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인터넷에 손을 대지 않는 이유는 물론 컴맹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개인이 익명으로 글을 쓰고 이야기를 나눈다는 점 때문이다. 처음에는 익명이니까 평소에 못하던 욕이나 푸념같은 걸 맘 내키는 대로 토로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내가 그렇게 생각하면 남들도 그렇게 생각하는 게 당연한 이치니, 결국 숨어서 서로 남의 욕이나 하며 시간을 보낼 거라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친구의 말을 들어보면 모두 그렇게 악의에 가득 찬 게시판만 있는 건 아닌 듯 했다. 개중에는 적당한 거리를 두고 다정하고 진지하게 대화를 나누는 사이트도 있는 듯 했다. 친구의 표현대로라면 그런 곳은 '선의로 넘치는 장소'인 듯하다. 그런 사이트에서는 서로에게 고민을 털어놓고 진심으로 동정과 성원을 보낸다고 한다. 때로는 "나도 그렇게 힘든 때가 있었어요. 기운내세요" "모두들 그렇군요. 정말 고맙습니다"라는 등의 진지한 이야기를 나누는 데 느닷없이 사이코 같은 사람이 나타나 "으흐흐, 내 페니스를 빨고 싶지"라고 지껄여댈 때도 있지만, 물론 그런 족속들은 철저히 배척당하는 모양이다. 그곳은 선의를 가진 사람만이 출입할 수 있는 자유로운 공간이라고 한다. -9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