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너의 웃는 얼굴 - 나태주 한서형 향기시집
나태주.한서형 지음 / 존경과행복 / 2026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향기로 읽고 손으로 쓰는 새로운 시집 『행복 너의 웃는 얼굴』. 풀꽃과 일상의 언어로 수많은 독자의 마음을 어루만져 온 나태주 시인과 국내에서 향기시집이라는 새로운 영역을 꾸준히 개척해 온 향기작가 한서형이 함께 완성한 마음 향기시집 시리즈의 마지막 권입니다.


시는 가장 적은 문장으로 가장 많은 감정을 건넵니다. 그런데 향기시집은 눈으로만 읽는 시집이 아닙니다. 시를 읽고, 향기를 맡고, 손으로 문장을 따라 쓰는 과정까지 이어집니다.


사랑과 소망, 감사라는 감정을 차곡차곡 지나 마지막에 행복이라는 감정으로 귀착되는 흐름이 참 좋습니다. 각 권마다 귀여운 향갈피까지 있습니다.


책을 마주하는 순간 먼저 향기가 피어오릅니다. 행복을 모티프로 한서형 작가가 조향한 향은 감귤류의 생기와 은은한 꽃향기 그리고 안정감을 더하는 우디 계열입니다. 감귤류 특유의 산뜻함과 온기를 동시에 품고 있어 마음에 쏙 듭니다.




향이 시를 위한 배경이 된다는 게 매력적입니다. 좋은 영화에서 음악이 장면을 돋보이게 하듯 향 역시 시를 더 오래 기억하게 만드는 역할을 합니다. 디지털 화면을 통해 수많은 콘텐츠를 소비하는 시대일수록 종이책만이 줄 수 있는 물성과 감각이 더욱 소중해진다는 사실도 함께 떠올리게 합니다.


작가가 정의하는 행복은 잔잔하고 고요한 마음, 기쁜 일에 크게 들뜨거나 슬픈 일에 한없이 침잠하지 않는 내면의 중용 상태입니다. 무언가로 가득 차 있지 않아도 그 자체로 충만한 텅 빈 마음, 담담한 안온함에 가깝습니다.


시 「아침 인사」가 그렇습니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내 몸이 제대로 기능을 하고 있는지, 숨을 쉬는 데 통증은 없는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에 증오가 섞여 있지 않은지 확인하는 것. 시인은 "그럼 됐어"라는 말을 통해 행복의 문턱을 최저선으로 낮추어 버립니다. 매일 아침 주어지는 삶의 무사함을 능동적으로 수용하게 만듭니다.





시 「그냥 좋아」는 최근 유행한 <니가 좋아> 노래가 생각났어요. 그 노래를 들을 때면 이상하게 기분이 좋아졌는데, 가사에 그 이유가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었거든요. 세상은 늘 은연중에 조건부 긍정을 요구하잖아요.


쓸모가 있어야 가치 있다는 무언의 압박 속에서 살아가다 보니, 아무런 대가 없이 내 존재 자체를 날것 그대로 받아주는 사람을 만나기가 참 어렵습니다. 저 역시 그런 말을 누군가에게 해주지 못했었고요. 그래서 이 시를 만났을 때도 가슴이 벅차오르는 감정을 느꼈습니다.


행복을 멀리서 찾기보다 오늘 하루의 평안 속에서 발견하는 시선을 배울 수 있습니다. 행복이란 거창한 사건이 아니라 나직하게 주고받는 다정한 연결감 속에서 시작된다는 걸 시로 일깨워줍니다.


『행복 너의 웃는 얼굴』에는 한서형 작가의 손글씨로 구성된 필사 페이지가 있습니다. 좋은 문장을 따라 쓰는 일은 생각보다 느린 작업입니다. 읽을 때는 스쳐 지나가던 문장이 손끝을 거쳐 종이에 남는 순간 전혀 다른 의미를 갖게 됩니다.


시를 어렵게 느꼈던 이들에게도 나태주 시인의 짧고 따뜻한 문장 덕분에 부담 없이 다가갈 수 있습니다. 선물하기 좋은 시집을 찾는 사람, 마음 돌봄에 관심 있는 이들에게도 만족도가 높은 향기시집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명화 속 잊혀진 사람들 - 찬란한 걸작이 말하지 않는 비밀
김선지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6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천재의 조명 뒤에 가려진 캔버스의 반쪽, 지워진 존재들의 목소리로 미술사를 다시 쓰는 『명화 속 잊혀진 사람들』. 거장의 이름 뒤에 감춰진 또 다른 주인공들을 만나봅니다.


역사와 미술사를 전공한 김선지 저자는 뜻밖의 미술관》, 《사유하는 미술관》, 《싸우는 여성들의 미술사》 등을 통해 익숙한 미술사를 새로운 관점에서 풀어왔습니다. 『명화 속 잊혀진 사람들』에서는 그림의 중심에 서 있던 화가 대신, 오랫동안 화면 밖으로 밀려났던 모델과 연인, 제자와 동료, 가족과 라이벌을 불러냅니다. 한 편의 역사 다큐멘터리처럼 흥미진진합니다.


화가의 연인이나 모델을 뮤즈라는 낭만적인 단어로 포장해왔습니다. 예술가에게 영감을 주는 신비로운 존재로 격상시키지만, 실상 그 화려한 수식어는 예술가의 에고를 위해 타인의 삶을 가두는 감옥과 다름없었습니다. 대표적인 인물이 라파엘 전파의 대표작 「오필리아」의 모델인 엘리자베스 시달입니다. 19세기 빅토리아 시대를 매료시킨 여신이었지만, 화가 단테 가브리엘 로제티는 자신만의 모델로 독점하며 10년 동안이나 결혼을 미루고 방치했습니다.





정신적 신체적으로 피폐했던 시달. 지적 장애가 있는 오빠를 부탁한다는 내용의 유서가 발견되었지만, 로제티의 평판을 고려한 친구의 조언에 따라 유서는 폐기되었습니다. 시달의 죽음은 약물 오남용으로 인한 사고로 기록되었다고 합니다. 지금까지 시달의 죽음을 천재 화가를 사랑한 여인의 비극적인 스캔들 정도로 여겼다면, 김선지 작가는 낭만적 서사를 치워버립니다. 시달은 자신만의 독창적인 예술 세계를 구축해 나가던 주체적인 화가였기 때문입니다.


에곤 실레의 삶에서도 비슷한 일이 반복됩니다. 실레의 파격적이고 도발적인 누드화 속 주인공이자 예술적 동반자였던 발리 노이질의 운명 역시 마음을 씁쓸하게 만듭니다. 실레는 편지에서 예술적 영감은 발리에게서 얻고, 사회적 안정은 에디트를 통해 확보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할 정도로 영감은 영감대로 착취하고, 삶의 안락함은 세속적인 조건으로 채우겠다는 계산적 태도를 가지고 있었던 겁니다.


러시아 문학사의 위대한 시인 안나 아흐마토바의 사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모딜리아니의 연인으로 널리 알려진 안나는 사실 노벨 문학상 후보에 두 번이나 올랐고, 스탈린 체제의 억압 속에서도 살아남아 암울한 시대를 기록한 예술가였습니다. 그럼에도 대중은 그녀를 모딜리아니의 첫 번째 뮤즈로 기억할 뿐입니다. 주체적인 예술가였던 여성들을 누군가의 뮤즈라는 부속품으로 환원시켜 버린 시대. 앞으로는 명화 속 아름다운 여인들을 볼 때, 그들이 흘렸을 눈물과 빼앗긴 주체성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다음으로는 미술사를 지탱해 온 경제적, 시스템적 구조 모순을 드러내는 비하인드 스토리가 펼쳐집니다. 바로크 황금기를 대표하는 피터 파울 루벤스의 1,500여 점에 달하는 대작들은 사실 대규모 공장형 아틀리에 시스템의 결과물이었다는 사실 알고 계시나요? 


무명의 제자들이 땀 흘리며 밑그림을 그리고 채색을 마무리하면, 루벤스는 마지막에 몇 번의 붓질을 더하고 자신의 이름으로 서명을 남겼습니다. 물론 당시의 도제 시스템 안에서는 관행이었을 겁니다. 하지만 수백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제자들의 이름은 소거된 채 오직 루벤스라는 브랜드만 불멸의 가치를 누리는 현실입니다. 현대 사회의 아웃소싱과 노동 착취 구조를 묘사하는 듯해 묘한 기시감을 줍니다.


아이디어를 약탈당한 비운의 천재, 에밀 베르나르의 이야기도 드라마틱 합니다. 종합주의와 클루아조니즘의 선구적 화풍을 개척했던 스무 살의 청년 베르나르는 대선배였던 폴 고갱에게 자신의 아이디어와 기법을 빼앗겼습니다. 미술사는 승자의 기록이기에 우리는 고갱을 타히티의 원시적 생명력을 포착한 선구자로 기억할 뿐, 그 화풍의 시초를 제공했던 베르나르의 이름은 기억하지 못합니다.





가장 가까운 가족이라는 존재는 예술가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되기도 하지만, 때로는 서로의 영혼을 갉아먹는 잔인한 굴레가 되기도 합니다. 에두아르 마네와 그의 동생 외젠 마네, 그리고 천재 여류 화가 베르트 모리조의 관계는 기묘하고도 복잡한 가족적 헌신을 보여줍니다. 외젠 마네는 형과 아내 사이에 흐르는 미묘하고 예술적인 기류를 묵묵히 지켜보며, 아내인 베르트 모리조가 당대 여성 화가로서 예술 활동을 지속할 수 있도록 평생을 다해 도왔습니다. 그는 형의 거대한 예술적 그늘과 아내의 빛나는 재능 사이에서 묵묵히 조력자의 자리를 지켰던 인물입니다.


빈센트 반 고흐와 그의 동생 테오 반 고흐의 관계도 유명하지요. 저자는 숭고한 형제애라는 포장지 속에 감춰진 비극을 건넵니다. 우리는 빈센트의 고독과 고통을 예술적으로 낭만화하느라 그 비용을 온몸으로 지불해야 했던 동생 테오의 실제 삶을 너무나 쉽게 망각하곤 합니다. 타인의 희생 위에 피어난 걸작을 마주할 때 느끼는 감정은 숭고함을 넘어선 일종의 부채감일 것입니다.


후반부에서는 스스로 고독과 결핍을 정면으로 마주하며 예술적 정체성을 확립해 나간 인물들을 조명합니다. 파리의 화려함 뒤에 숨겨진 쓸쓸함을 그렸던 모리스 위트릴로의 이야기는 울림을 줍니다. 위트릴로는 출생의 비밀과 어머니의 방임, 알코올 중독이라는 불행 속에서 자라났습니다. 그의 그림 속 텅 빈 몽마르트르의 골목길은 단순하게 묘사된 풍경화가 아니라, 세상으로부터 소외당했던 한 인간의 내면적 풍경 그 자체입니다. 인간이 철저히 조연으로 밀려난 그 적막한 캔버스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해 냈습니다.


마지막으로 프리다 칼로입니다. 디에고 리베라의 바람기 때문에 고통받은 비운의 여인 혹은 소아마비와 교통사고로 신체가 부서진 희생자로 기억되는 그녀를 향해 김선지 저자는 완전히 새로운 패러다임의 질문을 던집니다.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그녀가 어떤 삶을 살았는가’가 아니라 ‘그녀가 자신을 어떻게 보이도록 만들었는가’라고 말입니다.


프리다 칼로는 환경과 타인에 의해 휘둘린 수동적인 희생자가 아니었습니다. 자신의 고통과 민족적 정체성을 영리하게 시각화하고, 스스로를 신화의 영역으로 끌어올린 탁월한 연출가이자 주체적 예술가였습니다. 타인이 규정한 비극의 서사를 거부하고 스스로 중심에 섰던 프리다의 모습은, 앞서 거장들의 그늘에 가려져 스러져갔던 인물들과 대조를 이루기도 합니다.


『명화 속 잊혀진 사람들』은 천재의 광기와 독창성이라는 신화 뒤에 가스라이팅과 질투, 아이디어 도용과 노동력 착취, 가족이라는 굴레가 얽혀 있었다는 사실을 들춰냅니다. 캔버스 구석진 곳 혹은 액자 바깥의 어둠 속에서 숨죽이고 있을 수많은 엘리자베스 시달과 발리 노이질, 테오 반 고흐의 숨결을 느끼게 됩니다. 잊혀진 이들의 자리를 되찾아주는 연대의 여정을 만나보세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영원의 문장들 - 세월이 흘러도 변치 않는 고전의 명문장 100 CLASSIC RE:READ
김지수 편역 / 마음시선 / 2026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명문장 100개가 선물하는 가장 깊은 독서의 시작 『영원의 문장들』. 고전을 읽어야 한다는 말에는 늘 묘한 부담이 따라붙습니다. 수백 쪽에 달하는 분량과 낯선 문체 앞에서 책장을 덮은 경험도 적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에게 고전은 언젠가 읽을 책으로 남아 있습니다.


작품을 가장 오래 살아남게 만든 문장을 중심으로 고전의 세계로 초대합니다. 김지수 저자는 방대한 작품을 모두 읽기 전에 먼저 한 문장과 만나도록 이끌어줍니다. 오래 곱씹은 한 문장은 몇 년이 지나도 기억에 남습니다.


괴테, 셰익스피어, 헤르만 헤세, 도스토옙스키, 제인 오스틴, 톨스토이, 헤밍웨이 등 시대를 대표하는 작가들의 작품 가운데 가장 오래 살아남은 문장을 모으고, 그 문장이 등장한 작품의 줄거리를 함께 소개합니다. 작품 전체가 품고 있는 세계관까지 자연스럽게 엿볼 수 있습니다.





1장 '삶, 그 빛나는 순간들'은 무심코 흘려보내는 일상의 조각들이 얼마나 귀하고 아름다운지를 일깨워주는 문장들로 가득합니다. 여기 등장하는 문장들은 가장 평범한 순간 속에 깃든 삶의 본질을 보라고 나지막이 속삭입니다.


<작은 아씨들>에서는 "규칙적으로 일을 하고 쉴 땐 쉬어야지. 하루하루를 보람차고 즐겁게 보내렴. 그렇게 일과 놀이를 잘 조화시키면서 네가 시간의 가치를 잘 이해하고 있음을 증명하면 돼. 그래야 젊은 시절을 즐겁게 보낼 수 있고, 나이가 들어서도 후회가 적어. 가난하더라도 너희들이 아름다운 인생을 살면 좋겠구나."라는 명문장을 소개합니다.


남들과 자신을 끊임없이 비교하며 더 많은 소유를 갈망하느라 정작 자신에게 주어진 오늘의 시간을 낭비하곤 합니다. 루이자 메이 올콧 작가는 네 자매의 소박한 성장기를 통해 일과 휴식의 균형을 잡고 매 순간의 가치를 깨닫는 것이야말로 진정으로 아름다운 인생을 만드는 비결임을 들려줍니다.


2장 '생각의 깊이, 깨달음의 너비'에서는 우리가 지식을 쌓는 행위와 진정으로 깨달음을 얻는 행위의 차이를 구분하며 사유의 지평을 넓혀줍니다. 요즘은 클릭 몇 번이면 방대한 정보와 지식을 얻을 수 있지만, 그것이 곧 지혜의 습득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것을 명문장들이 알려줍니다.


헤르만 헤세는 <싯다르타>에서 "지식은 전달할 수 있지만 지혜는 전달할 수 없다. 지혜는 깨닫는 것이고, 체험하는 것이고, 실천하는 것이다. 지혜를 통해 놀라운 일을 할 수는 있지만, 말로 표현하거나 가르칠 수는 없다."라고 했습니다.


수많은 책을 읽고 강의를 들으며 타인의 지식을 내 것인 양 착각하곤 합니다. 하지만 지혜는 활자나 언어라는 매개체를 통해 고스란히 이식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스스로 삶의 굴곡을 지나며 온몸으로 부딪치고 깨달아야만 비로소 주어지는 내적 자산이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머리로만 세상을 이해하려는 태도에서 벗어나, 직접 삶을 체험하고 행동으로 옮기는 실천적 삶의 중요성을 가르쳐 줍니다.


3장 '사랑의 기쁨과 슬픔'은 숭고하고도 복잡한 감정인 사랑을 다룹니다. 고전의 거장들은 진정한 사랑을 나누기 위해 선행되어야 할 도덕적 의무를 질문합니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서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스스로를 속이고 그 거짓말을 듣는 사람은 결국 자기 내면의 진실도, 자기 주변의 진실도 구분할 수 없게 되어, 자신에 대한 존중과 타인에 대한 존중을 모두 잃어버립니다. 그리고 존중이 없어지면 사랑할 수 없게 됩니다."라고 합니다.


도스토옙스키가 묘사하는 사랑의 기초는 자신을 향한 정직함입니다. 타인을 사랑하지 못하고 갈등을 빚는 수많은 관계의 비극은, 결국 자기 내면의 위선과 거짓을 외면하는 데서 출발합니다. 나를 존중하지 못하는 자가 어떻게 타인을 존중할 수 있으며, 존중이 거세된 자리에 어떻게 진정한 사랑이 싹트겠습니까?


4장 '고요 속에서 나를 만나다'에서는 내면과 대면하는 고독의 가치를 조명합니다. 헤밍웨이가 그려낸 거대한 바다 위 노인의 모습은 지독하리만치 외로워 보이지만, 역설적으로 가장 충만한 연대의 상태를 보여줍니다.


노인은 물리적으로 철저히 고립되어 있지만, 고요한 바다의 물결을 응시하고, 물속의 광선을 발견하며, 하늘을 수놓는 야생 오리 떼의 움직임을 관찰합니다. 이 고독의 순간에 자연이라는 거대한 세계의 일원으로서 자신을 재발견합니다. 고독은 단절이 아니라, 세상과의 더 깊은 연대를 위한 준비 기간인 셈입니다.





마지막 5장 '고통을 지나 완성되는 삶'은 삶의 불청객처럼 찾아오는 역경과 고난을 인간이 어떻게 수용하고 극복해야 하는지에 대한 무거운 질문을 던집니다. 고통을 회피하거나 억지로 극복하려 애쓰기보다, 삶의 엄연한 일부로 받아들일 때 인간은 비로소 단단해집니다.


나쓰메 소세키의 <풀베개> 명문장이 와닿습니다. "모든 것에 이성적으로 접근하면 가혹해진다. 감정에만 맡기면 물살에 휩쓸리고 만다. 고집을 부리면 갑갑해진다. 어찌 되었든 인간 세상은 살기 힘들다."라는 문장은 지나친 기대나 강박에서 벗어나 마음의 평온을 찾게 만드는 기묘한 위로가 됩니다.





『영원의 문장들』은 거대한 세계의 문턱을 가장 부담 없이, 그러나 충분한 깊이로 열어 주는 반가운 고전 입문서입니다. 명문장과 작품의 핵심 맥락을 함께 접하며 자연스럽게 고전에 흥미를 갖게 되고, 삶과 인간관계를 바라보는 시야도 한층 넓어집니다.


100개 문장을 관통하는 하나의 태도가 있다면 자기 응시입니다. 서로 다른 시대와 문화의 작가들이 결국 같은 인간의 딜레마를 붙들고 있었다는 게 보입니다. 이 책을 덮고 나면, 고전을 언젠가 읽어야 할 숙제가 아니라 이미 조금은 읽은 책으로 여기게 됩니다. 완독의 강박 대신 발췌의 즐거움 속에서 생각보다 오래 마음에 남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가성비 마케팅 전략 94 - 비싼 광고 없이도 매출을 만드는 최강 가성비 마케팅 94가지
요시자와 켄지 지음, 최지현 옮김 / 동양북스(동양문고) / 2026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예산 타령은 끝났다, 진짜 문제는 구조다! 돈을 쏟아부어야 더 잘 팔린다는 해묵은 통념은 자본이 없는 자영업자, 스타트업의 눈을 가리고 손발을 묶어왔습니다. 하지만 저자 요시자와 켄지는 이 자본의 문법을 뒤집습니다.


시세이도 영업직을 시작으로 웹 프로모션 기업과 아동복 공유 플랫폼을 직접 창업해 M&A까지 성공시킨 실전형 사업가인 저자는 돈이 없기 때문에 오히려 더 영리해질 수 있고, 더 끈질기게 고객에게 밀착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가성비 마케팅 전략 94』는 절약이 아니라 관찰의 경제학입니다. 94가지의 방법들은 광고 대행사에 끌려다니며 통장 잔고를 갉아먹던 사장님에게 멋진 무기가 되어줍니다.





어떻게 구조가 자본을 이길 수 있을까요? 저자는 WHO와 WHY의 입체적 융합부터 이야기합니다. 대부분 마케팅을 시작할 때 어떻게 알릴까부터 고민하지만, 저자는 누구에게 팔 것인가로 시선을 돌립니다.


여기서 핵심은 평균의 함정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불특정 다수를 향한 메시지는 결국 누구에게도 닿지 않는 소음이 될 뿐이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철저하게 쪼개고 좁혀서 단 한 사람의 페르소나를 완벽하게 직조해낼 때, 비로소 돈을 쓰지 않고도 심장을 찌르는 메시지가 탄생한다고 강조합니다.


『가성비 마케팅 전략 94』는 이론에 머물지 않고 흥미로운 실전 사례들을 함께 보여줍니다. 값비싼 매체 광고 없이 오직 제품 기획과 타깃의 심리 분석만으로 600만 개라는 경이적인 판매고를 올린 컵라면 제조업체 닛신식품 사례는 WHO와 WHY가 결합했을 때 발생하는 폭발력을 보여줍니다.


다음으로 VALUE와 PRICE의 반전에 대해 들려줍니다. 가성비 마케팅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눈물의 폭탄 세일이나 1+1 행사 같은 제 살 깎아먹기식 저가 경쟁을 떠올립니다. 하지만 진정한 가성비 마케팅은 가격을 후려치는 것이 아니라, 고객의 인식을 장악하여 지갑을 기꺼이 열게 만드는 인지적 효율성의 극대화입니다. 그 출발점은 바로 고객의 도파민을 자극하는 강렬한 네이밍과 영리한 가격 구조 설계에 있습니다.


공짜로 매력적인 경험을 선사해 거부감 없이 깔때기 속으로 고객을 진입시킨 뒤, 자연스럽게 유료 결제로 유도하는 프리미엄 전략도 소개합니다. 돈을 들여 고객을 찾아 나서는 것이 아니라, 매력적인 미끼와 완벽하게 설계된 가격 제도로 고객이 스스로 걸어 들어오게 만드는 겁니다.





다음으로 SYSTEM과 FANDOM의 구축에 대해 짚어줍니다. 최악의 마케팅은 일회성 이벤트에 돈을 쏟아붓고 돌아서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 구조입니다. 저자는 마케터가 24시간 감시하고 개입하지 않아도, 고객들이 알아서 브랜드를 홍보하고 소비하는 자생적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 시스템의 핵심 연료는 다름 아닌 콘텐츠와 팬덤의 신뢰입니다.


마지막으로 MEDIA와 SNS의 입체적 운용이 필요합니다. 돈이 없는 마케터에게 미디어와 SNS는 대기업의 자본력과 유일하게 대등하게 맞설 수 있는 플랫폼입니다. 하지만 알고리즘의 파도를 타지 못하고 일방적인 공지사항만 올리는 계정은 외면받기 마련입니다. 저자는 미디어가 먼저 찾아오게 만드는 보도자료 작성법부터 각 플랫폼의 특성에 맞는 게릴라 전술까지 미디어 활용 바이블을 소개합니다.


그렇다면 매일 변하는 SNS의 바다에서 지치지 않고 지속적으로 바이럴을 만들어내는 비결은 무엇일까요? 저자는 완벽주의라는 덫에서 벗어나 원칙 있는 자유를 누리라고 조언합니다. 장기전으로 치닫는 SNS 생태계에서 지치지 않는 유일한 방법은 프로세스의 규격화입니다.


그리고 일방적인 메시지 전달이 아닌, 고객이 놀 수 있는 판을 깔아주는 상호작용이 핵심입니다. 틱톡의 밈을 활용하든, X에서 유머러스한 설문을 돌리든, 본질은 하나입니다. 고객을 가르치려 들지 말고, 그들의 타임라인 속에서 함께 뒹굴며 놀이의 일부가 되는 것. 이것이야말로 광고비 0원으로 도달율을 극대화하는 최고의 게릴라 전술입니다.


그동안 우리가 마케팅에 실패했던 진짜 이유는 예산이 부족해서가 아니었습니다. 돈만 쓰면 해결되겠지라는 게으른 타성과 고객의 숨은 마음을 읽어내려는 치열함의 부재가 낳은 참사였습니다.


요시자와 켄지가 정성껏 차려낸 94가지의 전략 밥상 『가성비 마케팅 전략 94』. 마케팅은 돈을 쓰는 기술이 아니라, 인간을 이해하고 그 인간이 움직일 수밖에 없는 촘촘한 구조를 짜는 건축학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합니다.


테슬라, 아마존, 나이키도 실천한 가성비 마케팅. 아 책에 소개된 94가지는 현실에서 이미 검증된 방법들입니다. 이론적으로는 가능하다가 아니라 직접 해봤더니 효과가 있었다는 사례가 중심이 됩니다.


매달 나가는 높은 고정비 속에서 광고비 지출이 두려운 사장님들에게 당장 오늘부터 실행할 수 있는 방법들이 가득합니다. 고객이 스스로 찾아와 팬이 되는 자생적 생태계 구축의 해법을 만나보세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지리의 기원 - 세계 질서와 부의 운명을 뒤바꾼 방향의 역사
제리 브로턴 지음, 박세연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6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지도를 펼치면 아무 의심 없이 북쪽이 위에 있다고 받아들입니다. 스마트폰 지도도, 학교에서 배우는 세계지도도 모두 그렇습니다. 그런데 "왜 꼭 북쪽이 위여야 하죠?"라고 묻는다면 어떨까요. 지도사 분야의 권위자 제리 브로턴의 『지리의 기원』은 우리가 세계를 읽는 방식 자체를 뒤집습니다.


역사학, 언어학, 종교학, 천문학, 정치학, 문화사를 넘나드는 거대한 인문학 여행이 펼쳐집니다. 익숙함 속에 숨겨진 방위의 은밀한 지정학적 코드를 하나씩 파헤쳐 봅니다. 동서남북 네 글자를 따라가다 보면 결국 인간이 어떻게 세상을 이해하고 권력을 만들었는지까지 연결됩니다.


우주 한가운데 둥둥 떠 있는 구 형태의 지구에 원래부터 정해진 위나 아래 혹은 왼쪽과 오른쪽이 존재할 리 만무합니다. 저자는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동서남북 체계가 자연의 섭리가 아니라 철저하게 인간이 선택하고 구축한 문화적 프레임이라고 말합니다.


물리학의 법칙이 아니라 역사 속 권력과 문화가 만든 결과인 겁니다. 자연스럽게 스마트폰 화면이 떠올랐습니다. 화면이 회전하면 방향도 함께 바뀌는데 우리는 금세 적응합니다. 현실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은 방향 자체보다 방향을 해석하는 기준에 익숙해져 있었던 것입니다.





책의 구성도 흥미롭습니다. 태양의 움직임을 따라 동쪽-남쪽-북쪽-서쪽으로 전개됩니다. 첫 번째 장인 동쪽에서는 인류가 태양을 바라보며 세계를 이해하기 시작한 과정을 다룹니다.


고대 문명과 종교에서 동쪽은 에덴동산의 위치이자 빛과 온기, 생명이 시작되는 신성한 축이었습니다. 중세 유럽의 지도인 T-O 지도만 보더라도 세계의 상단, 즉 가장 고귀한 위쪽 자리는 북쪽이 아니라 예수의 부활과 낙원을 상징하는 동쪽이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신성했던 방향은 역사의 수레바퀴 속에서 묘한 변질을 겪습니다. 서구 중심의 제국주의가 도래하면서 동쪽(Orient)은 주체적인 방위가 아니라, 서구의 시선으로 재단된 변방이자 지배해야 할 타자로 전락합니다.


유럽을 기준으로 삼아 가까운 동쪽(근동), 중간쯤 있는 동쪽(중동), 아주 먼 동쪽(극동)으로 파편화된 이름들에는 지리적 중립성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철저히 권력의 위치에 따라 방위의 지위가 배분된 결과물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GPS가 길을 알려주기 때문에 방향을 찾지 않습니다. 해가 어디에서 떠오르는지 모른 채 출근하고 퇴근하는 날도 많습니다. 저자는 방향을 읽는 감각을 잃는다는 것은 세상을 읽는 방식도 달라지고 있다는 의미라고 말합니다.


태양이 정오에 도달하는 남쪽은 다면성을 지닌 방위입니다. 역사적으로 남쪽은 북반구 중심의 패권국들에 의해 변두리나 하층부로 규정되어 왔습니다. 특히 남극 대륙은 인간의 접근을 쉽게 허락하지 않는 특성 탓에 오랫동안 기괴한 상상력의 해방구 역할을 했습니다.


북극이 점차 세상의 꼭대기로 자리매김하고, 남극이 바닥의 위치를 확고하게 차지하면서,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남극은 일종의 지하 세계와 같은 공간이 되었다고 합니다.


남쪽을 지구의 바닥이자 어둠의 영역으로 치부한 서구의 오만은 오늘날 현대 정치·경제학에서도 고스란히 이어집니다. 우리는 개발도상국이나 저개발 국가들을 묶어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라 부릅니다. 이 용어 역시 북반구 선진국들이 규정한 경제적 낙후성과 패권적 분류의 산물입니다. 남쪽이라는 방위는 자연적 방향이라기보다, 지배 권력이 만들어낸 불평등한 경제적 프레임에 가깝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모든 지도의 왕좌를 차지한 북쪽은 어떻게 위로 올라서게 되었을까요? 고대 중국이나 이슬람 문명에서는 황제가 남쪽을 바라보고 앉거나 메카의 방향을 존중하느라 남쪽을 지도의 위에 두기도 했습니다. 북쪽이 절대적인 상단으로 고착된 결정적 계기는 대항해시대의 도래와 메르카토르 도법의 등장 그리고 유럽의 해상 권력 장악이 맞물린 결과입니다.


저자는 북쪽이라는 개념이 지닌 근원적인 모순과 가변성을 짚어줍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우리가 절대적인 기준점으로 신뢰하는 북극점조차 실은 고정되어 있지 않다는 점입니다.





북극은 물리적, 지자기적 힘에 의해 끊임없이 이동하고 변한다고 합니다. 반대편에 있는 남극과 마찬가지로, 정확한 지점이란 북쪽에 존재하지 않는 겁니다. 과학적으로도 유동적인 북쪽을 지도의 꼭대기에 고정해 두고, 그것을 세상의 유일한 이정표이자 발전과 현대성의 상징으로 믿어온 인류의 맹신이 참으로 아이러니하지 않나요? 결국 지도의 북쪽을 위로 둔 것은 권력을 쥔 자들의 지리적 선택이었습니다.


서쪽에 이르면, 방위는 지리적 공간의 의미를 완전히 상실하고 정치적 무기가 됩니다. 자유주의, 자본주의, 민주주의를 대변하는 진영을 서구(The West)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아시아에서 태평양을 건너면 미국이 나오고, 유럽의 서쪽 끝에는 대서양이 펼쳐집니다. 과연 지리적으로 완벽하게 연속된 서쪽이란 게 존재할 수 있을까요?


서쪽은 태양이 저무는 물리적 방향에서 시작해, 어느 순간 서구 문명이라는 하나의 거대한 선민의식과 이데올로기로 치환되었습니다. 서구의 승리가 곧 인류 문명의 진보라는 프레임은 이 방위의 이름 속에 교묘하게 박제되어 오늘날까지 힘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지평선과 별자리를 보며 길을 찾던 인류는 이제 스마트폰 속 GPS 지도를 보며 걷습니다. 내비게이션 앱을 켜면 동서남북의 거대한 축은 배경으로 물러나고, 화면 중심에 위치한 파란색 동그라미, 즉 나를 중심으로 지도가 실시간으로 회전합니다. 내가 몸을 돌리면 북쪽이 아래로 가고 동쪽이 위로 올라갑니다.


하지만 저자는 이를 두고 현대인이 마주한 가장 치명적인 정체성의 위기이자 방향 상실의 시대라고 경고합니다. 방위가 제공하던 거시적인 관계성과 역사적 맥락은 사라지고, 오직 지금, 여기, 나라는 미시적인 파편만 남았기 때문입니다.


과거의 방위가 나와 타자, 나와 세계를 연결하는 끈이었다면, 디지털 지도는 나를 세상으로부터 고립시킨 채 알고리즘이 짠 최적의 경로로만 인도합니다. 저자는 우리가 살아가는 디지털 시대에는 다섯 가지 방위가 존재한다고 말합니다. 동과 서, 남, 북 그리고 온라인상 푸른 점인 ‘당신’이라고 말이죠.


『지리의 기원』이라는 제목이어서 지리학의 역사를 읊는 교양서인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더 흥미진진한 주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인간이 어떻게 세계를 분류하고, 이름 붙이고, 질서를 만들었는지를 추적하는 인문학입니다. 정치·경제·종교·언어가 방향이라는 가장 익숙한 개념 속에 얼마나 깊게 스며 있는지를 보여주는 과정이 놀랍습니다.


방위는 자연이 준 선물이 아니라 인간의 욕망과 권력이 빚어낸 프레임이었습니다. 내가 서 있는 위치를 객관적으로 돌아보고, 타인을 규정해 온 해묵은 편견의 방향타를 바꾸고 싶다면 이 책을 읽어보세요. 스마트폰 화면 속 푸른 점이 되어 알고리즘이 정해준 길로만 관성적으로 걸어가고 있는 우리들이 읽어야 할 책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