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파리에 아침 6시 비행기로 도착, 바로 민박집으로 이동해 짐을 풀고 아침을 먹다. 1시간 휴식후 탕형제가 운영하는 차이나마켓에서 장을 보고(중국인들의 식재료를 파는 곳인데 배추, 부추, 무 등 한국인들도 식성에 맞게 장을 보기 좋다), 오르세이 미술관을 기점으로 본격적인 관광 시작.

오르세이 미술관 입구에서는 간단한 짐검사를 한다. 짐 검사가 끝나면 표를 구입해 입장. 그라운드(조각중심), 2층, 1층 순서대로 관람. 가장 인상적인 화가는 '모네'. 평소 모네에 대해서 특별한 감정을 가져본 적 없는데, 직접 그림을 보니 가장 많이 마음이 흔들려 한참을 감상. 너무나 생생한 그림이라서 (마치 영화에서 사진이 영상으로 변화해) 시냇물 소리가 들리고 바람에 나부끼는 들판을 보는 것처럼 그림이 살아 움직였다. 너무나 신선한 경험.

고흐의 그림은 6점 밖에 없어서 아쉬웠지만 자화상의 그 연한 파랑색은 잊혀지지 않는다. 너무나 차분하고, 고요해서 고흐가 직접 거기 와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그런가 하면, 로트렉은 그 활달하게 흐르는듯한 선이 그대로 춤이 될 것처럼 명랑해서 보고 있으면 마음이 환해졌다. '춤추는 아브릴'을 그린 그림은, 몸체는 하릴없이 발랄하지만, 얼굴 표정은 무표정에 가까워 가상한 느낌을 주었다.  

명화를 직접 본다는 것은,  그림책이나 엽서로 보는 것과는  차이가 없는 것 같으면서도 있었다. 그러니까, 형태나 색채 같은 건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을 것 같은데, 크기 면에서 사람을 압도한다든지, 이렇게 작은데 어쩜 이리 자세할까 같은 색다름(놀람!)을 선사한다. 그러나 나는 색채의 신비가 가장 크게 다가왔다. 겹겹이 칠해서, 저 밑바탕 색이 살짝 살짝 얼비치고, 붓질의 힘이 그대로 느껴지는, 떡진 물감의 질감이 고스란히 살아나는. 정말 살아있는 생물을 보는 느낌이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란 진부한 표현 말고는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

오르세이 미술관 관람후 '로댕 갤러리'로 가다가 시위대 물결을 만났다. 로댕갤러리는 우리로 따지면 시청 부근의 있어서 이곳에서는 늘상 시위가 있는 듯했다. 사람 수는 많지 않았지만, 노점상과 깃발, 전경, 전경차 등은 서울에서 보던 여느 시위대와 별다를 것 없었다.

로댕갤러리에서는, 문닫는 시간이 코앞이라 조각정원만 산책할 수 있을 뿐이었지만 무척 아담하고 이뻐서 다시 가고 싶었다. 꽤 잘 꾸며진 갤러리다.

생각보다 시간이 남아, 그 후에는 우리나라로 따지면 '인사동 거리'쯤 된다는 '박거리'와 '그레넬' 거리가 교차하는 거리를 윈도우 쇼핑했다. 상점마다 디스플레이를 잘 해놓아서 보는 즐거움이 있었다. 쭉 대로를 따라 걷다보니 그 유명한 봉마셰 백화점(우리로 따지면 시청에 있는 '신세계 백화점'쯤 될 듯)을 만났지만, 한눈으로 흘겨 보고 들어가지 않았다. 왠지 고가의 물건들에 기죽을 것 같아서.

아이스크림을 하나 사들고, 공원에 가서 쉬다가 민박집으로 돌아온 하루. 별로 한 것 없는 것 같지만 알고 보면 참 많은 일을 했다. 파리 지하철을 몇 번이나 갈아탔고, 프랑스 회화도 능숙하지 않지만 최선을 다해서 했고, 그리고 무엇보다 공항에서 파리 변두리에 있는 이 민박집까지 제 힘으로 찾아온 일이 너무 뿌듯하다. 지금 묶고 있는 이 집의 주소는 막심 고리끼 13번지. 거리 이름이 막심 고리끼라 그 연유를 물으니, 주인 왈 "뭐가 의미가 있을 거예요. 지금은 모르지만 곧 알아봐드릴게요"라는 무덤덤한 답변이 돌아왔다. 으휴~.

하지만 민박집은 정원이 딸린 단독주택이라서 깨끗하기도 하고, 여유롭기도 하고, 파리 가정집의 분위기를 한껏 느끼게 해준다. 밥도 맛있고, 주인도 친절한 편이다. 오늘은, '퐁피두 센터'와 '르네르네집', 그리고 '유럽사진미술관'을 간다. 빠듯한 일정이지만, 열심히 다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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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ooey 2004-03-18 16: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오. 성혜씨. 부럽소. ㅠ.ㅠ 아, 그리고 나는 프랑스가 아니라 이탈리아를 가기로 했소. 3월 말 예정. 거기선 만나기 힘들듯. 잘 보러 다녀요~

nutmeg 2004-03-18 16: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거참 염장도 가지가지구려 T_T

chaire 2004-03-18 16: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프랑스에 계시는군요, 지금....! 책에서 보던 것들을 실제로 만나고 계시다니... 정말 부럽습니다. 건강하고 신나는 여행 되시길...

플라시보 2004-03-18 17: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너무너무 잘 읽었습니다. 평소 여행기 읽기를 좋아하는 저 인데 이렇게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여행기를 보고 있자니 마치 내가 다녀온듯 손에 잡히는 생생함이 느껴집니다. 저도 그림 보는것을 좋아하는데 늘 사진으로만 보던 대가들의 그림을 실제로 보면 어떨까 하고 맨날 상상 했었거든요. 고흐의 파란색. 저도 보고싶어 지네요. 앞으로도 계속 올려주시길 부탁드리겠습니다. 정말 잘 읽었습니다. 꾸뻑

kimji 2004-03-19 09: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시기 전에 인사드리겠다는 약속은 지키지 못했군요. 그 먼곳에서 이렇게 가깝게 이야기를 들을 수 있으니 참 좋아요. 프랑스의 날씨는 어떤가요. 서울은 이제 막 봄입니다. 부러운 마음이야, 어찌 말로 설명할 수 있을까 싶습니다. 그저, 넋 놓고 읽기만 합니다. 그리고 애꿎은 표정으로 책장의 미술관련 책들을 훑습니다. 역시나 길 나선자만이 가질 수 있는 행복, 그리고 충만함을 많이 느끼시길 기원할게요. 그리고 몸 건강히. 글, 계속 기다릴게요.

요다 2004-03-28 1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꺼번에 답합니다.

kimji: 여기도 봄날입니다. 벌써 벗꽃과 목련, 개나리가 피었어요. 여기 사는 분 말로는, 이렇게 따듯한 날씨는 '이상기온'에 가깝다면서 운이 좋다는군요. 오늘 아침에 봄비가 땅을 젖셔 감상이 새롭네요. ^^

zooey: 와우!~ 이탈리아에 3월 말에 온다구요? 저도 프랑스-이탈리아-스위스 일정이니까, 어떻게 하면 마주칠 수도 있겠어요. 우리는 피렌체 자매민박에서 2박을 하고 베네치아 호텔에서 1박을 할 예정. 남프랑스 쪽을 돌려고 했는데 거기는 식문화가 발달하고, 프랑스어 아니면 통용되지 않아서 우리같은 초보 여행자가 들리기는 만만치 않다고 해서 일정 변경했어요. 저는 3월 30일 출발, 4월 1일 서울 도착 일정입니다. 출발전에 상세 일정 일러주세요. 민박집으로 제가 전화할 수 있을 듯!

플라시보: 언제나 관심가져 주셔서 감사합니다. 님도 곧 좋은 기회가 있어서 미술감상하려 여기 오실 수 있을 거예요. 저도 제 인생에 언제 이런 복된 날이 있을까 싶었는데, 노래를 부르니까 진짜로 이뤄지네요.<그렇다고 생각하면 진짜 그렇게 된다>였나? 그 책에 쓰여있는 대로 삶은 소원하는 그대롭니다.

카이레 : 우와. 첫 인사 아닐까요, 우리? 고맙습니다. 또 여행기 올릴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