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지만 좋은 육체 노동
오늘 한반도에 '카눈'이라는 커피 제품 이름과 유사한 태풍이 올라오고 있다. 기상관측 상 한반도를 종으로 지나가는 태풍은 처음이라고 한다. 사실 이 태풍은 오키나와를 지나쳐 북서쪽 중국 본토 방향으로 오르다가, 갑자기 멈춰 한동안 제 자리에 머물러 있었고, 갑자기 거의 180도 가까이 방향을 꺾어 일본 방향 동쪽으로 나아갔다. 이런 경로를 보인 태풍도 아마 처음일 것이다. 게다가 이 녀석은 일본으로 계속 나아가지 않고 다시 방향을 북쪽으로 거의 90 가량 꺾어서 한반도를 향해 올라왔다.
태풍이 따뜻한 남쪽 바다에 오래 머물러 있었기 때문에 세력이 큰 '강'에 해당한다고 언론에서 엄청 강조하고, 재난 문자도 수십번 왔다. 그리고 태양광 발전소를 9개나 운영하고 있는 우리 조합에는 갑자기 빨리 태풍 대비 점검을 하라는 요청들이 빗발쳤다.
짧은 휴가 동안 아이들과 놀다 오고 난 후, 주말에 또 친한 선후배들과 깊은 산 속 계곡에 피서를 잠시 다녀왔다. 원래는 워크숍이란 이름으로 기획된 행사였고, 나는 꼭 가지 않아도 되는 입장이라 안 갈 생각이었는데, 후배 활동가가 함께 가달라고 요청을 했고, 선배들도 내가 함께 가는 걸 당연히 여기고 있길래 어쩔 수 없이 억지로 끌려가는 마음으로 다녀왔다. 그 이야기는 좀 있다가 자세히 쓰기로 하고. 암튼 그렇게 푹 쉬고 와서 일상 복귀하자마자 아침부터 급한 전화가 계속 왔다.
해마다 태풍 대비 점검을 했었다. 그때도 역시 대부분 급하게 태풍이 오기 직전에 했었던 것 같다. 그래서 매번 힘들었던 기억이 있다. 장마가 끝나고 무더위가 한창일 시기에 땡볕에 옥상에서 긴 시간 힘든 노동을 이어가야 했다. 이번에는 그런데 급해도 너무 급하게 연락을 받았다. 태풍이 우리나라로 올 거라는 예상을 미국이랑 유럽은 했다는데, 우리나라 기상청은 동해안으로 빠져나갈 거라고 예상했었다는 소식을 들었었다.
문제는 이게 중부 지방까지 치고 올라오는 태풍으로는 아주 오랜만이라는 것. 우리 조합이 태양광발전 사업을 시작한 지 거의 10년인데, 그 10년 동안 중부지방에 직접 영향을 미친 태풍은 아직 없었다. 그래서 몇 해 전에 여러 보험회사 담당자들과 보험료 관련 협상을 할 때 그런 얘길 들었었다. 중부지방에 직접 태풍이 올라오지 않은 지 시간이 좀 되었기 때문에 아직은 큰 피해가 없지만, 만약 중부지방에 태풍이 지나가면 분명 몇몇 태양광 발전소가 큰 피해를 입을 것이고, 그로 인해 보험료도 인상될 수 밖에 없을 거라고.
태풍 대비 점검을 해야 한다고 인식하자마자 태풍의 최대 풍속을 찾아봤다. 태풍은 초속 34미터를 넘으면 '강'으로 분류된다. 카눈은 당시에 초속 40미터의 '강'으로 분류되는 태풍이었다. 우리 태양광 발전소들은 대부분 초속 30미터 이상을 견디도록 설계된다. 그런데 좀 더 찾아보니 한반도 동쪽은 초속 40미터가 될 지 모르지만, 수도권은 초속 25미터 가량이 최대일 것으로 예상치가 나왔다. 일단 설계도 상으로는 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겠지만, 그건 최근에 지은 서너개 정도가 해당될 것이고, 지은 지 오래된 초기 발전소들은 확실한 점검이 필요했다. 그런데 장비도 인력도 부족했다. 발전소 하나에 200여 개의 모듈이 들어가 있고, 각 모듈 당 구조물과 체결한 볼트와 너트는 4개씩 된다. 그러니 800개의 볼트, 너트를 점검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가 관리하고 있는 발전소는 9개다. 어떤 발전소는 사다리를 놓고 올라가야만 점검이 가능하고, 어떤 발전소들은 손만 뻗어서 점검이 가능한 곳들도 있다. 일단 나를 포함한 실무자 두 명이서 해내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그래서 해마다 조합원들이나 임원들이 도와주었는데, 올해는 도움을 쳥해도 시간이 맞는 사람이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다 우리 조합 감사님이 시간이 된다고 연락이 왔다. 고향인 부산 사람으로 내게는 대학 선배이기도 한 분이고, 이런 류의 노동을 아주 잘 하시는 분이다. 일단 안심이 되었다. 그 형이 오면 정말 큰 도움이 될 것이 분명했다. 이제 장비와 차량을 더 구해야 하는데, 사다리는 그럭저럭 해결이 되었는데, 문제는 여러 발전소에 사다리를 실어 다닐 차량이 구해지지 않았다. 해마다 발전소 청소를 다니거나 이번처럼 긴급 점검을 다녀야 할 때마다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 차량을 빌리는 일이었다. 승용차라면 렌터카나 공유카 업체에서도 구할 수 있지만, 트럭은 반드시 기사님 인건비를 포함해야 빌릴 수 있다. 고맙게도 동네에 트럭을 흔쾌히 빌려주시는 법인들이 두세 곳 가량 있어서 해마다 어떻게든 빌릴 수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곳들 모두 사정상 빌려주기 어렵다는 답변을 받았다. 그 답변을 받기까지 시간이 제법 오래 걸렸고, 우린 답변을 기다리느라 지쳤다. 마음은 급한데 답은 오지 않고, 그렇다고 빌리는 입장에서 재촉하기도 애매했다.
암튼 결국은 감사님이 해결책을 주셨다. SUB를 빌려서 뒷좌석을 접으면 사다리를 싣고 다닐 수 있을 거라고 했다. 우리 사다리가 좀 길어서(이중 사다리라 늘리고, 펼치면 4배 길이가 되는데, 평소에 1/4 길이일 때에도 충분히 길다.) 안 실리는 거 아닐까 하는 나의 의심과 달리 감사님 말씀처럼 사다리를 간신히 실을 수 있었다. 그리고 후배 활동가와 감사님과 나 이렇게 셋이서 점검을 하러 다니기 시작했다. 일단 너무 더운 날이었다. 무더위 혹은 폭염, 뭐라고 부르던 땡볕인 옥상에서 그렇게 힘들게 일할 수 있는 날씨는 아니었다. 처음 간 발전소가 우리가 운영하는 발전소 중에 가장 높은 곳이었다. 구조물 높이만 3미터가 넘었고, 모듈의 길이를 감안하면 4미터 가량의 높이에서 작업을 해야 했다. 매번 사다리를 오르내리는 일도 힘들었고, 불안정한 사다리 위에서 힘을 쓰기 위해 허리에 힘이 많이 들어가는 것도 빨리 지치게 만드는 원인이었다. 게다가 볼트와 너트를 꽉 조이기 위해 손아귀에도 힘이 많이 들어갔다. 또한 사다리 무게도 무거웠다. 그냥 서 있기만 해도 땀이 줄줄 흐르는 이 폭염에 이 정도의 중노동은 너무나도 가혹한 일이었다. 겨우 모듈 서너장 점검하고 이미 지쳐버린 나와 후배 활동가는 남아 있는 모듈의 갯수를 어림짐작해 보고 나서 의욕을 잃었다. 게다가 이제 겨우 첫 발전소였다.
어떻게 일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어쨌건 그 폭염 속에서 어떻게든 일을 했다. 땀이 자꾸 안경에 맺히거나, 눈에 들어가 방해했고, 입고 있던 셔츠와 속옷과 바지는 진작에 땀에 완전히 젖었다. 그 첫 발전소를 마무리하고 다음 발전소로 이동하는 차 안에서 팔뚝에 하얀 가루 같은 것들이 맺혀 있어서 떨어보니 소금이었다. 땀이 말라서 소금만 남아 붙어 있었던 거였다. 갑자기 김진숙 지도위원의 [소금꽃나무]가 생각났다.
그렇게 점검 첫 날은 두 곳의 발전소만 간신히 돌아보았다. 이번 태풍이 발전소 운영 시작 이후 처음으로 중부지방에 올라오는 태풍이라 최근에 지은 발전소들도 형식적으로라도 점검을 하긴 해야 했다. 총 9개의 발전소 중에 경기도에 있는 발전소 하나는 약 1달 전 탐방을 갔을 때 점검을 이미 마쳤다. 서울에 있는 발전소는 8개. 그 중 하나는 평소 접근이 어려운 위치에 있다. 이번에도 올라갈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제외하면 남은 건 7개. 그 중 겨우 2개를 첫날 마쳤던 것이다. 남은 것은 5개. 감사님은 둘째날 오전까지만 도와주실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후배 활동가는 첫날의 그 가혹한 노동으로 너무 힘들어하기도 했고, 이래저래 일이 많아서 사무실에서 다른 급한 일들을 처리하게 했다. 그래서 둘째날 오전에 감사님과 내가 제일 할 일이 많은 2개의 발전소를 다녀오고, 남은 3개를 내가 혼자 점검하기로 했다.
둘째날 아침 일찍부터 중노동을 했더니 정말 힘들었다. 게다가 전날의 그 폭염 속 노동이 너무 힘들어서 그 피로 누적이 지구력과 집중력을 떨어뜨렸다. 어쨌거나 가장 힘들거라고 예상했던 발전소들을 감사님 덕분에 무사히 마쳤다. 대학 선배인 그 형은 정말 쉬지 않고 꾸준히 일하는 타입이었다. 일을 잘 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 잘 할 줄은 몰랐다. 내가 너무 힘들어서 가끔 멈추고 멍하니 쉴 때마다 쳐다보면 잠시도 쉬지 않고 계속 일하고 있더라. 혼자만 쉬는 것이 미안해서 내가 잠시 쉬다하자고 말을 걸면 무뚜뚝하게 "쉬어." 하고 한 마디 대꾸하고는 계속 손을 멈추지 않는다.
우리 세 명의 일하는 스타일을 한 번 분석해봤다. 일단 나는 사무실에 앉아 하는 일 보다는 무조건 힘쓰는 노동을 좋아한다. 사실 그 이틀 간의 고된 노동도 육체적으로는 너무나도 힘들었지만, 그래도 사무실에서 머리 아픈 고민을 하는 것 보다는 좋았다. 그리고 힘이 세지는 않지만, 체격에 비해서는 힘을 잘 쓰는 편이기도 하다. 집중력과 지구력이 조금 약한 편이긴 한데, 어쨌거나 해내야 할 일이라면 책임감 때문에 끝까지 힘을 쓰는 편이다. 후배 활동가는 일을 잘 하고 힘도 쎄서 정말 믿음직한 친구이다. 나보다 경험이 좀 부족할 뿐, 일을 하는 걸 보면 대체로 나보다 낫다는 생각이 든다. 다만, 이 친구는 종종 지구력이 부족한 모습을 보인다. 그 폭염 속 첫 날의 경우에도 처음에는 일을 열심히 잘 했지만, 중반 이후로는 약간 더위 먹은 것 같다고 말하며 일손을 놓고 있는 시간이 제법 있었다. 예전에도 그런 모습을 몇 번 보았었다. 당연히 그런 모습을 탓할 생각은 없다. 체력이 가능한 만큼 일을 해야 하니까,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다만 젊은 나이와 체격을 생각하면 나보다 체력이 낮은 모습이 아쉬울 뿐. 마지막으로 우리 감사님은 그냥 뭐 말이 필요 없다. 거의 잠시도 쉬지 않고 부지런히 손을 놀렸고, 힘도 쎄고, 지구력도 짱이고, 집중력도 짱이다. 발전소 점검 때문에라도 체력을 좀 늘려야겠다고 혼잣말을 하는 모습을 보니, 젊은 시절에는 이보다 더 잘 했을 거라는 것이 눈에 보인다. 이젠 배가 뽈록 나온 전형적인 아저씨가 되어버린 그 형이 젊었던 시절이 잠시 머리를 스쳤다. 뭐 이미지로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는데, 조금 더 늙었고, 조금 아니 좀 많이 배가 나왔을 뿐.
둘째날 오후에 방문할 3개의 발전소 중 2개는 아직 지은 지 3년이 채 되지 않았기 때문에 크게 점검할 내용이 없었다. 나머지 1개는 작년에 좀 힘들게 점검을 했기 때문에 올해는 크게 힘들지 않을 거라고 예상했었다. 꼭 중요한 부분에서 예상은 깨지더라. 쉽게 마칠거라 예상하고 사다리도 가져가지 않은(작년에 사다리 2개로 긴 시간 꼼꼼하게 점검했었기 때문에) 그 발전소에서 예상치 못한 상황을 맞았다. 혼자 한 30분 정도 가볍게 점검을 하려고 갔는데, 구조물과 모듈의 체결 상태가 나쁜 곳들을 대거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제서야 떠올렸다. 작년에 이곳에 와서 엄청 큰 벌들의 벌집을 두 개 발견했었다는 사실을. 그리고 말벌이라고 생각했던(나중에 생태 전문가인 선배가 사진을 보더니 말벌은 아니라고 함) 그 벌들이 계속 주위를 날아다니고 있어서 좀 겁이 나기도 했다. 벌집은 두 개의 열에 하나씩 있었는데, 그 두 열에 나와 후배 활동가가 각각 붙어서 작업했었다. 이번에 와서 점검해보니 내가 작년에 점검했던 구간들(벌집이 있던 열 하나를 포함해서)은 대부분 크게 점검할 내용이 없어서 금방 끝냈는데, 후배 활동가가 작업했던 곳들 중 벌집이 있었던 그 구간에 체결 상태가 나쁜 지점들이 잔뜩 몰려 있었다. 뭐 결코 후배 활동가를 탓할 생각은 없지만, 이런 상황이라고 예상했다면 절대 혼자 사다리도 없이 오지는 않았을 거라고 생각하며 상황을 오판한 것에 대해 좀 아쉬움이 남았다.
암튼 둘째날 오전의 힘든 노동 이후 오후는 혼자 좀 널널하게 다니리라는 예상은 깨졌다. 그 짧은 구간에 체결 상태가 불량한 곳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어서 너무너무너무 힘들었다. 대충 하고 그냥 모른 척 가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중부 지방에 처음 올라오는 태풍이라는 생각 때문에 대충 할 수가 없었다. 결국 혼자서 긴 시간 노동을 마치고 땀에 완전히 젖은 몸으로 옥상에서 내려왔다.
그게 엊그제와 어제 상황이었다. 어제 저녁에 퇴근해서 샤워를 마치고 나니 정말 아무것도 할 힘도 의욕도 없어서 그대로 쓰러져 잠들었다. 저녁을 못 먹었어도 배도 고프지 않았다. 그리고 오늘 아침에 깨보니 입술 두 군데가 부르터 있었다. 이런 걸 입술 포진이라 부르던가? 나는 조금 피곤하면 입 주변에 뾰루지 같은 것들이 올라오는 편인데, 이렇게 포진이 생기는 건 정말 피곤하고 힘든 경우인 것 같다.
선물
최근에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강의할 일이 세 번 있었다. 두 번은 지역아동센터 강의였고, 마지막 한 번은 지역의 한 도서관이었다. 지역아동센터 건은 기획 단계에서부터 내가 할 수 밖에 없을 거라고 생각하고 짰기 때문에 내가 준비를 많이 할 수 밖에 없었다. 도서관 건은 처음에 후배 활동가에게 맡아서 하라고 했는데, 이 친구가 초등학생들과의 강의를 어려워해서 내게 맡아 달라고 했다.
환경, 에너지 분야 강의를 하러 다닌지 10년 정도 되었다. 초기에는 초등학생이나 어른신들 강의가 많았다. 그땐 우리 아이들도 어렸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이야기 한다는 생각으로 초등학생 강의를 다녔다. 우리 아이들도 둘 다 내 강의를 두어 번 이상 들었었다. 방과후 협동조합 강의와 작은도서관 강의 등을 통해서였다. 그러다 점점 중,고등학교 강의가 많아졌다. 지역에서 청소년 사회적경제 교과서를 만드는 과정에 참여한 후로는 중,고등학교 강의 비중이 훨씬 더 많아졌다. 코로나 이전까지 주로 그렇게 청소년 강의를 다녔다. 그리고 코로나 이후로는 학교 강의 자체가 거의 없어졌다. 강의 영상 촬영을 한 번 했었는데, 두 곳인가 세 곳인가 하는 학교에서 사갔다는 소식을 뒤늦게 전달 받았었다.
오늘 낮에 도서관 강의를 다녀왔다. 초등학생 20명 가량이라고 준비 단계에서 전달받았는데, 오늘 사서 선생님과 통화해보니 10명이 채 되지 않을 거라고 했다. 나는 아이들과 편하게 이야기를 많이 나눌 생각으로 좀 여유있게 강의 준비를 했다. 그리고 사선 선생님이 좀 일찍 마쳐달라고 당부하시길래 강의 내용도 원래보다 좀 줄였다.
태풍이 올라오는 중이라 비바람이 몰아쳤다. 버스를 타기 애매한 거리와 위치라서 걸어서 갔다. 걸어가는 동안 바지는 거의 다 젖었고, 셔츠와 가방도 제법 젖었다. 이런 날씨에 아이들이 얼마나 오려나 어쩌면 한 두 명 밖에 못 오는 건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다행히 이 궂은 날씨에도 아이들은 7명이나 왔다. 나는 진심으로 와준 아이들에게 고맙다고 표현했다.
그리고 우리 아이들과 대화한다고 생각하면서 아이들에게 쉽고 재미있게 접근하려고 노력했다. 초등학생들과 어르신들 강의가 어려운 가장 큰 이유는 어렵고 복잡한 용어와 개념을 설명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강의를 다니기 시작한 초기에 그래서 실수도 많았고, 스스로 자책도 많이 했다. 더 잘하고 싶어서 준비도 많이 했었는데, 예상하지 못한 내용과 질문에 당황하는 경우도 제법 있었다. 하지만 점점 경험이 쌓이면서 이런저런 돌발상황에도 여유있게 대처할 수 노련함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만의 강점을 잘 살릴 수 있는 강의 스타일을 만들어갔다.
약 두 달 전에 있었던 지역아동센터 첫 강의 때 나는 일정을 착각해서 다른 요일로 체크해두었었다. 강의 시간 직전에야 연락을 받고 뛰어나갔다. 다행히 강의 장소인 지역아동센터가 그리 멀지 않아서 많이 늦지 않고 도착했다. 나는 일정을 착각해 늦은 것에 대해 너무나도 죄송했고, 강의 내용으로 보답하고 만회하리라 생각했다. 초등학생들은 15명 내외였던 것 같고, 지역아동센터 선생님들 두어 분이 내 강의를 같이 들었다. 그리고 지역에서 봉사활동 하시는 어르신들도 몇 분 함께 들었다. 나는 침착하고 편안하게 아이들과 대화하듯 강의를 진행했고, 친절한 태도와 부드러운 목소리로 아이들의 경계를 낮추고, 적절한 질문과 칭찬과 사소한 관심 표현으로 아이들의 호감을 얻었다. 1시간 반 가량의 강의를 마치고 나서 지역아동센터 선생님의 표정이 바뀌었다. 늦게 도착했을 때 불쾌감을 숨기려는 그 약간 어색한 표정이 사라지고, 재미있는 강의를 잘 들었다는 것 같은(순전히 내 관점에서) 표정 혹은 아이들의 집중력을 잘 유지하면서 어려운 내용을 쉽게 풀어 준 것에 대한 호감이 엿 보이는 표정이었다. 그 선생님은 다음에 기회가 되면 꼭 다시 부르겠다고 했다.
오늘은 중간에 쉬는 시간에 아이들에게 직접 물어봤다. 내가 이야기하는 내용들이 어렵지는 않은지? 지루하지는 않은지? 아이들은 조금은 어렵지만 재미있다고 답했다. 물론 낯선 어른에게 정직하게 답하기 보다는 그냥 예의상 재미있다고 답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아이들의 표정에서 그렇지 않을 거라는 느낌이 들었다.
아이들의 사소한 질문들에 답해주고,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느라 시간을 좀 많이 써버렸다. 애초에 내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많이 줄여서 최대한 시간을 단축시켜 보려고 했는데, 사서 선생님의 당부를 지키지 못했다. 그래서 좀 더 시간 관리에 신경 썼어야 했는데 하고 자책하게 되었다. 강의를 마쳐갈 때 즈음, 도서관 관장님으로 보이는 분이 오셔서 뒤에서 기다리고 계셨다. 그제서야 조금 일찍 마치고 아이들 수료식과 시상식이 있다는 사실을 유추해볼 수 있었다. 사서 선생님이 그 사실을 미리 언급해주셨다면 내가 좀 더 시간 관리에 신경 쓸 수 밖에 없었을텐데.
어쨌거나 시간 관리름 못 했다는 측면에서 아이들에게, 사서 선생님에게, 도서관 관장님께 미안하고 또 죄송한 마음이었다.
강의를 다 마치고 아이들이 돌아간 후에 관장님과 인사를 나누고 돌아서는데, 다 돌아간 줄 알았던 아이 하나가 나를 기다리는 듯 서 있었다. 강의 중에 몇 차례 이야기를 나눴고, 시원시원하게 대답도 잘 했던 아이라서 나는 머리를 한 번 쓰다듬으며 집이 이 근처냐고 물었다. 바로 앞이라고 답했다. 내가 걸어 나가는데 녀석도 함께 나오길래, 집에 가는 길에 나랑 같이 나가려고 기다린 것인가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도서관 현관을 나설 때 녀석이 이렇게 말했다. "저기 조금 가서 제가 선생님께 뭐 사드리려고 기다렸어요." 나는 그 조그만 초등학생이 나한테 뭔가를 사 준다고 표현한 것이 놀랍고 조금 당황스러워서 "뭐?" 하고 크게 되물었다. 느낌에 뭔가 음료수 같은 걸 대접하고 싶다는 표현으로 들렸다. 나는 머리를 한 번 더 쓰다듬고, 안 그래도 된다고 말하고, 마음 만으로 너무 고맙고 잘 마신 것으로 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다음에 꼭 또 만나자고 했다. 녀석이 내게 어디서 일하는 지 묻길래, 우리 제로웨이스트 매장 위치를 알려줬다. 녀석은 어딘지 알고 있다고 꼭 놀러갈게요. 라고 답했다.
세상에! 10년 가량 강의를 다니면서 이렇게 뭔가 사드리고 싶다는 표현을 듣기는 처음이다. 아주 오래전 학원 강사를 하던 시절이 떠올랐다. 그때는 젊기도 했고, 학생들과 소통할 수 있는 이 강사라는 직업을 진심으로 좋아하던 시절이었다. 다행히도 이 썩 매력적이지 않은 외모에도 불구하고, 우리 학원 남자 강사들 중에서 나는 좀 인기가 좋은 편에 속했다. 그래서 당시엔 여학생들이 작은 쵸콜렛이나 사탕 등을 자주 내 책상 위에 갖다 두곤 했다.
음, 그 시절 내게 좋아한다고 고백했던 여학생은 지금 어디서 뭐하고 지내는지 문득 궁금해지네. 오늘 그 아이가 내게 뭔가를 사주고 싶다는 마음을 먹었던 일이, 아니 그 아이를 비롯해 다른 아이들고 함께 짧은 시간이지만 함께 소통할 수 있었던 일이 내게는 선물 같은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다음에 만나면 이 오글거리는 표현을 전할 수 있을까? ㅎㅎㅎㅎ
독서와 휴식
음, 마지막으로 깊은 산 속 계곡 가에서 책 읽으며 보낸 기억을 좀 두드려 놓고 싶었는데, 벌써 시간이 제법 지나버렸다. 이 이야기는 다음에 마음 내키면 다시 두드려보는 걸로 해야겠다. 태풍이 무사히 지나가기를.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이 평안하시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