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비의 육아일기를 읽다 - 단맛 쓴맛 매운맛 더운맛 다 녹인 18년 사랑
김찬웅 엮음 / 글항아리 / 2008년 4월
평점 :
절판



  한동안 역사스페셜, 역사추적 같은 교양 프로그램에 빠진 적이 있었다. 그동안 잘 몰랐던 이야기에 대해 들을 수 있다는 점이 가장 매력적이었는데, 그 많은 이야기 가운데 '조선선비의 육아일기'라는 내용이 유독 기억에 남았다. 남녀의 역할이 엄격히 구분되었던 조선시대에 직접 손주를 키워내고, 그것을 기록을 남긴 한 사대부의 남긴 책 <양아록>. 그 이야기에 흥미를 느꼈기에 엔딩 크레딧 속에 소개되는 참고 도서에 주의를 기울여 이 책을 만나게 됐다.

  <선비의 육아일기를 읽다>는 이문건의 기구한 삶에서부터 시작된다. 과거 급제자가 수두룩한 명문가 사대부 이문건.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잃는 것에서부터 시작해 작은누나와 존경하는 스승 조광조, 두 형, 어머니, 자식들의 잇달은 죽음. 그렇게 이문건은 늘 죽음과 맞닿은 삶을 살아야 했다. 그런 고단하고 외로운 삶이었기에 그의 희망은 하나 뿐인 손자였다. 늘그막에 얻은 귀하디귀한 손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정도로 손자에게 애정을 쏟았지만 한편으로는 가차 없이 잘못을 꾸짖기도 한 따뜻하지만 엄한 할아버지. 그것이 바로 이문건이었다. 그저 손자가 군자로 자라나 쇠퇴해가는 가문의 계통을 이어주기를, 손자가 인륜을 어기지 않는 사람이 되고 임금을 도와 백성을 위한 정치를 펼쳐주기를 바라며 그는 자신이 죽은 뒤에도 손자가 할아버지의 뜻을 잊지 않게 하기 위해 기록을 남겼다.  

  몇백 년 전의 이야기지만, <선비의 육아일기를 읽다>는 단순히 사대부의 육아일기라는 의미가 아니더라도 오늘날 자식이 있는 부모라면 한번쯤 읽어볼 만한 메시지를 갖고 있다. 무엇이 참된 가정 교육인지, 무엇이 우리가 아이를 키우며 지켜야 할 원칙인지 이문건은 자신의 손자 뿐 아니라 오늘날 독자에게도 그 메시지를 전한다. 이문건의 손자 숙길은 할아버지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여느 아이처럼 공부보다는 놀이에 관심을 가졌고, 덤벙거리고 놀다가 생채기가 나서 돌아오기 일쑤였다. 좀더 나이가 들자 폭음을 하곤 했다. 자꾸만 엇나가려는 손자에게 이문건은 때로는 글로, 때로는 매로 자신의 마음을 전달했다. 아이를 엇나가게 하지 않기 위해 자신의 가슴이 찢어질 것 같아도 매를 들어야만 한 할아버지의 모질지만 따뜻한 마음. 그 절절하고 따뜻한 이야기가 <양아록>에 남아 있었다. 

  이 책은 총 세 부분으로 나눠진다. 1부에는 이문건의 굴곡진 삶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가 어떤 성품을 가진 인물이었는지, 그가 어떻게 <양아록>을 쓰게 된 것인지, 손자와는 어떤 일들이 있었던 것인지 등 그의 삶을 조망한다. 역사학자 또는 국문학자가 아닌 영화 시나리오 작가, 대기업 사보와 출판사 편집장을 거친 이력 때문인지 이야기는 쉽게 읽힌다. 2부에서는 조선시대의 과거제도, 여묘살이 같은 문화적인 배경이나 고사와 관련된 이야기를 풀어간다. 2부까지 <양아록>의 원문은 등장하지 않는다. <선비의 육아일기를 읽다>는 <양아록>을 번역한 책이 아니라 <양아록>을 바탕으로 이문건의 삶을 재구성한 책이기에 <양아록>을 제대로 만나고자 한 독자에게는 아쉬움이 남을 수 있는 부분이다. 그런 이들을 위해 부록으로 <양아록> 원문이 수록되어 있다. 한문으로 남은 기록이라 일반 독자가 해석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을 수 있지 않을까 싶지만, 한 문장 한 문장 직접 풀어가며 손주를 향한 할아버지의 따뜻한 속내를 되짚어보는 것도 분명 의미가 있을 듯했다. 예나 지금이나 자식이 잘되기만을 바라는 것은 모든 부모의 마음이구나 싶은 생각을 하며 함께 웃고 함께 안타까워하며 읽어나간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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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1-02-17 1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월을 지난 지식들은 확실히 존중하고 되새길 값어치들이 있더군요.
사대부의 육아일기라니, 굉장히 흥미가 가네요.

이매지님, 좋은 하루 되세요.

이매지 2011-02-17 13:17   좋아요 0 | URL
손자 하나 바라보는 이문건의 안쓰럽기도 하고,
그 손자를 향한 마음에 애틋해지기도 하고 그랬어요^^
마녀고양이님도 좋은 하루 보내세요! :)
(프로필 사진 바꾸셨네요? ㅎㅎ)

순오기 2011-02-19 0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그 시대에도 손주를 양육하며 기록을 남긴 할아버지가 계셨군요.
역시 선비들은 멋진 구석이 있어요~ ^^

이매지 2011-02-19 09:08   좋아요 0 | URL
선비라면 깐깐한 느낌이 드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인간미가 느껴졌어요 ㅎ

유부만두 2011-03-11 14: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우리집 막내 홍삼 영양제 이름이 <양아록>인데요!

이매지 2011-03-11 18:01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 아마 여기서 힌트를 얻은(?) 이름인가보군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