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일이 있어도 나쁜 날은 아니야
정문정 지음, 피도크 그림, 천근아 감수 / 서교책방 / 2026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어떤 책은 표지를 넘기기도 전에 이미 치유를 시작하곤 합니다. 정문정 작가의 그림책 『나쁜 일이 있어도 나쁜 날은 아니야』가 그렇습니다. 제목을 읊조려 보세요. 마치 헝클어진 마음을 단번에 정돈해 주는 마법의 주문처럼 느껴지지 않나요?


"오늘 다 망했어"라는 절망을 내일의 근육으로 바꾸는 마법, 회복탄력성을 다룬 그림책 『나쁜 일이 있어도 나쁜 날은 아니야』. 베스트셀러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을 통해 타인으로부터 나를 지키는 법을 알려주었던 정문정 작가가 이번에는 아이들의 내면으로 시선을 돌렸습니다. 나를 지키는 법의 기초 공사가 사실은 어린 시절의 감정 갈무리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일깨워 줍니다. 여기에 100만 구독자의 사랑을 받는 피도크 작가의 귀여운 그림과 국내 최고의 소아정신과 권위자 천근아 교수의 감수가 더해졌습니다.





주인공 아이는 시련을 겪습니다. 놀이터에서 넘어져 아끼는 옷이 더러워지고, 친구와 장난감 때문에 다투며, 한글 퀴즈에서 아는 문제를 틀리고 맙니다. 작은 실패에도 세상이 무너진 듯 좌절하는 유리 멘탈의 아이를 지켜보며 가슴 아파하는 부모라면 이 책이 반가울 겁니다. 『나쁜 일이 있어도 나쁜 날은 아니야』는 사소해 보이는 아이의 절망을 "별것도 아닌데 왜 울어?"라며 폄하하지 않습니다. 


천근아 교수는 부정성 편향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합니다. 인간의 뇌는 생존을 위해 긍정적인 신호보다 부정적인 신호에 훨씬 민감하게 반응하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특히 정서 조절 능력이 발달 중인 아이들에게는 단 하나의 불쾌한 사건이 하루 전체의 색깔을 검게 물들이는 지각의 오류를 일으키기 쉽다고 합니다.


본격적인 이야기 전개는 시계 요정의 마법과 함께 시작됩니다. 아이가 "당연하잖아. 오늘 나쁜 일이 계속 있었으니까!"라며 울먹일 때, 시계 요정은 지나온 시간을 되감기 합니다. 작가는 아이가 겪은 불행을 삭제하는 것이 아니라, 그 불행 뒤에 숨어 있던 다정함의 조각들을 조명합니다. 아이는 시계 요정의 안내를 따라 자신의 하루를 다시 쓰기 시작합니다. 


우리의 기억은 데이터 센터에 저장된 고정된 파일이 아닙니다. 어떤 관점으로 다시 보느냐에 따라 그 서사가 완전히 달라지는 유동적인 에너지입니다. 작가는 아이들이 스스로 자신의 하루를 편집할 수 있는 권력이 있음을 넌지시 알려줍니다.





천근아 교수가 이 책을 강력히 추천한 핵심 이유는 바로 회복탄력성에 있습니다.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온실 속의 화초처럼 고난 없는 삶을 보장받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폭풍우 속에서도 다시 줄기를 세우는 단단한 마음 근육입니다. 사실 아이뿐만 아니라 어른이 되어서도 우리는 쉽게 부정성 편향의 늪에 빠지곤 합니다. '나쁜 일'은 하루라는 거대한 풍경 속에 찍힌 작은 점일 뿐, 풍경 전체가 아니라는 사실을 잊고 삽니다.


『나쁜 일이 있어도 나쁜 날은 아니야』는 감정을 없애는 법이 아니라, 감정을 정리하는 법을 알려줍니다. 실패했을 때 다시 일어나는 힘은 긍정적인 성격이 아니라, 기억을 재구성하는 사고 방식에서 나옵니다.  '나쁜 일'이라는 점들을 연결해 '나쁜 날'이라는 선을 만들던 아이들에게, 그 점들 사이사이에 박혀 있는 찬란한 보석 같은 순간들을 찾아내라고 속삭이는 『나쁜 일이 있어도 나쁜 날은 아니야』. 내일 또 어떤 나쁜 일이 생길지 모르지만, 그것이 결코 나의 하루를 망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온 가족이 함께 알아야 할 고령자 응급대처법 - 뇌졸중, 심혈관 질환부터 낙상, 감염까지
김준성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6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서울아산병원 응급의학과 김준성 교수가 전하는 『온 가족이 함께 알아야 할 고령자 응급대처법』. 응급실 현장에서 축적된 경험을 가족의 언어로 재구성한 생활 밀착형 지침서입니다. 불가피한 순간에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라는 질문을 다룹니다. 건강서이자 위기관리 매뉴얼이며 동시에 가족의 판단력을 키우는 교육서입니다.


부모님의 말과 행동을 보며 나이가 있으셔서 그렇겠거니 하고 넘기곤 합니다. 하지만 이 책은 이런 생각이 위험한 착각임을 짚어줍니다. 우리가 자연스러운 노화라고 치부했던 순간들이 사실은 생명을 위협하는 응급상황의 신호탄이었음을 경고합니다. 고령자 응급상황의 30%가 초기에 나이 탓으로 여겨지면서 진단이 지연된다는 통계는 우리의 무지와 방심이 얼마나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하는지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김준성 교수는 고령자의 응급상황은 일반적이지 않다는 것을 일깨워 줍니다. 젊은 사람이 심근경색을 겪으면 가슴을 쥐어짜는 듯한 통증을 호소합니다. 전형적 증상입니다. 하지만 고령자는 다릅니다. 가슴 통증 대신 그냥 "기운이 없다"라고 말하거나 "소화가 안 된다"라고 표현합니다. 뇌졸중도 마찬가지입니다. 젊은 사람은 갑작스러운 편측 마비나 언어 장애로 극적으로 나타나지만, 고령자는 "오늘 유난히 어지럽네" 정도로 애매하게 시작됩니다. 이 '비전형성'이 고령자 응급의료의 가장 큰 함정입니다.


뇌졸중, 심근경색, 낙상, 발열, 복통, 호흡곤란, 어지럼증 등 주요 응급상황별로 챕터를 나누어 각각의 대응법을 상세히 다룹니다. 페이지 상단에 증상별 태그를 달아서 궁금한 부분을 빠르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68세 박 할머니와 70세 최 할아버지, 둘 다 말이 어눌해지고 한쪽 팔에 힘이 없어지는 똑같은 증상을 보였습니다. 차이는 오직 하나, 보호자의 대응 속도였습니다. 박 할머니의 가족은 즉시 119에 신고했고, 55분 만에 혈전용해제를 투여받아 완전히 회복했습니다. 반면 최 할아버지의 가족은 "조금 쉬면 나아지겠지"라며 2시간을 집에서 기다렸고, 그 결과 평생 반신마비와 언어 장애를 안고 살게 됐습니다. 단 2시간의 차이가 두 인생을 완전히 갈라놓은 것입니다.





 『온 가족이 함께 알아야 할 고령자 응급대처법』의 실용적인 부분은 응급상황 판단 기준을 제시한다는 점입니다. 언제부터 증상이 시작되었는가(시기), 평소와 얼마나 다른가(정도), 변화가 갑작스러운가 서서히 진행되었는가(양상), 기존에 수행하던 일상 기능을 유지할 수 있는가(기능). 복잡해 보이지만 사실 이 모든 질문의 핵심은 하나입니다. 평소와 다른가?


고령자는 대부분 2~3개 이상의 만성질환을 동시에 보유합니다. 당뇨병, 고혈압, 고지혈증이 기본 세트처럼 따라붙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증상이 생겨도 기존에 앓고 있던 질병 때문인지, 새로운 문제 때문인지 구분하기 어려워집니다. 저혈당으로 어지럼증을 자주 느끼던 당뇨병 환자가 뇌졸중으로 인한 어지럼증을 평소처럼 넘겨버리는 상황이 실제로 빈번히 발생합니다.


그렇기에 보호자의 직관이 중요합니다. 바로 어제까지 혼자 하시던 일을 오늘 갑자기 어려워하신다면, 평소 걸음걸이와 오늘 걸음걸이가 눈에 띄게 다르다면, 말투나 반응 속도가 달라졌다면 응급상황을 의심해야 합니다. 가족이기에 알 수 있는 평소와의 차이가 가장 정확한 조기 경보 시스템입니다.


응급상황을 인지했다면 다음은 행동입니다. 이 정도로 응급실에 가도 될까? 이 한 순간의 망설임이 골든타임을 놓치게 만듭니다. 그래서 저자는 판단 도구를 소개합니다. 뇌졸중 의심 시 사용하는 F.A.S.T 검사가 대표적입니다. 낙상 챕터에서는 고관절 골절의 치명성을 경고합니다. 통계적으로 고관절 골절을 당한 고령자의 1년 내 사망률은 20~30%에 달할 정도로 사망률이 높다고 합니다. 뼈 하나 부러진 게 무슨 대수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고령자에게 낙상은 암보다 무서운 살인자입니다.


고령기에는 기존 질병과 함께 살면서도 최대한 좋은 삶의 질을 유지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완벽한 건강이 아닌 관리 가능한 건강, 질병이 없는 삶이 아닌 질병과 함께 살아가는 삶. 이것이 고령자 건강관리의 현실적 목표라는 저자의 말이 현실적입니다. 저자는 환자만이 아니라 보호자의 건강도 중요하게 다룹니다. 고령자를 돌보는 가족들은 자신의 건강을 뒤로 미룹니다. 하지만 돌보는 사람이 쓰러지면 돌봄 자체가 무너집니다. 자기 돌봄이 이기심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돌봄의 전제조건이라는 것을 일깨워 줍니다.





뇌졸중 F.A.S.T 체크리스트, 심근경색 증상 체크리스트, 낙상·의식 저하·호흡곤란·심한 출혈·화상 상황별 행동 지침, 응급실 의료진에게 전달할 복용 약물 및 기저질환 정보 기록란, 비상 연락망까지. 실전 체크리스트까지 있어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습니다. 특히 복용 약물 기록란은 필수입니다. 고령자는 여러 만성질환으로 5~6가지 약을 복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응급실에서 의료진이 가장 먼저 확인하는 것이 바로 이 정보입니다. 항응고제를 복용 중인지, 당뇨약은 무엇인지에 따라 응급처치 방향이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위급한 순간에 약 이름을 하나하나 기억해내기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평소에 이 부록을 작성해두는 것만으로도 골든타임을 크게 단축할 수 있습니다.


한국은 이미 초고령사회입니다. 65세 이상 인구가 1천만 명을 돌파했고, 전체 응급센터 방문자의 15%가 고령자입니다. 남의 일이 아닙니다. 우리 부모님, 우리 자신의 가까운 미래입니다. 우리가 준비해야 할 것은 노화와 함께 오는 위험에 대비하는 것입니다. 응급상황을 대비할 수 있습니다.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나이 탓이라고 넘기지 않고 응급상황으로 인지할 수 있습니다. 망설이지 않고 119를 누를 수 있습니다. 그 모든 것의 시작을 이 책 덕분에 해낼 수 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일론 머스크의 서재 - 인류의 미래를 설계한 60권의 지적 설계도 시대를 이끈 위대한 거장이 사랑한 책들 1
휴먼라이브러리랩 지음 / 앵글북스 / 2026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세계 최고의 부자 혹은 논쟁적인 인물로 불리는 일론 머스크. 하지만 그의 자산 규모나 기행 대신 오늘은 그의 머릿속에 설치된 지적 운영체제를 들여다볼 겁니다. 그에게 책은 교양을 위한 장식품이 아니었습니다. 미래를 발명하기 위한 무기였습니다. 『일론 머스크의 서재』는 인류의 다음 100년을 설계한 지적 설계도를 분석합니다.


이 책을 쓴 휴먼라이브러리랩은 법률가, 투자자, 기획자, 교육자 등 서로 다른 렌즈를 가진 전문가들이 모여 거장의 성공 본질을 연구하는 집단입니다. '시대를 이끈 위대한 거장이 사랑한 책들' 시리즈의 첫 책입니다. 『일론 머스크의 서재』에서는 일론 머스크가 읽은 책이 어떻게 로켓의 엔진이 되고, 자율주행의 알고리즘으로 변환되었는지 그 공학적 프로세스를 추적합니다.


일론 머스크의 상상력을 두고 사람들은 망상이라 부르곤 했습니다. 하지만 그 망상이 철저히 계산된 질문에서 시작되었다면요? 일론 머스크는 어린 시절부터 독서광이었습니다. 그의 사고방식을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질문'입니다. 더글러스 애덤스의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를 통해 정답보다 중요한 것이 올바른 질문임을 깨달았습니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의 표지에는 크고 붉은 글씨로 ‘당황하지 마(Don’t Panic).’라는 글자가 쓰여 있었습니다. 훗날 세상의 모든 조롱이 쏟아질 때, 떠올린 것이 바로 이 문장이라고 합니다.


위기에 대처하는 철학적 태도를 보여줍니다. 우주의 거대함 앞에서 인간의 고통을 객관화할 줄 압니다. 칼 세이건의 『창백한 푸른 점』을 읽으며 지구라는 행성의 연약함을 실감했고, 그것이 곧 다중 행성 종족이라는 비전으로 이어졌습니다.


일론 머스크는 지식의 위계를 따지지 않습니다.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을 통째로 읽으며 지식의 지도를 그렸고, 『구조란 무엇인가』를 통해 복잡한 문제를 본질로 쪼개는 법을 배웠습니다. 불가능해 보이는 전기차 상용화를 이뤄낸 제1원칙 사고의 시작이었습니다.


여기서 언급된 제1원칙 사고(First Principles Thinking)는 관습적인 유추를 거부하고, 물리학적인 기본 요소로 분해하여 다시 조립하는 것. 이것이 그가 기존 자동차 산업과 우주 산업을 해킹한 방법입니다.


아이디어는 누구나 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실행은 다른 영역입니다. 일론 머스크는 로켓 공학 학위가 없었음에도 어떻게 세계 최고의 로켓 기업을 만들었을까요? 답은 다시 책에 있습니다.





그는 스스로 전문가가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로켓 추진 요소』나 『이그니션!』 등을 탐독하며 로켓의 메커니즘을 독학했습니다. 머스크에게 실패는 종료가 아니라 데이터의 수집입니다. 『이그니션!』에서 배운 유머러스한 비관주의는 그가 수차례의 폭발을 견디고 결국 재사용 로켓을 성공시키는 동력이 되었습니다.


흥미롭게도 그의 추진력은 고전 판타지 소설과 서사시에서도 기인합니다. 자신을 역경을 딛고 일어서는 영웅적 서사에 투사하길 즐깁니다. 서사적 몰입은 그가 엄청난 업무 강도와 스트레스를 견디게 하는 심리적 갑옷 역할을 합니다.


일론 머스크는 AI 기술의 선구자이면서도 동시에 경고를 보내는 인물입니다. 기술이 인류의 통제를 벗어날 가능성을 경계하며 이를 위한 철학적 기반을 독서에서 찾았습니다.


닉 보스트롬의 『슈퍼인텔리전스』를 읽고 AI가 인류를 멸망시킬 수 있는 실존적 위협임을 직시했습니다. 이 책은 머스크가 왜 뉴럴링크(Neuralink)를 설립했는지, 왜 AI와 인간의 공생을 그토록 강조하는지 그 바탕이 됩니다. 아이작 아시모프의 『파운데이션』이나 프랭크 허버트의 『듄』 시리즈를 통해 고도화된 기술 문명이 붕괴하는 과정을 학습하며 기술이 나아가야 할 안전한 궤도를 고민합니다.


더불어 인간의 뇌가 가진 편향성을 경계합니다. 『이기적 유전자』나 『의혹을 팝니다』를 통해 인간의 본성과 시스템의 허점을 분석합니다. 데이터에 기반한 의사결정을 내리기 위해 자신의 생각조차 끊임없이 의심합니다.


100년 기업을 이긴 후발주자의 비밀은 역사책에 있습니다. 『손자병법』과 바바라 터크먼의 『8월의 포성』 등 전쟁사를 통해 견고한 기존 질서를 무너뜨리는 비대칭 전략을 익혔습니다. 『칭기스 칸, 잠든 유럽을 깨우다』를 통해 조직 운영의 핵심을 만들었습니다.


벤저민 프랭클린과 하워드 휴즈의 전기를 통해 혁신가의 고독과 광기를 읽어내기도 했습니다.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부터 하이에크의 『노예의 길』에 이르기까지 자본주의의 작동 원리도 고찰했습니다. 일론 머스크가 보여주는 시장 파괴적 행보와 철저한 비용 중심의 경영은 고전적 경제 철학에 대한 이해가 바탕이 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일론 머스크의 서재』는 텍스트라는 비물질을 로켓이라는 물질로 치환해내는 연금술의 과정을 복원해냈습니다. 책을 읽어도 삶이 변하지 않는 이유는 지식을 소비의 대상으로만 삼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일론 머스크에게 책은 설계도였습니다. 그는 책에서 배운 것을 자신의 비즈니스 구조에 대입하고, 물리학적 법칙에 어긋나지 않는지 검증했습니다.


성공한 사람의 독서는 지식의 처리 방식이 남다르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 당신은 지식을 수집하고 있는가, 아니면 미래를 발명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책입니다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얼굴 만들기 - 성형외과의의 탄생
린지 피츠해리스 지음, 이한음 옮김 / 열린책들 / 2026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성형수술이라고 하면 미용 목적의 시술이 먼저 떠오릅니다. 하지만 『얼굴 만들기 The Facemaker』는 그 뒤에 숨겨진 피와 고름 그리고 전쟁의 포화 속에서 탄생한 재건의 역사를 끄집어냅니다.


의학사 연구의 권위자 린지 피츠해리스는 전작 『수술의 탄생』에서 조지프 리스터를 통해 외과 수술의 근대화를 다뤘다면, 이번에는 1차 세계대전이라는 지옥도로 우리를 초대해 현대 성형 수술의 아버지 해럴드 길리스를 소개합니다.


1차 세계대전은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산업화된 대량 살상이 이루어진 전쟁이었습니다. 참호 속으로 쏟아지는 파편과 저격병의 총탄은 병사들의 다리나 팔만 앗아간 것이 아니었습니다. 더 잔혹하게도, 그들의 정체성인 얼굴을 통째로 날려버렸습니다.


얼굴 특징이 훼손된 이들은 영웅 대접을 받지 못했다고 합니다. 한쪽 다리를 잃은 사람은 연민과 존경심을 불러일으킬지 모르지만, 얼굴이 훼손된 사람은 거부감과 혐오감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입니다.


겉모습으로 인간의 가치를 판단하지 말라고 배우지만, 얼굴이 사라진 인간을 대면했을 때 느끼는 본능적인 공포와 거부감은 그 어떤 도덕적 가르침보다 강력했습니다. 부상병들은 살아남은 영웅이 아니라 쳐다봐서는 안 될 괴물이 되어 유령처럼 떠돌아야 했습니다.





32세의 젊은 외과 의사 해럴드 길리스. 케임브리지대 출신 의사인 그는 전쟁의 참상을 목격하며 결심합니다. 생명을 구하는 것을 넘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권리를 되찾아주기로 말입니다.


해럴드 길리스는 기존의 초보적인 성형 수술 기법들을 개선하고 상황에 맞게 변형시킨 끝에 완전히 새로운 수술법을 개발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당시 성형 수술은 멸시받던 분야였습니다. 제1차 세계 대전 이전까지 재건과 미용 수술은 드물었고, 시험 삼아 수술을 한다고 해도 감염으로 심각한 위험에 빠졌습니다.


길리스는 의학적 지식뿐만 아니라 예술가적 상상력을 발휘했습니다. 피부판 이식의 초기 형태를 고안하며, 문자 그대로 새로운 인간을 조각하기 시작했습니다.


군 병원에서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 길리스는 병동에 거울을 금지했습니다. 새로 오는 환자들이 손상된 자신의 얼굴을 처음으로 접하고서 충격받지 않도록 보호하는 한편, 다 끝날 때까지 오래 걸리는 재건 수술 동안 환자들이 얼굴을 보며 받을 충격을 막기 위해서였습니다. 길리스는 무너진 자존감을 재건하는 것이 더 시급함을 알았습니다.


환자의 표정을 연구하고, 이전 사진을 보며 그들의 본래 모습을 추적하는 탐정이자 예술가였던 의사들. 퀸스 병원 주변의 파란 벤치에 앉아있던 부상병들은 서로의 무너진 얼굴을 마주하며 역설적으로 가장 진한 동료애를 느꼈습니다. 세상을 향해서는 얼굴을 가려야 했지만, 그들끼리는 마스크 없이도 서로를 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얼굴 만들기』는 성형 수술의 초기 잔혹사를 가감 없이 보여줍니다. 모든 수술이 성공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게다가 항생제도 없던 시절, 수십 차례의 수술을 견뎌야 했던 환자들의 고통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실험대상이 되기를 자처했습니다. 흉측한 괴물로 남느니, 차라리 수술대의 고통을 선택한 겁니다. 그리고 실제로 얼굴 복원을 시작하면 그들의 사기도 올라갔다고 합니다.





길리스는 현대 의학의 정수인 다학제적 협력을 100년 전에 이미 실행했습니다. 특히 치과 의사들의 역할은 절대적이었습니다. 얼굴 재건에서 치과 의사가 맡은 주된 역할은 환자가 비교적 쉽게 먹고 말할 수 있도록 복원하는 것이었고, 그런 점에서 치과 의사는 재건 작업의 전반적인 성공에 꼭 필요했습니다.


길리스가 남긴 유산은 수술 기법 이상입니다. 그는 자신의 모든 수술 과정을 예술가들의 손을 빌려 세밀하게 기록했습니다. 이 초상화들은 환자들의 수술 기록을 처음부터 끝까지 제공했고, 수술 그림들은 다른 이들이 병사 얼굴의 형태와 기능을 복원하는 복잡한 수술을 재연하도록 도왔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퀸스 병원의 미술가들은 재건 의료진의 핵심 인력이 되었습니다.


기존 기법들을 개선하고 새로운 기법을 상상하며 검증하고 표준화하는 일은 길리스의 주도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리고 치밀한 기록 덕분에 성형 수술은 비로소 주술이나 야만적인 실험이 아닌, 현대 의학의 한 분야로 당당히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1차 대전의 포화가 낳은 성형 수술의 처절하고도 아름다운 탄생사이자 인간 존엄에 대한 탐구 보고서 『얼굴 만들기』. 전쟁의 참혹함 속에서 피어난 의학적 진보와 인간 정신의 승리를 한 편의 대서사로 만나봅니다.


외모 지상주의에 매몰된 현대 성형 담론에서 벗어나, 얼굴이 인간의 정체성과 사기에 미치는 근본적인 영향력을 이해하는 시간입니다. 기술적인 수술법을 넘어, 환자의 사회적 삶을 복구하기 위해 고뇌했던 의사의 철학을 통해 진정한 인술(仁術)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명상록 - 삶과 죽음을 고뇌한 어느 철학자 황제의 가장 사적인 기록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지음, 그레고리 헤이스 해제, 정미화 옮김 / 오아시스 / 2026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고귀한 신분을 가졌으나, 동시에 누구보다 치열하게 고립된 내면과 싸워야 했던 한 남자의 기록. 로마 제국의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 오아시스 출판사의 판본은 버지니아 대학교 고전학 교수인 고전 해설의 최고 권위자 그레고리 헤이스의 완역본이라 뜻깊습니다.


고전이라고 하면 먼지 쌓인 서가에 꽂힌 지루한 훈계처럼 느껴지기 마련이지만, 이 책은 다릅니다. 원제 '타 에이스 헤아우톤(ta eis heauton)', 즉 '자기 자신에게'라는 뜻처럼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 쓴 철학서가 아니라, 전쟁터와 역병의 공포 속에서 황제가 스스로를 다잡기 위해 써 내려간 생존 기록입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로마 오현제 시대의 마지막 황제입니다. 스토아학파의 거두 에픽테토스의 영향을 깊게 받은 그는 황제라는 권력의 정점에 있으면서도 늘 죽음과 유한함을 기억하며 자신을 낮추었습니다.


그가 통치하던 시기는 평온하지 않았습니다. 끊임없는 변방의 전쟁, 제국을 휩쓴 역병, 믿었던 이들의 배신과 가족의 죽음까지. 이 모든 혼란 속에서 정신적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매일 밤 촛불 아래에서 자신만의 문장을 기록했습니다.





시중에는 수많은 『명상록』 번역본이 존재합니다. 그레고리 헤이스의 버전이 압도적인 찬사를 받는 이유는 마르쿠스의 문장을 살아있는 목소리로 복원했기 때문입니다. 서문을 쓴 세계적인 자기계발 멘토 라이언 홀리데이 역시 헤이스의 번역이 가진 생동감을 강조합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글은 체계적인 철학서가 아니라 일기입니다. 총 12권으로 구성되었지만, 각 권이 서사적인 연결고리가 있다기보다는 황제가 그때그때 자신을 일깨우기 위해 기록한 주제별 명상 노트에 가깝습니다. 맥락 없이 읽으면 자칫 단편적인 격언 모음집이 될 뿐입니다.


그레고리 헤이스 교수는 마르쿠스의 생애, 당시 로마의 시대적 상황, 그리고 스토아철학의 핵심 교리를 해제를 통해 입체적으로 설명합니다. 황제가 왜 전쟁터에서 이 글을 써야 했는지, 그가 두려워했던 것이 무엇인지를 이해하며 책을 읽게 됩니다.


『명상록』은 긍정의 힘을 무책임하게 강조하지 않습니다. 대신 최악의 상황에서도 너의 태도만큼은 네가 결정할 수 있다는 엄중한 자유를 부여합니다. 누군가 나를 비난해도 "내가 해를 입었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해를 입은 것이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내면의 단단함. 그것이 바로 2000년을 살아남은 이 책의 진정한 가치입니다.


서막을 여는 1권에서 마르쿠스는 자신이 만난 수많은 사람에게서 배운 덕목들을 열거합니다. 단순한 감사의 인사가 아닙니다. 타인의 장점을 내면화함으로써 자신만의 윤리적 자산을 구축하는 과정입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하라."라면서 열거하는 이야기들이 와닿습니다. "오늘 내가 상대하는 사람들은 쓸데없이 참견하고, 고마워할 줄 모르고, 교만하고, 정직하지 못하고, 시기하고, 무뚝뚝할 것이다."라며 2000년 전이나 지금이나 직장 상사나 무례한 이웃 때문에 고통받는 우리들에게 조언합니다.


상대의 무례함을 그들의 무지로 규정함으로써, 내 평온함의 열쇠를 타인에게 넘겨주지 않겠다는 선언을 합니다. 자기 자신을 존중하지 않고 행복을 타인의 시선에 맡기는 행위는 스스로 품위를 떨어뜨리는 일이라고 하면서 말이죠.


제가 『명상록』에서 가장 인간미를 느끼는 부분은 5권에 수록된 문장입니다. 세계 제국의 통치자조차 아침에 이불 속에서 꾸물거리고 싶어 했다는 사실이 묘한 위안을 줍니다.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나기 싫을 때 속으로 이렇게 말하라."로 시작하는 문장은 침대 밖으로 나오기 싫은 당신을 위해 필요합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본능(이불 속의 안온함)과 소명(인간으로서의 직분) 사이의 갈등을 우주적 질서(Logos)의 관점에서 해결합니다. 우리가 사회적 존재로서 기능할 때 비로소 우주의 톱니바퀴와 맞물려 돌아간다고 믿었습니다.





이어서 스토아 철학의 정수인 변화와 수용에 대한 성찰이 이어집니다. "변화가 두려운가? 하지만 변화가 없다면 무엇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인가? 자연의 본질에 더 가까운 것은 무엇이란 말인가? 장작을 태우지 않고 그대로 둔 채 뜨거운 물로 목욕할 수 있는가? 음식의 형태를 바꾸지 않은 채 먹을 수 있는가? 변화 없이 중요한 과정이 일어날 수 있는가?"라며 불확실한 경제적, 사회적 상황을 견뎌내는 강력한 항체로서의 변화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예기치 못한 시련을 대하는 자세에 대해서도 짚어줍니다. "훌륭한 의사는 환자가 열이 났을 때 놀라지 않고, 조타수는 역풍이 불어도 놀라지 않는다."라며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우리에게 삶의 조타수가 되길 조언합니다. 파도를 탓하기보다 키를 어떻게 잡을지에 집중해야 합니다.


황제는 죽음이라는 주제도 응시합니다. 죽음을 존재하지 않음으로의 회귀가 아니라 또 다른 형태의 변화로 정의합니다. 포도가 건포도가 되는 과정에 비극이 없듯, 인간의 노화와 죽음 역시 우주적 순환의 일부라는 논리입니다.


그는 우리에게 "똑바로 서라, 아니면 똑바로 세워질 것이다"라는 짧고 강렬한 문장을 던지며 진정한 자립을 촉구합니다. 스스로 일어설 힘이 없다면, 외부의 힘이 당신을 일으켜 세울 테지만 그때는 당신의 의지가 아니라 타인의 의지에 따라 움직이게 된다고 경고합니다.


투박함 속에 진정성이 있는 『명상록』. 그저 자기 자신을 구원하려 했을 뿐이고, 그 절실함이 시공간을 초월해 우리를 구원하고 있습니다. 인생의 파도가 너무 높게 느껴지나요? "지금 이 순간 네가 가진 것은 현재뿐이며, 그 현재를 어떻게 살아낼지는 온전히 너의 몫이다."라고 말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목소리를 만나보세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