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국내에도 제법 많은 팬을 확보한 이누도 잇신 감독의 작품. 앞서 개봉했던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나 <메종 드 히미코>처럼 소외된 사람들 간의 사랑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독특한 분위기를 풍기는 영화였다. (참고로, 이 영화가 개봉은 늦게 했지만 <조제>나 <메종 드 히미코>보다 앞서 만들어진 작품이다.)
80세 노인 닛포리. 심장병때문에 주로 집 안에서만 지내는 그는 괴팍한 성질때문에 도우미가 오는 족족 두손두발 들고 나가버린다. 그런 그에게 새로운 도우미로 파견된 나리스. 괴팍하다는 소문과 달리 닛포리는 나리스에게 나긋나긋하고, 행복한 꿈을 꾸고 있다며 소년처럼 좋아한다. 알고보니, 그의 몸은 80세 노인이지만 정신세계에서는 자신이 20대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게다가 나리스는 그 시절 그가 짝사랑하던 여학생(마돈나)과 놀랄만큼 닮았던 것이다. 엄청난 나이차. 하지만 둘은 행복을 위해 날아오를 준비를 시작하는데...
영화에서 닛포리는 80세 노인으로 설정되어 있지만 화면에서 그는 노인이 아닌, 그가 꿈꾸고 있는 20대 청년의 모습으로 등장한다. 때문에 영화를 보는 관객 입장에서는 닛포리가 영화의 끝부분에서 느끼는 것처럼 지금 '현실'을 보고 있는 것인지 '꿈'을 꾸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는 묘한 기분을 느끼게 된다.
자신이 누구인지를 잊어버릴 때를 대비하여 그가 작성한 연보를 보면 닛포리의 생은 오로지 '심장'의 박동을 유지시키는 데에만 집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19xx년. 심장 아직도 멈추지 않음.'과 같은 무료한 단어가 이어지는 삶. 뭔가 제대로 이루지 못하고 오로지 심장이 멈추지 않았기에 살아가고 있다는 느낌마저 드는 그의 연보를 따르다보면 나 또한 그처럼 '심장 아직도 멈추지 않음'의 상태일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 사랑을 차마 고백하지 못하고 행복해지기를 회피하는 듯한 나리스의 모습은 그 나이에 맞지 않는 그늘을 갖고 있는 듯 하다. 그런 그녀의 성격때문에 아마 그녀는 닛포리에게 마음을 열 수 있었던 것이고, 조금은 행복해지고 싶다는 마음을 갖게 된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뭔가 순정만화같은 느낌이 들지만 또 한 편으로는 뭔가 몽상적인 느낌이 풍겼던 영화였다. 나리스와 닛포리처럼 현실은 눈을 감아버리고 싶을 때도 있겠지만 그들처럼 꿈 속을 거닐기만 한다면 삶은 자신 안에 갇힌 것이 되어버리리라. 닛포리가 날아오르기 위해 뛰어내려보는 것처럼 나도 내 삶의 모습을 확인하기 위해 한 번쯤은 뛰어내려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닛포리같은 방식으로는 안되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