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네기의 가르침 - AI도 대신할 수 없는 인간관계와 자기관리 46가지 원칙
데일 카네기 지음, 박중환 옮김 / 세이버스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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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실패를 거듭하던 한 청년이 1912년 뉴욕 YMCA 강연장에서 인간관계 기술을 가르치기 시작했을 때, 그는 자신이 만든 원칙이 백 년 뒤 AI 시대에 다시 소환되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을 겁니다. 데일 카네기, 전 세계 6천만 부 이상 팔리며 전무후무한 고전이 된 『인간관계론』의 저자입니다. 


박중환의 『카네기의 가르침』은 카네기의 대표작 두 권 『인간관계론』과 『자기관리론』을 한 권으로 묶었습니다. 카네기는 원래 자기 다스림과 인간관계를 별개의 책으로 썼습니다. 하지만 박중환 편집자는 이 둘을 갈라놓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 봤습니다. 자기를 다스리지 못한 채 관계만 논하면 모래 위에 집을 짓는 것이고, 관계를 외면한 채 자기만 다스리면 섬처럼 고립됩니다. 이번 재구성은 단행본 두 권을 이어 붙인 게 아니라, 애초에 헤어지지 말았어야 할 한 쌍을 재결합시킨 작업입니다.


인공지능에게 질문하면 몇 초 만에 답이 돌아옵니다. 회의 내용을 요약하고, 이메일을 대신 작성하고, 심지어 상대방의 성향을 분석해 대화 전략까지 제안합니다. 그런데 기술이 사람 사이의 소통을 이렇게 쉽게 만들어주는데도 우리는 여전히 사람 때문에 자주 지칩니다. 상사의 한마디에 하루 종일 마음이 불편하고, 가족과 대화하다가 괜히 말싸움으로 번지고, 오랜 친구에게 메시지를 보내면서도 이 말을 어떻게 받아들일까를 몇 번씩 고민합니다.





『카네기의 가르침』 부제는 AI도 대신할 수 없는 인간관계와 자기관리 46가지 원칙입니다. 오래된 인간관계론을 오늘의 언어로 다시 정리한 책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읽어보면 관심의 초점은 성공 자체가 아니라 자신의 마음을 다루면서 타인의 마음을 얻는 능력에 있습니다. 나는 내 마음을 다룰 수 있는가? 그리고 나는 다른 사람을 정말 보고 있는가? 이 두 질문이 46가지 원칙을 관통합니다.


카네기는 걱정을 제거하는 방법을 거창한 정신론으로 설명하지 않습니다. 걱정이 우리 삶에서 실제로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는지를 들여다봅니다.


"도망간 곳에 천국은 없다."라는 표현이 인상 깊었습니다. 걱정이 많은 사람은 해결책을 찾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같은 생각을 반복하고 있을 때가 많습니다. 그때 그렇게 말하지 말걸. 앞으로 잘못되면 어떡하지. 혹시 내가 무능해 보였을까. 다음 달에도 이런 상황이면 어떻게 하지. 문제 해결처럼 보이지만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습니다. 과거는 수정되지 않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카네기가 강조하는 현재 중심의 태도는 오늘을 즐기자와 다릅니다. 오히려 현실적입니다. 내가 지금 통제할 수 있는 영역으로 사고를 이동시키는 기술입니다. AI 시대에는 정보가 부족해서 걱정하는 게 아니라 정보가 너무 많아서 걱정하는 시대입니다. 검색하면 검색할수록 불안의 근거가 늘어납니다. 짧은 영상 하나를 봤는데 알고리즘이 비슷한 불안을 열 개 더 가져다줍니다.


걱정을 숫자와 문장으로 바꾸는 방식이 실용적입니다. 회사에서 잘릴까 봐 걱정된다는 생각은 막연하지만, 6개월 생활비가 필요하다고 쓰는 순간 계산할 수 있습니다. 사업이 망하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은 끝이 없지만 이번 달 현금흐름이 얼마인가를 적으면 행동할 수 있습니다.


편집자 코멘트 파트는 현대 뇌과학과 심리학의 프레임워크를 끌어와 카네기의 고전적 통찰을 새롭게 해석합니다. 카네기가 수많은 경험과 직관, 임상적 관찰을 통해 발견해 낸 처세·자기관리 원칙들을 현대 뇌과학, 긍정심리학, 행동경제학의 연구 데이터 및 메커니즘으로 해설합니다. 카네기의 경험칙이 통계와 과학적 이론으로 어떻게 설명되는지 증명해 주는 역할입니다. 데일 카네기의 고전 텍스트와 현대 독자 사이를 이어주는 역할을 합니다. 


인간관계 파트를 여는 '벌통을 걷어차면 꿀을 얻을 수 없다' 편은 상대방을 비판하거나 비난하는 행위가 왜 무익한지를 직관적이면서도 강렬하게 보여주는 대표적인 비유입니다. 달콤한 꿀을 얻으려고 벌통을 발로 툭 차면 어떻게 될까요? 성난 벌들에게 쏘이기만 하겠죠. 이 비유는 다른 사람을 바꾸고 싶다고 무턱대고 비난하거나 혼내면, 내가 원하는 결과를 얻기는커녕 관계만 틀어진다는 뜻입니다.


아무리 명백하게 잘못을 한 사람이라도 혼이 나면 순순히 인정하기보다는, 일단 자기 행동을 정당화하고 스스로를 보호하려는 마음이 먼저 작동하거든요. 뉴욕을 공포에 떨게 한 살인범 크롤리조차 사형대에 서는 순간까지 자신을 남을 해칠 의도가 없는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으로 정당화했던 사례처럼 말입니다.





카네기는 이 벌통 예시를 통해 타인을 비판하여 감정을 상하게 만드는 것은 아무런 실익을 가져다주지 못하며, 진정한 영향력은 비난이 아닌 따뜻한 이해와 인정에서 시작된다는 본질을 짚어냅니다.


『카네기의 가르침』은 인물이 언급될 때마다 해당 인물의 삽화를 함께 배치하여 시각적 몰입감이 좋습니다. 데일 카네기의 원문이 수많은 실제 인물들의 생생한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는 만큼 찰스 슈왑, 존 워너메이커, 루터 버뱅크, 메이오 형제와 같은 인물들의 모습을 텍스트 바로 옆에 시각적으로 보여주고 있어 마치 대화를 나누는 듯한 생동감을 선사합니다.


『카네기의 가르침』은 실패하고, 걱정하고, 실수하고, 관계 때문에 고민하는 평범한 사람에게 말을 건넵니다. 박중환 편집자는 이 책을 밥벌이의 현장에서 분투하는 직장인, 성공을 꿈꾸는 청년, 변화를 꿈꾸는 모든 이에게 보내는 헌사라고 말했습니다. 삶은 대부분 거대한 결정을 내리는 순간보다 작은 관계의 연속으로 이루어집니다.


46가지 원칙을 전부 기억하려고 애쓸 필요는 없습니다. 지금 자신의 문제 하나를 골라 적용해보세요. 상사와 관계가 어렵다면 상대를 비판하기 전에 관심사를 알아보는 것부터 시작할 수 있습니다. 배우자와 대화가 줄었다면 오늘 한 가지 장점을 구체적으로 말해볼 수 있습니다. 걱정이 많다면 종이에 문제를 적어볼 수 있습니다. 일에 흥미를 잃었다면 업무 속에서 게임처럼 바꿀 수 있는 요소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누군가에게 지적해야 한다면 명령 대신 질문으로 바꿔볼 수도 있습니다.


사람을 대하는 자신의 습관을 점검하게 만드는 책 『카네기의 가르침』. AI에게 질문하는 것은 쉽습니다. 하지만 사람에게 제대로 질문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AI에게 답을 얻는 것도 쉽습니다. 하지만 사람의 말을 끝까지 듣는 것은 어렵습니다. AI에게 문장을 부탁하는 것도 쉽습니다. 하지만 어떤 말이 상대에게 용기를 줄지 생각하는 것은 여전히 인간의 몫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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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 없는 낙관주의 - 무너진 세계에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토미 비링하 지음, 유동익 옮김 / 어크로스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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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경기가 좋아질 것이라는 전망, 전쟁이 끝날 것이라는 희망, 기후위기를 해결할 기술이 등장할 것이라는 희망, 사회가 결국에는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라는 희망까지. 우리는 수많은 희망을 공급받으며 살아갑니다. 그런데 현실이 그 기대를 계속 배반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네덜란드를 대표하는 소설가이자 에세이스트 토미 비링하가 이 까다로운 질문을 붙잡았습니다. 막연한 긍정이라는 환상을 깨뜨리고, 오늘을 바로 세우는 단단한 실천의 철학 『희망 없는 낙관주의』. 네덜란드 철학의 달 기념 재단이 선정한 2025 올해의 철학 에세이입니다.


“희망이 있습니까?” 대신 “왜 희망을 묻습니까?”라며 질문을 뒤집습니다. 우리는 미래가 좋아질 것이라는 전망이 있어야 오늘을 견딜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저자는 오히려 미래에 대한 보장이 사라졌을 때도 행동할 수 있는 인간을 이야기합니다.


희망은 미래에 대한 기대에 가깝지만, 낙관은 현재를 움직이게 하는 행동이라는 분석입니다. 희망을 품는 순간 '내가 이렇게 행동하면 세상이 좋아지겠지?'라는 보상 심리에 사로잡히고, 그 기대가 배신당했을 때 깊은 절망과 무력감에 빠지게 됩니다. 희망을 없애자는 말은 결국, 결과를 장담할 수 없어도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계속하는 태도입니다.


저자는 제방 길을 걸으며 쓰레기를 줍는 일상적인 행위를 통해 깨달았습니다. 결과를 바라는 근시안적 기대를 내려놓았을 때 비로소 타인의 몰상식함에 분노하지 않고, 그저 현재에 충실한 플라스틱을 줍는 기계처럼 담담하게 옮길 수 있었다고 말합니다.





미래의 보상에 연연하지 않는 자율적 정신이야말로, 거창한 구원론 없이도 우리가 오늘을 포기하지 않고 지탱하게 만드는 힘입니다. “해결될 것 같으니 한다”가 아니라 “옳기 때문에 한다”는 태도입니다.


기후 위기와 환경 파괴는 현실의 비극입니다. 『희망 없는 낙관주의』는 인간이 자연과 맺어온 관계가 어떻게 기괴하게 비틀어졌는지 조명합니다. 아체 부족의 이야기가 흥미롭습니다.


그들은 불 피우는 기술을 단 한 세대 만에 잃어버렸습니다. 부모 세대는 여전히 불을 만들 수 있었으나 그들 자신은 어떻게 불을 피우는지 잊어버린 겁니다. 다시 배우면 되지 않나 싶겠지만, 그들은 이제 숲 가장자리의 농부들에게 “불 좀 있나요?”라고 묻습니다. 이렇게 사람은 기술을 잃어버리고, 잊힌다는 걸 짚어줍니다. 기술의 발전이 거대해질수록 정작 생존에 필요한 본질적인 감각과 유산은 손쉽게 마모됩니다.


상실은 한 세대 안에서도 일어날 수 있습니다. 문명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자원을 무한히 사용할 수 있다고 믿는 순간 우리는 그 자원의 희소성을 잊습니다. 민주주의도 당연하다고 생각하면 그것을 지키는 능력을 잃을 수 있습니다. 사실을 확인하는 습관도 누군가가 대신 검증해 줄 것이라고 생각하면 약해집니다.


잊는 일은 갑자기 일어나지 않습니다. 조금씩 하지 않다가, 조금씩 의존하다가, 어느 순간 더 이상 할 수 없게 됩니다. 이 책은 우리가 무엇을 잃고 있는지를 점검하게 만듭니다.


진실의 종말에 관한 논의도 흥미롭습니다. 사람들은 불확실성에 대한 공포에서 벗어나고 싶어 안달하기에, 거짓말이 자라기에 더할 나위 없는 환경이 되었다는 걸 짚어줍니다. 나는 내 알고리즘에서 본 세상을 믿고, 다른 사람은 다른 알고리즘에서 본 세상을 믿습니다. 같은 사건을 보고도 전혀 다른 세계에 사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공동의 사실이 무너지면 대화도 어려워집니다. 그리고 대화가 어려워지면 공동체가 무엇을 해야 할지 합의하기도 어려워집니다. 결국 진실은 정보의 문제가 아니라 공동생활의 조건이 됩니다.





이 책을 단지 위기 진단서로 읽는다면 절반만 읽은 셈입니다. 철학자 한나 아렌트와 니체, 에른스트 블로흐, W. G. 제발트뿐 아니라 미하엘 엔데 등 문학적 세계까지 연결하면서 하나의 질문을 여러 각도에서 비춥니다.


철학자 톤 르메르를 인용한 '정오'의 이미지는 이 책에서 가장 문학적인 순간입니다. "태양이 가장 무자비할 때 아무것도 숨을 수 없다. 그것은 진리와 죽음의 순간이며 우리가 세상을 있는 그대로 경험하는 순간이자 고통스러운 명료성의 시간이다."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보통 희망을 어둠을 밝히는 빛으로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 책에서 빛은 조금 다르게 등장합니다. 너무 밝은 빛은 오히려 보고 싶지 않은 것까지 보여줍니다. 정오의 태양 아래에서는 그늘에 숨기 어렵습니다. 정오의 빛은 우리에게 괜찮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것이 지금의 현실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그다음입니다. 현실을 제대로 본다고 해서 반드시 절망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현실을 정확히 볼수록 어떤 행동이 필요한지도 분명해질 수 있습니다.


저자는 볼테르의 소설 《캉디드》의 유명한 구절 "우리의 정원을 가꾸어야 합니다."를 끌어옵니다. 희망하기를 행동하기로 바꾸라는 뜻입니다. 그가 자신의 딸들에게, 그리고 이 시대를 견디는 우리 모두에게 전하는 메시지입니다.


기후위기처럼 끝을 가늠할 수 없는 문제 앞에서 희망은 오히려 사람을 지치게 만드는 셈입니다. 희망이라는 미끼에 낚여 실망하기를 반복하기보다, 구원에 대한 맹목적 기대를 버리고 당장 땅에 묘목을 심는 일. 생명 점화 공간을 만드는 실천이자, 묵묵히 흙을 만지는 행동입니다.





『희망 없는 낙관주의』는 먼저 우리가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살펴봅니다. 무엇을 잃어가고 있는지 확인합니다. 왜 사람들은 거짓말에 기대는지 들여다봅니다. 왜 권위주의가 불안한 사회에서 힘을 얻는지도 생각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에야 묻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희망과 낙관을 분리해 사고하는 지점부터 독특한 책이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희망이 있어야 행동하는 사람은 결과가 나빠졌을 때 행동을 멈출 가능성이 있습니다. 반면 희망이 없어도 행동하는 사람은 결과와 자신의 행동을 분리할 수 있습니다. 이 차이는 상당히 큽니다.


기대는 결과를 바라봅니다. 행동은 과정에 참여합니다. 좋은 일이 생길 것이라고 장담할 수 없어도 내가 옳다고 판단한 행동을 하겠다는 단단한 태도를 일깨웁니다. 섣부른 위로나 희망 고문 대신, 기대를 내려놓고도 무너지지 않는 실천적 태도를 제시하는 『희망 없는 낙관주의』. 위로를 건네지 않으면서도 무기력하게 만들지 않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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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부시마니쿠스 - 문명 바깥의 슬기로운 사람들
정해종 지음 / 파람북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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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더 많은 생산성과 속도를 요구받는 현대사회에서 문득 우리는 무엇을 위해 이토록 바쁘게 달려가고 있는가라는 질문이 솟구칠 때가 있습니다. 정해종 작가의 『호모 부시마니쿠스』는 이 질문의 답을 인류의 가장 오래된 기억, 아프리카 칼라하리사막의 부시먼에게서 찾아 나섭니다.


정해종 저자는 시인, 출판인이자 2001년 터치아프리카를 설립해 국내에 낯선 아프리카 현대미술을 꾸준히 소개해 온 전시 기획자이기도 합니다. 『호모 부시마니쿠스』에서는 미공개 부시먼 판화 50여 점과 함께 문명이 삭제해 버린 인간성의 원형을 탐구합니다.


지도자도, 군대도, 경전도, 토지 소유권 문서도 없는 사회. 반사적으로 발전 이전 단계를 떠올립니다. 하지만 저자는 이 없음을 결핍이 아니라 설계로 읽습니다. 배타적으로 나눠 가질 필요가 없는 땅, 사람 위에 사람을 세울 이유가 없는 관계, 삶과 종교와 예술을 애초에 분리할 필요가 없었던 세계관 말입니다.


우리는 세상의 수많은 정보를 모니터 화면과 숫자로 소비하지만, 부시먼은 몸 전체의 감각으로 생태의 문장을 독해합니다. 그들에게 대지는 백과사전이며 수풀은 삶의 교과서입니다. 사막에서 불어오는 바람의 냄새, 풀잎의 기울기까지도 모두 살아있는 기호로 작동합니다.


생태적 독해 능력은 무조건적인 채집이나 무자비한 정복으로 이어지지 않습니다. 인위적으로 쪼갠 시계의 바늘 대신 햇빛과 그림자의 각도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며 자연의 리듬에 삶을 맞춥니다.


오늘 필요한 만큼만 자연에서 얻고, 내일의 생명이 살아갈 여지를 남겨두는 절제의 미학을 지켜냅니다. 필요한 만큼 얻고 충분하다고 느낄 줄 아는 능력, 이것이야말로 자본주의 사회가 유독 서툰 기술이 아닐까요.




부시먼 공동체는 경쟁 대신 협력을, 위계 대신 평등을 유지하기 위한 장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고기 폄훼하기 규칙이 대표적입니다. 뛰어난 사냥꾼이 거대한 사냥감을 잡아와도 마을 사람들은 영웅으로 떠받드는 대신, 오히려 “이게 고기냐, 뼈다귀냐”라며 농담을 던집니다.


이 농담은 성과를 깎아내리려는 심술이 아니라, 뛰어난 공로가 권력이나 특권으로 변질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유쾌한 사회적 장치입니다. 우리가 오랫동안 문명 이전의 미개함으로 치부해온 삶 속에 사실은 질서가 작동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하나씩 짚어냅니다.


오만을 경계하고 모닥불 둘레에 모두가 평평하게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풍경은, 무한 경쟁과 우열 가리기에 몰두된 우리들에게 참된 공동체성의 조건을 질문하게 만듭니다.


부시먼의 신화와 영성에 관한 이야기가 흥미진진하게 펼쳐집니다. 여기서 신은 실수하고 후회하는 존재이고, 사람은 동물로 변하며 동물은 조상이 됩니다. 인간과 자연, 삶과 죽음의 경계가 아직 단단하게 굳지 않았던 세계관입니다.


『호모 부시마니쿠스』는 우리가 무심코 사용하는 원시(原始)라는 단어의 프레임을 뒤집습니다. 문명의 발달 단계에서 뒤처진 낡은 유물이 아니라, 인류가 처음 가졌던 맑고 순수한 감각의 출발점인 시원(始原)으로 바라보자고 합니다. 원시라는 말에는 뒤처짐의 뉘앙스가 있지만, 시원은 출발점이라는 뜻을 가집니다.


"‘원시(原始)’라는 단어를 글자의 위치를 바꾸어 ‘시원(始原)’으로 읽는 것. 그렇게 읽을 때, 부시먼의 삶은 더 이상 문명 이전의 미성숙한 단계에 머물지 않는다. 오히려 인류가 한때 누렸고 지금도 부분적으로 유지되고 있는 여러 삶의 방식들 가운데 하나이며, 무엇보다 우리가 잃어버린 안정과 평화, 치유와 생태의 감각을 일깨우는 영적 고향이 된다." - p210


우리는 과거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돌아갈 필요도 없습니다. 하지만 출발점을 돌아보는 일은 가능합니다. 시원의 관점은 현대 문명이 걸어온 길이 과연 인간을 진정으로 행복하게 만들었는가를 되짚어보는 기준점이 됩니다.





오늘날 부시먼은 국경과 토지 소유권, 개발과 보호구역이라는 제도 속에서 삶의 터전을 실질적으로 잃어가고 있습니다. 이 현실을 가리고 과거의 생활 방식만 낭만적으로 소비하는 것 역시 또 다른 형태의 폭력일 수 있습니다.


식민 지배와 강제 정착으로 전통적인 터전을 잃어가는 위기 속에서, 부시먼 작가들은 조상들이 암각화에 새겼던 신화와 기억을 종이와 판화 위에 재현하기 시작했습니다. 쿠루 아트 프로젝트 등 현대 부시먼 미술 운동은 서구 인류학의 피동적 연구 대상이었던 그들을 능동적인 창작 주체로 전환시켰습니다.


캔버스를 가득 채운 선명한 색채와 선들은 존재 자체를 증명하려는 강력한 생명의 에너지로 가득 차 있습니다. 문자 없이도 수만 년간 이어져 내려온 그들의 서사는 이제 동시대 미술의 가장 전위적인 언어로 탈바꿈하여 세계와 소통합니다.


호모 부시마니쿠스는 노동과 놀이, 현실과 영성을 나누지 않는 감각을 압축한 상징적 호명입니다. 『호모 부시마니쿠스』는 삶의 번아웃과 관계의 고립에 지친 이들에게 진정한 풍요와 평화가 어디에서 시작되는지 일깨웁니다. 아프리카 칼라하리가 건네는 거대한 고요와 치유의 문장을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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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재의 건축레시피 1 : 태도 이원재의 건축레시피 1
이원재 지음 / 에피케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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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감각적인 인테리어 카페, 도심 한복판에 우뚝 선 거대한 고층 빌딩 그리고 인생샷 명소까지. 수많은 이미지가 매초 소비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 공간이 왜 탄생했는지, 어떤 맥락 속에서 거주자와 숨 쉬는지에 대한 궁금증은 없습니다. 완성된 형태만 빠르게 훑어보는 결과 중심의 접근일 뿐입니다.


이원재 저자의 『이원재의 건축레시피 1: 태도』는 신선한 화두를 던집니다. 시각적 매혹에 마취된 우리들에게 "과연 공간이란 무엇이며, 우리는 어떤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건넵니다.


건축가이자 학자 이원재 저자는 뉴욕 개인전 『POLITICS』, 로봇·3D 프린팅 전시 『AGITECTURE』, 대한민국 공공건축상 대상 수상 등 기술과 예술의 경계를 넘나드는 다채로운 이력을 지녔습니다.


『이원재의 건축레시피 1: 태도』는 세계적 거장 열두 명과의 진솔한 대화를 담았습니다. 유튜브 채널 「건축레시피」에서 시작된 이 여정은 단순히 멋진 건물의 설계 도면이나 만드는 방법을 알려주지 않습니다. 고정된 정답을 과감히 내려놓고, 미지의 가능성을 탐구하는 태도(Attitude)야말로 공간과 삶을 지탱하는 진짜 재료임을 이야기합니다.


요즘은 AI가 만들어내는 화려한 시안에 판단을 의존하곤 합니다. 첫 문을 열어젖히는 거장 피터 쿡(Peter Cook, 아키그램 창립 멤버)과의 대화는 인공지능과 생성형 도구가 폭발적으로 보급되는 현대 사회에 중요한 직관을 이야기합니다. 피터 쿡은 기술을 대하는 주체적 해석의 중요성을 일깨웁니다.


사진의 발명이 회화를 파괴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인상파와 현대 미술이라는 풍요로운 유산을 낳았듯, AI 시대에 건축가와 창작자에게 필요한 것은 어떤 가능성을 그려낼 것인가를 주도적으로 결정하는 의지와 상상력이라고 합니다.




그는 건물의 외형적 완성도보다 더욱 본질적인 가치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우리는 어떻게(How)라는 방법론에 매몰되기 쉽습니다. 그러나 거장이 일깨우는 레시피의 핵심은 누구에게, 어떤 삶의 경험을 줄 것인가(Why & What)라는 본질적인 질문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현대 도시의 커다란 비극 중 하나는 획일화입니다. 규격화된 아파트, 어디를 가나 똑같은 브랜드 매장, 표준화된 몰 취향 속에서 개인의 독창성은 설자리를 잃어갑니다. 존 홍(John Hong, 서울대학교 교수)과의 대화는 자신만의 언어를 구축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줍니다. 남들이 정해놓은 표준에 맞춰 살아가기 쉬운 세대들에게, 나만의 시선과 언어를 구축하라는 당부를 건넵니다.


존 홍 교수가 말하는 언어로서의 건축이 어떻게 실제 공간으로 구현되는지를 프로젝트 사례로 보여줍니다. 어린이들을 위해 설계된 도서관은 작은 탑을 탐험하듯 구석구석을 누비며, 공간 자체를 몸으로 읽어내도록 설계되었습니다. 어린이의 눈높이라는 고유한 언어가 만들어낸 레시피입니다.


또한 「지유원(JiYuWon Cultural Space)」 프로젝트에서는 경기도 광주의 자연 지형과 역사적 층위를 훼손하지 않기 위해 반 층씩 낮아지는 구조를 선택합니다. 땅을 파헤쳐 평평하게 만드는 효율성의 논리 대신, 경사지의 원래 지형을 존중하며 새로운 인공적 지형을 땅 위에 안착시킨 것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예측 불가능한 변수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기후 변화, 주거 불안정, 지역성의 해체 등 거대한 위기 앞에서 단 하나의 완벽한 정답이란 존재할 수 없습니다.


국내외에서 고군분투하는 건축가들과의 대화는 바로 이 불확실성을 견뎌내는 태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삶 또한 정해진 공식이나 레시피가 없으며, 끊임없이 배우고 수정해 나가는 절차 그 자체에 가치가 있습니다.


이교석 건축가는 오늘날 글로벌 건축계가 직면한 실천적인 책무에 대해 목소리를 냅니다. 아름다운 형태를 조각하는 데서 나아가, 재료의 탄소 발자국을 줄이고, 자원을 순환시키며, 도시의 지속 가능성을 고민하는 일. 이것이야말로 21세기 건축가가 가져야 할 윤리적 태도입니다.


책에 등장하는 톰 위스컴, 카이우베 베르크만, 앤드레스 자케 등 세계적 거장들 역시 미학적 화려함에 안주하지 않고 사회적·생태적 이슈에 치열하게 개입하고 있었습니다.


『이원재의 건축레시피』는 화려한 건축 사진집이 아닙니다. 근사한 공간이 완성되기까지 건축가가 밤을 지새우며 던졌을 수백 가지 질문과 망설임 그리고 치열한 선택의 흔적들입니다. 좋은 건물보다 좋은 질문을 만드는 12명의 건축가들을 만나보세요.





좋은 책은 읽고 나서 모든 것을 알게 만드는 책이 아니라,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을 보게 만드는 책일 때가 있습니다. 길을 걷다가 건물을 보면 “예쁘네”에서 끝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왜 이곳에 이렇게 세워졌을까. 누구를 위해 만들어졌을까. 사람들의 행동을 어떻게 바꾸고 있을까. 주변의 역사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을까. 10년 뒤에도 이 건물이 이곳에 있어야 할까. 그리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해 건축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우리의 시선은 그 공간을 지탱하는 건축가의 뜨거운 태도를 향해 닿기 시작합니다.


건축을 전공하지 않은 저도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는 책입니다. 전문적인 도면을 해석할 필요도, 건축사를 외울 필요도 없습니다. 그저 주변을 조금 다르게 바라보면 됩니다. 건물은 가만히 서 있지만, 그 안에는 수많은 질문이 숨어 있으니까요.


이원재 저자는 결과 뒤에 숨겨진 과정의 철학을 보여줍니다. 획일적인 정답에 자신을 맞추려 애쓰기보다, 자신만의 고유한 태도를 가다듬는 것. 그것이야말로 가장 아름다운 레시피라는 것을 일깨워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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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파라거스 - 제16회 문학동네청소년문학상 대상 수상작 문학동네 청소년 81
김양미 지음 / 문학동네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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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말투가 이상하다, 눈치가 없다, 분위기를 못 읽는다, 너무 예민하다, 답답하다…. 한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가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지만, ‘쟤는 좀 이상해’라는 결론을 내리는 데는 몇 초만에 끝납니다. 살면서 타인을 참 쉽게 규정하고 편의대로 분류해버립니다.


제16회 문학동네청소년문학상 대상 수상작인 김양미 작가의 소설 『아스파라거스』는 도대체 그 이상함의 기준은 누구의 관점인가 하고 묻습니다.


『아스파라거스』는 아스퍼거 증후군이 있는 요한과 그의 친구가 되어 가는 현빈, 그리고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데 어려움을 겪는 현빈의 아버지 병진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펼칩니다. 서로 다른 궤도를 도는 인물들이 어떻게 서로의 울림통이 되어주는지 그려냅니다. 한쪽만 적응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방법을 찾아가는 겁니다.


중학교 2학년 현빈의 반에는 요한이라는 아이가 있습니다. 목소리가 크고 눈치도 없고, 다른 친구들과 조금 다른 방식으로 행동합니다. 아이들은 그 차이를 곧바로 밉상이라는 평가로 바꿉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요한이의 행동 자체보다 그 행동을 해석하는 교실의 방식입니다. 요한이가 어떤 행동을 했는지보다 쟤는 원래 저런 아이라는 평가가 먼저 생겨납니다. 한 번 붙은 평가는 다음 행동을 해석하는 기준이 됩니다. 역시 이상해, 또 저러네, 눈치가 없네 식으로요. 어느 순간부터 자신의 행동으로 평가받는 것이 아니라, 이미 붙어 있는 이미지로 평가받기 시작합니다.


직장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집니다. 회의에서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은 나서는 사람이 되고, 말을 적게 하는 사람은 소극적인 사람이 됩니다. 메시지에 답장이 늦으면 무관심한 사람이 되고, 지나치게 꼼꼼하면 피곤한 사람이 되기도 합니다.


『아스파라거스』는 바로 그 생략된 과정을 다시 보여줍니다. 요한이를 알아가는 과정에서 현빈은 자신이 처음에 가지고 있던 판단이 충분하지 않았음을 깨닫습니다. 하지만 ‘이해’했다고 해서 곧바로 “괜찮아, 너는 특별해”라고 말하는 감상적인 장면으로 완성되지 않습니다. 불편함을 느끼면서도 상대를 다시 알아가려는 과정으로 그려집니다.


공감해야 한다, 이해해야 한다는 걸 머리로는 알아도 현실의 관계에서는 그렇게 깔끔하게 흘러가지 않지요. 마음에 들지 않을 수도 있고, 짜증이 날 수도 있고, 서로 오해할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관계를 포기하지 않는 것. 『아스파라거스』가 보여주는 ‘이해’는 그 현실적인 지점에 서 있습니다.


현빈에게는 또 다른 이해하기 어려운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아버지 병진입니다. 병진은 사람들과 어울리는 데 어려움을 겪고 직장에서도 자주 실패합니다. 집에서도 가족에게 인정받지 못하고 소파에 누워 지내는 시간이 많습니다. 현빈에게 아버지는 친하지만 편하지 않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현빈은 요한이를 알아가면서 아버지를 다시 바라보게 됩니다. 그리고 아버지 역시 요한이와 비슷한 어려움을 겪고 있을 가능성을 생각합니다. 한 사람을 이해하기 시작했더니 전혀 다른 한 사람이 보이기 시작한 겁니다.


가족에게는 기대가 더 크고, 기대가 크면 실망도 커집니다. 상대가 나를 알아서 이해해 주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아스파라거스』는 가족 역시 다른 사람이라는 사실을 일깨웁니다.





이해는 내 속도를 조절하는 일이라는 걸 깨닫게 됩니다. 『아스파라거스』가 말하는 각자의 속도는 무책임한 위로가 아닙니다. 그 안에는 분명한 책임이 있습니다. 자신의 방향을 찾고, 포기하지 않고, 필요하면 방법을 바꾸며 계속 나아가야 합니다.


요한은 관계를 맺는 방식이 다르고, 병진은 사회생활의 방식이 다릅니다. 현빈 역시 처음부터 타인을 잘 이해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누군가를 이상한 사람으로 규정하는 순간, 우리는 자신을 정상적인 사람의 자리에 세우게 됩니다. 그런데 그 정상이라는 자리가 생각보다 허술합니다. 나 역시 누군가에게는 이해하기 어려운 사람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나 역시 이해받고 싶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 살아가며 필요한 것은 모든 사람을 이해하는 능력이 아니라, 이해하기 전에 함부로 결론 내리지 않는 습관일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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