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태어난 날 나는 죽으려 했다 - 탄생과 죽음 사이, ‘삶’을 고찰하다
모먼트 지음 / 바른북스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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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스무 살에 첫 책을 시작으로 총 9권의 책을 펴내며 탄탄한 필력을 증명해 온 젊은 작가 모먼트. 사회복지학을 전공하며 따뜻한 휴머니즘을 바탕으로, 현실이 소설보다 더 잔인하고 위태롭다는 깨달음을 글로 풀어내 왔습니다. 이번에는 학교폭력과 방관의 관계를 해부한 『내가 태어난 날 나는 죽으려 했다』로 우리 곁을 찾아왔습니다.


이번에는 학교폭력과 방관의 관계를 해부한 『내가 태어난 날 나는 죽으려 했다』로 우리 곁을 찾아왔습니다. 이 소설은 한 인간의 존재 기반을 뒤흔드는 죄책감이라는 내면적 족쇄와 교실이라는 공간 속에서 작동하는 교묘한 침묵의 연대를 파헤칩니다.


유영이가 태어난 날은 엄마를 잃은 기일이기도 합니다. 보육 시설에 남겨진 유영의 유년 시절은 결핍과 외로움 그 자체였습니다. 엄마에 대한 부채감은 유영의 내면에 지워지지 않는 낙인을 남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설렘과 평범한 기대로 가득 찬 고등학교 입학식 날. 누구나 품어봄 직한 새로운 시작에 대한 기대는 주인공 김유영이 김은영을 만나면서 예상치 못한 비극의 서막으로 변질됩니다.





소설은 교실을 제러미 벤담이 고안하고 미셸 푸코가 분석한 원형 감옥 파놉티콘의 구조에 빗대어 묘사합니다. 유영은 1506일 뿐입니다. 더욱 섬뜩한 것은 감시탑에 앉아 모든 것을 지켜보면서도 미소를 지어 보이거나 고개를 돌려버리는 다수의 방관자들입니다.


교실 안의 권력 구조는 가해자의 물리적 폭력만으로 완성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나만 아니면 된다는 안도감과 문제를 제기했다가 나까지 타깃이 되면 어쩌지라는 공포가 만들어 낸 침묵의 방조가 파놉티콘을 견고하게 유지시킵니다. 유영은 자신이 아무런 잘못을 하지 않았음에도, 다수가 묵인하는 질서 속에서 서서히 자아를 잃어버리고 고립되어 갑니다.


유영은 자신의 삶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못합니다. 늘 다른 사람과 비교합니다. 엄마가 있는 친구. 평범한 생일을 보내는 친구. 가족사진을 찍는 친구. 누군가에게는 평범한 하루가 유영에게는 닿을 수 없는 풍경입니다.


우리는 SNS에서도, 학교에서도, 직장에서도 끊임없이 누군가와 자신을 비교합니다. 비교는 성장의 계기가 되기도 하지만, 상처를 품은 사람에게는 자기혐오를 키우는 장치가 되기도 합니다. 유영의 시선은 세상을 향하기보다 자신을 향합니다.


왜 하필 나였을까. 이 질문은 결국 나는 살아도 되는 사람일까라는 질문으로 이어집니다. 주제만으로도 보면 자극적으로 전개될 것 같지만 의외로 담담한 문장으로 마음을 서서히 조여 옵니다. 그래서 읽고 난 뒤 더 오래 여운이 남습니다.


유영은 결국 삶의 낭떠러지 끝에서 결심합니다. 태어난 날이 곧 가장 소중한 사람의 기일이라는 지독한 운명의 장난 속에서, 그녀에게 생일은 축복의 날이 아니라 존재 자체를 부정당하는 고통의 형벌이었습니다.


타인에 의해 강제로 부여된 생일과 달리, 스스로 끝맺을 수 있는 기일만큼은 내 의지로 선택하겠다는 생각마저 하게 됩니다. 절망의 극단에서 터져 나오는 가장 슬픈 반어법입니다.


소설 속 가장 경이로운 도약은 현실의 달력에는 존재하지 않는 날인 6월 32일이라는 상징적 시공간에서 일어납니다. 기존의 잔인한 세계가 규정해 놓은 규칙과 프레임에서 벗어납니다. 감옥 같은 파놉티콘을 탈출해 나만의 넓은 초원으로 나아가는 첫걸음이 가능할까요.


학교폭력 문제를 다룬 콘텐츠들이 많지만, 대부분 가해자와 피해자의 대립에 초점을 맞춥니다. 하지만 소설 『내가 태어난 날 나는 죽으려 했다』는 교실이라는 공동체가 어떻게 침묵을 통해 폭력을 키우는지 더 깊게 들여다봅니다.


이 소설이 더 와닿는 건, 작가가 폭력 이후의 시간을 이야기하기 때문입니다. 가해가 멈추면 문제가 해결됐다고 생각할 테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상처는 기억 속에서 계속 현재형으로 살아갑니다.






이 작품이 탄생하기까지 작가가 마주해야 했던 치열하고도 씁쓸한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습니다. 이 소설은 작가가 겪은 학교폭력과 관련된 경험을 바탕으로 스무 살에 집필을 시작해 스물한 살에 완성했다고 합니다.


첫 공모전 작품으로 최종 심사까지 올라갔었지만 독자를 만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내가 태어난 날 나는 죽으려 했다』는 작가가 가장 순수한 마음으로 문학을 시작했던 원점인 동시에, 현실의 모순을 견디며 한층 더 단단한 소설가로 성장하게 만든 성장통의 기록 그 자체이기도 합니다.


누군가는 피해자의 고통을 의심하고, 누군가는 이제 그만 잊으라고 말합니다. 누군가는 사건을 호기심 어린 이야깃거리로 소비합니다. 이렇게 피해자는 폭력을 한 번 더 경험하게 됩니다.


유영 역시 가장 힘들었던 것은 폭력이 아니라 자신의 아픔을 설명해야 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이해받기 위해 상처를 반복해서 꺼내야 하는 현실은 또 다른 고통이 됩니다. 비슷한 일을 겪고 사회복지학을 전공한 모먼트 작가의 시선은 상처는 쉽게 끝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기억은 남아 있습니다. 상처도 그대로 있습니다. 하지만 치유의 과정을 통해 그 기억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조금씩 배우게 됩니다. 중요한 것은 상처의 존재가 아니라 그것이 삶 전체를 지배하지 않도록 만드는 과정이라는 것을 담담하게 들려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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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다 괜찮아질 겁니다 - 삶의 벼랑 끝에서 침묵을 택한 어느 은둔자의 이야기
피코 아이어 지음, 최지숙 옮김 / 서사원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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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1분 1초라도 도태되면 낙오자가 될 것 같은 불안 속에서, 피코 아이어는 브레이크를 밟았습니다. 글로벌리즘을 종횡무진 분석해 온 저널리스트이자 트렌디한 정보의 정점에 서 있던 저자가 1992년 이후 매년 향한 곳은 캘리포니아 빅서에 위치한 뉴 카말돌리 수도원이었습니다.


끊임없이 자신을 증명해야 하는 초과잉 주체성의 시대. 세상에서 가장 고요하고 외딴 골방으로 들어간 이 여정에서 탄생한 책 『결국 다 괜찮아질 겁니다』. 피코 아이어는 우리가 무언가를 채워 넣으려고 발버둥 칠 때가 아니라, 모든 것을 비워내고 스스로 고독해질 때 비로소 타인을 향한 진정한 온기가 시작된다는 것을 들려줍니다.


저자는 갑작스러운 산불로 삶의 터전을 잃었습니다. 사랑하는 아버지를 하늘로 보냈고, 딸은 암 투병의 고통을 겪어야 했습니다. 삶의 벼랑 끝에서 도망치듯 수도원으로 향한 그를 맞이한 것은 희망의 서사나 힐링 처방전이 아니었습니다. 그곳에는 단지 서늘한 침묵과 압도적인 고요만이 존재할 뿐이었습니다.


모든 소음이 차단된 방 안에서 자신의 상처와 상실을 날것 그대로 대면합니다. 고요의 공간 속에서 길어 올린 깨달음은 자아를 살찌우는 성찰이 아닙니다. 오히려 자기 내면에 흩어져 있던 파편들을 응시하고, 그 안에서 타인의 그늘을 밝혀줄 작은 촛불 하나를 얻어가는 일입니다.


명상이나 고독이 웰빙을 위한 도구적 방편으로 전락하기 쉬운 반면, 피코 아이어의 침묵은 내 안의 어둠을 직면함으로써 타인의 아픔을 이해할 준비를 마치는 몸짓입니다.





수도원에 들어선 순간, 글 잘 쓰는 저널리스트이자 박식한 지식인으로 대접받던 저자의 사회적 가면은 무력화됩니다. 낡은 방, 삐걱거리는 침대, 규칙적인 기도 시간만이 존재하는 공간에서 저자는 자신의 관성을 내려놓는 훈련을 거칩니다. 수도원에서 배운 건 정답 찾기가 아니라 정답에 대한 집착을 버리는 법이었습니다.


피코 아이어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여백의 시간이 무용한 낭비가 아니라는 것을 체험합니다. 그 멈춤의 여백이야말로, 오만을 비워낸 침묵 속에서 비로소 진정한 대화가 시작된다는 것을 경험합니다.


은둔이나 고독을 말할 때 타인과의 관계를 끊어버리는 완전한 단절을 떠올릴 테지만, 이 책은 고독의 종착지가 나 혼자만의 완벽한 해탈이 아니라 세상을 향한 깊고 끈끈한 유대에 닿아 있습니다.


수도원 안에는 침묵 속에서도 피정객들의 일상을 묵묵히 돕는 수도사들과 일꾼들이 존재합니다. 그들의 소박하고 헌신적인 태도를 보며 깨닫습니다. 세상과 완벽하게 고립되어 있는 듯한 골방조차 결국은 누군가의 연대와 온기로 유지되고 있다는 엄연한 사실을 말이지요.





고통에서 도피하기 위해 수도원에 숨어들었던 저자는 오히려 고독의 훈련을 통해 다시금 세상으로 걸어 나갈 튼튼한 근육을 단련하게 됩니다.


불행이 닥치면 신이나 우주를 원망하거나, 내가 가입해 둔 정신적 보험(종교, 인맥, 재산 등)이 왜 나를 완벽하게 구제해 주지 못하는지 절망합니다. 우리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거대한 상실과 시련 앞에서는 상황을 통제하려는 아등바등한 노력을 내려놓아야 할 때가 있습니다.


저자는 그 불길 속에서도 평온을 잃지 않는 단단한 마음의 중심을 키우는 법을 고민합니다. 저자가 말하는 온전히 자신을 맡기는 일은 패배주의적 체념이 아닙니다.


상실의 절정에서 사랑을 선택하고, 죽음이라는 어둠 앞에서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단단한 마음. 나만의 좁은 주관성이라는 감옥에서 벗어날 때, 내 상처보다 내가 남에게 준 상처를 먼저 헤아릴 수 있는 넉넉한 어른이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줍니다.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깨닫게 됩니다. 벼랑 끝의 차가운 침묵을 온전히 관통해 낸 영혼만이, 세상의 거친 풍파를 향해 “결국 다 괜찮아질 겁니다”라는 따뜻하고 책임감 있는 선언을 건넬 수 있다는 것을 말이지요.


저자는 어떤 뾰족한 해결책도 제시하지 않습니다. 산불로 잃은 집이 돌아오는 것도, 병이 낫는다는 확답도 없습니다. 침묵과 은둔의 여정은 세상에서 도망치는 방법이 아니라 다시 세상으로 돌아오기 위한 준비였습니다.


그리고 『결국 다 괜찮아질 겁니다』는 그 준비가 얼마나 깊고 오래 걸리는 과정인지를 보여줍니다. "결국 다 괜찮아질 것"이라는 문장이 와닿는 건, 저자가 고통을 온전히 통과한 뒤에 한 말이기 때문입니다.


피코 아이어가 32년 동안 수도원의 고요 속에서 벼려낸 깊고 푸른 사유의 문장들 『결국 다 괜찮아질 겁니다』. 고독을 내면의 단단한 무기로 바꾸는 자발적 비움을 엿볼 수 있습니다. 저자처럼 그 어떤 폭풍이 불어닥쳐도, 결국 다 괜찮아질 거라고 말할 수 있는 마음을 얻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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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퍼 체이스 인 경성
윤채근 지음 / 북레시피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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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1942년 태평양 전쟁의 소용돌이 속 경성을 복원해 낸 『페이퍼 체이스 인 경성』. 첩보 느와르물 독립운동소설입니다. 역사의 빈칸을 추적하는 미스터리를 만나보세요.


소설은 1980년대 후반 외과의사 김욱이 어머니의 유품 속에서 발견한 한 통의 유서로부터 시작됩니다. "모든 건 1942년 가을 운명처럼 시작됐다"는 해방과 분단이라는 거대한 비극적 역사에 휩쓸린 인간들의 삶의 흔적을 쫓는 신호탄이 됩니다. 의사 김욱이 어머니의 유서를 통해 부모 세대의 비극을 비로소 마주하듯, 경성의 흔적을 쫓으며 읽는 내내 감정적 울림을 받게 됩니다.


살아남기 위해 타협했던 사람들, 자신의 이름조차 잃어버린 사람들, 정의를 믿었지만 제국의 경찰이 되어야 했던 사람들처럼 회색지대 인간들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펼쳐갑니다.





제목 '페이퍼 체이스(Paper Chase)'는 종이를 떨어뜨리며 도망가는 사람과 그 흔적을 따라가는 술래의 게임을 뜻합니다. 임시정부 산하 조선의용대 출신의 광복군 김혁이 경성에 잠입해 수행하는 비밀 작전의 성격이기도 합니다.


『페이퍼 체이스 인 경성』에서 종이는 문서이면서 기억이고, 흔적이며 진실입니다. 소설은 흩어진 종잇조각을 따라가듯 인물들의 삶을 하나씩 연결하며 역사의 퍼즐을 완성하게 됩니다.


김혁이 수행하는 임무는 경성 사교계의 중심이자 총독부 최고 권력자 다나카 정무총감의 양녀를 구출하는 것입니다. 조선인으로 태어났으나 일본의 최고 권력자 아래서 길러진 여인입니다.


그러나 이 구출 작전은 아군과 적군이 명확히 갈린 싸움이 아닙니다. 전쟁 지속을 노리는 도조 내각과 종전을 추진하는 이들 사이의 권력 암투가 얽히고설킨 함정 속에서 전개됩니다.


김혁은 단서도 불분명한 상태에서 정체불명의 안내인을 찾으며, 마치 술래가 떨어져 있는 종잇조각을 주우며 보이지 않는 목표를 쫓듯 위태로운 걸음을 옮깁니다. 첩보물 장르의 재미를 극대화하는 동시에, 한 치 앞도 예측할 수 없었던 식민지 지식인들과 청년들의 혼란스러운 운명을 보여줍니다.





인물들은 각자가 짊어진 운명의 무게를 온몸으로 받아냅니다. 의열단장을 동경해 뜨거운 애국심으로 독립운동에 투신한 스무 살 청년 김혁은 비극적인 시대를 살아내기 위해 자신의 사적인 감정을 극한으로 억제해야만 하는 공작원의 숙명을 마주합니다.


독립운동이라 하면 용기와 희생을 먼저 떠올리지만, 실제 공작원에게 필요한 것은 감정을 지우는 능력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윤채근 작가는 영웅을 이상화하지 않고 인간이 감당해야 했던 외로움을 보여줍니다.


마음을 비워내고, 심지어 마음이 없다는 생각조차 지워야만 생존할 수 있었던 1942년 경성의 밤. 역설적이게도 이 느와르 공간 속에서 인간적인 신뢰의 불꽃이 피어오릅니다.


정의감 넘치는 일본인 무도가, 독립운동가였다가 가족을 위해 밀정이 된 불곰 등 광복군과 일본 경찰, 권력자와 첩자라는 이분법적 경계를 허물어뜨리는 서사가 펼쳐집니다. 저마다의 결핍된 사랑과 삶을 지키기 위해 운명에 맞선 자들의 처절함을 엿볼 수 있습니다.


『페이퍼 체이스 인 경성』은 역사의 거대한 톱니바퀴 속에서 이름 없이 사라져 간 점 같은 존재들, 그리고 그들이 마지막 순간에 남긴 주저흔 같은 망설임과 사랑이 얼마나 가치 있는 것인지를 보여줍니다. 미스터리 서사의 퍼즐을 맞추는 듯한 장르적 재미는 물론이고, 시대를 고뇌하는 내면을 그려낸 소설입니다.


자취 없이 공기처럼 살아야 했던 시대, 흩어진 종잇조각을 쫓는 위험하고 매혹적인 경성의 숨바꼭질 『페이퍼 체이스 인 경성』. 누가 옳았는가보다 왜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는가를 묻습니다. 그래서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나면 인물들을 쉽게 심판하기보다, 그들이 감당해야 했던 시대를 먼저 떠올리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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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의 문법 - 두려움, 불길함, 섬뜩함을 자극하는 노골적이고 미묘한 것들에 대하여
듀나 지음 / 어크로스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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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우리는 왜 굳이 돈을 지불하고, 자발적으로 심장을 쥐어짜는 듯한 고통을 마주할까요? 이 역설 속에는 인간이 세상을 인지하는 원초적인 메커니즘이 숨어 있습니다. 『공포의 문법』은 바로 그 지점을 파고듭니다.


투명 북마크 2종 세트 굿즈도 마음에 쏙 듭니다. 별개로 존재할 때는 그저 달이 밤하늘과 울창한 숲속의 풍경처럼 보이지만, 두 개의 북마크를 겹쳐보면 또 하나의 풍경이 나타납니다. 포개어 놓는 순간 전혀 새로운 차원의 불길하면서도 매혹적인 호러의 공간이 완성됩니다.



이 책갈피의 작동 방식은 『공포의 문법』과도 닮아 있습니다. 따로 보면 흔하고 일상적인 어둠, 숲, 고양이일 뿐이지만, 레이어링되는 순간 공포의 무대가 탄생하는 장르적 메커니즘을 재현해 냅니다.


직접 손으로 두 개를 결합해야 숨겨진 실체가 드러나듯, 이 책에서 말하는 우리의 상상력과 경험이 더해질 때 완성되는 공포의 역동성을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멋진 아이템입니다. 매혹적인 책갈피를 책장 사이에 꽂아두고, 듀나가 안내하는 서늘한 호러의 세계를 한 페이지씩 넘겨보세요.


저자 듀나는 1990년대 초 하이텔 과학소설 동호회를 시작으로 한국 장르 문학의 최전선을 30년 넘게 지켜온 작가입니다. 영화 평론과 장르 분석을 병행하며 축적해 온 그만의 지적 자산이 이 책에 집대성되었습니다. 수백 년간 축적되어 온 호러의 역사를 가로지르며, 이 장르가 어떻게 우리의 내면을 지배하고 진화해왔는지를 해부합니다.


공포는 그저 일회성 자극일까요? 저자는 공포라는 감정이 지닌 역동적인 수명에 주목합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장르적 자극은 필연적으로 익숙해지기 마련이지만, 진짜 위대한 고전들은 그 익숙해지는 과정 속에서 오히려 새로운 예술성을 획득합니다.


명작을 재감상할 때 왜 여전히 매혹되는지를 설명해 줍니다. 10대에 보았던 영화가 주는 말초적인 깜짝 놀람이 사라진 자리에, 30대에 이르러 비로소 눈에 들어오는 인간관계의 균열이나 사회적 억압이라는 더 무거운 공포가 채워지는 현상과 맞닿아 있습니다.





저자는 허구의 이야기가 현실의 두려움을 필터링하는 방식에 대해서도 이야기합니다. 통제할 수 없는 현실의 비극과 죽음을 두려워하면서도, 스크린과 텍스트라는 안전벨트가 채워진 상태에서는 기꺼이 모험하고자 합니다. 무질서하고 무작위적인 현실의 고통을 예술이라는 체로 걸러내고 압축하여 안전한 오락으로 변환하는 과정, 그것이 바로 호러라는 장르가 탄생하게 된 궁극적인 배경인 셈입니다.


장르문학의 거장 스티븐 킹과 영화적 거장 스탠리 큐브릭의 피할 수 없는 정면충돌을 다룬 이야기도 흥미진진합니다. 저자는 두 천재가 같은 텍스트인 《샤이닝》을 들고 어떻게 서로 완전히 다른 예술적 도박을 감행했는지를 대조합니다.


스티븐 킹이 추구하는 공포의 본질은 내 곁의 평범하고 따뜻한 이웃이 서서히 미쳐가거나, 가족을 파괴할 수도 있다는 지극히 현실적인 두려움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인간 심리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쌓아 올린 서사적 공포입니다.


반면 스탠리 큐브릭은 철저하게 관객의 인과관계를 차단합니다. 오버룩 호텔은 기하학적이고 차가운 미로 같으며, 그 안에서 벌어지는 광기는 설명되지 않습니다. 큐브릭은 인물이 악에 잠식되는 내면적 고뇌 과정을 생략한 채, 그저 거대한 알 수 없는 시스템과 우주적 무력감 앞에 부서져 내리는 인간을 건조하게 포착합니다.


저자는 이 대비를 통해 거장들이 단순히 무서운 장면을 연출하는 것에서 나아가 공포의 철학적 노선을 어떻게 선택하고 설계해 나가는지를 보여줍니다.


오랫동안 호러 장르를 지배해 온 대표적인 클리셰 중 하나는 하우스 호러, 즉 귀신 들린 집입니다. 왜 관객들은 그 지긋지긋하고 낡은 대저택 이야기의 문을 끊임없이 두드리는 것일까요?


슬래셔 영화에서 희생자들은 괴물이 가진 파괴력을 보여주기 위한 무개성적인 희생양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귀신 들린 집은 다릅니다. 공간이 품은 초자연적인 악의는 필연적으로 그 공간에 들어선 주인공들의 결핍, 비밀, 죄책감과 공명합니다.





집이라는 폐쇄적인 공간 속에서 울려 퍼지는 삐걱거리는 소리는 곧 인물의 무너져 내리는 정신적 균열의 외면화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이 공간적 설정은 세월이 흘러도 매번 새로운 주제의식을 담아내는 불멸의 그릇으로 작동하게 됩니다. 귀신보다 무서운 것은 결국 사람이라고 하지요. 결국 공포는 건물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기억에서 비롯됩니다.


호러는 늘 도덕적 도마 위에 오르는 장르입니다. 저자는 그 뼈아픈 역사가 지닌 이면을 짚어냅니다. 공포영화 속 괴물이나 원혼은 혐오의 대상을 투영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안에는 가해자 혹은 기득권 시스템이 느끼는 무의식적인 부채감과 공포가 짙게 깔려 있습니다.


죄 없는 대상을 착취하고 밀어낸 이들이 언제고 그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는 무의식적 공포, 즉 죄책감이야말로 호러 장르를 추동하는 가장 강력한 내적 엔진이라는 저자의 분석이 와닿습니다. 장르가 품은 이중적 역동성을 보여줍니다.


『공포의 문법』은 한 명의 창작자가 평생에 걸쳐 장르라는 영토를 가꾸고, 그 영토가 훼손되지 않기를 바라며 써 내려간 장르 수호 선언문과도 같습니다. 시대를 초월해 살아남는 호러물을 특징짓는 것은 그 공포 밑에 숨겨진 역동적이고 복잡하고 다양한 실체라는 것을 일깨워줍니다. 그 실체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이죠.


무서운 영화를 보고 나서 그 자극적인 비명 소리는 금방 잊어버리지만, 영화가 끝난 뒤에도 특유의 으스스한 분위기나 인간 군상의 기이한 집착은 오랫동안 마음속에 남겨둡니다. 시대를 초월해 살아남은 명작들은 공포라는 극단적인 돋보기를 통해 인간의 연약함과 사회적 터부를 정면으로 대면하게 만들었습니다.


호러는 단순히 비명을 지르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우리가 애써 감추고 싶어 했던 내면의 일그러진 진실들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매혹적인 언어이자 문법인 것입니다.


고전 명작부터 트렌디한 현대 호러까지 아우르는 분석을 통해 호러 영화와 장르 문학에 열광하는 하드코어 팬들이라면 반갑게 읽을 수 있는 책입니다. 장르의 지평을 넓혀온 듀나 작가의 200년 호러의 규칙을 해부한 통찰을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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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에게 언어를 주자
김명순 외 지음, 이루카 엮고 옮김 / 아티초크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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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형태 없는 고통에 이름을 부여한 여성 시인 100인의 치유와 구원의 언어들 『슬픔에게 언어를 주자』. 4000년이라는 광활한 시간 속에서 시(詩)로 스스로의 존재를 증명해 낸 여성들의 기록물입니다.


초판 한정 양장본의 표지 그림은 영국 화가 데이비드 인쇼(David Inshaw)의 〈배드민턴 게임(The Badminton Game)〉입니다. 정원에서 두 여성이 배드민턴을 치고 있는 순간을 그리고 있으며, 공중에 떠 있는 셔틀콕과 함께 시간이 그대로 멈춘 듯한 신비롭고 서정적인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슬픔에게 언어를 주자』에는 인류 역사상 기록된 최초의 작가인 기원전 2300년경의 엔헤두안나부터 영국의 브론테 자매들, 그리고 우리 근대 문학사의 아픈 손가락인 김명순에 이르기까지 세계 여성 시인의 시가 담겼습니다.


오랜 시간을 가로질러 여성들이 남긴 목소리는 같은 질문을 던집니다. 왜 사랑은 허락받아야 했는가, 왜 재능은 숨겨야 했는가, 왜 슬픔은 침묵 속에서만 존재해야 했는가를 말이죠.





고전을 읽을 때면 당대의 시대상과 작가의 한계를 저울질하곤 합니다. 하지만 이 책에 등장하는 여성 시인들의 삶을 들여다보는 순간, 그런 저울질은 무색해집니다. 미술, 음악, 연극 등 예술 분야의 진입 장벽이 여성들에게 철저히 닫혀 있던 시절, 그들에게 허락된 유일한 구원은 오직 펜과 종이뿐이었습니다. 재료비 없는 예술, 그래서 허락된 예술이 바로 시였습니다.


에칭 스타일로 복원한 100인의 초상과 함께 시인에 대한 정보가 담겨 시인의 개인사와 시대적 맥락을 압축적으로 보여줍니다. 말할 수 없었던 슬픔을 어떻게든 언어의 형태로 붙잡아두려는 안간힘, 그것이 바로 이 시집 전체를 관통하는 정서입니다.


『슬픔에게 언어를 주자』는 제도와 억압 속에서도 끝내 파괴되지 않은 영혼의 생존 본능을 보여줍니다. 기원전의 메소포타미아 여사제와 19세기 영국의 목사관 골방에서 시를 쓰던 자매들, 그리고 식민지 조선에서 번역과 창작을 멈추지 않았던 신여성의 고통이 겹쳐집니다.


문학사에서 브론테 자매들로 묶여 기억되는 샬럿 브론테와 에밀리 브론테는 척박한 환경 속에서 서로의 가장 친밀한 문학적 동반자이자 경쟁자로 자라났습니다.





언니 샬럿 브론테가 부당한 사회적 억압과 여성의 희생에 맞서 저항하며 경제적·정신적 독립을 쟁취하는 여성의 여정을 담은 『제인 에어』를 통해 당대에 즉각적이고 폭발적인 대중적 성공을 거두었다면, 동생 에밀리 브론테는 은둔주의적인 성향 속에서 인간 내면의 날것 그대로의 열망과 황량한 야성을 극한으로 밀어붙인 불멸의 고전 『폭풍의 언덕』을 집필하여 문학사에 깊고 강렬한 충격을 남겼습니다.


남성 필명으로 공동 시집을 펴내며 세상에 처음 목소리를 드러냈던 이 천재 자매는 서로 다른 결의 뜨거운 문학적 무기를 통해 당대 사회가 규정한 여성을 향한 한계를 완전히 깨부수고 세계 문학사 중심에 그들의 이름을 새겼습니다.


사회가 부여한 아내, 어머니, 딸이라는 역할의 굴레에서 벗어나 완전한 단독자로서의 자아를 갈망하는 목소리도 강렬하게 다가옵니다. 19세기 영국의 지성 조지 엘리엇(본명 메리 앤 에반스)은 남성 필명 뒤에 숨어야만 했던 억압적 구조 속에서도 인간 내면의 심연을 끊임없이 탐구했습니다.


미국 시문학의 선구자 에밀리 디킨슨의 시 「슬픔은 생쥐」는 슬픔이라는 거대하고 압도적인 감정을 뜻밖의 사물과 형상으로 보여줍니다. 에밀리 디킨슨에게 슬픔은 숨어서 자라나며(생쥐), 나의 온 존재를 앗아가고(도둑), 어설프게 전시될 때 다치기 쉬우며(곡예사), 결국에는 어떤 언어로도 설명할 수 없는 절대적인 침묵 속에서 완성되는 것(탐식가)입니다. 슬픔이라는 감정을 지적인 입체감으로 빚어냅니다.





이 책에서 마음을 가장 저릿하게 만든 시인은 한국 최초의 여성 소설가이자 시인, 그리고 5개 국어에 능통했던 천재 번역가 김명순입니다. 기생의 딸이라는 신분적 낙인, 유학 시절 겪은 성폭력 사건과 그로 인한 문단 내 남성 작가들의 악의적인 인신공격 속에서도 펜을 놓지 않았습니다. 세상의 칼날 같은 소리를 피해 스스로의 영혼을 지키고자 했던 절규를 엿듣는 기분입니다.


『슬픔에게 언어를 주자』에 실린 100편의 시는 과장되거나 예스러운 어투를 걷어낸 현대적 번역 덕분에 친근하고 생생하게 와닿습니다. 마음속을 떠돌며 우리를 괴롭히던 슬픔이 있다면 펼쳐보세요. 슬픔에 지지 않기 위해 펜을 쥐었던 100명의 시인들이 건네는 뜨거운 위로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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