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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경비구역 2 - 법의관
퍼트리샤 콘웰 지음, 홍성영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1월
평점 :
품절
오랜만에 만난 스카페타 시리즈라 나름 기대를 갖고 있었지만 처음에 보고는 이전 시리즈와는 달리 두께가 제법 두꺼워져 선뜻 손이 가지 않았다. 정작 읽으면 재미있을 것이라는 점을 알지만 그래도 왠지 두께에 겁을 먹었다랄까. 그러다가 그 두려움을 이겨내고 책을 잡았지만 이제 좀 재미있어질까하는 순간 책이 파본난 것을 알게 됐고 다시 내 손에 들어오기까지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그렇게 어렵게 읽어나간 <마지막 경비구역>은 정작 손에 잡고 읽으니 거침없이 읽어갈 수 있었다. (리뷰도 한 번 날렸으니 아마 나와 <마지막 경비구역>의 인연은 깊지 않은가보다.)
스카페타 시리즈의 11번째 이야기인만큼 이번 책에서는 기존의 시리즈와는 다른 면모, 예를 들어 앞으로 스카페타의 행방이나 태도의 변화 등이 잘 드러나고 있었다. 스카페타는 기본적으로 외부로부터의 고난을 이겨내고 자신의 요새를 지켜내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그 고난은 악질적인 범죄자에서부터,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 언론과의 대립, 정치적인 압박 등등 다양한 방식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그 모든 고난은 어디까지나 스카페타의 요새 밖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하지만 이 책에서 스카페타는 자신의 요새가 철저하게 짓밟히는 모습을 그저 멍하니 볼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녀는 무기력과 분노, 그리고 절망을 느낀다. 자신도 모르게 자신을 덮치는 분노, 자신도 모르게 코 앞에 다가온 위험. 기존의 시리즈에서 스카페타는 그 모든 감정을 자신 혼자 억누르고 조절하려고 했지만 이번 책에서는 남에게 자신의 감정을 털어놓기도 하고, 분노를 직접적으로 표출하기도 하는 등 좀 더 적극적인 자세를 보인다.
이 책의 내용은 바로 앞 권인 <흑색수배>와 이어진다. 등장하는 인물, 사건이 모두 이 책에도 등장한다. 때문에 <흑색수배>를 읽은지 좀 지난 난 처음에는 제법 갈피를 못 잡고 우왕좌왕하며 책을 읽어갈 수 밖에 없었다. (다시 책을 읽을 수도 있었지만 시간이 없었던지라) 혹 아직 이 책을 읽지 않은 독자라면 <흑색수배>를 읽고 바로 이 책을 연달아 읽으시길 권하고 싶었다.
스카페타 시리즈는 개별적으로 읽는 재미도 물론 있겠지만 세월이 흐름에 따라 변해가는 사람들의 관계도 제법 쏠쏠한 재미를 준다. 다른 이야기들에서는 마리노가 스카페타의 파트너처럼 늘상 붙어 다니며 재미를 더해줬는데 이번에는 어쩔 수 없이 스카페타와 비교적 가깝게 지내지 못하는 모습을 보인다. (물론, 그것은 마리노의 미안함에서 나온 행동이었지만) 기껏 만나서도 기껏 스카페타에게 화를 내고 목소리를 높이긴 하지만 마리노의 진심은 그렇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특히 마지막 부분의 마리노의 태도에서) 스카페타가 힘들 때 힘이 되어준 애너 박사의 숨겨진 사생활, 그리고 새로운 사업을 구상하는 루시 등. 각각의 인물들이 어떻게 변해가는가를 볼 수 있었다.
사실 엄밀히 말하면 이 책은 스카페타 시리즈의 다른 책들보다 다소 지루한 구석도 있었다. (이건 내가 <흑색수배>에 대한 기억을 반쯤은 까먹었기 때문일지도.) 지나치게 사건을 꼬아놓은 듯한 느낌도 들어 살짝 정신이 없기도 했고. 하지만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스카페타의 변화가 일어남을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 스카페타 시리즈의 독자라면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할 관문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이 변하기 위해서는 전환점이 필요한 법인데 바로 이 책이 스카페타의 전환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감정을 본격적으로 토로하고, 직업적인 면 외에서도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스카페타. 물론 그녀 앞에 아직도 수많은 난관들이 기다리고 있겠지만 새롭게 변한 스카페타가 어떻게 그런 사건에 대응할 지 궁금해졌다. 책을 읽을 때는 스카페타 시리즈도 이제 그만 읽어야하나라는 생각도 살짝 들었지만 역시 자신의 요새를 짓밟히고 빼앗긴 스카페타가 어떻게 앞으로의 생활을 이어갈 지 궁금해져서 다음 시리즈를 기다릴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마지막으로 이번 책에서 유독 고생을 많이 한 스카페타에게 심심한 위로의 말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