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설권 제복경관 카와쿠보 시리즈 2
사사키 조 지음, 이기웅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11년 3월
품절


"다들 잘 알아 둬. 이런 댓글을 쓰는 인간일수록 자기 삶은 엉망진창일 수밖에 없어. 스스로를 타이르는 말을 남한테 하는 거야."
자신의 댓글 밑으로 그런 글이 달려 있다.
아케미는 낯이 뜨거워 견딜 수가 없었다.
자기 삶은 엉망진창. 스스로를 타이르는 말…….
사람들은 모든 걸 다 꿰뚫어보고 있단 말인가? 인터넷 안에서 가상의 자신이 한 발언마저 읽는 이들에게 속내를 간파당하고 있다면, 현실의 자신이 하는 언행과 태도에서는 훨씬 더 여실히 자신의 정체가 드러났다는 뜻이 아닌가. -149쪽

"그치? 살인을 저지르면 아케미도 끝장인걸. 날 죽여 봐야 아케미한테 남는 게 없으니까."
남는 게 없나? 번민의 씨앗이 사라지며 더 이상 괴로워하지 않아도 된다는 기대는 뭐였지? 남는 게 없는 짓이었나. 이 남자를 죽이고 그 자리를 잘 피하면 경찰에 체포되지 않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세상의 많은 살인자들이 저지르는 어리석은 실수 따위는 자신은 답습하지 않고 무사히 넘어갈 수 있으리라 굳게 믿었다. 혹독한 취조를 당해도 빠져나갈 자신이 있었다. 그 정도 지식과 정신력을 갖추고 있다고 믿었다. 그랬었다.
안일했다. 아케미는 그제야 자신의 계획이 안일했음을 깨달았다. 왜 방금 전까지는 그런 안일한 계획이 현실적인 해결책이라 믿고 있었을까. 그 방법 외에는 해결책이 없다고 확신했을까.-241~2쪽

전화를 끊고 나서 카와쿠보는 추락 사고를 일으킨 운전자를 생각했다. 그는 지금 어떤 상태일까. 부상으로 인한 통증과 출혈에 신음을 토하며 자신의 생명을 스멀스멀 뺏어 가는 한기에 벌벌 떨고 있을까. 아직 의식은 있을까.
미안하다. 카와쿠보는 창밖을 바라보며 고개를 저었다. 당신을 구출하러 갈 수 없다. 대자연의 맹위 앞에 우리 인간은 너무 무력하다. -351쪽

카와부로는 창가로 가서 실외 온도계를 확인했다. 영하 4도였다. 정말 추워졌다. 물론 영하 20도까지 떨어지는 1월의 추위와는 비교할 수 없다. 정전이 돼도 동사자가 몇 명이나 나올 추위는 아니다. 문제는 눈보라다. 인간의 사회적 활동을 모두 중지시킬 정도의 맹렬한 눈보라. 폭풍에 폭설까지 함께 몰아친다.
카와쿠보는 난로 곁으로 가서 난로 위에 얹어 둔 주전자에서 물을 따랐다. 조난 및 사고 관련 신고 전화가 4시 이후로 한 통밖에 없었다. 허나 실제로 한 건에 그쳤을 리가 없었다. 내일은 바빠지리라. -404쪽

카와쿠보는 울컥했다. 욕을 퍼붓고 싶은 마음을 간신히 억눌렀다. 관할 구역에서 살인 사건이 발생했다. 어젯밤 그 신고를 받고도 자신은 움직일 수 없었다. 지금 또 도주 중인 살인범에 대해 조직에서는 조속한 대응이 불가능하다고 말하고 있다. 이대로 있다가는 범인의 도주를 방치하게 된다.
나 혼자라도 할 수밖에 없다. 나는 이 마을의 주재 경관이다. 이 마을에서 일어난 범죄에 대해서는 가장 먼저 대응해야 할 책임을 지녔다. 조직이 시간 맞춰 움직일 수 없다면 혼자서라도 해야만 한다. 범죄 발생 현장인 펜션은 내 관할 구역 내에 있다. -47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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