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 오신 날'은 절마다 행가 많다. 시어머니가 다니는 '기원정사'에 갔더니, 아나운서 박정수가 사회를 보러 오고, 장사익이 축하공연을 오고, 주지스님이 문주란 노래에 신나라 박수치고 정신없다. 절밥은 점심시간을 넘기기가 무섭게 끝나버려 구경할 수도 없는데, 사람들이 자꾸자꾸 모여들었다. 장사익의 노랫가락에 헛배를 채우고, 아랫 절로 내려왔다.
절도 교회만큼이나 숫자가 많아서 조계종 산하 절만 인근에 3곳이 있다. 두번째 찾은 곳은 영화사로 이 근방에서는 제법 큰 절. 여기는 노점상까지 마당에 들어와 장사진을 쳤다. 염주, 불경 테이프, 기타 불교용품을 팔고 있는 행자 옆에는 달마도를 그리는 중이 앉았다. 연습이 모자른 듯, 벌써 4장째 그리고 있는데 생김이 서로 다르다. 달마도라고 하니까 그런 줄 알지 그냥 보고는 모르겠다.
주렁주렁 달린 연등 한 켠에서는 연등접수처가 있고, 연꽃을 만드는 보살님들이 있다. 종이컵에 미리 만들어 놓은 연꽃을 한 장 한 장 덧붙여 한 송이 연꽃을 만드는 과정이 더디고 더디다. 길바닥에 앉아서 야채빈대떡을 먹는 사람, 마지막 산채비빔밥을 받아다 이제 막 비벼먹는 사람, 줄까지 섰는데 밥 끊겼다고 떼쓰는 사람, 부처님 오신 날 절간은 완전 시장바닥이다. 하도 정신이 없어 부랴부랴 다시 나왔다.
집에 어머님을 모셔다 드리고, 남편이랑 삼청동 나들이를 나갔다. 청와대가 바로 앞인데 늘 어려워서 근처까지만 가고 얼씬도 안 하다가 남편이랑 함께 용기를 내어서 청와대 앞까지 걸어올라가 본다. 차로 통행은 벌써 금지되어서 사람 그림자만 얼씬거릴 뿐, 차소리도 없이 고요하다. 저녁 무렵 산책삼아 나온 동네 사람들이 청와대 앞 가로수 길을 걸어 무궁화 공원에 닿는다. 인적 드문 길을 저것이 청와대, 그 뒤가 북악산, 저것이 연무대 그 뒤가 인왕산... 짚어가며 걸었다.
한 경찰관이 청와대 지붕 옆으로 영빈관을 손가락질한다. 혼자 보초 서는 것이 무료해 죽겠는지 묻지 않는데도 이리 저리 손가락을 대가며 건물 이름을 일러준다. 끄덕끄덕 고개질 서너번 하다보니 더 이상 물을 것도 가르쳐 줄 것도 없다. 경찰은 또다시 나홀로 근무를 서고, 우리는 북악 스카이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무궁화 공원을 한바퀴 돌고 나니, 더 디딜 땅도 없고 차 없이는 앞으로 나아갈 수도 없어 애써 걸어온 길을 되돌아왔다. 북악산을 등지고 늠름하게 서 있는 청와대에 눈길 한번 더 주고, 그동안 괜히 겁먹었다고 남몰래 안심하면서 삼청동 길을 내려왔다.
그리고 삼청동에 온 김에 인근에 있는 절 '칠보사'도 찾았다. 부처님 생일상을 차려놓고 신자와 스님들 간의 노래자랑이 벌어졌다. 희고 큰 케이크가 상마다 돌려졌고, 주지스님의 독촉에도 노래하겠다는 사람이 없자 주지스님이 '사랑가'를 시작했다. 아담한 절 안으로 민요인지, 판소리인지 알지 못할 노래가 흩어진다. 마당 한가운데 탄신 축하 꽃요람이 화사한 모습으로 저녁해를 맞는다. 장사익도 없고, 아나운서 박정수도 없는 조졸한 아기 부처 생일파티. 한자리 끼어 앉아 희고 부드러운 케잌을 한 입 베어물고 싶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인사동 옆 골목에 불빛이 휘황하다. 불교 용품점이 즐비한 골목으로 꺾어 들어가니, 조계종 종무사무소 안쪽에서 행사가 한창이다. 사람들도 북적북적. 무슨 일일까 궁금해 사람들을 제치고 들어가 봤다. 여기도 부처님 오신날 기념 행사가 진행중인데, 연단 위에 스님 한 분이 사회를 보고 좌중에는 남녀노소 누구랄 것 없이 차분히 앉아 연단을 바라보고 있다. 지금까지 수고한 사람들에게 감사의 박수를 보내자며 스님이 자원봉사자를 하나하나 호명하니 다들 일어나 박수를 친다.
동자승들이 연단 가운데로 쪼르르 달려 올라오자 여기저기서 셔터가 터지며 환영한다. 꼬맹이들이 반야심경을 잘 왼다고 한 스님이 칭찬하자 고것들이 쟁쟁거리며 뭔가 외기 시작하는데 언제 끝나지는 대체 어디쯤 외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사회자 스님이 '나무아미 관세음보살'로 대충 마무리 짓자 좌중은 까르르 웃어제낀다. 청년회의 풍물놀이와 함께 폐회. 볶아치는 꽹과리, 북, 장구소리를 뒤로한 채 무리 속을 빠져나왔다.
부처님 오신 날. 절마다 다른 풍경이지만, 어디고 연등은 차고 넘쳤다. 그만큼 비는 복도 많겠고, 그만큼 연등값도 꽤 나갔겠지만 아기 부처님의 탄생을 축하하는 마음이 덩그라니 천장에 매달린 것 같아 자꾸만 쳐다봐졌다. 저 연등 수만큼이나 이 행자님들 살면서 축하할 일이 많이 생겼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