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벤 존슨
이찬란 지음 / 시원북스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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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잊고 지냈던 다정한 참견의 가치를 이야기하는 이찬란 작가의 장편소설 『나의 벤 존슨』. 스스로를 1988년 서울 올림픽의 비운의 스타 벤 존슨이라 믿는 한 중년 남자와 월세 낼 돈이 없어 고시원에서 쫓겨날 위기에 처한 청년 호달의 기묘한 동행 속으로 들어갑니다.


마흔이 되어서야 비로소 글 쓰는 사람이 되기 위해 공부를 시작해 오랜 꿈을 이루기 위해 독립을 선택한 이찬란 작가의 삶 자체가 어쩌면 이 소설이 말하고자 하는 경로 이탈과 새로운 시작의 생생한 증거일지도 모릅니다.


1988년 서울 올림픽 100미터 결승전이라는 강렬한 역사적 순간에서 출발하는 이야기는 2020년대 서울 신림동 고시촌, 이제는 고시생보다 빈민에 가까운 일용직 노동자가 더 많아진 그곳으로 이어집니다.


주인공 호달에게 신림동은 꿈의 요람이 아니라 생존의 사선입니다. 밤샘 알바를 마치고 돌아온 그를 맞이하는 건 버려진 법률 책 묶음뿐입니다. 더 이상 희망을 품을 수 없는 구조가 된 고시촌의 현실을 묘사합니다.


세계신기록 9초 79를 세우고도 단 72시간 만에 약물 복용으로 금메달을 박탈당한 벤 존슨. 그 이름을 자신의 것으로 믿는 정체불명의 남자와 보증금 한 푼 없이 고시원에서조차 쫓겨날 위기에 처한 청년 호달이 만납니다. 소설은 이들의 만남을 실패한 자들이 본능적으로 서로를 알아보는 결핍의 조우로 그려냅니다.





서로의 삶에 간섭하지 않고, 선을 지키고, 타인의 고통에 공감은 하되 개입하지 않는 태도가 사회관계의 방식이 된 시대. 호달이 겪는 고립은 휴대폰이 꺼지는 순간 완벽한 어둠이 되는 현대인의 초상입니다.


정작 마음 둘 곳 없는 호달에게, 벤 존슨 남자는 무례할 정도로 참견하고 훈수를 둡니다. 국수 한 그릇을 같이 먹고, 빈 지갑의 서러움을 공유하며, 심지어 밀린 월급을 받기 위해 피시방을 습격하는 무모한 여정에 호달을 끌어들입니다. 이 남자가 조력자인지 사기꾼인지를 구분하기 힘들 정도입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호달은 난생처음 누군가 내 옆에 있다는 감각을 깨닫습니다. 호달의 모습은 현대 사회의 세련된 고립보다 과거의 촌스러운 연대가 얼마나 더 인간을 살게 하는지를 보여줍니다. 무례함 속에 숨겨진 낡은 애정이 어떻게 개인을 구원하는지, 타인에 대한 관심이 실은 우리가 이 세계에 흩뿌려놓아야 할 소중한 씨앗임을 일깨워줍니다.


소설의 제목이기도 한 벤 존슨은 승리자가 아닌, 추락한 영웅의 대명사입니다. 경이로운 기록 뒤에 숨겨진 약물 복용의 얼룩. 하지만 남자는 그 추락의 기억마저 자신의 정체성으로 안고 살아갑니다. 실패한 영웅을 자신의 정체성으로 삼는다는 것은 실패했어도 그 질주 자체가 의미 있었다는 믿음의 또 다른 표현입니다.





"패배하기로 결심하지 않는 한, 패배의 법칙 같은 건 없어야 했다."라는 문장이 오래 머뭅니다. 책을 덮는 순간까지도 호달의 인생이 펴질거라는 장담은 솔직히 하기 힘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심하지 않는 한'이라는 조건절이 주는 위로가 상당히 큽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달릴 이유가 되어줍니다.


둘의 동행, 독특합니다. 서로의 결핍을 채워주지는 않습니다. 대신 결핍을 가진 채로 함께 달립니다. 그게 이 소설이 말하는 연대의 방식입니다. 귀찮고 불편합니다. 하지만 함께 달리는 과정에서 얻은 가족 같은 온기가 그들을 다시 일으켜 세웁니다.


완벽하지 않은 두 주인공이 서로의 페이스메이커가 되어주는 과정을 통해 나의 실패 또한 인생이라는 긴 트랙의 일부임을 깨닫는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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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산을 오르기로 했다 - 노스페이스 창립자의 두번째 인생
조너선 프랭클린 지음, 강동혁 옮김 / 복복서가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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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자본주의의 최정점에서 성공이라는 이름의 정상을 정복한 남자가 그 산을 내려와 아무도 보지 않던 다른 산을 오르기 시작한 경이로운 기록, 탐사 보도의 대가 조너선 프랭클린의 『다른 산을 오르기로 했다 (원제 A Wild Idea)』.


기업가 정신, 생태주의, 반문화 역사, 탐험 서사를 한 권에서 모두 만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입니다. 브랜드 창업 신화가 아니라 "왜 성공을 버렸는가?"라는 모순의 답을 만나게 됩니다.


노스페이스와 에스프리의 창업자이자, 지구상에서 가장 거대한 사유지 기부자로 알려진 더그 톰킨스의 생애를 추적했습니다. 수년간 파타고니아를 직접 누볐고, 수천 페이지의 미공개 편지와 일기 확보, 160여 명을 인터뷰했습니다. 더그 톰킨스의 절친 이본 쉬나드(파타고니아 창립자), 전직 칠레 대통령 미첼 바첼레트 그리고 카약 사고 당일 현장에 함께 있던 동료까지. 이렇게 복원된 이야기는 친환경이라는 단어가 마케팅 용어로 전락한 시대에 진짜 광기 어린 신념이 무엇인지 보여줍니다.





더그 톰킨스의 이야기는 샌프란시스코의 어느 허름한 길모퉁이에서 시작됩니다. 스물한 살의 고등학교 중퇴자였던 그는 샌프란시스코에 작은 등산용품 가게를 열었습니다. 이름은 노스페이스. 산의 북벽, 가장 춥고 거칠고 얼어붙은 면을 뜻하는 이름처럼 쉬운 길을 외면하고 혹독한 쪽을 향해 돌진하는 충동. 그것이 더그 톰킨스라는 인간의 본질이었습니다.


파타고니아 창업자 이본 쉬나드는 "기업가로서의 더그를 이해하고 싶다면 비행 청소년을 연구하세요. 더그의 행동에서 그런 방식이 보이거든요. 뭐가 이따위야? 내 방식대로 하겠어! 그게 더그였어요."라고 말했습니다. 고교 시절 암벽등반으로 맺어진 두 사람의 우정은 훗날 각각 노스페이스와 파타고니아라는 브랜드 제국을 세우는 토대가 되었지만, 그 출발점은 그저 산이 좋아서 함께 위험한 곳으로 올라갔던 청년들의 이야기였습니다.


이후 아내 수지와 함께 창업한 에스프리는 연 매출 10억 달러를 넘는 패션 제국으로 성장했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성공의 정점에서 더그 톰킨스는 자신이 만든 것이 지구를 파괴하고 있다는 사실을 직면했습니다. 패션은 과소비를 먹고 자랍니다. 그가 키워온 제국 자체가 문제의 일부였습니다.​





그는 에스프리 카탈로그에 "필요하지 않다면 우리 옷을 사지 마세요"라는 문구를 넣습니다.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 이단아 취급을 받을 만한 행동이었지만, 톰킨스는 이를 통해 소비 지상주의에 경종을 울렸습니다. 그는 마케팅의 천재였고, 그 천재성을 이제 지구를 홍보하는 데 사용하기 시작합니다.


1980년대 후반, 톰킨스는 모든 지분을 정리합니다. 그리고 선언합니다. 당신들이 파괴한 자연을 복구하겠다고요. 칠레 파타고니아의 외딴 오두막으로 거처를 옮기며 심층 생태학에 몰두합니다. 톰킨스의 계획은 전례가 없었습니다. 사유지를 대규모로 매입해 생태계를 복원한 뒤 국가에 기증하는 것이었습니다.


자선가가 아니라 직접 경비행기를 몰며 땅을 사고, 멸종위기 동물을 포함한 생태계 전체를 되살리는 야생복원을 구상한 실행가였습니다. 탐험가의 본능과 환경운동가의 신념이 하나로 합쳐진 순간입니다. 하지만 칠레 정부와 기업들은 그를 의심했습니다. "미국인이 땅을 사서 칠레를 반으로 쪼개려 한다", "유대인 수용소를 지으려 한다"는 식의 터무니없는 음모론에 시달렸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2015년, 그는 카약 사고로 숨을 거둡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의 죽음은 칠레의 의심을 잠재웠습니다. 생전에 그를 스파이로, 침략자로 몰았던 이들조차 조의를 표했습니다. 그의 사후, 칠레 정부는 톰킨스 재단과의 협약을 통해 인류 역사상 최대 규모의 토지 기증을 받아들였고, 1,700마일에 달하는 '공원의 길'이 완성되었습니다. 인류 역사상 한 개인이 국가에 한 최대 규모의 토지 기부였습니다.





더그 톰킨스는 성인군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오만했고, 가족을 등한시했고, 완벽주의적 통제욕도 있었습니다. 페라리를 몰면서 환경보호를 외쳤습니다. 하지만 조너선 프랭클린 저자는 메시지를 던집니다. "완벽한 인간만이 세상을 바꾸는 것은 아니다"라는 사실입니다. 톰킨스의 그 독선적인 완벽주의와 타협 없는 고집이 없었다면, 거대 자본과 국가 권력에 맞서 파타고니아의 야생을 지켜내는 것은 불가능했을 겁니다.


오늘날 성공은 곧 더 많은 소유를 의미합니다. 하지만 『다른 산을 오르기로 했다』는 우리는 어떤 산을 오르고 있는가, 오르고 있는 그 산이 정말 내가 원하는 정상인가를 묻습니다.


그는 인생의 후반전에서 성공이라는 산을 내려와 가치라는 더 높고 험준한 산을 올랐습니다. 『다른 산을 오르기로 했다』는 한 인간이 자신의 신념을 현실로 구현하기 위해 어디까지 투쟁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거대한 모험 서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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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좋은 어린이 도감 마음이 쑥쑥! - 초등 사회 정서 6
박세랑 지음 / 서사원주니어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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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쾌한 실천으로 배우는 생활 속 배려의 기술, 박세랑 작가의 『참 좋은 어린이 도감』. 타인의 마음을 읽어내는 사회적 추론 능력과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는 정서적 문해력이 어떻게 일상 속에서 발현되는지 60가지 장면으로 포착해낸 어린이책입니다.


저자가 대치동 교실에서 목격한 것은 공감하고 배려할 줄 아는 아이들이 더 넓은 세계로 나아갈 회복탄력성과 사회적 성공의 기반을 갖춘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박세랑 작가는 아이들에게 좋은 행동이라는 매뉴얼을 쥐여줌으로써 세상과 더 부드럽게 소통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시각적 매력이 돋보이는 이 책은 익살맞은 삽화로 도덕 교육 특유의 딱딱함을 재미있게 풀어냈습니다. '참 좋은 어린이 꿀팁'은 아이의 눈높이에서 대화하고 지도할 수 있게 돕는 세심한 치트키와 같습니다.


교실은 아이들이 부모의 품을 떠나 처음으로 마주하는 작은 사회입니다. 먼저 교실에서 발생하는 아주 사소한 사건들에 주목합니다. 친구가 실수로 물을 엎질렀을 때 "친구를 도와주세요"라는 말을 넘어, 그 도움의 방법을 세밀하게 쪼개어 보여줍니다. 여기서 '누구나 하는 실수'라는 문장이 와닿았습니다. 친구의 당혹감을 낮춰주는 공감의 언어입니다.


실수로 방귀를 뀌었을 때와 같은 상황은 아이들에게 조롱의 소재가 되기 쉽습니다. 이런 민망한 순간을 어떻게 유머러스하고 담백하게 넘길 수 있는지 구체적인 대사들을 소개합니다.





교실에서는 규칙이 명확하지만, 집에서는 감정의 흐름이 더 자유롭고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집에서 일어나는 상황 속에서는 눈치 키워드가 등장합니다.


엄마의 요리가 조금 맛이 없을 때, 혼자 숙제를 해야 할 때, 내 방이 지저분해졌을 때와 같은 빵 터지는 주제가 쏟아집니다. 집은 아이가 배려를 처음 연습하는 공간입니다. 가족에게 건네는 작은 말 한마디, 작은 행동 하나가 아이의 인성을 형성하는 가장 근본적인 훈련입니다.


놀이터, 경비실, 주차장 등 동네의 공용 공간에서 아이들은 이웃이라는 존재를 만납니다. 경비실 앞을 지날 때, 집에서 공을 튕기고 싶을 때 어떻게 하면 좋은지 유쾌하게 풀어냅니다.


공공장소에서의 매너는 지능의 영역입니다.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욕구와 사회적 규범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도서관, 병원, 영화관 등에서 아이들이 흔히 저지르는 실수를 유쾌하게 꼬집으면서도, 왜 그곳에서 정숙해야 하는지를 보여줍니다.





가르치려 하지 않는 방식으로 교육합니다. 보여주고, 따라 하게 만들고, 결국 스스로 선택하게 합니다. 올바른 행동을 먼저 보여주는 게 아니라, 매너 없는 행동의 WORST 목록을 먼저 펼쳐 보이는 겁니다. 잘못된 예를 먼저 인식하고 나면 올바른 행동이 훨씬 선명하게 각인됩니다.


마지막으로 인성의 대상을 지구 환경으로 넓힙니다. 환경 감수성은 선택이 아닌 필수 역량입니다. 양치를 할 때, 휴지를 쓸 때, 급식을 먹을 때 등 일상의 모든 행위가 환경과 연결되어 있음을 재밌게 풀어냅니다. 아이들에게 자기 효능감을 심어주기 좋은 조언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타인의 마음을 읽어내는 다정한 지능 스펙을 쌓을 수 있게 도와주는 『참 좋은 어린이 도감』. 60가지 상황을 구체적인 대사와 행동으로 보여주고 있어 실제로 따라 해보기 쉽고, 만화 형식 덕분에 술술 읽힙니다. 배려에도 기술이 있다는 걸 구체적으로 알려주는 고마운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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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 엔지니어링 - 모든 장르에 활용 가능한 AI 콘텐츠 전략
김우정 지음 / 생능북스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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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AI가 소설을 쓰고 시나리오를 집필하는 시대에 인간 작가의 존재 이유는 무엇인가요? 이야기꾼은 사라질까요? 국내 최초 AI 스토리텔링 전문가 김우정 작가는 이 질문에 대해 멸종이 아닌 진화라는 해법을 알려줍니다.


저자는 2023년부터 국내에서 가장 먼저 인공지능 스토리텔링을 연구해 온 스토리 엔지니어입니다. 『스토리 엔지니어링』은 이야기를 감성의 영역에서 데이터와 논리의 영역인 엔지니어링으로 끌어올렸습니다.


1991년 《쥬라기 공원》 제작 당시 스톱 모션의 거장 필 티펫이 CG 영상을 보고 내뱉은 절망적인 고백을 인용합니다. "I think I’m extinct. (나는 이제 멸종했다고 생각합니다.)" 30년간 갈고닦은 기술이 단 몇 분 만에 박물관 유물이 된 순간입니다. 하지만 필 티펫이 자신의 아날로그적 감각을 디지털로 변환하는 DID(Dinosaur Input Device) 시스템을 개발해 두 번째 오스카를 거머쥐었듯, 우리 역시 AI 스토리 엔지니어로 거듭나야 합니다.


AI 창작의 실패 원인은 나쁜 프롬프트가 아니라, 이야기 구조에 대한 이해 부재라는 것을 짚어줍니다. AI는 언어 패턴을 학습한 기계입니다. 창작자가 내러티브의 뼈대를 모르면 AI 역시 허공에 문장을 쌓을 뿐입니다.





저자는 휴리스틱 프롬프팅(Heuristic Prompting)을 소개합니다. 창작자의 직관적인 영감을 AI가 이해할 수 있는 논리적 구조로 변환하는 소통 방식입니다. 영감을 구조화하고, AI와의 대화를 전략적으로 설계하며, 그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통찰을 발견하는 창작 프로세스 전체를 아우르는 접근법입니다. 기존의 프롬프트 잘 쓰기 접근을 뒤집습니다. 프롬프트는 문장이 아니라 사고의 설계도라는 것입니다.


핵심 방법론은 Chain of Story(CoS) 프레임워크입니다. 생성 제목 → 로그라인 → 인물 → 아웃라인 → 장면 → 시나리오 → 트리트먼트 → 편집의 사슬을 따라 단계적으로 구축하는 겁니다. 건물을 기초부터 쌓아 올리듯, 이야기도 각 단계의 결과물이 다음 단계의 입력값이 됩니다.


이야기의 사슬 프레임워크가 방법론이라면, 스토리 어시스턴트는 그 방법론을 자동화하고 개인화하는 도구입니다. 매번 처음부터 맥락을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AI 파트너를 직접 구축하는 법을 알려줍니다.


지식 파일 관리법도 흥미롭습니다. 하나의 거대한 문서 대신, 인물설정·세계관·시간표·스타일가이드를 별도 파일로 분리하고 체계적으로 명명하는 방식입니다. AI가 맥락을 잃지 않도록 하는 메모리 구축인 셈입니다.


영화 시나리오, 드라마 대본, 웹툰 스토리, 숏폼 드라마까지 장르별 실전에 돌입합니다. 장르마다 다른 문법과 구조를 체계적으로 분리해 다루고 있어 유용합니다. 매체별 맞춤 창작 워크플로우를 설계해 소개합니다. AI는 그 문법을 창작자가 먼저 알고 있을 때만 제대로 작동한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장르에 따라 필요한 챕터만 골라 읽어도 충분한 실용적이지만, 전체를 통독하면 창작자로서의 시야가 확연히 넓어지는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 AI 시네마를 위한 제언 챕터에서는 116개국이 참가한 세계 최대 AI 영화제에서 대상을 수상한 9분짜리 단편 〈LILY〉를 분석합니다. 이 작품에는 로봇도 없고 SF적 설정도 없습니다. AI 기술로 70% 이상을 제작했지만, 심사위원단이 선택한 이유는 기술이 아니라 "디지털 도구로 윤리적 메시지를 담은 드라마를 만들었다"라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나라는 K-드라마와 K-영화로 전 세계 콘텐츠 시장에서 이미 서사적 경쟁력을 입증한 나라입니다. 이것들은 기술이 아니라 이야기의 힘이었습니다. 한국이 이미 세계 시장에서 검증받은 것은 감정의 밀도이고, AI는 그 밀도를 더 빠르고 더 다양하게 구현할 수 있는 수단이 되어야 하는 겁니다. 기술적인 방법론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AI가 만든 콘텐츠의 저작권, 창작자의 역할, 윤리적 책임까지 균형 있게 다룹니다.


프롬프트를 잘 쓰는 사람이 아니라, 이야기의 구조를 아는 사람이 AI 시대를 이긴다는 것을 보여주는 『스토리 엔지니어링』. 과거에는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그것을 직접 구현하는 사람이 창작자였다면, 이제는 무엇을 만들 것인가를 결정하고 어떻게 만들 것인가를 설계하는 사람이 창작자가 됩니다. 이 전환은 생각보다 훨씬 급진적입니다. 질문을 잘하는 사람에서 설계를 잘하는 사람으로, 창작의 중심축이 이동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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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는 풍경
마치에이 미크노 지음, 발렌티나 고타르디 그림, 김시형 옮김 / 모스그린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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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풍경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명소, 절경이나 그림엽서 속의 한 장면이 떠오릅니다. 그런데 이탈리아발 그림책 『우리가 사는 풍경』 속 풍경은 단순한 배경이 아닙니다.


형식은 어린이 그림책이지만, 꽤 철학적입니다. "풍경은 그냥 보이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함께 만들어 가는 것"이라고 합니다. 어쩌면 지금 이 시대를 사는 우리 모두에게 가장 필요한 인식론적 전환일지도 모릅니다.


이탈리아의 생태 전문 출판사 코카이 북스를 이끄는 저자 마치에이 미흐노(Maciej Michno)와 일러스트레이터 발렌티나 고타르디(Valentina Gottardi)는 눈에 보이는 경치를 넘어, 인간과 환경이 서로를 빚어가는 역동적인 상호작용의 과정을 포착해냅니다.


출근길의 가로수, 창밖으로 보이는 아파트 단지, 점심시간에 잠깐 들르는 공원. 우리는 매일 풍경 속을 살아갑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을 얼마나 제대로 인식하고 있을까요? 솔직히 말하자면 풍경을 배경으로 처리하는 데 너무 익숙해져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풍경』은 풍경이 정지된 화면이 아니라 경험의 총체임을 짚어줍니다. 풍경은 바람의 결, 흙의 냄새, 길 위에서 마주치는 이웃의 인사말까지 포함하는 입체적인 개념인 겁니다. 우리가 그 안에서 움직이고 호흡할 때 비로소 풍경은 완성됩니다. 고정된 이미지가 아니라 우리의 삶이 투영된 생생한 현장입니다.


풍경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속해 있는 것이라는 관점 전환이 핵심입니다. 같은 장소라도 경험의 층위에 따라 전혀 다른 풍경으로 재구성됩니다. 풍경은 있는 그대로의 상태가 아니라 해석되는 방식에 의해 형성됩니다.


풍경을 찾기 위해 먼 곳으로 떠나야 할까요? 저자는 발밑을 보라고 합니다. 매일 걷는 보도블록 사이의 틈새, 익숙한 아파트 단지의 나무 한 그루조차도 풍경의 당당한 주인공입니다.


우리가 태어나 자란 곳의 모양, 빛, 소리, 냄새조차 우리 기억 속에 영원히 남아 우리를 형성합니다. 저자는 우리가 자란 동네의 언어가 우리에게 사유의 기초를 제공하듯, 주변의 모든 환경이 우리 삶의 든든한 길잡이가 된다고 설명합니다.


어린이 그림책에서 이 정도 밀도의 생태철학을 만나는 건 드문 일입니다. 팽나무의 생태 특성을 세밀하게 설명하는 일러스트, 민들레의 뿌리 구조를 보여주는 식물도해까지 고타르디의 그림은 구체적 생명체의 언어로 번역해 냅니다. 인물들은 주로 선 드로잉으로 처리되어 배경의 자연과 대비되어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느낄 수 있습니다.


아무도 돌보지 않는 버려진 땅, 아스팔트 틈새, 담장 가장자리에서 씩씩하게 자라나는 식물들. 효율과 정돈을 추구하는 현대 도시에서 가장 먼저 사라지는 것이 바로 이 틈새입니다.


생태학적으로 보면 경계 지점과 틈새야말로 생물다양성이 풍부한 공간입니다. 우리가 잡초라 부르며 뽑아버리던 것들이 사실은 도시의 열기를 조절하고, 토양을 지탱하며, 곤충들의 서식지가 되어주는 존재라는 사실을 식물 일러스트와 함께 보여줍니다.


『우리가 사는 풍경』은 사라지는 풍경에 대한 감수성을 길러줍니다. 블랜드스케이프(Blandscape)라는 신조어가 눈에 띕니다. bland(심심하다)와 landscape(풍경)를 합친 이 단어를 통해 잔디밭과 꽃밭, 획일적인 나무 울타리로만 채워진 공간이 얼마나 생태적으로 빈곤한지를 짚어줍니다. 보기에 깔끔한 곳이 실은 가장 생명력 없는 곳일 수 있다는 역설은 우리 주변의 흔한 건물들의 조경을 떠올리게 됩니다.


풍경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변화 가능한 존재이며, 그 변화의 주체가 바로 우리라는 점을 강조합니다. 작은 행동 하나가 풍경을 바꿀 수 있습니다. 쓰레기를 줍는 행동, 나무를 심는 행동 또는 어떤 장소를 소중히 대하는 태도까지 이런 일상적인 선택들이 모여 풍경의 질을 결정합니다. 환경 보호를 의무로 강요하기보다, 참여의 기쁨으로 전달하는 책입니다.


어려운 낱말 풀이 파트에서는 핵심 키워드들을 다시 한번 정리해줍니다. 환경, 풍경, 관계 등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단어들의 뜻을 명확히 이해하는 시간입니다.


『우리가 사는 풍경』은 풍경을 설명하는 책이 아니라, 풍경을 다시 보게 만드는 책입니다. 매일 지나치는 공간들이 얼마나 많은 이야기와 관계를 품고 있는지를 깨닫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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