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적인 추리소설.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
페터 회 지음, 박현주 옮김 / 마음산책 / 2005년 8월

  추리소설을 읽을 때 가장 주의하는 점 중에 하나는 내용에 대한 사전적 지식을 되도록이면 얻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다. 그 때문에 알라딘에서 많은 분들이 스밀라, 스밀라. 거의 유행처럼 그녀의 매력에 대해서, 그리고 이 책이 다시금 나온 것에 대해서 얘기했지만, 이 책에 대해서 아는 것은 그저 스밀라라는 매력있는 여자가 주인공이라는 점 뿐이었다. 오죽했으면 책을 읽고서야 '제목에서 말한 그 눈이 그 눈이었구나.'라고 생각을 했을까. 

  거의 백지상태에서 시작한 나와 스밀라와의 만남은 굉장히 오랫동안 이어졌다. 달리 재미가 없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책 자체가 빨리 읽는 게 어려운 책이었다. 즉, 이 책은 맛있다고 배가 터질 때까지 미친듯이 먹어대는 책이 아니라, 조금씩 조금씩 맛을 보면서 질리지 않게 먹을 수 있는 책이었던 것이다.

  처음에는 스밀라가 이사야의 죽음에 대해서 이리저리 파헤칠 때에 '왜 스밀라는 그렇게 이사야의 죽음에 대해서 저리도 집착을 할까?'라는 생각을 했었다. 자기 자식도 아닌데 그녀는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 그녀의 목숨까지 바친다. 그런 행동에 대한 답은 스밀라를 키운 어머니의 존재나 스밀라의 이사야에 대한 기억들을 통해서 찾을 수 있었지만 그래도 내가 스밀라와 같은 상황에 처해있었더라면 그렇게까지 못할 것 같다. 

  그녀는 우리가 흔히 여자에게서 기대하는 덕목들. 예를 들어, 연약하고 보호해주고 싶은 그런 느낌. 그런 것은 전혀 가지고 있지 않다. 그녀는 그녀의 삶을 오롯이 살아가고, 남성다운 강인함을 가지고 있다. 남이 함부로 침범할 수 없는 그녀만의 세계를 확실하게 구축하고 있는 그녀는 정말인지 매력적이었다. 능동적인 삶을 살고 있지만, 고독하고 우울함을 지니고 있는 그녀는 정말인지 내가 만나본 소설 속 여자 주인공들 중에 최고의 매력덩어리가 아닐까 싶었다.

  이 책의 장르는 추리소설이다. 하지만, 그런 추리소설이라는 장르에 집착을 하고 끊임없이 긴장감을 유지하는 것보다는 책 속에 등장하는 시적인 구절구절들을 곱씹어보는 것이 더 좋을 듯 싶다. 추리소설로의 긴장감이랄까 그런 점에서는 내가 느끼기에는 조금 부족했지만 인간의 내면에 대한 고찰, 그리고 추구하고자하는 어떤 것에 대한 집착, 광기, 문명에 대한 비판, 그리고 약간의 학문적인 이론들. 그런 일련의 내용들이 아무도 밟지 않은 하얀 눈 위에 찍힌 발자국들처럼 선명하게 그리고 깔끔하게 보여졌기 때문이다.

   돌아오는 겨울. 눈이 내리는 어느 날에 길을 걸으며 스밀라를 생각하게 되지 않을까? 그 때 다시 스밀라를 만나 그녀의 매력에 다시금 빠져봐야겠다. 

   
  여담이지만, 책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이름이 조금은 낯설 언어로 되어있었기 때문인지 종종 헷갈리곤 했었다. 뒤로갈수록 정신차리긴 했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