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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음, 랭브릿지 옮김 / 리프레시 / 2025년 11월
평점 :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지난 250년간 단 한 번도 식은 적이 없는 뜨거운 심장 같은 고전, 요한 볼프강 폰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과몰입의 원조 격인 작품입니다. 출간 당시 유럽 전역의 청년들이 베르테르처럼 푸른 코트와 노란 조끼를 입고 다녔고, 심지어 그의 슬픔에 동조해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이들이 속출할 정도였으니까요.
오늘날의 팬덤이나 신드롬이라는 단어로도 부족할 만큼, 이 소설은 강렬했던 감정의 폭동이었습니다. 세련된 펜드로잉 일러스트와 함께 베르테르라는 청년의 불꽃 같은 내면으로 들어가봅니다.
이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를 쓴 괴테는 1749년 프랑크푸르트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난 금수저이자 엄친아였습니다. 2,000권이 넘는 법률 서적이 꽂힌 아버지의 서재에서 자란 그는 라틴어, 그리스어, 불어, 이탈리아어 등 6개 국어에 능통했고, 피아노와 첼로, 승마까지 섭렵한 만능 엔터테이너였습니다.
하지만 그의 내면에는 부친이 원하는 안정적인 법조인의 삶과 스스로 갈망하는 자유로운 예술가의 영혼이 치열하게 충돌하고 있었습니다. 법학을 공부하면서도 정작 마음은 문학 강의에 가 있었고, 슈트라스부르크에서 고트프리트 헤르더를 만나며 독일의 민족적 정신과 셰익스피어의 역동성에 눈을 뜨게 됩니다.
괴테가 25세의 나이에 이 소설을 쓴 배경에는 실제 가슴 아픈 짝사랑이 있었습니다. 이미 약혼자가 있던 샤를로테 부프를 열렬히 사랑하게 됩니다. 괴테는 비극적인 짝사랑을 뒤로하고 떠났지만, 소설의 결말 모티프는 지인의 사건에서 가져와 이룰 수 없는 사랑의 고통을 문학으로 승화시킨 것이 바로 이 작품입니다.

리프레시 출판사판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베르테르의 내면을 시각적으로 보충해 줍니다. 세밀한 선들이 겹쳐 만들어낸 명암은 베르테르의 복잡미묘한 심리적 동요를 잘 드러냅니다. 글자로만 읽던 그의 고뇌가 그림을 통해 눈앞에 숨결처럼 살아 움직이는 경험입니다.
소설은 편지체(서간체) 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편지는 검열되지 않은 마음의 기록이며, 동시에 상대를 상정한 독백입니다. 베르테르는 끊임없이 친구 빌헬름에게 편지를 씁니다. 그러나 그 편지들은 점점 우리를 향한 고백으로 바뀝니다. 편지는 감정을 정리하는 도구이자, 감정을 증폭시키는 장치로 작동합니다. 요즘식으로 말하자면 그는 자신의 감정을 실시간으로 업로드하고, 그 반응을 스스로에게서 확인하는 사람입니다. SNS 시대의 감정 과잉과도 닮아 있습니다. 베르테르가 샤롯테(롯테)를 처음 만난 순간, 그의 세계는 완전히 재편됩니다. "그녀는 내 모든 감각을 사로잡았다."라며 명료한 언어로 정의될 수 없는 초월적 존재로 그려냅니다.
성격 속에 깃든 한없는 다정함과 단단함의 조화에 매료됩니다. 대상을 객관적으로 관찰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온 감각을 투사하여 상대를 신성시합니다. 사랑에 빠진 이들이 흔히 겪는 이 필터링 현상은 베르테르에게 있어 삶의 유일한 활력이자 동시에 비극의 씨앗이 됩니다.
베르테르의 자존감은 타인의 인정이 아닌, 오직 롯테의 시선에 의해 결정됩니다. 롯테가 자신을 향해 미소 짓거나 공감을 표시할 때, 그는 스스로를 인간 이상의 존재로 격상시킵니다. 이런 베르테르의 감정이 얼마나 위험한 수위에 도달했는지를 묘사하는 문장들이 이어집니다. 누군가에게 사랑받는다는 확신이 한 인간을 우주적 존재로 고양시키는 과정은 아름답지만, 그만큼 추락의 공포를 내포하고 있기에 읽는 우리의 마음은 조마조마해집니다.
롯테에게는 이미 알베르트라는 약혼자가 있었습니다. 알베르트는 성실하고 이성적이며 사회적으로 신뢰받는 인물로 베르테르와는 정반대의 지점에 서 있는 사람입니다. 베르테르는 알베르트를 존중하려 애쓰지만, 롯테가 그와 결혼했다는 사실을 직면했을 때 그의 영혼은 갈가리 찢깁니다.
"나는 롯테의 마음속에서, 네 자리에 해가 되지 않는 ‘두 번째 자리’를 차지하고 있고, 반드시 그 자리를 지켜야만 한다."라는 장면이 있습니다. 베르테르가 말하는 '두 번째 자리'는 얼마나 서글픈 타협인가요? 자신이 결코 주인공이 될 수 없음을 깨닫습니다. 하지만 그의 열정은 결코 적당한 선에서 멈추지 않습니다.
잊힌다는 것이 곧 지옥이라는 그의 외침은 존재의 근거를 오직 타인의 사랑에 두었던 한 인간이 맞이할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절망을 보여줍니다. 괴테는 여기서 사랑의 숭고함 뒤에 숨은 파괴적 속성을 세밀하게 파헤칩니다.
결국 베르테르는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향해 나아갑니다. 그는 자신의 죽음을 비극이 아닌, 사랑을 완성하기 위한 최후의 의식으로 받아들입니다. 그가 남긴 마지막 편지는 사랑에 대한 애틋한 작별 인사입니다. 자신의 감정에 이토록 투명하게 직면했던 한 청년의 기록은 시대를 불문하고 우리 마음속 깊은 곳을 건드립니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살아간다는 것과 사랑한다는 것 사이의 위태로운 줄타기에 관한 기록입니다. 괴테는 베르테르라는 인물을 통해 인간의 이성이 감정의 폭풍 앞에서 얼마나 무력한지를, 그러나 그 감정의 폭주가 얼마나 인간을 위대하고 아름답게 만드는지를 동시에 보여주었습니다.
만약 제가 롯테였다면 베르테르의 사랑을 너무 늦게 도착한, 혹은 너무 뜨거워서 잡을 수 없는 불꽃으로 정의했을 것 같습니다. 베르테르의 사랑은 롯테의 내면을 밝혀주었지만, 동시에 롯테가 쌓아올린 삶의 질서를 태워버리려 했으니까요. 베르테르는 우리 안의 과잉된 진심을 대변합니다. 감정을 이해하는 동시에, 감정을 관리하는 법을 고민하게 만드는 작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