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저택 사건
조세핀 테이 지음, 권영주 옮김 / 검은숲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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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 년 전, 『진리는 시간의 딸』을 읽고 난 뒤 조세핀 테이의 매력에 빠져 다른 작품이 없는지 찾아봤다. 하지만 『진리는 시간의 딸』 외에 국내에 번역·출간된 다른 책은 없었고, 일본 미스터리가 대세인 흐름 속에서 조세핀 테이 같은 영미 고전미스터리 작가가 새삼 소개될 수 있을까 하며 내심 포기했었다. 그렇게 조세핀 테이를 잊어갈 즈음, 신간 도서 목록을 살피다 우연히 『프랜차이즈 저택 사건』을 발견했다. 아, 얼마나 기다려온 조세핀 테이던가! 마침 좋은 분께서 책선물을 주신다고 해 넙죽 받아 이번 주말, 오랜만에 고전 미스터리의 매력에 푸욱 빠졌다.

  입양됐긴 하지만 제대로 된 집에서 사랑받으며 자라난 열다섯 소녀 베티 케인. 방학을 맞아 고모댁에 놀러간 그녀는 개학한 이후에도 돌아오지 않고 실종된다. 그리고 4주만에 온 몸에 멍자국을 안고 돌아온 소녀. 그녀는 자신이 프랜차이즈 저택이라는 곳에 납치·감금되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정작 프랜차이즈 저택에 사는 샤프 모녀는 소녀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다고 하지만 소녀는 기가 막힐 정도로 저택의 세부를 세세히 설명한다. 주변에 집이라고는 한 채도 없는 허허벌판 위에서 떨어져 살아 마을 사람들에게 마녀 취급을 받아온 모녀, '키스라고는 성경책 말곤 해본 적이 없는 애'처럼 순수한 모습의 소녀. 이들의 진술은 엇갈리지만 소녀의 진술이 너무나 명쾌했기에 사건은 의심할 여지가 없이 모녀의 소행으로 흘러간다. 세상이 모두 샤프 모녀에게 등을 돌리지만 우연히 이 사건을 변호하게 된 로버트 블레어는 이들을 신뢰하기 시작하고, 베티 케인의 진술과 알리바이를 깨기 위해 탐정으로 나서 조사를 시작한다.

  <타임스>가 선정한 '위대한 범죄소설작가 50인'에 당당히 이름을 올릴 정도로 영미 추리소설계에서는 인정받고 있지만 국내에 소개된 작품은 달랑 『진리는 시간의 딸』 한 권뿐이라 아쉬웠던 조세핀 테이. 이번에 소개된 『프랜차이즈 저택 사건』은 영국추리작가협회, 미국추리작가협회에서 선정한 100권의 도서 중 하나일 뿐만 아니라 영화와 TV드라마로도 제작된 작품으로 탄탄한 스토리가 보증된다. 18세기 영국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엘리자베스 캐닝 유괴 사건'을 착안한 이 작품은 결국 미결로 남은 실제 사건을 작가 나름대로 재해석해 보여준다. 국내 독자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엘리자베스 캐닝 유괴 사건'이 낯설지만 실화를 토대로 하고 있다는 것은 이 책을 읽는 데 있어서 곁가지 이야기에 불과하다. 『프랜차이즈 저택 사건』은 사건 자체의 자극성에도 눈길이 가지만 이 사건을 둘러싼 '캐릭터'가 매력적이다.

  시체 한 구도 없이 그저 무고죄를 증명하는 데 초점이 맞춰지는 이야기는 크게 보면 샤프 모녀와 베티 케인의 대립이 중심이 된다. 대체 무엇을 얻기 위해 거짓말을 하는 것인지, 왜 하필 그들이 타깃이 된 것인지를 추적해가는 과정도 흥미롭지만 그보다 더 흥미로운 것은 소위 '마녀사냥'이라고 하는 샤프 모녀를 향한 시골 사람들의 공격이다. 옐로페이퍼 격인 지역 신문에 이 사건이 소개되며 벌어지는 이야기는 1948년이 아니라 2011년의 일이라 해도 믿길 정도로 생생하게 다가왔다. 말단은 자극하는 추리소설에 익숙한 독자에게 『프랜차이즈 저택 사건』은 조금은 심심한 추리소설일 수도 있다. 유혈이 난자하는, 정교한 트릭을 깨부수는 류의 추리소설도 아니고 현대 법정 스릴러에 비해서 법정신도 약하다. 하지만 자극적인 맛은 없어도 먹다보면 자꾸만 생각나는 집밥처럼 그 담백한 매력에 빠져들게 된다. 오랜 기다림 끝에 다시 만나게 된 조세핀 테이.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또 한 번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오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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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NY 2011-08-30 2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리는 시간의 딸]에 대한 기대가 커서인지 막상 읽고나니 그저 그랬는데, 이거 재밌을 거 같네요.

이매지 2011-08-30 22:53   좋아요 0 | URL
살인사건이 일어나지도 않았는데 긴장감이 유지되더라구요.
약간의 로맨스(?)도 곁들여져 애거사 크리스티가 생각나기도 했어요 ㅎㅎ

pjy 2011-08-31 1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최근 이야기보다는 그나마 기증전결이 제대로 있는 고전소설이 좋아요^^

이매지 2011-08-31 11:20   좋아요 0 | URL
요새는 정말 트릭 위주로 흘러가는 것 같아요.
고전은 또 고전 나름의 탄탄한 맛이 있죠 :)

카스피 2011-08-31 2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테이의 작품이 번역되었네요^^

이매지 2011-09-01 12:47   좋아요 0 | URL
네, 카스피님도 어서 읽어보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