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제왕의 생애 (반양장)
쑤퉁 지음, 문현선 옮김 / 아고라 / 2007년 6월
구판절판


가는 길에 나는 마지막으로 부왕의 용안을 우러러보았다. 일찍이 천하를 쥐고 흔들었던 부왕, 용맹하고 오만하고 대범하고 여색을 밝혔던 부왕. 그가 이제 말라비틀어진 나무토막처럼 관 속에 누워 있었다. 나는 죽는 건 무서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예전에는 부왕이 죽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는 결국 죽었고, 말라비틀어진 나무토막처럼 거대한 관 속에 누워 있었다. -17쪽

제왕의 생애란 그렇듯 하잘것없는 말들을 견디며 쓸데없는 일을 하는 가운데 흘러가는 거라고. -21쪽

"그대는 참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나는 도무지 각공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섭왕인데, 왜 내가 모든 것을 참아야만 한단 말인가? 사실 그와는 반대로 나는 내가 싫어하는 모든 것을 부숴버리고 없앨 권리가 있었다. 오동나무 숲에서 들려오는 한밤중의 울음소리까지도. -24~5쪽

나는 갑자기 기분이 나빠졌다. 그래서 연랑을 끌어내리다시피 말에서 내리게 했고, 어서 금관과 용포를 내놓으라고 윽박질렀다. 나는 금관과 용포가 내게 얼마나 소중한 물건인지를 깨달았다. 이 짧은 시간 동안의 옷 바꾸기 놀이를 통해 나는 내가 그 제왕의 표지에 얼마나 많은 미련을 품고 있는지 깨달았다. 나는 짚더미 위에 엎드려 연랑이 말을 타는 모습을 보고 있을 때의 당혹스럽고 우울한 심정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를 알 수 없었다. 나는 문득 내 섭왕의 표지가 다른 사람의 몸에도 잘 어울리며, 심지어 더욱 위풍당당해 보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환관의 누런 옷을 입고 있으면 나는 어린 내시에 불과했다. 금관과 용포를 걸치고 있어야만 비로소 제왕이었다. 그것은 아주 무시무시한 경험이었다. -98쪽

나와 팽씨의 혼인은 이 위태로운 바둑판의 포석이었다. 의심할 나위 없이 그것은 위기를 벗어나기 위한 최후의 수단이었다. 일이 그렇게 진행되는 동안 나는 국난에 직면한 여느 국왕들과 다름없이 초조하고 불안한 심사를 끌어안고 번심전에 나가 문무백관이 벌이는 날카로운 논쟁을 지켜보며 아무 대책 없이 앉아 있었다. 나는 내가 무능하여 허울밖에 남지 않은 제왕이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다. 모든 것은 황보부인, 맹부인, 승상 풍오의 결정에 따라 진행되었다. 그래서 나는 입이 붙은 듯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146쪽

나의 위축되고 비관적인 감정 상태에 신경을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 누구도 당당한 섭왕이 이 비상시국에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하고 멀뚱멀뚱 앉아 있을 뿐이라는 데 주의하지 않았던 것이다. -146쪽

혼례식 전날 밤, 나는 기이한 꿈을 꾸다가 깨어났다. 나는 꿈에 새처럼 궁궐 지붕 위로 훌쩍 뛰어올랐다. 궁궐의 열여덟 개의 문이 순식간에 내 뒤로 스쳐 지나갔다. 나는 꿈속에서 흰 빛이 흐릿하게 반짝이는 공터를 보았다. 역시 흐릿하여 까만 점으로만 보이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공터 주위에 가득 들어차 있었다. 광대패의 줄타기 줄이 내 머리 위에서 흔들리고 하나의 목소리가 하늘 위를 맴돌며 끊임없이 울렸다. 줄을 잡아라, 올라가라, 줄을 타라, 올라가라, 줄을 타라. 나는 줄을 잡았다. 꿈속에서 나는 새처럼 가볍게 날아올랐다. 공중의 줄 위로 사뿐히 떨어졌을 때, 내 몸은 줄과 함께 흔들리기 시작했다. 앞으로 세 걸음, 뒤로 한 걸음. 나는 더할 수 없이 가볍고 상쾌했다. 더할 수 없이 자유롭고 즐거웠다. 그리하여 줄을 타는 동안 내 영혼이 가벼운 연기처럼 하늘 저편으로 둥실 떠올랐다. -148쪽

내가 무슨 빌어먹을 개 방귀만도 못한 왕이란 말이냐? 나는 하늘 아래 가장 유약하고 무능하며, 또한 가장 가련한 제왕이로구다. 어릴 때에는 유모와 환관, 궁녀 들이 하라는 대로 했고, 글을 깨우칠 무렵에는 승려 각공이 하라는 대로 했으며, 왕이 되어서는 황보부인과 맹부인이 하라는 대로 했다. 이제 나라의 정세가 크게 변하여 민심이 흉흉하고 여기저기서 반란을 일으키고 있으니 모두 다 늦었구나. 한 자루 칼이 내 목을 노리고 달려드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나는 그저 여기서 한숨만 내쉬고 있을 뿐이다. 연랑, 말해보아라. 내가 무슨 빌어먹을 왕이란 말이냐?-217쪽

나는 가난과 굶주림이 사람을 변화시킨다는 것을 알았다. 사람이 돈이 없어 죽을 지경이 되면 누구든 사람을 죽이고 물건을 뺏는 짓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왜 우리는 그들을 막지 못했을까? 왜 두 눈을 멀쩡히 뜨고 평생을 먹고 살아야 할 모든 재산을 순식간에 강도들의 손에 넘겨주었을까? -264쪽

우리 광대패가 지나가는 곳에서는 언제나 일종의 세기말적 향락의 분위기가 흘러넘쳤다. 사람들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앞다투어 공연장에 몰려와서는 소문으로 들었던 줄타기 재간꾼으로 변신한 제왕의 모습을 확인하고자 했다. 줄타기 왕 광대패는 하늘과 사람이 일으킨 재앙으로 죽어가는 그들의 삶에 한때의 즐거움과 한 모금의 생기를 선사했고, 그로 말미암아 터져나오는 갈채와 환호성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그러나 사람들이 폐위당한 제왕에게 깎듯이 인사를 올릴 때면, 그것만은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섭왕을 부르는 사람들의 환호성을 들을 때마다, 나는 예전에 내가 썼던 왕관이 여전히 수많은 사람들의 눈을 속이고 있는 것 같아 크나큰 서글픔을 느꼈다. 일찍이 머리에 왕관을 썼던 사람은 이미 오래전에 함정에서 빠져나와 멀리 왔건만, 궁궐 담장 밖의 이 죄없는 백성들은 아직도 그 검은 표범의 면류관에 속고 있는 것이었다. 거대한 사기극의 주요 인물이었던 나는 가까스로 나 자신을 구원했지만, 이 순박하고 우둔한 사람들까지 영원한 미망에서 건져낼 수는 없었다. -329~3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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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드를 보기 시작하고 비교적 초창기에 봤던 드라마였는데, 그 때만 하더라도 쿠도칸때문에 본 게 아니라 그 무렵에 이시다 이라가 쓴 <이케부쿠로 웨스트 게이트 파크> 원작을 읽었기 때문에 호기심때문에 봤던 기억이 난다. 이제와 새삼 IWGP를 보니 예전에는 알지 못했던 나름 호화 캐스팅과 쿠도칸 드라마에서 익숙하게 만나는 출연자들이 보여 꽤 즐기며 볼 수 있었다. 

  만사가 귀찮은 마코토. 허구언날 하는 소리라곤 "귀찮아", "졸라 귀찮아" 정도지만, 말과는 달리 귀찮은 일에 스스로 발을 내딛는 인물. 실상 이케부쿠로에서 가장 주먹이 강하지만 귀찮아서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고 그저 엄마가 하는 과일 가게이나 가끔 보면서 주로 친구인 마사와 함께 중학생들을 상대로 내기 볼링을 쳐서 돈을 뜯거나, 온갖 장난질을 벌이며 살고 있다. 나름 평온한 생활을 하고 있던 마코토는 이케부쿠로 웨스트 게이트 파크에서 우연히 만나 사귀게 된 리카가 연쇄 폭행범에 의해 살해 당하자 이를 해결하기 위해 뛰어든다. 그리고 잇달아 일어나는 마코토를 둘러싼 사건사고들.

  사실 이 드라마의 주인공은 마코토지만, 그보다 더 눈에 들어온 건 G-BOYS의 킹인 다카시였다. 쿠보즈카 요스케는 이전에 <핑퐁>이나 <란도리>, <롱 러브레터 표류교실>에서 본 적 있는데, 아무리 그래도 <IWGP>의 똘끼 넘치는 킹의 인상이 가장 강하게 남는 듯. 흐느적 흐느적거리면서 돌아다니는 폼새라 저래갖고 무슨 리더가 되겠나 싶지만, 의외로 할 때는 하는 성격이라 "역시 킹!"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마음에 들었다. 새삼 쿠보즈카 요스케가 끌렸는데, 아쉽게도 최근엔 별다른 활동을 하지 않는 듯. 

  주연인 나가세 토모야를 비롯해 앞서 언급한 쿠보즈카 요스케, 풋풋한 모습의 야마삐, 어설픈 야쿠자 역으로 나오는 츠마부키 사토시를 비롯해 카토 아이, 사토 류타, 코유키 등 나름 호화 캐스팅을 자랑하는(?) 드라마. 내용 자체도 흡입력이 강해서 한 번 보면 끝까지 달릴 수 밖에 없었지만, 출연진들을 보는 재미도 한 몫을 한 것 같다. 특히 야마삐는 사실 최근의 드라마에서는 그닥 귀엽다는 생각을 못했는데 IWGP에서는 정말 귀여워서 야마삐가 나올 때는 입가에 므흣한 미소를 띄고 봤다나 뭐라나. 

  사실 쿠도칸의 다른 드라마에 비해서는 원작이 있기 때문인지 비교적 쿠도칸의 색깔이 연한 느낌이라 아쉬웠다. 최근에 본 <유성의 인연>과 비교해 봤을 때도 아무래도 원작이 있는 쪽에서는 살짝 살짝 쿠도칸의 유머 코드를 섞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듯. 쿠도칸만의 매력을 온전히 느낄 수 없다는 건 아쉽지만 그 때문에 비교적 쿠도칸을 낯설어 하는 이들도 편하게 접할 수 있는 드라마가 아닐까 조심스레 생각해봤다. (쿠도칸은 호불호가 명확해 추천하기도 참 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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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쟈니스 차기 사장, 쟈니스의 실세 히가시야마 노리유키와 처음 만났던 드라마. 제목에서 느낄 수 있듯이 음식과 관련한 드라마라 그런지 보는 내내 군침을 꼴깍꼴깍 삼키며 보고, 보고나면 적어도 "おいしい(맛있다)". "いただきます(잘 먹겠습니다)" 요 정도의 생활(?) 일어회화를 익힐 수 있는 드라마. 


  요코하마의 한 허름한 창고에 위치한 홈즈 에이전시. 이 곳에 어느 날 오너의 임명으로 미지의 사나이인 타카노 세이야가 찾아오게 된다. 어떻게 다 위에 넣을까 싶을 정도로 많은 음식을 먹고, 또 먹고, 또 먹는 타카노. 이 때문에 사람들을 그를 '걸신들린듯 먹는 탐정' 줄여서 쿠이탕(식탐정)이라고 부른다. (본인도 이 별명에 만족스러워하는 눈치) 사건 현장에 남겨져 있는 초밥을 먹고 범인을 알아내는 사건에서부터 시작해서, 갖가지 사건들을 음식을 통해 해결해내는데...



  <절대미각 식탐정>이라는 원작 만화가 있지만, 원작과는 주인공의 설정만 비슷할 뿐 거의 드라마 오리지널이라고. 사실 정통 추리물으로 보기엔 트릭이 빈약하지만 그런 부족함을 매 회 등장하는 맛있는 음식들로 채우고 있다. 그리고 또 하나. 쿠이탕 외에 이 드라마를 채워주는 캐릭터들. 쿠이탕을 비롯해 영 믿음직스럽지 못한 료스케, 홈즈 에이전시 일원에게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주는 쿄코, 겉모습은 명탐정 코난인데 이름은 긴다이치(김전일)인 하지메군, 그리고 또 하나의 콤비인 모모짱과 이가라시까지. 저마다 개성있는 인물들임에도 잘 어울려져 드라마의 재미를 더했다. 특히 모모짱이 하는 "이가라시~!"라는 대사가 환청으로 들릴 정도로 인상에 남았다. 



  1기에서부터 시작해서 홍콩에서 펼쳐지는 이야기인 SP, 홈즈 에이전시의 재건을 시작하는 2기까지 비슷비슷한 구성이었지만, 그 속에서 재미와 감동을 느낄 수 있어서 지루하지 않게 본 것 같다.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그 생명을 받는 것'이라던지, 쌀 한 톨이라도 그 속에 녹아있는 사람들의 피와 땀을 생각하며 감사히 먹자는 등의 다소 교훈적인 부분도 있어서 순간 초딩이 된 듯한 느낌도 들었지만 전체적으로 코믹하게 봤다. 특히 2기에서는 쿠이탕, 료스케, 긴다이치가 트리오 더 샤킹이라는 유닛을 구성해서 엔딩곡을 맡았는데 이게 또 은근 매력있었던. 아쉽게 2기도 끝나버렸지만, 언젠가는 쿠이탕이 다시 돌아와줬으면 하는 마음이 남았다. 



덧) 보고 나서 먹고 싶어진 마파두부와 타코야끼, 초밥. 가츠동 등등. 아. 배고파. 사진은 그 중에서 유일하게 캡쳐로 남은 타코야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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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9-01-03 0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걸 드라마로 만들다니...주연 남우 위장의 울부짖음이 들리는 것 같군요.

이매지 2009-01-03 01:27   좋아요 0 | URL
정말 보는 내내 음식을 달고 살던 남주 ㅎ
그렇지만 식탐정이라는 이미지에 안 어울리게 은근 몸이 탄탄하더군요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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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09-11-01 2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미, 이매지님 책 정말 많이 읽으시는구마요.
올해 말까지 150권은 읽으시겠습니다요.
<지하철>이랑 <밤의 의미> 어떨까 싶네요. 땡기는데요?^^

이매지 2009-11-01 22:09   좋아요 0 | URL
지하철은 좋았구요,
밤의 의미는 빅토리아 시대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재미있게 읽으실텐데,
그렇지 않다면 약간 근성작이예요 ㅎㅎ
요새 바빠서 통 책을 못 읽네요 ㅠ_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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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마가 얼마 전에 홈쇼핑에서 구입하셔서 한 번 써봤어요. 사실 참존의 이미지는 너무 나이 들어보여서 20대가 쓰기엔 좀 부담스럽지 않을까 싶었는데, 예상과는 달리 의외로 무난하게 쓸 수 있는 스킨인 것 같아요. 
 
 빨간 케이스가 고급스러워 보이는 제품인데, 내용물은 약간 뽀얀 느낌이 드는 흰색이었어요. 향은 딱히 거북스럽지는 않았지만, 딱히 좋지도 않은 무난한 느낌이었어요. 스킨의 점성은 스킨과 에센스의 중간 정돈데 그렇게 되직하지는 않아서 주르르 흘러 내리더라구요. T존이 지성이라 처음에 발랐을 때 은근 유분기가 있는 것 같아서 별론가 싶었는데 의외로 빨리 흡수되서 좋더라구요. 흡수되고 나면 보들보들한 느낌이 남아서 좋네요. 겨울이라 살짝 무거운 제품을 써도 될 것 같아서 쓰고 있는데 별 탈없이 쓰고 있네요. 별다른 피부트러블도 없고, 뭐 달리 흡잡을 구석없는 무난하게 쓸 수 있는 제품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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