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이 닿지 않는 곳으로 - 보호받지 못한 이들에 대하여
모먼트 지음 / 바른북스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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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법이 외면한 그늘에서 건져 올린 지독하게 아름다운 구원 서사 『빛이 닿지 않는 곳으로』. 모먼트(김수림) 작가의 신작입니다.


범죄나 가해자라는 단어를 들으면 경계심과 거부감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나쁜 짓을 했으면 벌을 받아야지라는 명제는 명확해 보이니까요. 그러데 모먼트 작가는 불편한 질문을 던집니다. 우리가 보는 그 죄의 뒷면에는 어떤 삶의 맥락이 흐르고 있는가를 말입니다.


작가는 법의 테두리 밖으로 밀려난 보호받지 못한 이들의 목소리를 복원해냅니다. 지안이라는 인물의 시선을 따라가며 애써 외면해왔던 진실의 문을 열어보입니다.


지안의 책상 위, 작은 나무 상자 속에는 목걸이가 들어있습니다. 빛바랜 끈에는 은주의 체온이 엉켜 있고, 지안이 그 목걸이를 손에 쥐는 순간 잊히지 않는 친구의 온기와 목소리, 그리고 슬픔이 해일처럼 밀려옵니다. 


지안에게 이 목걸이는 '그날'에 멈춰버린 고장 난 시계와 같습니다. 열네 살의 봄, 평온을 깨뜨린 은주의 전화 한 통. "지안아, 엄마가 피를 흘려... 나 너무 무서워." 뒤이어 들려온 경찰차의 사이렌 소리는 비극의 시작이었습니다.


살인자의 딸이라는 말이 아이들의 입 위에 얼마나 가볍게 오르내리는지, 죄는 한 사람이 지었지만 그 벌은 온 가족이 나누어 받게 된다는 비정한 현실을 마주합니다. 작가는 이 멈춰버린 시계를 다시 돌리려 합니다. 왜 이들의 시계가 고장 날 수밖에 없었는지 구조적 결함을 파헤치는 시선이 날카롭습니다.


지안의 기억 속 은주는 언제나 중심에서 비껴나 홀로 서 있었습니다. 사람을 대하는 태도는 전염됩니다. 누군가가 은주에게 돌을 던지면, 다른 이들은 그 돌이 얼마나 뾰족한지도 모른 채 습관적으로 돌을 던지기 시작합니다.


은주가 겪어야 했던 연좌제는 구시대적 유물이 아닌, 현재 진행형인 사회적 타살이었습니다. 타인에게 던지는 우리의 무심한 시선이 때로는 가장 날카로운 흉기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가해자와 피해자를 흑백논리로 이분합니다. 사회복지학을 공부한 지안이 상담을 하며 마주한 혁의 이야기는 그 경계가 얼마나 허망하게 무너질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세상의 사법 기능은 법정 밖에서 더욱 잔혹하게 작동했습니다. 자극적인 프레임은 언론과 유튜브 플랫폼을 타고 찬반 토론의 먹잇감이 되었습니다.





혁은 아내를 지켰다는 생각으로 당당해지려 애썼지만, 결국 회사는 퇴사를 권했고, 범죄자로만 남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그가 지키려 했던 생명의 무게보다 죽였다는 결과만을 기억했습니다. 한 인간의 일상을 파괴하는 거대한 폭력의 관점에서 재해석하게 만듭니다.


한국과 일본에만 존재한다는 사실적시 명예훼손에 대한 이야기도 등장합니다. 피해자는 침묵을 강요받고, 가해자는 법의 테두리 안에서 보호받는 이 지독한 부조리. 우리 사회가 법적 정의라는 이름으로 실제 피해자의 입을 어떻게 틀어막고 있는지, 그리고 그 낙인이 한 개인의 삶을 어떻게 망가뜨리는지 보여줍니다.


가정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벌어지는 비극은 사랑이나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은폐되기도 합니다. 전교 2등이라는 성적표가 놓여 있었지만, 민찬에게 그 종이는 성취가 아닌 족쇄였습니다. 더는 못 하겠다는 절규와 함께 사건이 터집니다.


소년은 가해자가 되었습니다. 모성이라는 숭고한 가치가 성적 지상주의와 소유욕에 오염될 때, 한 아이의 영혼이 어떻게 파괴되고 결국 범죄라는 극단적 선택으로 내몰리는지를 뼈아프게 짚어줍니다.





작가는 죄책이라는 감정이 개인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더 나은 인간으로 나아가는 동력이 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응징 위주의 사법 정의를 넘어선 회복적 정의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됩니다.


지안은 사회복지가 불평등한 구조 속에서 인간의 존엄을 제도 언어로 번역하는 실천임을 깨닫습니다. 학교의 상담 기록, 경찰의 녹음 자료, 감사원의 조사서... 이 무미건조해 보이는 문서들은 지안의 손을 거쳐 한 인간의 삶과 감정을 대변하는 복지 기록으로 재탄생합니다.


이 소설은 우리 모두가 언제든 사회적 안전망 밖으로 밀려날 수 있는 잠재적 경계인이라는 것을 일깨워 줍니다. 작가가 들려주는 서사가 남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 모두의 이야기라고 말이죠.


젊은 작가들이 흔히 택하는 자기 고백의 내면 응시 대신, 사회의 가장 어두운 구석을 향해 시선을 돌린 모먼트 작가의 『빛이 닿지 않는 곳으로』. 공감의 확장을 보여준 소설입니다. 그들의 삶이 왜 굴절되었는지를 추적하는 과정은 한 편의 심리 스릴러보다 긴장감 넘치면서도 가슴 먹먹한 깨달음을 안겨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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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수학의 세계 지도
고가 마사키 지음, 송경원 옮김 / 생각의집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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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수학 교과서 너머, 30개의 문으로 펼쳐지는 현대 수학의 전체 지형도 『아름다운 수학의 세계 지도』. 고등학교 시절에는 미적분, 기하, 확률을 따로따로 배웠고, 대학에 가면 선형대수, 위상수학, 해석학이라는 낯선 이름들이 쏟아집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의 구조 안에서 이어진다는 감각을 얻는 순간은 의외로 드뭅니다. 우리는 나무를 보느라 숲을 보지 못하는 학습에 익숙해져 왔기 때문입니다.


『아름다운 수학의 세계 지도』는 숲을 보여주는 책입니다. 저자 고가 마사키는 정수론 전공의 젊은 수학자이자 현직 교사이며, 유튜브 채널을 통해 수학을 설명하는 교육자이기도 합니다. 이해하기 쉬움보다 엄밀함을 우선으로 삼는 그의 가치관은 이 책의 태도를 정확히 드러냅니다.


쉬운 비유로 흐릿하게 설명하는 대신, 개념의 뼈대를 탄탄히 세웁니다. 이 책을 접하고 나니 수학이 그저 잘 풀기 위한 기술이 아니라 구조적으로 파악해야 할 세계로 다가옵니다.





수학은 개별 공식을 암기하는 학문이 아니라, 개념들이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이해하는 학문이라고 말합니다. 문제 풀이 중심의 학습은 속도를 키우지만, 구조 감각을 키우지는 못합니다. 『아름다운 수학의 세계 지도』는 왜 미분이 선형대수와 이어지는가, 왜 위상수학이 해석학의 기초가 되는가를 배웁니다.


수학은 대수학(구조와 연산), 기하학(공간과 형태), 해석학(변화와 극한), 수학기초론(논리와 존재), 응용수학(계산과 구현)으로 나뉜다고 합니다. 이 다섯 분야는 끊임없이 교차합니다. 이 책은 교차 지점을 시각적으로 그려볼 수 있게 도와줍니다.


현대 수학의 뼈대인 대수학, 삼각형의 넓이를 구하는 학문이라는 고정관념을 깨뜨리는 기하학, 공식만 외웠던 학창 시절의 미적분 세계를 넘어서는 해석학 등 진짜 수학의 세계를 엿보는 시간입니다.





수학기초론 파트는 수포자인 저도 흥미가 돋았습니다. 수학의 절대적 진리성에 의문을 던진 거장들이 소개됩니다. 20세기 지성사의 대사건인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를 다루는 부분은 철학적 깊이마저 느껴집니다. 불완전함이야말로 수학이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논리와 집합론, 범주론으로 확장되며 스스로의 한계를 극복하려 노력하는 원동력이 되었음을 역설합니다.


마지막 장은 추상적인 수학이 어떻게 현실의 기술로 응용되는지 다룹니다. 이론 컴퓨터 과학, 수치해석, 통계학, 암호 이론은 수학이 사회로 나아가는 통로입니다. 특히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스마트폰 보안의 핵심인 RSA 암호에 대한 설명도 흥미진진합니다. 공개키와 비밀키라는 보안 알고리즘으로 진화하는 과정은 수학이 상아탑에 갇힌 학문이 아니라는 걸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고등학교 수학과 현대 수학 사이의 간극을 메워주는 『아름다운 수학의 세계 지도』. 수학적 모험을 해보고 싶다면, 거대한 논리의 지도를 스스로 그려나가는 과정을 거치며 묘한 쾌감을 맛볼 수 있게 잘 구성된 책입니다. 수학의 전체 구조를 한 번도 조망해 본 적 없는 학생, 교양 수준에서 수학을 다시 이해하고 싶은 성인에게 사고의 틀을 정리해 주는 안내서 역할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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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관은 나의 힘 - 유리멘탈도, 의지박약도 움직이게 하는 행동과학의 결정판
홋타 슈고 지음, 정지영 옮김 / 비즈니스북스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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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의지라는 이름의 가스라이팅에서 벗어나라, 뇌를 해킹하는 112가지 행동 설계도. 홋타 슈고의 『습관은 나의 힘』. 새해 첫날의 호기로운 다짐이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아 흐지부지될 때, 우리는 습관적으로 자책합니다. 나는 의지가 약해, 유리멘탈이라 어쩔 수 없어 하면서요.


메이지대학교에서 가장 듣고 싶은 수업을 하는 교수로 정평이 난 홋타 슈고 교수는 『습관은 나의 힘』을 통해 일, 공부, 건강, 일상 속 행동과학의 정수를 보여줍니다. 우리 뇌는 본래 변화를 극도로 싫어하고 현상 유지를 선호하도록 프로그래밍되어 있기에 습관을 만들 수 있는 세 가지 원리를 파악해야 한다고 말이죠.


의지라는 소모적인 자원에 기대기보다, 뇌를 속여서 움직이게 만드는 세 가지 원칙입니다. 몸을 먼저 움직일 것, 기존 행동에 붙일 것, 환경을 재설계할 것. 112가지의 정교한 기술을 통해 우리의 일상을 과학적으로 커스터마이징 하는 시간입니다.


업무 효율화의 핵심은 단순히 열심히 하는 것이 아니라, 뇌가 저항 없이 일에 뛰어들게 만드는 루틴의 설계에 있습니다. 자이가르닉 효과를 역이용하라고 조언합니다. 우리는 일을 깔끔하게 끝내야 개운하다고 느끼지만, 뇌과학적으로는 오히려 찝찝함이 다음 행동의 강력한 동력이 됩니다.





무라카미 하루키 작가는 하루에 집필 시간을 5시간으로 정했다면 딱 5시간만 글을 쓰고, 그 시간이 넘어가면 아무리 쓰고 싶은 것이 있어도 중단하고 다음 날로 돌린다고 합니다. 오히려 다음날에 아이디어가 더 확장되고, 사고가 더 깊어진다고 말이죠. 일부러 끝내기 좋지 않은 애매한 지점에서 멈추면 신경이 쓰여 이런저런 생각이 꼬리를 물고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른다는 겁니다.


이외에도 업무 중 집중력을 유지하기 위한 전략들이 가득합니다. 멍때리기는 뇌의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를 활성화해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조립하는 필수적인 과정임을 일깨워줍니다. 커피를 마신 직후 짧은 잠을 자는 커피 냅(Coffee Nap)은 카페인이 혈류에 도달하는 시간과 뇌의 피로 물질이 씻겨나가는 시간을 절묘하게 결합한 과학적 휴식법입니다.


공부 습관 파트에서 홋타 슈고 교수는 언어학자이자 교육자로서의 통찰을 발휘합니다. 공부 효율은 단순히 머리가 좋은지의 문제가 아니라, 인풋과 아웃풋의 환경을 어떻게 조성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합니다.


집중력이 흐트러질 때 우리가 흔히 하는 낙서가 사실은 뇌를 돕는 행위라는 점도 흥미롭습니다. 낙서는 매우 작은 인지적 부하만을 주면서, 주의가 흐트러지는 것을 막아 집중력을 향상시킨다고 합니다. 낙서가 비용 대비 효과가 좋은 뇌의 집중력 사용법이라는 겁니다.


저자는 분산 학습과 교차 학습을 통해 뇌에 적절한 자극을 주어야 장기 기억으로 전이된다는 점을 과학적 근거로 보여줍니다. 배운 내용을 타인에게 가르치는 선생님 놀이는 가장 강력한 메타인지 전략임을 짚어주기도 합니다.


우리가 왜 정크푸드의 유혹에 저항하지 못하는지를 뇌의 에너지 소모 관점에서 분석합니다. 인류는 효율적으로 칼로리를 섭취하기 위해 본능적으로 고칼로리 음식을 찾도록 되어 있다고 합니다. 본래 참아야 하는 정크푸드를 먹는 건 뇌가 충분한 리프레시를 취하지 못하고 있다는 신호이기도 하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크푸드가 먹고 싶어지면 선잠을 자는 등 의식적으로 휴식을 취하도록 해야 한다고 합니다. 또 어차피 먹는 것이라면 피곤하기 때문이라며 뇌를 탓할 게 아니라 좋아서 먹는 거라고 여기자고 조언합니다. 자기결정은 행복도를 올리는 효과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마 태핑(Forehead Tapping)을 통해 식욕을 억제하거나, 작은 접시를 사용하여 시각적 포만감을 유도하는 행동경제학적 기법들이 소개됩니다. 슬로 조깅처럼 일상에서 즉각 실천할 수 있는 건강 습관들도 도움됩니다.


마음이 힘든 사람에게 "힘내"라는 말은 독이 될 수 있습니다. 홋타 슈고 교수는 마음을 바꾸려 애쓰지 말고, 몸의 움직임을 통해 뇌의 해석을 바꾸라고 권합니다. 리어프레이즐(Reappraisal, 재평가)의 핵심입니다.


뇌는 몸에서 보내는 다양한 신호(심박이나 근육의 긴장, 호흡의 속도 등)에 의지해 ‘지금 나는 어떤 상태인가?’를 판단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판단에 따라 몸이 최적의 상태가 되도록 지령을 내립니다. 리어프레이즐은 뇌가 몸 상태를 어떻게 해석하는지 의도적으로 바꾸는 겁니다.


사람들 앞에 나가기 직전에 심장이 두근거리고 손이 떨릴 때 이를 뇌가 불안이라고 해석하면 몸은 잔뜩 움츠러들고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게 됩니다. 하지만 ‘나는 설렌다’라고 해석을 바꾸면 뇌는 흥분해서 에너지가 가득한 상태로 인식해 몸을 효율적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조절해 준다고 합니다.





불안할 때 등을 곧게 펴는 것, 우울할 때 깡충깡충 뛰는 것, 손을 씻으며 후회를 씻어내는 행위 등은 뇌의 인지 구조를 활용한 과학적 처방입니다. 자신을 3인칭으로 부르며 객관화하는 기술이나, 감사 일기를 통해 긍정적 회로를 강화하는 방법 등을 통해 단단한 자아를 만드는 루틴을 소개합니다.


우리가 거주하는 환경과 사용하는 언어가 인생에 미치는 거시적인 영향력에 대한 이야기도 흥미롭습니다. 특별한 결심 없이도 좋은 행동을 유발하는 넛지(Nudge)의 활용법이 핵심입니다.


집에서 집중해서 작업을 해야 할 때 스마트폰을 아예 다른 방에 두어 보라고 합니다. 물리적인 거리만으로도 주의가 분산되는 빈도를 크게 줄일 수 있습니다. 스마트폰 홀더 옆에 저금통을 두고, 스마트폰을 거기 둘 때마다 500원을 저금하는 식의 보상 체계를 더하면 효과는 더욱 커집니다.


저자는 매주 한 번의 삼림욕이나 반려동물과의 교감이 주는 정서적 이점뿐만 아니라, 스스로 결정하는 힘이 소득이나 학력보다 행복감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를 인용합니다. 불편함 속에서도 즐거움을 찾는 마음은 결국 우리가 어떤 습관을 선택하든 그 과정을 즐길 수 있게 만드는 마지막 퍼즐 조각입니다.


『습관은 나의 힘』은 어제보다 나은 나를 만드는 가장 쉬운 과학을 보여줍니다. 너는 충분히 애쓰고 있으니, 이제는 좀 더 스마트하게 시스템을 활용해 보렴 하며 다독여줍니다. 112가지의 기술 중 마음을 끄는 단 한 가지만이라도 오늘 바로 시작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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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 구독 사회 - 약과 영양제로 몸을 튜닝하는 시대
정재훈 지음 / 에피케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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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매일 아침 습관적으로 삼키는 알약들에 대한 도발적인 보고서, 정재훈 약사의 『건강 구독 사회』. 오운완(오늘 운동 완료)이나 영양제 루틴 뒤에 숨겨진 거대한 마케팅의 실체와 심리적 기제를 해부합니다.


임상 시험을 거쳐 부작용이 낱낱이 기록된 '약'은 무서워하면서, 효능이 모호하고 검증되지 않은 '영양제'는 천연이라는 단어에 현혹되어 결제합니다. 병원에 가면 의사는 원인이 복합적이니 검사를 해보자며 답답한 소리를 하지만, 1분짜리 숏폼 영상 속 전문가들은 "이거 하나면 끝납니다"라고 말합니다.


유튜브에서 오메가3 영상을 한 번 클릭하면, 알고리즘은 피드를 영양제와 건강 불안으로 채워 넣습니다. "아직도 마그네슘 안 드세요?", "이걸 모르면 당신의 장은 썩고 있습니다." 공포와 결핍의 서사 위에 판매가 이루어지는 구조입니다. 우리는 과학적 진실보다 매혹적인 서사를 선택합니다.


저자는 우리가 1조 원의 시장을 형성하며 비타민을 사는 행위가 실제 영양 결핍을 채우기 위함이 아니라,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을 잠재우는 심리적 면죄부를 구매하는 것이라고 꼬집습니다. 건강을 관리하고 있는지, 불안을 구독하고 있는지 묻습니다. 무엇을 먹어야 건강해지는가라는 질문보다, 왜 우리는 특정한 것을 건강하다고 믿게 되었는가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최근 전 세계를 강타한 위고비, 마운자로 같은 GLP-1 계열 비만 치료제에 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제 약은 질병을 고치는 도구를 넘어, 내 몸을 최적화하는 해킹 툴이 되었습니다. 마이너스(질병)를 제로(정상)로 만드는 것이 과거의 의학이었다면, 이제는 제로를 플러스로 만드는 향상의 시대가 도래한 겁니다.


GLP-1 약물은 단순 체중 감량을 넘어 전신의 대사 시스템에 영향을 미친다고 합니다. 이 약물들이 대사 질환자들에게는 혁명적인 생명줄이 될 수 있지만, 오젬픽 페이스(급격한 다이어트로 노화해 보이는 얼굴)를 감수하면서까지 미용 목적으로 매달리는 현상에 대해서는 경고를 보냅니다.


특히 아이들의 키를 키우기 위한 성장호르몬 주사 열풍 역시 부모의 불안이 과학의 탈을 쓰고 아이의 몸을 튜닝하는 현상임을 짚어줍니다.


필수라고 믿었던 영양제들의 민낯도 드러납니다. 비타민, 오메가3, 유산균 등이 어떻게 관리하는 삶의 훈장이 되었는지 분석합니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도덕적 허가 효과(Moral Licensing Effect)처럼요. 영양제 한 알이 주는 안도감이 오히려 건강에 해로운 생활 습관을 유지하게 만드는 역설을 낳는 겁니다.


특히 단백질 쉐이크에 집착하는 현대인들에게 던지는 한 방이 묵직합니다. 근육은 쉐이크 통이 아니라 스쿼트 랙 위에서 만들어진다는 사실, 즉 행위의 본질을 생략한 채 성분만 섭취하려는 태도가 우리를 건강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든다는 점을 꼬집습니다.


평소 알러지 관리를 하던 아이에게 장 건강, 면역력, 피부 개선까지 거의 만능에 가까운 장 유산균 영양제를 먹이니 오히려 부작용으로 알러지가 폭발했습니다. 우리 아이 사례를 겪으며 몸에 좋다는 말이 모든 사람에게 항상 좋다는 뜻은 아니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여러 가지 영양제를 바꾸며 내 몸을 혹사하지 말고, 변수를 통제하며 신중하게 접근하라는 약리학적 충고가 그래서 더 깊게 와닿았습니다.





마늘 홍삼, 강황, 커피, 초콜릿... 우리가 식품으로 즐기던 것들이 어느덧 기능성이라는 옷을 입고 약처럼 소비됩니다. 건강기능식품이라는 카테고리는 참 흥미로운 발명품입니다. 식품도 아니고 약도 아닌 이 회색지대는 약처럼 팔리기 위해 충분히 의학적 언어를 차용하면서도 약으로서의 엄격한 임상 기준은 요구받지 않는 구조입니다.


저자는 적당히라는 말이 가장 과학적으로 실천하기 어려운 지침임을 인정하면서도, 음식을 성분 단위로 쪼개어 분석하는 영양주의의 덫에 빠지지 말 것을 당부합니다. 마늘은 마늘일 뿐, 그것이 혈압약의 완벽한 대체재가 될 수는 없으니까요.


저자는 푸드라이터의 시선으로 식탁 위에서 벌어지는 기묘한 약리학을 추적합니다. 영양제가 효소라는 일꾼을 붙잡아두면 약은 분해되지 못하고 몸속을 떠돈다고 합니다. 우리가 간과하는 지점입니다. 몸에 좋다는 영양제를 한 움큼 먹는 행위가 정작 질병을 고치기 위해 먹는 처방약의 효과를 지워버리거나, 위험한 수준으로 증폭시킬 수 있다는 경고입니다.


오메가3가 혈액응고 억제제와 함께 복용될 때 생길 수 있는 문제, 비타민 K와 항응고제의 상호작용 등 영양제는 다른 약과 충돌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실제로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지 구체적인 사례로 보여줍니다.





마지막으로 AI와 웨어러블 기기가 지배하는 미래의 건강 관리 시스템을 조명합니다. 연속 혈당 측정기를 차고 실시간으로 바뀌는 데이터에 일희일비하는 현대인들은 과연 더 자유로워졌을까요?


데이터가 주는 확신이 때로는 우리 몸에 대한 주권을 타인이나 알고리즘에게 넘겨주는 행위가 될 수 있음을 우려합니다. 진정한 맞춤 영양이란 기계가 뱉어내는 수치가 아니라, 내 몸의 신호에 귀를 기울이고 지속 가능한 생활 방식을 스스로 구축해 나가는 철학적 과정이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정재훈 약사의 『건강 구독 사회』는 단순히 영양제 먹지 마라는 식의 이분법적인 책이 아닙니다.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우리가 왜 그토록 영양제와 신약에 열광하는지 그 심연의 불안을 위로하는 책에 가깝습니다. 건강은 구독 서비스처럼 돈을 지불한다고 해서 배송되는 결과물이 아니라, 매일의 식사와 움직임으로 빚어내는 삶의 과정 그 자체임을 일깨워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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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년 샘터 잊지 못할 명문장 - 평범한 사람들의 행복 필사
월간 <샘터> 지음 / 샘터사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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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1970년 4월 창간 이후 반세기가 넘는 세월 동안 한국 사회의 일상과 마음의 풍경을 기록해 온 국내 최장수 문화교양지 월간 〈샘터〉. 명사들의 성찰 깊은 산문과 이름 없는 이웃들의 소박한 고백이 같은 지면에 실리며,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사회의 높낮이 없는 자화상을 완성해 왔습니다.


고단한 현실 속에서도 용기와 온정을 잃지 않으려는 목소리, 실패와 상처를 숨기지 않는 진솔한 이야기는 〈샘터〉를 공동체의 기억 창고로 자리매김하게 했습니다. 비록 올해부터 휴간이라는 쉼표를 찍었지만, 축적된 삶의 언어와 가치들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56년 샘터 잊지 못할 명문장』은 오랜 기록 속에서 명문장 100편을 엄선해 엮은 필사집입니다. 한 시대를 관통한 생활의 지혜와 인간적인 온기를 다시 건네는 고마운 선물 같은 책입니다. 몇몇 문장은 전문 수필이 함께 실려 있어, 문장의 출처를 맥락 속에서 다시 읽게 합니다.


총 5개의 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법정 스님부터 주부까지, 유명 작가와 이웃의 문장이 동등하게 배치되어 있습니다. 〈샘터〉가 지켜온 원칙의 연장선에 있습니다. 글의 가치가 지위나 직업이 아니라 삶의 진실성에서 비롯된다는 편집 철학이 이 책 전반을 관통합니다. 삶의 정수를 꿰뚫는 100개의 문장. 눈으로 읽는 것에 그치지 않고 노트 페이지에 직접 손글씨를 채워 넣을 수 있습니다.


<샘터>에서 건져올린 관계의 본질은 입체적입니다. 박완서 작가는 벽을 허무는 건 대화라고 말하며 진실함의 힘을 강조합니다. 대화는 기술이 아니라 정직의 영역이라는 걸 일깨워줍니다.





법정 스님은 관계의 불협화음을 타인의 탓으로 돌리기 전에, 내가 먼저 보낸 마음의 주파수가 무엇이었는지 점검하라고 권합니다. 내가 보낸 미움이 메아리가 되어 돌아올 때, 우리는 비로소 나라는 존재의 실체를 깨닫게 됩니다. 복잡한 인간관계 속에서 피로감을 느끼는 세대에게 관계의 주도권이 외부가 아닌 자신의 내면에 있다는 걸 짚어줍니다.


행복은 성취의 결과물이 아니라 사물을 바라보는 관점의 문제라는 사실을 명사들의 목소리를 통해 보여줍니다. 홍윤숙 시인은 투명한 삶의 태도에 대해 이야기 합니다. "진실로 모든 사람이 나날을 고해하듯 살아간다면, 때 묻은 마음을 목욕하듯 씻으며 살아간다면 이 세상 온갖 물상을 있는 그대로 유리알처럼 비쳐볼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이죠. 고해라는 표현은 종교적 함의를 넘어, 자신의 오류를 인정하고 매일 영혼을 세척하는 성실한 노동을 의미합니다.


독립운동가 나혜국의 문장도 와닿습니다. 자신의 주름살을 고생의 흔적이 아닌 내 훈장으로 바라봅니다. 빚지지 않고, 남의 원성 듣지 않으며 자신의 꿈을 소박하게 일궈온 세월의 흔적이 주름이라면, 그것이야말로 가장 명예로운 장식이라고 합니다.





삶의 태도에 대한 이야기를 만나봅니다.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해답을 기술적인 방법론이 아닌 본질적인 지혜에서 찾습니다. 신달자 시인의 매듭에 대한 글은 실패를 대하는 우리의 자세를 교정해줍니다. 매듭을 내일의 문턱을 오르는 신뢰의 계단이라고 말합니다. 살다 보면 겪게 되는 무수한 단절과 좌절을 성장의 발판으로 재해석합니다. 효율과 성과를 강요받는 이들에게 실패해도 괜찮다는 위로를 건넵니다.


고 안성기 배우의 "좋은 사람이 좋은 연기를 하고 좋은 영화를 만들 수 있겠지"라는 고백은 직업 윤리와 인격을 연결합니다. 경쟁 사회의 규칙을 다시금 되돌아보게 합니다.


<샘터>에서 가져온 사랑은 감상적인 유희가 아니라 존재의 완성입니다. "밤은 다른 과실처럼 씨가 따로 있지 않다. 먹히는 살이 곧 씨앗이다. 당신의 사랑을 한 그루 나무로 키우려 한다면 먹을 것이 아니라 아껴서 심어야 하느니."라고 말합니다. 사랑을 소비하지 말고 심으라고 말합니다. 사랑은 즉각적인 만족이 아니라, 미래를 위한 선택입니다.


장영희 교수의 문장도 매력적입니다. 사랑을 받는다는 것이 우리가 진짜가 될 수 있는 귀중한 기회라고 말합니다. 신체적 장애를 극복하고 희망의 문학을 전파했던 그의 삶이 녹아든 이 문장은, 오만한 마음을 겸손하게 낮출 때 비로소 인간은 완성된다는 사실을 일깨워줍니다. 사랑은 타인을 소유하는 기술이 아니라, 나 자신의 모난 구석을 동그랗게 깎아내는 자기 수련의 과정임을 들려줍니다.





마지막으로 시끄러운 세상에서 벗어나 정적 속에서 자아를 만나는 시간입니다. 최인호 작가의 조용한 사람에 대한 동경은 우리가 지향해야 할 성숙의 끝을 보여줍니다. 단순히 침묵하는 노인이 아니라, 고요함을 간직하고 있는 바위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고백합니다. 생의 막바지에 도달하고자 했던 지점이 조용한 바위라니요. 소음 가득한 SNS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침묵의 밀도를 다시금 생각하게 합니다.


671권. 1970년 4월 창간호부터 2026년 1월호까지 〈샘터〉가 세상에 내놓은 잡지의 총수입니다. 지난 56년간 이 잡지를 통해 독자에게 닿은 문장의 수는 가히 가늠하기 어렵습니다. 그 방대한 유산 앞에서 편집부는 수만 개의 문장을 검토해 100개를 추려냈습니다.


《56년 샘터 잊지 못할 명문장》은 읽고, 쓰고, 돌아보는 삼중의 리듬으로 문장을 체화할 수 있게 합니다. 쓰지 않으면 완성되지 않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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