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먼 인 블랙
수전 힐 지음, 김시현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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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 5대 공포소설이자 영국에서 롱런한 연극 <우먼 인 블랙>의 원작소설 『우먼 인 블랙』. 작년에 한국에서도 무대에 오른 바 있었는데, 일정이 맞지 않아 못 봐서 아쉬웠는데, 이번에 <해리포터>의 주인공 다니엘 래드클리프 주연의 동명의 영화가 개봉하면서 원작소설이 함께 출간되었다. 운 좋게 시사회 당첨이 되서 영화로 먼저 접한 이야기는 음습한 분위기는 마음에 들었지만, 마냥 어리게만 느꼈던 해리포터 군이 애 아빠로 나온다는 설정이 익숙지 않았고, 소리로 놀래키는 것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아 괜찮긴 한데 뭔가 아쉽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영화는 다소 아쉬움이 남았지만, 영화와 비교하며 읽은 『우먼 인 블랙』은 얇긴 하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촘촘하게 이야기가 짜여 있어 오싹함으로 조금씩 마음이 죄어들었다. 

  젊고 패기 있는 변호사 아서 킵스. 상사의 명령으로 고객이었던 드래블로 부인의 장례식 참석과 유산 정리를 위해 크라이신이라는 작은 마을을 찾는다. 장례식 참석을 위해 왔다는 얘기를 듣자 호텔 주인은 경계심인지 의혹인지 뭔지 알 수 없는 감정을 억누르는 모습을 보인다. 그저 외딴 곳에 살았던 여자였으니 마을에서 마녀 취급을 받았던 것이리라 하고 가볍게 넘어간 아서. 너무나 쓸쓸한 장례식. 그곳에서 그는 검은 옷을 입은 수척한 한 여성을 본다. 그리고 조수 시간에 맞춰 노부인이 살았던 일 마시 하우스에 문서 정리를 하러 들어갔다가 그 여성을 다시 만난다. 그녀를 다시 만난 아서는 "그 여자는 육체가 있는 산 사람이라면 절대 불가능한 방법으로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전통적인 '유령'에 다한 흔한 상상과는 달리 투명하거나 흐릿해 보이지는 않았다. 진짜 사람처럼 그곳에 있었고, 또렷이 보였다. 그녀에게 다가가 말을 걸고 만질 수도 있을 듯했다"라고 회상하면서 그녀가 유령이라는 사실에 대해 일말의 의문도 갖지 않는다. 대체 그녀에게 무슨 사연이 있길래 자꾸 아서 앞에 나타나는 것일까. 검은 옷을 입은 여자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왜 마을 사람들은 공포스러워하고 거부감을 느끼는 것일까? 그렇게 뭍과 물의 경계에서 아서는 삶과 죽음, 그리고 공포와 호기심의 경계를 몸소 체험한다.

 

  누구나 유령 이야기를 하나쯤은 알고 있다. 유령이 나온 수많은 문학작품을 논외로 하더라도 '전설의 고향'류의 귀신 이야기는 얼마나 많고, 친구들끼리 삼삼오오 분위기 잡으며 나누는 도시괴담류의 이야기도 꽤 많다. 하지만 『우먼 인 블랙』의 아서를 평생 괴롭힌 유령은 "상상으로 만들어낸" 것도, "피가 고이거나 스멀스멀 기어들거나 그런 단순한" 이야기도 아니다. 그런 이야기라면 어쩌면 오싹할긴 하지만 식상하다고 느낄지 모른다. 하지만 『우먼 인 블랙』은 그런 얘기가 아니다. 아서는 "그래, 나도 이야깃거리가 있다. 그것도 진짜 이야기가. 유령과 악귀, 두려움과 혼란, 공포와 비극의 실화가. 하지만 크리스마스이브에 벽난롯가에 둘러앉아 재미 삼아 할 수 있는 이야기는 아니다"라는 말로 자신이 간직한 이야기에 대해 운을 뗀다.

 

  그의 말처럼 분명 『우먼 인 블랙』 속의 이야기는 '재미 삼아'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다. 단순히 원한(혹은 생에 대한 집착)이 있는 존재가 구천을 떠도는 이야기가 아니다. 이 책에 등장하는 검은 옷을 입은 여인은 '악의'를 품고 있다.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것을 잃은 뒤 분노와 복수심, 상실과 절망, 그리고 광기와 비통함의 화신이 된 한 여인. 그녀가 나타날 때마다 마을에는 사고가 일어나고, 사람들은 소중한 것을 잃는다. 자신에게 닥친 절망에 대처하는 방법은 제각각이지만, 『우먼 인 블랙』 속의 여인은 절망을 복수로 뒤바꾼다. 가끔 자신의 에너지를 적의로 표출하는 사람을 접할 때가 있다. 별일 아닌 것 같은 것에 분노하고, 그냥 넘어갈 수 있는 문제에 대해 격하게 반응하는 경우들이 있다. 어떤 태도가 옳고 그르다라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우먼 인 블랙』을 읽으며 과연 그녀에게는 그럴 권한이 있는가?라는 의문이 들었다. 동정의 여지가 있다 해도 누구도 그녀에게 다른 사람의 삶 또한 파괴할 권한을 주지 않았는데 그녀는 멋대로 다른 사람의 삶에 침범해 그것을 파괴한다. 하지만 그녀의 이런 태도에 분개할 필요는 없다. 그저 '검은 옷을 입은' 이 여인을 받아들이고, 그녀가 초래하는 일련의 사태와 공포를 온몸으로 느끼는 것. 어쩌면 그것이 최선이 아닐까 싶었다.

  영화화하는 과정에서 『우먼 인 블랙』의 몇 가지 설정이 바뀌었다.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변화는 아서의 지위의 문제다. 영화에서 아서는 네 살 난 아들을 혼자 키우는 아버지로 나오지만 원작에서는 약혼녀는 있지만 결혼은 아직 하지 않은 것으로 나온다. 바로 이 설정 때문에 전체적인 골격은 똑같지만 세부적인 내용이나 결말이 다르게 전개된다. 소설이 으스스하면서도 말단을 조금씩 자극하면서 전개된다면, 영화는 소리와 분위기로 공포감을 전달한다. 영화도 나쁘지 않았지만, 개연성이나 아서에 대한 이해도는 역시 원작이 영화보다 더 농밀했다. 그저 무언가 알 수 없는, 유령 같은 존재의 등장 때문에 공포스러운 것이 아니라 인간의 어두운 내면에서 도출되는 공포를 다룬 이야기니만큼 한 개인에 대한 이해가 절실한데 영화에는 이 부분이 너무 가볍고 광기로 처리된 것 같아서 아쉬웠다. 영화가 삐걱거리는 의자 소리 같은 것으로 말단을 자극했다면, 소설은 독자로 하여금 일 머시 하우스라는 낡은 저택을 상상하게 하고, 그 안에 들어가 들리지 않는 소리를 듣고 보이지 않는 것을 보게 했다. 직접적이냐 간접적이냐의 방법론적인 차이의 문제일 수도 있겠지만, 역시 침대 안에서 혼자 상상하면서 오싹오싹하는 것이 더 좋았다. 얇아서 가볍게 읽었는데, 영화에서 만나지 못한 심리묘사와 치밀함을 만날 수 있어서 좋았다. 이래서 세계 5대 고딕소설이라는 평을 듣는구나 싶었던 책. 짧지만 강렬한 공포를 원한다면 필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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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노우맨 형사 해리 홀레 시리즈 7
요 네스뵈 지음, 노진선 옮김 / 비채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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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하필 나지?" 라프토가 물었다.
"당신이 최고니까. 난 최고만 상대하거든."
"미쳤군." 라프토는 그렇게 중얼거렸다가 바로 후회했다.
"그건," 상대방이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맞는 말이야. 하지만 형씨도 미쳤잖아. 우리 모두 미쳤지. 다들 집으로 가는 길을 찾지 못한 불안한 영혼들이야. 영혼들은 늘 그렇지. 인디언들이 왜 이걸 만들었는지 알아?"
라프토의 앞에 선 사람이 장갑 낀 손의 집게손가락을 구부려 토템폴을 톡톡 두드렸다. 토템폴 속에 조각된 인물들은 서로의 어깨를 밟고 올라서서, 앞이 보이지 않는 커다른 검은 눈동자로 피오르 맞은편을 응시하고 있었다.
"영혼들을 감시하기 위해서야." 상대방이 말을 이었다. "그래야 영혼들이 길을 잃지 않으니까. 하지만 토템폴의 문제는 썩는다는 거지. 썩어야만 해. 그게 바로 토템폴을 만든 이유이기도 하니까. 토템폴이 사라지면 영혼은 새 집을 찾아야 하지. 가면 속이 될 수도 있고, 거울 속이 될 수도 있어. 새로 태어난 아이의 몸속이 될 수도 있고." -80~1쪽

라켈은 깡마른 해리의 모습을 떠올렸다. 마치 그에 대한 그녀의 기억이 줄어든 것처럼, 그도 줄어들어 있었다. 한때 그토록 가까웠던 누군가가 희미해지고 사라질 수 있다는 게 무서울 지경이었다. 한때 늘 붙어 다녔던 사람과 멀어지면서, 함께했던 시간들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것도 그 때문인지 모른다. 그 시간들은 마치 머릿속에서만 일어났기 때문에 금방 잊히는 꿈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그를 다시 보는 일이 그토록 충격적이었으리라. 그를 껴안고, 그의 냄새를 맡고, 그 냉정하고 주름살이 늘어난 얼굴과 대조적으로 이상하게 부드러운 입술에서 새어 나오는 음성을 전화기 너머로가 아니라 직접 듣는 일이 그토록 충격적이었으리라. 예전처럼 말하는 동안 강도가 변하는 광채를 내뿜는 그 푸른색 눈동자를 들여다보는 일도 그토록 충격적이었으리라. -91쪽

올레그는 쉬지 않고 떠들어댔다. 언제부터 이렇게 됐을까? 이 아이가 언제 벌써 연할 살이 돼서 죽음의 다양한 단계며 소외감, 말세에 관한 음악을 좋아하게 됐을까? 어쩌면 이런 올레그를 걱정해야 할지 모르지만 해리는 그러지 않았다.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반드시 알아내야만 직성이 풀리는 호기심, 맞는지 입어봐야만 직성이 풀리는 옷들이 생기는 시작점인 것이다. 이제 다른 것들도 따라올 것이다. 더 좋은 것들. 더 나쁜 것들. -118~9쪽

둥그런 불빛 속에 들어가 어둠으로부터 고립되는 것은 전혀 안도감을 주지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숲에서 가장 눈에 띄는 물체가 된 탓에 벌거벗고 상처받기 쉬운 존재가 된 기분이었다. 나뭇가지가 그의 얼굴을 할퀴었다. 낯선 이가 누구인지 확인하려고 더듬거리는 장님의 손가락 같았다. -134쪽

꿈에 그녀가 나올지는 알 수 없었다. 무의식이란 워낙 예측 불가능하니까. -139쪽

해리는 아드레날린이 솟구치는 걸 느꼈다. 범인의 냄새를 처음으로 맡을 때 늘 느끼는 전율이었다. 그리고 그 후에는 위대한 강박증이 뒤따른다. 그것은 모든 것이 공존하는 상태다. 사랑인 동시에 취기이며, 맹목적인 동시에 명료하고, 의미심장한 동시에 미친 짓이다. 다른 형사들도 수사를 하다가 가끔 짜릿한 흥분을 느낀다고 들었지만, 이건 흥분과는 다르다. 뭔가 특별하다. 그는 누구에게도 이런 강박증에 대해 말한 적이 없었고, 이를 분석하려고 한 적도 없었다. 감히 그럴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가 아는 사실은 이 강박증이 그를 도와주고 몰아붙이며, 그에게 주어진 일을 하는 데 원동력이 된다는 것뿐이다. 그 이상은 알고 싶지 않았다. 진심으로. -164쪽

사실 엘리는 실제로 수다를 떠는 것보다 수다에 대한 생각이 더 좋았다. 대화는 늘 어딘가에서 멈춰야 하기 때문이다. 넘어설 수 없는 거대한 벽 앞에서. -201쪽

"과학자들이 경험이 많은 권투선수들의 뇌 활동을 측정한 적이 있어. 권투선수들이 시합 도중에 꽤 여러 번 의식을 잃는 거 알아? 1초도 안 되는 짧은 시간에 여기서 잠깐, 저기서 잠깐 의식을 잃는다지. 그런데 몸은 마치 그게 일시적이라는 걸 아는 듯이, 통제력을 발휘해서 다시 의식이 들 때까지 버틴다는 거야." 해리는 담배 끝을 톡톡 쳤다. "그 오두막에서 나도 넋이 나갔어. 단지 차이점이라면 오랜 경험상 그게 일시적이라는 걸 내 몸이 알았을 뿐이야."
"하지만 첫 방에 나가떨어지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죠?" 카트리네가 얼굴에서 머리카락을 떼어내며 말했다.
"권투선수들처럼 맞는 대로 휘청거려야지. 저항하지 마. 일의 어떤 부분이 조금이라도 신경을 건드린다면, 건드리게 내버려둬. 어차피 막아낸다 해도 오래가지 못하니까. 조금씩 조금씩 받아들인 다음 댐처럼 풀어놔. 벽에 금이 갈 때까지 담아두지 말라는 말이야." -263~4쪽

해리는 체념이 꿈틀대는 걸 느꼈다. 아니, 그래선 안 된다! FBI에서 범인을 잡는 데 10년 이상 걸린 사건들을 분석한 적이 있다. 대개 사건을 해결한 것은 아주 사소한 단서였다. 그러나 사실 사건 해결의 열쇠는 포기를 몰랐던 그들의 집념이었다. 15라운드를 다 뛰고도, 상대가 아직 쓰러지지 않았으면 다시 싸우자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대는 근성이었다. -36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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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3-05 09: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3-05 10: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3-05 10: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3-05 10: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폭설권 제복경관 카와쿠보 시리즈 2
사사키 조 지음, 이기웅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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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월의 둘째날.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던 겨울이 조금 누그러지고 있구나 하면서 뉴스를 보니 강원도에는 눈이 내릴 예정이라 했다. 한 나라 안에서도 이렇게 날씨가 천차만별이라니 하고 생각하면서 문득 이 시기에 <폭설권>을 읽은 것이 행운이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 읽을 때만 해도 봄이 다 되서 무슨 혹한기 독서인가 했지만, 이 시기에 이 책을 읽어서 다행이다. 3월 히간(춘분과 추분을 중심으로 7일간) 무렵에 북일본을 공습하는 폭풍우 히간아레. 간선도로의 교통이 완전히 단절되는 일도 드물지 않은 엄청난 폭풍설. 하루 동안 저마다의 사연을 안고 고립된 사람들. 그들의 이야기를 더 늦기 전에 만나서 다행이다. 

 

  훗카이도의 작은 마을 시모베츠. 10년 만의 초대형 폭설이 이곳을 강타한다. 몸을 가누기 힘들 정도로 거세게 부는 바람, 제설작업이 불가능할 정도로 쌓이는 눈. 이런 날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사람들은 저마다의 사연을 안고 움직인다. 누군가는 불륜남과 마지막 만남을 준비하고, 누군가는 직장에서 거금을 훔쳐 새 삶을 시작하려 하고, 누군가는 계부의 성폭행으로 가출하고, 누군가는 폭력단 조장의 집을 습격해 도주한다. 대자연의 맹위 앞에선 평범한 존재가 될 수밖에 없는 이들이 그린루프라는 펜션에 발이 묶인다. 눈으로 발이 묶인 하루 동안의 이야기가 <폭설권>에서 그려진다.

 

  전작인 <제복수사>에서는 카와쿠보의 역할이 컸다면, 이 책은 카와쿠보 시리즈라고 하기 조금 민망할 정도로 그의 비중이 크지 않다. 폭설 때문에 발이 묶여 사고현장에 가지 못해 미안해하는 모습이나 마지막에 사건을 해결(?)하는 정도로만 등장할 뿐이라 명색이 '카와쿠보 시리즈'인데 조금 아쉬움이 남았다. 사사키 조는 다른 작가들에 비해 경찰소설에 강한 편인데, <폭설권>에서는 그 부분도 두드러지지 않았고, 초반에 다양한 사람들의 사연을 소개하는 부분이 다소 지루하게 느껴질 정도로 느슨했다.

 

  이런저런 아쉬움이 있긴 했지만 인간의 모든 행위가 무력해지는 불가항력의 상황 속에서 개개인의 심리를 그려내는 부분은 흥미로웠다. 만약 눈이 없었다면, 만약 그곳이 훗카이도가 아니었다면 그저 그런 심심한 소설로 끝났을 것 같지만 눈 때문에 마음속에 어둠을 품은 이들의 티는 더 도드라졌다. 순백의 눈. 그리고 인간의 어두움. 자극적인 맛이 없어 미스터리 소설로는 다소 밋밋한 이야기를 이 두 가지 대비를 통해 풀어가는 점이 재미있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는 아쉬움이 못내 남지만 카와쿠보 시리즈의 세번째 작품을 만나봤으면 싶다. <제복수사> 때는 인상적이었는데, <폭설권>은 기대에는 미치지 못해서일까. 사사키 조가 시모츠마라는 제한된 공간에서, 주재경관이라는 제한된 범위 안에서 멋지게 성공하는 모습을 꼭 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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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설권 제복경관 카와쿠보 시리즈 2
사사키 조 지음, 이기웅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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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잘 알아 둬. 이런 댓글을 쓰는 인간일수록 자기 삶은 엉망진창일 수밖에 없어. 스스로를 타이르는 말을 남한테 하는 거야."
자신의 댓글 밑으로 그런 글이 달려 있다.
아케미는 낯이 뜨거워 견딜 수가 없었다.
자기 삶은 엉망진창. 스스로를 타이르는 말…….
사람들은 모든 걸 다 꿰뚫어보고 있단 말인가? 인터넷 안에서 가상의 자신이 한 발언마저 읽는 이들에게 속내를 간파당하고 있다면, 현실의 자신이 하는 언행과 태도에서는 훨씬 더 여실히 자신의 정체가 드러났다는 뜻이 아닌가. -149쪽

"그치? 살인을 저지르면 아케미도 끝장인걸. 날 죽여 봐야 아케미한테 남는 게 없으니까."
남는 게 없나? 번민의 씨앗이 사라지며 더 이상 괴로워하지 않아도 된다는 기대는 뭐였지? 남는 게 없는 짓이었나. 이 남자를 죽이고 그 자리를 잘 피하면 경찰에 체포되지 않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세상의 많은 살인자들이 저지르는 어리석은 실수 따위는 자신은 답습하지 않고 무사히 넘어갈 수 있으리라 굳게 믿었다. 혹독한 취조를 당해도 빠져나갈 자신이 있었다. 그 정도 지식과 정신력을 갖추고 있다고 믿었다. 그랬었다.
안일했다. 아케미는 그제야 자신의 계획이 안일했음을 깨달았다. 왜 방금 전까지는 그런 안일한 계획이 현실적인 해결책이라 믿고 있었을까. 그 방법 외에는 해결책이 없다고 확신했을까.-241~2쪽

전화를 끊고 나서 카와쿠보는 추락 사고를 일으킨 운전자를 생각했다. 그는 지금 어떤 상태일까. 부상으로 인한 통증과 출혈에 신음을 토하며 자신의 생명을 스멀스멀 뺏어 가는 한기에 벌벌 떨고 있을까. 아직 의식은 있을까.
미안하다. 카와쿠보는 창밖을 바라보며 고개를 저었다. 당신을 구출하러 갈 수 없다. 대자연의 맹위 앞에 우리 인간은 너무 무력하다. -351쪽

카와부로는 창가로 가서 실외 온도계를 확인했다. 영하 4도였다. 정말 추워졌다. 물론 영하 20도까지 떨어지는 1월의 추위와는 비교할 수 없다. 정전이 돼도 동사자가 몇 명이나 나올 추위는 아니다. 문제는 눈보라다. 인간의 사회적 활동을 모두 중지시킬 정도의 맹렬한 눈보라. 폭풍에 폭설까지 함께 몰아친다.
카와쿠보는 난로 곁으로 가서 난로 위에 얹어 둔 주전자에서 물을 따랐다. 조난 및 사고 관련 신고 전화가 4시 이후로 한 통밖에 없었다. 허나 실제로 한 건에 그쳤을 리가 없었다. 내일은 바빠지리라. -404쪽

카와쿠보는 울컥했다. 욕을 퍼붓고 싶은 마음을 간신히 억눌렀다. 관할 구역에서 살인 사건이 발생했다. 어젯밤 그 신고를 받고도 자신은 움직일 수 없었다. 지금 또 도주 중인 살인범에 대해 조직에서는 조속한 대응이 불가능하다고 말하고 있다. 이대로 있다가는 범인의 도주를 방치하게 된다.
나 혼자라도 할 수밖에 없다. 나는 이 마을의 주재 경관이다. 이 마을에서 일어난 범죄에 대해서는 가장 먼저 대응해야 할 책임을 지녔다. 조직이 시간 맞춰 움직일 수 없다면 혼자서라도 해야만 한다. 범죄 발생 현장인 펜션은 내 관할 구역 내에 있다. -47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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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 1월 5일 수요일. 이덕일 소장의 <사도세자의 고백>을 비판한 연재글로 인해 이소장과의 가벼운 논쟁으로 많은 분들의 응원을 받으며 뜨겁게 시작한 <권력과 인간>은, EBS 평생대학-역사 이야기 강연, 가을 고궁 답사 등으로 마지막까지 그 열기를 이어갔습니다. 총 조회수 4만 2천여 회, 댓글 수 5천 개 의 기록을 남기며 성공리에 끝난 <권력과 인간>. 12월 연재가 끝난 뒤 많은 분들이 단행본으로 다시 만날 날을 기다리셨으리라 생각합니다. 게시판으로도, 전화로도 출간 시기를 문의주신 분들께 번번이 조금만 더 기다려주세요, 라고 말씀드리면서 담당 편집자로서 빨리 책을 소개하고픈 안타까움과 연재글보다 완성도 있는 책으로 소개하고픈 욕심 사이에서 마음이 급해졌습니다. 때로는 장을 병합하고, 때로는 사족 같아 보이는 부분은 쳐냈고, 연재시에 있었던 사소한 오류 몇 가지를 수정하는 등 방망이 깎는 노인의 심정으로 선생님과 연재원고를 다듬어갔습니다. 각 장에 들어가는 아이콘 하나, 도판 하나도 고심 끝에 선택했습니다. 표지도 수많은 B컷을 뒤로했습니다. 곤룡포가 떠오르는, 궁궐의 이야기를 담았구나 싶어지는 붉은빛의 표지로 드디어 출간된 <권력과 인간>. 그 붉음은 왕실의 상징으로, 그리고 원고의 뜨거움의 상징처럼 그렇게 다가왔습니다. 

 

  아버지 영조가 아들 사도세자를 죽인 임오화변은 조선시대, 아니 한국사를 통틀어 전무후무한 사건입니다. 그렇기에 사도세자의 죽음은 <이산> <성균관 스캔들> <영원한 제국> 같은 드라마, 영화, 소설로 끊임없이 재해석, 재생산되어 일반 대중에게도 익숙한 소재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학문적으로는 어땠을까요? 2010년 <한중록>을 번역, 주석하면서 정병설 선생님은 몇 가지 의문을 품게 되었다고 합니다. "어떻게 이렇게 일차적인 해석도 잘못되고 사실관계도 맞지 않는 논거를 토대로 학문적 가설이 아놀 수 있었을까? 어떻게 몇 명이 계속 잘못을 증폭해가며 그릇된 학설을 정착시킬 수 있었을까? 왜 학계에서는 지금껏 그것을 제대로 검증하지 않았을까?" 정병설 선생님은, 사도세자가 미쳤다 하여 영조가 그를 죽일 수밖에 없었다는 '광증설'과 우수한 자질을 가진 사도세자가 약소 당파를 편들다가 억울하게 죽었다는 '당쟁희생설' 같은 논의가 있었으나 두 가지 설 모두 제대로 된 근거자료가 뒷받침되지 못했다고 보았습니다. <권력과 인간>은 이렇게 제대로 된 학문적 논의가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우리가 그동안 오독해온 사도세자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다각도로 분석하고자 한 첫 성과가 아닐까 싶습니다. 

  <권력과 인간>을 통해 맹비난을 받은 이덕일 소장측에서는 정병설 선생님의 논의에 대해 혜경궁 홍씨가 자기 집안을 변명하고자 쓴 <한중록>을 토대로 하고 있으니 신뢰할 수 없다, 노론사관(식민사관)이다 등으로 반박합니다. 하지만 노론사관(식민사관)에 대한 논의는 뒤로하더라도 <권력과 인간>은 <한중록>'만'을 토대로 하고 있지 않습니다.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이재난고> 등 당시의 다양한 사료를 두루 읽으며 사도세자 죽음의 진실에 조금이라도 다가가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진실이 무엇인지, 오늘날 우리는 100퍼센트 장담할 수 없습니다. 그저 남은 자료를 통해 진실에 조금이라도 가까이 가기 위해 애쓸 뿐이지요. 제대로 책을 읽지 않고, 인신공격성 발언을 하기보다 <권력과 인간>을 찬찬히 읽어나야 하는 것 아닐까요? 판단은 각자의 몫이지만, <사도세자의 고백>과 <권력과 인간>을 비교해서 읽어보는 것도 분명 흥미로운 독서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저 또한 책을 만들면서 두 책을 비교해서 읽어봤는데, 실록의 같은 부분이라 해도 독법이 전혀 달라 놀랐습니다. 요즘은 원문도 쉽게 열람할 수 있으니 세 텍스트를 비교해서 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권력과 인간>을 통해 만나는 조선의 어둠은 분명 불편하고 아픕니다. 권력을 위해 서로 이전투구를 하고, 권력 앞에서는 부모도, 자식도, 형제도 없습니다. 아버지 영조는 아들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둬 죽이고, 아버지 사도세자를 잃은 아들 정조는 아버지를 신원하기 위해 사실을 교묘히 편집해 아버지상을 새로이 만들어냅니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되고, 진실은 조금씩 왜곡됩니다. 가슴답답한 이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단순히 사도세자의 죽음만 읽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더 깊이 있게 이해하게 되고, 나아가 더 밝은 역사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얻게 됩니다. 가슴 아프긴 하지만 이 과정을 함께 나눌 이가 있다는 것은 분명 행복한 일이 아닐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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