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산길을 걷는다는 행위는 기본적으로 체력에 달려 있다. 재능이란 측면은 극히 사소한 영역에 불과하다. 그러나 암벽을 짚고 오르는 행위에는, 대전제로서 체력을 필요로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 분명 있다. 밸런스, 리듬, 자기감정의 컨트롤. 바위를 오른다는 행위에는 등반자의 노력만으로 다다를 수 없는 영역이 존재한다. 그건 어떠한 이름이 붙은 기술이나 방법도 아니다. 재능이라는 모호한 호칭으로밖에 부를 수 없는 것이다. 체력에 배포도 있고 기술까지 고루 갖춘 클라이머라면 실수하지 않는 한 별 문제 없이 오를 수 있다. 하지만 경력이나 기술, 체력 면에서 분명하게 뒤지는 초심자에 가까운 사람이, 베테랑도 일정 속도 이상 내기 힘든 암벽을 너무나 가볍게 올라버리는 일이 있다. 그건 천성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다. 산에서 짐을 짊어지고 오를 때는 둔중한 타입으로 보였던 인간이, 바위에 오르면 전혀 새로운 면모를 보인다. 그런 인간의 암벽 등반은 빠를 뿐만 아니라 아름답기까지 하다. 물살과 같은 리듬이 느껴진다. -105쪽
사람은 살아가야만 한다. 나도 앞으로 몇 년이 될지 몇십 년이 될지 모르지만 살아가야만 한다. 안락한 시간일지 고달픈 시간일지 모르지만, 죽기 전까지 그 시간을 살아가야만 한다. 어차피 살아간다. 살아야 한다는 걸 안다. 그걸 안다면, 죽기 전까지의 그 시간을, 뭔가로 채워넣어야만 한다. 어쨌든 뭔가를 채워야 한다. 그걸 안다면…… 어차피 시간을 채워야 한다면, 다다르지 못할지도 모를 이해, 정체를 알아내지도 못할 대답, 밟지 못할지 모를 정상을 향해 발을 내디뎌보는 것도, 그런 식으로 채워가는 것도 나의 방식이 아닐까. 파란 하늘 위로 쭉 뻗은 한 점. 이 지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장소. 지구의 정상. -210쪽
인생도 날씨와 같다. 사람은 살아가며 조우하는 모든 일마다 매번 결론을 맺으며 살아갈 수는 없다. 대부분은 그대로 미뤄둔 채 살아간다. 살아간다는 건 뭔가를 미루며 걸어간다는 것이다. 번거롭다고 이러저러한 일들을 다 내버리고 혼자만 고고히 살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495~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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