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보다 낯선 오늘의 젊은 작가 4
이장욱 지음 / 민음사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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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천국보다 낯선》은 책을 읽으면서 쓰는 독서 노트에는 3페이지 분량으로 빼곡히 적었으면서도 그걸 리뷰로 다듬어 쓰기 까다로운 소설이었다. 공포물이 아님에도 으스스하고 기괴한 일들 속에 무심한 듯 묘사되는 단어 하나하나의 느낌이 참으로 묘하다. 명확플롯이 없음에도 책을 덮은 후 찜찜함이라고 말하기엔 뭣한 그 묘한 기운에 머릿속에 물음표가 자꾸 생기게 만드는 소설이다.

 

김, 최, 정으로 불리는 세 친구가 교통사고로 사망한 친구 A의 장례식장을 찾아가는 2월 마지막 날의 밤이 이 소설의 배경이다. 각자의 방식으로 떨어지는 빗방울, 서로 다른 자세로, 다른 표정으로, 다른 각도로 우산을 펴드는』 풍경은 소설 《천국보다 낯선》의 인물에 잘 비유되고 있다. 

 

어중간하고 타협적인 성격인 전 애널리스트인 김, 그저 시간을 견디기 위해 글을 쓰는 여자인 의 아내 정, 시니컬한 사회학과 강사 최. 이렇게 세 명의 친구가 A의 장례식장으로 함께 떠나는 과정, 그들과 함께 떠나지 못했던 홈리스 상태인 염의 이야기까지. 이들은 지난 시절의 A를 생각하고 저마다 자기 시선에서 생각한다. 같은 것을 이야기하는데도 조금씩 서로 다르고 어긋나 있다. 옛 기억뿐만 아니라 현재진행형인 상황에서도 그렇다. 서로 다른 이야기들이 한 면씩 모여 하나의 방을 이루는듯하다.

 

『 재구성된 과거. 기억과 감정이 조작한 과거. 하지만 그건 우리가 현재의 자신을 지탱하는 가난한 방편이기도 하다. - p65

 

A의 교통사고가 어떻게 났는지 아무도 모르는 상황에서 세 친구 각자의 마지막 기억 속에는 A가 죽음을 암시하는듯한 말들을 기억해낸다. 일기예보와 상반된 날씨, 장례식장으로 향하는 길에 목격한 교통사고의 의문, 내비게이션이 잡지 못하는 도로, 어느쯤엔가 서해에 도착한 그들... 그 과정에서 죽은 A로부터 온 문자 메시지들. 읽는 내내 묘하고 불길한 기운이 스멀스멀 느껴진다.

김, 정, 최, 염이 함께 모여서 봤던 A가 만들었던 영화에 대한 기억이 제각각의 기억이었다면, 마지막으로 나오는 염이 기억하는 A가 만들었던 영화의 줄거리를 또렷하게 생각하는 장면은 섬칫. 자살한 친구의 조문을 가는 세 주인공의 여정을 카메라가 따라갔던 것이다.

도대체 A는 정말 죽은 것인가? 라는 의문이 들 즈음 소설에서도 그와 같은 문장이 나와 더 섬뜩했다고나 할까.

 

 

소설 《천국보다 낯선》 제목 때문에 자연스레 영화 <천국보다 낯선>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다. 아메리칸 드림 로드무비였던 '짐 자무시'의 흑백영화 <천국보다 낯선>의 느낌과 소설 《천국보다 낯선》은 다르면서도 닮아있다. "낯선 곳에 왔는데도 모든 게 다 비슷해."라는 영화 속의 명대사가 책에 나오기도 해서 그렇기도 하지만 춥고 외로운 곳, 밤의 국도처럼 단조롭고 어두운 곳을 여행하는 사람들에 대한 느낌이 이 세계의 바깥과도 같은 낯섦을 드러내고 있어 로드무비 격 소설의 느낌이 든다.

 

△ 영화 <천국보다 낯선>

 

『 문득 세계의 모든 것이 낯설어지고 스스로 현실의 이방인이 되어 버린 순간을 만난 적이 있기 때문이다. 순간의 정지, 사라짐, 침묵, 사이 등으로부터 문득 열리는 '낯선'세계, 잘 알 수도, 명확해질 수도 없는 그 다른 세계에 붙일 이름으로 '천국보다 낯선'만큼 적당한 말이 또 있을까. 』 - p256 (백지은/문학평론가)

 

당혹스럽기도 하면서도 신선하고 긴장감 있게 읽었다. '오늘의 젊은 작가' 시리즈다운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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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된 치아관리가 내 몸을 망친다
윤종일 지음 / 스타리치북스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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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어느 병원보다 치과에만 가면 얼어붙게 되는 현실.

정도의 차이는 있긴 하지만 치과 공포증은 누구에게나 있을법하다. 비용도 비용이지만 드르륵거리는 고속엔진 소리에 극심한 긴장상태가 되어 웬만하면 가기 싫은 곳이 치과다. 하지만 가기 싫다 해서 미루다간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듯 고통이 커지고 비용이 한없이 비싸져 안 갈 수도 없는 곳이기도 하다. 건강에 관해서는 본인의 선입견 및 비의학인에게 들은 편견을 갖고 있기 마련이다. 의사와 환자 간의 동상이몽이 아닌 치료에 따르는 소통이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일상생활에서 지켜야 할 치아건강은 물론 일반인들이 치과 치료를 쉽게 이해 가능한 수준으로 치료과정을 소개하고 있는 치과 건강 서적이 나왔다는데 큰 의미가 있는 책 《잘못된 치아관리가 내 몸을 망친다

 

손 안 댄 이가 없을 정도로 나와 내 아이 둘 다 치과 치료를 달고 사는 편이어서 특히 관심 있게 본 책이다.

소아전문 치과에서 전신마취를 하며 치료받기도 했고 젖니 시절부터 신경치료에 젖니용 크라운까지 했던 우리 아이의 이 상태는 물론 아말감, 금 인레이, 레진, 브리지, 임플란트 등 웬만한 치료는 하나씩 해 본 이 엄마에 이르기까지. 특히 내 경우에는 미루다가 큰다친 경험 때문에 내 아이 이는 바로바로 적기 치료를 해왔던 셈인데 그래서인지 전혀 아프지 않을 때 치과 치료를 바로 받아와서 오히려 내 아이는 치과 공포가 전혀 없다. 치과는 그저 병을 고치는 병원이라기보다 내 입안을 관리해주는 곳이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이 부분은 오히려 치과 치료를 자주 받았어도 전혀 공포 없이... 미용실 가듯 가벼운 마음으로 접하는 내 아이를 통해 절로 공감하게 된다.

 

『 치과 치료는 그 특성상 매우 정교하고 섬세한 치료 영역이다. 입안에서 1mm는 밖에서 100m라고 이야기할 정도로 치과 치료는 1mm 이하, 심지어는 백만 분의 일 mm의 오차와 싸워야 하고, 최근에는 바늘 끝보다 작은 치아 안의 신경을 치료하려고 현미경을 사용하기도 한다.

치과 치료는 정밀할 뿐 아니라 시술자의 경험에 의존하는 시술이 많아 시술자의 경험 차이가 상당히 다른 치료 결과를 만들기도 한다. 이렇게 시술된 입안의 보철물이나 임플란트는 매일 평균 3,000번 정도 수십 kg의 윗니, 아랫니 충돌을 수년간 견뎌야 한다. 거기에 하루에도 여러 번 뜨겁고, 차고, 화끈거리고, 끈적거리고, 딱딱한 온갖 음식물의 공격을 받는다. 』 - p23

 

 

치아 관리에 있어서 가장 기본 중의 기본은 칫솔질이다.

사람마다 칫솔질 습관은 차이가 있기 마련이다. 칫솔모가 너무 빨리 쉽게 벌어지는 경우 특히 유의해서 보면 좋겠다.

칫솔질은 20~30대 이전에는 충치 예방을 위해서, 그 이후에는 잇몸 질환 예방을 위해 매우 중요하다 한다. 자신의 입, 잇몸 상태에 맞는 칫솔과 치약 선택법, 올바른 칫솔질 습관화로 칫솔질을 잘! 하는 것이 중요하다. 치과에 갔을 때 올바른 칫솔질 방법도 잊지 말고 배워오자.

더불어 치실, 치간 칫솔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고 강조한다. 치실을 사용해보면 실제로 치아 사이에 음식물이 많이 끼어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올바른 칫솔질을 익히고 보조수단으로 사용 가능한 것은 전동칫솔과 구강세정기라고 한다. 수동칫솔의 보조장치로 전동칫솔을 사용하라는 말은 의외의 부분이기도 했다. 그러고 보면 집 안 청소 때 진공청소기만으로 청소를 끝내는 것과 같은 원리로 생각하면 이해가 된다.

 

 

잇몸 치료의 시작인 스케일링에 관한 궁금증도 해결해준다.

세균의 온상인 치석 제거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스케일링할 때 왠지 치아를 더 깎아내 버리는 듯한 느낌을 받는데 스케일링할 때 사용하는 진동과 치아 변형의 진동은 엄밀히 다르다고 한다. 치아의 표면 법랑질에 손상을 줄 수 없는 진동이니 안심하라고. 오죽하면 스케일링이 이제는 전면적으로 보험화되었을까. 평생 스케일링을 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은 없다고 단단히 일러준다.

 

충치 초기에는 통증이 거의 없어서 정기검진을 통해 확인하고 빠른 치료를 하면 비용도 적게 들고 고통조차 없다. 하지만 충치가 방치돼서 치아 안 신경에 손상을 주면 걷잡을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한다. 충치 하나가 초가삼간 다 태우는 격이 될 수도 있다. 치료 중에도 아프면 아프다고 얘기해야 한다. 다양한 마취제 및 마취방법, 통증을 감소시키는 방법이 있기 때문이다.

 

 

치과 치료의 경우 특히 임플란트는 치료 부위 상황이 매우 다양하고 복잡하며 접근 방법이나 해결책이 다분히 진료를 맡은 치과 의사의 경험과 노하우에 의존해야 하는 고도의 정밀 시술이라 한다. 병원마다 임플란트 시술 비용의 차이가 생기는 이유이기도 하다.

 

 

잘 때 이를 갈거나 코를 고는 것, 턱관절 부분은 엄연히 치과 치료 항목이며 치아 교정, 치아 미백, 치과 레이저치료에 대한 올바른 정보와 충치 치료의 방법, 충치 치료한 인공 치아의 수명과 적정 교체 시기 등에 관한 자세한 설명은 치과에서 이뤄지지 못했던 소통의 부재를 없애준다. 하긴 치과 치료를 달고 살았던 나조차도 인공 치아 수명은 평생 가는 것인 줄로만 알고 있었다가 그 부위에 다시 충치가 생기거나, 툭 떨어져나오는 것을 경험하고서야 알게 됐으니. 미리 이 책에 나온 정보를 알았더라면 더 신경을 쓰고 관리를 할 것을 하는 후회를 맛보기도 했다.

 

관리를 잘 한다 해도 늘 따라다니는 충치, 잇몸 질환은 올바른 칫솔질과 정기적인 구강검진을 통한 후천적인 입안 청결 관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심미적으로눈에 보이는 치아여서 신경은 쓰고 싶지만, 괜스레 가기 꺼려지는 치과. 치아관리법, 치과 치료에 관한 다양한 상식을 올바르게 알아갈 수 있는 길잡이 역할을 하며 조금이나마 치과의 치과 치료를 이해하고 치과에 대한 오해는 줄이게 해 준 고마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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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희의 영감 - 포토그래퍼 조선희 사진 에세이
조선희 지음 / 민음인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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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에게도 영감靈感의 나비가 날아들 것이다

 

그동안 작업했던 조선희의 작품을 보면 놀랄 노자다. 써니, 건축학개론, 감시자들, 숨바꼭질, 관상, 변호인... 등 세간의 관심을 듬뿍 받았던 영화의 멋진 포스터가 그녀의 셔터로 만들어졌고, 톱스타들의 앨범 재킷이나 광고, 패션 사진 등 차라리 조선희의 손이 닿지 않은 걸 찾는 게 더 빠를 정도로 업계에서 인정을 받는 사진작가다.

 

톱스타들이 가장 찍히고 싶어하는 포토그래퍼 조선희의 사진 에세이 《조선희의 영감》에는 그녀사진 철학, 영감을 창조로 끌어내는 법이 담겨있다.

 

 사진은 멈춘 걸 찍는 것이 아니다. 다만 멈춘 것처럼 찍히는 것이 사진이다. 』 - p194

 

글을 쓰는 작가에게 필요한 글감도 일상에서 시작하듯 조선희 사진작가 영감의 근원은 소소한 일상에서 비롯된다.

우리 주변의 수많은 것들로부터, 경험할 수 있는 모든 것들로부터 영감을 받는다. 하지만 같은 걸 보더라도 누군가에겐 무의미하게 스쳐 지나갈 뿐이듯 영감을 제대로 받기 위해서는 '자신을 열어 놓아야' 한다. 어떤 순간에 불현듯 불쑥 찾아오는 의도나 의지와 상관없는 그러나 특별한 노력이 필요한, 마음을 내버려 두어서는 절대로 떠오르지 않는 것이 영감이다.

 

영감 혹은 모티브를 받아도 그것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이 아니다. 오마주, 패러디와는 분명 다른 것이다. 리터칭이라는 디지털 시대에는 더더욱 무엇을 위해 그렇게 찍었는지 그 의도 혹은 의미를 분명히 해야 한다. 조선희만의 색을 찾기 위한 노력이 엿보인다.

 

 

두텁고 거친 질감을 좋아하는 조선희 사진작가. 그녀의 사진을 보면 고스란히 엿볼 수 있다. 고흐의 거친 붓 터치감에 끌리고, 관심 없던 꽃도 두터운 질감의 꽃을 보며 새로운 시각을 가지기도 했다 한다. 


『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이제 더이상 존재하는 것을 정확히 재현하는 것만 의미하지 않음을 알지 않는가? 그럼에도 우린 카메라의 기본에 대한 함정에 빠져 있다. 』 - p66

 

『 사진을 찍을 때 우리가 본 것을 찍은 듯해도 실은 오감을 통해 느낀 것을 마치 본 것을 찍은 양 착각하고 있었음을 깨닫는다. 』 - p71

 

낯섦은 사진 찍는 이를 관찰자로 만든다. 그 관찰자는 낯섦에 용기를 얻어 셔터를 누르게 된다. 』 - p89

 

 

『 일상 속에 있었다면 아프고 귀찮아서 혹은 카메라가 고장 날까

보지도 보이지도 않았을, 느끼지도 느껴지지도 않았을 것들이 다르게 다가온다.

일상을 여행처럼 살 수는 없을까?

그러면 나의 오감이 늘 깨어 있어

영감으로 가득 차 있을 텐데...... 』  - p109

 

사진을 한지 23년 차인 프로사진작가로서의 반성도 덧붙인다. 아무 목적 없이 사진을 찍어 본 것이 언제였더라며 사진이 삶 자체가 되기를, 도구가 되지 않길 바라는 그녀의 바람은 우연의 미학, 찰나의 예술인 사진의 본질을 다시금 일깨워주고 있다.

 

 

『 책에 몰입하는 동안 온갖 고민과 욕심과 번뇌를 버리게 되니 '비움'이고

읽으며 온갖 상상력을 발휘하며 그 속에서 나를 찾게 되니 '채움'이 아닌가? 』 - p148

 

 

생각하기를 멈춘 사람은 그 어느 것으로부터도 영감을 받을 수 없다고 하고, 각자의 영감이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며 더 크고 깊은 영감이 자라나도록 소통의 중요성도 강조하면서 사진 찍기에 관한 그녀만의 철학을 드러내고 있다.

  

일상을 좀 더 꼭꼭 씹으며 살고 싶다는 조선희 사진작가.

아이디어를 이끌어내는 창의력, 창조성을 높이는 노하우를 알려주는 그 어떤 책보다도 이 책 한 권이 주는 영감이 더 많았다. 그녀의 글과 사진을 통해 나의 시간을 뒤돌아본다. 로맨틱하면서도 영혼이 녹아있는 사진과 한 구절 한 구절 놓칠만한 문장이 없을 정도로 공감되는 그녀의 감성 깊은 글을 읽다 보면, 단지 사진의 영감을 얻기 위한 노하우를 원하는 이가 아니더라도 일상 속에서 혹은 일상을 벗어난 곳에서 만나는 감성을 오감으로 느끼게 해 주는 영감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조선희의 영감》을 통해 내 삶의 시선을 어디에 둬야 할지 영감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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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월
전민식 지음 / 북폴리오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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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제8회 세계문학상에 <개를 산책시키는 남자>로 등단한 전민식의 세 번째 소설 《13월》은 소수에 의해 이 사회가 움직일 수 있게 하는 체제, 감시 사회화된 현대, 개인정보의 개방성에 관해 폭로하고 있다. 꽤 무거운 주제지만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내 이야기일 수 있다.

 

1988년 서울의 한 조리원에서 일어난 화재에서 한 명의 산모 사망기록에도 남지 않는 신생아 한 명의 행방불명으로 이 이야기는 시작한다. 정부산하기관 목장연구소라 불리는 비밀기관 소속으로 '밥'이라는 애칭으로 부르는 관찰대상과 심적 거리를 두며 일거수일투족 남자를 관찰하는 여자 수인, 그리고 마이크로 칩을 자신도 모르게 몸에 지닌 채 세상을 살아가는 그녀의 관찰대상인 남자 재황. 수인에게 허락된 건 인식기의 불빛 이동 경로를 보며 사견 없이 관찰 기록을 정리하는 것뿐이다. 수인은 재황의 스물여섯 번째 관찰자였다. 관찰대상에 따라 움직이는 관찰자의 삶은 보통의 일상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무료하고 고독한 일이었다. 수인이 바라보는 재황은 순수하고 선함 그 자체였다.

 

그런데 지금껏 집, 도서관, 아르바이트하는 주유소만 오가며 다람쥐 쳇바퀴 돌듯 정확한 시계처럼 생활했던 밥이 요즘 들어 변화하기 시작한다. 몇 년 만에 만난 보육원 고향 지기인 PC방 사장 겸 포주 노릇을 하는 광모와의 만남 이후부터다. 광모와 재황은 서로 걸어가는 길이 다르고 재황에게는 지우고 싶은 과거였지만 외부로부터 언제나 방패가 되어 줬던 광모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끊으려 해야 끊을 수 없는 가족의 의무 같은 족쇄였다. 

 

『 선하게 산다는 건 사치일지도 모른다. 』 - p39

 

이 관찰의 목적은 인류 전체의 생존과 번영에 우선순위를 둔다는 것이라는 정도의 정보만을 가진 수인은 관찰하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그녀의 내부에 의문이 소리없이 쌓이고 있다. 특이할 것 없는 인간의 평생을 관찰해서 뭘 얻겠다는건지, 이 실험의 궁극적인 목적은 무엇인지, 하필 왜 밥인지... 수인은 지성 있고 순수한 밥이 광모라는 친구 때문에 인신매매나 다름없는 일을 하게 된 것이 도저히 이해하기 힘들다. 얼른 늪에서 빠져나와 다시 자신의 원래 궤도로 돌아오길 내심 기다리게 된다. 과거를 지울 수는 없지만, 미래를 설계할 힘은 있다고 믿는다. 이런저런 사이 결국 광모의 손아귀에서도 못 벗어나고, 문학상을 받은 소설이 표절이 밝혀지는 등 그가 쌓아올린 것들이 거품처럼 사라지고 있는 것을 연민의 심정으로 대하게 되는 수인이다. 용역 깡패일까지 하며 지금까지 이룬 걸 포기하는 그의 모습에 그저 보고 기록하면 그만인 존재인 관찰자의 한계를 느낀다.

 

 

 

 

『 명심하게. 대상의 삶에 뛰어들고 싶은 생각이 드는 순간 대상은 물론 우리 자신의 미래까지도 위태로워진다는 걸 말이네. 』 - p51

 

『 인간이 평등하다고? 다 웃기는 소리야. 인간이 지구를 더럽히기 시작한 이후 그런 순간은 단 한 번도 없었으니까. 너희 같은 놈들한텐 애초에 오기도 힘들지만 만약 기회가 왔을 때 놓치면 죽을 때까지 다시는 오지 않을지도 몰라. 』 - p 97

 

 

지금까지 무심한 척 살아왔지만 자신의 부모에 대한 궁금증, 자신의 뿌리를 찾고 싶어하는 재황에게 서서히 드러나는 진실은 무엇일까.

 

 

 

 

프란시스 골턴에 의해 우생학 논쟁이 일어난 19세기의 일은 현재에도 여전히 암묵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사람의 능력이나 성질이 선천적 유전자에 의해 결정되며 유전자만 잘 조절하면 정신적, 신체적으로 완벽한 인간을 만들 수 있다는 주장의 우생학은 정치 이데올로기에 눈먼 자들의 오용으로 엄청난 악을 낳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13월》은 인간을 퇴화시키는 수많은 위험 중 부적격자를 옹호하고 약자를 보호한다는 명분의 윤리와 도덕은 결국 인간의 질적 저하를 초래한다 믿고, 적격자를 선별해내고 적격자의 능력을 찾아내고 부적격한 유전자를 제거해 결국 소수에 의해 이 사회가 움직일 수 있도록 체계를 갖추어야 한다는 논리를 바탕으로 전개된다. 인류발전을 저해하는 불필요한 요소인 무분별한 애정, 자비, 옳은 결정 앞에서 망설이거나 주저, 회피하는 것 등은 인류발전을 저해하는 불필요한 요소인 것이다. 최고의 유전자를 주고 환경은 최악으로 조성해 준 밥의 조건은 바로 이런 인간의 질적 향상을 위해 실험대상으로 삼는 수많은 자료 중 하나일 뿐이다.

더불어 얼굴도 모르는 사람이 마음만 먹으면 내 위치를 단 몇 초 만에 알아내는 세상에서 현대 문명의 발달이 인간의 삶을 감시로부터 벗어날 수 없게 만든다.

 

운명을 스스로 개척하는가, 운명에 끌려다니는가.......

인간 개량의 목적 아래 운명 혹은 우연 따위의 단어가 무서워지는 《13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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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베개 현암사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3
나쓰메 소세키 지음, 송태욱 옮김 / 현암사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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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두 페이지를 읽으며 벌써 캬~! 를 연발한다. 인간 세상의 고달픔을 참 멋들어지고 명쾌하게 서술하고 있다.

현암사 소세키 시리즈 시니컬한 잡변이 가득 담긴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B급다운 영웅담 <도련님>에 이어 세 번째 책 《풀베개》는 이전의 책에 비해 소세키의 예술관이 드러나는 소설이다.

 

 

 

『 살기 힘든 세상에서 살기 힘들게 하는 근심을 없애고, 살기 힘든 세계를 눈앞에 묘사하는 것이 시고 그림이다. 또는 음악이고 조각이다. 라는 문장에서는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의 구샤미 선생이 되지도 않는 그림을 그린다고 고뇌하는 장면이 오버랩되어 슬며시 웃음이 난다.

 

서른 살 화공 '나'는 봄의 산을 어슬렁어슬렁 오르면서 시, 그림의 본질에 관한 생각을 잇는다. 『 우리의 성정을 순간적으로 도야하여 순수한 시경에 들게 하는 것은 자연이다. 』 자연풍경을 보면 좋다는 느낌이 들면서도 왜 좋은지 그 느낌을 글로 표현하기 막막했는데 소세키의 이 문장을 읽으며 아~! 고개를 끄덕인다.

 

'나'는 의리나 인정 따위에 얽매이지 않는 비인정(非人情)을 위해 떠난 여행을 하고 있다. 아무런 잡념 없이 초연하게 먼발치에서 구경하는 마음으로 쌍방에서 함부로 인정의 전기가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비인정 여행을.

속된 정에서 벗어나 어디까지나 화공이 되기 위해 눈에 들어오는 모든 것을 그림으로 보며 인기척 없는 한적한 산중에 한 줄기 길을 걸으며 만난 찻집에서 하이쿠도 지어보면서 시도 되고 그림도 되는 경치를 누린다.

 

 

외딴 마을의 온천, 봄밤의 꽃 그림자, 달빛 아래 나지막한 노랫소리, 으스스 달밤의 모습... 이런 풍류에 습관적으로 이치를 내세우게 되자 어떻게 하면 시적인 입각점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고민해보기도 한다. 가장 손쉬운 방법은 닥치는 대로 열일곱 자 하이쿠로 정리해 보는 것이다. 붓 가는 대로 써내려간 하이쿠를 다음날 누군가가 비슷하게 따라 덧붙인 장난스러운 사건에 온천장 여자와의 인연이 본격적으로 이어진다.

 

 

『 우리 두 사람 사이는, 이 시에 나타난 처지의 일부분이 사실이 되어 어떤 운명의 가는 실로 동여매어 있다. 운명도 실이 이 정도로 가늘면 마음의 부담이 되지 않는다. 게다가 단순한 실이 아니다. 하늘을 가로지르는 무지개의 실, 들판에 길게 뻗쳐있는 안개의 실, 이슬에 반짝이는 거미줄이다. 끊으려고 하면 금방 끊을 수 있으며, 보고 있는 동안에는 굉장히 아름답다. 만약 이 실이 순식간에 두꺼워져 두레박줄처럼 단단해진다면? 그럴 위험은 없다. 나는 화공이다. 저 여자는 보통 여자와 다르다. 』 - p65

 

『 운명은 돌연 이 두 사람을 한 집에서 만나게 했을 뿐, 그 밖에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다. 』 - p121

 

불행에 짓눌리면서도 그 불행을 극복해보려는 얼굴을 가진 여자에게 묘한 감정을 느끼게 되는 '나'.

운명의 상대처럼 다가오면서도 그 끈은 아무렇지도 않게 끊어내 버릴 수 있다고 한다. 비인정 여행을 하다 보니 여자를 대하는 부분도 그러하구나.

 

『 이 마음을 어떻게 표현하면 그림이 될까. 아니, 이 마음을 어떤 구체성을 빌려 사람들이 납득할 수 있도록 할 수 있는가가 문제다. 』 - p90

 

『 아름다운 것을 더욱더 아름답게 하려고 안달할 때, 아름다운 것은 오히려 그 정도가 떨어지는 것이 보통이다.

 - p105

 

마음이 이끄는 기운에 끌리는 그림을 궁리하면서 생각하는 부분인데 추상적인 정취를 표현하고자 하는 시와 그림의 본질에 관한 고민이 잘 드러나고 있다. 하지만 이 온천장에 온 뒤로 사실 '나'는 아직 한 장의 그림도 그리지 않았다. 좋은 색으로 가득 차 있는 자연을 느끼는 것만으로 풍족하다. 사색만 가득할 뿐이다.

 

『 연민은 신이 모르는 정이고, 게다가 신에게 가장 가까운 인간의 정이다. 』 - p138

 

'나'가 말하는 연민은 인간을 떼지 않고 인간 이상의 느낌을 낸다.

온천장 여자의 표정에는 이 연민의 정이 없어서 그림을 그리는데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나'. 하지만 그 여자의 '연민'은 현실로 돌아오는 기차역에서 전쟁터로 떠나는 사촌과 전남편을 보내고서야 묻어나오는 것으로 이야기는 끝이 난다.

 

 

마지막 '연민'을 품은 모습 역시 '나'의 마음의 화면 상태에서 머물지만 실제로 가슴 속에 완성된 그림은 어떤 그림일지 궁금해진다. 비인정인 '나'의 여행의 결말은 결국 인정으로 끝나는 것인가? 통속적인 정이 아니라 미적으로 승화된 정이겠지만. 정, 의, 직 행위로 보이는 천하 공민의 모범이면서 낭만스러운 인정 세계와 그저 그대로의 모습으로 보며 자연주의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비인정 세계의 이야기가 결국엔 기차를 빌려 현실 세계의 고통 속에 삶의 목적이 있지 않은가라는 의미로 와 닿는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에서처럼 거드름 피우는 인간 부류에 대한 경멸이 나타나는 부분, 돈 냄새에 찌든 시정의 속물을 버리고자 하는 마음, 자기 개성의 몰살 등 메이지 유신 이후의 현대 문명의 폐해를 꼬집는 것은 여전하다. 기차역 장면에서는 자유의지로서의 '기차를 탄다'가 아닌 '기차에 실린다'는 표현을 하며 개인이 가져야 할 자유의지를 전쟁이라는 제국주의 장면에 넣어 국가에 개인의 삶과 죽음을 종속시키는 것으로 자기본위에 관한 이야기를 슬며시 집어넣기도 한다.

 

소세키는 이 소설을 일컬어 하이쿠적 소설이라고 했다. 예술론이 가득 담긴 예술가 소설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소세키의 문학론을 이야기하고자 한다면 《풀베개》를 꼭 읽어야 하겠다.

특별한 사건사고 없이 무던하게 진행되는 구성이라 소설 같지 않은 소설, 산문을 읽는듯한 느낌이 강한 《풀베개》 묘미는 뭐니뭐니해도 사색을 할 때의 묘사다. 눈 앞에 그림으로 그려지듯 세세한 서술은 기품이 있다. 자연을 표현하는 서술은 자극 없는 오묘하고 형용하기 어려운 즐거움을 주면서 봄과 동화된 느낌이다.

고요함을 묘사하는 장면이나 온천물에 몸을 담근 장면, 특히 목욕탕에 들어온 여자의 몸을 묘사하는 부분은 가히 예술적이다. 노골적이지도 않고 속세의 때가 묻지도 않은 영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미적 묘사에 감탄하게 된다.

곳곳에 여자의 자살을 암시하는 이미지를 교묘히 깔아둬서 읽는 내내 은근 초조하게 만들기도 한다.

 

소세키의 책을 현재까지 세 권을 읽어왔지만, 소설마다 같은 작가인가 할 정도로 전혀 다른 느낌이 들어 소세키 작가의 나머지 소설은 어떤 문체, 어떤 주제일지 무척 궁금하게 만든다.

 

소설 풀베개의 배경이 된 구마모토에는 풀베개 마을이 형성되어 소설 속 배경이 잘 복원되어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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