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려라, 아비
김애란 지음 / 창비 / 2005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을 읽게 된 건 순전히 입소문때문이었다. 잇달아 올라오는 호감이 가득 담긴 리뷰들, 김영하의 추천. 그것만으로 한국여성작가를 별로 좋아하지 않던 내가 이 책을 집어들게 됐다. 하긴. 작가가 80년생이기에 내심 '얼마나 잘 썼나 봐볼까'라는 마음도 없지 않게 작용하긴 했지만.

  표제작인 <달려라, 아비>를 시작으로 이어지는 김애란의 이야기들에는 사회로부터 소외된 사람들이 등장한다. 아버지의 정을 느끼지 못하고 자란 주인공이 아버지는 지금도 어디선가 달리고 있을 것이라고 믿으며 살아가는 <달려라, 아비>, 동네에 있는 세 군데의 편의점의 방문을 통해서 A편의점은 점장이 말이 너무 많아서, B편의점은 점장이 지나치게 불친절해서, 결국 C편의점에 자주 가게 된 그녀. 계산원과 그녀사이에 오가는 대화는 지극히 사무적이기에 그녀는 그 관계에 만족한다. <그녀가 잠 못 드는 이유가 있다>에서는 소심하기 짝이 없는 여자가 (그녀도 A형이란 말인가) 밤마다 누워서는 지난 실수때문에 잠을 못 이루고, 그녀에게 우연히 아버지가 찾아와서는 TV만 하루종일 보고 있다. <종이 물고기>에서는 온 방을 포스트잇으로 채우며 자신의 세계에 갇힌 한 사내의 이야기가 등장하고, <노크하지 않는 집>에서는 1,2,3,4,5번 방에 사는 다섯 여자의 이야기가 그려진다. 그녀들은 직접 얼굴을 대면하지도 않고 포스트 잇으로 의사를 전달할 뿐 최대한 서로 마주치는 일을 피하면서 살고 있다.

  주인공들은 이처럼 하나같이 소외된 환경속에서 스스로를 방치하고, 거기에서 빠져나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세상은 삭막하고, 그들은 삭막한 세상에 너무도 익숙해져버린 인물들이다. 그들의 소외된 삶. 어쩌면 내가 살고 있는 삶일지도 모르겠다. 한 동네에서 살면서 얼굴을 모르고 사는 사람은 수없이 많고, 자주 보는 얼굴이라고 할지라도 이웃 간에 인사를 나누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그저 익숙한 얼굴이라도 스쳐지나가는 모습들. 오히려 아는 척을 한다면 '저 사람 왜 나한테 아는 척을 하는거지?'라고 마음 속에 벽을 쌓고는 그 사람이 멀리 보이면 괜히 길을 돌아서 가기도 한다. 그녀가 말하고 있는 주인공들이 나의 생활과 어떤 면에서 맞닿아 있어서일까 왠지 씁쓸해지면서도 그들의 입장에 동감할 수밖에 없었다.

  김애란의 소설에 대한 만족감은 내 기대감이 너무 컸던 탓인지 그리 높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조용히 문장을 통해서, 이야기를 통해서, 내가 그동안 가지고 있던 한국 여성 작가에 대한 편견을 깨주었고, 앞으로 그녀가 어떤 작품으로 다시 찾아올 지 기대하게끔은 해주었다. 몇가지 부족한 점 같은 것은 괜찮은 작가 한 명을 만난 것만으로도 충분히 커버가 될 만큼 괜찮은 작품이었다. 젊은 작가 특유의 개성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아직 변질되지 않은 싱싱한 작품이었다.


댓글(3)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야클 2006-01-24 0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아주 재미있게 봤어요. ^^

세실 2006-01-24 09: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 저두 궁금해지는데요~~~

이매지 2006-01-24 1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야클님 / 재기발랄하긴 했어요 ^-^
세실님 / 괜찮은 책이예요~세실님도 읽어보셔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