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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희의 영감 - 포토그래퍼 조선희 사진 에세이
조선희 지음 / 민음인 / 2013년 12월
평점 :
당신에게도 영감靈感의 나비가 날아들 것이다
그동안 작업했던 조선희의 작품을 보면 놀랄 노자다. 써니, 건축학개론, 감시자들, 숨바꼭질, 관상, 변호인... 등 세간의 관심을 듬뿍 받았던 영화의 멋진 포스터가 그녀의 셔터로 만들어졌고, 톱스타들의 앨범 재킷이나 광고, 패션 사진 등 차라리 조선희의 손이 닿지 않은 걸 찾는 게 더 빠를 정도로 업계에서 인정을 받는 사진작가다.
톱스타들이 가장 찍히고 싶어하는 포토그래퍼 조선희의 사진 에세이 《조선희의 영감》에는 그녀의 사진 철학, 영감을 창조로 끌어내는 법이 담겨있다.
『 사진은 멈춘 걸 찍는 것이 아니다. 다만 멈춘 것처럼 찍히는 것이 사진이다. 』 - p194
글을 쓰는 작가에게 필요한 글감도 일상에서 시작하듯 조선희 사진작가 영감의 근원은 소소한 일상에서 비롯된다.
우리 주변의 수많은 것들로부터, 경험할 수 있는 모든 것들로부터 영감을 받는다. 하지만 같은 걸 보더라도 누군가에겐 무의미하게 스쳐 지나갈 뿐이듯 영감을 제대로 받기 위해서는 '자신을 열어 놓아야' 한다. 어떤 순간에 불현듯 불쑥 찾아오는 의도나 의지와 상관없는 그러나 특별한 노력이 필요한, 마음을 내버려 두어서는 절대로 떠오르지 않는 것이 영감이다.
영감 혹은 모티브를 받아도 그것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이 아니다. 오마주, 패러디와는 분명 다른 것이다. 리터칭이라는 디지털 시대에는 더더욱 무엇을 위해 그렇게 찍었는지 그 의도 혹은 의미를 분명히 해야 한다. 조선희만의 색을 찾기 위한 노력이 엿보인다.
두텁고 거친 질감을 좋아하는 조선희 사진작가. 그녀의 사진을 보면 고스란히 엿볼 수 있다. 고흐의 거친 붓 터치감에 끌리고, 관심 없던 꽃도 두터운 질감의 꽃을 보며 새로운 시각을 가지기도 했다 한다.
『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이제 더이상 존재하는 것을 정확히 재현하는 것만 의미하지 않음을 알지 않는가? 그럼에도 우린 카메라의 기본에 대한 함정에 빠져 있다. 』 - p66
『 사진을 찍을 때 우리가 본 것을 찍은 듯해도 실은 오감을 통해 느낀 것을 마치 본 것을 찍은 양 착각하고 있었음을 깨닫는다. 』 - p71
『 낯섦은 사진 찍는 이를 관찰자로 만든다. 그 관찰자는 낯섦에 용기를 얻어 셔터를 누르게 된다. 』 - p89
『 일상 속에 있었다면 아프고 귀찮아서 혹은 카메라가 고장 날까
보지도 보이지도 않았을, 느끼지도 느껴지지도 않았을 것들이 다르게 다가온다.
일상을 여행처럼 살 수는 없을까?
그러면 나의 오감이 늘 깨어 있어
영감으로 가득 차 있을 텐데...... 』 - p109
사진을 한지 23년 차인 프로사진작가로서의 반성도 덧붙인다. 아무 목적 없이 사진을 찍어 본 것이 언제였더라며 사진이 삶 자체가 되기를, 도구가 되지 않길 바라는 그녀의 바람은 우연의 미학, 찰나의 예술인 사진의 본질을 다시금 일깨워주고 있다.
『 책에 몰입하는 동안 온갖 고민과 욕심과 번뇌를 버리게 되니 '비움'이고
읽으며 온갖 상상력을 발휘하며 그 속에서 나를 찾게 되니 '채움'이 아닌가? 』 - p148
생각하기를 멈춘 사람은 그 어느 것으로부터도 영감을 받을 수 없다고 하고, 각자의 영감이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며 더 크고 깊은 영감이 자라나도록 소통의 중요성도 강조하면서 사진 찍기에 관한 그녀만의 철학을 드러내고 있다.
일상을 좀 더 꼭꼭 씹으며 살고 싶다는 조선희 사진작가.
아이디어를 이끌어내는 창의력, 창조성을 높이는 노하우를 알려주는 그 어떤 책보다도 이 책 한 권이 주는 영감이 더 많았다. 그녀의 글과 사진을 통해 나의 시간을 뒤돌아본다. 로맨틱하면서도 영혼이 녹아있는 사진과 한 구절 한 구절 놓칠만한 문장이 없을 정도로 공감되는 그녀의 감성 깊은 글을 읽다 보면, 단지 사진의 영감을 얻기 위한 노하우를 원하는 이가 아니더라도 일상 속에서 혹은 일상을 벗어난 곳에서 만나는 감성을 오감으로 느끼게 해 주는 영감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조선희의 영감》을 통해 내 삶의 시선을 어디에 둬야 할지 영감을 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