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그레이브 디거 ㅣ 밀리언셀러 클럽 66
다카노 가즈아키 지음, 전새롬 옮김 / 황금가지 / 2007년 6월
평점 :
<13계단>으로 강렬한 인상을 줬던 다카노 가즈아키의 작품. 에도가와 란포상을 수상 후 첫 작품이라 과연 이 작가가 실력있는 작가인지 판가름하는 척도가 되기도 했다는데 그런 면에서 본다면 이 책은 <13계단>과는 분위기는 다르지만 재미와 긴장감은 100% 보장이라고 말할 수 있을 듯 싶다. 사형수 문제를 다룬 <13계단>에서처럼 이 책 역시 어느 정도 골수이식이라는 사회적인 이슈를 소재로 삼고 있긴 하지만 <13계단>의 경우 이야기의 초점이 사형제도에 맞춰진다면 이 이야기에서는 일단 주인공의 도피행각에 큰 초점을 두고 있는 듯하다.
어린 시절부터 온갖 비행을 일삼던 야가미 도시히코. 사기, 공갈이 주된 범행이지만 그의 범행은 어떻게 보면 귀엽기까지하다. 부모님과 선생님 몰래 패스트푸드점에서 알바를 하는 친구에겐 감자튀김을 주지 않으면 일러바치겠다고 협박(?)을 하기도 하고, 유명 국회의원과 목소리가 비슷하다는 것을 악용해 비서에게 전화를 걸어 돈을 가로채기도 한다. 자잘하지만 어쨌거나 범죄자인 그는 착한 일이라고는 해본 적이 없었지만, 생애 최초로 착한 일을 앞두고 있다. 그가 택한 착한 일은 다름 아닌 골수 이식. 하지만 착한 일을 해보겠다는 야가미의 마음도 세상이 몰라주고, 그는 우연히 돈을 빌리러 간 친구의 집에서 친구가 손과 발의 엄지가 엇갈린 모습으로 묶여서 벌거벗은 채로 욕조에서 펄펄 끓고 있는 것을 발견한다. 깜짝 놀란 것도 잠시, 낯선 사람들이 그 집에 들어오고 야가미를 쫓기 시작한다. 한편, 이런 형태의 시체는 또 다른 장소에서도 발견된다. 조사결과 이런 형태는 종교 재판 때 이단 심문을 할 때 쓰던 방법. 이와 비슷한 방법으로 발견되는 시체는 늘어가고, 경찰은 야가미를 주요 용의자로 쫓기 시작한다. 골수 이식을 이틀 남짓 남긴 야가미. 내일까지는 무슨 일이 있어도 병원에 가서 입원을 하고 골수이식을 위한 준비를 해야하는데... 경찰과 정체모를 사람들로부터 야가미는 과연 무사히 몸을 피해 골수이식을 할 수 있을까?
책의 끝에 있는 해석에도 쓰여있지만 '이 책은 근래에 없는 뛰어난 논스톱 서스펜스'다. '만약 중간에 읽다가 멈출 수 있는 분이 계시다면 얼굴을한번 보고 싶을 정도'로 재미있다. 실제로 나 또한 잠깐 맛이나 보고 천천히 읽으려고 했는데 이 책을 잡자마자 재미에 푹 빠져 순식간에 읽어갔다. (자야할 시간이 지나 덕분에 눈은 따끔하고 배도 고프지만 그럼에도 마음만은 가뿐하다) 야가미는 무사히, 그리고 건강히(골수 이식을 해야하니까 최상의 건강상태를 유지해야한다) 병원에 골인할 수 있을지, 과연 그레이브 디거의 정체는 무엇인지, 피해자들에게는 어떤 연결고리가 있는 것인지 등에 대해 파악해가다보면 어느새 책의 마지막에 도착하게 된다.
무슨 철인 3종 경기도 아니고 자전거 레이싱에, 달리기에, 수영에, 자동차 추격전에 범인과의 격투까지 왠만한 체력으로는 도주도 힘들 것 같은 야가미의 도주전을 보는 것도 재미있었지만 경찰이라는 조직 안에서 일어나는 음모와 골수이식을 둘러싼 갈등도 꽤 흥미진진했다. 누구를 믿고 누구를 의심해야하는지도 확신할 수 없는 상황도 이야기의 긴장을 더해준 것 같다. <13계단>도 별다섯을 주고 더 주지 못해서 미안할 정도였는데 이 책 또한 별을 한껏 안겨줘도 아깝지 않을 것 같다. 덕분에 좀 피곤해지긴 했지만, 오랜만에 책 읽는 즐거움을 안겨준 소설. 이런 책이 나와서 정말 너무 기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