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사람들이란 재혼하지 않은 여성보다는 재혼한 여성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은 법이다. -10쪽
사실 이런 생각을 한 지는 오래되었는데, 모든 직업이 그 나름대로 꼭 필요하고 고귀한 건 사실이지만, 건강과 멋진 외모를 한껏 누리는 것은 특별한 사람들만의 몫이라고 믿어요. 그건 직업을 갖지 않아도 되고, 시골에서 자기 좋은 시간에 자기 하고 싶은 일을 정해진 방식대로 하면서, 돈을 더 벌려고 괜한 고생을 하지 않아도 물려받은 재산으로 살아갈 수 있는 그런 사람들만의 몫이라는 거죠. 한창때가 지나서도 조금도 풍채가 허물어지지 않는 경우를 다른 부류의 사람들에게선 본 적이 없거든요. -31쪽
신중을 기하기 위해 걱정만 앞세우는 건 인간의 노력에 대한 모독이며 신의 섭리에 대한 불신이 아닌가. 그러니 일찍 찾아온 열렬한 사랑과 미래에 대해 낙관적인 믿음을 가지는 게 옳지 않은가. 이렇게 감동적인 연설을 토해내는 앤 엘리엇이 될 수도 있었을 것을! 아니, 최소한 그녀의 마음만은 이러한 소망으로 가득했다. 어려서는 신중하게 행동하도록 강요받은 그녀가 나이 들면서 로맨스를 배웠으니, 부자연스러운 시작에 따른 자연스러운 결과가 아니었을까. -42쪽
한마디로 머스그로브 자매는 집안에서는 소중한 여식이었고, 밖에서는 모든 사람들의 총애를 받는 존재였다. 앤은 이 두 사람이 자기가 아는 이들 가운데 가장 행복하다고 늘 생각했다. 그러나 사람이란 타인과 자신을 바꾸고 싶은 마음을 달래줄 나름의 우월감을 갖고 있게 마련이다. 앤 또한 마찬가지였다. 이들 자매의 즐거움을 다 준다 해도, 자신이 가진 더 교양 있고 격조 높은 정신세계를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다. 다만 꼭 한 가지 부러운 점이 있다면 그것은 이들 자매가 더할 나위 없이 서로를 아끼고 이해하며 조화롭게 지낸다는 사실이었다. 이는 앤이 자신의 언니나 동생과 가져보지 못한 관계였다. -57쪽
모든 것을 단념한 지 어언 팔 년의 세월이 흘렀다. 세월에 묻혀 희미해져버린 줄 알았던 가슴떨림을 다시금 느끼다니,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일인가! 팔 년 세월에 무슨 일인들 생기지 않았을까? 온갖 사건과 변화, 단절, 망각, 팔 년이면 이 모든 일이 일어나고도 남을 세월이 아닌가! 과거를 잊는 건 너무도 당연하고, 또 너무도 확실한 일이었다! 그 세월이 그녀가 살아온 생애 중 삼 분의 일이나 되는 시간일지라도 말이다. 하지만 안타까워한들 어찌하랴! 냉정을 찾으려는 이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지난 기억이 고스란히 담긴 마음에 팔 년이란 세월은 아무것도 아닐 수 있음을 알아버렸다. -8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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