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번째 파도
다니엘 글라타우어 지음, 김라합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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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스템 관리자님, 솔직히 말씀드릴게요. 지금 제 처지가 말이 아니에요. 귀사 '이용자'인 레오 라이케씨의 현재 메일주소가 꼭 필요해요. 정말로요! 라이케씨에게 급히 물어볼 게 세 가지 있거든요. 1)아직 살아 있어요? 2)아직 보스턴에 있어요? 3)새로운 이메일 친구가 생겼나요? 만약 1)이 맞는다면 2)를 확인해볼 참이에요. 하지만 3)은 용서할 수 없을 거예요. 그 사람이 최근 반년 동안 마를레네와 열다섯 번 새 출발을 하고, 날마다 마를레네를 보스턴으로 불러들였다 해도 괜찮아요. 그 사람이 밤마다 보스턴의 싸구려 벨벳 바에 죽치고 있고, 바비인형 뷰티 살롱에나 어울릴 법한 천박한 보스턴 금발 미녀의 실리콘 젖무덤 사이에서 날마다 아침을 맞았다 해도 괜찮아요. 결혼을 세 번이나 하고, 세 번 다 삼란성 세쌍둥이를 낳았다 해도 괜찮아요.~~-10~1쪽

~~그러나 단 하나만은 용납할 수 없어요. 그 사람이 한 번도 본 적 없는 다른 여자랑 메일로 사랑에 빠져서는 안 돼요. 이것만은 용납할 수 없어요! 그건 단 한 번으로 남아야 해요. 제가 그런대로 탈 없이 밤을 넘기려면 그 사람에게 새 메일 친구가 생기지 않았다는 확신이 있어야 해요. 제가 있는 곳에 북풍이 끈질기게 불거든요. -11쪽

10분 뒤
Re:
레오, 날마다 이런 메일을 받는다면 나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여자일 거예요.

3분 뒤
Aw:
고마워요, 에미. 하지만 애석하게도 행복은 메일로 이루어지는 게 아니에요.

1분 뒤
Re:
그럼요? 행복이 무엇으로 이루어지는데요? 궁금해요! 말해주세요!!!

5분 뒤
Aw:
보호받는다는 느낌, 신뢰, 결속, 애정, 경험, 영감, 착상, 상상, 도전, 목표 같은 것들로요. 그리고 이 목록에는 다른 항목이 얼마든지 덧붙을 수 있어요.

3분 뒤
Re:
후유우우, 듣기만 해도 스트레스 쌓이는 말들이로군요. 무슨 근대 행복 십종경기 종목들인가요? 차라리 상상 속의 머리카락 몇 올을 곁들인 레오의 메일을 날마다 받는 게 낫겠어요. 즐거운 저녁시간 보내세요! 여하튼 당신이 나를 아직 잊지 않았다니 기쁘네요. 볼 키스. 에미. -73~4쪽

에미, 당신 마음을 아프게 했다니 나도 마음이 아프네요. 정말이에요. 컴퓨터 통신이라는거, 알고 보니 고도의 폭력이었어요. 그게 사람을 빠르게 연결해주는 만큼 빠르게 갈라놓기도 하죠. 우리의 감정 가지고는 그것에 대항할 힘이 없어요. 마음 아프게 해서 미안해요. 그리고 잘 자요, 내 사랑.-91쪽

왜 당신에게 메일을 쓰느냐고요? 그럴 마음이 내켜서요. 그리고 일곱 번째 파도를 말없이 기다리고 싶지 않아서요. 이곳 사람들은 무척이나 거칠고 고집스러운 일곱 번째 파도가 있다고들 해요. 처음 여섯 번의 파도는 예측할 수 있고 크기가 엇비슷하대요. 연이어 이는 여섯 번의 파도는 깜짝 놀랄 만한 일 같은 건 만들어내지 않아요. 일괄성이 있다고나 할까요. 여섯 번의 파도는 멀리서 보면 서로 다른 것 같기도 하지만 늘 같은 목적지를 향하죠.
그러나 일곱 번째 파도는 조심해야 해요. 일곱 번째 파도는 예측할 수 없어요. 오랫동안 눈에 띄지 않게 단조로운 도움닫기를 함께 하면서 앞선 파도들을 자신을 맞추지요. 하짐나 때로는 갑자기 밀려오기도 해요. 일곱 번째 파도는 거리낌 없이, 천진하게, 반란을 일으키듯, 모든 것을 씻어내고 새로 만들어놓아요. 일곱 번째 파도 사전에 ‘예전’이란 없어요. ‘지금’만 있을 뿐. 그리고 그 뒤에는 모든 게 달라져요. 더 좋아질까요, 나빠질까요? 그건 그 파도에 휩쓸리는 사람, 그 파도에 온전히 몸을 맡길 용기를 가진 사람만이 판단할 수 있겠지요. -255~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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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09-08-28 2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으으윽 두번째 인용한 부분 읽다가 미치는 줄 알았어요. 드디어 다 읽었다는 거 아닙니까!!

이매지 2009-08-28 23:42   좋아요 0 | URL
벌써 다 읽으셨군요 ㅎㅎㅎㅎ
하기사 저도 퇴근하면서 후딱 읽었었더랬죠.
다락방님의 감상은 어떨지 궁금하네요 ㅎㅎ
전 밀린 리뷰부터 쓰다보니 이 리뷰는 언제 쓸지;;;

마늘빵 2009-08-29 0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매지님 벌써 이거 읽고 있는 거에요? 저 주문했는데 3일날 온다는...

이매지 2009-08-29 00:45   좋아요 0 | URL
아프님도 어여 읽어보세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