다. 제목을 읊조려 보세요. 마치 헝클어진 마음을 단번에 정돈해 주는 마법의 주문처럼 느껴지지 않나요?


"오늘 다 망했어"라는 절망을 내일의 근육으로 바꾸는 마법, 회복탄력성을 다룬 그림책 『나쁜 일이 있어도 나쁜 날은 아니야』. 베스트셀러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을 통해 타인으로부터 나를 지키는 법을 알려주었던 정문정 작가가 이번에는 아이들의 내면으로 시선을 돌렸습니다. 나를 지키는 법의 기초 공사가 사실은 어린 시절의 감정 갈무리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일깨워 줍니다. 여기에 100만 구독자의 사랑을 받는 피도크 작가의 귀여운 그림과 국내 최고의 소아정신과 권위자 천근아 교수의 감수가 더해졌습니다.





주인공 아이는 시련을 겪습니다. 놀이터에서 넘어져 아끼는 옷이 더러워지고, 친구와 장난감 때문에 다투며, 한글 퀴즈에서 아는 문제를 틀리고 맙니다. 작은 실패에도 세상이 무너진 듯 좌절하는 유리 멘탈의 아이를 지켜보며 가슴 아파하는 부모라면 이 책이 반가울 겁니다. 『나쁜 일이 있어도 나쁜 날은 아니야』는 사소해 보이는 아이의 절망을 "별것도 아닌데 왜 울어?"라며 폄하하지 않습니다. 


천근아 교수는 부정성 편향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합니다. 인간의 뇌는 생존을 위해 긍정적인 신호보다 부정적인 신호에 훨씬 민감하게 반응하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특히 정서 조절 능력이 발달 중인 아이들에게는 단 하나의 불쾌한 사건이 하루 전체의 색깔을 검게 물들이는 지각의 오류를 일으키기 쉽다고 합니다.


본격적인 이야기 전개는 시계 요정의 마법과 함께 시작됩니다. 아이가 "당연하잖아. 오늘 나쁜 일이 계속 있었으니까!"라며 울먹일 때, 시계 요정은 지나온 시간을 되감기 합니다. 작가는 아이가 겪은 불행을 삭제하는 것이 아니라, 그 불행 뒤에 숨어 있던 다정함의 조각들을 조명합니다. 아이는 시계 요정의 안내를 따라 자신의 하루를 다시 쓰기 시작합니다. 


우리의 기억은 데이터 센터에 저장된 고정된 파일이 아닙니다. 어떤 관점으로 다시 보느냐에 따라 그 서사가 완전히 달라지는 유동적인 에너지입니다. 작가는 아이들이 스스로 자신의 하루를 편집할 수 있는 권력이 있음을 넌지시 알려줍니다.





천근아 교수가 이 책을 강력히 추천한 핵심 이유는 바로 회복탄력성에 있습니다.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온실 속의 화초처럼 고난 없는 삶을 보장받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폭풍우 속에서도 다시 줄기를 세우는 단단한 마음 근육입니다. 사실 아이뿐만 아니라 어른이 되어서도 우리는 쉽게 부정성 편향의 늪에 빠지곤 합니다. '나쁜 일'은 하루라는 거대한 풍경 속에 찍힌 작은 점일 뿐, 풍경 전체가 아니라는 사실을 잊고 삽니다.


『나쁜 일이 있어도 나쁜 날은 아니야』는 감정을 없애는 법이 아니라, 감정을 정리하는 법을 알려줍니다. 실패했을 때 다시 일어나는 힘은 긍정적인 성격이 아니라, 기억을 재구성하는 사고 방식에서 나옵니다.  '나쁜 일'이라는 점들을 연결해 '나쁜 날'이라는 선을 만들던 아이들에게, 그 점들 사이사이에 박혀 있는 찬란한 보석 같은 순간들을 찾아내라고 속삭이는 『나쁜 일이 있어도 나쁜 날은 아니야』. 내일 또 어떤 나쁜 일이 생길지 모르지만, 그것이 결코 나의 하루를 망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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