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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올로기 브레인 - 우리 안의 극단주의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레오르 즈미그로드 지음, 김아림 옮김 / 어크로스 / 2025년 4월
평점 :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정치-신경과학이라는 생소한 분야를 개척한 레오르 즈미그로드의 <이데올로기 브레인>. 우리 안의 극단주의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라는 부제가 말해주듯 이 책은 진보와 보수는 어떻게 다른가라는 표면적 질문을 넘어서 인간의 뇌가 이데올로기적 사고에 빠지는 근본 메커니즘을 탐구합니다.
2015년 ISIS에 가담하기 위해 영국을 떠난 소녀들의 뉴스를 보며 "왜 다른 소녀들이 아닌 바로 그 소녀들이 그랬을까?"라는 질문에서 이 연구가 출발합니다. 이념적 극단주의의 뿌리를 신경과학의 렌즈로 들여다보는 시도가 놀랍습니다.
영국의 브렉시트 국민투표부터 2016년 미국 대선 직전에 이르는 격동의 몇 개월 동안 실험을 시작한 덕분에, 인지과학과 신경과학의 방법론을 활용해 이데올로기적 사고의 기원과 결과를 연구한 최초의 과학자 중 한 사람이 된 겁니다.
즈미그로드 박사의 연구는 전통주의자부터 급진 진보주의자까지 정치적 스펙트럼을 아우르며 이들의 뇌가 정보를 처리하는 방식의 차이를 분석했습니다. 그 결과는 우리가 알고 있던 정치적 이념에 대한 통념을 완전히 뒤집습니다.
이데올로기는 그저 신념 체계가 아닙니다. 저자는 이데올로기를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어떻게 돌아가는 것이 바람직한지에 대한 일종의 내러티브로 정의합니다. 우리의 사고와 행동을 제약하는 엄격한 규범을 포함합니다.
우리는 단순히 믿음을 가질 수도 있지만 그 믿음에 사로잡히거나 홀릴 수도 있다. 오늘날에는 강력한 측정 도구를 통해 이데올로기의 경직성이 불러일으킨 결과를 인간의 지각과 인지, 생리, 신경학적 과정에 이르기까지 들여다볼 수 있다.
인간은 크게 두 가지 이유로 이데올로기에 끌린다고 합니다. 첫째, 세상을 일관된 방식으로 이해하고자 하는 욕구. 둘째, 같은 신념을 가진 집단에 소속되고자 하는 갈망입니다. 문제는 이데올로기에 빠져들수록 사고의 경직성이 강화된다는 점입니다.

저자는 이데올로기와 뇌 기능 사이의 놀라운 유사점을 발견했습니다. 뇌는 예측과 의사소통을 통해 작동하는데 이데올로기가 하는 두 가지 핵심 기능과 일치합니다.
이데올로기는 우리 뇌의 불확실성에 대한 혐오와 공동체에 대한 갈망을 동시에 충족시키는 효율적인 시스템인 셈입니다. 하지만 극단적인 형태로 발현될 때 문제가 발생합니다.
흥미로운 실험을 통해 이데올로기적 성향과 인지적 경직성의 관계를 증명합니다. 참가자들에게 카드를 색깔이나 모양 등의 규칙에 따라 분류하도록 한 후, 참가자 모르게 규칙을 변경했습니다.
실험 결과 이데올로기적 사고에 취약한 사람들은 규칙이 바뀌었음에도 이전 규칙을 고수하려는 경향이 강했습니다. 반면 유연한 사고를 가진 사람들은 변화를 인식하고 행동을 빠르게 조정했습니다. 이 실험은 카드 게임의 차원을 넘어 극단적 종교나 정치 이념에 사로잡히는 경향과도 연결됩니다.
저자는 1940년대 심리학자 브룬즈비크가 수백 명의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연구를 소개합니다. 아직 정치적 신념을 형성하지 않은 어린 나이에도 일부 아이들은 인지적으로 더 경직된 특성을 보였으며 사회적 편견과 정신적 경직성 사이의 상관관계를 발견합니다.
저자의 발견 중 하나는 이데올로기적 경직성과 도파민 조절 기제 사이의 연관성입니다. 특히 COMT라는 유전자의 변이가 도파민 농도를 조절하는 방식이 다른 이들과 차이를 보였습니다.
이데올로기적 성향이 순전히 환경적 요인만이 아닌 생물학적 기반을 가질 수 있음을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저자는 "독단주의를 야기하는 단일한 유전자는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강조합니다. 복잡한 유전적 메커니즘과 환경 요인의 상호작용의 결과입니다.
이데올로기의 영향은 생각에 그치지 않고 몸의 반응으로도 나타납니다. 사회적 불평등에 대한 생리적 반응을 측정한 흥미로운 실험은 물론이고, 이데올로기가 우리의 공감 능력과 타인의 고통에 대한 민감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연구를 소개합니다.

신경과학 기술의 발달로 정치적 신념이 뇌의 구조와 기능에 어떻게 반영되는지도 관찰할 수 있습니다. fMRI 연구는 정치적 성향에 따라 뇌의 활성화 패턴이 다르게 나타남을 보여주었습니다.
신경의 양극화 결과를 통해 비슷한 이념을 가진 사람들의 뇌가 유사한 방식으로 정보를 처리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우리가 서로 다른 정치적 견해를 가진 사람들과 소통하는 것이 왜 그토록 어려운지를 설명하는 신경과학적 근거가 됩니다.
<이데올로기 브레인>은 사람들이 점점 더 극단적인 이념에 빠져드는 과정을 나선에 비유합니다. 자기강화적인 순환 과정으로 한번 특정 이념에 빠지면 계속해서 더 극단적인 방향으로 강화될 수 있다는 겁니다.
팬데믹, 전쟁, 자연재해 등의 스트레스와 공포는 극단화 과정을 가속화합니다. 공포와 불안을 느낄 때 우리 뇌는 기존의 신념에 더욱 강하게 집착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위기 상황에서 극단주의가 확산되는 현상을 설명해 줍니다.
저자는 이데올로기적 경직성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법으로 유연한 사고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흥미롭게도 연구 결과는 좌파 성향의 중도파가 인지적으로 가장 유연하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극우와 극좌는 인지적으로 서로 비슷했다고 합니다. 모든 것을 흑백논리로 바라보는 경향은 정치적 스펙트럼의 양 끝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됩니다. 결국 극단적인 이념의 문제가 그 내용보다는 사고의 경직성에 있음을 짚어줍니다.
<이데올로기 브레인>은 이데올로기에 대한 잘못된 신화들을 반박하고 있습니다. 진보 vs. 보수 프레임을 벗어나서 이데올로기가 어째서 인간에게 그렇게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가로 관점을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우리의 유전적, 환경적 영향이 경직된 사고를 유발할 수 있지만 결정론적인 것이 아닙니다. 저자는 우리가 어떤 이념을 얼마나 열정적으로 수용하거나 거부할지 스스로 선택할 수 있음을 역설합니다. 신경과학이 이데올로기적 사고의 메커니즘을 이해함으로써 우리를 그 족쇄에서 해방시키는 도구가 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정치적 양극화가 극심한 오늘날 꼭 읽어야 할 책입니다. 정치적 갈등을 새로운 관점으로 바라보게 합니다. 이데올로기가 단순한 신념 체계일 뿐만 아니라 우리의 감각 지각까지 변화시킬 수 있다는 사실은 우리가 이념적 갈등을 바라보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꿀 필요가 있음을 짚어줍니다.
생각하는 방식의 문제임을 일깨우는 <이데올로기 브레인>. 저자가 이 책에서 말하는 대본에서 벗어나기는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과제입니다. 자신의 생각을 검토하고 새로운 정보에 열린 태도를 유지하며 이분법적 사고를 경계하는 것, 극단주의의 덫에서 벗어나는 길입니다.
신경과학과 사회, 심리, 문화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이데올로기를 설명하며 왜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흥미롭게 펼쳐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