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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섭 사진화랑 개관 1주년 기념 전시회로 열린 '외젠 앗제'전. 사진 초창기의 숨은 장인을 만날 수 있는 특별하고 특별한 전시다. 나의 경우, 벤야민의 '기술복제 시대의 예술작품'에서 외젠 앗제를 처음 알게된 후, 그가 사진사에 남긴 빛나는 족적을 흠모하게 되었다. 흠모라고 하기에는 사진에 대한 나의 지식이 짧고 무르지만.

하여간, '외젠 앗제'의 사진을 서울 한복판에서 보게 될 줄이야... (요새 국내 큐레이터들이 세계미술계에서 차지하는 사진시장의 규모와 그 상품성을 뒤늦게 깨닫고, 국내에 그 시장을 이식하느라 분주하단 소리는 들었지만, 이렇게 급속도로 대가들의 사진전이 열릴리라곤 상상도 못했다). 얼마전 시립미술관에서 했었던 '도큐멘트 전'은 그런 점에서 상징적이다. 사진의 기록가치에 주목한 전시기획으로, 교육적 효과가 무척 컸다. 전시 작품의 독자성이나 미적 가치(?)보다는 미술관으로 들어온 사진의 위상(또는 이유를)을 잘 보여준 예라고 할까? 나름대로 꽤 의미심장했다(진지했다).

뒤이어 열리고 있는 큰 큐모의 사진전(외젠 앗제-김영섭 사진화랑, 앙리 까리띠에 브레송-뤼미에르 갤러리, 헬무트 뮤튼전-조선일보미술관)은 그에 대면 엄청 발빠른 행보이다. 워낙에 이름있는 사진가들이라 언론 홍보로만도 관람객 모집이 가능하고, 외젠 앗제의 경우는 균일가 판매방식로 전작품 매진을 기록했다고 하니 대중성과 상업적 이익 두 마리 토끼를 잘 좆는 중이랄까.

지난 월요일 외젠 앗제 전시회를 찾았다. 4000원이라는 정말 저렴한 가격에, 60점의 사진을 볼 수 있었다. 4000원이면 비싸지 않냐고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도 있겠다. 하지만 생각해보라. 살바도르 달리 입장권은 12,000원이다. 사진은 늘 회화보다 못하다고 평가받아왔지만(서양에서도 사진이 인정받기 시작한 건 몇 십년 되지 않는다) 앗제는 달리와 비등한 사진 거장이다. 아무렴! 사진이란 신기술을 어떻게 써야 할지 몰라 초상사진으로 일관하며 장식적인 회화를 흉내내던 시절, 앗제만이 사진의 독자성을 인식했으니 말이다. 게다가 앗제로 인해 사진은 독자적인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할 수 있지 않았던가. 앗제 없이 현대 사진은 없다. 그런 앗제의 사진 60점을 4,000원의 가격에 볼 수 있다는 것은 횡재나 다름없다. 전시장 규모는 작았지만, 서울에서 앗제의 사진을 본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더이상 불평을 할 수 없었던 것이다. 언제 또 앗제의 전시회가 열릴지 불확실한 이 마당에.

지금 사람들의 눈에 앗제의 사진은 범속하기 이를 데 없겠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앗제에 의해 전파된 사진의 전형에 우리가 이미 익숙해졌기 때문이지 그의 사진이 진부하기 때문은 아니다. 어디 그 당시에 풍경사진을 찍기나 했던가.

앗제는 초상사진이 범람하던 시대에 최초의 풍경사진을 탄생시켰다. 마치 범죄현장을 담듯 1890년대 파리 시가지 풍경과 근교 프로방스 지방을 계속해서 목적의식적으로 찍어낸 것. 포토그래퍼의 시작은, 그리고 취재사진의 시작은 앗제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아니, 사실이 그렇다.

사진이 예술의 자리에 앉게 된 그 최초의 순간에 앗제가 있다. 사실, 앗제는 만 레이에 의해서 초현실주의자로 세상에 소개되었다. 사물만 가득한 앗제의 사진은 뭔가 비밀스럽고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풍겼는데 초현실주의자인 만 레이의 눈에는, 앗제야말로 자신들의 강령을 앞서 실천한 선구자로 비쳤던 것이다. 지금까지도 앗제 사진을 초현실주의로 읽어내려는 경향은 여전하다(사진이 Fine Art에 발목잡힌 증거). 하지만 만 레이가 아니였다면, 앗제와 그의 사진은 더 깊은 잠을 자야만 했을 것이다.

앞서서 시립미술관의 '도큐멘트전' 이야기를 잠시 했는데, 앗제 사진은 바로 그 '기록가치'면에서 더 큰 의미가 있다. 앗제 없이는 1890년대 파리의 모습을 볼 수 없으니까. 이 점, 너무 명확하다. 사진의 기록가치란, 역사적 증거물... 바로 그 말과 같다. 보도사진만 해도 그렇다. 보도사진이 역사를 증거하지 않는다면, 그렇게 각광받지도 팔리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건 나의 느낌일 뿐이지만. 거기 덧붙여서 앗제 사진의 '사물성'을 들지 않을 수 없다. 사물, 그 자체. 다시 말하면 '즉물성'. 이건 뒤샹의 '샘' 이후 생겨난 오브제 아트의 핵심주제이다. 사진은, 비록 입체적이지는 않지만 사물을 보여준다. 사물을 담고 있고, 사물의 어떤 이미지를 보여준다. 그것도 날카로운 기계의 눈으로. 이번 전시회에서 많이 좋아라했던 사진도 그런 류였다. 외진 골목, 손수레, 물통, 열려진 창문, 쓰레기... 대낮의 공동주택. 사물이 말을 걸어오는 듯한, 비의적인 느낌. 다른 세계--사물들의 세계--에 불쑥 들어선 느낌. 그랬다.

140만원. 앗제 사진 1장의 가격이다. 어떤 기준에 따라서 140만원이 책정되는지는 몰라도, 월급쟁이가 큰 맘먹고 구입할 수 있는 가격선이라고 (크게 잡아) 생각해본다(호당 몇 십만원 하는 그림도 있는데 말이지). 앗제 사진이 140만원이라는 건, 달리 보면 사진이 아무리 잘 나가봐야 모나리자 뺨을 칠 수 없단 이야기이기도 하고...(뭐, 작품 거래에 대해서는 아는 게 없으니 더 떠들 수도 없지만)느낌상~~ 의외로 쌌다는 말이다. 음... 좀 의외로.

 앗제 사진전에 맞춰서 책도 한 권 소개하자면...

판매가 - 10,800 원
할인폭 - 1,200 원 (10% off)
마일리지 - 3% (324원)
출고예상시간 : 72시간 이내


원제 : Euge'ne Atget (2001)
열화당
2003년 11월 1일 / 128쪽 / 155*137mm
ISBN 893010049X

 

도록(20,000원)보다 싸고 작품수도 많은 편이니 구입해도 손해는 안본다. 아예 열화당 사진문고 시리즈를 다 사면 좋겠지만, 부담이 된다면 이 책 한권이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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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nda78 2004-07-16 2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영섭 사진화랑이 어디 있는 거에요? ^^ 보러 가고 싶은데..
브레송은 13점인가 밖에 안된다고 그러던데, 이건 꽤 많네요.

요다 2004-07-17 0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시는 두 곳에 나뉘어서 진행됩니다. 인사동에 '크라운 베이커리' 아시나요? 바로 그 앞에 '유진관'이 있고, '토토의 오래된 물건'(상점 이름)이 있는 빌딩 3층에서(여기가 본관) 나머지 작품이 전시됩니다. 입장권 1장으로 두 곳을 다 둘러볼 수 있어요.
 

뜻하지 않게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을 다녀올 일이 생겼다. 집에서 1시간. 왕복 2시간. 그 시간의 길이를 생각하면 현관문을 나서기 싫었지만, 이인성의 '까이유'라도 보고 오자는 마음으로 책 보고 음악도 들으면서 현대미술관을 향해 갔다.

사실. 국립현대미술관에 큰 기대는 않는다. 소소하고 아기자기한 프로그램이 많은 건 사실이지만(특히, 어린이 미술관 같은) 그리고 자랑할 만한 한국 미술의 허리가 거기 있다곤 하지만... 너무 넓어서 다리가 아프다. 거기 다녀오려면 여간 피곤하지 않다.

두번째로, 기획전시 - 특별전시 관람료가 턱없이 비싸다. 시립, 사립 미술관도 얼마 하지 않는데 거기는 국립이라면서 기획전시 입장료를 2,000원이나 받다니. 지난 1년에 내가 낸 세금이 얼마나 많은데 그 혜택을 못받는다 생각하면 억울하다.

에이~. 이미 도착하지 않았나. 투덜거려봐야  나아질 것 없다. 1전시실 '미술 밖의 미술', 2전시실 '일상의 연금술', 3,4,5전시실 한국현대미술(구상/비구상/공예), 6전시실 신순남 '잊혀진 질곡의 유민사'전, 이렇게 보면 되겠구나. 대한민국예술전도 열리고 있지만 거기는 포기. 재밌는 곳은 2전시실이요, 인상깊고 아쉬웠던 곳은 5전시실이었다. 총 관람시간은 4시간.

상설 전시는 추상회화가 너무 많아서 잘 찾게 되지 않는다. 추상그림을 보고 있으면 커다란 우물을 들여다 보는 것처럼 이상하고 애매해서, 또 멍청해지는 것 같아서 빨리 비켜나고 싶다. 앵포르멜의 영향을 우리 나라가 워낙 세게 맞아서 그렇다는데, 뭐 하여간 그쪽 미술은 잘 모르겠다. 그냥 색감이 예쁘구나. 붓질이 이렇게 억세? 이런 생각을 할 뿐이다. 아니면 저건 부엌에 걸면 좋겠고, 만약 서재가 있으면 이게 좋겠네 같은... 쓸데 없는 생각.

반대로 구상은 끌린다. 추상에 비하면 단순하지만 작가마다의 개성이 느껴져서 좋다. 외고 있는 작품명이나 작가 수는 많지 않지만 다시 와도 또 보겠구나 싶은 그림들. 이인성의 '까이유'를 소장하고 있다고 해서 찾아보았지만 전시작품은 아니었다. 국립현대미술관이라는 꽤 호사스런 이름에 비하면 상설 전시 작품수는 또 적게 느껴지는 이 부조화. 구상 작품을 좀더 실컷 보여줬으면 좋으련만. 애고... 또 푸념이네. 

기획전 '일상의 연금술'은 일상의 사물을 이용한 설치미술이다. 빨대, 도끼, 통조림통, 조립장난감, 껌종이, 스팽글, 면장갑, 식용국수, 연탄, 키보드 키, 플라스틱 우유병... 일회용품부터 먹거리까지 별별 게 다 출동했다. 초등학교 공작시간을 연상시키지만 공작 솜씨는 훨씬 좋고나. 옥수수 통조림통은 내용물을 비우고 미니어처 인형을 넣어두는가 하면, 손수 제작한 인형을 조립하기 전 프라모델 장난감 배열대로 담아내기도 했다. 물건들을 조합하거나 변형하고, 반복하거나 집적한다. 혹은 이미 있는 물건을 모조한다.

본래의 쓰임을 바꾸니 연탄도 작품이 되는 새세상. 예술 작품이 별 건가 싶었다. 발상의 전환. 사물을 보는 눈을 부단히 새롭게 하는 것. 창작은 어려운 건데 이렇게 다 차려놓은 밥상을 보면 쉬워보이기도 하니.... 작가들의 고충은 어련할까. 서울에도 재밌는 기획전이 많으니 굳이 과천까지 올 것까지 없을 것 같은데... 만약  동물원에라도 온다면 '일상의 연금술' 정도는 보고 가면 어떨지. 리플렛 설명이 친절해서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마지막은 6전시실에 마련된 신순남전. 신순남은 스탈린 통치 시절 연해주에서 우즈벡키스탄으로 강제 이주된 이산 예술가다. 아홉살 때 할머니와 함께 강제 이주열차에 올랐는데, 10일동안 먹지도 못하고 환풍도 안되는 화물차 속에서 수많은 죽음을 보았다. 화물차 안에서만 1만명의 동포가 죽었는데, 그 때의 참혹했던 장면은 그의 작품 소재가 되었다. 화이트, 레드, 블랙 이 세 가지 색을 주조로 한 그의 그림은 경직되고 어두워 종교적인 긴장감마저 감돈다. 애통해하는 가족의 얼굴.. 비쩍 마른 몸에 눈만 퉁퉁 부었다. 슬픔을 마주할 힘도 없어 눈감은 군상들. 몸은 쓰러질 듯 위태롭다.

이런 한국화가 그림, 처음이다. 강렬한 감정을 최대로 절제하여 담아낸 화폭. 작은 그림도 크게 느껴지는 마음의 진폭. 동굴속처럼 어둡기만한 그림에 한 줄기 빛이 있으니, 유족들 손에 들린 촛불이다. '아직 잊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가 함께 있습니다' 같은 다짐/기원이 빛난다. 민족의 아픔을 잊지 않겠다는 맹세같기도 하고, 죽은 이에 대한 위안 같기도 한, 그 촛불 꺼지지 않고 타오른다. 비장미가 느껴지지만 그래서 희망찬. 역설적인 이 그림을 뭐라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 다만, 생각한다. 기억만이 죽은 자에 대한 가장 좋은 예우가 아닐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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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토리 (http://www.factory483.org) 경복궁 역 4번 출구, 또는 안국역 1번 출구 (아트시네마 방향)

르네상스 때부터 19세기까지 성행했던 줄잡이 인형을 '마리오네뜨'라 부르는데, 줄을 조종하는 사람을 마리오네티스트라고 한다. 마리오네티스트들은 인형을 자신의 영혼까지 담을 수 있는 제2의 인격으로 생각한다.

마침 대안공간 팩토리에서 국내 유일 마리오네뜨 극단 '목성'의 전시회가 있어 찾았다. 팩토리는 전에도 손으로 만든 인형을 전시해서 찾은 적 있었는데 무척 협소한 공간이라서 '전시'라고 하기에도 조금은 멋쩍다. 하지만 사간동 구석진 골목에 이처럼 예쁜 샵(바깥에서 보면 찾는 사람이 없어 물건도 적은 인형샵같다)을 꾸며놓은 운영자의 마음이 예쁘게 느껴지는 곳이다.

전시 인형은 몇 점 되지 않는다. 그렇지만 전통적인 방식으로 손수 만든 인형을 들여다보는 재미가 좋다. 옷, 소품, 모두 다 직접 손으로 만든다. 나무를 깎아서 얼굴표정 하나, 손짓 하나를 다 연출하는데, 빨래줄에 집어놓은 '걱정이 많은 인형'은 잠잘 때 머리맡에 두고 자면 자는 이의 걱정은 다 가져가고 대신 행복을 가져다준다고 한다. 지금 위에 보이는 인형은 '별을 닦는 아저씨'. 유독 반짝이는 별을 만났다면 저 인형의 노고를 기억하라고.

내 어깨 넘어로 보이는(오른쪽 사진) 팔이 축 늘어진 '바느질하는 할머니'도 있다. 5월 8일에 이 인형으로 인형극을 열었다는데, 팩토리 홈페이지에 동영상이 올려져 있다.  코가 둥글고 앞 가르마가 정갈한 인형으로 커다란 입에서 구수한 입담이 흘러나올 듯하다.

'팩토리' 말고도 이 삼청동  골목에는 'Bim'이라는 작은 갤러리와 까페가 자리하고 있다. 갤러리 사이에는 예쁘고 볼 만한 샵이 많은데, 특히 신발 가게와 앤틱 가구점이 눈에 들어왔다.

대돌 위에 가지런히 놓인 색색깔의 구두들. 마법 구두처럼 혼자서 신나게 춤추며 달아날 듯해 불안하다. 디스플레이가 예술급.

 

 

 

 

 

 

 

둥글둥글 손으로 직접 쓴 방아간 간판도 보이고, 가게 사이마다 구불구불한 골몰길이 끝모르게 이어져 있다. 한껏 돌아다니고 싶은 동네다.

갤러리 학고재, 또는 학고재 출판사에서 직진하면 나오는 길. 인근에  '삼청동 파출소', '궁리 차이니즈 레스토랑', '진선 북까페', '티벳 박물관'이 있다. 한번쯤 걸음내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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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5-18 17: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요다 2004-05-19 0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그런 일이 있었군요. 저도 그런 식으로 따지면 황당한 경험이 많아서 차마 말할 수 없네요. 그러니 혼자만 당하는 일이라 생각마시고 그냥 웃어요. 이미 지난 일이기도 하고... 님의 아르바이트(??) 추억담을 들으니, 저도 하나 생각납니다. 학생 때, 경희대학교 한방병원 건물, 구석진 사무실에 앉아 '경희대 총동문 주소록'을 팔기 위해 열심히 전화를 돌려대던 일이... 그때, 창문 너머로 비원에 드리운 햇살이 참담할 정도로 눈부셨답니다. 내 젊음은 이렇게 주소록이나 팔고 앉았는데, 수목은 저리도 혼자 푸르구나 싶어서... 맘이 그랬죠.

지금 펑펑 놀고 있는데요... 맘이 역시 그런데요? 일전에 1년 경험하셨으니 아시리라 생각해요. 3달째인데 이러니... 이러다 10년 묵은 백조 될 것 같답니다. ^^ 그럼, 늘 활기차시길!
 

Sema 2004 전시 때문에 갔지만, 그보다는 '피에르&쥘' 회고전 "Beautiful Dragon"이 훨씬 인상깊었다. 피에르&쥘은 1970년대부터 함께 동거하면서 작품활동을 해온 게이 예술가. 피에르는 사진가고, 쥘은 화가였는데 둘이 함께 작업하면서 사진에 회화적 윤곽선을 입히는 활동으로 크게 주목받았다. 이번 전시는 1970년대부터 비교적 최근(2003년) 작품까지 회고전 형식으로 열렸다. 레드와 엘로우를 기본색으로 전시벽 전체에 감쌌다. 한쪽 벽이 모두 빨간색이면, 잇대어 있는 다른 벽은 온통 노란색이다. 이런 식으로 전시관을 꾸미고 그 위에 작품을 디스플레이했다.

액자 역시 작품성이 뛰어나다. 액자 장식은 사진의 느낌을 고스란히 이어주는 무늬, 색을 사용해 작품의 완결성(통일감)을 높였다. 치밀한 예술가란 점은 이런 데서 알 수 있다. 반짝이는 펄은 이들이 주로 사용하는 데코레이션 방법. 반짝임 때문에 사진의 느낌은 굉장히 키치적이다. 마치 고급스럽게 꾸민다고 꾸몄는데, 그 때문에 더 싸구려 같아 보이는 사진관 배경(돌이나 결혼 사진 배경)처럼 설정이 굉장히 생경스럽다. 그런데, 모델의 표정이나 포즈만큼은 너무나도 진실해서 이 둘이 묘하게 어울린다. 예상외로 깜찍한 것이다. 환상적이랄까? (가서 보면 무슨 말인지 알 수 있을 게다.)

모델의 바디라인은 에로틱하고, 몽환적이어서 사진을 보고 있으면 어떤 달콤함에 빠져드는데... 그 달콤함은 젊은 남성의 몸이 주는 탄력적인 느낌과 그 몸을 바라보는 작가의 사랑스런 시선에서 비롯된 것 같다. 뭐랄까. 연정을 품은 눈길이랄까? 모델은 거의 90%가 동양 남자(일본, 베트남, 중국)인데, 이들을 사진에 담는 작가는 서양인이다. 어쩔 수 없이 동양의 젊은 남자에게 보내는 연모의 정이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것이다. 뭐, 오리엔탈리즘이 아니라곤 말 못하겠지만 막연히 좋고, 막연히 사랑스럽고, 막연히 정이 가는 느낌은 비단 서양->동양의 경우만 있는 건 아니니까. 게다가 작가들은 꿈많은 게이다. 전시실이나 작가나, 작품이나 꽤 앙증맞다.

작품들이 일단 거부감이 없고, 작업솜씨가 산뜻하다는 점에서 추천하고 싶은 전시다. 보고 있으면 '풋!' 웃음이 터질 법도 한, 피에르&쥘의 동양예찬이 파리 시각예술계에 던졌을 파장이 어림되는 재밌는 전시. 전시실의 아름다움을 느끼기도 좋고, 피에르&쥘의 (아시아) 환상을 엿보는 재미도 있다.

한편 2,3층 전시실에서는 'Sema 2004' 전시가 한창이다. 동시대의 사회문화적 코드를 작가마다의 독창적 시각과 방법으로 작품화 시킨 전시로, 크게 6개의 주제로 구분된다. '소비게임-공룡의 트릭', 'Replay-이식', '키덜트(Kidult)', '루키즘-외모지상주의', '농담-현실의 틈새를 스며드는 아햏햏스러움', '혼자놀기-섬,꿈, 변신'이 그것이다.

이중 가장 재밌었고 또 자연스러웠던 전시는 네번째 주제를 표현한 '키덜트'. 작품 수는 많지 않았지만 키덜트의 감성을 억지스럽지 않게 잘 표현했다. 이차원의 벽면에 검정 테잎을 부쳐 Cyworld 미니홈피처럼 꾸민'Welcome to my room'이 첫번째 작품. 만화적인 디테일이, 앙증맞은 집을 온라인상에 지어놓고 즐거워 하는 키덜드의 감수성을 잘 말해준다.

바로 그 옆에는 아이의 몸에 30대의 얼굴(이마의 작은 주름, 거친 피부, 그리고 수염)을 붙인 미니어쳐 인물조각이 놓여 있다. 손에는 얼굴 없는 어린애를 들고 있다. 어울리지 않는 조합인데 그렇게 당연할 수가 없다. 과장이나 왜곡 없이 사실을 그대로 보여준 작품. 아이디어도 새롭지 않은데 그런 조합이 의외로 충격적이다. 보면 그냥 '섬뜩'하다. 바로 내 모습이니까. (이 작품이 맘에 들어서 사진 좀 찍으렸더니, 전시관리자가 한시도 고삐를 늦추지 않고 감시중이었다. 몇 번이나 기회를 노리다가 마침내 찍으려는 찰나, 갑자기 나타난 감시자 때문에 놀라서 손이 흔들렸다. 으아... 찍기는 했으나 형태가 허물어진 사진이 되고 말았다)

가장 표면적이라고 느꼈던 전시는 제5주제 '아햏햏스러움'과 제6주제 '혼자놀기'. 물론 그 중에서도 아기자기하게 주제를 잘 표현한 '넓적 오리너구리의 하루'(아... 작품 제목 정확히 생각 안남, 사진 전시)가 있었다. 참 아햏햏다웠던 소품을 이용해(특별제작한 '넓적 오리 너구리', 아래 사진 중 첫째줄 두번째) 사진 전시를 했는데, 마지막에 사진의 모델 '넓적 오리 너구리' 실물을 전시해 더 즐거웠다. ^^

전시5는 작품의 완성도가 좀 떨어지고 노력이 부족해 보였던 반면, 전시6은 큐레이팅이 부족해 보였다. 가는 철사로 조형물을 만들어 벽에 걸거나 부착한 작품이 있었는데, 작품의 존재감이 너무 없어서 거기에 작품이 있었는지도 모른채 지나갔다가 전시 카달로그를 보고서야 찾아냈다. 조명에 좀더 신경써서 관람자의 시선을 끌어주면 어땠을까 싶다. 또 투명고무로 만든 '물웅덩이' 작품은(바닥에 깔려 있었음) 사람들이 밟고 지나갈 정도로 팽개쳐져 있었다. 세심하게 보지 못한 나 같은 사람을 욕해도 할 수 없지만, 관람자들이 본의 아니게 작품을 밟고 지나가는 일은 없도록 신경써야 하지 않을까?

이렇게 다 관람하는데 3시간이 걸렸다. 좀더 볼 수도 있었는데 폐관시간이 다 되어서 어쩔 수 없었다. 혹시 가까운 시일에 시립미술관에 갈 생각이라면 넉넉히 시간을 두고 찾았으면 한다. 또, 초입에 있는 분수를 놓치지 말길. 물줄기가 가져다주는 청량함과 리듬감, 그리고 물줄기가 바닥에 부딪힐 때 나는 소리가 귀를 즐겁게 한다. 전시도 좋지만 이 분수대부터 미술관 앞마당까지 이르는 포장길이 참 예뻐 사진찍기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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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rim 2004-04-19 0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5월되면 한번 가볼까 했는데 님의 글을 보니 빨리 가보고 싶군요.
다음주에 다녀와야겠어요..

요다 2004-04-20 2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좋은 생각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