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도하는 사람
텐도 아라타 지음, 권남희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본의 아니게 '삶'과 '죽음'을 다룬 소설 두 권을 연달아 읽었다. 필립 로스의 『에브리맨』과 텐도 아라타의 『애도하는 사람』이 그것인데, 두께도, 내용의 진행방식도 많이 달랐지만, 읽고 나서 한동안 그 여운에 몸을 맡길 수밖에 없었다는 점만큼은 같았다. 점점 다가오는 죽음 앞에서 고독을 느끼는 남자(에브리맨)와 죽은 사람들의 흔적을 쫓아 그를 애도하는 남자(애도하는 사람)의 이야기는 내게 삶과 죽음이 결국 하나라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했다.

  책의 제목처럼 이 책은 '애도하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다. 신문이나 뉴스에서 죽은 사람에 대한 보도를 접하면 이를 메모해 느릿느릿 걸으며 그 장소를 찾아가 애도하는 한 사람(시즈토)이 있다. 대체 그는 왜 이런 괴짜 같은 행동을 하는 걸까? 자극적인 기삿거리만을 찾아 다니는 기자 마키노, 암에 걸려 죽어가는 시즈코의 엄마 준코, 남편을 살해한 죄로 복역 후 갓 출소한 유키요. 애도하는 사람과 얽힌 이 세 사람은 저마다의 시선으로 애도하는 사람을 바라본다. 때로는 시즈코의 행동을 위선이라 여기기도 하고, 때로는 그의 진의를 궁금해하기도 하면서, 마키노도, 준코도, 유키요도, 그리고 시즈코 스스로도 삶에 대해, 생명에 대해 돌아보게 된다.

  흔히 누군가가 죽으면 사람들은 살아생전 그의 모습 혹은 그의 죽음에 관심을 갖기 보다는 그가 ‘왜’ 죽었는지에 대해 궁금해 한다. 병으로 인한 죽음인 경우도 그렇지만, 특히 사건사고로 인한 죽음일 경우에 사람들은 그가 죽었다는 '사실'보다는 그의 죽음의 원인인 사건사고에 관심을 갖는다. 뿐만 아니라 똑같은 죽음이라 해도 어린아이 혹은 평소 많은 사람의 선행을 베풀며 살았던 이들의 죽음은 안타까워하지만, 얼마 전 자살한 연쇄살인범 정남규를 비롯해 악행을 일삼던 이의 죽음은 죽어 마땅한 것이라 여긴다. 하지만 이 책은 이렇게 생명에 대해 차별적인 태도를 갖는 것이 올바른 것일까? 우리가 누군가의 죄를, 누군가의 생명을 판단할 권리가 있는 것일까라는 의문을 던진다. 작가는 누구의 죽음도 차별이나 구별 없이 애도하는 시즈코를 통해 휴머니즘의 희망을 찾는다.

  "그분은 누구에게 사랑받았습니까? 누구를 사랑했습니까? 누가 그분에게 감사를 표한 적이 있습니까?" 애도하는 사람 시즈코는 애도를 하기 위해 찾아간 곳에서 죽은 이를 알고 지냈던 이들에게 이 세 가지를 묻는다. 아무리 나쁜 사람이라고 해도 누군가에게 사랑을 받고, 누군가를 사랑했으며, 단 한 가지라도 누군가가 감사할 만한 일을 했다면 시즈코는 그 이야기를 바탕으로 애도한다. 그의 애도는 '편안히 잠드세요, 성불하세요' 하고 명복을 비는 것과 다르다. 그는 사람들에게 들은 이야기를 토대로 한 사람의 삶을 '기억'한다. 이 세상에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누군가를 사랑한 사람이 있었다는 사실을 그저 가슴속에 담는다. 바쁘게 흘러가는 삶 속에서 누군가의 죽음은, 그의 삶의 흔적은 너무나 빨리 사라진다. 죽음을 접한 순간에는 충격과 슬픔에 싸여 잊을 수 없을 것 같지만, 시간이 지나면 어느새 상처는 아물어가고 그의 존재는 어쩌다 떠오를 뿐. 그렇게 서서히 기억 속에서 죽은 이는 잊혀져간다. 하지만 애도하는 사람은 죽은 이를 잊지 않겠다고 한다. 그와 직접적인 인연은 없지만, 애도할 수 있게 된 것도 인연이 있기 때문이라 생각하고 그의 죽음을, 그리고 그런 사람이 살았다는 사실을 잊지 않으려 한다. '돌아가신 분을 다른 사람이 대신할 수 없는 유일한 존재로 기억하고 싶'다고 말한다. 어차피 생(生)이란 그렇게 왔다가 가는 것이지만, 나 또한 죽게 된다면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살아 있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참 행복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에도 뉴스에서는 몇 건이나 되는 죽음을 보도한다. 책의 여운이 채 사라지기도 전에 뉴스를 보니 오늘도 제강소에서 일어난 폭발 사건으로 인해 숨진 사람도, 실종된 지 5일 만에 숨진 채 발견된 50대 여성도 있었다. 평소 같았으면 그저 ‘저런 사건이 있나보다’라고 넘겼을 텐데 오늘만큼은 자꾸만 애도하는 사람처럼 저 사람들은 누군가에게 사랑을 받았을까, 누군가를 사랑했을까, 누군가에게 감사받은 적이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특히 아버지의, 남편의 생사를 알지 못해 오열하는 모래운반선 실종 가족들의 모습을 보면서 눈가에 저절로 눈물이 맺혔다. 비단 애도하는 사람 시즈코가 아니라도 이 책은 삶과 죽음에 대해 이야기한다. 특히 어머니의 죽음과 딸의 임신이 겹쳐져 진행되는 부분은 삶과 죽음의 연속성에 대해 생각하게 해줬다. 처음에는 너무나 괴짜 같다고, 결국은 자기만족일 뿐이라고 생각했지만 이야기를 읽어가며 나도 조금씩 애도하는 사람에게 마음이 움직였다. 삶에 대한 긍정, 그리고 인간에 대한 사랑, 그것이 좀더 감사하며 살아갈 수 있는 힘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락방 2010-01-31 16: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그래도 어제 경향신문에 신간 소개로 이 책이 나와있었거든요. 아, 너무 읽어보고 싶은거에요. 그런데 이매지님은 벌써 읽으셨군요! 저도 조만간 읽어봐야겠어요. 애도하는 사람이라니!

이매지 2010-01-31 16:31   좋아요 0 | URL
저 이 책 마지막 몇 장 더 읽고 잔다고 버티다가 다음날 아침에 대박 늦잠자서 반차까지 썼어요 -_ㅜ 간만에 마음에 든 나오키상 수상작이네요~

다락방님도 어여 읽어보세요! ㅎㅎㅎ

stella.K 2010-02-14 15: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책 최근에 많은 사람이 읽더군요. 저도 읽고 싶어요.
쫌 늦었지만 축하해요.^^


이매지 2010-02-14 17:48   좋아요 0 | URL
스텔라님도 꼭 읽어보세요 :)
잔잔한 감동이 있는 책이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