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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의 나이프 ㅣ 밀리언셀러 클럽 98
야쿠마루 가쿠 지음, 김수현 옮김 / 황금가지 / 2009년 2월
평점 :
일본 사회파 추리소설을 좋아해서 이런저런 작품들을 읽어왔는데, 그 가운데 익숙한 소재를 꼽아보라면 이 책의 소재이기도 한 '소년법'에 대한 것이 아닐까 싶다. 14세 미만의 아이들은 갱생의 여지가 있으므로 '처벌'을 하기 보다는 '교화'를 한다는 요지의 소년법. 아직 어린 아이들에게 삶을 바로잡을 수 있는 기회를 준다는 점에서 일면 소년법은 타당해보이지만, 자신의 가족을 잃은 이들에게 범인이 단지 14살 미만이라는 이유로 미미한 처벌을 받을 뿐이라는 것은 부당해보인다. 이 책은 그런 부당함에 대해, 그리고 청소년 범죄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수 있게 한다.
작은 커피숍을 하며 평범한 생활을 했던 히야마. 그의 인생은 3년 전 아내가 살해당하며 뒤흔들린다. 14살 미만의 아이들이 강도짓을 하러 들어온 집에서 무참히 살해당한 아내. 하지만 아이들의 소년법의 적용을 받아 보호감찰 정도의 처분을 받은 채 사건은 마무리된다. 사건 후 TV에서 할 수만 있다면 내 손으로 범인을 죽이고 싶다고 말하는 히야마. 하지만 3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며, 아이가 점점 커가며 가까스로 (겉으로 보기엔) 정상적인 삶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그가 누린 이런 평화도 잠시. 3년 전 사건의 범인 중 한 명이었던 소년이 히야마의 가게 근처에서 살해당한다. 이에 히야마는 이 아이들이 그동안 과연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궁금한 마음에 아이들의 행방을 쫓기 시작하고, 공교롭게도 남은 아이들의 신변도 위험해지기 시작한다.
느닷없는 사고로 갓난쟁이 아이만을 남긴 채 세상을 떠난 아내. 당연하게도 아내를 잃은 남편은 범인에 대해 증오를 품는다. 하지만 정작 그 아이들이 어리다는 이유로 아내의 목숨보다 아이들의 앞으로의 삶이 중요시되는 법 앞에 남은 가족은 분개한다. 이 책은 그런 남은 자의 분노와 사법체계의 모순을 날카로운 시선과 따뜻한 가슴으로 보여준다. 데뷔작으로 에도가와 란포상을 거머쥔 무서운 신인답게 이 책은 데뷔작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완성도 있었다. 후반부의 애써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려고 끼워넣은 듯한 부분이 있어서 아쉽긴 했지만 정교한 복선, 세밀한 감정 표현, 그리고 주제 의식까지 어느 것 하나 빠지지 않는 완성도 있는 작품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청소년 범죄에 대해서도 단호한 처벌을 내려야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읽어가면서 처벌 이후의(혹은 그들이 말하는 '갱생' 이후의) 아이들의 태도에 화가 났다. 그들에게 있어서 '갱생'은 어떤 의미인 것인지, 단순히 보호 시설에서 머무는 것이 그들의 '갱생'을 돕는 것인지 답답하기만 했다. 가해자의 인권과 피해자의 인권 사이에서 당연하게 보호되어야 할 피해자의 인권이 짓밟히고 가해자는 청소년이라는 이유로, 그들이 살아 있다는 이유로 인권을 보호받는 모습 또한 씁쓸했다.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존재하는 '법'이 좀더 피해자의 마음을 위한 것일 수는 없을까라는 생각도 다시 한 번 하게 됐다.
제법 두꺼웠지만 빼어난 작품이라면 늘 그렇듯이 손에 착 감겨서 술술 넘어갔다. 하지만 페이지가 점점 넘어갈 수록, 점점 히야마가 아내를 죽인 아이들에 대해 알아갈 수록, 그리고 아내에 대해 알아갈 수록 가슴 한 켠이 묵직해졌다. 데뷔작이라 그런지 약간 힘이 들어간 부분이 아쉬웠지만 다음에는 좀더 힘을 뺐지만 기량만은 여전한 야쿠마루 가쿠의 작품을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추리소설을 좋아하지 않는 독자라도 한 번쯤 이 책을 읽고 '법'에 대해 고민해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