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큐브 예술영화 프리미어 페스티벌' 라인업을 쭉 보다가 어쩌다보니 최근 자꾸 얽히게 되는 <안나 카레니나>를 상영하길래, 그래, 나도 이 참에 오랜만에 영화나 몰아서 보자, 하고 <안나 카레니나>를 전후로 상영하는 영화를 쭉 훑었다. 그중에 눈에 들어온 영화가 <엔젤스 셰어>와 <디테일스>였는데, 호기롭게 세 편을 같은 자리에서 연달아 볼까라는 생각도 잠시 했으나 허리 건강을 생각해 <엔젤스 셰어> <안나 카레니나> 두 편만 예매했다. 네이버 영화 소개(부산국제영화제 때 소개로 보임)에서도 씨네큐브 영화제 작품 소개가 뜬구름 잡는 듯해서 그저 거장 답지 않은 유머가 있는 영화, 정도로만 기대했는데 보는 내내 낄낄대기 바빴다.
어린 시절부터 원수처럼 지내는 동네 친구와 싸우다 잡힌 로비. 전적이 있는 터라 원래대로라면 교도소에 들어가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지만 임신한 여자친구 때문에 개과천선하고 있다는 변호로 가까스로 지역봉사활동으로 마지막 기회를 잡는다. 로비는 그곳에서 자신처럼 그냥 그런 밑바닥 인생을 사는 친구들과 어울리기도 하고, 자신을 하나의 인격체로 대해주는 지역봉사활동 담당 직원과 교류하면서 불안하고 막막하지만, 그리고 아무도 믿어주지 않지만 어떻게든 자신의 삶을 바꿔보려 한다. 그러던 중 우연히 봉사활동 담당자와 위스키 양조장에 견학을 다녀온 로비는 위스키에 관심이 생겨 재미삼아 공부하다가 자신이 위스키 감별에 재능이 있음을 알게 된다. 그러던 중 곧 희귀한 위스키가 경매에 나와 어마어마한 가격으로 팔릴 예정이라는 소식을 듣고는 친구들과 위스키 탈취라는 기상천외한 계획을 세운다.
사람도, 환경도 생동감과는 거리가 먼 마을. 여자친구 그리고 곧 태어날 아기와 함께 지낼 곳은커녕 혼자 지낼 방 한 칸 없이 친구 집을 떠돌며 사는 로비는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살고 싶어한다. 하지만 그를 얽매고 있는 과거는 그를 쉽게 놓아주지 않는다. 자신의 힘으로 얻은 것은 아니지만 잠시나마 평범한 삶을 살 수 있는 기회를 얻지만 그마저도 자신의 의지와 없는 일 때문에 박탈당한다. 그렇게 끊임없이 자신의 발목을 붙잡은 과거를 떨치게 해준 것은 바로 위스키였다. 자신의 재능을 우연히 알게 돼 이를 살려 인생의 소소한(?) 역전을 꿈꾸는 모습은 그 상황이 지극히 불법적이라 하더라도 일단은 유쾌하다. 윤리적 잣대를 엄격하게 들이댄다면 사실 말도 안 될 터지만, 관객들도 어느샌가 공범자가 되어 이 악동들이 맞이한 비극(?) 앞에서 함께 탄식하고, 그들과 함께 웃고 즐긴다. (그러고보니 관객들이 이구동성으로 탄식하는 모습도 정말 오랜만에 경험했다.)
사실 그냥 영화 시간 맞춰서 골라잡은 영화였지만 얻어걸린 게 잭팟(!)이라 연말에 좋은 선물 하나 받은 기분이었다. (오죽했으면 바쁜 와중에 시간을 쪼개서 귀차니즘을 딛고 글까지 쓰고 있겠는가.) 물론 영화가 관객에게 어떤 메시지를 던져준다거나, 감동 또는 공감을 이끌어내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때로는 관객과 영화 속 주인공들이 이렇게 함께 웃을 수 있는 영화도 필요하지 않을까 싶었다. (게다가 그냥 웃기기'만' 하는 것도 아니다.) 조금 지쳐 있는 내게 괜찮다고, 그냥 웃어넘겨버리라고 장난쳐주는 친구 같았던 영화. 찾아보니 2013년에 정식으로 개봉할 것 같던데, 그때 다시 한 번 이 악동들을 만나러 갈 생각이다.
덧) 영화를 보고 나오면 어느샌가 흥얼거리게 되는 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