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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
신경숙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5월
평점 :
벌써 작년 여름의 일이었던가. 한국 여성작가 가운데 가장 파워 있는 작가인 신경숙이 연재, 그것도 대형 신문사가 아니라 인터넷 서점에 연재를 한다고 했을 때 놀랐었다. 게다가 미리 써놓고 하루치 분량을 끊어서 올리는 것이 아니라 새벽 세시에서 아침 아홉시까지 책상에 앉아 써내려가겠노라는 작가의 첫 인사를 읽으며 과연 신경숙의 연재는 어떤 느낌일까라는 기대에 들떴다. 그리고 만나게 된 연재. 그 연재는 기존에 내가 생각해온 연재와는 사뭇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6개월 간 매일 연재를 따라가며 댓글도 열심히 달았던지라 사인회에서 만난 저자는 내 닉네임을 기억해주었다. 평소라면 감히 그런 얘기를 할 수 없었겠지만, 일일이 독자와 눈을 맞추며 이야기를 들어주는 저자에게 나는 "이야기가 너무 아파서 선뜻 다시 읽을 용기가 나지 않아요"라고 말을 건냈다. 그런 내게 그녀는 아프기만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작가의 말에 담아놓았노라고 말하며 나를 토닥거려줬다. 그렇게 사인회에서의 짧은 만남을 뒤로 한 채 나는 소설로 다시 한 번 그녀를 만났다. 그녀의 말 때문인지 연재 때는 그리도 마음 아프게 읽었던 글이 어쩐지 아픔을 쓰다듬는 따뜻한 손길처럼 느껴졌다.
이 책은 기본적으로는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청춘'에 대한 이야기다. 하지만 '인간적인 삶'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책 속에서 윤교수가 학생들에게 들려주는 크리스토프에 대한 이야기처럼 인생이라는 "강을 건너는 사람과 강을 건너게 해주는 사람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세상 전체"이며, "서로가 서로를 강 이편에서 저편으로 실어나르는 존재"인 것이다.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는 세상. 그것을 작가는 서로 함께 기대고, 의지하며, 무언가를 찾아 헤매는 청춘의 모습으로 보여주는 듯했다. 그냥 입시에 치이고, 구직에 치이며 살아가는 우리에게 어쩌면 질풍노도의 시기가 끼어들 여지가 없는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종종 했는데, <어.나.벨>을 읽으며 소설 속 그들처럼 때로는 아파하고, 때로는 마음껏 방황도 해보고, 때로는 찾지 못할 것임을 알면서도 누군가를 찾아 헤매는 것도 우리 인생에서 필요한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험한 세상 속에서 서로에게 버팀목이 되어줄 수 있는 사이. 이기적인 요즘 대학생들에게 책 속의 인물들의 이야기는 어딘지 빛바랜, 일종의 로망처럼 느껴지지 않을까. 서로의 인간다움을, 서로의 온기를 느낄 수 있는 사이. 각박한 인생을 살고 있는 우리에게 이 책은 인생이란 단순히 개인적인 욕망의 성취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세상이란 당장 눈앞에 보이는 것만이 다가 아니기에 더 넓은 시야를 가져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만 같았다. 책을 읽고 나니 어쩐지 친구의 손을 꽈악 잡아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청춘을 무슨 희망인양 마냥 반짝반짝 빛나는 것처럼 그리지 않아서 더 마음에 들었던 책. 신경숙의 힘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