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와 스위스의 국경을 넘느라 그동안 여행기를 쓰지 못했다.

무척 고된 일정이었고, 아쉬움도 컸으나 여행의 기억만은 또렷하다. 내일부터 파리는 썸머 타임제를 시작하기 때문에 새벽녁 잠을 줄이는 것은 몸을 축내는 일이긴 하지만 생각날 때 적어놓자는 심정으로 몇 자 적는다.

피렌체는, 두오모가 정말 좋다. 달리 갈 곳도 많겠지만 두오모만 3일을 내리 가더라도 질리지 않을 것같다. 영화 <냉정과 열정사이>에서 아오이가 남자 주인공(이름 기억 안남)과 만나던 그 돔 꼭대기는, 무척 외지고 좁지만 피렌체 전경을 내려다 볼 수 있어 참 좋다. 거기서 본 풍경을 마음에 새기느라 눈을 감았다 떴다 반복하면서 이미지 맵을 완성했고, 지금도 마음에 남아있다.

모노톤의 오랜지색 지붕이, 집들의 외관이 눈을 떼지 못하게 하는 '브르넬리스키의 도시' 피렌체. 고상하고 우아한 곳 길이 길이 기억되리--.

베네치아는 날씨 사정이 안 좋아서 불만이었지만, 기층민의 피땀으로 지어진 눈물나는 도시다. '과거(시간)를 장사하는 도시, 베네치아' 이렇게 설명하면 딱 좋을 그곳은 다소 우중충한 두칼레 궁(오! 이곳의 탄식의 다리와 감옥은, 너무 끔찍하다), 산 마르코 성당이 건축물로는 가장 꼽을 만했고, 실외 야경으로는 산타 마리아 살루테 성당과 (전시작품 및 세련된 분위기가 출중했던) 페기 구겐하임 미술관이 괜찮았다. 그러나 이곳에서만큼은 박물관, 성당, 미술관, 궁을 찾기 이전에 도시 분위기에 흠뻑 젖어보길 권한다. 사랑하는 사람과 오면 더 분위기 좋을 '연애의 도시', 베네치아!

스위스 루체른은, 청정한 아름다움이 물씬 느껴지는 곳이다. 자연 자체가 관광 자원이랄까. 어쩌면 그림 엽서에서 본 그대로일까. 감탄이 끊이지 않는다. 베네치아처럼 물을 끼고 있지만 그 깨끗함은 어느 도시도 따라갈 수 없는 곳이다. 깔끔한 도시 경관에 감탄하고, 젠틀하면서 부유한 스위스 국민들의 삶이 부러웠던 도시. 지상의 파라다이스다(너무 안일한 표현이지만 사실인걸!). 

내일은 '고흐의 집'에 간다. 부디 즐겁기를.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비발~* 2004-03-28 1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벌써 거기까지 가셨군요. 베네치아는 기층민들의 피땀이 전제가 되었겠지만, 그러나 미래를 믿었던 사람들이었다는 인상이 더 강했었더랬지요. 그렇지 않고서야, 그 무른 갯벌 위에 그 단단한 집들을 올릴 엄두를 어찌 내었을까, 싶었고. (같은 맥락에서 날림집은 한탕주의하고 통한다고할까..^^) 암튼 五感에 가득가득 느낌을 채워오시길~ 무엇보다도 건강 조심하시구요!!!

zooey 2004-03-28 1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나도 1주일 후면 두오모에!
 

21일(금) 누보 마레지역

아.. 아침부터 힘들다. 카레와 파전... 다소 잘 어울리지 않는 음식이었지만, 아침에 파전을 해주신 민박집 언니가 무지 고마웠다. 맛있게 얌얌. 오늘은 박물관만 2곳을 돌았다. 카르나발레, 피카소. 어제 퐁피두 센터를 다녀왔기 때문에 피카소 박물관에 대한 기대는 없었다. 게다가 상속세 대신 낸 작품들이니, '청색시대 자화상'를 빼면 다 고만고만한 작품들이다.

17세기 귀족의 저택에 잘 꾸며진 박물관이라 관람하기가 편했다는 점....피카소의 그림이, 정말 그 당시에는 얼마나 획기적이고 새로운 것이었는지 마음으로부터 느낀 점... 모딜리아니 그림 1점이 기억에 남는다. 피카소에 대해서 나쁘게 생각했는데, 그림, 조각, 데상을 보고서는 그가 '천재는 천재야'라고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얌체같은 천재, 자기가 천재임을 알아버린 돈과 여자를 무지 좋아하던 화가. 그는 자신을 그리스의 제1 신, 제우스에 비유하길 좋아했다(그런 점이 좀 재수없지).

카르나발레 박물관은, 파리의 역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역사 박물관이다. 17세기부터 공화기의 파리까지 층별로 나누어 '건축, 실내 장식, 회화, 생활 소품'을 전시하고 있다. 파리의 옛 자취를 느끼기에는 더없이 좋은데, 가만히 전시관을 따라가다보면 옛 귀족들은 어떤 생활을 했을까 눈에 그려지곤 했다. 파리에 도착해서 가장 먼저 보면, 그 후에 보게 될 역사와 유물을 이해하기 좋을 것이다. 생각보다 재밌는 곳이라서 시간이 없더라도 꼭 한 번은 들려볼 것을 권한다.

보쥬광장. 정사각형 한 변마다 8채의 저택이 있어 총 32채의 저택이 정원을 빙 둘러싼 스퀘어 공원이다. 규모는 생각보다 작아서, 동네 근린공원 같은 느낌이 들었다. 바람부는 공원에서 분수를 배경으로 삼고 크로와상으로 점심을 때웠다. 파리시민이 된 느낌. 분수는 말라있었지만, 벤취에서 크로와상을 먹는 정취는 남달랐다. 식사 후에는 '빅토르 위고의 집'에 들렀다. 육필 원고가 상당히 있을 거라 기대했는데, 생각보다는 '시늉내기'에 불과했다. 하지만 위고가 살던 당시의 실내장식, 가구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서 위고의 일상을 상상할 수 있었다. 집필실, 서재, 침실, 부엌, 응접실마다 위고가 있는 방풍경을 사진에 담아, 비교할 수 있게 했는데 모든 것이 그 당시 배치 그대로다. 위고의 대작 <레 미제라블>의 포스터가 각 층 계단마다 전시되어 있었는데 그 크기가 사람의 2배는 되어 압도적이었다. 장 발장 포스터 앞에서 찰칵!

원래는 여기까지만, 보고 윈도우 쇼핑으로 끝나는 일정이었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남아서 '몽마르뜨 언덕'을 가기로 했다. 몽마르뜨 언덕은, 파리시에서 가장 지대가 높은 곳으로 우리로 따지만 산동네쯤 된다. 그래서 피카소, 브라크, 모딜리아니 등이 모여 살면서 예술의 혼을 불태웠다지. 하지만 피카소와 입체파 화가들이 크게 선방을 날린 후로 땅값이 올라 예술가들은 '몽빠르나스'를 본거지를 옮겨야 했다고. 지금은 몽빠르나스가 세탁소 1번지라고 한다. 몽마르뜨 언덕으로 향하는 계단은 영화 <아멜리에>에서 아멜리에가 남자를 찾아가는 장면의 배경이 되기도 했다. 아름다운 풍경이 카메라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한다. 누가 찍어도 그림이 되는 환상적인 앵글.

이 꼭대기에 있는 sacre coeur 성당은 보불전쟁에서 패배하자, 참회와 통한의 의미를 담아 가난한 이 지역 주민이 헌당한 교회. 주머니돈으로 짓느라 100년 가까이 걸렸다고 한다. 교회 건립시기로 따지면 그렇게 기념할 만한 성당은 아니지만(가장 최근에 지어진 성당이므로), 교회 건축의 의미가 각별해서 세계 곳곳의 관광객으로부터 가장 큰 사랑을 받고 있다. 그 말은, 성당안에 봉헌된 촛불만 봐도 알 수 있다. 노트르담 성당도 이 성당만큼 촛불 수가 많지 않다. (가난한 사람은 마음이 부자라는데, 그 말이 하나 틀리지 않다!)

이 부근을 더 돌고 싶었지만, 다리도 너무 아프고 저녁 때가 다 되어서 그만 민박집으로... 파리지엔 처럼 보낸 즐거운 하루였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zooey 2004-03-23 14: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전히 여행 잘 다니고 있는 모양. ^^ 아, 근데 아쉽게 됐네요. 나는 3월 31일 출발, 베네치아에 도착할 예정. 아슬아슬하게 비껴갈듯. 피렌체에서는 나도 자매민박에 머물 예정이라오. 흐흐. 성혜씨, 메모라도 남겨놓아요~ (아, 거기서 만나면 좋았을텐데!)

* 아, 맞다. 성혜씨. 요새 유럽쪽 날씨가 어떤지좀 알려줘요. 옷을 얼마나 싸갖고 가야할지 감이 안 오네.

플라시보 2004-03-24 17: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좋으셨겠어요. 좋은 미술 작품을 보고 점심에는 공원 분수대 앞에서 크로와상으로 점심을 먹는 그 기분. 한번도 해 보지 않았지만 머리속에 막 그려지고 있습니다.(물론 가 보지 않은 곳이라 제대로 그렸을리 만무하지만...) 저도 내년부터 돈을 조금씩 모아서 해외여행을 계획 해 봐야 겠습니다. 지금은 가고 싶어도 직장에 너무 매여 있어서 불가능 할 것이고 서른 하나가 되면 슬슬 눈에 좋은 풍경들을 넣어주고 30년 넘게 써서 탁한 제 뇌도 한번 헹구고 싶습니다.
 

만연한 봄날, 서울도 놀러다니기 좋을 듯. 여기도 봄바람에, 흐드러지게 핀 벚꽃, 살랑대는 봄비가 여행자의 발걸음을 재촉하는 중. 어제는 유럽사진미술관, 퐁피두센터, 리볼리 59번지(로베르네집)--여기까지는 관람--, 에펠 탑 주변 산책(야경이 좋습니다), 바또무슈 유람... 등 아주 많은 일을 해낸 하루였다.. 여행의 즐거움도 크지만, 그에 따르는 육체적 피곤도 못지 않다. 하지만 젊음을 엔진삼아 열심히 활보중! ^^

가장 재밌었던 곳은 '리볼리 59번지'. 누구든, 파리에 오신다면 꼭 들리라고 말하고 싶다. 평소 우리가 예술가의 아뜰리에를 구경할 일이 얼마나 있을까? 그것도 파리에서. 리볼리 59번지는 점거예술가들의 아뜰리에가 있는 곳으로 '자유로운 진자들의 공간'이란 부제가 붙어 있다. 관람료는 따로 내지 않고, 그저 조용히 (창작에 열중하는 예술가와 그가 이미 생산해낸) 예술품을 둘러보면 된다. 캔버스에 지금 막 붓질하는 화가를 보는 현장감이 있어서 '여기가 어쩜 2004년의 몽마르뜨 언덕일지도 몰라. 세탁소라고 별거겠어?' 라는 생각이 든다. 그림들도 참 멋지고 개성있는 화가들의 모습도 매력적. 그러나, 창작활동에 방해가 되지 않을까 염려되었다. 자신들의 공간을 외부인에게 공개한 이들에게 깊은 감명이랄까, 고마움이 느껴지는 곳. 거리낌없는 그들의 행보에 박수를~~~.  정말 사진을 많이 찍고픈 곳이었는데, 디카가 말썽을 부려서 카메라로는 한 컷도 담지 못했다. 너무너무 아쉽지만, 다른 일행 카메라에 담았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퐁피두센터는 거대한 건물(게다가 유명하기까지한)이라서 한 블럭 밖에서도 찾기 쉬웠다. 리볼리 59번지를 찾아갈 때, 도움을 받은 2명의 친절한 학생을 여기서 다시 만나서 '세상은 참 좁다'는 걸 한번 더 실감 . 어떻게 길거리에서 마주친 사람을 또 만날 수 있지? (하하.. ^o^) 퐁피두센터는 특별전시회와 상시전시회로 운영되는데, 이번달 특별전은 '호안 미로'였다. 평소 그냥, 아이 그림처럼 순박하고 큐티한 그림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이번엔 다소 생각이 바뀌었다. 그가 이아무개 목사님 처럼 느껴진 것. 사물들과 대화를 하고, 하나의 인격체로서 존중하는 모습이 그림에 다소곳하게 드러났다. 게다가 그의 선은 너무 아름답다.

일반전시는, 4,5층으로 나뉘는데 4층은 1990년대부터 2002년까지 현대 화가의 여러 설치미술, 회화, 조각을 전시중이고 5층(피카소, 브라크, 샤갈, 모딜리아니, 레제, 루소...)보다 훨씬 재밌다. 웃음이 터질 정도로 코믹하고 유쾌한 공간. 5층은, 대작(명작)을 직접 본다는 의미가 강하지 크게 색다르진 않았다. 모딜리아니가 그린 그림이 2점 있었는데 개중 인상적. 음.. 맞다. 보나르의 그림도 좋았다. 색채의 그 환함. 경탄스러웠고... 하도 많은 그림을 봐서 뒤죽박죽.. (되어버렸다.)

퐁피두센터는 마치 놀이터 같아서 반나절 정도 여유가 가지고 넉넉히 보면 좋은 곳이다. 워낙 넓어서 다리품을 꽤 팔아야 하는데, 함께 한 일행이 모두 30대라 끌고 다니는덴 애 좀 먹었다. 게다가 현대미술은 예술로 치지 않는 이가 껴있어 애매한 앙상블의, 묘한 감정 다툼이 있기도 했다.

에펠 탑은 사진에서 보던 그대로였지만 정말 크고 조명이 화려하여 볼 만했다. 탑 꼭대기까지 엘레이베이터를 탑승하면 10유로, 2층까지는 3유로를 내야 한다. 한 밤이라 나중에 기회가 되면 보기로 하고 패스. 대신 '바또무슈'라는 센느강을 1시간 정도 유람하는 배를 탔다. 브라질 고등학생들이 수학여행을 왔는지, 강변의 연인을 볼 때마다 '꺅꺅~' 소리지르고 꽤 시끄럽게 굴었지만, 나름대로 여행객의 흥취를 돋궜다.

센느강변에는 우리나라에서처럼 러너들이 꽤 있었다. 어찌나 잘 뛰던지 유람선보다 빨랐고, 코스도 더 긴듯 했다. 다리 긴 커플이 함께 뛰는 모습이 꽤 보기 좋았다. 지친 하루를 마감하고 민박집으로 들어오니, 밤 10시 30분. 오늘, 봉 마쉐 백화점을 또 봤고, 그대로 지나쳤다. (웅... 언제 한번은 들어가봐야 하는데...)


댓글(1)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플라시보 2004-03-19 16: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볼리 59번지 꼭 한번 가 보고 싶네요. 완성된 그림을 보는 것도 감동이겠지만 직접 그리고 있는 모습을 보는것 또한 감동의 물결이리라 상상이 되네요. 사실 무언가에 몰두하고 있는 사람만큼 매력적으로 보이는 것은 드물다고 생각합니다. 평소 아무 사심 없었던 인간인데 어느날 너무나 열심히 무언가를 하고 있는 모습에 홀딱 반해 결혼에 골인했다는 스토리도 심심찮게 듣구요. 요다님의 여행기 너무너무 잘 읽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되길 기대해 봅니다.
 

어제 파리에 아침 6시 비행기로 도착, 바로 민박집으로 이동해 짐을 풀고 아침을 먹다. 1시간 휴식후 탕형제가 운영하는 차이나마켓에서 장을 보고(중국인들의 식재료를 파는 곳인데 배추, 부추, 무 등 한국인들도 식성에 맞게 장을 보기 좋다), 오르세이 미술관을 기점으로 본격적인 관광 시작.

오르세이 미술관 입구에서는 간단한 짐검사를 한다. 짐 검사가 끝나면 표를 구입해 입장. 그라운드(조각중심), 2층, 1층 순서대로 관람. 가장 인상적인 화가는 '모네'. 평소 모네에 대해서 특별한 감정을 가져본 적 없는데, 직접 그림을 보니 가장 많이 마음이 흔들려 한참을 감상. 너무나 생생한 그림이라서 (마치 영화에서 사진이 영상으로 변화해) 시냇물 소리가 들리고 바람에 나부끼는 들판을 보는 것처럼 그림이 살아 움직였다. 너무나 신선한 경험.

고흐의 그림은 6점 밖에 없어서 아쉬웠지만 자화상의 그 연한 파랑색은 잊혀지지 않는다. 너무나 차분하고, 고요해서 고흐가 직접 거기 와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그런가 하면, 로트렉은 그 활달하게 흐르는듯한 선이 그대로 춤이 될 것처럼 명랑해서 보고 있으면 마음이 환해졌다. '춤추는 아브릴'을 그린 그림은, 몸체는 하릴없이 발랄하지만, 얼굴 표정은 무표정에 가까워 가상한 느낌을 주었다.  

명화를 직접 본다는 것은,  그림책이나 엽서로 보는 것과는  차이가 없는 것 같으면서도 있었다. 그러니까, 형태나 색채 같은 건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을 것 같은데, 크기 면에서 사람을 압도한다든지, 이렇게 작은데 어쩜 이리 자세할까 같은 색다름(놀람!)을 선사한다. 그러나 나는 색채의 신비가 가장 크게 다가왔다. 겹겹이 칠해서, 저 밑바탕 색이 살짝 살짝 얼비치고, 붓질의 힘이 그대로 느껴지는, 떡진 물감의 질감이 고스란히 살아나는. 정말 살아있는 생물을 보는 느낌이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란 진부한 표현 말고는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

오르세이 미술관 관람후 '로댕 갤러리'로 가다가 시위대 물결을 만났다. 로댕갤러리는 우리로 따지면 시청 부근의 있어서 이곳에서는 늘상 시위가 있는 듯했다. 사람 수는 많지 않았지만, 노점상과 깃발, 전경, 전경차 등은 서울에서 보던 여느 시위대와 별다를 것 없었다.

로댕갤러리에서는, 문닫는 시간이 코앞이라 조각정원만 산책할 수 있을 뿐이었지만 무척 아담하고 이뻐서 다시 가고 싶었다. 꽤 잘 꾸며진 갤러리다.

생각보다 시간이 남아, 그 후에는 우리나라로 따지면 '인사동 거리'쯤 된다는 '박거리'와 '그레넬' 거리가 교차하는 거리를 윈도우 쇼핑했다. 상점마다 디스플레이를 잘 해놓아서 보는 즐거움이 있었다. 쭉 대로를 따라 걷다보니 그 유명한 봉마셰 백화점(우리로 따지면 시청에 있는 '신세계 백화점'쯤 될 듯)을 만났지만, 한눈으로 흘겨 보고 들어가지 않았다. 왠지 고가의 물건들에 기죽을 것 같아서.

아이스크림을 하나 사들고, 공원에 가서 쉬다가 민박집으로 돌아온 하루. 별로 한 것 없는 것 같지만 알고 보면 참 많은 일을 했다. 파리 지하철을 몇 번이나 갈아탔고, 프랑스 회화도 능숙하지 않지만 최선을 다해서 했고, 그리고 무엇보다 공항에서 파리 변두리에 있는 이 민박집까지 제 힘으로 찾아온 일이 너무 뿌듯하다. 지금 묶고 있는 이 집의 주소는 막심 고리끼 13번지. 거리 이름이 막심 고리끼라 그 연유를 물으니, 주인 왈 "뭐가 의미가 있을 거예요. 지금은 모르지만 곧 알아봐드릴게요"라는 무덤덤한 답변이 돌아왔다. 으휴~.

하지만 민박집은 정원이 딸린 단독주택이라서 깨끗하기도 하고, 여유롭기도 하고, 파리 가정집의 분위기를 한껏 느끼게 해준다. 밥도 맛있고, 주인도 친절한 편이다. 오늘은, '퐁피두 센터'와 '르네르네집', 그리고 '유럽사진미술관'을 간다. 빠듯한 일정이지만, 열심히 다녀야지.


댓글(6)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zooey 2004-03-18 16: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오. 성혜씨. 부럽소. ㅠ.ㅠ 아, 그리고 나는 프랑스가 아니라 이탈리아를 가기로 했소. 3월 말 예정. 거기선 만나기 힘들듯. 잘 보러 다녀요~

도넛 2004-03-18 16: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거참 염장도 가지가지구려 T_T

chaire 2004-03-18 16: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프랑스에 계시는군요, 지금....! 책에서 보던 것들을 실제로 만나고 계시다니... 정말 부럽습니다. 건강하고 신나는 여행 되시길...

플라시보 2004-03-18 17: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너무너무 잘 읽었습니다. 평소 여행기 읽기를 좋아하는 저 인데 이렇게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여행기를 보고 있자니 마치 내가 다녀온듯 손에 잡히는 생생함이 느껴집니다. 저도 그림 보는것을 좋아하는데 늘 사진으로만 보던 대가들의 그림을 실제로 보면 어떨까 하고 맨날 상상 했었거든요. 고흐의 파란색. 저도 보고싶어 지네요. 앞으로도 계속 올려주시길 부탁드리겠습니다. 정말 잘 읽었습니다. 꾸뻑

kimji 2004-03-19 09: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시기 전에 인사드리겠다는 약속은 지키지 못했군요. 그 먼곳에서 이렇게 가깝게 이야기를 들을 수 있으니 참 좋아요. 프랑스의 날씨는 어떤가요. 서울은 이제 막 봄입니다. 부러운 마음이야, 어찌 말로 설명할 수 있을까 싶습니다. 그저, 넋 놓고 읽기만 합니다. 그리고 애꿎은 표정으로 책장의 미술관련 책들을 훑습니다. 역시나 길 나선자만이 가질 수 있는 행복, 그리고 충만함을 많이 느끼시길 기원할게요. 그리고 몸 건강히. 글, 계속 기다릴게요.

요다 2004-03-28 1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꺼번에 답합니다.

kimji: 여기도 봄날입니다. 벌써 벗꽃과 목련, 개나리가 피었어요. 여기 사는 분 말로는, 이렇게 따듯한 날씨는 '이상기온'에 가깝다면서 운이 좋다는군요. 오늘 아침에 봄비가 땅을 젖셔 감상이 새롭네요. ^^

zooey: 와우!~ 이탈리아에 3월 말에 온다구요? 저도 프랑스-이탈리아-스위스 일정이니까, 어떻게 하면 마주칠 수도 있겠어요. 우리는 피렌체 자매민박에서 2박을 하고 베네치아 호텔에서 1박을 할 예정. 남프랑스 쪽을 돌려고 했는데 거기는 식문화가 발달하고, 프랑스어 아니면 통용되지 않아서 우리같은 초보 여행자가 들리기는 만만치 않다고 해서 일정 변경했어요. 저는 3월 30일 출발, 4월 1일 서울 도착 일정입니다. 출발전에 상세 일정 일러주세요. 민박집으로 제가 전화할 수 있을 듯!

플라시보: 언제나 관심가져 주셔서 감사합니다. 님도 곧 좋은 기회가 있어서 미술감상하려 여기 오실 수 있을 거예요. 저도 제 인생에 언제 이런 복된 날이 있을까 싶었는데, 노래를 부르니까 진짜로 이뤄지네요.<그렇다고 생각하면 진짜 그렇게 된다>였나? 그 책에 쓰여있는 대로 삶은 소원하는 그대롭니다.

카이레 : 우와. 첫 인사 아닐까요, 우리? 고맙습니다. 또 여행기 올릴게요. ^^
 

어제, 여의도 국회의원 앞 국민은행 노사모 집회에 다녀왔다. 오전 10시부터 저녁 7시까지 있었는데, 명계남과  다른 한 분이 대오를 지도했고, 처음부터 끝까지 그 자리에서 더 나아가지 못했다. 전경이 한 발자국도 내주지 않아 무리하게 시도하다가 사람들이 다칠 것을 우려한 지도부의 합리적 판단 때문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바로 앞 국회의사당으로 쳐들어가 싶었지만, 노사모가 과격행동을 하면 오히려 국민 정서나 여론에 거슬리지 않을까 싶어서 마음속으로 눈물을 흘리며 '격문1', '너희는 아니야',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불렀다.

국민은행 앞은, 한나라당 코앞이기도 해서 '너희는 아니야'를 부르며 양 손으로 한나라당을 가리켰다. 너희는 정말 아니라고, 우리는 가슴터지게 불렀다. 너무너무 기가 막힌 현실이었다. 집에 돌아와 보니, 노사모 한 분이 분신하셨다. 명계남씨가 그렇게 우려하던 일이, 일어났다.

오늘 아침 TV로 경호권 발동, 탄핵안 상정, 투표, 개표 과정을 지켜보고 msn 대화명으로 전과정을 계속 방송했다. 누가 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심정으로, 지금 회사에서 일하고 있을 전 동료들을 생각하면서 급박한 상황을 중계했다. 이제 개표까지 끝났고, 지금 여의도 국민은행 앞으로 다시 간다.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마냥 기다릴 순 없다.

오늘은 어제보다 더 긴박한 상황이 될 것이다. 어쩌면 전원이 검거될지도 모르고, 체류탄이 발사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직접행동을 하는 것, 이뿐이다. 국민이 뽑은 대통령을 의회가 거부하는 대선 불복종. 의회의 폭거, 피흘리지 않은 쿠테타. 영국서는 명예혁명이, 우리에게는 2004년 3월 12일 노무현 대통령 탄핵안 통과가. 이 얼마나 상반된 이야긴가.

------집회장 가실 분, 이 노래 프린트해 가세요-------                                                      격문 1 : 조선일보 서정주 박정희까지/ 동상걸린 손가락을 잘라내가며/해방을 위해 싸웠던 건 백성들이다/ 학살원흉 전두환과 그 똘마니들/ 5공 6공의 부귀영화 대물림 할 때 / 잡혀가고 죽어가고 고문 당하며/ 민주를 위해 싸웠던 건 국민들이다/ 친일과 친미로 배불리는 매국노들/ 여의도에 또아리 틀고/ 갈수록 적반하장 후안무치 지랄염병/ 국민들 피눈물을 짜는구나. / 더이상 못참아 국민이 나서자/ 우리의 힘으로 모두 갈아엎자/ 3.1 정신으로 5월의 노래로/ 6월 함성으로 역사를 만들자/ 국민의 힘으로!

너흰 아니야 : 1. 그래 너희들이 말하는대로 대통령은 물러나야 할지도 몰라./ 일가친척 측근 가리지 않고 검은돈 받아 챙겼을지도 모르지/ 노동자 농민은 죽음으로 외치고 서민은 카드빚 때문에 목을 매는 이 개같은 세상 거꾸로 된 이 나라/ 누군가는 바로 잡아야 하겠지만 그래도 너흰 아니야/ 너흰 아니야/ 너흰 나라를 걱정할 자격 없어/ 채권에 사과상자에 이제는 아예 트럭채 차떼기로 갈취하는 조폭들/ 그래서 너흰 아니야/ 너흰 아니야 / 제발 너흰 나라 걱정 좀 하지만/ 너희만 삥 안 뜯어도 경제는 살아날거야/ 너희들은 아니야.

2. 그래 너희들이 말하는대로 전투병 파병이 국익일지도 몰라/ 파업 때문에 나라가 망하고 검찰의 수사는 쇼인지도 모르지/ 시대가 바뀌어도 북한은 적이고 미국은 죽었다 깨도 혈맹이라는/ 너희들의 망발 너희들의 헛소리/ 천만번 양보해 옳다고 하여도/ 그래도 너흰 아니야/ 너흰 아니야/ 너흰 나라를 걱정할 자격 없어/ 천황을 위해 죽으라 전두환이 영웅이라 선동하고 찬양했던 찌라시/ 그래서 너흰 아니야/ 너흰 아니야/ 제발 너흰 나라 걱정 좀 하지마/ 너희만 찌그러져도 세상은 좋아질거야./ 너희들은 아니야/ 너희들은 아니야/ 너희들도 아니야/ 너희 둘은 손잡고 나가 있어!


댓글(4)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zooey 2004-03-12 1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할 말이 없는 상황이지요. 기가 막혀서 기절할 지경. (지금 회사에서 무지하게 열내고 있음) 성혜씨, 무사히 잘 다녀오셔요.

paviana 2004-03-12 1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열 받아서 가슴을 주체할 길이 없어서, 페이퍼들을 둘러 보다 왔습니다..정말 너흰 아니야 라는 노래가 가슴 절절히 와 닿습니다...제 몫까지 잘 다녀오세요...

. 2004-03-12 1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분노를 감출 수가 없습니다.
노태우나 전두환이 대통령 할 때는 탄핵의 ᄐ도 꺼내지 못하던 작자들이
노무현 대통령 탄핵이라니요. 헌정사상 이보다 투명한 대통령이 있었습니까?

기존의 대통령들은 감추어진 폭력과 권위로 자신의 사생활을 가렸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교만한 기득 세력들은 그런 그 분을 더 흔들고
목 죄었습니다. 왜? 바로 그들의 자리에 그가 서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반드시 4.15 총선에서 이 몰지각한 인간들을 심판해줘야 합니다.
국익보다는 사사로운 이해 관계가 먼저인 그들에게 철퇴를 꽂아야 합니다.

저는 그 날 개표위원으로 일을 하게 되어 있는데,
그 현장에서 살아 타오르는 민중의 횟불을 만나고 싶습니다.


요다 2004-03-14 1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왜 해체 민노당!인가 이야기하렵니다. 사실, 저는 지난 대선 아니, 97년 대선 때부터 민노당 지지자였습니다. 민중과 노동자가 만든 종별적인 당으로서 제 역할을 자임하고, 사회의 심장의 좀더 왼쪽으로 옮기기 위해 노력하는 당이었기 때문입니다. 권영길 대통령 후보 시절에 저도 노사모의 선거자금 모금 운동 못지 않게, 귤 팔고 서명운동 받고, 오뎅 팔아가며 후원했습니다.

그리고 2002년 대선. 마음 속으로 노무현이 되는 것 무지하게 바라고 기다렸지만 그래도 민주노동당에 투표했습니다. 제가 노동자이기 때문이었습니다. 노무현이 대통령이 되는 것도 좋지만, 노동자를 대표하여 그들의 권익을 지켜주는 대통령 후보가 저에겐 더 중요했죠.

그러나 '피흘리지 않는 쿠테타' 3월 12일 의회 폭거에 대해서, 민노당은 전혀 입장을 밝히지 않다가 오늘에서야 이것도 입장이라고 밝혔습니다.
http://www.kdlp.org/index.php?kdlp_act=home&kdlp_act2=board&board_act=view&board=notice&data_no=1784
여기에 가보면 알겠지만, 민중생존권 유린하는 당리당략 보수 정치권 이제 신물난다, 우리가 해보자라는 불타는 권력욕 뿐입니다.

총선을 앞둔 그들 눈에는 이 전선이 보이지 않을까요? 어째서 국민이 분노하는 자리에 민노당의 깃발은 보이지 않을까요? 민노당 학생위원회는 자기 깃발을 들고 집회에 결합해서, 자신들은 '노빠는 아니지만 민주주의를 사수하기 위해서, 6월 항쟁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나왔다'고 밝히는데 민노당 최고위원들은, 도대체 뭘 하고 있는가요? 너무 실망스럽습니다. 그리고 너무 더럽습니다.

노동자 종별적인 당이라면서, 92년 민중당을 잇는 계보라면서 살아있는 좌파의 심장이라면서 어떻게 이럴 수 있는지. 지금은 보수대연합에 맞서서 싸워야 합니다. 우리는 각자 생각이 좀 다르고, 입장이 다를지 몰라도(그래, 어떤 노랫말 '나란히 나란히 가지 않아도 우리는 함께 가는 거지요!'처럼) 전선 앞에서는 자신의 이익을 재지 말고 내 심장을 던지고 싸워야 합니다. 노동자의 당이, 잃을 게 뭐가 있습니까? 우리는 원래부터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피기득권자가 왜, 기득권을 쥔 자들을 따라 행동합니까? 너무나 가슴아픕니다. 민노당이 빨리 정신차리고, 지금의 보수 정국을 정면으로 돌파해 나가길 바라고, 또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