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금) 누보 마레지역

아.. 아침부터 힘들다. 카레와 파전... 다소 잘 어울리지 않는 음식이었지만, 아침에 파전을 해주신 민박집 언니가 무지 고마웠다. 맛있게 얌얌. 오늘은 박물관만 2곳을 돌았다. 카르나발레, 피카소. 어제 퐁피두 센터를 다녀왔기 때문에 피카소 박물관에 대한 기대는 없었다. 게다가 상속세 대신 낸 작품들이니, '청색시대 자화상'를 빼면 다 고만고만한 작품들이다.

17세기 귀족의 저택에 잘 꾸며진 박물관이라 관람하기가 편했다는 점....피카소의 그림이, 정말 그 당시에는 얼마나 획기적이고 새로운 것이었는지 마음으로부터 느낀 점... 모딜리아니 그림 1점이 기억에 남는다. 피카소에 대해서 나쁘게 생각했는데, 그림, 조각, 데상을 보고서는 그가 '천재는 천재야'라고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얌체같은 천재, 자기가 천재임을 알아버린 돈과 여자를 무지 좋아하던 화가. 그는 자신을 그리스의 제1 신, 제우스에 비유하길 좋아했다(그런 점이 좀 재수없지).

카르나발레 박물관은, 파리의 역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역사 박물관이다. 17세기부터 공화기의 파리까지 층별로 나누어 '건축, 실내 장식, 회화, 생활 소품'을 전시하고 있다. 파리의 옛 자취를 느끼기에는 더없이 좋은데, 가만히 전시관을 따라가다보면 옛 귀족들은 어떤 생활을 했을까 눈에 그려지곤 했다. 파리에 도착해서 가장 먼저 보면, 그 후에 보게 될 역사와 유물을 이해하기 좋을 것이다. 생각보다 재밌는 곳이라서 시간이 없더라도 꼭 한 번은 들려볼 것을 권한다.

보쥬광장. 정사각형 한 변마다 8채의 저택이 있어 총 32채의 저택이 정원을 빙 둘러싼 스퀘어 공원이다. 규모는 생각보다 작아서, 동네 근린공원 같은 느낌이 들었다. 바람부는 공원에서 분수를 배경으로 삼고 크로와상으로 점심을 때웠다. 파리시민이 된 느낌. 분수는 말라있었지만, 벤취에서 크로와상을 먹는 정취는 남달랐다. 식사 후에는 '빅토르 위고의 집'에 들렀다. 육필 원고가 상당히 있을 거라 기대했는데, 생각보다는 '시늉내기'에 불과했다. 하지만 위고가 살던 당시의 실내장식, 가구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서 위고의 일상을 상상할 수 있었다. 집필실, 서재, 침실, 부엌, 응접실마다 위고가 있는 방풍경을 사진에 담아, 비교할 수 있게 했는데 모든 것이 그 당시 배치 그대로다. 위고의 대작 <레 미제라블>의 포스터가 각 층 계단마다 전시되어 있었는데 그 크기가 사람의 2배는 되어 압도적이었다. 장 발장 포스터 앞에서 찰칵!

원래는 여기까지만, 보고 윈도우 쇼핑으로 끝나는 일정이었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남아서 '몽마르뜨 언덕'을 가기로 했다. 몽마르뜨 언덕은, 파리시에서 가장 지대가 높은 곳으로 우리로 따지만 산동네쯤 된다. 그래서 피카소, 브라크, 모딜리아니 등이 모여 살면서 예술의 혼을 불태웠다지. 하지만 피카소와 입체파 화가들이 크게 선방을 날린 후로 땅값이 올라 예술가들은 '몽빠르나스'를 본거지를 옮겨야 했다고. 지금은 몽빠르나스가 세탁소 1번지라고 한다. 몽마르뜨 언덕으로 향하는 계단은 영화 <아멜리에>에서 아멜리에가 남자를 찾아가는 장면의 배경이 되기도 했다. 아름다운 풍경이 카메라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한다. 누가 찍어도 그림이 되는 환상적인 앵글.

이 꼭대기에 있는 sacre coeur 성당은 보불전쟁에서 패배하자, 참회와 통한의 의미를 담아 가난한 이 지역 주민이 헌당한 교회. 주머니돈으로 짓느라 100년 가까이 걸렸다고 한다. 교회 건립시기로 따지면 그렇게 기념할 만한 성당은 아니지만(가장 최근에 지어진 성당이므로), 교회 건축의 의미가 각별해서 세계 곳곳의 관광객으로부터 가장 큰 사랑을 받고 있다. 그 말은, 성당안에 봉헌된 촛불만 봐도 알 수 있다. 노트르담 성당도 이 성당만큼 촛불 수가 많지 않다. (가난한 사람은 마음이 부자라는데, 그 말이 하나 틀리지 않다!)

이 부근을 더 돌고 싶었지만, 다리도 너무 아프고 저녁 때가 다 되어서 그만 민박집으로... 파리지엔 처럼 보낸 즐거운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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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ooey 2004-03-23 14: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전히 여행 잘 다니고 있는 모양. ^^ 아, 근데 아쉽게 됐네요. 나는 3월 31일 출발, 베네치아에 도착할 예정. 아슬아슬하게 비껴갈듯. 피렌체에서는 나도 자매민박에 머물 예정이라오. 흐흐. 성혜씨, 메모라도 남겨놓아요~ (아, 거기서 만나면 좋았을텐데!)

* 아, 맞다. 성혜씨. 요새 유럽쪽 날씨가 어떤지좀 알려줘요. 옷을 얼마나 싸갖고 가야할지 감이 안 오네.

플라시보 2004-03-24 17: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좋으셨겠어요. 좋은 미술 작품을 보고 점심에는 공원 분수대 앞에서 크로와상으로 점심을 먹는 그 기분. 한번도 해 보지 않았지만 머리속에 막 그려지고 있습니다.(물론 가 보지 않은 곳이라 제대로 그렸을리 만무하지만...) 저도 내년부터 돈을 조금씩 모아서 해외여행을 계획 해 봐야 겠습니다. 지금은 가고 싶어도 직장에 너무 매여 있어서 불가능 할 것이고 서른 하나가 되면 슬슬 눈에 좋은 풍경들을 넣어주고 30년 넘게 써서 탁한 제 뇌도 한번 헹구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