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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 카레니나 1 (무선)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박형규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평점 :
원래는 2009년의 마지막 책이라 생각했던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를 해를 넘겨 1년 만에 끝냈다. 워낙 두꺼운 책에 겁을 먹었지만 오래 전부터 '꼭 한 번은 읽어야지'라고 생각했던 책이기에 나름 굳게 마음을 먹고 읽기 시작. 같은 책을 페이지가 암만 두꺼워도 어지간해서 삼 일 내로 끝냈던 내게 근 보름이 넘도록 붙잡고 있게 한 톨스토이와의 첫 만남은 역시 예상처럼 녹록치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성으로 마지막 페이지까지 읽었던 것은 나도 모르게 이 작품에 빠져 들었기 때문이다.
<안나 카레니나>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안나 카레니나에 대한 이야기다. 하지만 100페이지가 넘도록 도무지 주인공 안나는 모습을 드러낼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1권 중반이 되서야 오랜 기다림 끝에 안나는 다른 여자에게 눈을 돌려 위기에 처한 오빠를 구해줄 사랑스러운 여동생으로 등장한다. 하지만, 오빠를 위해 달려온 모스크바에서 안나는 브론스키라는 젊은 귀족 청년과 사랑에 빠지게 된다. 애초에 애정이 없는 결혼을 했던 안나와 결혼이라는 매개로 한 여자에게 얽매이지 않으려 했던 브론스키의 불꽃 같은 사랑. 하지만 톨스토이는 안나와 브론스키의 사랑을 마냥 행복한 것으로만 그리지 않는다. 남편도, 아이도 버리고 결국 브론스키와의 사랑을 선택하는 안나는 자신의 부정한 행동으로 인해 사교계에서 배제 당하고, 기존에 알고 지냈던 이들과의 관계도 무너진다. 누구보다 매력이 넘쳤지만 그렇게 자신에게 주어진 것들을 하나씩 잃은 안나에게 남은 것은 브론스키뿐. 이에 안나는 끝없이 브론스키의 사랑을 갈구하고 그의 사랑을 확인받고자 하면서 자기 자신의 내면을 조금씩 파먹기 시작한다.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할 때까지 안나는 자기 자신으로서의 자유로운 삶이 아닌 끊임없이 변덕을 부리고, 브론스키의 사랑을 확인해야만 살아갈 수 있는 자기 자신과 브론스키에게 얽매인 삶을 살아간다. 누구보다 당당하고 아름다웠던 안나가 조금씩 사랑에 집착하고 삶이 자신의 뜻대로 이뤄지지 않아 정신적, 육체적으로 변해가는 모습을 보며 새삼 '사랑이란 얼마나 파괴적인 것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슬아슬하게 흔들리는 외줄 위를 홀로 걸어가는 안나. 그 끝에는 행복이, 그리고 사랑이 있을 거라 생각하며 안나는 불안한 발걸음을 내딛지만, 결국 그녀는 그 끝에 이르지 못한다.
사실 처음에는 대체 '안나 카레니나'가 어떤 여자길래라는 생각이 들어서 이 책을 읽기 시작했지만, 정작 책을 읽으면서는 안나보다 레빈에 더 관심이 갔다. 19세기 러시아에 대해서는 정확한 지식이 없어서 그의 사상에 대해서는 백퍼센트 정확히 이해할 수 없었지만, 톨스토이가 독자에게, 그리고 자기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이 레빈의 입을 통해 드러난다는 사실만은 쉽게 눈치챌 수 있었다. 죽음을 이해할 수 없기에 그것을 두려워하는 모습, 무신론자에 가까운 그가 신의 존재에 대해 번뇌하는 모습, 열심히 일하지만 그만큼의 보상을 받지 못하는 농민들을 위해 끊임없이 방법을 찾는 모습 등 레빈의 삶을 통해 만날 수 있는 것은 당시 러시아는 물론이고 현대에까지 그 생명력을 가진 인간 보편의 문제였다. 부의 재분배, 종교적 갈등, 사랑, 죽음, 탄생 등 레빈을 통해 톨스토이도, 독자도 답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번뇌하게 만들었다. 책을 읽는 속도가 느려졌던 것은 순전히 레빈 때문이었지만, 책을 읽고 나서도 자꾸만 이 책이 생각나게 만드는 것도 안나가 아닌 바로 레빈이었다.(물론 안나도 매력적인 인물임에는 틀림없으지만)
안나와 레빈의 이야기가 번갈아 진행되어 이성 혹은 감성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을 수 있었다. 게다가 두 인물의 캐릭터 자체가 상반돼 더욱 균형 잡힌 시각에서 사건을 바라볼 수도 있었다. 안나가 반짝 타오르는 불꽃 같은 존재라면, 화로 속 불씨처럼 겉으로 보기엔 잘 보이지 않아도 가슴 속에 꺼지지 않는 불씨를 가진 레빈의 대비는 이야기의 또 하나의 재미였다. 안나의 삶은 처참하게 끝나지만 레빈의 삶이 계속되는 까닭도 그의 사유에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로 레빈의 끝없는 고민은 어쨌거나 그가 살아가는 데 있어서 하나의 자양분이 된다. 그저 탁상공론으로 그칠 '사고'가 아닌 직접 풀베기에 동참하는 것 같은 '행동'이 있었기에 레빈의 삶은 좀더 현실적이고, 온전해질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싶었다. 만약 <안나 카레니나>라는 제목에 걸맞게 처음부터 끝까지 안나의 이야기만을 담았다면 나는 그저 사랑의 포로가 된 안나를 그저 불쌍히 여겼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레빈의 이야기와 안나의 이야기를 함께 접함으로 오히려 안나를 그저 사랑 때문에 모든 걸 버렸지만 아무것도 남은 게 없는 여자가 아닌 자기 자신으로서의 삶과 한 여자로서의 삶 사이에서 갈등하고 방황한 여자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책의 중심축이 안나와 레빈에 있기에 자연스레 그들에게 관심이 집중됐지만, 주변 인물들도 결코 가벼이 넘겨볼 수 없었다. 애정과 관계 없이 살아가지만 주변의 시선 때문에 그렇지 않은 척하며 살아가는 안나의 남편 카레닌이나 아직은 엄마가 그리운, 하지만 엄마를 마음껏 그리워할 수 없는 가엾은 세료쥐아, 한때는 브론스키에게 반한 적이 있지만 결국 레빈의 진실한 사랑을 느끼게 된 키티와 같이 레빈과 키티와 직접적으로 관계되는 이들 외에도 레빈이 만나는 일꾼들까지 누구 하나 쉽게 넘겨볼 수 없을 정도로 각각의 등장은 그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3권 모두 합치면 천 페이지가 넘는 무지막지한 분량에 곳곳에 철학적인 면이 담겨 있어 녹록치 않았지만, 이상하게도 한 번 읽고 나니 다시 한 번 이 고통을 되풀이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나 발레 공연 등 지금도 끝없이 변주되고 있는 <안나 카레니나>. 이전에 <톨스토이 단편선>이 유행했을 때에도 안 읽었던 톨스토이를 이제사 읽어보니 '이것이 톨스토이로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올해가 톨스토이 100주기라고 전 세계적으로 여러 가지 행사도 진행되고 있는 것 같은 데, 겸사겸사 톨스토이의 다른 작품들도 한 번 접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