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전체를 상대로 한 범죄
일본 정부와 도쿄 전력이 지난 8월 24일부터 방사성 오염수 투기를 시작했다. 언론에서는 자꾸 '방류' 라는 단어를 쓰는데, 이는 물이나 액체를 정상적으로 내보내는 일을 의미하는 것이고, 일본 정부가 방사성 물질로 오염된 폐기물을 불법으로 버리는 행위는 '투기'라고 표현해야 한다. 이는 명백한 범죄행위이고, 이를 막지 못하는 현실이 한 편의 블랙 코메디처렴 여겨진다. 아, 이에 대해 수십 페이지에 달하는 비판 글을 적을 수 있지만, 이미 여러 차례 성명서 초안도 쓰고, 논평 초안도 썼지만, 그걸 여기에 반복하는 일은 그닥 의미가 없으리라.
24일 방류 시작 소식을 접하고 그 다음날인 25일까지 허무함과 무력감이 정말 컸다. 일에 대한 아무 의욕이 없었다. 할 일은 산더미처럼 쌓였는데, 계속 멍하니 뉴스만 찾아보고 있었다. 이제는 오래 전 일이 되어버린 새만금 반대 투쟁과 고속철도 반대 투쟁이 떠올랐다. 정말 치열하게 싸웠는데, 명분도 있었고, 과학적인 근거도 있었는데, 두 국책사업은 모두 고 노무현 대통령 임기 때 폭력적으로 추진되었다. 내가 굳이 노무현 이란 이름을 올린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대통령 후보였던 노무현이 두 국책사업을 모두 원점에서 재검토 하겠다고 공약을 냈으나, 임기 첫 해에 그 공약을 어기고 그대로 추진했다는 점을 기억하기 위해서이고, 둘째는 누구나 다 훌륭한 대통령이라고 인정하는 그가 바로 환경 분야에서는 최악의 대통령이었다는 점을 기억하기 위해서다. 암튼 그때 현장에서 묵묵히 일했던 무명의 활동가였던 나는 그 두 사업이 결국 추진된 후에 엄청난 무력감과 우울증에 빠졌다. 환경운동이라는 것이 아무 소용이 없는 일이구나. 내가 죽어라 열심히 일해도 자연은 이렇게 쉽게 무참히 파괴되고 마는구나. 이런 무력감 때문에 한동안 아무것도 제대로 열심히 할 수 없었다. 잠시 환경단체 일을 그만두고 그저 먹고 살기 위해 학원 강사로 취직해서 영혼 없는 기계처럼 단순한 일상을 반복하며 일했었다.
한 선배가 최근 내게 황윤 감독의 다큐멘터리 [수라] 티셔츠를 선물했다. 동네에서 [수라] 공동체 상영을 준비할 때 나도 참여했었는데, 정작 나는 영화를 보지는 못했다. 그 시간에 내가 매장을 보고, 후배 활동가에게 영화를 보라고 했다. 암튼 내게 티셔츠를 선물한 그 선배는 내게 새만금 투쟁 당시에 열심히 활동했던 사람이 입어야 할 옷이라며 그 옷을 건넸다. 그 옷을 받아들고 보니 삼보일배를 비롯해 목숨 걸고 방조제 공사를 막기 위해 피, 땀, 눈물을 흘렸던 여러 순간들이 머리를 스쳤다. 그리고 앞서 언급한 그 무력감, 패배감, 우울감이 뒤따라 왔다.
최근 페이스북을 보니 친분이 있는 한 활동가가 24일에 짧은 글을 하나 올렸다. 매년 그렇듯 오늘도 여러 분들께 많은 선물을 받아서 감사하다고 적은 후에 그런데 하나 자신을 충격에 빠뜨린 선물이 있었다고. 하필 오늘이냐고, 일본 방사능 오염수를 언급했다. 그렇구나. 그 날은 누군가의 생일이거나 기념일 일수도 있는 일이다. 그런 즐거운 날에 이런 소식을 접했다면 그 기분은 과연 어떨까?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물론 오염수 투기는 이제 막 시작했고, 아직 절망할 상황은 아니다. 앞으로 최대한 빠른 시일 안에 투기를 중단시켜야 할 일이다. 일본 정부는 30년을 말했지만, 어림도 없는 말이다. 저 30년은 수소폭발이 일어났던 4기의 핵발전소를 폐로 시킨다는 가정 하에 나온 기간이다. 하지만, 현재의 과학 기술로는 저 4기를 정상적으로 폐로 시킬 수 없다. 할 수 있었다면 벌써 했을 것이다. 아직 손도 못 대고 있는 현실을 누구보다 자신들이 더 잘 알 것이다. 이대로 오염수 투기를 계속 묵인한다면 아마 100년? 아니 300년이나 500년이 걸릴지 장담하기 어렵다. 현재 인류의 과학기술로는 저 치사량에 가까운 방사능 피폭을 감수하고 데브리(녹아버린 핵 연료봉)를 처리할 방법이 없다. 100년 후에는 과연 가능할까? 글쎄 장담할 수 없지만, 쉽지는 않을 것이다.
강의할 때 자주 쓰는 내용인데, 86년 체르노빌 사고 때는 단 1기의 핵발전소가 터졌다. 터져버린 건물을 콘크리트로 다시 막는데 6개월 이상이 걸렸지만, 결국은 막긴 막았다. 그 임시로 막은 콘크리트가 수명을 다하니, 다시 다른 좀 더 견고한 구조물을 덧씌워서 어쨌든 방사능 물질이 새어나오지는 않도록 막았다. 그러나 후쿠시마는 4기가 터졌고, 사고가 난지 12년이 지나도록 터진 건물을 막지 못하고 있다. 아니 그 폐허 속에서 데브리가 어떤 상태인지 조차 아직 정확히 파악하지 못 하고 있다. 지금도 그 터진, 그러니까 열린 건물에서 데브리로부터 뿜어 나오는 수백가지 방사능 물질들이 공기 중으로 나오고 있고, 지하수로 흘러 들어가고 있다. 그 중 지하수만 따로 모아둔 것을 두고 저장 용량을 감당하지 못하겠다며 바다에 버리겠다는 것이다.
바쁜 와중에 이렇게 글이라도 써야 그래도 조금은 일에 집중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잠시 짬을 내서 두드린다. 이제 일하러 가야지.