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미 일본에서는 서점직원들이 뽑은 책으로도 뽑힌 바가 있는 <박사가 사랑한 수식>을 영화로 만든 이 작품은 원작의 내용에 비교적 충실하여 색다른 맛은 없었지만 오히려 잔잔하게 볼 수 있어서 좋았던 것 같다. 내용을 간략하게 얘기한다면 기억이 80분밖에 유지되지 않는 수학박사의 집에 가정부로 들어가게 된 여자와 그의 아들(평평한 머리모양 탓에 루트라 불린다). 그리고 수학박사의 우정이 잔잔하게 그려지는 영화이다.

이전에 접한 기억상실과 관련된 영화인 <메멘토>에서 주인공은 자신의 기억을 붙잡아두기 위해 온 몸에 기록을 한다. 하지만 이 영화 속의 박사님은 간략한 메모를 옷에 매달아놓는 정도로 그친다. 그렇기때문에 박사의 모습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볼 수 있는 할아버지처럼 별 거부감없이 다가온다. 기억이 80분밖에 유지되지 않기에 그는 매일 찾아오는 가정부와 매일 새롭게 인사를 나누곤 하지만 그는 비록 자신의 기억은 사라질지언정 가정부와 그의 아들 루트에게는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교훈을 안겨준다. 그가 안겨준 교훈인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라 마음 속에 있다는 어찌보면 단순할 수도 있지만 단순하기에 오히려 더 와닿을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중간중간 박사가 드는 수학이야기들. 예를 들어, 우애수나 계승, 유한직선, 그리고 모든 숫자를 보호하고 포용한다는 의미의 루트에 이르기까지. 이 모든 이야기들은 수학도 어렵지 않구나, 숫자는 늘 우리 주위에 자리하고 있었구나하는 감상들을 느낄 수 있게 해줬다. 소설을 영화로 만들었을 때 대개 실망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 영화 같은 경우에는 영화 나름대로의 만족감도 좋은 듯 싶었다. 크게 다른 점이라면 소설에서는 가정부가 이야기를 이끌어가지만, 영화에서는 가정부의 아들인 루트가 이야기를 이끌어간다는 정도? 수학이라는 다소 어렵게 느껴지는 소재를 다루고 있지만 그보다는 인간의 내면을 다루고 있기에 되려 더 감동적으로 볼 수 있지 않았나 싶었다. 일본 영화 특유의 잔잔함이 느껴졌던 영화였다. 책과 비교해서 읽는다면 재미와 감동이 배가 되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