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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들의 봉우리
유메마쿠라 바쿠 지음, 이기웅 옮김 / 시작 / 2010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서점에서 이 두꺼운 책을 마주했을 때, 이미 만화로 읽었던 이야기를 새삼 읽을 필요가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원작을 기다려오다가 만화로 먼저 출간된 <신들의 봉우리>를 읽은 것이 벌써 작년 여름의 일. 만화로 읽으며 이것이야말로 짐승남의 세계구나 싶었던 기억이 난다. 그저 산을 오르는 것일 뿐인, 그저 자신의 한계를 시험하는 남자의 이야기일 뿐인 이 이야기를 다시 든 것은 어쩌면 그 열정을 조금이나마 다시 느끼고 싶어서가 아닐까 싶다.
여기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가는 한 남자가 있다. 세상과 타협하려 하지 않고, 자신의 방식대로 산을 오르는 남자. 자신의 모든 것을 산에 투신하는 남자. 산이 거기 있어서 오르는 것이 아닌, 자신이기 때문에 산을 오르는 남자.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목표를 세우지만 어쩌면 그라면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들게 하는 남자. 그런 그가 바로 이 책의 중심에 놓이는 하부 조지다.
이야기는 에베레스트 등정을 위해 네팔에 간 후카마치라는 한 사진가가 한 상점에서 오래된 카메라 하나를 발견하며 시작된다. 에베레스트 등정을 최초로 성공했을 지도 모를 조지 멜러리의 카메라. 그 카메라의 필름만 있으면 에베레스트 등정을 둘러싼 하나의 미스터리가 풀릴지도 모를 터. 이에 후카마치는 카메라의 원주인을 찾기 시작하고, 그것이 오래 전 일본 산악계에서 사라진 하부 조지의 것임을 알게 된다. 일본으로 돌아와 하부 조지에 대해 조사를 시작한 후카마치. 다시 하부 조지를 찾아 떠난 네팔에서 그는 하부 조지가 에베레스트 남서벽 무산소 등반을 계획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너무나 터무니 없는 계획. 산악 역사상 아무도 성공하지 못한 일. 인간의 한계에, 자신의 한계와 마주하며 도전하려는 하부. 그의 계획에 후카마치도 사진사로 따라 나서게 된다.
만화로 이미 읽었으니 이 책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 건 나의 착각이었다. 글로 만난 <신들의 봉우리>에는 분명 만화에서는 볼 수 없었던 농밀한 심리 묘사가 담겨 있었다. 특히 짧은 문장들이 행이 바뀌며 서술되는 부분에서는 등장인물의 심리에 절로 몰입되는 듯했다. 만화는 익숙지 않은 산악 전문 용어를 그림을 통해 쉽게 이해하게 해준다는 장점이 있었다면 원작은 등산에 관심이 없는 인물이라면 선뜻 머리에 떠올리기 힘든 묘사는 있었지만, 등장인물 한 명 한 명에 집중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나같이 등산에 문외한인 이가 이 책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결국 만화와 원작 소설. 이 두 개를 병행할 수밖에 없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는 작가의 말답게 정말 치열하게 쓰여진 작품이었다. 제법 두꺼운 이 책을 읽으며 단 한 순간도 지겹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마치 조금 거리는 돌아서 가지만 안전한 코스로 향하는 것보다 위험할 수는 있어도 최단거리로 올라갈 수 있는 코스를 본능적으로 택하는 하부의 모습처럼 유메마쿠라 바쿠는 이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는 최소한의 내용으로 최대한의 감동을 이끌어낸 것 같았다. 적절한 곳에서 차근차근 정상을 향한 한 걸음을 내딛듯 이야기를 전개해가는 솜씨. 작가에게 6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은 결코 많은 분량이 아니었다. 그것은 하부가 에베레스트를 오를 때 짐을 꾸리는 과정처럼, 휴지심을 뽑은 휴지, 표지를 뜯어낸 노트, 길이를 잘라낸 연필처럼 그것이 몇 그램이라고 해도 최소한으로 줄이고 줄인 것임을 느꼈다.
맬러리는 "산이 거기에 있으니까" 오른다고 했다. 하지만 하부는 "내가 여기 있으니까" 산을 오른다고 한다. 자신의 길을, 자신의 꿈을, 자신의 열정을 묵묵히 산을 오름으로써 보이는 하부. 쉽게 자신을 허락해주지 않는 에베레스트에 오르기 위해, 아니 인생이라는 거대한 산을 오르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결국 자신의 길을 묵묵히 걸을 수 있는 열정이 아닐까 싶었다. 그것이 허상이라고 해도, 그것이 고난이라고 해도 말이다. 짐승 냄새 훅 끼치는 하부 조지. 추운 겨울, <신들의 봉우리>를 읽노라니, 하얀 설산을 걸어가는 그의 모습이 손에 잡힐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